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1화. (62/94)

#61화.

“네, 누구세요?”

문이 열리고 창국이 차트를 손에 들고 들어왔다.

지음의 눈이 커졌다.

“어......? 선생님?”

창국이 안타까운 미소를 지으며 지음에게 다가섰다.

“어떻게 된 겁니까? 걱정했어요.”

그가 지음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다리 금 간 거 말고 다른 이상은 없어요. 금 간 거를 다행이라고 표현해야 하는 게 속상하지만요.”

“아.......”

“어디 다른 데 불편한 곳은 없어요? 뭐 팔이 아프다든가 등이나 어깨, 허리가 결린다든가.”

“없어요, 그런 거. 그냥 다리가 불편해서 그렇지.”

창국이 깁스가 되어 있는 다리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튕겼다.

“그래도 꽉 하고 계세요, 당분간은.”

“부러진 것도 아닌데 깁스까지는 좀.......”

“안 돼요. 깁스 안 했다간 지음 씨 막 돌아다닐 거 같아서 제대로 붙는 거 확인할 때까지 해 둘 거예요.”

“네? 그건 그렇고...... 선생님은 대체 왜...... 여기 어떻게 계세요?”

“어떻게는요. 내가 한지음 씨 주치ㅤㅇㅢㅂ니다.”

창국이 지음을 보고 웃었다.

***

그 시간 미림은 지음과 다른 방에 누워 한껏 엄살을 부리고 있었다.

“아아, 진짜 아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어? 이게 다 한지음 때문이야.”

미림은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았다.

운전대에 부딪히고 충격이 있긴 했지만 크게 찢어지거나 부러진 곳도 없었다. 가벼운 타박상 정도가 다였지만 차가 다 부서질 정도의 사고였기에 입원 후 지켜보기로 했다.

이란은 전화를 받자마자 달려와 동동거렸다.

그녀가 미림의 얼굴을 감싸 안고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괜찮아?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어....... 어디 좀 봐. 안 다쳤어?”

“엄마 나 아파. 여기도 아프고, 여기도 아파.”

미림이 몸을 돌리며 허리와 어깨를 가리켰다.

“어쩜 좋아. 얘, 나가서 선생님 좀 모셔와. 아니 사람이 이렇게 다쳤는데 어떻게 병실에 선생님 한 분이 없어?”

이란이 미림을 살펴보다가 옆에 끌려와 서 있는 동기의 옆구리를 찔렀다.

동기는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가 이란의 말에 미림을 슥 훑어보았다.

“별로 뭐...... 다치지도 않았구먼. 딱 봐도 나일론이네, 가짜 환자.”

“뭐라고!”

이란이 동기를 확 노려보고 그의 등짝을 세게 쳤다.

“너는! 지금 동생이 이렇게 다쳐서 누워있는데 그게 할 소리야? 빨리 안 가?”

“아 씨...... 알았어.”

동기가 신경질적으로 휴대전화를 품에 넣고 밖으로 나갔다.

이란은 미림을 살펴보다가 아까 스치듯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가만...... 근데, 그년도 여기 있다고?”

“어, 그렇대도? 미친...... 다리에 금이 갔다나 어쨌다나.”

“......그으래?”

이란이 미림의 얼굴을 한 번 쓰다듬고 일어났다.

“엄마, 어디 가게?”

“있어 봐.”

이란은 미림을 뒤로 한 채로 가방을 놓고 식식거리면서 밖으로 나갔다.

***

지음이 창국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문이 벌컥 열렸다.

지음을 살펴보고 있던 창국도 놀라고, 지음 역시 놀라 멈칫했다.

“너, 너 때문이지? 우리 미림이 이렇게 된 거!”

이란은 들어오자마자 누가 같이 있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대뜸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높였다.

“.......”

지음은 올 게 왔구나, 싶었다. 어차피 미림과 같은 병원에 입원을 한 이상 이런 일이 언제고 일어날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당장 지음을 잡아먹기라도 하려는 듯 눈에 불을 켜고 들어오던 이란이 옆에 서 있는 창국을 보고 멈칫했다.

“내가 너......! 어머? 이게...... 누구야?”

