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하일 아르젠트 (1)
‘어후, 어색해.’
카제프가 떠난 테이블 빈자리를 보며 나는 그제야 속 편히 음식을 집어 먹었다. 그날 후로 얼마 만에 마주한 건지, 어색해 죽는 줄 알았다.
하녀에게 듣자 하니 부모님은 또 남부에 가신 모양이었다. 이 기세라면 조만간 오라버니께서 작위를 물려받고, 두 분은 은퇴하실 것 같았다.
이 부분도 역시 이상했다. 원작보다 빨리 오라버니가 작위를 계승받을 것 같으니까.
항상 복작복작했던 테이블이 썰렁하니 기분이 묘했다. 깨작거리며 오믈렛을 씹어 삼켰으나, 도통 입맛이 돌지 않아 결국 들었던 포크를 내려놓았다.
* * *
아젤라 메리드. 메리드 자작의 사생아이자 황태자의 약혼녀. 미래의 황태자비이자 더 나아가 황후, 제국의 국모가 될 여인.
제국 사교계는 지금 신데렐라처럼 황태자의 약혼녀가 된 그녀에 대해 입을 놀리기 바빴다.
영애들은 그녀를 부러워했고, 귀부인들은 황실에 천한 피가 섞여 들어갔다며 탄식했다.
이러나저러나 확실한 건, 그녀는 곧 모든 귀족의 정점에 설 수 있다는 것이었다. 비록 허울뿐인 자리일지언정 수많은 여인이 갈망하는 황후의 왕관을 쓸 여인이었다.
일개 자작가의 사생아가 황태자의 눈에 들어 온갖 사랑을 받아 가며 황태자비가 된다. 이 얼마나 자극적이고 낭만적인 동화 같은 이야기란 말인가.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낭만적인 동화의 여주인공 얼굴엔 미소가 없었다.
연갈빛 생머리가 찰랑이는, 울창한 숲의 나무처럼 푸르른 녹안이 어여쁜 그녀의 눈에는 명백히 혐오라는 감정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아르젠트 영식, 어쩐 일로 또 찾아오신 겁니까. 시키신 일은 모두 하지 않았습니까-!”
혐오, 분노, 억울함과 서러움. 온갖 감정이 뒤섞인 음성이 어여쁜 입술을 비집고 새어 나왔다. 그 앞에 마주 앉은 하일은 여주인공을 괴롭히러 온 악당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시킨 일은 다 했다라…….”
다리를 꼬고 앉아 거만하게 그녀를 마주하는 그의 자세는 감히 미래의 황태자비를 바라보는 자세라 할 수 없었다.
포식자와 피식자. 둘의 관계는 마치 그렇게만 보였다.
느릿하고도 서늘한 목소리는 티아에게 사랑을 속살거릴 때와 너무나도 달라 낯설었다.
“당신이 하라는 대로 약혼식을 치르기도 전부터 황궁에 들어왔고, 전달받은 명단대로 귀부인들을 초대해 티파티도 열었습니다, 이만하면 되지 않았습니까! 저더러 뭘 더 어쩌라는 겁니까!”
버럭버럭 소리치는 그녀를 본 하일의 벽안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비뚜름히 올라간 입꼬리가 저열하게도 조소를 흘렸다. 둘 사이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젤라는 긴장한 듯, 어깨가 빳빳이 굳었다.
그러다 먼저 침묵을 깬 건 하일이었다.
“최근 드레스 구입이 잦으시더군요.”
“그건 황태자비 품위 유지 비용으로 구입한 것입니다. 메리드 자작가에서 입던 것을 입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아젤라의 대답에 차가운 시선이 그녀를 꿰뚫듯 향했다. 고작 시선일 뿐인데, 매서운 칼날보다도 더 서늘해 아젤라는 주먹을 꼭 쥐고 입술을 짓씹었다.
“거짓말이 많이 늘었습니다, 영애.”
여상스러운 하일의 목소리에 그녀의 시선이 허공에서 잘게 떨렸다. 그런 그녀를 보며 하일이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그러게 왜 얼마 못 가 다 들킬 잔술수를 부리는지……. 가소롭다는 듯 아젤라를 바라보며 하일이 나긋나긋하게 말을 이었다.
“드레스 디자이너의 조수로 취업시켰더군요, 당신 정부.”
아젤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런 그녀와 달리 하일은 해사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정부라니요, 그게 지금 무슨 불순한……!”
“황태자비를 앞두고 입궁까지 했으면서, 그자가 정부가 아니고 무어란 말입니까.”
정부라니, 한때 자신과 사랑을 속삭이고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가 한낱 정부로 전락하다니. 매정한 말에 아젤라의 눈가에는 물기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그녀는 하일을 향해 역겹다는 눈빛을 숨기지 않고 소리쳤다.
“말조심하세요, 영식! 당신만 아니었어도, 당신만 아니었어도 그는 제……!”
“제?”
하일이 되물었다. 어서 말을 더 이어 보라는 듯, 이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호기심 가득한 표정이었다.
아아, 저열하고도 질 낮은 뱀 같은 남자.
아젤라는 말을 잇지 못했다. 만약 하일이 아니었다면, 그의 협박이 아니었다면, 그는 자신의 무엇이 되었을까.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것을 눈치챈 하일이 피식, 헛웃음을 흘렸다. 명백한 조롱이었다.
“귀족과 평민의 사랑은 어렵습니다.”
단호한 한 마디에 기어코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아무리 영애께서 사생아라 하셔도, 메리드 자작 영애로 있는 한 영애는 그와 혼인할 수 없습니다.”
“그걸 당신이 어떻게 단정 지어!”
뽀얀 뺨에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그 모습이 처연할 법도 한데 하일의 표정은 여전히 서늘했고, 무덤덤했다. 아무 감흥 없다는 듯, 저 앞에서 오열하는 그녀를 두고 찻잔을 들어 여유로이 다즐링의 향을 음미했다.
“그러게 힘을 기르셨어야지요. 돈이든 힘이든 명예든, 무엇 하나 없는 당신께서 사랑을 쟁취하지 못하는 건 세상의 당연한 이치입니다.”
아젤라는 원통하다는 듯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것도 못할 것 같으면, 들키지나 말든가.”
“흑, 흐읍……, 쓰레기 새끼.”
“들키는 순간 나 같은 쓰레기 새끼들한테 약점으로 잡히거든.”
눈앞에 앉은 여인은 아름다웠다. 동화 속 비운의 여주인공처럼 아름다웠고 애틋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녀의 앞에 앉은 하일은 여주인공의 사랑을 방해하는 악당이었다.
“왜, 설마 가진 것 하나 없는 평민 나부랭이가 속삭인 사랑 놀음에 진짜 결혼이라도 가능할 거라 생각하셨던 겁니까?”
하일은 큰 소리로 그녀의 사랑을 비웃었다. 하하하, 그의 조롱 섞인 웃음소리가 황궁 응접실 안에 널리 퍼졌다.
혐오스러웠다. 눈앞의 남자가 혐오스러웠고, 역겨웠다. 그의 사랑이 망가지길 바랐다. 자신들의 사랑을 망가트려놓고 제 사랑을 쟁취하려는 게 죽이고 싶을 정도로 역겨웠다.
“당신 사랑은 성공할 것 같아?”
“내가 실패할 것 같습니까.”
옷매무시를 한 번 가다듬은 하일은 찻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십 년을 공들였어.”
고작 이십 년을 살아온 하일의 입에서 ‘몇십 년’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 말에 의구심을 가진 것도 잠시.
“실패할 리가 없잖아, 당신처럼.”
명백한 조롱. 얄궂게 비틀린 그의 입꼬리를 보며 아젤라는 무너졌다.
하일은 뒤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를 외면한 채, 단정한 걸음걸이로 방문을 열었다.
“마지막 경고입니다. 제 허락이 있기 전까지 멋대로 그를 궁으로 부르지 마십시오. 비 전하.”
그리고 제 할 말을 마친 그는 미련 없이 방문을 나섰다. 홀로 남은 아젤라는 목을 옥죄어 오는 슬픔에 오랫동안 눈물 흘렸다.
* * *
“하일!”
저택에 돌아오자마자 쪼르르 달려 나와 반겨 주는 티아를 보며, 하일은 피식 웃었다.
“어디 다녀왔어?”
다람쥐처럼 자신을 올려다보는 그녀의 입가엔 과자 부스러기가 가득이었다. 귀엽다는 듯 입가를 닦아 주며 질문에 대답했다.
“잠시 황궁에 다녀왔습니다.”
“으음……, 요즘 황궁에 자주 가네.”
“일이 조금 있어서요.”
다정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하일은 티아의 어깨를 감싸 안고 토닥이며 능숙하게 제 방으로 향했다.
“티타임을 갖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누이께서는.”
“응, 입맛이 없어서 달달한 것 좀 먹으려고 했지.”
“입맛이 없으셨다니요,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하일이 아주 소중한 유리구슬이라도 매만지는 것처럼 조심스레 티아의 뺨을 어루만졌다. 누이를 바라보는 그 시선에는 사랑과 애정이 가득 들어차, 방금까지 아젤라에게 보내던 매정한 눈빛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문을 잠그고 티아를 제 품에 끌어안았다. 기분 좋은 그녀의 체향이 숨 쉴 때마다 밀려 들어왔다.
“아무 일도 없었어. 아침부터 오라버니랑 단둘이 밥 먹으려니 영 불편해서 그랬지, 뭐.”
그녀는 조잘거리며 자신을 안은 하일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예전에는 몸을 섞는 것 외에 스킨십에는 부담감을 표출했던 티아였는데, 이제는 곧잘 받아 주곤 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자리를 비워서…….”
“아니야, 일이 있었다며. 어쩔 수 없지.”
“배고프시겠습니다.”
“조금?”
티아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입술을 지분거렸다. 그러고는 은근히 등허리를 더듬었다. 그러자 그녀가 곤란하다는 듯 하일을 밀어냈다.
“안 돼, 나 배고파서 힘없어.”
“그럼 모처럼 쇼핑거리라도 갈까요, 누이. 가서 누이가 좋아하는 레스토랑의 스테이크를 먹는 건 어떻습니까.”
스테이크라는 말에 티아의 눈에 초롱초롱한 생기가 들어찼다.
“바로 가자, 가고 싶어.”
방방 뛰며 어서 가자고 자신을 재촉하는 그녀가 귀여워 하일은 쿡쿡 웃었다.
