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 새로운 손님 (17/22)

5. 새로운 손님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고, 그리고 그 여름마저 떠날 준비를 하며 수확의 계절이 찾아오려 하고 있었다.

형제들과 티아는 모처럼 오손도손하게 다이닝 룸에 모여 앉아 저녁 시간을 갖고 있었다.

카일과 카제프는 위스키를 홀짝이고 있었고, 하일 또한 흥이 돋은 건지 가볍게 샴페인을 들고 있었다.

그들 중 술을 입에 대지 않은 건 오롯이 티아뿐이었다.

평소 스테이크와 함께 무거운 레드 와인을 즐겨 버릇하던 그녀였기에, 아무런 술도 없이 스테이크만 썰어 먹는 게 조금은 의아했다. 뿐만 아니라 그날따라 이상하게 말수가 적었다.

한참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형제들은 아무리 그녀에게 농담을 던지고 말을 건네도 별다른 반응이 없자, 그제야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서로서로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다이닝 룸에 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럼에도 티아는 여전히 말없이 스테이크를 썰어 먹는 데 열중이었다.

형제들이 서로 눈을 맞추고는 입을 벙긋거렸다.

‘뭔가 이상한데…….’

‘확실히 이상해.’

‘혹시 너희 티아에게 무슨 짓 한 건 아니냐.’

그런 그들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평온한 건 오롯이 티아뿐이었다.

하필 이런 중요한 때에는 생각이 들려오지도 않는다. 카제프가 작게 혀를 차며 집요하게 티아를 바라봤다. 혹여 그리하면 생각이 들려오지 않을까 싶어서 한 행동이었다. 그럼에도 별다른 효과는 없었다.

여전히 다이닝 룸의 분위기는 묘했다.

그렇게 얼마나 더 그런 분위기가 흘렀을까.

“저기 티아…….”

“누나…….”

“……누이.”

참다못한 그들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그러자 그제야 티아의 시선이 형제들에게 향했다.

“응? 아, 불렀어?”

“티아야, 무슨 일 있니?”

카제프가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걱정 어린 목소리가 다정하게 그녀를 향했다. 그러자 티아가 싱긋 웃으며 어깨를 들썩였다.

“음…… 글쎄요.”

글쎄요라니. 글쎄요라는 건, 분명 무슨 일이 있다는 것 아닌가.

티아의 대답에 형제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누이, 혹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으셨습니까? 표정이 어두우십니다. 평소보다 말수도 주셨고요.”

“아, 미안. 생각할 게 조금 있어서.”

그러니까 대체 그게 뭔데?

의문스러운 대답에 초조해지는 건 형제들이었다. 카제프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근래 티아에게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곱씹었고, 카일은 어떤 놈이 누나의 표정을 어둡게 한 건지 가만두지 않겠다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하일 또한 당황스러운 건 매한가지였다. 티아가 이런 식으로 형제들에게 무언가를 털어놓지 않았던 적은 없었으니까.

“만약 무슨 일이나 걱정이 있다면 저희가 해결할 테니 기분전환 겸 가볍게 와인이라도 한 잔 드시는 건 어떤지…….”

“아, 그건 안 돼.”

하일이 애써 태연하게 티아에게 와인을 권했으나, 말을 모두 마치기도 전에 그녀가 대답했다.

“미안, 술은 당분간 못 마실 거 같아.”

그 대답에 카일의 표정이 살짝 구겨졌다.

“왜? 누나 혹시 어디 아파?”

카일이 위스키 잔을 만지작거리며 티아를 응시했다. 그러자 그 시선에 부담을 느낀 건지, 티아가 멋쩍게 웃어 보였다.

“아니, 아픈 건 아닌데…….”

“그럼? 대체 무슨 일인데? 누나 지금 엄청 이상한 거 알아? 평소랑 달라도 너무 달라.”

결국 참다못한 카일이 재촉하듯 말했다. 다소 조급해 보이는 말투에도 티아는 여전히 의도를 알 수 없는 미소만 그리고 있을 뿐이었다.

입을 열 생각이 없어 보이는 그녀를 보며, 카일이 다시 한번 티아를 불렀다.

“누나…….”

그러자 티아가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며 크게 심호흡했다. 마치 처음 무대에 오르는 신인 오페라 배우처럼 잔뜩 긴장한 모양새였다. 가녀린 어깨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 사실을 놓치지 않은 하일의 눈가엔 짙은 걱정이 묻어져 나왔다.

“누이, 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쯤 되니 정말 불안해진다. 티아는 뱉을 말을 고르는 건지 선뜻 입을 열지 못하고, 벙긋거리기만 했다.

도란도란 작은 말소리가 오가던 다이닝 룸의 공기는 어느새 무거워져 있었다.

형제들 모두 긴장감에 주먹을 세게 움켜쥐고는 티아가 어서 빨리 입을 열길 기다렸다.

얼마나 더 그런 시간이 흘렀을까.

“있잖아…….”

드디어 입이 열렸다. 그와 동시에 형제들은 모두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나…….”

세 사람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느끼며 티아가 슬그머니 눈을 피하고는 말을 이었다.

“……달거리를 안 해.”

그 말과 동시에 쨍그랑, 유리잔이 깨지는 소리가 다이닝 룸에 울려 퍼졌다. 소리의 주인은 카일이었다. 놀란 카일이 손에 쥐고 있던 위스키 잔을 그대로 깨 버린 것이었다.

비단 카일만 놀란 게 아니었다.

카제프 또한 눈을 크게 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하일은 샴페인 잔을 쥔 채로 굳어 바보처럼 눈만 끔뻑였다.

다이닝 룸에는 다시 한번 침묵이 찾아왔다. 형제들은 누구도 섣불리 입을 열지 못하고 벙긋거리기만 했다.

그러다 침묵을 깬 건 카일이었다.

“누, 누, 누나, 누나, 지, 지, 지금, 지금, 지금 뭐라고?”

하일은 완전히 넋을 놓아 버린 건지 눈에 초점이 흐릿했다.

“티, 티아, 티아야…… 서, 설마…….”

카제프도 바보처럼 말을 더듬거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놀란 듯한 세 사람을 보던 티아가 마침내 웃으며 말을 마쳤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아이가 생긴 거 같아서요.”

그녀의 입에서 아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흥분을 감추지 못한 카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힘 조절을 했어야 했는데, 흥분한 나머지 카일이 손에 검기를 담아 내리치고 말았다. 덕분에 큼직하던 대리석 테이블이 순식간에 반으로 똑, 쪼개져 버렸다.

“꺄악-!”

놀란 티아가 새된 비명을 지르자 여태 멍하니 있던 하일이 곧장 카일을 밀쳐내며 소리쳤다.

“조심해, 무식한 놈아!! 누이께서 놀라셨잖아!!!”