“아, 안녕하세요.”

“권 선생 아니야?”

이란은 지음을 보러 왔다는 걸 까맣게 잊었다는 등 창국에게 다가서서 그의 팔을 쓰다듬으며 반색을 했다.

“세상에. 여기 정형외과 전문의라더니...... 진짜 이렇게 가운을 입고 있으니 인물이 사네.”

지난번 로비에서 만났을 땐 사복이었다는 걸 떠올리며 이란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웃었다.

“아, 네...... 근데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하던 창국이 아차 싶었다. 미림이 입원했으니 당연한 걸 물었다.

괜히 말이 길어지겠다 싶어 지음을 힐끗 보는데 이란이 창국을 보며 웃었다.

“우리 딸이 좀 다쳐서 말이야. 뭐 별건 아니고. 근데...... 권 선생 결혼은 했나?”

“아, 아직 안 했습니다.”

“그으래? 어머, 왜? 왜 아직도 안 했을까? 이렇게 괜찮은 사람인데. 만나는 여자분은 있고?”

“아뇨. 뭐 바쁘기도 하고...... 좋다는 여자가 없네요, 아직.”

창국은 이란을 보며 성의 있게 대답을 하다가 지음에게 슬쩍 손짓을 했다.

그러고는 이란을 향해 빙그레 웃었다.

“어디 좋은 여자분 있으면 소개 좀 해 주십시오.”

“그럴까? 내가 좀 찾아볼까? 진짜지, 권 선생?”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잠시...... 나가서 얘기하실까요? 제가 차라도 한 잔 대접하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아니 근데 왜 아직까지 짝을 못 찾았어?”

이란은 말하는 중간중간 지음을 한번 노려보는 건 잊지 않았다.

그러고는 얼른 창국의 팔을 붙들고 병실 밖으로 나갔다.

***

창국이 지음을 위해 희생하느라 이란을 데리고 병실 밖으로 나가자, 지음이 그제야 숨을 몰아쉬고 침대에 편히 누웠다.

“아, 참, 강진 씨......!”

누워서 하얀 천장을 보고 있다가 그녀가 벌떡 일어났다.

휴대전화가 어디 있을 텐데.

테이블 위에 올려 둔 가방을 뒤지다가 휴대전화를 발견하고 꺼내 들었다.

“아.......”

하지만 사고 때문에 이미 액정은 박살이 나 있었다.

너무 많이 부서져서 전원이 들어올 것 같지도 않았다.

“어쩌지...... 정후 오빠 말 듣고 사고 난 거 알았다면 걱정할 텐데.”

그런 생각으로 휴대전화를 툭툭 건드려 봤지만 역시나 이미 기계는 까맣게 죽어 있었다.

생각보다 휴대전화를 잘 간수 하는 게 쉽지 않구나 아쉬워하고 있는데 문이 열리고 동희가 들어왔다.

“지음아.”

“어, 왔어?”

“응. 집에 가서 정후 형이 챙겨주는 대로 수건이라든지 필요한 거 가져왔어. 서랍 안에 넣어줄게. 속옷은.......”

“그냥...... 가방 채 넣어. 내가 이따가 정리할 테니까.”

“그, 그럴래?”

동희가 어색하게 웃으며 가방을 집어넣었다.

지음이 그가 하는 양을 보다가 물었다.

“집은...... 어쩌기로 했어?”

“집? 아, 집. 지금은 잠깐 정후 형네서 같이 있어.”

“불편하진 않아?”

“괜찮아. 편의점 숙직실보다 좋아. 깨끗하고 넓고. 그리고 어차피 내일이나 모레나...... 형 시간 될 때 같이 가서 지낼 곳 계약하기로 했어.”

“다행이네.”

동희는 병실을 정리하다가 가습기를 들고 말했다.

“어, 가습기다. 내가 물 좀 받아올게.”

“같이 나가.”

“응? 너...... 다리 아프잖아.”

동희가 말렸지만, 지음이 낑낑거리며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애를 썼다.

“답답해서.”

“아, 그래도 이렇게 막 움직이면 안 되는데.......”

잠시 고민하던 동희가 문으로 향했다.

