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카제프 아르젠트
카제프 아르젠트.
사실 그에게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비밀이 한 가지 존재했다.
바로 사랑하는 사람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것.
원래 이 능력은 아르젠트 혈통의 고유 속성 중 하나였는데, 삼백 년 전이던가 이백 년 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발현하지 않아 기록 속으로 사라진 능력이었다.
그런데 그 능력이 카제프에게서 나타났다.
비록 과거만큼 능력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는 없었지만, 이따금씩 사랑하는 사람과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으면 그 사람의 속마음이 들려오곤 했다.
그가 처음 이 사실을 깨닫게 된 건 정확히 29살 때였다.
29살이 되도록 사랑하는 사람 한 명 없었다니. 그 사실 자체로도 놀라울 따름이지만 그것보다 더 놀라운 건 능력의 발현자가 제 여동생이라는 점이다.
성년식에 참석하기 위해 화려한 드레스를 차려 입은 티아가 너무나 아름다워 저도 모르게 넋을 놓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을 무렵이었다. 천사 같던 그녀가 화려한 드레스 자락을 휘날리며 몸을 틀었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음에도 똑 닮은 그녀와 카제프가 눈이 마주친 그 찰나의 순간.
-와씨, 저 인간은 오늘도 존나 잘생겼네.
카제프의 머릿속에 티아의 목소리가 웅웅 울려 왔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놀란 그가 눈을 크게 뜨고 티아를 바라봤으나, 그녀의 입은 새초롬하게 다물려 있었다.
처음 겪는 일에 화들짝 놀란 카제프는 답지 않게 뒷걸음질을 치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날은 언제나 완벽한 후계자의 모습만 보여 오던 그가 처음으로 티아 앞에서 우스꽝스럽게 넘어진 날이기도 했다.
카제프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르젠트 혈통의 고유 능력.
아주 오래전, 기록 속으로 사라진 그 능력이 자신에게 발현했다는 사실을.
그 후로도 티아를 마주칠 때면 멋대로 그녀의 속마음이 들려오고는 했다. 아니 처음엔 이게 티아의 속마음이 맞는 건가 의심했다.
왜냐고?
-아, 섹스 하고 싶다.
이따금씩 그녀에게서 들려오는 속마음은 대부분 이런 말이 전부였으니까.
섹스. 고작 19살밖에 되지 않은 여동생 머릿속에서 들려올 생각은 아니었다. 아니, 그래. 생각쯤이야 할 수 있다.
‘그런데 대체 왜…….’
항상 섹스 타령밖에 안 하는 거지? 머릿속에 섹스밖에 안 들었나?
파도처럼 찰랑이는 백금발과 토파즈를 빼다 박은 듯한 벽안. 저리도 순수하고 여려 보이는 그녀에게서 들려오는 말은 언제나 ‘섹스’다.
당황한 카제프는 놀란 마음을 달래며 아무렇지 않은 척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티아.”
“네, 오라버니.”
그러자 그녀는 언제 그런 불순한 생각을 했냐는 듯, 순진무구한 얼굴로 배시시 웃으며 카제프를 돌아봤다. 사랑스러운 반달형 눈매와 그 위로 드리운 속눈썹이 어여뻤다. 카제프는 저도 모르게 숨을 헉, 들이마셨다. 그러나 역시나 이번에도 그녀에게서는 믿을 수 없는 속마음이 들려왔다.
-아, 이런 애랑 섹스 한 번 해 봤으면.
머리를 웅웅 울리는 소리에 그가 미간을 좁혔다. 믿을 수 없었다. 어찌 저리 순수한 얼굴로…….
‘정말 날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고?’
카제프의 눈빛이 떨렸다. 혼란과 당황 그리고 어쩌면 그녀도 자신과 같은 마음일 거라는 작은 기대.
물론 그 기대가 깨지는 건 아주 빨랐다.
“누나, 산책 갈래?”
티아는 자신뿐만 아니라 카일 그리고 하일을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으니까.
-아, 제발 섹스. 섹스하고 싶다. 섹스섹스섹스.
“응, 갈래!”
음험한 속내와 달리 티아는 천진하게 웃으며 카일과 쪼르르, 정원 산책을 나갔다.
확실히 제 그녀는 조금 특이했다.
그러니까……, 보통 귀족 영애들은 하지 않을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처음엔 믿지 못했던 카제프도,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믿을 수 있었다. 이게 정말 그녀의 속마음이라는 걸.
* * *
카제프가 처음 티아를 마주했을 때, 티아 나이 고작 7살. 카제프 나이 17살이었다.
그때는 카제프도 아직 성인식조차 치르지 않은 풋풋한 소년이었다. 17년간 없던 여동생이 갑자기 생겼으니 당황할 법도 했으나, 그는 무덤덤했다.
