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2화. (73/94)

#72화.

차에서 내린 강진이 병원으로 향하는데 병원 건물에서 민자가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강진은 그녀를 부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다가서지도 않은 채로 서 있었다.

민자는 겉보기엔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중년 여자였다. 조금은 통통한 듯 보이는 몸과 주름이 생긴 얼굴, 푸석한 머리카락.

강진이 관상을 볼 줄 안다거나 사람을 외모만 보고 판단할 줄 아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어도 스쳐 지나칠 만큼 특색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한지음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강진은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이는 민자에게 지음이 뺨을 맞던 장면을 떠올리며 인상을 썼다.

그때만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와 민자의 멱살을 잡고 흔들 수도 없고.......

강진은 후, 숨을 한번 고르고 민자에게 다가섰다.

“어? 오셨네, 진짜?”

민자의 초조해하던 얼굴이 확 펴졌다. 전에는 보지 못했던 욕심, 탐욕이 여기저기 붙어있는 게 보였다.

잠시 후 강진은 민자와 함께 병원 밖 벤치에 앉아 있었다.

민자는 자리에 앉고 나서부터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강진에게서 무슨 반응이라도 있길 기대한 걸까. 강진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미동도 없이 앉아 있자, 아예 보란 듯이 눈물을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강진은 위로해 줄 마음 따위는 전혀 없었고 그녀가 울든 통곡을 하든 상관없었지만 거슬렸다, 몹시.

그녀의 울음소리, 목소리, 부산스러운 움직임.......

잠시 고민하다가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들었다. 그저 듣기 싫은 그 울음소리를 그치게 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손수건을 내밀려던 강진이 멈칫했다.

그의 움직임을 보고 민자는 손수건을 받으려고 손을 뻗었다.

하지만 손수건은 그녀의 손에 닿지 않았다. 강진이 도로 손을 거두었으니까.

“.......”

흰색의 손수건, 끝에 이니셜이 새겨진.

강진이 은주를 품에 넣고 그 오랜 시간을 아파하도록 만들었던 그 날, 다친 그의 손가락에 묶여 있던 손수건.

모든 시작은 손수건을 묶어주던 여자아이와 그 아이가 입술을 움직여 이름을 말하던 때부터였다.

“......나 주는 거 아니에요?”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민자가 짜증 섞인 말투로 물었다.

“아닙니다. 제가 착각했네요.”

강진은 손수건을 민자에게 내밀지 않고 도로 품 안에 집어넣었다.

그런 그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던 민자가 도로 훌쩍이다가 옷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되게...... 중요한 건가 보네요?”

힐끔거리는 민자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돌아봤다. 그리고 무언갈 말하려는 때에.

「이름이...... 뭐야?」

「한......은주.」

“아......!”

강진은 자꾸 과거의 모습이 흐릿하게 겹쳐 보이자 탄식을 내뱉고 괴로워했다.

‘이상하다....... 자꾸 은주라고 했던 아이, 그 꼬마의 얼굴이.......’

지음의 얼굴과 겹치고 점점 지음이 또렷하게 눈앞에 보였다.

‘대체...... 뭘까.’

강진은 민자가 그의 몸을 흔들 때까지 상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봐요? 아니 사람이 말을 하다가.......”

“......아, 미안합니다. 뭐라고 하셨죠?”

강진이 묻자 그제야 입을 열기 시작한 민자는 하소연에 가까운 얘길 늘어놓았다.

“보육원에서 데려왔을 땐 어찌나 이상하던지. 애가 말을 안 해요. 입을, 뭐 풀로 붙이기라도 한 것처럼 입을 꾹 다물고...... 참나. 그러니 귀염을 받을 수가 있어?”

혼잣말에 가까운 투덜거림이었다. 민자는 지음을 걱정하는 척 하며 그녀의 욕을 끊임없이 늘어놨다.

강진의 참을성이 한계에 다다랐다.

시간을 내서 이곳으로 달려오고, 그녀의 듣기 싫은 목소리를 듣고 있는 건, 그나마 기댈 곳 없는 한지음에게 비바람을 피할 지붕을 마련해줬기 때문이었다.

강진이 훅 숨을 내뱉고 민자의 말을 끊었다.

“저한테 급히 와 달라고 한 게, 아니...... 그래도 딸이라는 한지음이 어떻게 사는지 봐야겠다고 했던 게 고작 이렇게 딸 욕을 하려던 거였습니까?”

목소리에서 적대심을 읽었을까.

민자가 머뭇거렸다.

“아니 뭐...... 그런 건 아니고. 걔가 좀 그렇더라고 말한 건데. 내가 뭐 없는 말한 것도 아니고.......”

민자의 목소리가 수그러드나 싶더니 도로 커졌다.

“암튼, 내가 이렇게 병원에서만 오도 가도 못 하고 사는 것도 사실 다 걔 때문이니까 이렇게.......”

“대체! 대체 지음이가 뭘 잘못했습니까?”

강진이 참지 못하고 소리를 높였다. 짜증에 꽉 잠긴 목소리였다.

당황해서 뒤로 몸을 젖히고 눈을 동그랗게 뜨던 민자가 기막히다는 듯 팔을 걷어붙였다.

“아니...... 그것도 몰라요? 세상에.......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지음이 그것이 제 아버지를 때려서 이렇게 된 거 아닙니까!”

처음 듣는 얘기에 강진이 눈썹을 찌푸렸다.

“얼마나 독한지...... 무슨, 돌을 들어 어떻게 내리친 건지 그날 이후로 못 일어나고 저렇게....... 사람을 죽으라고 때렸지, 그게!”

더 듣고 있을 수가 없었던 강진은 천천히 일어나서 옷을 툭툭 털었다.