답지 않게 하일이 언성을 높였다. 티아를 놀라게 하지 말라는 뜻에서 한 말 같았으나 갑작스럽게 소리친 하일의 행동에 놀란 건 매한가지였다.

넋 나간 얼굴로 티아의 앞에 다가간 카제프는 아주 조심스럽게 그녀를 품에 안고 기꺼워 어쩔 줄 몰라 했다.

“티, 티아야, 티아……. 모, 몸은…… 몸은 아픈 곳 없, 없지? 그, 어디, 그, 부, 불편한 곳은 없고…… 그…….”

카제프가 멍한 목소리로 두서없이 말을 뱉었다. 하지만 감정이 벅차올라 도저히 말이 제대로 나가지 않았다. 큼직한 손이 티아의 등을 토닥이며 어루만졌다.

호들갑을 떠는 형제들을 보며, 티아가 못 말리겠다는 듯 키득거렸다.

“아니,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닌걸요. 그저 제 추측일 뿐이에요.”

티아가 제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감격에 겨워하는 카제프를 슬며시 밀어냈다. 그러자 시야에 담긴 건, 눈물로 얼룩진 카제프의 얼굴이었다.

그와 함께 생활하면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이었기에, 놀란 티아가 눈을 크게 뜨고는 허겁지겁 카제프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아, 아니…… 오빠. 왜 울어요. 그, 아닐 수도 있는 건데…… 아직 아이가 확실한 것도 아닌걸요? 응? 이렇게 울다가 만약 아니면 실망해서 어쩌려고 그래요.”

그녀는 민망하다는 듯 말을 늘어놓으며 닭똥 같은 눈물을 줄줄 흘리는 카제프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가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살짝 가로저었다.

“괘, 괜찮…… 흑, 괜찮아……. 티아, 티아야…….”

결국 참다못해 울음을 터트리며 카제프가 티아의 앞에 무릎 꿇었다.

“회, 회임이 아니어도…… 흑, 시, 실망…… 실망 안 하니까…… 흑…….”

울음 탓에 말이 제대로 뱉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꾸역꾸역 말을 이었다.

세상에 이게 냉혈한으로 유명한 아르젠트 후작의 모습이라니. 다른 이들이 본다면 기함할 노릇이었다.

“그러니까…… 흑, 거, 걱정…… 걱정하지 마…….”

카제프가 소맷자락으로 눈가를 지분거리며 감정을 추스르려는 듯 입술을 꾹 짓씹었다. 그럼에도 그 틈 사이로 훌쩍이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우리더러 손가락질하고 욕을 해도, 그 소리가 티아 너와 우리 아이에게 향할 일은 없게 만들 테니…….”

조그마한 티아의 손 위로 큼직한 그의 손이 덮였다.

“그러니…… 아무 걱정 않아도 돼.”

맞잡은 손에 힘이 살짝 들어갔다. 카제프가 물기 어린 눈으로 시선을 맞추고 활짝 웃어 보였다.

“귀한 것, 좋은 것, 예쁜 것만 쥐여 주고 보여 주고 들려주겠다.”

그 말에 티아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졌다.

“사랑해, 카네스티아.”

카제프가 애정 어린 사랑의 말을 뱉기 무섭게, 투닥거리던 카일과 하일 또한 둘 틈을 비집고 다가왔다.

아무래도 아르젠트 후작 저는 당분간 소란스러울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 * *

혹여 말이 새어 나갈 것을 방지해, 하일이 먼 동대륙에서 용하다는 의원을 수소문해 제국으로 불러들였다.

“회임이 확실합니다.”

그리고 의원의 입에서 나온 확신의 말에 형제들은 모두 티아의 앞에서 눈물 흘렸다. 어찌 된 게 가장 태연한 건 오히려 티아였다.

자신의 임신 소식을 덤덤하게 받아들인 그녀와 달리 형제들은 엉엉 울다 못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온갖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누이, 동대륙 사람들은 회임 초기에 바다 해조류로 국을 끓여 먹는다고 합니다.”

“응? 바다 해조류?”

해조류 국이라는 말에 미간을 구긴 것도 잠시.

티아는 하일이 가져온 국을 본 순간, 눈을 휘둥그레 뜰 수밖에 없었다.

왜냐고? 그의 손에 들린 건 다름 아닌 미역국이었으니까!

‘아니, 소고기 미역국이 왜 여기서 나와……?’

오랜만에 보는 한국 음식에 놀라 입을 벙긋거리자, 하일은 해조류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그런 반응을 보인다 생각한 건지 다급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누이, 이게 생긴 건 조금 맛없게 생겼지만 동쪽의 황족들은 회임 시 소고기를 가득 넣어 이 해조류 국을 먹는다고 했습니다.”

“이, 이거 어디서 난 거야?”

당황한 티아가 묻자 하일이 잠시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그…… 제가 동양의 지인들에게 배워 만들어 온 것입니다.”

“만들었다고? 네가 직접?”

“……예, 누이.”

하일이 직접 요리를 하다니……! 티아는 여러모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보다 더 꽉 막힌 제국에서, 그것도 사실상 먹이사슬의 최상위권이나 다름없는 남자 고위 귀족이 부엌에 들어가 요리를 하는 경우는 없다.

단언컨대 절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 직접 요리를 해 왔다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티아는 입을 벙긋거리며 하일의 손을 살폈다. 그러자 주방 도구나 불을 다루는 데 익숙지 않았던 건지 전에는 없던 옅은 상처들이 눈에 들어왔다.

“왜 네가 직접 한 거야……?”

티아가 조심스럽게 묻자 하일이 슬며시 웃으며 숟가락으로 미역국을 휘휘 저었다.

“그냥요.”

“그냥이라니.”

“그냥…… 혹 다른 이들이 손댄 음식에 나쁜 것이라도 들어 있을까 염려되어서요.”

나쁜 것이라니. 원수진 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일개 후작 영애에게 누가 그런 짓을 한다고…….

티아의 마음속에는 황당함과 고마움이 공존했다.

“그리고 임산부가 먹으면 안 좋은 음식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 것들도 전부 걸러 내야 하니, 임신 중에는 제가 드리는 것만 드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얼빠진 얼굴로 눈을 끔뻑이는 티아와 달리 신이 난 하일은 연신 입을 조잘거리며 말했다.

“날것도 드시면 안 된다 하고, 치즈도 가급적이면 피하는 게 좋다고 합니다. 그리고 식품 위생에도 엄격하게 신경 써야 한다고 하니, 이왕이면 사용인들의 손을 빌리는 것보다 제가 직접 삼시세끼 모두 준비해 드리는 쪽이 마음 놓일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사용인들의 입단속을 위해, 최소한의 인력들만 남겨 두고 모두 유상 휴가를 보내 둔 상태였다.

