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 (22/22)

2.

결국 카일의 망언으로 인해 슈아와 티아 그리고 형제들은 다 같이 북부로 향하게 되었다. 마차에 올라탄 슈아는 신이 나는 건지 연신 발장난을 치며 꺄르륵거렸다.

목적지는 북부에 있는 카일의 성이었다.

“와! 눈! 눈이다!!”

마차에서 내리기 무섭게 뽀드득, 소리가 들려왔다. 슈아는 제 발아래 쌓인 새하얀 눈들을 보며 오두방정을 떨어 댔다.

“눈!! 와!! 눈이에요, 눈!!”

그런 슈아를 보며 티아가 사랑스럽다는 듯 웃어 보였다.

“우선 들어가서 몸 좀 녹이고 다시 나와서 구경하자.”

“네에!”

형제들 앞에선 천방지축이던 슈아가 티아에게는 곧잘 대답했다. 그러고는 안아 달라는 듯 티아를 향해 두 팔 벌렸다.

“엄마! 슈아 안아 주세여!”

그러자 곁에 있던 카일이 냉큼 슈아를 가로챘다.

“안 돼, 슈아. 엄마 힘들어.”

“아 시러어어! 왜 셋째 아빠가 안아요!! 나는 엄마한테 안아 달라고 했는데에!!”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순식간에 카일의 품에 안긴 꼴이 된 슈아는 서럽다는 듯 목청 높였다. 평소의 카일이라면 슈아가 원하는 대로 해 주었겠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슈아에게는 늘 유하기만 하던 카일이 단호하게 못 박았다.

“슈아가 안아 달라고 조르면 엄마가 힘들어요, 안 힘들어요.”

“하, 하지만…….”

“걸을 땐 엄마한테 안아 달라고 하는 거 아니야.”

슈아는 시무룩해진 얼굴로 뺨을 퉁퉁 부풀렸다. 평소라면 좀 더 생떼를 부릴 법도 했지만, 티아와 관련된 일이라면 여지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빠르게 체념했다. 티아가 부푼 슈아의 뺨을 만지작거리며 미안하다는 듯 웃었다.

“미안해, 공주님.”

확실히 무럭무럭 자란 슈아는 티아가 안고 걸어 다니기에 버거워졌다.

“방에 가서 안아 줄게.”

티아는 말랑한 볼에 짧은 입맞춤을 남기며 슈아를 달랬다. 다행히 슈아는 크게 고집부리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랑 아빠들이랑 다 같이 눈놀이 하고 싶어요.”

“두꺼운 옷으로 갈아입고 나와서 다 같이 눈놀이 하자. 걱정 마, 슈아. 북부에 있는 동안은 눈놀이만 실컷 하게 해 줄게.”

티아가 그렇게 말하며 저를 쏙 빼닮은 금발을 살살 쓰다듬어 주었다. 슈아는 기대된다는 듯 붉은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환히 웃었다.

*  *  *

“아빠! 첫째 아빠! 이거 봐요! 슈아가 만들었어요!”

슈아가 커다란 목소리로 카제프를 부르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자 카제프가 조물거리던 눈덩이를 팽개치고 슈아에게 달려갔다.

“우리 공주님이 뭘 만들었을까.”

다가가서 보니, 제법 커다란 눈사람이었다.

“오! 이거 슈아가 만든 거야?”

“네! 헤헤, 둘째 아빠가 조오금 도와주셨어요!”

슈아는 뿌듯하다는 듯 어깨를 들썩이며 카제프에게 말했다.

“이제 눈 코 입 그릴 거예요!”

그렇게 말하며 슈아가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들었다.

“이건 눈, 이건 입, 그리고 코!”

슈아는 동그랗게 뭉쳐진 눈 위에 죽죽 줄을 그었다. 눈사람의 눈은 쭉 째져서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딘지 우습게 생긴 모양이었지만, 그래도 꽤 잘 만들어진 눈사람이었다.

슈아가 만든 첫 눈사람에 하일도 카일도 티아도 호기심을 갖고 하나둘 모여들었다.

눈사람 만드는데 푹 빠졌던 슈아는 손이 새빨개진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방실방실 웃기 바빴다.

“그런데 공주님, 손이 빨개.”

한참 슈아의 눈사람 자랑을 들어 주던 하일이 속상하다는 듯 작은 손을 제 뺨 위로 올렸다.

“슈아, 손 시리지 않아요?”

“으응, 안 시려요.”

“정말?”

“네에…… 아직 괜찮아요!”

