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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그들이 사랑하는 방식 (12/22)

11. 그들이 사랑하는 방식

누군가에게는 지독하게도 잔인한 혈연.

서로를 사랑하되 가족애 이상으로 사랑하면 안 된다니. 그 마음을 멋대로 제어할 수 있게 태어나는 것도 아니면서.

한 번 이어진 ‘진짜’ 가족의 끈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운명을 틀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대가가 필요한 법.

대마법사 케제르.

멸망자 카시아스.

현자 헤르델.

그리고 그들이 사랑한 누이, 에스텔.

형제들을 홀렸다는 이유로, 마녀가 되어 화형당한 비운의 여인.

‘빌어먹을 핏줄이 문제라면…….’

내 존재를 대가로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다음 생은 이 지독한 혈연을 끊겠습니다. 누이.

그렇게 한 세기를 평정했던 대마법사의 존재는 너무나도 허망하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제대로 된 그 어떤 기록조차 남기지 못한 채.

* * *

“누이, 오늘 정말 예뻐요.”

“멍청아, 우리 누나는 원래 예뻤어.”

“좋은 날 싸우지들 말고. 티아, 어디 불편한 곳은 없니?”

“네! 없어요.”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꺄르륵 거리며 그들 앞에서 한 바퀴 돌아 보였다. 그러자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를 끌어안으며 사랑스럽다는 듯 몸을 부대꼈다.

“음, 근데 확실히 하객이 없으니 심심하긴 하다.”

나는 화려한 정원에 덩그러니 놓인 웨딩아치와 버진로드를 보며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렇다고 저희가 결혼식 올리는 걸 어디에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건 그래. 그랬다간 남부에 계신 부모님이 한달음에 올라오시겠지?”

“올라오시면 다행이게? 소식 듣자마자 혼절하실걸?”

카일이 쿡쿡거리며 내 목덜미에 입술을 지분거렸다.

실제 서류상으로 나는 여전히 하일의 동양 신분 ‘리우 하’와 혼인한 상태지만, 그래도 기분이라도 내고 싶었던 나머지 우리끼리 단출한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그 결과 수도 인근의 호숫가에 프라이빗한 큰 저택을 매입했고, 그곳에서 남몰래 결혼식을 준비했다.

혹여 말이 새어 나갈까 걱정된 나머지 정원 관리부터 웨딩아치와 버진로드까지 준비도 전부 우리끼리 하면서.

귀족으로 태어나 이런 일을 해 볼 줄은 몰랐던 카제프와 하일은 헛웃음을 흘리면서도 마냥 싫지 않았는지 군소리 없이 꽤 열심히 준비했다.

흙바닥을 뒹굴며 정원을 정리하고, 웨딩아치를 만드는 귀족들이라니.

다시 생각해 봐도 어처구니가 없어 그저 웃음만 나온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즐거운 추억이 되어 있지만, 그래도 내가 이런 결혼식을 올리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 황당하긴 황당하다.

“아, 근데 정말 웃기다.”

열심히 준비한 우리의 식장을 보며 푸흐흐 웃었다. 그러자 카일이 고개를 삐죽 내밀고는 물었다.

“뭐가?”

“신부는 한 명인데, 신랑이 셋이야.”

내가 키득거리며 웃자 카일도 우스웠는지 따라 웃었다.

“아무렴 어때. 우리가 좋으면 됐지.”

“그건 그래.”

산뜻한 봄 내음을 가득 머금은 바람이 살랑살랑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웨딩아치 너머로 보이는 에메랄드빛 호숫가에 햇살이 부서지며 반짝거렸다.

폴짝 뛰어 버진로드의 시작점에 자리 잡은 내가 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 결혼식 언제 시작해?”

내 질문에 하일이 소리 내어 쿡쿡 웃었다.

“아, 누이, 방금 그 질문 웃겼습니다. 신부가 할 법한 질문은 아니었어요.”

“그렇다고 신랑이 할 질문도 아닐걸?”

우리는 눈을 마주보고 웃다가 이내, 부케를 들고 다가오는 카제프를 보며 어서 오라는 듯 손짓했다. 그러자 카제프가 부케를 들고 흔들며 말했다.

“티아, 부케를 깜빡하면 어떡해.”

“아, 그러네.”

“누나야, 부케를 깜빡하는 신부가 어딨어.”

“여기 있다. 어쩔래.”

우리의 웃음소리만 울려 퍼지는 정원에 기분 좋은 산들바람이 불었다.

웨딩아치 아래에서 서로의 손을 맞잡고는 환히 웃으며 말했다.

“항상 행복하자. 이번 생도, 다음 생도, 그 다다음 생도. 쭉.”

한껏 피어 오른 호숫가의 들꽃 향이 바람을 타고 우리에게까지 날아왔다.

따뜻한 봄바람과 이름 모를 들꽃 향.

지나치게 형식적이지도, 많은 축복을 받은 것도 아닌 단출하지만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우리만 아는 결혼식.

나는 봄에 피는 이름 모를 들꽃 향을 맡으면, 가장 먼저 우리의 결혼식이 떠오른다.

아마, 다음 생에서도 그러지 않을까?

* * *

함께한 모든 나날이 마냥 아름답기만 했었던 건 아니었어요.

음, 아무래도 일반적인 연인들과는 많이 다르다보니 의견 충돌이 잦아 다툴 때도 많았고요.

사실 오라버니도 하일도 카일도 모두 일반인보다 비범하다고는 해도 완벽한 사람들은 아니거든요.

서투를 때도 있고, 설레어 할 때도 있고, 서운해 할 때도 있는 보통 사람이니까요.

기억하지 못하는 전생도 흐릿하게 기억에 남은 회귀 전도 그리고 지금도.

저희에게는 전부 소중한 시간들이었어요.

그 시간이 괴롭든, 슬프든, 행복하든, 그런 것들이 하나둘씩 모여 지금의 우리를 만든 거니까요.

동화 속 여자 주인공처럼 특별하게 더 달콤하지도, 특별하게 더 아름답지도 않은 그냥 남들과 비슷한 보통의 사랑.

누군가는 우리더러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상관없어요. 타인이 뭐라 하든, 이게 우리가 사랑하는 방식일 테니까요.

-<그들이 사랑하는 방식> 完

Rêve 그들이 사랑하는 방식 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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