귀여운 누이, 하나뿐인 내 누이.
대충 숄을 두르고 자신을 앞서 쫄래쫄래 마차로 달려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옛 생각을 떠올렸다.
‘후회하시면 안 됩니다.’
누이께서 먼저 약조하시지 않으셨습니까. 한 번 더 기회가 찾아온다면, 그땐 저희와 혼인해 주시겠다고.
언제나 지금처럼 밝은 것, 즐거운 것만 보며 곁에 남아 계시면 됩니다.
우리를 방해하는 것은 제가 모두 없애면 되는 것이니까요.
그게 설령 황족일지언정.
* * *
모처럼 티아와 단둘이 쇼핑거리에 나온 탓에 하일은 기분이 좋았다. 제 앞에 앉아 메뉴판을 꼭 쥐고 무얼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중얼거리며 뒤적이는 그녀가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한참 동안 메뉴판을 들여다보던 티아의 시선이 이내 하일에게로 향했다.
“하일, 넌 뭐 먹을 거야?”
“저는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으음, 그게 제일 어려운 주문인데…….”
그녀는 다시 메뉴판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누이, 먹고 싶은 게 있으시면 전부 시키세요. 그래도 됩니다.”
“아, 그건 안 돼.”
그건 안 된다니. 왜?
하일의 머릿속에 의문이 들었다. 돈이라면 차고 넘치게 많았다. 레스토랑의 모든 음식을 시켜 한 입씩만 먹고 버려도 상관없었다. 만약 누이가 정 메뉴를 정하지 못한다면, 그리할 생각이었다.
“남은 음식이 아깝잖아.”
“음…….”
“불필요한 낭비는 조금 그래. 제대로 된 빵 한 조각 못 먹어 굶어 죽는 사람도 많은데…….”
이해할 수 없는 사고였으나 그녀가 빈민가 출신이라는 것을 떠올리고 하일은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하게 둘 생각이었다.
“안심이냐, 등심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누가 보면 대단한 고민이라도 하는 줄 알 법했다. 저런 모습마저 사랑스러워 보이는 자신이 미친 건지, 하일이 자조적으로 웃었다.
결국 티아는 두 가지 다 시키고는 나눠 먹자며 방긋방긋 미소를 지어 보인다.
아, 사랑스럽다.
그 웃음에 하일의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지금 당장 오물거리는 작은 입술을 탐하고 드레스를 벗겨 누이의 안에 제 것을 잔뜩 싸지르고 싶다는 더러운 욕정이 동하기 시작했다.
턱을 괴고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뭐가 그리 신나는지 티아는 식전빵을 오물거리며 사소한 일상 이야기를 떠들어 댔다. 스테이크가 나오니 그녀의 눈가에 행복이 들어찬다. 참으로 투명한 여인이었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으니.
저 작은 몸뚱아리로 용케 잘도 먹는다. 볼이 빵빵해져서는 오물거리는 게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다.
“나 와인 마셔도 돼?”
“드시고 싶으면 드십시오, 제게 굳이 허락을 구하실 필요 없습니다.”
싱긋 웃으며 주류 메뉴판을 건넸다. 그러자 티아는 곧장 보르도 지방의 무거운 레드 와인을 시켰다. 그러고는 와인과 스테이크를 번갈아 가며 먹어치운다.
술기운이 도는지 그녀의 얼굴은 살짝 붉어져 있었다.
“누이, 취하셨습니다.”
“우응……, 괜찮아. 네가 있잖아.”
눈은 풀어지고 발음도 뭉그러졌다. 헤실헤실 입가에 드리운 미소는 뭇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법했다. 제게 의지하는 듯한 그녀를 보며, 하일은 피식 웃었다.
내가 있어서 괜찮다니. 가장 위험한 사내가 눈앞의 저라는 걸 그녀는 정말 모르는 걸까.
이미 취할 대로 취했음에도 한 잔 더 마시겠다며 칭얼거리는 그녀의 손에서 와인잔을 앗아 왔다. 낮부터 진탕 취한 그녀를 보며 하일은 조심스레 어깨를 감싸 안고 에스코트했다. 그러자 작은 그녀의 팔이 제 허리에 팔을 두르고 제게 기대듯 걷는다.
마차에 올라타려는 찰나였다. 누군가가 그녀의 드레스 자락을 붙잡았다. 놀란 하일이 불청객을 밀어내려는 순간이었다.
“마님, 이것 하나만 사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마님.”
돌아다니며 싸구려 팔찌나 반지 따위를 파는 평민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은으로 된 저렴한 장신구를 내보이며 티아에게 매달렸다.
귀찮은 것들이 붙었다며, 대충 떼어 내려는데 그녀는 뭐가 그리 신나는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아이들의 물건을 세심하게도 살펴본다.
“세상에, 예뻐라……. 하지만 나 지금 돈이 없는데…….”
“누이, 이런 은 종류는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도 있고 금방 변색됩니다.”
하일의 만류에도 티아는 반지 몇 가지를 만지작거렸다. 그러더니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하일.”
“……네, 누이.”
“헤헤.”
어서 사 달라는 듯 싱글벙글 웃는다. 반달처럼 접혀 들어간 눈매가 유혹하듯 하일을 마주했다. 그 모습에 하일은 작게 한숨을 토했다. 제 누이의 저런 표정을 보고 어찌 안 된다 거절하겠는가.
“……알겠습니다.”
결국 하일은 아이들이 파는 모든 장신구를 구입했다. 금화 여러 개를 건네며 거스름돈은 됐다는 말과 함께.
티아는 제 손에 한가득 들린 싸구려 은 장신구를 보며 웃고 있었다. 원한다면 은이 아닌 금과 다이아로 된 것들을 마차 한가득 사 줄 수도 있는데, 고작 이런 것에 이리 행복해하다니. 이해할 수 없었으나 아무렴 그녀가 행복하다면 됐다고 생각하며 물었다.
“불쌍해서 사 주신 겁니까?”
“그것도 그렇고, 이거 정말 예뻐서.”
“알레르기라도 생기시면…….”
“괜찮아.”
“제가 안 괜찮습니다. 차라리 이 디자인대로 공방에 가서 만들어 달라고 하겠습니다.”
마차에 올라타자마자 하일은 티아에게 입을 맞췄다. 술 냄새와 함께 씁쓸한 와인 맛이 밀려왔다. 푹신한 고급 마차 의자에 그녀를 앉히고 자신은 자연스럽게 아래로 향했다. 조심스럽게 드레스 자락을 걷어 내고 새하얀 두 다리 사이 은밀한 곳으로 게걸스레 머리를 들이밀었다.
티아가 집에 가서 하자며 밀어냈으나 물러나 주지 않았다.
보드라운 속옷을 옆으로 밀어내자 다물린 살이 그를 맞이했다. 갈라진 틈 사이로 선홍빛 음핵이 보였다. 하일은 곧장 그것을 빨았다.
“후응…….”
양손으로 음핵을 숨기려는 살을 벌려 젖히고, 가감 없이 드러난 점막을 물고 빨고 비벼 댔다. 혀끝으로 살점을 짓누르며 아이스크림이라도 먹듯 개처럼 누이의 음부를 할짝였다.
“아흐, 으응……, 하일…….”
질척이는 소리가 마차 안을 가득 메웠다. 말캉한 입술을 여린 음핵에 지분거리며 쪽쪽 빨자 티아의 몸은 놀라 허리를 튕겨 대며 앙앙댄다.
“누이.”
“우으…….”
하일의 손이 꼭 다물린 구멍을 헤집으며 천천히 그녀의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뜨거운 내벽이 수축하며 그의 손을 맞이했다. 애액으로 번들거리는 질구는 무리 없이 삽입을 받아들였다. 손가락을 쭈욱 뺐다가 밀어 넣으니 듣기 좋은 신음이 흘러나온다.
“흐아…….”
쿨쩍이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내벽을 애무했다. 그러자 티아는 버둥거리며 허리를 내뺐다.
“아, 안 돼, 여기 마차…….”
“불편하십니까?”
“조, 조금……, 그리고 이러다 저택에 도착하면…….”
“괜찮습니다, 적당히 돌아가라 명해 두었으니.”
티아는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냐고 투덜거렸다. 그녀의 투정마저 귀여운 나머지 피식 웃음이 절로 나왔다.
“하지 말까요?”
“우응……, 불편해.”
술에 취해 그런지 티아는 불편하고 귀찮다는 듯 몸을 축 늘어트렸다. 하일은 못 이긴 척, 그녀의 음부에서 입을 떼고 곁에 앉았다. 그러자 티아가 쌕쌕 숨소리를 내며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제게 의지하는 듯한 그녀를 보고 있자니 가슴께가 살랑거렸다.
‘이번에는 꼭…….’
지켜 드리겠습니다.
* * *
하일은 술에 취해 잠든 티아를 안고 저택에 돌아왔다. 그러자 마침 현관 로비에 나와 있던 카제프가 힐끔 둘을 바라봤다.
“어디 다녀온 것이냐.”
“누이께서 식사를 제대로 못 하셨다 하여 쇼핑거리에 좀 다녀왔습니다.”
“……그렇군.”
하일은 제 품에 안겨 자고 있는 그녀를 애틋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살살 좀 하시지 그러셨습니까.”
“…….”
“누이께서 형님을 불편해하지 않습니까.”
물끄러미 티아를 내려다보던 카제프는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나야 원래 티아랑 친하지 않았으니까…….”
그것도 그렇다며 장단을 맞춘 하일이 기분 좋게 웃어 보였다.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주지는 않습니다.”
“그래, 그렇지…….”
“하루빨리 누이와 대화라도 나누는 게 좋으실 것 같습니다.”
하일의 조언에 카제프는 알았다는 짧은 대답과 함께 자리를 비켰다.
하일은 그녀를 방에 눕히고 냉수를 곁에 가져다 놓았다. 하녀를 시킬 법도 한데 번거롭지도 않은지 직접 세심하게 하나하나 챙겼다. 티아가 잠에 들기 편하도록 암막 커튼을 치고, 옷을 벗겼다. 그러자 티아의 입에서 우응, 하는 신음이 새어 나왔다.
“깨셨습니까, 누이.”
“흐으…….”
“술을 너무 많이 드셨습니다.”
잘 드시지도 못하시면서. 하일이 기분 좋은 미소를 그린 채, 티아의 머리를 정돈해 주었다. 비몽사몽한 그녀는 멍하니 하일의 손길을 느끼며 그 부드러운 손에 뺨을 비볐다.
