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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아르티나 기사단,우리 아기씨 부둥부둥 (8/323)

8화. 아르티나 기사단,우리 아기씨 부둥부둥2020.10.26.

아르티나 기사단, 그들이 어떤 기사단이던가. 그 실력이 황제 직속 근위 기사들보다 높다는 평이 기정사실처럼 세간을 떠도는 자들. 수도에 머무르며 온갖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음에도 몸소 북부까지 출진해 마족을 소탕하며 시간을 보내는 이들. 말 그대로 아르티나 가문의 기사단. 그러나 그들이 유명해진 이유는 따로 있었다. 수도에 두자니 돌아가면서 온갖 사고를 나날이 일으키는 바람에 휴고도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북부로 쫓아내 버린 지 어언 2년. 취미는 옛 왕국 잔당 소탕이요, 특기는 고위 마족 때려잡기인 그들은 진정 이 구역의 미친개였다. 지평선을 가득 채울 정도로 시야에 적군이 들어차 생사를 넘나드는 경우여야 비로소 흥이 나는 그들은, 수많은 적군이 눈앞에 있지 않음에도 아주 오랜만에 잔뜩 신이 난 목소리로 재잘거리고 있었다.

16549720104972.jpg“크으- 우리 아기씨, 얼마나 귀여우실까!”

기사단 일원, 헤롤드가 제 몸통만 한 바스타드소드를 붕붕 돌리며 말했다.

16549720104972.jpg“우리 아기씨의 호위 기사를 선발한다던데?”

16549720104983.jpg“난 사양이다! 마족도 없고 왕국 잔당군도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사냐.”

드웬이 마침 풀숲에서 꾸엑- 튀어나온 오크 몇 마리의 목을 여상히 베며 말하자,

16549720104972.jpg“나도 그건 사양! 지나다니는 귀족들을 때려 팰 수도 없고…… 통 재미가 없어, 수도는.”

헤롤드가 동조했다.

16549720104994.jpg“그래도 마님 닮으셨다던데. 우리 아기씨 정말 작고 소중하시겠다…….”

알렉은 마치 바늘 같은 롱소드 두 개를 춤추듯 휘둘러 오크들을 베어 넘기며, 특유의 멍한 말투로 기대감을 내비쳤다.

16549720104972.jpg“수도의 귀족 놈팡이들, 우리 아기씨에게 시선 한번 두기만 해봐라. 눈을 확 파버려야지.”

이렇게, 이렇게. 헤롤드가 달려드는 오크의 눈을 푹 찔렀다. 기사단의 인원 수보다 다섯 배는 많은 오크 무리를 처리하면서도 누구 하나 힘든 기색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깨작깨작 나타나는 몬스터는 몸풀이도 안 된 기사들이 칼을 휘둘러 피를 탁탁 털어내는 와중에, 누군가 기특한 생각을 제시했다.

16549720104983.jpg“이봐. 우리 아기씨 선물 사갈까?”

16549720104994.jpg“좋은 생각이야. 이거 어때? 잘 말리면 장식용으로 쓸 수 있다던데.”

이거 어떠냐며 뿌듯한 표정으로 알렉이 들고 있는 그것은, 오크의 대가리였다.

16549720105014.jpg‘또라이 새끼…….’

모든 기사들이 질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실상 더 미쳤나 덜 미쳤나의 차이만 있을 뿐, 그들 전부가 미친개로 소문이 자자하여 도긴개긴이라는 점은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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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위 기사를 맡기 싫은 것과는 별개로 기사단은 아기씨를 처음 만난다는 생각에 잔뜩 들떠 있었다. 그 결과, 그들은 몬스터가 빈번히 출몰하여 넘는 데에 이 주는 걸린다는 산맥을 무려 사흘 만에 주파하여 공작저 근처에 도착했다. 경쾌한 걸음으로 걷다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목욕탕 표식을 본 헤롤드는 뚝하니 걸음을 멈췄다.

16549720104972.jpg“잠깐. 근데 우리 이렇게 꼬질꼬질해도 되냐?”

16549720104983.jpg“꼬질꼬질해, 우리?”

16549720104972.jpg“꼴을 봐라. 냄새도 난다.”

16549720104983.jpg“전쟁 치르다 보면 하루 이틀인가 뭐. 새삼스레 왜 팩트로 때려.”

16549720104994.jpg“……아기씨가 우릴 보고 몬스터인 줄 아시면 어쩌지.”

알렉의 중얼거림에 모든 기사들은 목욕탕으로 직행했다. 그럴 순 없지. 우리 아기씨가 태어나서 처음 보는 몬스터가 우리여선 안 되지. 때 빼고 광내 드디어 사람의 몰골을 갖춘 그들은 당당히 공작저 대문을 열어젖혔다. 얼마나 사고뭉치인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일단 전선에서 귀환한 자들이었다.

16549720104983.jpg“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집사 하델을 비롯한 사용인들은 오랜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아르티나 기사단을 정중히 맞이했다.

16549720104983.jpg“오랜만이다, 하델! 예전이랑은 많이 달라진 거 같은데?”

16549720104972.jpg“애인 생겼구나!”

