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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으아앙 징그러워,기사다안-!기사다안-! (12/323)

12화. 으아앙 징그러워,기사다안-!기사다안-!202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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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벨리아가 정신없는 자기소개와 초대, 그리고 더 나아가선 약혼자가 있으시냐는 터무니없는 질문에 혼을 쏙 빼고 멍하니 입을 벌린 그때였다. 누군가의 등장으로 소란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16549720765044.jpg“아르티나 공녀인가요?”

렐리안 또래로 보이는 작은 여자아이. 잿빛 머리칼과 회색빛 눈동자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붉은 색 드레스 때문에 이곳 그 누구보다도 선명히 눈에 띄었다. 제법 영향력 있는 지위인지, 잿빛의 아이가 자박자박 걸어오자 이벨리아를 둘러싸고 있던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양옆으로 갈라서 길을 만들어주었다.

16549720765044.jpg“반가워요. 저는 데퐁트 후작가, 세레스에요.”

16549720765054.jpg“방가워요. 이벤리아 아르티나입니다.”

이벨리아가 천진하게 마주 인사를 건네었다. 이벨리아는 아직 어린아이였다. 공작저에서 호의와 사랑만 받고 큰. 그러니 처음 보는 아이가 제게 악의를 가졌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16549720765044.jpg“아직 잘 모르시는 것 같아서 말씀드려요, 영애. 파티장에 들어오면서 이렇게 소란을 일으키는 건 예의가 아니랍니다.”

……?

16549720765044.jpg“또 여러 사람이 인사를 건넬 때는 일어나서 받아야 하고요.”

……얘 왜 이래?

16549720765044.jpg“영애께서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으시군요. 많이 어리시니 크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요.”

데퐁트…… 데퐁트…… 어디서 들었지. 눈을 또록또록 굴리며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하고 생각하던 이벨리아가 떠올린 듯이 아! 하고 외쳤다. 그 뱀 눈깔 후작네 집안이 데퐁트였지! 아빠 판박이네, 판박이야! 아까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다 취소야. 구세주라고 생각한 것도 전부 취소야. 넌 내가 조금만 더 크면 나한테 죽었다! 지금은 대응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나았다. 말로 찍어 누르자니 발음이 자꾸 새어나가고 이리저리 뭉개져서 오히려 웃음거리만 될 것 같았다. 이벨리아는 굳이 반응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16549720765044.jpg‘하. 뭐야, 이렇게 말하는데도 반응이 없어? 백치 아니야?’

망신을 주는데도 ‘짖어라 멍멍아, 나는 아무것도 못 알아들었어요-.’라는 듯 평온한 표정의 이벨리아를 보니 세레스는 더욱 열이 뻗쳤다. 저 고요한 표정을 무너뜨리고 싶어졌다. 진심으로. 이벨리아가 태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이 제국 가장 높은 지위의 영애, 가장 화려한 아이, 훗날 사교계의 여왕이 될 아이, 차기 황후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아이. 그 모든 수식어가 가리키는 것은 단연 자신이었다. 그러나 약 2년 전. 첫 생일파티를 통해 이벨리아가 귀족들과 제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난 이후부터는 본래 자신의 것이던 모든 수식어들은 물론이요, 정령의 맹약자라는 거한 호칭까지도 저 꼬마의 차지였다.

16549720765044.jpg‘별 볼일도 없는데.’

세레스의 눈엔 황금색 머리칼을 빼고는 그다지 특별한 것도 없어 보였다. 게다가 아버지의 집무실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를 언뜻 듣기로, 아르티나는 곧 멸문할 가문이었다. 저 꼬마가 받은 정령의 사랑이란 그저 우연이었음이 분명했다. 훗날 아르티나가 멸문하면 저 꼬마를 내 노예로 두고 부려야겠다. 세레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비뚤어진 웃음을 지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세레스의 눈에, 이벨리아는 고귀한 공녀가 아니라 곧 멸문할 가문의 귀족으로만 보였다. 여태껏 후작저에서 저만이 세상 가장 드높은 공주님이라고 떠받들어져 세상 물정 모르고 자란 탓이었다.

