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밖으로 나온 강진은 치미는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예전처럼 지음의 손목을 아프게 잡진 않았지만 그 대신 제 빈 주먹만 꽉 쥐었다. 손이 저릿저릿하도록.
지음은 그를 따라 밖으로 나오는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화가 난 상태라면 무슨 말을 해도 들리지 않을 테니까.
건물 밖으로 나오자 강진은 지음을 보지 않고 차 문을 열었다.
“......타.”
잠시 강진을 올려다보던 지음이 한숨을 쉬고 차에 올랐다.
문을 닫아주고 운전석에 탄 강진은 이를 꽉 물고 차를 출발시켰다.
다행인 건 그가 얼마나 화가 났든 운전은 안전하게 한다는 거다. 그러지 않았다면 강진이 화가 났을 때만큼은 그가 운전하는 차에 오르지 못했을 테니.
지음은 차창 밖으로 느릿하게 지나가는 광경을 시야에 담았다.
문득 가방 안엔 오늘도 제대로 쓰지 못한 티켓이 남아있겠지, 하다가 아! 했다.
“가방.......”
책상 위에 남겨두고 온 가방과 휴대전화가 떠올랐다.
거기까지 생각에 미치자 그가 전화를 했겠구나, 받지 않는 전화에 근심과 걱정이 더해졌겠구나 싶었다.
언제가 좋을까, 그가 무얼 생각하든 그런 게 아니라고 오해를 푸는 건.
지음이 입을 꽉 다물고 미간을 한껏 찡그린 강진을 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술을 열었다.
“곧 3전시실도 오픈할 거라.......”
아, 그건 강진이 더 잘 알고 있겠지.
지음이 얼른 말을 정정했다.
“청소......를 하려고 올라간 거예요, 전 그냥. 권 선생님과는 1층에서 만났는데.......”
“그 이름. 꺼내지 마.”
“.......”
그나마 더듬거리며 힘들게 말하던 지음이 도로 입을 다물었다.
“대체 왜......!”
“?”
아무 말 없을 것 같던 강진이 핸들을 부여잡으며 괴롭게 토해내듯 말했다.
지음이 강진을 돌아봤다.
“왜 자꾸 다른 사람이랑.......”
입술을 달싹이던 강진이 차를 세우고는 밖으로 나갔다.
닫히는 문을 보다가 얼른 주위를 돌아보니 사람 하나 없는 한적한 산책로였다.
“언제 여기까지 왔지......?”
지음이 벨트를 풀고 강진을 따라 밖으로 내렸다.
그가 답답한지 숨을 길게 내뱉고 차에 기대 서 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지음이 강진의 곁으로 다가섰다.
“.......”
강진이 지음을 보았다.
저 작은 발로 자신을 따라 이곳까지 걸어 나온 것과 마찬가지로, 그 발로 창국과 함께 계단을 오르고 전시실로 향하기도 했겠지.
“퇴근할 생각이었는데 전시실을 청소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미림이 지음을 골탕 먹이려고 청소를 시킨 거긴 하지만 그런 얘기까진 하지 않았다. 더는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3층 전시실만 금방 청소하고...... 강진 씨에게 전화할 생각이었어요, 퇴근은 했......는지.”
“......계속해 봐.”
자신에게 전화를 하려던 마음이 있었다니 듣기에 좋은 말이었다.
강진이 조금 누그러진 듯한 목소리로 지음을 보며 말했다.
“1층에서 전시회 패널을 보고 잠시.......”
“.......”
“강진 씨랑 보았던 게 생각나서. 근데 권 선생님이 왔어요. 전시회 보러 온 거라고 하시던데.......”
“전시는 무슨. 선보러 왔대.”
“네? 아, 선.......”
치졸한 질투심.
그게 강진에게 그런 사족까지 붙이게 했다. 지음이 어떤 얼굴이 되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지음은 그런 얘길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어 말을 계속했다.
“3층으로 오르려는데 권 선생님이 도와주신다고. 안 그래도 된다고 했지만 막무가내였어요. 그래서 그냥...... 올라가서 청소한 것뿐인데. 그때 강진 씨가 온 거고요.”
누구랑 선을 보냐, 무슨 그런 데서 선을 보냐...... 지음이 그 일에 대해 한 마디라도 궁금해했더라면 이렇게 금방 넘어가 주지 않았을 텐데.
강진은 제 눈치를 보며 변명을 하느라 바쁘게 움직이는 지음의 붉은 입술을 보았다.
“그게 다예요, 정말.”
지음은 말이 끝나자 처분을 기다리기라도 하듯 고개를 스르르 떨궜다.
“......그 사람, 앞에서 네가 웃는 게 싫다.”
“.......”
지음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괴로워 보이는 강진의 모습.
‘왜......?’
무슨 뜻이지?
왜 강진은 자신이 다른 사람 앞에서 웃는 걸 보고 이토록 괴로워하는 걸까.
혼란스럽기만 한데 강진의 목소리가 띄엄띄엄 이어졌다.
“다른 남자 앞에서 네가...... 웃는 게 싫어. 그냥 남자들이 그런 당신을 보는 게 싫어.”
“강진 씨.......”
“나도 모르겠다, 내가 왜 이러는지.”
강진이 무릎을 휘청하고 몸을 숙였다.
강진을 보던 지음이 이번엔 그녀가 먼저 강진에게 다가섰다.
지음이 손을 들어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흠칫.
차가우면서도 보드라운 그녀의 손길에 놀란 강진이 고개를 퍼뜩 들어 지음을 보았다.
“나한텐...... 다른 남자 없는데.”
“......뭐?”
“권 선생님은 그냥...... 의사 쌤일 뿐이에요.”
“.......”
