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그런 육아는 안 돼!
“슈아,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기껏 또래 아이들을 모아 정원에서 티 파티를 열어 주었더니, 슈아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훌쩍이며 카일에게 달려왔다.
놀란 카일이 엉엉 우는 슈아를 달래며 허둥거렸다.
“우리 공주님, 왜 울어. 응? 무슨 일이야. 누가 우리 딸 괴롭혔어요? 친구들은 어쩌고, 아빠한테 왔어. 엄마가 친구들이랑 놀라고 오늘 파티도 열어 줬잖아.”
카일은 제법 능숙하게 품 안에서 손수건을 꺼내 슈아의 눈가를 닦아 주며 말을 건넸다. 그러자 그녀가 더욱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슈아를 번쩍 품에 안아 들고 갓난아기 때처럼 등을 토닥이며 둥가둥가 달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일까. 무슨 일이어서 우리 슈아가 이렇게 울까.”
카일이 퍽 다정한 목소리로 슈아의 뺨에 뽀뽀를 하며 물었다. 그러자 한참 울던 슈아가 눈물을 닦고는 훌쩍이며 말했다.
“흑, 흐윽……. 아, 알렌이…… 흑, 알렌이…….”
알렌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순간 카일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전부터 종종 슈아를 놀려 먹던 지방 백작가 꼬맹이였다.
“알렌이…… 흑, 나보고 못생겨때요…… 흑.”
슈아가 카일의 가슴팍에 얼굴을 부비며 말했다. 그러자 그녀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카일은 주먹을 세게 움켜쥐며 이를 으득으득 갈기 시작했다.
“……어디 변두리에서 굴러처먹던 개자식이 감히 우리 공주님더러 못생겼다고?”
아이 앞에서 뱉을 말은 아니었으나, 순간 화를 참지 못한 그가 허리춤에 찬 검을 만지작거리며 흉흉하게 눈을 빛냈다.
“그 새끼 어디 있어, 아빠가 혼내 줄게.”
낮게 깔려 그르렁거리는 살벌한 카일의 목소리에 놀랄 법도 한데, 슈아는 익숙하다는 듯 곧장 고자질을 했다.
“정원에……. 흑, 정원에 이써요.”
조그마한 손으로 꼼지락거리며 카일의 목을 와락 끌어안고 칭얼거렸다.
“알렌…… 흑, 정원에 이써요. 그러니까…… 흑, 얼른 아빠가…… 히끅, 알렌 혼내조요.”
“그래, 슈아. 아빠가 알렌 죽여 줄…… 아 아니, 혼내 줄게.”
카일이 오늘에야말로 기필코 그 자식을 손봐 주겠다며 씩씩거렸다. 그런데 그 순간일까.
“카일.”
언제 들어온 건지 방문 앞에 삐딱하게 선 하일이 못마땅한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너 내가 슈아 앞에서 험한 말 하지 말라고 했지.”
그러고는 곧장 기다렸다는 듯 잔소리를 뱉는다.
“하지만 그 개새끼가 감히 슈아더러 못생겼다고 했다잖아.”
하일은 불만스럽다는 듯 반박하는 카일을 무시한 채, 슈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슈아, 너도 아빠가 저번에 말 했어요, 안 했어요.”
그러자 슈아가 입을 삐죽 내밀고는 은근슬쩍 눈을 피한다.
“저번에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슈아가 먼저 알렌더러 썩어 문드러진 감자라고 했어요. 안 했어요.”
하일이 눈썹을 씰룩이며 슈아에게 말하자, 슈아가 뾰로통하게 볼을 부풀렸다. 그러고는 일부러 카일의 품 안으로 더욱 파고든다.
“슈, 슈아는 몰라요…….”
“저번에도 슈아가 알렌 울렸어요, 안 울렸어요. 알렌이 싫어하는 귀뚜라미 잡아다 알렌 얼굴에 던졌잖아요.”
하일이 다소 엄한 표정으로 꾸짖으며 말했다. 설마 그걸 전부 알고 있을 줄은 몰랐는지, 슈아가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한참 입을 우물거리던 슈아는 이내 슬그머니 카일을 올려다봤다. 그러자 시선을 느낀 카일이 슈아를 마주 보며 더욱 세게 제 품에 그러안았다.
“우리 슈아가 못생긴 놈보고 썩어 문드러진 감자라고 좀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게다가 귀뚜라미가 뭐 어때서? 미안하지만 하일, 애들은 원래 이렇게 다 활발하게 자라는 거라고.”
“카일, 너 정말…… 내가 적당히 오냐오냐하라고 했지. 너 때문에 슈아가 요즘 입도 험해지고…… 하, 아니. 아니다, 됐어. 너랑 얘기하느니 누이께 말씀드리고 말지.”
둘 사이에 낀 슈아는 가만히 숨을 죽인 채 눈치만 살폈다. 누굴 닮은 건지, 벌써부터 하는 행동들이 퍽 요망했다.
우선 불리할 때면 무조건적으로 제 편을 들어 주는 카일을 찾는 것부터 그랬다.
“아빠, 아빠. 셋째 아빠.”
“응, 우리 공주님.”
슈아가 카일을 부르자 카일이 배시시 웃으며 다정하게 코를 부볐다. 쪽 소리와 함께 짧은 입맞춤도 해 주자 슈아의 표정 또한 밝아진다.
“둘째 아빠 화나서 슈아 무서어요.”
제가 혼나지 않게 어서 더 편을 들어 달라는 조름이었다. 일부러 눈매를 순하게 죽이고 말하는 게 영악했다.
하일은 그런 둘을 못마땅하게 보며 한숨을 토했다.
