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지음은 집으로 들어서서 익숙한 공기를 맡으니 긴장 탁 풀렸다. 그와 함께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의지가 많이 됐던 걸까.
지음이 편안한 표정으로 강진을 돌아봤다.
강진 역시 집으로 들어와서야 한시름 놨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가 재킷을 벗는 걸 보던 지음은 잠시 머뭇거렸다.
“왜?”
“네? 아...... 아니에요.”
지음은 손을 상처 쪽에 가져다 대며 욕실로 향했다.
“씻으려고?”
“......네.”
「씻는 건 어떻게 하나요?」
「최소 일주일은 안 돼요. 일주일은 씻지 마시고, 물 닿는 거 조심하세요.」
민지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지만 그렇다고 씻지 않을 순 없었다. 땀도 많이 흘렸고.
“씻으면 안 될 텐데? 씻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아, 그렇긴 한데....... 그래도 조심히 해볼게요.”
지음은 강진이 다가오기 전에 얼른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휘적휘적 걸어서 세면대로 향했다.
거울에 비춰본 제 모습이 가관이었다.
머리도 헝클어져 있었고, 블라우스엔 피가 여기저기 흩뿌려지듯 있었다. 그나마 블라우스는 치마에서 반은 빠져 삐져나와 있었다.
“......이 꼴인데 안 씻을 수 없잖아.”
이러고 강진을 맞이했다니, 기가 막혔다.
이런 모습을 봤으니 더 걱정할 수밖에 없었겠지.
지음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천천히 손부터 닦기 시작했다.
그 후에 얼룩진 목과 얼굴을 닦아 보려는데 눈을 제외하고 닦으려니 쉽지 않았다.
다친 곳 주위에 묻은 걸 닦아야 하는데 자꾸 주변만 닦게 됐다. 조심을 한다고 해도 이미 옷은 다 젖어 버렸다.
얼굴은 손으로 물을 묻혀 그럭저럭 닦아낸다고 쳐도.
“머리는 어떻게...... 감지?”
난감하긴 했다.
병원에서야 당분간 세수도 말고 머리도 감지 말고 질끈 묶으라 했지만...... 강진과 함께 살면서 차마 그럴 순 없었다.
회사도 다녀야 하는데 일주일 이상 어떻게 씻지도 않고 다닌단 말인가.
“휴, 일단...... 옷이라도 벗고 해야겠다.”
지음이 단추를 툭툭 풀고 블라우스를 막 어깨로 내리는데 뒤에서 똑똑 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돌아보니 강진이 대답도 듣지 않고 들어오고 있었다.
“......!”
지음은 얼른 옷을 도로 입고 앞을 부여잡았다.
“가, 강진 씨. 왜......요?”
“도와주러 왔어, 다친 것 때문에 힘들까 봐.”
“아.......”
“안 씻는 게 좋다는데...... 물 들어가면 안 된다며. 근데 당신이 고집부릴 거고. 그래서 들어왔지.”
“괜......찮은데요, 전. 혼자 할 수 있어요.”
“그렇게 다 젖었는데?”
지음은 셔츠를 벗는 강진을 보며 침을 꼴깍 삼키고 말을 더듬었다.
“버......벗으면 되죠.”
그 말을 들은 강진이 셔츠를 벗은 채로 허리에 손을 올리고 지음을 내려다봤다.
“그럼 벗어봐.”
“네......?”
당황한 지음이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데 강진이 그녀에게 다가섰다.
지음은 그와 가까워지자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고, 거리를 계산하지 못한 그녀가 욕조에 다리가 부딪치며 욕조 턱에 주저앉았다.
강진이 다가가 지음의 블라우스의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
지음은 제지하지 못하고 뒤로 넘어지지 않게 욕조 턱을 두 손으로 꽉 잡으며 그를 올려다봤다.