물론 티아가 아이를 낳을 때쯤이 되면, 임신 사실을 더 이상 숨기기 어려워지겠지만 적어도 스트레스나 자극 등에 조심해야 하는 초기에는 그녀가 신경 쓸 일을 일절 차단하겠다는 뜻에서 카제프가 강행한 행동이었다.

“후식으로는 딸기를 준비했습니다.”

하일이 미역국을 후후 불어 티아에게 떠먹여 주며 말했다. 그는 태연하게 말을 뱉었지만, 하일의 말을 들은 티아는 태연할 수 없었다.

그럴 만도 했다. 후식으로 딸기라니!

늦봄, 초여름도 아니고 무려 늦여름에서 초가을인 지금 시기에는 서대륙을 모두 다 뒤져도 딸기를 구하지 못할 텐데, 대체 어디서 딸기를 구해 왔단 말인가!

티아가 표정을 갈무리하지 못하고 하일을 바라보자, 하일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동대륙에서 들여왔습니다. 그쪽은 아직 딸기가 한창 철이거든요. 딸기가 임산부에게 아주 좋다고 하니 꼭 챙겨 드세요, 누이.”

말이 동대륙에서 들여온 거지, 비행기도 없는 이곳에서는 신선도를 유지하며 가져오기도 무척 까다롭고 어려웠을 텐데…….

미안한 나머지 티아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러자 귀신같이 알아차린 하일이 곧장 티아의 뺨에 입을 맞췄다.

“무슨 생각 하십니까.”

“응? 아, 아니……. 그냥 조금 미안해서.”

미안하다는 말에 하일이 인상을 구겼다.

“미안하다뇨, 누이께서 저희에게 미안하다는 말씀이십니까?”

“응, 요즘 다들 무리하는 거 같아서.”

하일뿐만 아니라 카일과 카제프 또한 여러모로 저를 위해 힘쓰고 있었다. 그 사실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 티아의 속과 달리 하일은 말도 안 된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감히 제 아이를 품어 준 여인에게 이 정도 신경도 못 써 주면, 그게 사내새……가 아니라 남자입니까?”

사내새끼라는 말을 사용하려다가 뒤늦게 아차 싶어 다급히 말을 바꾸었다. 카일이나 사용할 법한 이런 험한 말은 분명 태교에도 좋지 않으리라.

하일이 민망하다는 듯 헛기침하며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여하튼…… 아무리 귀하고 좋은 것들을 가져다드려도 누이께는 죄송한 마음뿐인데, 고작 딸기 정도로 그런 생각 하지 마세요.”

섬세하고 다정한 하일의 말에 티아는 기분 좋다는 듯 미소를 그렸다.

“응, 고마워.”

“제가 더 고맙습니다, 누이.”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하일이 환히 웃었다.

벌써 그들과 식을 올리고 함께한 지도 2년이 다 되어 가는데, 여전히 가슴께가 간질거리는 게 설레고 좋았다.

티아는 배시시 웃으며 하일이 떠먹여 주는 미역국을 곧잘 받아먹었다. 사랑받는 기분이 들어 행복한 요즘이었다.

* * *

근래 낮잠이 늘었다. 티아는 카제프의 곁에 누워 따뜻하게 제 배를 어루만져 주는 손길을 느꼈다.

분명 늦잠을 자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잠이 솔솔 쏟아졌다.

그녀가 크게 하품하자 카제프가 사랑스럽다는 듯 뺨을 매만지며 조물거렸다.

“졸린가 보구나.”

“이상하게 요즘 잠이 늘었어요.”

“듣자 하니 원래 임신하면 잠이 느는 모양이야. 너무 걱정 말고 편히 쉬어. 계속 곁에 있을 테니.”

토닥이는 손길을 느끼며 잠에 들락 말락 하던 티아는 문득 걱정이 들었다.

‘나중에 출산할 때 되면 엄청 아프겠지……?’

형제들과 제 피가 섞인 아이가 갖고 싶어 먼저 피임을 하지 말아 달라 부탁하기는 했으나, 그럼에도 출산은 무서웠다.

하기야 그럴 만도 했다. 아이를 원한다고 해서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신체 변화, 그리고 고통들을 쉽게 견뎌 낼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요즘은 한참 행복하다가도 임신으로 인해 망가질 제 몸과 출산의 고통을 상상하기만 하면 순식간에 기분이 팍 가라앉았다.

‘옛날 드라마 보면 다들 남편 머리채를 쥐어뜯던데…….’

티아가 한국에서의 기억을 되짚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도 나는 쥐어뜯을 머리가 세 개나 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안 그래도 슬슬 찾아오기 시작하는 신체 변화에 묘한 기분이 들어 곧잘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요즘이었다.

티아가 한숨을 푹 쉬자 카제프의 몸이 흠칫 굳어졌다. 마치 그녀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 같은 모양새다.

“티, 티아…… 혹시 어디 불편한 건…….”

당황한 카제프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분명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다정하게 묻는 목소리인데…….

‘기분 나빠.’

카제프에겐 미안한 일이었지만, 기분이 나쁘다. 왜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기분이 안 좋아졌다. 티아의 고운 미간에 깊은 주름이 파였다.

‘이상하네……. 오빠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왜 이렇게 짜증 나지?’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했다.

아무것도 안 한 카제프가 짜증 나는 이유.

답은 간단했다.

출산에 있어서 카제프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테니까!

‘아, 생각해 보니까 열 받네……?’

티아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카제프는 삽시간에 어두워진 그녀를 보며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

역시나 이번에도 생각이 들려온 모양이다.

‘임신으로 몸 망가지는 것도 나고, 출산으로 아파서 고생하는 것도 나만 겪을 거 아니야.’

물론 아이가 갖고 싶긴 했지만, 돌이켜 보니 억울하다.

대체 왜! 남자는 별 고생도 없이 아이를 덜컥 얻을 수 있는 건데!

티아가 입을 꾹 닫고 임신과 출산의 부조리함에 대해 진지하게 고뇌했다. 덕분에 카제프는 기분이 나빠진 티아 앞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난데없이 미움을 사야 했다.

뾰족해진 티아의 눈이 그를 향했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시선이 어딘지 따가워서 카제프의 눈가가 절로 음울해졌다.

“티아…….”

역시나 이번에도 그녀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카제프가 눈에 띄게 시무룩한 얼굴로 잠시 생각에 잠겼다. 티아의 기분을 나아지게 할 해답을 찾기라도 하는 듯한 모양새다.

하지만 마땅히 해결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제 마력으로 출산 시 통증을 줄여 주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으나, 어디까지나 줄여 주기만 할 뿐 완벽하게 없애 주지는 못했다. 게다가 티아가 걱정하고 있는 또 다른 영역인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건강 손실은 그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결국 카제프도 기분이 뒤숭숭해졌다.