티아가 평민 출신이든 아니든 크게 상관하지 않았고, 남자들만 바글바글한 후작가에서 제 후계를 위협하지 않고 어머니의 적적함을 달래 줄 여자아이라면 아무래도 상관없었기 때문에 번거롭게 그녀를 견제하며 쓸데없이 감정 소모 하지도 않았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카제프는 사실 티아를 카일과 하일처럼 가족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17살이면 알 거 다 알고, 자랄 만큼 다 자란, 성인을 앞둔 나이였다. 그 나이에 생긴 7살짜리 여동생을 ‘진짜’ 가족으로 받아들인다는 건 꽤 어려운 문제였다.
어차피 저택은 넓었고, 자신은 바빴다. 장차 아르젠트 후작가를 이끌어갈 그였으니 한가한 게 더 이상하리라. 이따금씩 식사 시간에 마주치는 것 외에는 딱히 그녀를 마주할 일이 없었다.
그러나 데면데면한 사이의 저와 달리 티아는 카일 그리고 하일과 금방 친해졌다. 셋이 함께 간식을 먹고, 정원을 뛰어노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으니까.
어린아이가 신데렐라처럼 하루아침에 귀족 영애가 되었으니, 으스대거나 무언가에 욕심을 내기 시작할 법도 한데, 듣자 하니 그러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녀는 후작가에서 알게 모르게 꽤 사랑받게 되었다.
후작 부인에게도 후작에게도 카일과 하일에게도. 유일하게 카제프와 티아의 사이만 서먹했다. 열 살이라는 나이 차이의 벽은 상당히 높았다.
친해질 틈도 없었다. 카제프는 바빴고, 시간은 빠르게 흘렀으니까.
제 허리께까지밖에 안 오던 작은 여동생은 어느새 소녀가 되어 있었고, 처음부터 그녀를 가족으로 보지 않았던 카제프는 점점 여인이 되어 가는 티아를 보며 그녀를 더욱더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일부러 선을 그었다.
다정하게 대하되, 정을 주지 않았고, 최소한 챙겨 줄 건 챙겨 주되, 후작 영애로서 누려야 할 것 이상은 챙겨 주지 않았다.
적당한 영애를 만나 혼인 한 뒤 가문을 물려받고, 그녀 또한 적당한 영식을 만나 출가하게 되면 자연히 멀어질 사이라 생각했다.
완전히 잘못된 판단인 줄도 모르고.
27살 무렵, 카제프는 직접 영지를 관리하기 위해, 아르젠트 후작의 명으로 이 년 가까이 저택을 떠난 적이 있었다.
그게 화근이었다.
분명 떠나기 전엔 앳된 아이와 소녀 사이 그 어딘가에 있던 티아가 다녀오고 나니 완연한 여인으로 거듭나 있었다.
이 년 만에 마주한 제 여동생을 본 순간 카제프는 확신했다.
그녀와 자신은 결단코 남매가 될 수 없다는 걸.
“오라버니!”
이제 막 데뷔탕트를 치른 티아가 저처럼 빛나는 드레스를 입고 산뜻하게 웃어 보인다.
“이 년 동안 많이 바쁘셨어요?”
“아…….”
“편지 한 통 안 보내시고, 섭섭해요.”
분명 예의상 겉치레로 하는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저를 보며 환히 웃는 그녀를 보니 얼굴이 붉게 달아오를 것만 같았다. 아니 어쩌면 이미 발갛게 물들었을지도 모른다.
저와 똑 닮은 백금발도, 말간 벽안도. 너무나 아름다워 그게 그렇게 탐스러울 수가 없다.
카제프는 입술을 짓씹었다.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이 티아를 보며 애정을 느낀다는 사실을.
그저 한순간의 불장난이리라, 잠시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리라. 그렇게 생각하고 넘겨짚으려 했다. 그 장면만 목격하지 않았더라면.
“어머, 오늘 티아가 삼을 안 먹었네.”
후작 부인이 잊고 있던 것을 떠올렸다는 듯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녀는 하녀를 불러 푹 달인 동양의 삼 한 컵을 티아에게 가져다주라며 명령했고, 곁에 있던 카제프는 무슨 충동이었는지 하녀의 손에 들린 삼을 앗아 왔다.
“내가 가지.”
“도, 도련님. 어찌 도련님께서 한낱 심부름을……, 제가 하겠습니다.”
“되었다. 내 오랜만에 티아와 담소라도 나눌 겸 가는 것이니.”
거짓이었다. 이 야심한 밤에 담소는 무슨. 그저 이런 핑계로 얼굴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을 뿐이다. 카제프와 티아는 식사 시간이 아니면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으니까.
분명 이 감정을 끊어 내야 하는데, 더 커지기 전에 쳐 내야 하는데. 알면서도 계속해서 집 안에서 마주치니 영 쉽지 않았다.
기껏 마음을 다잡았다 싶으면, 그녀는 꿀처럼 달콤하고도 부드럽게 저를 향해 웃어 보인다.
카제프가 빠르게 머리를 털어 내며 발을 놀렸다.
‘계속 마주치다 보면 질리겠지.’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애써 부정하면서.