강진은 단추를 툭툭 풀어내면서도 그녀와 마주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러다 블라우스 단추가 거의 다 풀렸을 즈음 강진이 몸을 숙여 폭 팬 쇄골에 키스를 하고 곧바로 그녀의 목에 입술을 댔다.
“읏.......”
그녀가 몸을 움츠려봤지만, 강진은 단추를 다 푼 지음의 블라우스를 아예 벗겨 바닥에 던져 놓았다.
바닥으로 떨어지며 단추가 타락, 맑은 소리를 냈다.
어쩔 줄 모르고 앉아 있는데 강진이 그녀의 팔을 살짝 잡아 이끌었다. 그녀가 천천히 일어나자, 강진이 치마의 지퍼를 내리고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는 치마마저 벗겨버렸다.
순식간에 지음은 속옷만 입은 상태가 되었다. 그래도 강진의 시선이 지음에게서 벗어날 줄 모르자 지음이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내...... 내가 해도 돼요. 앗!”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강진은 그녀를 번쩍 들어 안아 샤워부스로 들어갔다.
그 아래 지음을 세워두고 샤워기의 물을 천천히 틀었다.
“아.......”
“움직이지 마, 상처에 물들어가니까.”
꽉 잠긴 그의 목소리에 지음은 꼼짝도 할 수 없어서 얌전히 서 있었다.
그녀의 어깨 위로 따뜻하고도 보드라운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강진은 그녈 세워두고는 수건을 꺼내왔다.
수건을 지음의 손에 쥐여주고 상처 부위에 댔다.
“얌전히 누르고 있어. 오늘은 경황이 없어서 내가...... 방수밴드를 못 챙겼다. 내일은 그거 붙이고 하면 좀 쉬울 거야.”
“......네.”
지음은 강진이 이끄는 대로 수건으로 상처 부위를 꽉 누르고 있었다.
지음으로서는 흉터가 짙어져도 상관은 없었지만 강진에게만큼은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강진이 지음을 앞에 두고 그녀의 뒤로 긴 팔을 뻗었다.
강진은 샤워기를 들고 천천히 지음의 어깨를 지나, 목에 물을 뿌렸다. 따뜻한 물줄기가 몸을 감싸주었다.
샤워기의 물이 목덜미를 지나 머리카락을 적시기 시작했다.
정수리로 물이 졸졸 떨어지도록 각도를 잘 조절한 뒤에 강진이 손가락을 지음의 머리칼 속에 넣었다.
“.......”
느낌이 묘했다. 누구도 지음의 머리를 감겨 준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가 손가락을 천천히 움직였다.
사륵사륵 기분 좋은 소리가 나고 나른해지는 기분.
그가 장미 향이 나는 샴푸를 손에 올려 그녀의 머리카락을 건드렸다.
그녀를 바라보는 강진의 시선이 너무 뜨거워서 지음이 고개를 숙이려는데 그가 고개를 저었다.
“숙이지 마. 물 흐른다.”
“......네.”
지음은 다시 고갤 들어 강진의 목울대에 시선을 고정했다. 차마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순 없었다.
그가 거품을 잔뜩 묻힌 채로 머릿속을 마사지하듯 살살 움직였다.
샤워기를 들어 머리카락 끝부분부터 헹구기 시작했다.
‘머리 한 번 감는 게 이렇게나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거였나.’
솨아아.
물소리가 기분 좋게 그녀의 몸을 감쌌다.
이미 온몸으로는 샴푸와 헹굼 물이 흘러 내리면서 몸이 미끌미끌했다.
트리트먼트까지 꼼꼼하게 헹구고 나서 강진이 손을 씻고 지음의 어깨를 살며시 잡았다.
샤워기를 끄자, 강진의 목소리가 더 깊게 울렸다.
“다 감았다. ......자, 상처 좀 보자.”
“.......”
강진이 지음이 힘주어 꾹 누르고 있는 수건을 살며시 떼 보았다.
다행히 붙여 놓은 거즈가 보송보송한 게 수건의 역할이 컸던 모양이었다.