처음엔 단순히 아이가 생겨 기뻤지만, 티아에게 출산의 책임을 모두 떠넘기는 상황이 되자 마음이 불편해졌다.

순식간에 대역 죄인이 된 기분이다.

* * *

“카일.”

카제프가 한참 훈련 중인 카일에게 향했다. 그러자 무심하게 마검을 휘두르던 카일이 곧장 카제프를 바라본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시커먼 기운을 내뿜고 있던 마검은 순식간에 조그마한 새끼 늑대로 변했다. 늑대의 모습으로 변한 케벨이 카일의 다리를 벅벅 긁으며 안아 달라는 듯 보챘다. 그런 투정이 익숙한지, 카일은 별다른 불만 없이 곧장 케벨을 품에 안고 카제프를 응시했다.

“아니…… 다름이 아니라 티아가 걱정이 많은 것 같아서.”

“걱정?”

카제프의 말에도 카일은 눈치 없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카제프가 곧장 말을 이었다.

“왜 있지 않느냐. 그…… 출산에 대한 고통이라든가, 임신으로 인한 건강 손실이라든가 하는 문제들 말이다. 아무래도 한번 아이를 낳으면 뼈에도 안 좋다고 하고, 여러모로 몸이 약해진다고 하니 나도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어.”

걱정 근심 가득한 목소리로 카제프가 줄줄 말을 늘어놓았다. 그럼에도 카일은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누나 몸은 내가 보호하려고 했는데?”

“어……?”

보호라니. 카일이? 어떻게?

놀란 카제프가 눈을 크게 뜨고 카일을 바라봤다. 그러자 카일이 어깨를 들썩이며 말을 이었다.

“누나한테 내 오러 있잖아.”

“그게 왜?”

“당연히 오러가 몸을 보호해 주지. 그게 체내에서 일어나는 일이든, 외에서 일어나든 일이든.”

그제야 카제프는 바보처럼 얼빠진 소리를 흘렸다.

“그게…… 가능한 건가?”

“가능해. 관절이 약해지거나 장기가 눌리고 뼈가 벌어지는 그런 문제들은 오러로 충분히 막을 수 있어. 앞서 내 힘으로 샌님 녀석의 눈을 돌려놓은 것처럼.”

그 말에 카제프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렀다. 하지만 아직 안도하기는 일렀다. 티아가 걱정하는 건 단순히 건강 손실만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몸이 나빠지지 않는다 할 뿐, 출산의 고통은 여전한 거 아닌가?”

그 말대로였다. 건강 손실을 방지하는 것과 고통을 없애 주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였으니까.

카제프의 말에 카일이 순간 표정을 굳혔다. 아무래도 그 사실을 이제야 인지한 모양이다.

“아…… 그건 그렇네. 망할, 누나가 아픈 건 그대로잖아……?”

카일의 표정 또한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난감하다는 듯 주먹을 세게 움켜쥐며 품 안에 있는 케벨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어쩌지……. 젠장.”

한참 고민에 잠긴 듯하던 카일이 끙끙 앓는 소리를 흘리더니 카제프에게 물었다.

“형님이 마법으로 그런 통증 못 없애? 아니면 느끼지 못하게 한다든가…….”

“불가능해. 단순히 통증을 줄이거나 타인에게 옮길 수는 있어도, 그것을 아예 소멸시킬 수는 없어. 줄이는 것도 반쯤은 환각 마법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티아에게 별로 사용하고 싶지도 않고.”

카제프가 카일의 말을 끊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카일이 다시 한번 침음했다.

“빌어먹을…….”

무언가 방법이 없을까. 방법이.

카일은 안 그래도 잘 안 돌아가는 머리를 억지로 굴려 가며 생각에 잠겼다. 그의 품에 안겨 고뇌에 빠진 둘을 보던 케벨은 의아하다는 듯 갸웃거리며 말했다.

“통증을 옮길 수 있다면서요.”

그러자 둘의 시선이 동시에 케벨에게 꽂혔다.

“주인님께서 티아 님이 느낄 통증을 대신 옮겨 받으시면 되는 거 아닙니까? 주인님은 훨씬 몸이 튼튼하고 강하시니, 그런 통증 따위 분명 별것도 아닐 겁니다!”

케벨이 으쓱거리며 은근히 카일을 추켜세워 주었다. 그러자 그 말에 카일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래, 그러면 되겠다! 형, 아까 통증 옮길 수 있다고 한 거 맞지?”

“어? 어……. 그건 간단하게 가능해.”

“그럼 진통이 시작되기 전에, 누나가 느낄 통증들 전부 나한테 오게 해 줘. 내가 다 받을게!”

카일이 아주 당당하게 외쳤다. 확실히 툭 치면 부러질 것처럼 가녀린 티아보다는 제가 더 그 고통을 견뎌 내기 수월하리라.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의견에 카제프 또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이렇게 하면 되겠군. 확실히 카일 너는 체력도 좋고 몸도 좋으니, 괜찮을 거 같아.”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카일이 으쓱거리며 해맑게 웃어 보였다.

“와, 형이 마법사여서 다행이야. 우리 누나 아프면 안 되지, 안 돼.”

“나 또한 같은 생각이다. 네가 대신 고통을 견딘다면 안심이야.”

카일은 훗날 제가 얼마나 후회할지도 모른 채, 한시름 놓았다는 듯 케벨을 쓰다듬으며 칭찬했다.

물론, 과거로 돌아와 다시금 선택하라 해도 자신이 대신하는 쪽을 선택하겠지만, 그래도 카일은 몰랐다.

출산의 고통이 수십 번씩 전쟁터를 굴러 온 자신조차 쉽게 버틸 수 없을 거라고는.

* *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형제들은 모두 출산과 육아에 대해 공부했고, 티아는 별다른 일 없이 침대에 가만히 누워 쉬는 시간이 늘었다. 갑갑해할 때면, 이따금씩 정원 산책만 하는 게 외출의 전부였다.

곁에는 형제들이 돌아가며 자리를 지켰고, 티아 또한 그런 삶에 익숙해졌을 무렵이다.

“신기해, 여기에 정말 아이가 있다니.”

카일이 불룩해진 티아의 배를 쓰다듬으며 신기하다는 듯 눈을 끔뻑였다. 어느덧 만삭이 된 티아는 아이가 발길질하는 것도 종종 느끼고 있었다.

“나도 신기해. 아직도 믿겨지지 않아.”

아이가 발길질을 세게 한 건지 배에 무언가가 툭 튀어나왔다 들어갔다.

“아…….”

티아가 옅은 통증과 함께 신음을 흘렸다. 그러자 놀란 카일이 허둥거리며 말했다.