* * *
티아의 방문 앞에 선 카제프는 한참 고민했다.
노크할까,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갈까. 아무리 가족이래도 노크가 예의겠지. 그런데 카일은 그냥 들어가는 것 같던데…….
‘역시 노크하자.’
생각을 마친 그가 주먹을 굳게 쥐고 방문을 두들기려는 찰나였다.
“흣…….”
방 안에서 옅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싶어 카제프의 눈이 크게 뜨였다.
“티, 티아?”
그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혹시 어디 아픈 건가? 방에서 넘어지기라도 했나? 가구 모서리에 어디 찧기라도 했나?
수십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웅웅 울렸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카제프가 발만 동동 구르던 순간.
“아응…….”
한 번 더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 소리를 들은 카제프의 심장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이건 아픈 사람이 낼 법한 신음이 아니었다. 7살배기 어린아이가 아닌 이상 그 신음의 원인이 무엇인지 눈치채는 건 어렵지 않았다. 카제프는 문 앞에 그대로 굳어 버렸다. 심장이 쿵쿵 요동쳤고, 머릿속은 새하얘졌다.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정신 차렸을 땐, 이미 자신도 모르게 티아의 방문에 귀를 가져다 대고 신음 소리를 듣고 있었다. 제 앞섶은 안에서 들려오는 신음에 발정하여 부푼 지 오래였다.
멍하니 그녀의 신음 소리를 듣던 카제프는 용기 내어 방문을 살짝 열었다. 일부러 티아가 알아채지 못하도록 온 신경을 다해 아주 조심조심 살살.
살짝 열린 방문 틈 사이로 한쪽 눈을 가져다 대자 아슬아슬하게 티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작고 보드라워 보이는 여체. 새하얀 몸에 색정적인 붉은 속살.
언제나 순진무구하게 웃기만 했던 티아는 요부처럼 다리를 벌리고 누워, 스스로의 음핵을 문지르는 데 여념이 없었다.
“흐응, 흣…….”
심장이 요동쳤다. 당장 문을 열고 들어가 저 가녀린 몸을 끌어안고 조그마한 구멍에 제 것을 가득 밀어 넣고 싶었다. 이대로 이성을 놓고 싶어졌다. 자칫 긴장을 풀기라도 한다면 모든 걸 내버린 채, 발정 난 종마처럼 그녀에게 달려가 좆을 들이밀고 있을 것만 같다.
위험했다. 이건 정말 위험하다.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카제프가 입 안의 여린 살을 세게 깨물며, 가까스로 정신을 붙잡았다.
‘정신 차리자.’
만약 지금 티아와 가족으로서의 선을 넘는다면, 그렇다면 정말 끝장이니까. 지금처럼 자상한 오라비 연기도 못하게 되니까.
‘두 번 다시 웃는 얼굴을 못 볼지도 몰라.’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평생 다정한 오라비로 남더라도, 평생 제 마음 한 번 표현하지 못하더라도 좋았다. 고작 한순간의 실수로 지금 이 관계마저 깨지는 게 가장 두려웠다.
결국 카제프는 떨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떼어 가며 가까스로 제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돌아오자마자 곧장 문을 잠그고 다급하게 바지 버클을 풀었다. 그러자 두툼한 성기가 기다렸다는 듯 모습을 드러냈다. 귀두 끝에 듬뿍 맺힌 쿠퍼액 탓에 선단이 번들거렸다.
“후우…….”
그의 입에서 느른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음욕이 가득 묻은 질척한 숨결이었다. 큼직한 손으로 핏대가 잔뜩 오른 기둥을 슥슥 쓸어내리자, 홀로 음핵을 문지르던 티아의 모습이 눈앞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티아, 티아…….”
맨살을 문지르는 소리와 함께 성기가 더욱 팽창하기 시작했다. 선연한 핏줄이 기둥에 흉측할 만큼 돋아났고, 두툼한 귀두는 당장에라도 사정할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언제나 냉철하고 완벽했던 카제프의 얼굴은 제 누이를 향한 정염으로 잔뜩 더럽혀져 있었다.
낮은 한숨이 입술을 비집고 새어 나왔다. 피곤함에 살짝 갈라진 탁한 한숨조차 발정 난 짐승의 것처럼 색스럽기 그지없었다.
만약, 만약 아까 그 상황에서 이성을 놓고 그녀의 방에 들어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들어가 아직 다 여물지 않은 젖가슴을 손에 쥐고, 애달프게 스스로 문지르던 음핵을 비벼 주면, 그럼 너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내게 매달릴까, 나를 밀어낼까.’
그 작은 몸덩이가 제 품에 안겨 할딱이는 걸 보고 싶었다. 아직 한 번도 성기를 받아 본 적 없을 그 좁은 구멍에 제 귀두를 들이밀고, 뜨거운 속살을 마음껏 탐하면 얼마나 황홀할까.