“나 물…….”
얼음을 넣어 냉수를 따라 주자 아기 새처럼 꼴깍꼴깍 잘도 받아 마신다. 그러고는 다시 벌러덩 드러누워 쌕쌕 고른 숨소리를 뱉었다.
그녀를 내려다보던 하일은 단정하게 코트와 셔츠를 벗어 걸어 두고 티아의 곁에 누웠다. 그러자 그녀가 꼬물거리며 품속으로 파고들어 왔다.
“하일.”
“네, 누이.”
“좋아.”
“……저도 좋습니다.”
“거짓말.”
거짓말이라는 말에 그의 미간이 잠시 구겨졌다.
“사랑한대 놓고 삼 년을 넘긴 놈이 없었어.”
이어진 말에 하일은 아예 얼굴을 굳혔다. 지금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누이, 지금 그게 무슨…….”
티아는 7살 때 후작저로 왔다. 그리고 그녀가 온 후로 쌍둥이들은 언제나 티아에게 다가오는 영식들을 살펴 왔다. 사랑은 고사하고 좋아한다며 고백조차 못 하게 접근을 차단했다.
‘그런데 대체 누가…….’
까드득, 이 갈리는 소리와 함께 티아를 안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자신들 몰래 비밀 연애라도 했단 말인가. 하일은 분노로 차갑게 식어 가는 머리를 진정시키며 물었다.
“어느 집 영식입니까.”
“응?”
서늘한 목소리가 애써 살기를 숨긴 채 그녀에게 속삭였다. 티아는 눈이 풀린 채로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어느 집 영식이 감히 누이께…….”
“아, 걔네는 그런 거 없어.”
“……네?”
“작위 없어.”
한국에는 작위가 없으니까. 티아는 뒷말을 마저 뱉지 못하고 입술만 오물거렸다. 그러나 작위가 없다는 말에 큰 충격을 받은 건 하일이었다. 하일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술을 짓씹었다.
‘평민? 대체 누이가 언제 평민과 어울려 논 거지?’
너무나도 큰 충격에 입술만 한참 달싹이다 놈들의 삼대를 멸하겠다며 카제프에게 조사를 부탁했다. 그러고도 화가 가시지 않아, 한참 동안 답지 않게 방에 틀어 박혀 화를 삭혀야 했다.
대체 언제 누이가 평민 남자를 만난 건지, 하일은 한동안 골머리 썩혔다.
그 연애가 한국에서의 연애라는 사실도 모른 채.
* * *
요즘 들어 카제프와 단둘이 저택에 남는 경우가 허다했다. 부모님은 은퇴 준비를 하시느라, 하일은 황궁을 들락거리느라 바빠 보였다.
피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그를 마주칠 때마다 매번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자꾸만 불편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오늘만 해도 그랬다.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종일 오라버니와 단둘이 어색하게 식사를 해야 했다.
다이닝 룸엔 달그락, 달그락 식기구가 부딪히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나와 오라버니 사이엔 그 어떤 대화도 없었다. 오라버니도 먼저 말을 걸지 않았고, 나도 인사 외에는 딱히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아, 맛있다.’
입에서 사르르 녹는 스테이크를 우물우물 씹으며 애써 오라버니를 외면하려 했다.
‘한 접시 더 먹을까.’
하지만 오래 마주하고 있기 불편한데.
힐끔, 맞은편에 앉은 카제프를 훑었다. 하루 종일 업무를 보느라 흐트러질 법도 했는데, 그는 아침과 다를 바 없는 단정한 차림으로 음식을 먹고 있었다. 확실히 귀족은 귀족이었다. 손짓 하나, 행동 하나하나 기품이 흘러넘친다.
그에 비하면 나는 뭐……, 어설프게 겨우겨우 흉내 내는 정도지.
포크로 푹, 두툼한 고기를 집어 입에 밀어 넣었다.
“우응…….”
맛있어.
기분이 좋아진 나머지 나도 모르게 눈가가 헤실헤실 풀어졌다. 어느새 수북했던 스테이크 접시는 휑하니 비어 가고 있었다.
‘아, 조금만 더 먹고 싶은데…….’
입맛을 다시며 감자 샐러드를 깨작거리자, 오라버니가 제 스테이크를 반 정도 썰어 내게 건넸다.
“……더 먹거라.”
“아, 아뇨, 괜찮아요…….”
차라리 주방장한테 새로 한 접시 달라고 하고 말지.
정말 괜찮다며 극구 사양하듯이 손사래를 쳤다. 참으로 이상했다. 카일과 하일하고는 이렇게까지 불편하지 않았는데, 오라버니와는 왜 이리 불편한 걸까.
역시 나이 차이와 원래도 서먹했던 관계 때문이겠지.
자신이 덜어 준 고깃덩이를 손도 대지 않고 멀뚱멀뚱 바라만 보자, 그는 작게 한숨을 토하더니 제 나이프와 포크로 먹기 좋게 썰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내가 좋아하는 양송이버섯 소스를 듬뿍 묻혀 내 입 앞으로 가져다 댔다.
“왜 안 먹어.”
“그, 저, 저는 정말…….”
“먹어, 티아.”
“…….”
“내가 미안해.”
“아, 아니 그게…….”
“불편하게 해서 미안해.”
카제프는 버림받은 강아지처럼 상처받은 얼굴로 나를 힐끔거렸다. 그러면서도 내게 내민 스테이크 조각을 치울 생각이 없어 보이길래, 그냥 눈 딱 감고 한 번 받아먹었다. 그러자 오라버니의 얼굴이 한결 나아진다.
‘아, 존맛탱.’
세상 행복한 얼굴로 사르르 녹는 스테이크를 삼켰다. 그러자 카제프는 기다렸다는 듯 다시 한번 스테이크를 집어 내게 건넸다.
“저기……, 오라버니. 괜찮아요, 제가 알아서 먹을게요.”
적당히 선을 긋자 또 상처받은 표정을 짓는다. 원래 저런 타입이던가.
‘다정하긴 다정했지만, 표정이 잘 드러나는 편은 아니었는데.’
우리 사이에 다시금 어색한 공기가 흐르자, 넉살 좋게도 주방장이 다가와 페어링 와인을 권했다. 따라지는 와인을 보며 오라버니는 어쩔 줄 몰라 했다.
“티아, 술……, 마셔도 괜찮겠니?”
“……왜요?”
“얼마 전에 나가서도 꽤 취해 왔었잖아.”
아, 하일이랑 나갔을 때.
“괜찮아요. 조금만 마실 거기도 하고, 집이잖아요.”
신경 쓰지 말라는 듯 무해하게 웃어 준 뒤, 고기 한 점, 와인 한 모금. 꼴깍꼴깍 잘도 마셨다.
티아의 몸으로 사는 데 유일하게 아직까지 적응하지 못한 것 하나가 딱 있다. 바로 주량. 이래봬도 한국에서 혼자 소주 두 병은 거뜬했는데, 티아의 몸으로는 와인 몇 잔만 마셔도 금세 취기가 오른다.
한국에서의 내 몸 기준 와인 한 병은 적당히 취기 오르는 정도였는데, 티아 기준 와인 한 병은 죽음이다. 다음날 숙취도 숙취고 완전 취해서 몸도 못 가눌 정도가 되니까.
‘그러고 보니 처음 이 몸으로 술 마셨을 때, 카일이 데리러 왔었는데.’
성인식을 치르고 동갑내기 몇몇 영애와 간단한 기념 파티를 하는 자리였을 거다. 그날은 이 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술을 마셨던 날이었는데, 덕분에 나는 이 몸의 주량을 너무 과대평가했고, 또래 영애들 또한 자신들의 주량을 몰라 다들 금방 취해 흐늘흐늘거렸었다.
아, 지금 생각하니 진짜 웃기네. 귀족 영애 여럿이 모여서 샴페인 몇 잔 홀짝이고 술 취한 개가 된 꼴이라니.
집에 가야지, 집에 가야지, 하고 영애들과 대리석 바닥을 엉금엉금 기고 있는데 카일이 나타나서 나를 냉큼 안고 마차에 태웠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무슨 술을 이렇게 많이 마셨어, 누나가 술꾼이야? 응?’
취했던 탓에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카일이 잔소리삼아 투덜거렸던 건 아직도 생생하다.
쿡쿡거리며 옛 생각을 떠올리자 오라버니의 표정은 한없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맛있어?”
“네.”
내 대답에 어두워지던 그의 표정 위로 옅은 미소가 드리웠다.
“한 접시 더 먹을래?”
“아뇨, 괜찮아요.”
차라리 주방장한테 한 접시만 더 방으로 가져다 달라고 하고 말지. 어휴, 불편해.
힐끔, 오라버니를 보자 그는 미묘한 표정으로 독한 위스키만 연신 마셔 댔다. 내 걱정하기 전에 본인 걱정부터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러다 취하시겠어요.”
얼음이 달그락 소리를 내며 위스키에 녹아 내려갔다. 내가 먼저 말을 건 탓일까, 오라버니는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지금 내 걱정해 주는 거……, 야……?”
이게 걱정인가? 그냥 인사치레로 한 말이긴 한데…….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카제프가 헤실헤실 웃는다.
‘저런, 이미 취했네, 취했어. 하긴 저 독한 위스키를 안주도 없이 벌써 저만큼이나 마셨으니…….’
나는 내 앞에 놓인 스테이크를 물끄러미 보다 한 점 집어 그에게 건넸다.
“안주라도 드세요, 속 버려요.”
그러자 카제프가 잠시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내가 건넨 스테이크를 받아먹는다.
‘와, 얼굴 열일하는 거 봐.’
취해서 살짝 풀린 눈매와 단정한 백금발이 마치 동화 속 왕자님처럼 잘 어울렸다. 잠시 홀린 듯이 오라버니의 얼굴을 보다, 이내 시선을 거뒀다.
‘내가 전생에 덕을 많이 쌓았던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남자들하고 이렇게 막, 어? 막, 그럴 수 있을 리가 없는데…….
“고마워, 티아.”
스테이크를 받아먹은 그가 헤헤, 웃는다. 저렇게 웃는 건 처음 보는 거 같은데……, 조금 간질간질한 기분에 시선을 피했다. 안주가 조금 부족하려나, 싶을 찰나 주방장이 스테이크를 한 접시 더 내왔다.
“품질 좋은 채끝 등심이 들어와 조금 구워 봤습니다.”