헤롤드가 손뼉을 짝 치면서 외쳤다.

16549720104983.jpg“아니…….”

하델이 반박할 틈도 없이,

16549720104983.jpg“하델 애인이 생겼다고? 누군데?!”

모든 기사단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16549720104983.jpg“에잉- 칙칙한 눈가를 봐라. 애인이 생겼다가 헤어진 게 분명하다.”

16549720104983.jpg“아…….”

흥미로 반짝이던 눈들이 순식간에 마치 세상에서 가장 안쓰러운 생물을 보듯 바뀌었다. 안 그래도 없어서 슬픈 애인을 만들었다가 없앴다가 저들 마음대로 날뛰는 기사단을 보며, 하델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저었다. 진정하자, 하델. 아르티나 가문의 사용인에서부터 집사 자리에 오르기까지 어언 10년. 이 미친개들을 하루 이틀 보는 것도 아니다. 말려들면 끝이다. 정신 차리자.

16549720104983.jpg“오늘 저녁은 뭐냐?”

16549720104994.jpg“망아지 바비큐는 어때? 요 앞에 망아지 하나 있었던 거 같은데. 맛있어 보이더라.”

알렉이 저녁 메뉴를 제시했다. 열심히 일하고 돌아왔으니 당연히 고기지!

16549720104983.jpg“그 망아지는 마님께서 키우시는 망아지…….”

알렉이 점찍은 그 망아지는 바로 엘리시아가 키우고 있는 망아지였으며, 하델이 이를 알리고자 하였으나,

16549720104983.jpg“오, 그래! 잠깐만 기다려라, 잡아올 테니까!”

도무지 말을 듣질 않는다. 입만 살고 귀는 죽은 자식들 같으니라고. 하델은 왠지 열이 오르는 듯한 이마를 짚었다. 아…… 주인님. 대체 이 개…… 아니 멍멍이들은 왜 부르신 겁니까……. 1층 응접실이 아르티나 공작저 답지 않게 소란스럽고, 망아지를 잡으러 가려는 기사단을 하델이 두 팔 벌려 막고 있던 그때.

1654972016462.jpg“하데에-.”

하델을 부르는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뭐야, 이 삐약이 소리는? 일평생 마족들이 울부짖는 소리와 기사들의 기합 소리만 듣고 살았던 기사단의 귀에, 삐약거리는 소리는 지나치게 생소했다.

1654972016462.jpg“이거-.”

기사단은 삐약 소리의 근원을 찾아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아무것도 없다.

1654972016462.jpg“이거 바……바!”

왜인지 바닥 근처에서 소리가 나는 것 같다. 기사단은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서, 보고 말았다. 커다란 유리창에서 들어오는 빛을 받아 태양처럼 반짝이는 머리칼에, 그 아래로 자리 잡은 바다 빛 눈이 맑게 빛나고. 얼마나 열심히 무언가를 주웠는지 두 손과 두 뺨은 발갛게 물들어 있는 그들의 아기씨를.

16549720104972.jpg“…… 으억-?”

헤롤드가 요상한 비명을 질렀다.

16549720104983.jpg“허얼……?”

드웬도 멍청히 입을 벌렸다. 키가 미처 닿지 않아 나무 열매를 따지는 못하고 익어서 바닥에 떨어져 있는 나무 열매를 바구니에 잔뜩 담아서 들어온 이벨리아는, 못 보던 사람들이 응접실에 바글바글하자 이내 갸웃거리며 호기심을 보였다.

1654972016462.jpg“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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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벨리아를 바라보며 혼이 빠져 있는 기사단을 눈으로 쓰윽 훑은 하델이 대신하여 답했다.

16549720104983.jpg“아기씨, 이들은 아르티나 기사단입니다. 주인님께 충성을 서약한 가문의 기사들이지요.”

그리고 이 구역의 진정한 미친개이고요. 뒷말은 생략한 채 하델이 이벨리아에게 알려주었다. 그러자 이벨리아가 알겠다는 듯 당차게 외쳤다.

1654972016462.jpg“기다!”

16549720104983.jpg“기-사.”

1654972016462.jpg“기다!……우웅……기……사!”

16549720104983.jpg“으아아- 아기씨! 아기씨의 호위 기사가 될 드웬이라고 합니다!”

불과 몇 시간 전, 마족도 왕국 잔당군도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사냐던 드웬이 인생의 새로운 재미를 찾은 것처럼 이벨리아의 앞에 무릎을 꿇고 눈을 맞추었다.

16549720104972.jpg“아니, 아기씨! 이 새……, 아니 이 기사는 함께 있어도 재미 하나 없으십니다! 제가 또 동화책을 읽는 것에 일가견이 있죠! 제가 바로 아기씨의 호위 기사가 될 헤롤드입니다!”

마찬가지로 불과 몇 시간 전, 수도에서 귀족들을 때려 팰 수도 없어 호위 기사 자리는 사양한다던 헤롤드 역시 이벨리아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16549720104994.jpg“아기씨…… 혹시 오크 머리…….”

- 터업. 장식품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오크 머리를 드릴 테니 호위 기사로 저를 선택해달라 어필할 예정이었던 알렉의 입을 다른 기사들이 신속하고 정확하게 틀어막았다.