좆이 들락거리면 그 작은 구멍은 움찔거리며 야한 액을 흘릴 게 뻔했다. 그 구멍에 난잡하게 자지를 쑤셔 대고 싶다. 앙증맞은 입에서 울음 섞인 교성이 토해질 정도로, 옴짝달싹 할 수 없게 제 품에 옭아매고 마음껏 좆을 흔들다 그 안에 파정하고 싶다.
카제프는 홀로 망상하며 상상 속에서 멋대로 그녀를 범했다. 상상 속의 티아는 오롯이 카제프의 것이었다.
아아, 그래. 내가 하루빨리 가문을 물려받아 너를 그 누구에게도 보내지 않으면 되겠구나. 영영 곁에 가두고 나와 함께하게 만들면 되겠구나.
“큿…….”
옅은 신음과 동시에 검붉은 페니스 끝에서 사정없이 액이 튀어나왔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카제프는 배부른 사자처럼, 여유로이 웃었다. 그의 벽안이 선득하게 빛났다.
그리고 그다음 날이 바로 아르젠트의 능력이 발현된 첫날이었다.
* * *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건 편리했다. 물론 대를 거듭하며 옅어진 아르젠트의 피는 티아의 모든 생각을 다 알려 주진 않았지만, 이따금씩 들려오는 속마음만으로도 카제프는 만족했다. 그 능력을 이용해 편하게 그녀에게 다정한 오라비 연기를 할 수 있었으니까.
-와, 오늘 스테이크 엄청 맛있다. 한 접시 더 먹고 싶어.
모처럼 들려온 티아의 속마음에 힐끔 그녀를 바라보자, 마지막 한 조각 남은 스테이크 조각을 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카제프가 제 속마음을 숨긴 채 부드러이 미소를 그렸다. 그리고 그녀에게 말했다.
“티아, 밥 좀 잘 챙겨 먹어야겠구나.”
“앗, 왜요? 저 살 빠졌어요?”
“많이 야위어 보여. 스테이크라도 한 접시 더 먹거라.”
그러고는 자연스레 주방장을 불러 티아에게 두툼한 샤토 브리앙 스테이크를 한 접시 더 건네주었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 그런 티아를 볼 때면 뿌듯함에 자신까지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하지만 능력에 항상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섹스하고 싶다.
-자기 전에 자위나 한 번 하고 잘까.
-아, 이 동네는 무슨 딜도를 안 팔아.
-손가락으로 쑤시는 건 감흥도 없는데…….
종종 티아의 속마음이라고 차마 믿을 수 없는 이런 음탕한 속마음이 악마의 속삭임처럼 귓가에 울리곤 했으니까.
이런 내용의 생각이 들려올 때면 카제프는 제 능력을 의심했다. 혹여 아르젠트의 피가 옅어지며 생긴 오류는 아닌지, 저게 정말 티아가 하는 생각이 맞는지, 전달 과정에서 무언가 오류가 생긴 건 아닌지.
계속해서 의심했다. 자신 앞에서 티아는 언제나 순수하고 여린 여동생이었기에.
* * *
능력이 발현한 지도 어느덧 이 년이 훌쩍 지났다.
이 년이라는 기간 동안 카제프는 제 능력에 완전히 적응했고,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는 섹스, 섹스 따위의 진위 여부를 알 수 없는 그녀의 속마음에도 익숙해졌다.
카제프는 어느덧 31살이 되었고, 티아는 21살이 되었다.
후작 부부는 하루빨리 은퇴하여 남부의 휴양지에서 평화로운 삶을 살고 싶어 했고,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카제프가 아르젠트 후작이 될 것이었다.
후작위를 물려받는 대로 그는 곧장 티아의 혼담을 모두 막을 것이라 다짐하며 책상에 앉아 펜만 데굴데굴 돌렸다. 시도 때도 없이 티아의 얼굴이 떠올라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과거에는 그저 후작가의 장남으로 태어나 물 흐르듯 당연한 수순처럼 후계를 물려받아야 했다면, 지금은 오롯이 티아를 제 곁에 두기 위해 후계를 물려받으려 안달이었다. 후작이 무슨 일 있냐며, 왜 이리 조급해하냐 물을 만큼.
그래도 조금만 더 기다린다면, 조금만 더 시간이 흘러 저가 후작이 된다면 그렇다면 티아를 그 어디에도 보내지 않을 수 있었다.
그녀를 곁에 두기 위한 완벽한 계획이었다. 빌어먹을 동생들이 끼어들기 전까지는.
정말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었다.
평소처럼 아침을 먹으러 다이닝 룸으로 향했고, 어느 때와 다를 바 없이 가족들은 단란하게 앉아 아침을 들었다.
“티아, 오늘따라 안색이 좋지 않구나.”
“조금 피곤해서 그런가 봐요.”
티아의 속마음이 들려오기 전까지는 평범하기 그지없던 없던 아침.
“어머니, 누이께 보약이라도 지어 드리는 건 어떻습니까.”
“맞아, 요즘 누나 몸이 좀 허약한 것 같아.”
하일과 카일이 후작 부인에게 티아의 보약을 권한 순간이었다.