살펴보다가 후, 숨을 고르는 강진의 얼굴에도 땀이 맺혀 있었다.
“다행이네. 샤워도 해야지?”
“이제...... 내가 할게요.”
지음이 어깨에 올려진 강진의 손을 살짝 내렸다.
강진이 피식 웃었다.
“한 손으로는 수건 붙들고 한 손으로만 씻겠다고?”
어떻게 해야할진 모르겠지만 알아서 하겠다고 말하려 했지만,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강진이 물을 틀었다.
뽀얀 수증기가 자욱한 샤워부스 안에 솨아아 물소리가 다시 나기 시작했다.
“아.......”
강진이 아무렇지 않은 듯 그녀의 속옷을 툭 풀었다.
팔을 들어 가슴을 가리려고 하자, 그가 도로 그녀의 손에 잘 접은 수건을 건네 이마에 댔다.
“당신은 여기, 이거 잡고 있어. 뽀얀 얼굴에...... 흉 지면 안 되니까.”
“.......”
강진은 순간 은주와 비슷한 얼굴에 흉이 생기면...... 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럼 내가 당신을...... 더 잘 알아볼 수 있을까.’
그가 가볍게 숨을 몰아쉬고 지음의 속옷을 샤워부스 밖으로 툭 내던졌다.
지음은 어쩔 수 없이 한 손으로 수건을 붙들고 다른 쪽 손으로만 가슴을 가렸다.
강진은 물을 머금었다가 젖꼭지에서 똑똑 떨어뜨리는 지음의 가슴을 한입 먹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손을 내렸다.
아래에서도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그녀의 속옷에 손을 대자, 지음이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그래봤자 샤워부스 안인데 어디로 가겠다고.......
강진이 그녀의 팔을 가볍게 잡아당겼다.
“뒤로 물러나면 상처에 물들어가. 그냥 있어.”
“하지만.......”
하지만은 무슨.
얼마 안 있어 지음은 손으론 수건을 붙들고 다리를 비비 꼰 채로 팔 하나로 간신히 몸을 가리며 서 있었다.
강진은 그녀가 못하겠다고 뛰쳐 나갈까 봐 달싹이는 입꼬리를 힘주어 악물고 최대한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뜨겁거나 차가우면 얘기해.”
강진의 말에 지음이 울상을 하며 고갤 끄덕였다.
그가 샤워기를 한 손으로 잡고 지음의 목과 어깨에 물줄기를 쏘자, 물이 지음의 몸을 흠뻑 적시기 시작했다.
지음의 고운 몸매를 따라 몸이 졸졸 흘렀다.
강진은 그녀의 몸 구석구석이 다 젖을 수 있도록 샤워기를 움직였다.
가슴과 배에 물을 뿌리자, 지음이 아랫입술을 살짝 물고 고개를 돌렸다.
숨이 찬지 봉긋한 그녀의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했다.
강진은 저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다.
샤워고 뭐고 그냥 당장 그녀를 번쩍 들어 안고 침대로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벌써 지음의 앞에 서 있는 단단한 두 허벅지 사이, 그의 물건이 슬슬 힘을 받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손도 하나는 수건에 묶여 움직이지도 못하는 데다 강진의 시선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숨을 몰아쉬는 지음이 환장할 정도로 예뻤으니까.
수증기가 가득 차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녀가 은주와 닮아서인지 강진의 눈에 미치게 예뻐 보였다.
지금에 와선 강진은 은주의 모습이 흐릿해서 제대로 떠오르지 않았다.
‘......은주가 어떻게 생겼더라.’
“아......!”
그런 생각을 하며 손을 내리던 강진이 무의식적으로 지음의 가슴 끝에 매달린 앵두 같은 열매를 툭 쳤다.
순간 지음이 소스라치게 놀라 입술을 벌렸다.
동그랗게 커진 지음의 눈동자를 보던 강진이 눈썹을 꿈틀 움직이고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