육즙이 가득한 채끝 등심 스테이크 위로는 레드 와인 소스가 뿌려져 있었다. 두툼한 송이버섯도 함께 구워져 있었고. 절로 침이 꼴깍 삼켜졌다.
조금만 마신다는 게, 결국 과음하고 말았다.
한 잔, 두 잔, 술 무서운 줄 모르고 티아의 몸으로 와인을 거의 한 병 다 마셔 버렸다. 술을 많이 마신 탓에 눈앞이 헤롱헤롱했다.
“저어는 이만 들어가 볼게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오라버니가 힐끔, 나를 바라본다. 아까는 분명 꽤 취해보였는데 내가 더 취한 상태여서 그런가, 비교적 그는 멀쩡해 보였다.
“데려다줄게.”
“아뇨, 아뇨. 어차피 바로 코앞인데…….”
거절의 말에도 카제프는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는 자연스레 내 허리에 제 팔을 둘렀다.
“아, 어지러.”
“그러게 적당히 마시라니까.”
발이 꼬이고 땅이 울렁거렸다. 지금 내가 밟고 있는 게, 바닥인지 천장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후으…….”
어떻게 방까지 간 건지도 모르겠다. 오라버니께서 나를 침대에 눕혀 주었고, 냉수를 들이켜다 잠에 들었다. 누군가가 내 옷을 벗기는 손길이 느껴졌지만, 밀려오는 졸음에 더 이상 신경 쓰지 못하고 깊은 잠에 빠졌다.
* * *
“우으…….”
아, 숙취 미쳤다.
나는 깨질 듯한 머리를 부여잡고 눈을 떴다. 그런데 내 방이 아니었다. 내 방도 아닐뿐더러 카일, 하일의 방도 아닌 완전 낯선 방이었다. 놀라 몸을 일으키자, 누군가가 내 손목을 잡아당긴다.
“좀 더 자.”
익숙한 목소리, 다정한 손길.
화들짝 놀라 소리의 근원지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흐트러진 모습의 카제프가 누워 있었다.
‘미친, 나 설마 또 얘랑 섹스했나?’
카제프는 내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건지, 곧장 대답한다.
“아무 짓도 안 했어.”
“…….”
“정말이야. 그냥 안고만 잤어.”
그의 팔이 내 허리를 감싸 안고 제 품으로 끌어당긴다. 낯선 체향이 확 풍겨 왔다.
“네가 싫어할 거 뻔히 아는데, 멋대로 할 리 없잖아.”
얼씨구, 그런 사람이 그땐 그렇게 사람을 혼절시켜 놓냐?
테라스에서 카제프와 뒹굴던 때가 떠올라 괜히 얼굴이 홧홧해졌다.
“티아야.”
“네.”
“미안해.”
“……전부터 뭐가 그렇게 미안한데요?”
난 정말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애당초 섹스도 내가 먼저 하자고 조른 거고, 그는 내 요청대로 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카제프는 나를 마주칠 때마다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혹시 저 몰래 나쁜 짓이라도 했어요?”
내 물음에 그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도리질한다. 그러자 백금발이 목덜미에 간지럽게 부벼졌다. 뒤에서 꼭 끌어안고 있는 오라버니의 품은 생각보다 편했다. 안겨 있는 기분이 썩 나쁘지만은 않아서, 얌전히 품에 안겨 체온을 나눴다.
그렇게 가만히 안겨 있는데, 카제프가 대뜸 내 손을 쥐고 제 성기로 가져다 댔다. 난데없는 행동에 눈이 크게 뜨인 것도 잠시.
“티아 너만 보면 자꾸 이렇게 돼서…….”
아침부터 여동생을 품에 안고 한껏 흥분한 성기의 존재감에 놀라 히끅, 딸꾹질이 새어 나왔다.
“그래서 미안해.”
화들짝 놀라 손을 내뺀다는 게, 실수로 한 번 더 오라버니의 성기를 꾹 눌러 버렸다.
“아, 그, 저기…….”
뜨거운 숨결이 고스란히 맨살에 닿아 간지러웠다. 내가 움찔거리자 카제프는 끌어안은 손의 악력을 살짝 풀었다.
“미안해.”
한층 더 풀 죽은 목소리가 측은해서 힐끔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바다처럼 푸른 눈동자가 애처롭게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라버니.”
“응.”
“괜찮아요.”
“…….”
“미안하다고 안 하셔도 돼요. 지금은 좀 당황하긴 했지만…….”
어차피 잘생겼으니 괜찮다. 나도 카제프가 마냥 싫은 건 아니니까. 조금 어색할 뿐이지.
“어차피 이전에는 합의 하에 했던 거잖아요.”
내 쪽에서 먼저 해 달라고 조르기도 했고, 오라버니랑 하는 게 싫지도 않았고.
그는 내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건지 눈빛이 미묘하게 떨렸다.
“그럼?”
“네?”
“그럼 나랑 할 때 좋았어?”
귓가에 속삭여지는 목소리가 낮게 그르렁거렸다. 흥분이 그득그득 묻어져 나오는 수컷의 목울림 같았다. 끝이 살짝 탁해진 목소리가 어찌나 듣기 좋은지, 심장이 멋대로 쿵쾅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날 후로 티아 네가 나를 은근히 피하길래 싫었던 줄 알았어.”
“어……, 그건 아니에요.”
내가 카제프를 싫어한다니. 생각만 해도 헛웃음이 나왔다.
어지간해서는 싫어할 수 없을 정도로 카제프, 그는 잘생겼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카일이나 하일보다 잘생겼고, 사실상 세계관 최고 미남은 카제프였다.
상식적으로 그런 남자를 싫어하기란 어렵지 않을까?
‘내가 카제프를 싫어한다니. 오히려 반대에 가까운데.’
잘생겼지, 다정하지, 친절하지. 매너 좋은 귀공자의 정석이었다. 다만 사람이 너무 완벽하다 보니 인간이 아닌 것 같은 괴리감이 종종 느껴질 뿐.
그 잘났다는 쌍둥이들도 완벽하지는 않았다. 카일은 내 앞에서나 고분고분하지, 대외적으로 성격이 상당히 좋지 못한 편이고, 하일은 귀족 영식치고 검을 잘 다루지 못한다.
하지만 카제프는 성격도, 외모도, 검술도, 학문도 모든 분야에 두루두루 조예가 깊었고, 완벽했다. 정점에 다다른 분야가 없을 뿐, 어지간한 부분에 있어서 그는 전문가와 다를 바 없다. 그렇다 보니 인간미가 없다.
모든 분야에서 완벽한 열 살 차이의 후계자 오라버니.
그는 양녀에 불과한 내가 먼저 선뜻 친해지자고 다가갈 수 없는 존재였다.
“티아야.”
“네?”
눈 깜짝할 새 일어난 일이었다. 따뜻한 손이 내 양 뺨을 조심스레 감쌌고, 놀랄 틈도 없이 부드러운 오라버니의 입술이 내게 다가왔다.
정신 차렸을 땐 이미 카제프가 내게 입을 맞춘 후였다. 오라버니가 내 뺨을 쥔 탓에 고개를 돌리거나 내뺄 수도 없었다. 물론 그럴 생각도 없었지만. 그는 달콤한 디저트라도 먹는 것처럼 천천히 내 입술을 훑었다.
“으응…….”
옅은 신음과 함께 나도 모르게 잇새가 벌어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카제프는 내 안쪽까지 제 혀를 밀어 넣어 맛보기 시작했다. 오라버니의 혀가 여린 점막과 잇몸을 간질이고 들어왔다. 혀끝으로 놀리듯 살살 입천장을 간지럽히면 원치 않았음에도 앓는 신음 소리가 새어 나갔고, 우리의 혀가 뒤엉켜 서로를 탐하면 질척이는 야한 소리와 함께 타액도 섞여 갔다.
다리에 비벼지는 그의 성기가 점점 팽창하는 게 느껴졌다.
“티아.”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감았던 눈을 뜨자, 오라버니가 반쯤 풀린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고 싶어.”
내 입술을 부비던 그는 턱, 목, 쇄골, 어깨, 차례대로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슬아슬하게 가슴께를 남겨 두고 나서야 한 번 더 물었다.
“해도 돼?”
날렵하게 째진 눈매가 오늘은 강아지처럼 순둥순둥하다. 평소 무뚝뚝한 인상 탓에 멋대로 다가가기 어려웠던 오라버니는, 카일처럼 애교라도 부려 줄 것 같은 다정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카제프가 은근히 눈을 흘기며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묘하게 사람을 쥐고 흔드는 듯한 미소에 나는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오라버니의 눈매가 보기 좋게 접히며 싱긋 웃었다.
‘예쁘다.’
그 미소를 본 순간 든 생각이었다. 멋있다, 잘생겼다도 아니고 마치 신이라도 본 것처럼 같은 인간으로는 느껴지지 않는 외모.
단언컨대 그는 신이 창조한 가장 완벽한 피조물이 틀림없다.
“벌려.”
“……네?”
“다리 벌리라고.”
외모를 감탄하던 것도 잠시.
방금까지만 해도 다정했던 오라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고, 놀라 눈을 꿈뻑이자 매서운 눈매로 나를 올려다보는 낯선 얼굴의 카제프만 남아 있었다.
‘아, 씨, 맞다.’
얘 흥분하면 눈 돌아갔지, 참.
뒤늦게 아뿔싸 싶었을 때 그의 표정은 이미 평소의 카제프가 아니었다.
“안 벌려?”
시리도록 낮은 목소리, 소름 끼치도록 낯선 눈빛 그리고 조금도 올라가 있지 않은 입꼬리.
내가 머뭇거리자 오라버니가 가차 없이 내 다리를 벌려 놓았다. 그리고 오므릴 새도 없이 음부를 향해 제 머리를 들이밀었다. 실내용 슬립의 치맛자락은 이미 내 허리까지 잔뜩 끌어 올려져 있었다.
“자, 잠시만요……!”
오라버니의 손이 푹 젖은 속옷 위를 매만졌다.
“야해, 티아.”
“흣…….”
“뭘 이렇게 질질 쌌어. 응?”
“아니, 저기, 그…….”
그건 오라버니가 아까 입 맞춰서 그런 건데…….
억울했으나, 자꾸만 잇새로 흐르는 신음 탓에 반박하지 못했다. 한껏 흥분한 음핵은 젖은 속옷 위로 도드라지게 튀어 나와 있었다. 카제프가 도톰히 솟은 살점을 살살 긁었다. 그러자 아랫배가 아려오는 쾌감과 함께 허벅지 안쪽이 움찔거리며 떨려 왔다.