“그럼...... 잠시만 있어. 내가 휠체어 가져올 수 있는지 한번 다녀올게.”

지음은 그렇게라도 바깥 공기를 맡고 싶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동희가 나가자, 지음은 다리를 내리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이제 겨우 몇 시간 병원에 있었을 뿐인데 벌써 답답해서 나가고 싶었다.

괜히 이러고 있다가 창국과 함께 나간 이란이 들어오면 잔소리를 당해낼 재간이 없을 거라는 생각에, 조금 무리이긴 하지만 잠시라도 병실을 비워두고 싶었던 거다.

휠체어를 가져오겠다는 동희를 기다리며 앉아 있는데, 문이 벌컥 열렸다.

‘이번에도 고모님이면 어쩌지.’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스쳐 가는데 거친 숨소리가 지음의 귀를 자극했다.

“하아, 하.......”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로 땀방울 몇 개를 매달고 있는 사람은 차강진이었다.

“강......진 씨?”

그가 숨을 몰아쉬다가 입술을 꽉 물었다.

놀란 지음이 눈을 끔뻑거리는데 그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꿈인가 싶었다. 출장을 떠나 있던 그가 제 눈앞에 나타나다니.

한걸음에 다가선 강진이 지음을 꽉 안았다. 그 따뜻하고 포근한 품 안에 안겨 있자니, 꿈이 아니구나 싶었다.

“대체...... 어떻...... 어떻게 된.......”

목소리가 떨렸다.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고 뚝뚝 끊겼다.

지음을 안고 있는 강진의 몸, 그 단단한 몸이 비에 젖은 새처럼...... 떨리고 있었다.

지음이 팔을 들어 그의 몸을 가볍게 안았다.

“......걱정했어요?”

“그래...... 걱정했어. 네가...... 어떻게 될까 봐. 혹시라도.......”

“.......”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널 또...... 잃을까 봐.”

그의 걱정이 느껴져서 가슴이 터질 듯 벅차오르는데, ‘또’라는 글자가 지음의 마음에 턱 얹혔다.

‘또......? 그게 무슨 말이지?’

하지만 지음은 어리둥절할 새도 없었다.

강진이 천천히 지음의 몸을 떼어놓고 그녀를 보았다.

그의 눈빛에 담긴 복잡한 감정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안타까움, 속상함, 괴로움, 걱정...... 지음이 그 수많은 감정을 담아내기가 버거울 정도였다.

입술이 스르르 벌어지는데, 강진이 그녀의 얼굴을 붙잡았다.

“으음......!”

강진이 눈을 감고 부드럽게 입술을 맞췄다.

차갑고도 폭신한 강진의 입술이 지음의 입술에 닿자, 지음은 온몸에 힘이 탁 풀리는 느낌이었다.

차가운 입술과 달리 지음의 입술을 한차례 훑고 입 안으로 들어오는 강진의 혀는 뜨거웠다. 지음의 어깨를 꽉 붙잡는 그의 손길처럼 불같았다.

걱정했던 마음을 담은 격정적인 키스에 숨이 차오를 때쯤, 문이 열렸다.

“지음아, 휠체어....... 어......!”

동희가 당황해서 문을 열어둔 채로 멈칫했다.

강진이 천천히 지음을 떼어놓았다.

“하아, 하.......”

지음은 그의 입술이 떨어지자 그에게 기댄 채 어깨까지 들썩이며 숨을 몰아쉬었다.

놀랐는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동희가 입을 뻐끔거리고 서 있다가, 강진을 보고 어색하게 고개를 숙였다.

“아, 안......녕하세요.”

강진은 지음과의 시간을 방해받은 게 내심 짜증이 난 건지 불청객 동희를 돌아보며 인상을 썼다.

“어떻게 된 겁니까?”

“......에?”

“김동희 씨가 왜 여길...... 아, 기사일 바로 시작하기로 한 겁니까?”

“아, 그게.......”

나무라는 듯한 강진의 목소리에 동희가 지음을 힐끔거리며 말을 더듬었다.

강진이 지음을 돌아봤다.

그의 눈빛에 무시무시한 질투심이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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