16549720765044.jpg“그러고 보니 아르티나 기사단이 수도로 돌아왔다죠? 가문의 개가 마족이 무서워 도망친 거라는 소문이 들리던데.”

자신에 대해 부족하다고 폄하하여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던 이벨리아가, 거짓 사실로 기사단을 모욕하는 이야기가 들려오자 눈을 사납게 치켜떴다.

16549720765044.jpg‘이제야 좀 반응이 오네, 마음에 들게.’

세레스는 그것으로 오늘 파티의 목적을 다하였다고 생각하며, 통쾌하게 뒤로 돌아서려고 했다.

16549720765054.jpg“간히, 내 기사들을 모욕해?”

이벨리아의 발음은 여전히 어눌했다. ‘아르티나의 기사’ 대신 ‘내 기사’라는 어딘가 부족한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운만큼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귀족 아이들을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하게 할 만큼 서늘했다. 허울뿐인 아르티나 가문의 공녀가 아니었다.

16549720765054.jpg“웅디네.”

이벨리아가 자신의 방패이자 칼이 되겠다고 맹약한 운디네를 불렀다. 이벨리아의 감정을 그대로 느끼고 있던 운디네가 평소에는 얌전하던 꼬리를 아주 매섭게 흔들며 허공을 휘돌았다. 목적은 세레스의 저 불경스러운 조동아리에 물풍선 한 방을 쏘아주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 계약자보다 더욱 분노한 운디네는 세레스의 머리 위로 가히 폭포와 같은 물세례를 내리곤 사라졌다.

16549720765044.jpg“꺄아아악!”

난생처음 당해보는 물세례에 당황한 세레스가 이벨리아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이벨리아도 운디네의 폭포 세례에 당황한 눈빛을 애써 숨기고 세레스를 마주 보았다. 마치 서부 영화의 한 장면처럼 고요한 정원에서 서로만 노려보는 가운데. 아름답던 정원 일부가 달빛조차 비추지 않는 새벽 바다처럼 검은색으로 물결쳤다. 이내 검은 물방울이 사방으로 튀고, 소름끼치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정원의 일부분이 마치 밤바다처럼 새카맣게 일렁이는 광경은 과히 비현실적이라 소름이 돋았다. 잔잔하게 일렁이던 바닥이 이내 꿀렁대기 시작하자, 영문 모르는 아이들은 ‘흐아아’ 소리를 내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이벨리아도, 세레스도, 세레스의 옆에서 세레스를 마치 공주처럼 모시며 이벨리아를 쏘아보던 초록색 머리칼의 미로네 백작 영애도. 서로 마주치던 시선을 거두고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그곳을 응시했다.

16549720795943.jpg- 크르르륵…….

일렁이는 바닥 속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는 그 어느 짐승의 것도 아니었다. 단연코 그 어떤 짐승이라도 저러한 살기를 띠진 않으리라. 정원에 모여 있던 아이들은 더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 물러설 수가 없었다. 등을 돌리는 순간 목덜미를 물어뜯길 것만 같았다. - 촤아악. 이벨리아가 눈을 두어 번 깜빡이는 순간, 일렁이던 바닥 속에서 무언가 꾸물꾸물 움직이더니 이내 땅을 짚고 올라섰다. 하나가 아니었다. 속속 기어 올라오는 그것들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으나 누가 보더라도 인간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몸의 형체는 뼈와 살이 아니라 검은색의 짙은 연기가 대신하고 있었다. 짐승처럼 벌린 입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가득했다. 흐르는 침은 땅을 녹였고, 손톱은 공기를 찢었다. 거친 숨결에서는 악취가 났으며, 그 주변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벌레들이 날아다녔다.

16549720795948.jpg“아아…….”

누군가 침음을 내뱉었다.

16549720795948.jpg“다……단탈리온…….”