“으, 으응…….”
허리를 비틀어 몸을 내빼려 하자, 그가 내 골반을 붙잡고 고정시켰다. 그리고 남은 한 손으로 빠르게 예민한 곳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하읏, 오, 오라버니……! 조금만 천천히…….”
어지간하면 카일, 하일과 할 때도 지쳐 쓰러지지 않았는데 카제프와 처음 했던 날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혼절한 게 떠올라 걱정스러웠다.
그의 손이 쉬지 않고 달아오른 음핵을 괴롭히자, 질구는 연신 울컥이며 애액을 토해 냈다. 속옷까지 푹 적시다 못해 침대 시트도 축축해졌다. 그걸 눈치챈 카제프가 애무를 멈추고 살짝 속옷을 젖혔다.
그러자 언뜻 보이는 선홍빛 음핵과 움찔거리는 질구가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멍하니 그 장면을 보던 그는 제 손가락으로 질구에 흐르는 액을 묻혀 천천히 음핵으로 쓸어 올렸다. 미끈한 촉감이 은밀한 부위를 매만지며 지나가자 숨이 더욱 거칠어지며 허리가 휘어졌다.
“흐아, 으…….”
애액 범벅으로 미끈한 음핵을 비비며 내 몸에 쾌락을 한가득 선사하던 오라버니의 손은 서서히 밑으로 내려가 점차 구멍 주변을 농락하기 시작했다.
넣어 줄 듯 말 듯, 흥건히 젖은 애액에 미끄러져 삽입할 듯 말 듯 나를 애달프게 만들었다. 구멍은 그의 것을 원한다는 듯 연신 오물거렸으나, 짓궂은 오라버니는 구멍 입구만 간지럽히며 방관했다.
“아흣……, 가, 간지러워요.”
“티아도 날 좋아하지?”
“흐으……, 흣.”
“나는 몇 번째야?”
다소 냉소적인 웃음과 함께 그가 물었다.
“카일, 하일 그리고 나. 그중에 나는 몇 번째냐고.”
입술을 꾹 다물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심술이 난 건지 카제프가 살짝 음핵을 꼬집었다.
“흐응……!”
찌릿한 쾌감에 허리를 들썩이자 카제프의 입가에 얄궂은 미소가 그려졌다.
“티아야, 나랑 게임 하나 할까?”
여전히 차갑게 식은 목소리였다. 그의 엄지와 검지는 멈추지 않고 내 음핵을 꼬집으며 비비고 있었다.
“아흣, 흐, 흐아…….”
눈물에 시야가 흐릿해졌다. 그럼에도 카제프는 내 사정을 봐주지 않고 나를 괴롭힐 뿐이었다.
“이십 분 동안 가지 않고 버티면 상을 줄게.”
지금 그게 무슨 말이냐며 되물으려 했으나, 잠시 쉴 틈도 없이 음핵을 문지르던 검지가 질구를 비집고 내벽으로 처박혔다. 갑작스런 삽입에 놀라 숨이 헉, 들이마셔졌다. 내가 버둥거리자 카제프가 저항하지 말라는 듯 몸을 지그시 눌렀다.
“대신 실패하면 티아가 내 부탁을 들어주는 거야.”
“그, 그런 거 싫…….”
“싫어?”
누가 봐도 내가 불리하잖아.
미간을 찡그리고 눈물을 그렁그렁 단 채 그를 바라봤다. 툭 치면 울 것 같은 여동생의 얼굴이 처연할 법도 한데 카제프는 여전히 무뚝뚝했다.
다시 곱씹고 또 곱씹어 봐도, 그냥 심술부리려는 의도로 내게 이러는 것 같았다.
겨울 하늘처럼 시린 눈동자가 나를 훑었다. 구멍에 처박힌 검지가 천천히 왕복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버둥거리며 뒤로 도망쳤으나, 더 이상 공간이 없었다. 결국 벽에 등을 기댄 채, 내가 불리한 게임이라고 칭얼거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흐아……, 제, 제가 불리하잖아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다리를 오므리자 성큼 내게 다가온 카제프가 다시금 강제적으로 다리를 벌렸다.
“뭐가 불리해, 티아.”
“…….”
“네가 참으면 이기는 거야. 대신 좆은 안 박을게. 어때, 이러면 공평하지?”
대체 어디가 공평하냐고 되묻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히끅, 히끅, 새어 나오는 딸꾹질과 눈물에 덜덜 떨기만 할 뿐이었다.
찌꺽이는 야한 소리가 아래에서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한쪽 입꼬리만 끌어 올린 카제프는 평소와 달리 야비해 보이기까지 했다. 기어코 중지까지 질구를 비집고 내벽으로 밀고 들어왔다. 안을 꽉 채운 이물감에 구멍이 움찔거리며 안쪽을 좁혔다. 그 모습이 만족스러운지 오라버니의 표정은 한결 나아져 있었다.
“흐아……, 흣, 흐응…….”
푹신한 침대 매트리스도 아닌, 딱딱한 벽이 등에 쓸려 유쾌하지 않았다.
다정하지 않은 오라버니도, 따뜻한 품 대신 차가운 벽도.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괜히 서러워져 새어 나오는 신음을 꾹 참고 눈물만 뚝뚝 흘렸다.
‘이런 거 싫어…….’
그러자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건지, 카제프의 손짓이 멈췄다. 그러고는 내 허리를 끌어당겨 자신의 품으로 가둬 넣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차가운 벽이 닿던 등에는 오라버니의 가슴팍이 닿아 포근했다.
“티아.”
내가 울자 당황한 건지, 카제프의 시선은 한결 따뜻해져 있었다. 나는 여전히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러자 그가 작게 한숨을 토하며 내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왜 울고 그래, 응?”
“그, 그런 거, 흑, 싫단 말이에요…….”
내가 서럽다는 듯 말하자 카제프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조, 조금만 친절하게, 흑…….”
내 말에 카제프는 끙, 앓는 소리를 흘렸다. 그러다 나를 달래기로 마음먹은 건지, 퍽 부드러운 손짓으로 내 몸을 토닥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한껏 부풀어 오른 그의 앞섶이 엉덩이 사이로 느껴졌다.
질구에 박혀 있던 오라버니의 손가락이 천천히 빠져나갔다. 그러자 야한 음액이 흐르며 투명한 실이 늘어지다 끊어졌다.
나는 한참 동안 그의 품에서 울다 투정 부리듯 가슴팍에 얼굴을 부볐다. 그러자 그가 다정하게 내게 입 맞췄다.
“살살할게.”
“……흑.”
“울지 마.”
여전히 눈빛은 평소의 카제프가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애써 제 욕정을 눌러 삼킨 목소리가 어설프게 나를 달랬다.
그의 손이 부드럽게 내 몸을 쓸어 내렸다. 천천히 음부로 다가간 손은 틈을 비집고 음핵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오라버니의 섬세한 손길이 더듬듯 여린 속살을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울음 섞인 교성이 잇새를 비집고 흘렀다.
“흡, 흐으…….”
미끈한 애액을 묻혀 음핵을 살살 비벼 주자 나도 모르게 허리가 움찔움찔 떨려 왔다.
“흐아…….”
“여기 만져 주는 거 좋아?”
그가 쿡쿡 웃으며 속삭였다. 눈을 꼭 감고 고개를 끄덕이자 그의 검지와 중지가 더욱 세게 음핵을 짓눌렀다.
“아, 아으……, 흡……!”
뜨거운 애액이 왈칵 쏟아지는 게 느껴졌다. 그러자 카제프의 반대 손은 질구 주변을 맴돌다 천천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왼손은 구멍 깊숙한 곳을 쑤셔 댔고, 오른손은 흥분할 대로 흥분한 음핵을 만져 댔다. 쾌락에 젖은 음부가 이대로 녹아 없어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황홀한 기분에 카제프의 팔을 붙잡고 달달 떨었다.
“흑, 흐으…….”
“보여? 티아 보지 흥분해서 발개졌어.”
카제프가 음핵을 살짝 비틀어 꼬집으며 말했다. 그러자 아찔한 감각에 나도 모르게 내벽을 좁혔다. 그의 손을 힘겹게 문 질구가 움찔거리며 떨렸다. 내벽을 훑은 카제프의 손이 천천히 앞, 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능숙하게 음핵을 짓누르며 구멍에 추삽질했다. 파르르 떨리는 질구가 애처로웠으나 카제프의 입가에는 만족스런 미소가 드리울 뿐이었다.
“흣, 흐아……, 아!”
아찔한 쾌감에 시야가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카제프가 요염하게 눈가를 접어 웃었다. 그와 동시에 오라버니의 손이 점점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속살을 비집고 푹푹 들어오는 손과 배려 없이 음핵을 짓누르는 손길에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그저 음탕한 애액만 줄줄 흘리며 그의 품에서 헐떡였다.
“예쁘다, 티아. 오라비 손도 맛있다고 잘 먹는구나.”
그가 다정히 입 맞추며 속삭였다. 부드러운 목소리와 달리 손은 그다지 부드럽지 못했다.
“아, 아으……, 아! 오, 오라버니이……, 그, 그만……!”
머지않아 절정을 맞을 것만 같아 다급하게 카제프의 손을 붙잡았다. 그런데 어찌나 힘이 센지 그는 꿈쩍도 않고 계속해서 나를 괴롭힐 뿐이었다.
“흣, 흐아……, 아, 제, 제발요……! 오라버니!”
허리를 비틀며 저항해 봐도 소용이 없었다. 내가 저항하자 카제프는 오히려 더욱 빠르게 내벽을 헤집어 댔다. 이대로 그의 손에 간다면 정말 소원을 들어줘야 할 판이었다.
‘분명 이상한 소원 빌 거 같다고!’
눈을 질끈 감자 그렁그렁 맺혀 있던 눈물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입술을 꾹 다물고 새어 나오는 신음을 참자 카제프의 가학심을 더 자극한 건지 더욱 집요하게 예민한 곳을 찔러 들어왔다.
“흡……, 아, 아앙……!”
잠깐의 틈도 없이 유린하는 그의 손에 의해 순간 온몸이 움츠러드는 쾌감과 함께 내벽이 좁혀졌다. 절정의 순간에 다다랐음을 눈치챈 카제프는 더욱 강하게 음핵을 문질렀다.
“아, 아으……, 흐아……!”