“헉, 애기가 발길질했어? 누나 안 아파? 괜찮아?”

어쩔 줄 몰라 하며 혹여 티아가 제 손길에도 아파할까 봐 함부로 손조차 대지 못했다.

“어디 불편하지는 않고? 방금 엄청 세게 찬 거 같은데…….”

“휴…… 괜찮아. 요즘 들어 움직임이 잦네.”

“움직임이 잦아? 엄청 활발한가 보다. 그래도 난 누나 힘들게 안 했으면 좋겠는데…….”

카일이 시무룩해하며 그녀의 배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렸다.

“뭘 또 시무룩해하고 그래. 활발하면 건강하고 좋은 거지.”

밝은 그녀의 말에도 카일은 마냥 웃지 못했다.

“그래도…….”

“아…… 누워만 있었더니 조금 숨 막힌다. 카일, 나 좀 앉혀 줄 수 있어?”

배가 너무 부푼 탓인지, 요즘 들어 누워 있으면 유독 숨쉬기를 불편해하는 티아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카일이 티아를 일으켜 앉혀 주며 한숨을 토했다.

“누나, 그냥 지금 미리 형한테 말해서 불편한 거 전부 나한테 옮기면 안 될까?”

“에이, 뭘 벌써 옮겨. 정말 괜찮대도?”

“하지만 요즘 잠도 깊게 못 자잖아.”

카일이 마른세수하며 씁쓸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만삭이 된 티아는 잠조차 제대로 못 자고 있었다.

누워만 있으면 숨쉬기가 불편하고, 앉아 있으면 허리가 아프고, 다리는 늘 퉁퉁 부어 있었다. 호흡이 불편한 탓에 어떤 날에는 앉아서 잠을 청하기도 했다.

근래 임신한 티아를 곁에서 챙겨 주다 보니, 어머니에 대한 효심도 날로 깊어지는 카일이었다.

남들 다 혼인하여 아이 낳고 살길래, 별것 아닌 줄 알았더니…… 별것 아니긴 개뿔. 하루하루가 걱정스럽고 불안해서 저까지 덩달아 미칠 노릇이었다.

보다 못한 카일이 조심스럽게 티아의 종아리를 주물거리며 다시 한번 한숨을 내뱉었다. 카일은 꽤 성심성의껏 발을 마사지해 주었고, 덕분에 티아는 조금 살 것 같다는 듯 편안한 표정으로 침대에 등을 기댔다.

“시원해?”

“응, 시원해. 역시 카일 네가 해 주는 게 제일 좋아.”

힘이 좋아 그런지 하일이나 카제프보다는 유독 카일이 해 주는 마사지가 제일 시원했다. 발 마사지뿐만 아니라 가슴 마사지와 회음부 마사지도 함께 받는 요즘이었다.

한참 다리를 주물거리던 카일이 손을 올려 가슴 또한 만져 주기 시작했다. 성적인 애무가 아닌 의원에게 배운 대로 하는 마사지였다.

바깥쪽부터 살살 엄지로 눌러 주며 쓸어 올리니, 티아가 기분 좋다는 듯 앓는 소리를 흘렸다.

“흐으…….”

“괜찮아? 아프지는 않지?”

“으응……. 아, 안 아파…….”

한참 가슴을 주무르던 카일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누나, 나도 우유 마시고 싶어.”

그러자 그 말뜻을 알아차린 티아가 몸을 흠칫 굳히며 카일을 쏘아보았다.

“뭐?”

“나도 누나 젖 빨고 싶다고.”

“미쳤어! 얘가 하다하다 애기 거를 뺏어 먹으려고……!”

“왜? 나는 안 줄 거야? 응?”

그녀가 투덜거리자, 카일이 곧장 눈매를 죽이며 불쌍한 척 말했다. 몸을 낮추고 버림받은 강아지처럼 칭얼거리는 게 노림수가 훤히 보여서 요사스러웠다.

“치사해. 애기는 되면서 나는 왜 안 돼? 나도 아직 애새낀데…….”

“으이구, 자랑이다. 곧 있으면 아빠 되면서 네가 무슨 애야.”

티아가 장난스럽게 꾸짖는 듯한 말투로 카일의 머리를 쓰다듬자, 카일이 다시 한번 그녀를 졸랐다.

“내가 누나 말 완전 잘 들을게. 그러니까 말 잘 들을 때마다 칭찬으로 누나 젖 빨게 해 주면 안 돼?”

볼록 솟은 젖꼭지를 살살 매만지며 그가 중얼거렸다. 그럼에도 티아는 별다른 긍정적인 대답을 주지 않았다.

“몰라, 너 하는 거 봐서. 그건 나중에 생각해 볼게.”

“정말?”

“응.”

그녀의 대답에 카일이 환히 웃었다. 아직 모유는 나오지도 않는데, 표정만 보면 벌써 한차례 진탕 젖을 빨고 난 듯한 얼굴이었다.

임신 초기보다 더 부풀어 오른 그녀의 가슴을 보며, 카일이 생각했다. 하일과 함께 젖을 한쪽씩 차지하고 빨아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그런 그의 음흉한 속을 모르는 티아는 그저 마사지의 시원함에 경계심을 풀 뿐이었다.

* * *

안 그래도 출산일이 가까워진 티아 탓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하필 중부 지역에 꽤 위협적인 마물이 나타난 탓에 카일은 잠시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었다.

평소 멀쩡한 티아를 두고 자리를 비울 때도 심기가 불편했던 그였는데, 만삭인 티아를 두고 자리를 비웠으니 기분이 언짢다 못해 화가 치밀었다.

누가 제게 시비라도 건다면 곧장 검을 박아 넣을 기세였다.

늘 그렇듯 말을 타고 달려 해당 지역에 도착한 카일은 사병들에게 한심스럽다는 듯 독설을 잔뜩 뱉어 주고는, 문제의 마물을 처치했다.

“이 정도 마물도 못 잡아서야 기사는 무슨 빌어먹을 기사라고…….”

기사들은 억울했으나, 누구도 카일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다들 죄송하다며 머리를 조아릴 뿐이었다.

티아의 임신 소식을 모르는 그들은 오늘따라 유독 예민해 보이는 카일을 보며 혹여 눈에 띄기라도 할까 봐 한껏 몸을 사렸다.

그런 그가 이리 분노한 이유를 알고 있는 건, 앞서 북부 출정에 함께했던 부사관 켈든뿐이었다.

“사령관님,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켈든이 흉흉한 기운을 내뿜는 카일에게 다가가 슬며시 말을 붙였다. 다른 사병들은 그런 그의 모습에 눈을 크게 뜨고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안 그래도 성격이 좋지 못한 카일이었는데, 평소보다 더 언짢아 보이는 그에게 말을 걸다니! 당장 저 시커먼 마검에 몸을 관통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법했다.