정체를 알고 있는 아이가 읊조렸다. 단탈리온. 마족의 최 하류층. 단탈리온은 마족들을 다스리는 ‘레메게톤의 72 악마’에게 불복하여 그들로부터 낙인을 받은 자들이었다. 마족의 서열은 크게 ‘72 악마’와 일반 마족들로 나뉜다. 힘을 중시하는 마족들이기에 월등하게 강한 힘을 가진 72 악마에 대한 충성심은 절대적이고 맹목적인 터. 그렇기에 마족들은 72 악마에게 대항하였다가 패배하고 추방당한 단탈리온의 죄를 무척 크게 여겨 마족의 테두리로부터 완전히 배척하였다. 그 결과 단탈리온은 마계의 한구석에서 떨어지는 찌꺼기를 받아먹으며 연명하고 있었다. 그들에겐 두려움도, 뛰어난 지성도 없었다. 그저 눈앞의 상대를 찢어발기고 싶다는 욕망만이 가득할 뿐.

16549720795948.jpg“어떻게…… 여기에…….”

72 악마가 아닌 하위 마족의 등장은 인간을 매개로 한다. 그렇기에 단탈리온이 지금 이곳에 나타났다는 것은 쉬이 넘길 일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천천히 뒷걸음질 쳐 물러섰다. 이벨리아와 렐리안도 슬그머니 의자에서 내려왔다. 이벨리아는 아직 어려 단탈리온에 대한 설명을 들은 적도, 그림을 본 적도 없었다. 그랬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16549720765054.jpg‘흐아아아…… 징그러워!’

이벨리아가 저도 모르게 뒤로 주춤거리던 그 순간. - 파악! 몸이 앞으로 확 쏠렸다. 자의는 아니었다. 분명히 누군가 밀친 것이었다. 상당히 강한 힘이어서 이벨리아는 두어 걸음 정도 앞으로 휘청이다가 넘어졌다. 뒤로 물러난 아이들 속. 홀로 앞으로 나와 넘어진 이벨리아를 향하여 단탈리온들의 고개가 일제히 돌았다. 흐린 눈이 자연히 이벨리아를 먹잇감으로 포착했다. 떠밀려 넘어지면서, 이벨리아는 파티 내내 세레스의 옆을 지키면서 거만한 미소를 짓던 미로네 백작영애가 황급히 손을 내리는 것을 보았다. 동시에 세레스가 희미하게 미소를 짓는 것도 이벨리아의 시야에 들어왔다.

16549720765054.jpg“운……!”

황급히 운디네를 부르려다 이벨리아는 자신의 입을 막았다. 이미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버린 작은 물고기가 저 괴물들의 날카로운 이에 찢기는 것이 두려웠다. 아직 정령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이벨리아는, 정령은 물리적인 충격을 받더라도 소멸하지 않고 정령계로 역(逆)소환 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순식간에 악취 나는 뜨끈한 숨결이 얼굴에 와 닿았다. 이벨리아가 단탈리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기괴한 이빨과 흐르는 침. 날아다니는 거대한 나방과 벌레.

16549720795943.jpg“…….”

16549720765054.jpg“…….”

어디부터 물어뜯을까 탐색하던 단탈리온들의 눈과, 단탈리온들을 시선으로 훑어 올라가던 이벨리아의 눈이 마주치기까지, 잠시의 침묵이 흐르고.

16549720765054.jpg“흐아아아아앙! 징그러워어!”

……크륵?

16549720765054.jpg“으아아아앙! 징그러워! 징그러워! 아빠아- 엄마아- 오라버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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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엉…… 하나 빼먹었네.

16549720765054.jpg“기사다안-! 기사다안-! 흐아앙…….”

이벨리아는 징그러움에 몸서리치며 배운 호신술 중 가장 쓸모 있는 것을 떠올렸다. 손을 나팔 모양으로 만든 뒤 기사다안-! 기사다안-! 한편 단탈리온들 역시 나름의 충격에 몸을 굳혔다. 무섭다며 도망가는 인간은 많이 보았어도 면전에 대고 징그럽다고 소리치는 인간은 처음이다. 우리가 징그럽다니. 징그럽다고 세 번이나 말하다니! 분노에 차서 이벨리아에게 날카로운 손톱을 가져다 대려던 찰나. - 카앙-! 누군가 빠르게 뛰어와 단탈리온들의 손톱을 막아냈다. 잘 벼려진 검과 손톱이 부딪히는 소리가 정원에 짜랑하게 울려 퍼졌다.