거친 숨을 뱉어 내며 울음 섞인 교성이 흘러나왔다. 의지와 상관없이 질척한 애액이 흥건하게 오라버니의 손을 적시고 있었다.
“흐윽, 흐…….”
질구가 파르르 떨리며 아직 삽입되어 있는 그의 손을 조였다. 절정의 여운 탓에 오라버니가 조금만 움직여도 강한 자극이 몸을 뒤덮었다.
“티아가 졌네?”
그가 묘한 웃음을 띤 채 입술을 부볐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나를 침대에 눕혔다. 이미 한차례 자극이 가해졌던 탓에 몸이 축축 늘어졌다. 나는 힘없이 그의 침대 위에 널브러졌다.
“흑, 너, 너무해요…….”
눈물을 닦으며 그를 올려다봤다. 나와 똑 닮은 벽안이 이채를 띠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서는 여동생을 향한 욕망이 그득 묻어져 나왔다.
“소원은 나중에 말할게.”
얼마나 이상한 걸 시키려고.
미간이 절로 구겨졌다. 팽팽하게 부푼 카제프의 앞섶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키자 그가 기분 좋게 미소를 그려 웃었다. 내가 슬며시 눈치를 살피며 다리를 오므리자 카제프가 고개를 까딱거렸다.
“벌려.”
“흑…….”
“나한테 벌려 달라 하지 말고, 티아 네가 네 손으로 스스로 직접 다리 벌려.”
카제프가 쿡쿡 웃으며 장난스레 내 음부를 때렸다. 아프지는 않았으나 묘한 마찰음과 짧게, 짧게 예민한 음핵을 때리고 들어오는 촉감이 낯설어 질구가 움찔거렸다. 어서 벌리라는 듯 그의 손이 계속해서 음부를 때렸다. 사실 때린다는 말이 어색할 정도로 살살 치는 정도였지만 예민한 부위인 만큼 약한 자극도 크게 느껴졌다.
결국 어설프게 다리를 벌렸다. 그의 앞에서 스스로 다리를 활짝 벌리고 있자니 수치심에 얼굴이 붉어졌다. 어느새 카제프는 제 성기를 꺼내 놓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흉악스런 좆이 쿠퍼액을 흘려 가며 꺼떡거리고 있었다.
“손으로 허벅지 잡아.”
그가 단호하게 명령했다. 내가 머뭇거리자 오라버니는 자신의 성기로 갈라진 틈 사이를 비벼 왔다.
“좆 먹고 싶으면 얼른 잡지? 응?”
“아흐……, 흣.”
두터운 귀두와 울퉁불퉁한 기둥이 달아오른 음핵을 무심하게 건드렸다. 낯선 촉감에 절로 몸이 떨려 왔다.
결국 나는 스스로 허벅지 안쪽을 잡고 카제프 앞에 가감 없이 음부를 내보였다. 다물려 있던 살이 벌어져 음핵이 드러났다. 차가운 외부 공기가 속살에 닿자 더욱 예민하게 질구가 떨려 왔다.
카제프는 그 상태로 물끄러미 나를 관망했다. 자세가 너무 창피해서 고개를 옆으로 젖혔다. 그러자 그가 강제로 자신과 시선을 마주하게 만들었다.
“어딜 봐, 나를 봐야지.”
“하지만…….”
“네 구멍에 누구 좆이 들어가는지는 봐야 할 거 아니야.”
카제프가 귀두 끝을 이용해 뭉근하게 음핵을 비비기 시작했다. 천천히 원을 그리며 짓누르자 찌릿한 쾌감에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흣, 흐아, 아!”
질펀한 애액과 쿠퍼액이 섞여 미끌거렸다. 애달프게 만져 주는 그의 행동에 나도 모르게 애원하는 듯한 신음을 흘렸다.
“흐으, 으응……, 오라버니이…….”
어서 넣어 달라는 듯 연신 음액을 흘려 대며 질구를 그의 성기에 맞추려 했다. 그러자 내 의도를 눈치챈 카제프가 행동을 멈췄다. 그러고는 가만히 나를 바라봤다.
“하고 싶어?”
무심한 목소리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오라버니가 말했다.
“어떻게 해 줄까? 티아야.”
서늘하기 짝이 없는 시선으로 그가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시선이 처음처럼 마냥 차갑진 않았다.
“흑, 흐으……, 넣어 주세요…….”
“뭐를?”
“이거…….”
우물거리며 어설프게 그의 성기를 가리키자 카제프가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모르겠는데, 이거가 뭔지.”
그가 피식 웃으며 귀두로 음핵을 쓸어 올렸다. 기분 좋은 감각에 허리가 들썩이며 교성을 흘렸다.
“흐앙……, 아! 오, 오라버니, 오라버니 자지…… 흣, 넣어 주세요……!”
“다시 잘 말해야지. 응? 무엇을 어디에 어떻게 해 줘야 할까?”
카제프가 짓궂게 질구 주변을 귀두로 문지르며 속삭였다. 수치심에 시선을 피하고 싶었으나, 그가 강제로 내 뺨을 붙잡고 있는 탓에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결국 나는 카제프와 얼굴을 맞댄 채 말을 이을 수밖에 없었다.
“흐응……, 오, 오라버니, 자지, 흣, 티아, 구멍에……, 넣어 주세……!”
내가 말을 모두 마치기도 전에 두툼한 귀두가 질구를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엄청난 이물감에 놀라 내벽이 연신 그의 것을 조이며 바들바들 떨었다.
“흐, 흐아, 아……!”
“옳지, 잘 먹네. 티아, 넣어 주니 기다렸다는 듯 조이는구나.”
좁은 속살을 가르고 꾸역꾸역 뿌리 끝까지 밀어 넣은 그가 흡족하다는 듯 웃어 보였다. 구멍이 꽉 차다 못해 아랫배까지 치고 올라온 감각에 대답도 하지 못하고 앓는 소리만 흘렸다.
“흑, 흐으……, 으…….”
뜨거운 방망이가 그대로 꿰뚫고 들어온 감각에 시야가 흐릿했다. 자칫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아 허벅지를 벌린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울퉁불퉁한 오라버니의 성기가 천천히 뒤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꽉 채워진 듯했던 이물감이 점점 사라졌다. 잠시 안도의 한숨을 뱉은 순간, 다시금 그의 성기가 과격하게 끝까지 처박혔다.
“아흐, 아앙……!”
허리가 들썩이며 덜덜 떨렸다. 몸이 반으로 갈라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어찌나 거세게 밀고 들어오는지 목 끝까지 치고 오는 느낌이었다. 그는 그렇게 몇 번을 더 왕복했다. 빠르게 안쪽을 쑤시는 게 아닌 느릿하게 빼내었다 단 번에 처박기를 반복하는 움직임이었다.
“흑, 흐으……, 으으…….”
“네가 그리 벌리고 있으니 좆질하기도 편하고 좋아.”
카제프가 질 낮게 웃으며 내 허벅지를 두어 대 때렸다. 찰싹이는 소리와 함께 붉은 손자국이 남았다. 그의 손이 매섭게 나를 때리자 묘한 감각에 애액이 흘러내렸다. 그는 음핵을 위아래로 쓰다듬으며 천천히 제 것을 움직였다.
“아읏……, 흐, 흐아, 오라버니, 오라버니이…….”
조금만 더 빠르게 해 줬으면 좋겠는데, 나를 애태울 생각인 건지 도통 삽입에 속도를 붙이지 않았다. 애달픈 신음을 흘리며 그를 보채 봐도 여전했다.
“제, 제발, 제발…….”
결국 눈물 젖은 얼굴로 그에게 애원할 수밖에 없었다.
“빠, 빨리, 세게 박아 주세요, 흑, 흐으…….”
내 말에 카제프는 기다렸다는 듯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빨리 세게 박아 달라고?”
그가 야살스레 웃으며 되물었다.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발발 떨었다. 그러자 오라버니가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허릿짓에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흉악스런 성기가 빠르게 안쪽을 찌르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의 모양대로 고스란히 우둘투둘하게 내벽을 휘저으며 처박히는 게 황홀했다.
“흡, 흐아, 아아……!”
다리를 벌린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오라버니의 귀두가 약 올리듯 내벽을 살살 긁어 댔다. 깊은 곳을 푹, 푹, 쑤셔 주는 쾌감에 절로 눈물이 찔끔 새어 나왔다.
“아흣, 흐……, 으응……!”
몸이 들썩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검붉은 성기가 하얀 둔부 사이를 가르고 왕복하는 게 꽤나 외설적이었다. 쭉 뽑힌 자지가 몇 번을 처박히길 반복했다.
오라버니의 것이 들어올 때마다 아려 오는 쾌감에 결국 나는 젖은 신음을 흘리며 음탕한 애액을 질질 흘려 댔다. 질구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의 것을 원한다는 듯 연신 오물거렸다. 흥분한 듯한 오라버니의 손이 거세게 내 젖가슴을 주물렀다.
“흡, 흐아……, 아앙!”
유두를 비틀며 아래에선 묵직한 게 단 번에 속살을 비집고 들어오니 버티기 버거웠다. 입에선 쾌락에 잠식된 신음이 끊임없이 흘렀다.
나를 안고 있는 게 카제프인지, 하일인지, 카일인지 구분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아득했고 황홀했다. 시야는 흐릿했지만 아래를 홧홧하게 쑤셔 주는 쾌감만큼은 또렷했다.
힘겨운 나머지 벌리고 있던 다리에서 손을 떼고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그러자 오라버니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내 다리를 들어 자신의 어깨 위로 올렸다. 그가 나를 끌어안자 산뜻한 체향이 기분 좋게 에웠다.
“힘들어?”
침대 위에서의 카제프답지 않게 어딘지 다정한 목소리였다. 물론 아래는 전혀 다정하지 않았지만.
퍽, 퍽, 퍽.
찌걱이는 소리와 살과 살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그득했다. 하체가 녹아 없어질 것 같은 기분이다.
“흐으……, 응…….”
풀린 눈으로 애달픈 신음만 흘리며 더욱 그를 끌어안았다. 그러자 오라버니의 입꼬리가 묘하게 말려 올라갔다.
“오라비 좆을 이리 좋아해서야.”
비아냥대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런 말 말라는 뜻을 담아 살며시 눈을 뾰족하게 뜨자 카제프가 기분 좋게 웃어 보였다.
“뭐 누이에게 좆질하기 바쁜 건 나도 매한가지지만.”