“......지음이한테 무슨 짓을 한 겁니까?”

“뭐라고요? 아니, 걔가 그랬다니까, 걔가! 사람을! 지금 의식도 없이 누워있은 지가 몇 년인데!”

“됐습니다.”

“......?”

강진이 더는 듣기 싫다는 듯 말을 잘랐다. 비가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은 채 그를 올려다보는 민자에게 한 자 한 자 꾹꾹 힘을 눌러 말했다.

“병원비는 입금해 드리죠.”

인사도 잘라먹은 강진이 몸을 돌려 그녀에게서 멀어졌다. 그러다가 다시 돌아가서 품 안 지갑을 꺼내 들었다.

강진은 지갑 안에 든 수표를 전부 꺼냈다. 오만 원권, 만 원권까지 전부.

두툼한 돈다발을 본 민자의 눈이 휘둥그레 커지는 걸 보며 강진이 코웃음을 쳤다.

돈을 그녀의 가슴에 퍽 안기고 싸늘하게 말했다.

“부족하면 연락하시든가.”

“......에? 아니 뭐.......”

강진은 더 그녀를 마주하고 있을 수가 없어서 바로 뒤돌아 멀어졌다.

차에 오른 강진은 온정리로 올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속력을 내며 생각했다.

‘성인 남자가 맞고 쓰러져 의식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죽을힘을 다해 때렸다는 건데. 분명 뭔가 있어. 나한테 말하지 않은, 아니 하지 못한.......’

그게 뭘까.

직접 지음에게 듣지 못했지만, 듣지 않아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짐작만으론 부족했기에 그는 이를 악물고 빠르게 운전을 했다.

***

지음은 퇴근 후 희라가 말했던 장소로 향했다, 강진이 기다리라고 했다던 그곳.

아무리 둘러봐도 너무 휑한 곳.

하지만 희라 말처럼 사무실에서 내려다보면 지음의 모습이 잘 보일 것 같긴 했다.

‘회의가 늦어진다고는 했지만...... 너무 늦는데.’

연락을 한번 해봐야겠단 생각으로 가방을 뒤지는데 휴대전화가 없었다. 그래서 강진에게 연락이 없었던 건가 싶었다.

그에게 먼저 연락할 생각은 왜 하지 못했던 걸까.

“아, 떨어뜨리고 나서 안...... 주웠나?”

툭투둑!

자리에 주저앉아 가방을 한참 뒤지고 있는데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앗......!”

얼른 가방을 머리 위로 올리고 주위를 둘러봤는데 마땅히 비를 피할 곳이 없었다.

다른 데로 비를 피하러 가자니 강진이 오면 길이 엇갈릴 것 같고.......

곧장 사무실로 휴대전화를 가지러 가면 될 텐데, 혼란스러워진 지음은 움직일 생각도 못 하고 가방을 들고 있던 팔을 툭 떨어뜨렸다.

이렇게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서 있자니, 강진이 보고 싶었다. 지음에게 강진은 절대 보고 싶어 해서는 안 되는 남자인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강진은 지음에게 깊이 스며들었다, 지금 그녀의 몸을 적시는 빗물처럼.

이제 두세 번의 계절이 지나고 나면 그를 놓아주어야 십억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받을 수 있는데, 이렇게 마음이 흔들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지음은 흔들리는 마음을 어쩌질 못하고 비를 맞으며 서 있었다.

***

그녀가 비를 맞으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강진은 돌아가는 차 안에서 동희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차강진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대표님.

“지금 어딥니까?”

-지금이요? 지금 집인데.

“금방 가죠.”

잠시 후 그의 말처럼 강진의 차는 금방 동희의 집 앞에 섰다.

비도 오는데 들어오라는 동희의 말에도 강진은 현관에 선 채로 말했다.

“물어볼 게 있어서 왔습니다.”

“아...... 네. 말씀하세요.”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네.”

“지음이, 혹시...... 하아.......”

강진이 말을 꺼내는 걸 힘들어하며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그 양아버지라는 자에게...... 맞았습니까?”

“어......! 어떻게 알......!”

놀라서 휘둥그레 커진 눈을 하던 동희가 두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강진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잠시 고민하던 동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지음에 대한 얘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사실...... 거의 매일 때렸어요. 그때 당시에도 작은 체구였는데, 그 어린애를...... 대체 때릴 곳이 어디 있다고.”

“.......”

제가 생각하던 최악의 상상이 사실이라니.

이곳으로 달려오면서 강진은 제 짐작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틀리길 바랐다. 얼토당토않은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했다고, 지음에게 미안하길 바랐다.

“지음이는 매번...... 신발도 신지 못하고 쫓기듯 도망 나왔어요.”

한참이나 더 이어지는 동희의 말을 들으며 강진은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동희와 헤어져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음을 어떻게 봐야 하나 고민이 됐다.

답답한 마음에 터덜거리며 집으로 향하는데.

띠리릭.

집 안으로 들어섰지만 지음의 흔적이 없이 어두웠다.

“......한지음? 씻어?”

집 안 곳곳을 둘러봐도 온기도, 지음의 향기도 나지 않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강진이 초조한 마음으로 그녀의 방문을 벌컥 열었지만 없었다.

서둘러 연락 내역을 확인했지만, 온정리로 향할 때 보낸 메시지를 보지도 않았고, 답도 없었다.

“전화를 했어야 했는데.”

강진은 자신을 탓하며 다시 밖으로 나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도 지음에게 전화를 했지만 신호만 길게 울릴 뿐이었다.

그는 휴대전화를 보조석에 던진 채, 지음을 찾기 위해 빗속을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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