-참나, 누구 때문에 몸이 허약해졌는데.
-으, 어젯밤에 얼마나 해 댄 거야. 온몸이 욱신거려 죽겠네.
언제나처럼 티아의 생각이 들려왔고, 그 생각을 들은 카제프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어젯밤? 하다니, 뭐를? 온몸이 왜?’
핏기가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뒷목이 서늘해지며 쎄한 기분이 들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설마, 아니야, 아닐 거야, 말도 안 돼.’
당장이라도 벌떡 일어나 어젯밤 무슨 일이 있던 거냐 캐묻고 싶었다. 입 안 여린 살을 깨물며 가까스로 울렁이는 분노를 눌러 삼켰다. 그리고 커피 대신 냉수를 들이켰다. 왜인지 티아는 오늘따라 꽤 피곤해 보였다.
“티아, 혹시 무슨 근심이나 걱정 있는 건 아니고?”
일부러 떠보듯 물었다. 그러자 티아가 살짝 웃으며 선을 그었다.
“그런 것 없어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해요, 오라버니.”
마치 더 이상 캐묻지 말라는 듯한 태도.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 * *
제 동생들과 티아. 셋이 대체 무슨 짓을 했을까. 그것도 밤에.
집무실에 틀어박힌 카제프는 분노에 잠긴 몸을 삭히기 위해 명상도 해 보고, 독서도 시도했다.
그러나 효과는 없었다. 눈을 감아도, 눈을 감지 않아도 그 둘이 티아를 겁탈하는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괴로웠다. 잠도 오지 않았다. 결국 그는 뜬눈으로 밤을 샜다.
탁한 집무실 공기 때문일까. 바깥 공기를 쐬면 조금 나아질까.
정원 산책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카제프는 잠을 자지 못해 퀭한 눈으로 집무실을 나섰다. 그런데 분명 산책을 하러 나온 건데, 어느새 발은 티아의 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엔 이미 먼저 와 있는 손님이 있었다.
이 시간에 열릴 일 없을 티아의 방문이 열리고……, 그곳에서 나온 건 카일이었다.
순간 카제프가 험악하게 인상을 구겼다.
‘이 시간에 카일이 왜?’
아니야, 우선 침착하자. 괜찮아, 어차피 내 동생들이니까. 다른 남자도 아니고 카일과 하일이잖아.
카제프는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어떻게든 이 더러운 기분을 떨쳐 내려 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카일은 티아의 방을 나서자마자 근처에 있던 하일과 무언가를 숙덕거리는 듯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해 짜증만 치밀었다.
“어딜 다녀오는 게냐.”
그래서였을까. 답지 않게 동생들 틈에 끼어들었다. 그리고 집요하게 둘을 살폈다.
대체 티아에게 무슨 짓을 한 건지, 어째서 이른 아침부터 티아의 방에서 나온 건지.
그래,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티아는 둘이 관계를 요구한다면 거절할 아이가 아니었다. 오랜 세월 그녀의 속마음을 들어온 카제프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31년 인생 처음이었다. 스스로가 이렇게 감정적인 사내라 생각한 것은.
* * *
카제프의 예상대로 티아는 둘과의 관계를 즐겼다. 이따금씩 들려오는 티아의 속마음은 대부분 카일, 하일과 연관되어 있었기에 모르려야 모를 수 없었다.
-어휴, 하일 잘생긴 거 봐.
-나는 운도 좋지, 어떻게 이런 꽃돌이 둘을 끼고 쓰리썸을 했을까.
차라리 안 들렸으면 좋겠다고, 능력을 원망하기도 했다. 사랑하는 여인이 다른 남자와의 관계를 즐기는 것 따위 알고 싶지 않았다.
그녀를 사랑스럽다는 듯 보는 동생들도, 그 시선에 익숙하다는 듯 웃고 있는 티아도. 모두 보고 싶지 않았다. 괴로웠다. 마치 실연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궁상맞게 뭐 하는 짓이야. 애당초 티아와 이렇다 할 접점도 없었으면서.’
카제프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차라리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저 둘과 남매라는 관계에 대한 거부감 없이 몸을 섞었다면 내게도 기회가 있는 거니까.
카제프는 다짐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잘 보이기로 마음먹었다. 비록 여태까지는 서먹한 관계였지만, 자신이 노력하면 카일과 하일처럼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티아는 잘생긴 남자를 좋아하니까.’
내게도 승산은 있어.
그날 후로 카제프는 어쭙잖게 티아의 근처를 맴돌았다. 먼저 말이라도 걸어 볼까 싶어 그녀의 방 근처를 서성이기도 했고, 정원 산책 하는 그녀와 자연스럽게 마주친 척이라도 하려고 하루 온종일 정원을 돌아다닌 적도 있었다.
물론 전부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러고 보니 탄신 연회 드레스가 왔다고 들었는데.’
드레스를 빌미로 말이라도 걸어 보자.