그가 머리칼을 쓸어 넘기자 살짝 땀에 젖은 금발이 깔끔하게 뒤로 넘어갔다. 조각처럼 빚어진 얼굴이 무심하게 나를 내려다봤다.
‘와 씨, 얼굴…….’
이건 반칙이잖아.
나는 순간 홀린 듯 카제프를 보며 눈을 끔뻑였다. 보기 좋게 정돈된 눈썹과 날카롭게 째진 눈매. 그린 듯한 콧대와 턱선이 이질적이었다. 마치 인간이 아닌 것 같은 완벽함이었다.
“왜?”
그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내가 그렇게 잘생겼어?”
카제프는 마치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말했다. 나는 그 물음에 살며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잘생겼지……, 그것도 엄청…….’
차마 뱉을 수 없는 속마음을 삼켰다. 원작 소설에서마저도 종종 카제프의 얼굴을 감탄하는 묘사가 나왔었다. 남자 주인공인 황태자보다 잘생겼다는 표현도 서슴없이 적혀 있었다.
확실히 카제프는 움직이는 조각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멍하니 오라버니의 얼굴을 감상하고 있자 그가 다시금 느릿하게 허리를 움직였다.
“기분 좋네.”
“…….”
“티아가 그렇게 말해 주니까.”
“……네?”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의아하다는 듯 그를 바라봤으나 카제프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그저 욕정 그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어휴, 그 와중에 입술 좀 봐.’
키스하고 싶어지는 입술이 뭔지 알게 해 주는 것 같다. 무뚝뚝하게 내려간 입꼬리마저 잘생겼다. 속으로 연신 그의 외모를 감탄하며 평생 저 얼굴만 보고 살아도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순간이었다.
카제프의 입꼬리가 묘하게 말려 올라갔다. 그러고는 답지 않게 부드러이 입술을 비벼 왔다. 말캉하고 따뜻한 기분에 절로 눈이 감겼다.
“키스 하고 싶으면 해.”
오라버니는 나를 끌어안고 입을 맞춘 채 빠르게 허릿짓하기 시작했다. 그의 품 안에서 몸이 힘없이 흔들렸다.
“평생 내 얼굴 보고 싶으면 보고.”
카제프의 것이 깊숙한 내벽을 찌르고 들어옴과 동시에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머릿속에 번뜩였다. 아찔한 쾌감에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들어 억지로 그를 바라봤다.
이상했다. 분명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묘하게 기분 좋아 보이는 저 표정 그리고 내 머릿속을 읽은 듯한 말들.
“나는 언제나 곁에 있을 거니까.”
“흣, 흐으…….”
느른하게 풀어진 얼굴로 그가 말했다.
“본처가 아니어도 좋아.”
오라버니의 손이 세게 내 허벅지를 쥐었다. 그러고는 무식하게 제 것을 푹, 푹, 쑤셔 넣었다. 쾌감에 허리를 달달 떨며 그의 등을 끌어안았다.
“사랑해, 티아.”
오늘따라 유독 기분 좋아 보이는 그는 연신 내게 쪽쪽거리며 사랑을 속살거렸다.
‘우리가 이런 말을 주고받을 사이인가……?’
약간의 의구심이 들었지만, 아무렴 상관없었다.
카제프는 미남이니까.
* * *
“이상하네…….”
나는 물끄러미 창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하늘은 맑고 햇살은 따스했다. 그런데 정말 이상했다.
‘슬슬 카일에게서 답장 올 때가 됐는데…….’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던 카일의 전서구가 도통 깃털 하나 보이지 않는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걱정한 게 무색할 정도로, 부모님과 하일 그리고 오라버니께는 드문드문 편지를 보내는 모양이었다.
내게만 회신이 오고 있지 않았다.
혹시 전서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싶어 공적으로 사용인들을 통해 편지를 작성해 보내 보기도 했으나, 카일은 여전히 답이 없었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기에 의아했다.
‘바쁜가…….’
손에서 빙글빙글 펜을 돌리며 힘없이 책상에 늘어졌다.
카일이 없으니 집안 분위기도 묘하게 전과 달라졌다. 하일은 무슨 일인지 연신 황궁을 들락거렸고 부모님은 은퇴 준비로 꽤 바쁘신 모양이었다. 결국 비교적 한가한 건 카제프였고, 근래 가장 자주 마주치는 것도 카제프였다.
똑똑.
노크와 동시에 문이 열렸다.
“티아.”
나를 부르는 소리에 힐끔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카제프가 서 있었다.
“오라버니? 어쩐 일이세요?”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내 곁에 다가와 책상에 걸터앉았다.
“그냥, 오늘 일이 모두 끝나서.”
그러고는 다정한 손길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랑스럽다는 듯 부드럽게 매만지는 카제프의 손길이 싫지 않아서 그에게 머리를 맡긴 채 가만히 눈 감았다.
“사실 보고 싶어서 왔어.”
보고 싶어서 왔다는 낯간지러운 말에도 나는 그저 작게 웃을 뿐이었다. 이상하게 요즘 들어 기분이 울적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아마도 카일 때문일 거고.
‘나 읽씹 당한 건가.’
왜지? 설마 나도 너 좋다고 말해서 마음이 식었나? 쌍방 되니까 재미없어진 거야? 아니면 내가 지겹나?
끙, 앓는 소리를 내며 카제프의 손에 머리를 부비적거렸다.
“티아.”
“으음……, 네?”
“카일 때문에 그래?”
그가 귀신같이 알아채고는 내게 물었다.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카제프가 내 머리칼을 배배 꼬며 시무룩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티아는 카일을 참 좋아하는구나.”
“오라버니도 좋아요.”
“거짓말.”
“진짠데…….”
힐끔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사실상 오라버니를 싫어하는 게 더 힘들지 않을까요…….”
정말 저 얼굴은 남자들도 감탄하고 볼 거 같은데…….
카제프가 실없이 웃으며 내 뺨을 매만졌다.
“카일은 너무 걱정 마.”
“어……, 설마 혹시 다치거나 그런 건 아니죠?”
내 질문에 그가 머뭇거렸다.
“그런 건 아니야.”
“……그럼요? 무슨 일 있어요?”
“무슨 일……, 있다고 해야 하나.”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은 모양새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오라버니의 손을 잡았다.
“말해 주시면 안 돼요?”
그의 눈매가 가늘어지며 나를 훑었다.
“그렇게 부탁하니 조금 질투 나는데…….”
“제발요…….”
카제프가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쁜 일은 아니야. 오히려 좋은 소식에 가깝지.”
“무슨 일인데요?”
좋은 소식에 가깝다니. 왜 그 좋은 소식을 내게만 안 알려 줬단 말인가.
내심 뾰로통해지는 기분을 숨기고 오라버니를 보챘다.
“북부 출정을 마치고 조만간 돌아올 것 같아.”
“네……? 벌써요?”
“응, 생각보다 기간이 짧아졌어.”
“……왜요?”
왜지? 왜 이런 중요한 소식을 내게 알려 주지 않은 거지?
당황스러웠다. 북부 출정 기간이 짧아지다니, 이것보다 좋은 소식이 어디 있다고 내게만 아무 말도 해 주지 않는단 말인가. 혼란스럽다는 듯 눈을 데굴데굴 굴리자 카제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북부에서 마검을 찾은 모양이야.”
마검이라는 말에 당황하여 눈을 끔뻑였다. 내가 기억하기로 원작에서 카일은 마검을 찾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가 마검에 대해 편지에 언급했을 때도 크게 관심 갖지 않았는데, 마검이라니. 갑작스러웠다.
‘뭔가 이상해.’
내 표정이 어두워지자 카제프가 걱정스럽다는 듯 뺨을 매만졌다.
“티아, 얼굴색이 안 좋아.”
“아…….”
그는 내 표정이 어두운 이유가 카일 탓이라 생각했는지, 카일의 소식을 한 번 더 말해 줬다.
“걱정 마, 카일은 마검 덕분에 북부 일을 수월하게 끝낸 모양이야. 아마 그래서 바쁜 게 아닐까 싶어. 아니면 티아 너를 깜짝 놀래켜 주려 그런 걸 수도 있지.”
그가 아쉽다는 듯 웃었다.
“그러니 너무 우울해 마렴.”
마검. 약 오백 년 전, 한때 북부의 대제국 알타르를 한순간에 멸망시킨, 멸망자 카시아스가 사용하던 검. 그 검에는 카시아스의 모든 힘이 봉인되어 있다는 카더라 소문도 낭자했다. 하지만 원작에서는 카일도 황태자도 그 누구도 마검을 손에 넣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엔 카일이 마검을 찾았다니.
‘역시 원작과 달라도 너무 달라.’
이대로 괜찮은 걸까. 초조해졌다.
* * *
머지않아 수도에도 카일의 소식이 전해졌다. 황제는 이번 북부 출정 공을 높게 사 황실 훈장을 수여하며 귀환식을 열어 준다 하였고, 카일 또한 그것을 수락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이 모든 소식을 제삼자를 통해 들어야 했다.
“아가씨, 편지 왔어요!”
편지라는 말에 카일인가 싶어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겁지겁 하녀가 건네는 편지를 받아들고 발송인을 찾았다. 그런데 편지지에 발송인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다.
‘뭐야, 누구지?’
카일이 이름 없이 보낸 건가?
페이퍼 나이프로 깔끔하게 봉투를 뜯자 조그마한 편지지가 하나 톡, 떨어져 나왔다. 그런데 편지 내용이 조금 이상했다.
안녕하세요, 아르젠트 영애. 만나서 반가워요.
발신인은 자신이 누구인지도 밝히지 않고 일방적으로 편지를 적어 내려갔다.
하늘이 높고 화창한 날이네요.
일만 하기 아쉬운 날씨고요.
을씨년스럽던 장마비가 그치니 좋아요.
믿음직한 사람이 곁에 있어 든든하신가요?
지난주와 달리 이번 주는 날이 좋네요.
마음껏 날씨를 만끽하시길 바라요.
발송인도 없고,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도 없었다. 두서없이 날씨가 좋네요로 가득한 내용. 황당한 나머지 나는 미간을 구기고 편지지를 앞뒤로 팔랑팔랑 흔들었다. 혹여 종이에 숨겨진 무언가가 있나, 싶어 봉투까지 탈탈 털어 봤다. 그럼에도 나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뭐지……?’
그냥 넘기자니 찜찜한 기분에 편지를 전달한 하녀를 불렀다.