“셋째 아빠는 슈아 예쁘다 예쁘다 해 주는데, 둘째 아빠는 슈아보고 화밖에 안 내서 무서어요.”
그러자 하일이 마른세수하며 탄식했다.
“슈아.”
“…….”
“슈아, 아빠가 부르는데 대답 안 할 거예요?”
슈아는 하일의 부름에도 입만 삐죽빼죽 내밀 뿐 별다른 대답을 않았다. 그러자 하일 또한 섭섭하다는 듯 카일에게 안긴 그녀에게 다가갔다.
“슈아야.”
하일이 퍽 다정한 손짓으로 슈아의 뺨을 매만지자 그제야 슈아가 힐끔, 그를 바라봤다.
“아빠가 괜히 화내는 거 아닌 거 알잖아.”
그가 아까보다 한층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랬다. 하일의 말마따나, 또래보다 유독 배움이 빠르고 똑똑한 슈아가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하일이 뽀얗고 말캉한 슈아의 뺨을 몇 번 쿡쿡 찌르자 그녀가 하일의 손에 쪽쪽거리며 입을 맞췄다.
“……슈아도 알아요.”
“알면서 아빠 섭섭하게 왜 그랬어요.”
큼직한 손이 슈아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었다. 하일의 손 아래 금빛 머리칼이 살짝 흐트러졌다.
“친구랑 사이좋게 지내야지. 응?”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슈아에게 말했다. 그러자 그녀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아주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냥.”
“그냥?”
“그냥…… 슈아는 알렌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었는데…… 알렌이 자꾸 슈아 피해서…….”
“응, 그래서요?”
하일은 능숙하게 슈아의 말에 경청하는 모습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슈아가 곧장 말을 이었다.
“그래서 슈아가 일부러 알렌 괴롭혀써요…….”
“그럼 우리 슈아가 잘못한 거 맞죠?”
“……응, 마자요.”
“친하게 지내고 싶으면 잘해 줘야지, 괴롭히면 안 되는 거예요.”
하일의 말에 조그마한 머리통이 주억거렸다.
“앞으로는 안 그럴 거죠?”
“……응, 안 그럴게요.”
반성하는 슈아를 보며 하일이 실없이 웃음을 흘렸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제 뺨을 내밀었다.
“슈아, 아빠 뽀뽀.”
그러자 슈아가 곧장 하일의 뺨을 쥐고 쪽쪽쪽 소리 내어 세 번 입을 맞추었다.
“슈아는 둘째 아빠도 좋고, 셋째 아빠도 좋아요. 그리구, 그리구…… 엄마도 좋고, 첫째 아빠도 좋아요.”
하일이 기특하다는 듯 웃어 보였다. 그러자 슈아도 꺄르륵 웃으며 화답했다.
“아, 다들 여기 있었구나.”
그런 그들 틈으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름 아닌 카제프였다.
“아빠아!”
카제프의 등장에 슈아가 눈을 빛내며 반겼다.
“아구, 우리 애기. 여기서 아빠들이랑 뭐 하고 있었어.”
“음…… 으음…… 슈아 예쁘다 예쁘다 하고 이썼어요!”
“우리 공주님, 작은 아빠들이 예쁘다 예쁘다 그랬어?”
“응!”
“그럼 이제 아빠랑 간식 먹으러 갈까?”
간식이라는 말에 하일이 곧장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형님, 잠시만요. 슈아 아까 제가 초코칩 쿠키 줬는데…….”
“간식쯤이야 하루에 두 번 먹을 수도 있는 거지, 왜 그리 융통성 없이 굴고 그래.”
카제프가 작게 혀를 차며 하일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러자 하일은 억울하다는 듯 대꾸했다.
“아니 융통성이 아니라…… 그러다 슈아 이빨 상해요.”
“내가 먹이자마자 어련히 양치 안 시킬까.”
완전히 총체적 난국이었다.
카제프는 슈아에게 간식을 너무 자주 주어 문제였고, 카일은 슈아를 너무 오냐오냐해서 문제였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더니, 이게 완전 딱 그 꼴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지금 이 생활이 싫지 않았다. 아니, 싫기는커녕 매일매일이 즐거웠다.
쑥쑥 자라는 슈아를 보는 것도 좋았고, 슈아로 인해 복작해진 저택을 보는 것도 좋았다.
처음엔 뒷목을 잡고 죽네 사네 하던 전 아르젠트 후작 부부도 이제는 반쯤 체념한 상태였다. 게다가 형제들과 티아를 쏙 빼닮은 슈아가 예뻤는지, 이따금씩 놀러 와 함께 시간을 보내 주기도 했다.
물론 아직까지 근친혼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수군거리는 이들도 존재하기는 했으나, 적어도 그들 앞에서 수군거리지는 못했다.
“첫째 아빠!”
슈아가 카제프를 향해 쪼르르 달려가며 외쳤다.
“슈아 머리 묶어 주세여!”
다른 집과 달리 아빠가 셋이나 되는 탓에 아이가 혼란스러워하면 어쩌나 했는데, 의외로 슈아는 그런 것 따위 조금도 개의치 않아 하는 눈치였다.
아니, 오히려 아빠가 많은 걸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타인의 손에 기르고 싶지 않아 그 흔한 유모도 두지 않았는데, 오히려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카제프는 슈아가 좋아하는 포니테일 머리를 묶어 주며 기분 좋다는 듯 쿡쿡 웃었다.
어쨌든 오늘도 평화로운 하루였다.
-<그들이 사랑하는 방식> 외전 完
Rêve 그들이 사랑하는 방식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