하지만 사병들의 걱정과 달리 켈든은 이런 카일의 모습에 익숙해 보였다.

북부에서부터 그를 보필하며 지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네놈은 도대체 예나 지금이나 쓸모없긴 매한가지군.”

카일은 살갑게 말을 붙여 오는 켈든을 무심하게 바라보며 신랄하게 비난했다. 그럼에도 켈든은 아무 반응 없이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죄송합니다. 그나저나 밤이 늦었는데, 오늘도 바로 수도로 돌아가실 예정이십니까?”

“당연하지. 네놈은 만삭인 아내를 집에 혼자 두고 자리를 비울 수 있나 보지?”

카일이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그러자 켈든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작게 덧붙였다.

“사령관님, 누가 들으면 어쩌시려고 그럽니까.”

“지금 그게 중요해?”

“그건 그렇지만…….”

물론 티아의 곁에는 하일과 카제프가 존재했지만, 그럼에도 카일은 불안했다. 혹여 제가 자리를 비운 사이 아이라도 나올까 걱정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출산일이 얼마 안 남았다고 하셨죠?”

켈든이 작게 손뼉을 치며 속삭였다. 그러자 카일이 뭐 불만 있냐는 듯 눈썹을 씰룩인다.

“혹시 그럼 사령관님도 그거…… 그 주사…… 놓아 드렸습니까?”

주사라는 말에 카일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주사?”

“예, 그 있지 않습니까…… 그…… 그 주사요…….”

“그 주사가 뭔데?”

카일은 켈든이 말하는 주사를 조금도 감 잡지 못하고 갸웃거렸다. 번뜩이는 적안은 어서 말하라고 독촉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시선을 느낀 켈든이 곧장 대답했다.

“있지 않습니까…… 그…… 아빠 주사요.”

“아빠 주사?”

난생처음 듣는 단어였다.

“임산부가 맞으면 좋은 건가?”

“헉, 설마 모르시는 겁니까?”

“몰라, 그러니까 제대로 설명해. 어느 의원에게 가면 맞을 수 있는 거지?”

의원이라는 말에 켈든이 탄식을 흘렸다. 이 인간, 아빠 주사가 뭔지 정말 모르는 모양이다.

“의원이라뇨. 사령관님, 아빠가 놔 주는 주사인 건데 어떻게 의원이 놔 줍니까?”

“아빠가 놓는 주사라고?”

“예, 그래서 이름이 아빠 주사인 겁니다.”

아빠라는 말에 카일은 머릿속으로 하일과 카제프를 차례로 떠올렸다. 아빠라면 저를 포함하여 그들도 있었으니, 총 셋이었다.

‘그럼 누나는 아빠 주사를 세 번 맞아야 하나……?’

아니 일단 대체 그게 뭔데?

“그…… 있지 않습니까. 아빠가 넣어 줄 수 있는 주사요.”

“그런 게 어디 있어? 나 애 아빤데 없어. 주사 같은 거 없다고. 놓을 줄도 몰라.”

“아니, 아니요. 그 진짜 주사 말고요!”

대화가 답답했는지 카일이 인상을 구기며 한 번 더 그를 독촉했다.

“빙빙 돌리지 말고 똑바로 말해.”

낮게 깔린 목소리가 다소 위협적으로 켈든을 향했다. 결국 마지못한 켈든은 슬그머니 눈치를 살피며 카일에게 속삭였다.

“사령관님 좆이요, 좆.”

“뭐……? 내 좆?”

“네, 그거요, 그거. 그걸 아빠 주사라고 합니다.”

“이게 왜 주산데?”

“그걸 애기가 나오는 곳에 주사처럼 찔러 넣는다고 해서 아빠 주사라고 합니다.”

아직도 카일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켈든을 바라봤다.

“물론 무리해서 깊게 삽입하면 안 되지만, 조금씩 그 행위를 하며 아내분을 기분 좋게 만들어 주면, 아이가 좀 더 수월하게 일찍 나온다고 합니다.”

“그 말 정말인가?”

“예, 못 미더우면 의원에게 물어보셔도 됩니다. 저희 안사람은 제 주사를 맞고 예정일보다 무려 1주일이나 빨리 출산했어요. 확실히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카일이 눈을 가늘게 뜨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회음부 마사지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고 생각하는 요즘이었는데…….

‘이 주사라면 정말 괜찮을지도.’

슬그머니 시선을 아래로 내리는 카일을 보며, 켈든은 북부에서 그와 생활하며 봤던 맨몸이 떠올랐다. 그래서 다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아, 그런데 사령관님.”

“……?”

“사령관님 거는 너무 커서…… 절대 다 넣으시면 안 됩니다. 절반, 아, 아니…… 절반보다 덜 넣으세요.”

그 말에 카일이 켈든에게 되물었다.

“너는 얼마나 넣었는데?”

“…….”

안타깝게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켈든은 묘한 패배감에 고개만 떨굴 뿐이었다. 물끄러미 그를 보던 카일이 비웃듯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놀리지 마십시오.”

“난 아무 말도 안 했다.”

어쨌든, 처음으로 그가 쓸모 있다 느낀 카일이었다.

* * *

“누나!”

저택에 돌아온 카일이 곧장 티아의 방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러자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티아가 살포시 웃으며 그를 반겼다.

“다녀왔어?”

“응, 다녀왔어요.”

카일이 애교 부리듯 존댓말을 사용하며 그녀의 곁에 다가가 앉았다. 그러자 티아가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는, 카일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나 없는 동안 뭐 했어?”

“그냥, 뭐…… 하일이 주는 과일 먹고, 오빠랑 운동도 하고 했지.”

의원이 너무 가만히만 있어도 좋지 않다고 한 덕분에 최근에는 규칙적으로 운동도 시작했다.

아이가 꾸물거리는 게 느껴지는지 티아가 배시시 웃으며 제 배를 만지작거렸다. 그런 그녀를 보며 카일이 얄궂은 미소를 그렸다.

“누나, 누나.”

“응?”

“내가 출산에 좋은 거 알아 왔어.”

“출산에…… 좋은 거……?”

“응.”

카일이 비밀 이야기라도 하듯 티아의 귓가에 속삭였다. 어딘지 쎄한 기분에 티아가 그게 뭐냐는 듯 카일을 바라보자 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아빠 주사.”

“아…… 아빠 뭐?”

“아빠 주사. 이거 맞으면 아이도 일찍 나오고 좋대.”

또박또박 흘러나오는 아빠 주사라는 말에, 처음에는 그게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던 티아도 단박에 유추해 냈다.

아빠 주사라니! 그러고 보니 의원이 아이가 꽤 큰 것 같다고, 출산을 촉진시키기 위해 얕은 성관계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이걸 아빠 주사라고 하는구나……!’