“이거 누가 가져온 거야? 발송인이 없는데?”
“엇, 그건 황궁 사용인이 가져온 편진데……. 겉면에 발송인이 없길래 중요한 편지인 줄 알았어요. 혹시 내용에도 발송인이 안 적혀 있나요?”
“응, 안 적혀 있어. 이상하네……, 정말 황궁 사용인이 보낸 것 맞아?”
“네, 분명 황궁 시종들이 차는 브로치를 차고 있었어요. 이상하네요, 황실에서 보낸 편진데 발신인이 없다니…….”
하녀 또한 의아하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풀리지 않는 의문에 물끄러미 편지지를 바라봤다.
‘황궁에서 대체 누가 내게 이런 편지를 보낸 거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스치고 지나가는 인물이 한 명 떠올랐다.
‘……설마 황태자?’
아무리 접점이 없다 해도 원래대로면 그는 나를 사랑했어야 하니까……, 설마 이런 식으로 내게 접근하는 건가? 하지만 지금은 약혼녀도 있는데 왜…….
머리가 복잡했다. 나는 황궁에 아는 지인도, 인맥도 없었다. 카일이나 카제프면 모를까 일개 양녀인 나와 이런 시답잖은 편지를 주고받을 황족 따위 없었다.
‘황태자라기엔 필체가 여자 같은데…….’
한참 편지지를 들여다보던 중,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편지 내용의 앞 글자들.
하늘이 높고 화창한 날이네요.
일만 하기 아쉬운 날씨고요.
을씨년스럽던 비가 그치니 좋아요.
믿음직한 사람이 곁에 있어 든든하신가요?
지난주와 달리 이번 주는 날이 좋네요.
마음껏 날씨를 만끽하시길 바라요.
하일을 믿지 마.
순간 나는 표정 관리를 하지 못했다. 심장이 바닥으로 쿵, 떨어지는 것만 같다. 시답잖은 편지의 진짜 내용. 그건 틀림없이 하일을 믿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누가 내게 이런 편지를……!’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그러자 하녀가 걱정스레 날 바라봤다.
“아가씨, 혹시 편지 내용이 불쾌하거나 문제가 있나요? 말씀 주시면 제가 신속히 처리하겠습니다.”
“……이거 발송인은 못 찾겠지?”
“아……, 그게, 아무래도 황궁에서 온 서신이다 보니 제 선에서는 어려울 거 같아요. 아무래도 후작님이나 마님께서 나서 주셔야 할 거 같은데…….”
누군가 명백한 의도를 담고 내게 편지를 보냈다. 당황스러웠다. 나는 곧바로 서랍에서 성냥을 꺼내 편지지에 불을 붙였다. 왠지 하일에게 이 편지를 들키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단순한 이간질?’
하지만 그런 장난을 치는 데 황궁 사용인을 보낸다고……?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은 한 번 더 일어났다.
* * *
카제프의 말대로 카일은 머지않아 수도로 돌아왔다.
조촐하게 가족들과 인사하며 떠났던 출정 때와 달리, 그는 온 제국민의 환호를 받으며 화려하게 귀환했다. 귀족 평민 할 것 없이 제국민이라면 카일이 돌아오는 것을 보기 위해 아침부터 길거리에 나와 있을 정도였다.
우리는 카일과 가족인 덕분에 황제가 마련한 자리에 앉아 편안하게 그를 기다릴 수 있었다.
수도 초입부터 황궁까지. 그를 위한 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어딘지 기분이 이상했다. 불안하고 초조했다. 어서 빨리 카일과 눈을 마주치고 그가 여느 때처럼 웃어 주는 모습을 봐야만 이 불안이 진정될 것 같았다.
얼마나 더 시간이 흘렀을까. 저 멀리서부터 큰 환호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카일이 수도에 들어선 모양이었다.
어마어마한 사람들의 함성 소리와 함께 내 심장도 쿵, 쿵 날뛰었다.
단순히 호감 있는 이성을 오랜만에 만나서? 아니, 그게 아니야.
이 감정은……, 분명 불안해서. 그런데 대체 뭐가……? 뭐가 불안한 거지?
나도 모르게 입술을 짓씹었다. 그러자 곁에 앉아 있던 하일이 만류했다.
“누이, 그러다 입술 상해요.”
하일과 눈을 마주하자 애써 잊고 있던 편지 내용도 떠올랐다. 현기증이 일 것 같았다. 몸이 절벽으로 추락하는 기분이다.
하일을 믿지 마.
황궁에서 온 편지. 황궁 사용인을 시켜 편지를 외부로 보낼 정도의 사람.
‘그렇다면 황족밖에 없을 텐데…….’
손이 불안으로 떨렸다. 그러자 내 손 위로 하일의 손이 다정하게 덮였다.
“누이, 왜 그래요. 응? 얼굴이 안 좋아요.”
“아니, 아니 괜찮아…….”
“불편하시면 잠시 들어가 계셔도 괜찮습니다. 혼자만 빠지기 조금 그러시면 저도 함께 빠질게요.”
다정한 목소리. 다정한 얼굴. 다정한 행동.
그럼에도 어딘지 뒷목이 서늘해졌다. 누군가의 시선이 우리에게 꽂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자리한 사람이 많아 누구의 시선인지 찾을 수 없었다. 나는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배가, 배가 조금 아픈 거 같아. 긴장해서……, 그런데 괜찮아. 카일 오는 건 보고 싶어.”
분명 카일이라면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가장 먼저 나를 찾아 줄 것이었다. 그리고 나와 눈을 맞추고 다른 이들은 모르게 나만을 위한 웃음을 지어 줄 게 틀림없다.
함성 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수많은 군마의 발굽 소리도 들려왔다.
찬찬히 고개를 들자, 저 멀리 카일의 모습이 보였다. 화려한 기사 제복을 입은 채 저를 닮은 검은 군마에 올라탄 용맹한 모습.
조금 다른 점이라면, 출정 전보다 분위기가 어딘지 고압적으로 변해 있었다. 척박한 북부에만 있어 그런 걸까, 표정도 조금 딱딱했고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그를 보니 반가움에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방금까지만 해도 몸을 뒤덮고 있던 불안감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카일…….’
다행이다. 혹시 다치면 어쩌나 했는데, 별일 없었구나……. 편지……, 그래 편지는 무슨 사정이 있어서 못 보낸 거였겠지.
카일의 망토가 바람에 흩날렸다. 수많은 기사를 이끌고 귀환하는 그의 모습은 꽤 멋있었다. 멀찍이 보이던 카일이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오랜만에 마주한 그의 얼굴을 샅샅이 살피며 그가 어서 빨리 나를 봐 주길 바랐다.
올곧게 정면만 바라보고 있던 카일의 시선이 드디어 내게로 향하기 시작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어서 귀환식을 마치고 카일과 모처럼 사랑 놀음에 빠지고 싶었다.
피처럼 붉은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우리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카일과 눈을 마주치자 나도 모르게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그려졌다. 반가움에 나는 그를 향해 작게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카일은 무미건조하게 나를 바라보더니 몇 초 채 지나지 않아 내게 던졌던 시선을 거뒀다. 그러고는 곧바로 황제를 향해 다가갔다. 군마에서 내린 그는 황제에게 무릎 꿇었다. 그러자 황제는 묵직한 금으로 만들어진 훈장을 그에게 하사했다.
분명 짧은 시간에 불과했음에도,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뭐지? 방금 눈 마주치지 않았나……?’
손이 덜덜 떨렸다. 아무리 곱씹어 봐도 이건 명백한 무시였다. 카일은 분명 나와 눈이 마주쳤고, 내가 손을 흔드는 것도 봤다.
‘그런데 왜 나를 무시한 거지?’
단순히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써서? 아니, 고작 그런 이유로 카일이 나를 무시할 리 없다. 나는 바보 같은 얼굴로 카일을 바라봤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늘 살갑던 눈웃음이나 미소 따위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의 카일에게선 미묘하게 낯선 기운이 풍겨졌다.
‘단순히 기분 탓이 아니야…….’
나도 모르게 주먹 쥔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불안이 현실이 되어 닥쳐오기 시작했다.
* * *
짧게 귀환식을 마친 카일은 곧바로 저택으로 돌아왔다. 부모님은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카일을 끌어안고 무사해서 다행이라며 그를 환영했다. 카제프와 하일도 마찬가지였다.
다정한 부모님과 형제들의 모습에 카일은 그제야 잔잔한 미소를 그리며 환영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카일은 여전히 내게 아무런 시선도 보내지 않았다. 나는 혼자 덩그러니 동떨어져 카일을 환영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바라봐야만 했다.
‘아까부터 소외받는 기분…….’
마치 나를 투명 인간 취급하는 느낌이었다.
‘설마 정말 내가 싫어진 건가……?’
나와 더 이상 이전 같은 관계를 이어 가길 원치 않아서?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가족인데……, 가족끼리 인사 정도는 할 수 있잖아.
서러운 기분에 입술을 짓씹었다. 그러다 용기 내서 카일을 향해 어색하게 손을 뻗었다.
“……카일.”
그의 이름을 입에 담자 그제야 카일이 나를 돌아봤다. 카일과 눈이 마주친 순간 나는 한 번 더 배시시 웃으며 살며시 손을 흔들었다. 그런 나를 본 카일은 미간을 좁혔다.
반가움에 환한 표정을 짓고 있던 나와 사뭇 대조적인 반응이었다.
“잘 다녀왔어……?”
애써 불안감을 죽이고 태연하게 물었다. 그러다 문득 카일의 허리춤에 채워진 새카만 검이 눈에 들어왔다.
‘저게 마검인가…….’
내 물음에도 카일은 대답이 없었다. 순식간에 분위기는 냉수를 끼얹은 듯 어색해졌다. 카제프와 하일도 아무 대답 없는 카일의 반응이 낯설었는지 제법 당황한 눈치였다.
카일은 뚫어지게 나를 바라봤다. 그와 눈을 마주하고 있자니, 일 초가 한 시간처럼 느리게 흘렀다. 마른침이 절로 삼켜졌다. 입 안이 버썩 마르는 기분이었다. 결국 나는 어색함을 참지 못하고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저기 카일……?”
내가 다시금 그를 부르자 카일은 불쾌하다는 듯 노골적으로 헛웃음을 뱉었다. 오랜 침묵 끝에 카일이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아까부터 알짱대는 저건 뭐야?”
-다음 권에 계속
Rêve 그들이 사랑하는 방식 1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