그렇게 용기 내서 간 티아의 드레스 룸은 휑했다. 드레스만 고스란히 걸려 있었고, 인기척은 남아 있으나 사람은 없었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리고 드레스 룸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하일의 방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었다. 이성이 마비된 사람처럼, 곧장 하일의 방으로 내달렸다.
* * *
하일의 방문을 연 순간, 카제프는 난생처음 충격이 온몸을 뒤덮는 것을 느꼈다. 짐승이나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가녀린 티아를 범하는 둘을 본 순간 파도처럼 분노가 밀려왔다.
“너희 지금 뭐 하는 게냐.”
자신조차 놀랄 만큼 분노로 가득 찬 목소리가 뱉어졌다.
“흑, 흐으… 히끅, 흡…….”
카일의 성기가 투명한 액을 늘어트리며, 티아의 선홍빛 구멍에서 빠져나왔다. 팔뚝만 한 페니스에 얼마나 괴롭힘을 당한 건지 구멍은 붉게 여물어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그 모습을 본 순간 카일이 소드 마스터라는 사실도 잊고, 그대로 그에게 주먹을 갈겼다. 능숙하게 피할 수 있었을 것임에도 카일은 피하지 않았다. 주먹질에 카일의 입술에서 피가 흘렀다.
“카, 카일……!”
그러자 돌아온 건 티아의 걱정 섞인 목소리였다. 최악이었다. 이래서야 마치 자신이 악역 같지 않은가.
-어쩌지, 어떡하지. 카일 피 나잖아.
하필 이럴 때 이따위 속마음이 들려온다.
카제프는 제 얼굴을 쓸어 내리며 마른세수했다. 쿵쾅이는 심장을 달래 보려 애를 써 봐도 달래지지 않았다. 동생들의 정액과 눈물로 범벅이 된 그녀를 보는 건 생각보다 더 기분이 최악이었다.
“미쳤군, 미쳐도 제대로 미쳤어!”
이따금씩 들려오는 티아의 속마음을 통해 막연히 그들과 관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 마주하니 그 여파가 너무나도 컸다.
“아, 미안, 미안.”
능구렁이 같은 목소리가 귓가에 들어박혔다.
“하?”
“새 드레스 입은 누나가 너무 꼴리는데 어떡해. 왜, 형님도 같이 먹고 싶었어?”
천박한 말투, 마치 자신이 티아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서 조롱하는 듯한 웃음.
“왜, 씨발. 어차피 저거 양녀 아니야? 피도 안 섞였겠다, 공짜로 먹여 주고 재워 주고 키워 준 거 내가 좆집으로라도 쓰겠다는데 뭐가 문제야.”
더 이상 날려 보낼 이성도 없다 생각했는데, 티아를 좆집이라 폄하하는 카일을 보니 정말 모든 이성을 놓아 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그렇게 못 안아서 안달이 났던 티아였는데, 네가 어떻게 감히 그녀를 좆집 따위의 말로 폄하할 수 있단 말인가.
카제프가 주먹을 세게 쥐었다.
-저거 지금 진심이야?
-나를 무슨 성노예 보듯 보고 있던 거였어……?
곧이어 들려온 티아의 속마음도 절망으로 가득했다. 충격받은 게 틀림없는 그녀를 보며 카제프가 입술을 짓씹었다.
아, 너희 사이가 질투 나긴 했지만 이런 걸 바란 게 아니었는데. 네가 상처받길 바란 적은 없었는데.
쓰레기 같은 소리를 내뱉는 카일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 카제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충격으로 굳어진 티아였다.
“티아, 괜찮니?”
카제프는 곧장 그녀를 품에 안았다. 그러자 티아가 카제프의 품으로 파고들어 갔다.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괴로웠다. 티아가 우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왜, 이제 형님이 먹게?”
“……뭐?”
“뭐 형제끼리 돌려 먹는 거야 괜찮지. 근데 먹고 꼭 제때 돌려줘. 형님 때문에 흥이 깨져서 지금 내 기분이 썩 유쾌하진 않거든.”
그 말을 마지막으로 카제프는 정말 이성을 놓았다. 그리고 발길질, 주먹질 가릴 것 없이 카일에게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행사했다.
31년 인생, 처음이었다.
이런 분노도, 슬픔도, 괴로움도.
“형님, 진정하세요!”
어느 틈에 티아를 방으로 돌려보내고 온 건지, 하일은 카일을 두들겨 패는 카제프를 말렸다.
“너희가 어떻게 티아를……, 어떻게 티아를……!”
하일의 만류를 뿌리치며 카제프가 신경질적으로 커피 테이블을 걷어찼다. 테이블이 볼품없이 구석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카일이 이죽거리며 더욱 그를 도발하려 들자, 하일은 다급하게 둘 사이를 중재했다.
“제발 진정하세요, 형님도, 카일 너도.”