16549720824085.jpg“하아…… 하아…… 우리 아가, 괜찮아?”

어린 여동생이 신경 쓰여 대련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던 아르칸은, 마침 이벨리아를 보러 정원으로 돌아오던 길에 울음소리를 듣고 이크리안이 눈을 의심할 정도의 속도로 뛰어온 것이었다.

16549720765054.jpg“으우…… 오라버니이…… 징그러어…… 무서어어……”

곧이어 달려온 세드릭이 이벨리아를 저의 뒤로 숨기고 검을 빼 들었다. 이크리안은 빙결 마법을 펼쳤다. 검을 잡은 이래 수련을 게을리한 적 없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직 어린아이들이었다. 십수 마리의 단탈리온들을, 그것도 이벨리아까지 지키며 처리하는 것은 무리였다.

16549720824085.jpg“둘은 이브 데리고 뒤로 빠져.”

16549720824097.jpg“객기부리다 황천길 가지.”

즉각 들려오는 이크리안의 반박에 아르칸의 표정이 구겨졌다. 단탈리온들의 눈이 이미 이벨리아를 향해 있는데, 어떻게 아가만 안전히 빼낼 수 있지? 눈을 맞추며 고민하던 세 아이들에게 일순 짙은 살기가 밀려들었다. 아르칸과 세드릭에겐 나름 익숙한 기운.

16549720855031.jpg“무슨 일이냐. 누가 감히.”

검에 있어선 그 길의 끝을 본 경지라 이르는 소드마스터. 휴고가 피워내는 살기는 마족인 단탈리온들마저 바닥에 뿌리박힌 듯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16549720795943.jpg- 크르르르…….

16549720795943.jpg- 키에엑……!!

휴고가 특유의 기민한 시선으로 정원을 훑었다. 이벨리아를 지키려는 듯 나무 막대기를 들고 앞으로 나와 바들바들 떨고 있는 렐리안. 그런 렐리안과 이벨리아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세 아이들. 그리고. 무릎과 팔꿈치에 피가 방울방울 새어 나온 채 눈물범벅이 되어 있는, 이 세상 자체보다도 소중한 딸. 휴고의 금안에 불이 튀었다. 그나마 갈무리되어 있던 살기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 스르릉. 이내 뽑아 든 검에는 황금빛 검기가 넘실거렸다. 뒤따라 몰려온 귀족들은 휴고의 검기를 보며 경탄했다. 십수 년 만에 단탈리온이 인간계에 나타난 상황임에도 감히 따를 수 없는 휴고의 경지는 전율을 일게 했다. 휴고가 그의 아이들을 위협하는 단탈리온들을 향해 검을 크게 휘두르려는데. - 삐약! 난데없이 휴고와 단탈리온들 사이에 샛노란 병아리 하나가 뚝, 떨어졌다.

16549720765054.jpg‘응……? 패대기쳐진 병아리 인형?’

이벨리아는 세드릭의 품에 안겨 울먹이면서도 하늘에서 떨어진 샛노란 병아리의 정체가 뭘까 싶어 살짝 고개를 갸웃댔다.

16549720795948.jpg“이 더러운 잡것들!!”

이내 우레와 같은 고함이 들려왔다.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지진이 일듯 땅이 진동했다.

16549720795948.jpg“어디 감히 우리 아기씨 근처에서 입 냄새를 풍겨?!”

병아리를 패대기치고 천둥이 치는 듯한 고함을 내지르며 나타난 그들은.

16549720795948.jpg“하, 나,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댄데 마족이 설치지이-? 이 현대 문명사회에?”

어이가 없다는 듯 머리를 쓸어 올리며 나타난 그들은.

16549720795948.jpg“주군! 주군께선 칼도 뽑으실 필요 없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미친 멍멍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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