그나저나 얘는 그런 걸 대체 어디서 듣고 온 거야!

카일이 한껏 부푼 제 앞섶을 은근히 그녀에게 부비며 중얼거렸다.

“내 후임도 아내 임신했을 때 놔 줬다더라. 누나도 이제 예정일 얼마 안 남았으니까…… 아빠 주사 맞아야 하지 않을까?”

“그냥 네가 하고 싶은 건 아니고?”

“에이, 하고 싶다니. 무슨 소리야. 나는 그저 도움이 되고 싶을 뿐인걸.”

“거짓말.”

“거짓말이라니, 너무해.”

입을 삐죽 내민 카일을 보며 티아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안 그래도 임신 후에는 제대로 관계를 갖지 못해 욕구가 쌓이기도 했던 찰나였다. 가끔씩 형제들이 아래를 만져 주는 것을 제외하고는 욕구를 풀지 못했었다. 그마저도 삽입이 아니었으니, 해소된다기보다는 오히려 몸만 더 달아오르는 느낌이었다.

소파에 앉아 있던 카일이 바닥으로 내려가 티아의 앞에 무릎 꿇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다리를 벌렸다.

“아기 다치면 안 되니까…….”

“응.”

“정말 아주 조금만 넣어 볼게.”

카일이 밀회를 나누는 연인처럼 은근히 속삭였다. 야살스레 접힌 눈매는 묘하게 색스럽기도 했다.

살짝 부어오른 그녀의 다리를 부드럽게 주무르며 천천히 허벅지 안쪽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얇은 속옷을 끌어 내려 벗겼다.

오랜만의 관계에 기대한 건지, 도톰하게 부푼 살점이 카일의 시야에 아른거렸다. 그가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천천히 손을 뻗었다.

“흣…….”

카일이 꼭 다물린 음순을 벌리고 그 안에 부풀어 있는 예민한 살을 느릿하게 문질렀다. 그러자 티아가 앓는 소리를 흘리며 본능적으로 카일의 머리채를 붙잡았다. 잡을 것이 필요한데, 잡을 게 머리채밖에 없어서 생긴 불상사였다.

“아, 미, 미안해…….”

당황한 그녀가 곧장 손을 떼며 말했다. 그러자 카일이 괜찮다는 듯 웃으며 장난스레 머리를 들이밀었다.

“괜찮아, 잡아.”

“……정말?”

“응, 쥐어뜯어도 돼.”

쿡쿡거리며 말하는 그를 보며, 티아가 조심스럽게 다시금 카일의 머리를 붙잡았다. 부드러운 흑발이 손 틈 사이로 살랑살랑 간지럽혔다.

그런데 머리카락에 정신 팔린 그 순간일까.

카일이 갑작스럽게 음핵을 꼬집으며 살살 긁어댔다. 그러자 놀란 티아가 젖은 숨을 토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하읏……!”

발그스름하게 익은 속살을 보며 카일이 작게 읊조렸다.

“혹시라도 불편한 곳 있으면 바로 말해야 해. 알았지?”

“응, 으응……. 흣, 아, 알겠어.”

살짝 흐르는 애액을 묻혀, 조심스럽게 음핵 위에 펴 바르고는 음란하게 뻐끔거리는 구멍 틈으로 조심스럽게 손을 밀어 넣었다.

이 정도의 삽입이야, 회음부 마사지를 하며 자주 했던 행위였기에 질구도 익숙하게 그의 손을 빨아들였다. 끈적하게 젖은 내벽이 움찔거리며 떨렸다. 카일은 천천히 내벽을 풀어 주며 평소보다 더욱 부드럽게 굴었다. 혹여 상처라도 날까 걱정스럽다는 듯 지극정성이었다.

“누나, 괜찮아?”

그러면서도 불안했는지 다시 한번 티아의 상태를 살폈다.

“하윽…… 으응, 괜찮아.”

카일이 제 손가락을 끝까지 찔러 넣고는 시계 방향으로 슬슬 휘저었다. 그러자 아래가 찌르르 울리는 감각에 절로 구멍이 와락 조여들었다.

“하아…….”

“평소보다 좁은 거 같아.”

그가 오물거리는 구멍을 보며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읏……. 아, 아냐, 그래도 괜찮…….”

“정말 괜찮은 거 맞아?”

“하으으…….”

괜찮냐는 물음에도 티아는 평소보다 더욱 예민하게 신음만 흘릴 뿐이었다.

“누나.”

“으응…….”

“정말 괜찮아? 응?”

카일이 다급히 손을 빼려 하자 티아가 곧장 그의 손을 붙잡았다.

“빼, 빼지 마아…….”

“응?”

“그, 오랜만에 하니까…… 더 좋아서…….”

민망한지 얼굴을 붉히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서…… 그래…….”

조그마한 잇새로 퍽 사랑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카일은 수줍어하는 그녀를 보며 기꺼워 죽겠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정말? 배 뭉치거나, 아프지는 않고?”

“응, 괜찮아…….”

그제야 안심이라는 듯 카일이 다시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안쪽을 더듬거리며 왕복운동 하니, 티아가 더욱 세게 카일의 머리채를 움켜잡았다.

“흡…….”

서서히 손가락을 늘려 가던 그가 조심스럽게 제 앞섶을 풀고 발기한 좆을 꺼내 보였다. 검붉은 성기는 오랜만에 구멍에 들어갈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인지, 평소보다 더욱 부풀어 탁한 액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단단한 기둥을 쥐고 귀두 끝으로 티아의 음부를 살살 문질렀다. 그러자 티아가 허리를 비틀며 카일의 목을 그러안았다.

“흐응…….”

“불편하거나 배 뭉치면 바로 말해.”

쪽 소리와 함께 가볍게 뺨에 입을 맞춘 카일이 질구에 제 것을 맞추었다.

“딱 내 손가락만큼만 넣을 거야.”

“으응…….”

“그래도 불편하면 꼭 말해. 바로 뺄 거니까.”

“응.”

반질반질하게 젖은 구멍으로 흉포한 좆의 귀두가 천천히 들어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묵직한 삽입감에 티아의 입에서는 한숨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가 흘렀다.

카일 또한 간만에 느끼는 질척한 내벽에 이성을 붙잡기 위해 입안 여린 살을 세게 깨물었다. 비릿한 쇠 맛이 나는 게 피가 나는 것 같았으나,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툭 불거진 귀두와 아주 조금의 좆기둥을 더 삼킨 그녀의 구멍이 파르르 떨렸다. 느른하게 숨을 내뱉은 카일이 천천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내벽을 살살 긁으며 움직이는 성기가 낯설고도 황홀했다. 얼마만에 갖는 관계인지 기억도 까마득했다.

“하아……. 흣, 흐으…….”