카제프의 손찌검이 잦아들자 카일은 입가에 그득한 피를 닦아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잠시 저희 셋이 얘기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 * *
한차례 상황이 정리되자 하일은 길쭉한 다리를 꼬고 앉아 조금은 거만한 태도로 카제프를 마주했다. 그 자세가 건방지다 느낄 법도 했으나, 하일 특유의 자세였기에 카제프는 익숙했다.
“형님께서도 누이를 좋아하지 않으십니까. 가족으로서가 아닌 이성으로서.”
“지금 그게 무슨 헛소리……!”
제 말을 부정하자 하일이 흐응, 콧소리를 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습니까? 그럼 어머니께 가서 말씀하세요. 우리가 누이를 강제로 겁탈하였다고, 아우들이 누이만 보면 발정난 개새끼마냥 좆대가리 세우고 달려들어 한 집에 함께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이런 미친…….”
“못 하실 것 같습니까? 그럼 제가 가서 말씀드리고 올까요?”
카제프는 눈앞의 제 아우가 무슨 생각으로 제게 저런 말을 건네는지 종잡을 수 없었다.
“아니면 일부러 어머니께 들키기 좋은 장소에서 누이를 희롱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하일은 그녀를 저택 밖으로 내보내겠다는 듯, 가식적인 미소를 띤 채 말을 늘어놓았다.
마치 카제프가 후작이 된다면, 그녀를 후작가라는 새장 안에 꽁꽁 가둬 두려 한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는 듯이. 네 그 계획을 실현할 수 없게 만들겠다는 듯이.
“저와 카일이 오랜 세월 그녀를 성적으로 학대하며 괴롭혔다 말을 맞추면, 누이께서는 두둑한 금화와 함께 저택을 떠나 남은 생 돈 걱정 없이 살아가실 수 있을 겁니다.”
“…….”
“어머니께서는 그리하실 분이니까요. 그렇죠, 형님?”
하일의 말이 맞았다.
만약 그 둘이 티아를 겁탈하려 한다는 사실을 후작 부인이 알게 된다면, 후작 부인은 엄청난 죄책감과 동시에 그녀에게 거액을 쥐여 주며 여생을 편히 보낼 수 있을 만한 곳으로 자유로이 그녀를 풀어 줄 것이었다.
그건 곤란했다. 그렇게 된다면 아르젠트 후작가라는 자신의 우리를 탈출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카제프는 초조함에 입술을 짓씹었다.
“솔직하게 터놓고 말하셔도 됩니다. 저희는 우애 좋은 형제 아닙니까.”
주먹질로 엉망이 된 얼굴을 정돈한 카일이 다가와 털썩 앉으며 말했다.
“뭐야, 형님도 누나 좋아한다고?”
“넌 좀 조용히 해.”
하일의 손끝이 톡, 톡 탁자를 두들겼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눈을 감고 잠시 말을 골랐다.
“저희는 누이를 놔줄 생각이 없습니다.”
“…….”
“하지만 만약 형님께서 누이를 홀로 독식하려 하신다면 형님조차 누이를 갖지 못할 곳으로 저 멀리 날려 보낼 겁니다.”
하일의 눈매가 가늘게 접혀 들어갔다. 눈웃음이 매력적이었으나, 지금의 카제프에게 그런 것 따위 중요하지 않았다.
“형님이 쌓아 올린 ‘아르젠트 후작가’라는 새장 밖으로 멀리멀리.”
그 입에서 기어코 나와선 안 될 말이 나왔다. 카제프는 저도 모르게 탄식했다.
‘아, 이미 전부 알고 있었구나.’
카일은 모르는 눈치였으나, 지금 하일의 태도로 보아하니 그는 꽤 오래전부터 제 속내를 눈치채고 있던 모양이었다. 허탈감에 헛웃음이 나왔다. 여러 기분이 교차했다.
최연소 소드 마스터 카일, 그리고 영특한 두뇌를 지닌 하일.
카제프는 그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아르젠트 후작가의 후계자로서 동생들보다 모자라다는 평을 듣지 않기 위해, 꽤 많은 노력을 해 왔다고 생각했다. 아니, 실제로도 그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일에게 완전히 휘말렸다. 분노로 가득했던 몸에 이성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어째서 카일이 좆집 따위의 말을 사용하며 티아에게 모욕감을 쥐여 줬는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일부러 저를 도발한 것이었다.
혹시 최악의 상황에 티아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그녀를 철저하게 ‘피해자’로 만들기 위해.
“하…….”
자조적인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일은 어서 대답하라는 듯 카제프를 곧게 바라봤다. 고상하게 돌려 말했지만 협박이나 다를 바 없었다.
공평하게 셋이 그녀의 애정을 나눠 받을 것인지, 어쭙잖게 독식하려 들다 영영 잃을 것인지.
네가 사랑하는 그녀를 영영 잃기 싫으면 얌전히 자신들과 손을 잡으라는 협박.
카제프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알았다. 이 일은 침묵하겠다, 그리고…….”
“현명한 선택이십니다.”
“나 또한 티아를 놓아줄 생각은 없다.”