“거짓말하는 거 같은데.”

하일이 은근슬쩍 제 시선을 피하는 슈아를 보며 의심하듯 물었다. 그러자 곁에 있던 카제프가 슈아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말했다.

“슈아, 너무 추우면 안에서 코코아 마시다가 다시 나와서 놀아도 돼. 아빠가 마시멜로 듬뿍 넣은 코코아 만들어 줄까?”

“저, 정말요?”

“물론이지, 코코아랑 같이 도넛이라도 먹다 나오자. 아빠는 배고파서 먹어야겠어.”

“그럼 슈아도…… 조, 조금만…….”

카제프가 슈아를 번쩍 안아 들었다. 슈아는 발개진 뺨을 한 채 어서 빨리 코코아가 먹고 싶다는 듯 신이 나서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누이, 저희도 잠시 들어가서 쉬어요. 피곤해 보입니다.”

“아, 그럴까? 조금 피곤하긴 하네. 날이 추워서 그런가 봐.”

“그럼 오랜만에 같이 목욕이라도 할까요?”

하일이 싱긋 웃으며 자연스럽게 티아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러자 멀찍이 있던 카일이 헐레벌떡 달려와 두 사람 사이를 방해했다.

“뭐야, 뭔데. 둘이 뭐 하는 건데?”

하일이 저리 가라는 듯 눈짓했지만 카일은 일부러 모른 체했다. 티격태격하는 카일과 하일 틈에 낀 채 티아는 익숙하다는 듯 웃으며 성안으로 향했다.

그만 다투라는 듯 왼손으로는 카일의 손을, 오른손으로는 하일의 손을 꼭 맞잡았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진 못했다.

“나도 춥다고, 춥고 지쳐서 목욕 좀 하겠다는데 껴 줘!”

“네놈이 끼면 또 발정 난 종마처럼 좆이나 세우고 달려들 것 아니냐.”

“누가 발정 난 종마라고…… 누가 보면 너는 좆 안 서는 고자라도 되는 줄 알겠다?”

“안 그래도 지친 누이께 누를 끼치는 종마보다야 고자 쪽이 낫지.”

결국 이번에도 보다 못한 티아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만, 그만! 둘 다 그만 싸우고 오늘은 다 같이 목욕하는 게 어때?”

“다 같이요?”

“다 같이?”

그러자 하일과 카일이 바보처럼 갸웃했다.

“슈아랑 오빠도 같이 목욕하자. 오랜만에 가족끼리 씻는 것도 좋을 것 같아.”

“하, 하지만…….”

“누나, 굳이 그러지 않아도…….”

티아와 욕실에서 몸의 대화를 나눌 생각에 들떴던 두 사람은 어쩔 줄 몰라 했다.

물론 슈아와 함께하는 목욕도 좋았다. 하지만 지금의 두 사람은 육아보다 오붓한 부부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참이었다. 모처럼 카제프가 나서서 슈아를 돌보고 있기도 했고.

“굳이…… 코코아 마시고 있는 슈아를 부를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

“저도 동의합니다, 누이.”

“응? 슈아 불러써요?”

그런 세 사람 사이로 익숙한 목소리가 비죽 고개를 내밀었다.

“목욕? 엄마랑 아빠들도 목욕하는 거예요? 슈아도 첫째 아빠가 목욕해야 한다고 했어요!”

갑작스럽게 등장한 슈아를 보며 카일이 당황을 숨기지 못했다.

“슈, 슈아? 코코아는 어쩌고?”

그러자 멀찍이서 세 사람의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카제프가 성큼성큼 다가오며 대답했다.

“목욕 다 끝낸 후에 마시기로 했다.”

“형님……!”

“그새 티아를 차지하려 드는 아우들이 괘씸해서 말이야.”

“아니, 그건……!”

“자, 그럼 슈아. 엄마 아빠랑 다 같이 목욕하러 갈까?”

“좋아요!”

벙쪄 있던 카일은 물에 띄우고 놀 오리 장난감을 양손 가득 쥔 슈아를 보고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건 하일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래, 그럼. 모처럼 다 같이 목욕하자.”

밖은 찬바람이 쌩쌩 몰아치는 한겨울이었지만, 성안은 그 어떤 날보다 따뜻한 온기로 가득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흐르는 대로, 아르젠트가는 언제나처럼 평화로운 나날을 맞이하고 있었다.

욕실에서는 꽤 오랫동안 슈아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척 따뜻한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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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사랑하는 방식> 특별 외전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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