“나한테는 강진 씨 말고는 남자...... 없어요.”
지음의 느릿하고도 단단한 음성을 들으며 강진이 그녀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어느새 그녀의 얼굴로 겹쳐 보였던 은주는 싹 지워지고, 지음이 서 있었다.
“한지음.”
“네.”
“한지음이네.”
“.......”
강진이 손가락으로 지음의 눈썹과 콧날, 턱선을 쓰다듬듯 그렸다.
‘은주와는 이렇게 다른데 왜 당신을 보며 은주 생각을 했을까. 한지음은 이렇게 생겼는데.’
“......키스, 해도 돼?”
강진의 깊은 목소리가 나직하게 발밑으로 깔렸다. 강진답지 않았다.
지음이 그런 그를 보다가 발꿈치를 올렸다. 강진의 팔을 붙들고 발꿈치를 올리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놀라서 커지는 강진의 눈을 마주 보면서 지음은 벌어지는 그의 입술에 입술을 붙였다.
그러고 싶었다. 강진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싶었다.
부드럽고 한없이 따뜻한 강진의 입술.
그녀의 입술이 닿자, 강진이 지음을 붙들고 몸을 돌렸다.
순식간에 차에 기대선 지음은 강진의 손에 몸을 맡긴 채 오롯이 그의 입술에만 집중했다.
그의 두툼한 혀가 지음의 입술을 훑고 입 안으로 들어왔다. 강진의 숨결까지 함께 넘어왔다.
고른 치아를 훑은 혀가 지음의 입 안을 마음껏 헤집었다.
얼굴을 돌려 지음의 입술을 마음껏 삼키던 그가 지음의 블라우스 단추에 손을 댔다.
툭툭,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제법 선선한 바람이 벌어진 옷 사이로 들어와 가슴 위를 어루만졌다.
툭, 툭. 단추를 푸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지음은 꼼짝없이 속옷만 입은 옷을 드러낸 채 그의 앞에 서게 됐다.
강진이 벗겨낸 블라우스를 보닛 너머로 던지고는 치마에 손을 댔다.
“하아.......”
간신히 그의 입술에서 벗어난 지음이 숨을 몰아쉬며 팔로 가슴을 가렸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산 근처라 어둠이 더 금방 내려앉는지 어둑어둑했고 사람은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지음은 당황했지만 강진은 오로지 그녀밖에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이곳이 밖이라는 것도 잊은 것처럼 굴었다.
찌이익.
“가, 강진 씨!”
그가 치마를 벗겨 바닥에 떨어뜨렸다.
지음은 혹시나 지나는 행인에게 들킬까 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고개를 저어봤지만 강진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강진의 왼손이 지음의 등 뒤로 돌아가 속옷 훅을 툭 풀어버렸다.
차에 기대선 지음의 다리에 허벅지를 붙이고 선 강진은 아무것도 가릴 게 없는 그녀의 가슴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아......!”
그가 지음의 팔을 붙잡아 내리고 고개를 숙였다. 입술을 벌려 젖가슴 살에 붙이고 젖꼭지를 혀로 할짝할짝 쓸었다.
여린 살이 단단하게 가슴 끝에 맺히자 강진은 참지 못하겠다는 듯 세게 빨기 시작했다.
“하읏.......”
통증 끝에 매달린 야릇한 쾌감에 지음이 눈썹을 찡그렸다.
혹시라도 사람이 오면 어쩌나 신음을 삼키려다 보니, 미처 다물지 못한 잇새로 묘한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 때문일까.
이미 날 것이 되어 서 있는 지음의 두 다리에 몸을 밀착한 강진의 다리, 그 사이의 물건이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지음의 아랫배에 닿은 강진의 물건이 크고 단단하게 부풀어 오르면서 여린 그녀의 배를 쿡쿡 찌르고.
거기다 허리와 옆구리를 쓸던 강진의 못된 손이 점점 아래로 내려오더니 지음의 다리를 벌리고 안쪽을 쓰다듬었다.
“아아.......”
힘이 빠진 다리가 점점 벌어지며 몸이 휘청거렸다.
가슴을 가리려던 지음의 양팔은 넘어지지 않기 위해 뒤로 뻗어 차체에 대고 힘을 주었다.
그러면서도 지음은 강진의 손을 막지 못했다.
허벅지 안쪽을 쓰다듬는 손길이 생각보다 더 따뜻하고...... 좋았다.
강진의 몸을 안을 때면 뭐랄까...... 살아있는 것 같았다.
지음의 세상은 온통 회색빛이었다. 거기다 블러 처리를 해둔 것처럼 모든 게 흐릿하고 확실한 게 없었다.
보통 마음의 병을 심하게 앓는 사람들이 택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 가장 극단적인 게 자살, 그다음이 자해라고 한다.
만약 지음이 자칫 한발 더 나아갔더라면 그녀 역시 잘못된 길을 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자극이라도 있어야 할 만큼 아무것도 없던 지음의 세상....... 그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강진에게 안길 때만큼은 지음의 모든 감각이 깨어나는 듯했다.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짜릿한 통증이 그랬고,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빠르게 뛰는 심장이, 발가락이 곱아들 만큼...... 그래서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아찔할 만큼 몰아가는 쾌감이...... 그랬다.
회색빛이던 지음의 세상에 선명한 색이 입혀지는 것 같은 느낌.
그게 미치도록 좋았다.
“하아, 하아.......”
“......당신을 안고 싶어.”
여기서......?
머릿속으론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지음의 몸은 달랐다.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지음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던 강진이 고개를 들었다.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며 천천히 입술을 뗐다.
“......오로지 한지음.”
“.......”
“한지음 당신을...... 안고 싶다.”
그 말이 주는 기대감에 지음이 몸을 한 번 부르르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