“형제들끼리 이리도 마음이 잘 맞으니, 어머니께서 아시면 참으로 기뻐하실 겁니다.”
누이를 탐하려는 배덕한 대화를 나누며, 하일은 일부러 ‘어머니’를 언급했다. 여전히 잔잔한 미소를 띤 그 얼굴은 마치 악마와도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자, 그럼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뭐지?”
“뭐긴요, 당연히 누이의 혼처를 모두 막는 것이지요. 형님.”
혼처라는 말에 카제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자신이 알기로는 아직 그녀 앞으로 들어온 혼담이 없었기에.
“황태자가 누이께 혼담을 넣으려 하고 있습니다.”
“뭐?”
하일의 말에 놀란 건 카제프뿐만이 아니었다. 카일도 몰랐던 일인지 얼빠진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런 놈에게 누이를 넘길 수 없는 노릇 아닙니까.”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뱀처럼 속살거렸다. 비뚜름히 입꼬리를 끌어 올린 하일은 어딘지 모르게 위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 * *
막상 카일, 하일과 손을 잡으니 아무것도 모르는 티아에게 죄책감이 들었다. 카제프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용기 내어 방문을 두드렸다.
“나다, 티아.”
“드, 들어오세요. 오라버니.”
살짝 경직된 목소리가 문 너머로 들려왔다. 문을 열자 옷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채, 이불로 몸을 꽁꽁 동여매고 있는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괜찮니?”
“저, 저는 괜찮아요.”
“미안하다, 내가 더 세심하게 신경 써 줬어야 했는데…….”
“……아니, 아니에요.”
“그 애들이 원래도 자주 그랬니?”
둘과의 관계를 모두 알고 있으면서, 카제프는 다정한 오라비처럼 그녀를 달래는 척했다.
‘아아, 티아, 너는 모르겠지. 내가 너를 갖기 위해 그 둘과 어떤 대화를 나누고 왔는지.’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그녀를 가지려는 더러운 소유욕.
‘하지만 나는 그 애들과 달라.’
만약 먼 훗날 네가 그 둘이 싫어진다면, 정말로 그들이 너를 억지로 가둬 두려 한다면, 그땐 내가 너를 놓아줄 거야.
카제프는 자신의 선택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티아의 얼굴을 마주 볼 수 없을 것 같았기에.
‘내게 가장 중요한 건 네 행복이니까.’
자신이 생각했으면서도 우스운 말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후작위를 물려받아 그녀를 후작저 안에 꽁꽁 숨겨 둘 생각을 했으면서.
“솔직하게 털어놔도 좋아.”
저와 똑 닮은 백금발을 매만지자, 티아의 속마음이 들려왔다.
-‘솔직하게’라니.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쓰리썸 하면서 즐겼는데요.’가 되어 버리는데!
노골적인 그녀의 속마음에 카제프는 자신도 모르게 풉, 하고 웃을 뻔했다. 가까스로 무덤덤한 표정을 유지했다.
“……부모님께만 알리지 말아 주세요.”
알릴 생각 없어.
대답해야 했으나, 조금 전 그녀의 속마음이 떠올라 웃음이 비집고 새어 나올 것 같아 억지로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제발요.”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던 이불이 살짝 흘러 내려갔다. 그러자 목덜미에 붉게 남겨진 둘의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 카제프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 흔적을 매만졌다. 자신도, 자신도 그녀의 몸에 제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흣…….”
티아의 신음 소리에 그제야 아차 싶어 다급히 손을 거뒀다.
아직은, 아직은 아니었다. 아직은 좀 더 다정한 오라버니로 그녀의 곁에 있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당장이라도 그녀를 범하고 싶은 걸, 꾹 눌러 삼켰다. 자신은 그들과 다르다는 변명을 둘러대며.
* * *
“누이께 이걸 건네세요.”
하일이 카제프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작은 버튼이 달린 마력구 한 쌍이었다.
“이건 뭐지?”
“누이의 위치를 알려주는 마력구입니다.”
“…….”
“이번 황태자 탄신 연회 때 유용할 겁니다.”
속 모를 하일의 말에 카제프는 알았다며 마력구를 챙겼다.
대부분의 행동은 하일이 주도했다. 하일이 주도했고, 카일이 행동했으며, 카제프는 곁에서 돕는 정도였다.
그리고 드디어 황태자 탄신 연회 때, 대체 이 마력구를 어디다 쓰라는 건가 의아할 때쯤.
다급하게 테라스로 몸을 피하는 티아. 그리고 따라가 보라는 듯 턱짓하는 하일. 하일이 건넸던 마력구로 티아가 위치한 테라스를 확인해 쫓아간 순간.
카제프는 제가 하일이 만든 덫에 완전히 빠졌음을 알아차렸다.
울먹이며 모조 성기를 꽂고 있는 티아를 외면할 수 있을 리 없다. 전부 하일의 술수임을 알면서도, 카제프는 홀린 듯이 티아에게로 향했다.
결국 하일의 뜻대로 그곳이 덫임을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