살짝 티아의 다리를 들어 올린 카일이 계속해서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어디 불편하지는 않은지, 아픈 기색은 없는지. 혹여 제가 놓치는 부분이 있을까 꼼꼼히 살피고 또 살폈다.

성기가 들어오다 말자 아쉬웠는지, 티아가 습관적으로 허리를 움직이며 더욱 깊은 삽입을 유도하려 했다. 그러자 카일이 곧장 허리를 뒤로 내뺀다.

“안 돼, 누나. 깊이 넣으면 안 된댔어. 응?”

그녀는 아쉬움과 옅은 쾌락에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티아의 숨소리가 점점 잦아지자, 카일이 다시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얕게 삽입된 좆이 구멍 입구 주변을 찌르며 빠르게 움직였다.

“하읏, 흐아…….”

울퉁불퉁한 방망이가 질구를 간지럽히는 기분이 들었다. 야릇한 감각은 허리를 타고 뒷목까지 찌르르하게 울려왔다.

간만에 보는 티아의 모습에 카일의 아래가 더욱 뻐근해졌다. 제 아래에서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쾌락에 젖은 모습은 유독 사랑스러웠다. 마음 같아서는 그녀를 와락 끌어안고 싶은데, 불룩한 배 때문에 그러지도 못하는 게 조금 서러웠다.

카일이 쓰게 웃으며 한껏 벌어져 제 것을 문 티아의 아래를 바라봤다. 구멍에 꽂힌 좆 또한 꿈틀거리며 더욱 깊은 침입을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카일은 결코 그 이상 제 것을 찔러 넣지 않았다.

모처럼의 관계에 흥분한 마음을 달래며, 티아에게 맞춰 허릿짓할 뿐이었다.

구멍 위에 솟아 오른 앙증맞은 살점을 살살 비벼 주며 허리를 조금씩 움직이니, 쾌락에 빠진 티아가 몸을 비틀며 할딱였다.

카일이 부드럽게 좆을 흔들며, 출렁이는 가슴을 움켜쥐고 젖꼭지를 문질렀다. 그러자 그 끝에서 뽀얀 액체가 흘렀다. 순간 카일은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다가, 이내 그것이 무언인지 인지하고는 곧장 입술로 빨아들였다.

“흡……! 하아, 아, 아으…… 카, 카일…….”

입술로 유두를 살살 문지르며 쪽, 빨아들이니 티아 또한 숨을 헉하고 들이마셨다.

“하으윽…….”

“하, 누나…….”

그가 입에 젖을 물고 이빨을 죽인 채 우물거리며 말했다.

“누나, 미안해……. 내가…….”

카일은 말을 잇다 말고 혀를 뾰족하게 세우고 젖꼭지를 후벼 파듯 핥아 올렸다.

“흐으…….”

“내가 우리 아기보다 먼저 먹었어.”

“으읏…… 카일…….”

“나 정말 그냥 조금 만지기만 했는데…… 그랬는데 누나가 우유를 질질 흘려서…… 그래서 아까워서 내가 다 빨아 먹었어.”

아직도 찔끔찔끔 나오는 모유를 부드럽게 빨아 마시며 웃었다.

“하, 씹……. 존나 달다.”

그가 저도 모르게 평소처럼 비속어를 흘렸다. 그러다 뒤늦게 놀라 곧장 입을 다물었다.

“아, 아니…… 미안해. 말실수했어…….”

습관이 무섭다더니…… 험한 말을 쓰지 않으려 신경 쓴다고 썼는데도 본능적으로 저급한 말을 뱉고 말았다.

어쩔 줄 몰라 하며 눈을 데굴데굴 굴리던 카일이 조심스럽게 티아의 배를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애기야 미안해, 아빠가 말실수했어.”

그러자 카일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건지, 배 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태명을 짓지 않는 제국의 문화상, 아이는 아직 아무런 이름도 없었다. 한국과 달리 이곳은 아이가 안전하게 세상에 나온 후에야 이름을 지어 주고는 했다. 그래야 아이에게 좋은 삶이 깃든다나 뭐라나.

아이에게 허겁지겁 사과를 마친 카일이 다시금 허리를 쳐올리기 시작했다. 사실 쳐올린다는 말이 무색하게도 찔끔찔끔 앞뒤로 쑤실 뿐이었지만, 어쨌든 두 사람은 그런 작은 움직임에서도 깊은 쾌락을 느끼며 서로의 몸을 더듬거렸다.

단단한 귀두로 연한 내벽을 벅벅 긁으며 움직이던 카일이 느른하게 숨을 토하며 속살거렸다.

“내 주사가 효과 있었으면 좋겠다.”

“흣, 하으응……. 왜, 왜?”

“그냥, 궁금해. 애기 어떻게 생겼을지. 빨리 만나고 싶어.”

그 말에 티아 또한 동의한다는 듯 푸흐흐 소리 내어 웃었다.

“나도 궁금해.”

게다가 다들 암묵적으로 입을 다물고는 있었지만, 아이의 진짜 아빠가 누구인지도 서로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티아도, 카일도 마찬가지였다.

얕게 제 아래를 들락거리는 카일의 것을 느끼며 티아가 눈을 살포시 감았다. 벌름거리는 질구로 툭 불거진 귀두가 푹, 푹, 찔꺽이는 소리를 내며 왕복하는 게 생생했다. 허벅지 안쪽이 절로 오싹해지는 감각에 내벽이 움찔거리며 조여들었다.

땀에 젖은 그녀의 머리칼을 뒤로 넘겨 주던 카일이 웃으며 눈을 마주했다.

“누나.”

“하아, 흡, 흐응…….”

“사랑해.”

간질간질하면서도 찌릿한 감각이 티아의 몸을 지배했다. 몇 번을 들어도 설레는 사랑 고백에 티아가 작게 웃어 보였다.

“아기도 사랑해. 누나도 사랑해. 둘 다 사랑해.”

얼굴 곳곳에 입을 맞추며 말하는 카일은 퍽 자상하고 부드러웠다. 그런 카일을 보며, 티아가 활짝 미소 지었다.

“나도.”

“…….”

“나도 사랑해, 카일.”

그와 이렇게 몸을 맞대고 있자니, 예전처럼 격렬한 행위는 못 하더라도 교감을 나누는 듯한 기분이 들어 행복했다.

온몸이 애정으로 꽉 채워져 세상에 둘도 없는 귀한 사람이 된 듯한 착각도 일으켰다.

장난스럽게 코를 맞대고 웃던 카일이 티아에게 입을 맞췄다. 말캉한 입술들이 서로 맞닿고 벌어진 잇새로는 뜨거운 살덩이와 타액이 뒤엉켰다.

어서 아이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두 사람의 머릿속에 가득 퍼졌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둘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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