1654972016462.jpg“헤헤- 방……가어!”

호위 기사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조용하던 공작저에 사람이 바글바글한 것이 이벨리아는 매우 신났다. 이벨리아는 저보다 한참 커다란 기사들 사이를 이리저리 누비며 바구니에 담은 나무 열매를 한 알씩 쥐여 주었다. 떤물! 떤물! 생색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르티나 기사단원들 중 그들의 주군과 마님께 인생을 빚지지 않은 자 없었다. 자연히 주군과 마님은 그들의 목숨보다 가치가 높았다. 작은 아기씨는 그런 주군과 마님의 특성만 쏙 빼닮으신 데다가 작아도 너무 작으셨으니, 기사단의 시선이 머물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16549720104983.jpg“……나 북부 안 돌아간다.”

16549720104983.jpg“나도. 나 마족도 잔당군도 필요 없다.”

평생 검을 놓더라도 난 여기서 우리 아기씨 자라시는 것 좀 봐야겠다.

16549720104983.jpg“……직속 호위는 한 명 정도만 선발하실 텐데.”

누군가 읊조린 그 말에 기사들의 눈엔 불꽃이 튀었다. *** 아르티나 기사단이 저들 사이를 이리 기웃, 저리 기웃, 돌아다니는 병아리 아기씨를 멍하니 바라보며 멈춰 있는 바람에, 엘리시아의 망아지는 간신히 생명을 건졌다.

16549720104983.jpg“침 떨어지겠습니다.”

하델은 뿌듯했다. 역시 우리 아기씨다. 그때 공작저의 거대한 문이 열리고, 정무를 끝내고 귀가한 휴고가 응접실로 성큼 들어섰다.

16549720225123.jpg“왔나. 고생 많았다.”

휴고가 약 2년간 북부의 마족 출몰지역에서 소탕에 힘쓴 아르티나 기사단을 간단히 치하했다. 전투에 임하면 미친개가 아니라 미친 늑대가 되는 저들이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돌아온 것을 보아하니, 늘 그렇듯 탈탈 털린 쪽은 마족들인가 보다.

1654972016462.jpg“빠아아-!”

오늘따라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온 아빠가 반가운 이벨리아가, 도도도 뛰어가 휴고의 다리에 챡- 매달렸다. 노란색 실내용 원피스를 나풀대며 뛰어가는 모습이 기사단의 심장을 다시 한번 직격했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아이고, 우리 아기씨, 주군 다리 한쪽만도 못 하시네!

16549720104983.jpg“아르티나 기사단, 주군께 귀환을 알립니다!”

병아리 아기씨를 보느라 넋을 빼놓았다고 해도 가문에 대한 충성심만은 그 어떤 기사들보다 드높은 아르티나 기사단. 가장 앞에 서 있던 기사가 휴고의 앞에 부복하며 귀환을 알리자, 전원이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따라 부복하며 외쳤다.

16549720105014.jpg“귀환을 알립니다, 주군!!”

넓은 공작저 응접실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웅장한 소리였다. 그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본 휴고가 오랜 기간 고생하다 복귀한 기사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내리고자 입을 열었다. 모든 기사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주군의 음성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때,

1654972016462.jpg“기한을 아닙니다! 두근!”

16549720105014.jpg“……?”

엥? 주군께서 입을 여셨는데, 웬 삐약이 소리가……? 또래보다 빠르게 말이 트이기 시작한 이벨리아는 요즈음 말하는 것에 재미가 들려 들은 말이면 뭐든지 따라하고 보았다. 뜬금없는 소리에 순간 어리둥절해 있던 기사단은, 소리의 근원지가 주군의 왼쪽 다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삐약삐약 말을 내뱉는 이벨리아라는 것을 알아채고서 박장대소했다.

16549720104972.jpg“으하하하하- 아기씨,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헤롤드가 불경하게도 휴고의 앞에서 폭소했다.

16549720104983.jpg“이놈들! 조용히 못하나! 주군께서 앞에 계신다!”

단장 에딘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미친개들의 고삐를 잡아보려고 하였으나,

16549720104994.jpg“우리 아기씨…… 병아리보다 훨씬 귀여우셔…….”

늘상 어딘지 멍한 눈을 하고 있던 알렉마저도, 아주 오랜만에 눈을 반짝이며 웃고 있었다. 평소 기사단이 자신의 앞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던 휴고도 오늘만큼은 기사단에게 연무장을 뺑뺑이 돌라는 벌을 내릴 수 없었다.

1654972016462.jpg“압빠아- 기다! 기-다!”

왼쪽 다리에 코알라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기다!’, ‘기한!’ 나름대로 배운 단어를 종알대는 딸에, 저마저도 평소와 달리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이벨리아가 건네주었던 작은 나무 열매 한 알씩을 손에 소중히 쥐면서, 그곳에 있던 모든 아르티나 기사단은 결심을 다졌다. 공작저에 머무는 기간 동안, 주인님과 아기씨에게 잘 보여 반드시 호위 기사 자리를 꿰차고 말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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