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검은 뱀의 여왕님
클로비스는 어쩐지 잘 보이지 않았다. 이상할 정도로. 항상 자신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교를 부려대는 그를 잘 알았기에, 비비아나는 다소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왕께서는 하얀 뱀의 공주가 물렸던 일로 다소 바쁘십니다, 주인님. 뱀이 뱀을 문 것은 율법에 어긋나는 대죄라서….”
“누가 물었지?”
“경계를 지키던 해밀턴입니다. 주인님께서도 잘 아실 겁니다. 그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집사는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비비아나는 다 큰 뱀 못지않게 커다란 덩치를 가진 어린 뱀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뱀은 왕에 대한 충성심이 특히 강한 편이었는데, 무엇보다 힘을 숭상하는 기조 때문이다.
순수한 힘, 압도적인 강함을 숭배하기에 강한 수컷과 암컷을 경외하는 거다. 특히나 경계를 지키는 전투 개체일수록 그런 경향이 더 강했다.
해밀턴은 이제 고작 200년 묵은 뱀답지 않게 강하고, 클로비스에 대한 충성심도 대단했다.
그런 그가 감히 클로비스의 말을 어기고 무력 상태였던 하얀 뱀의 목을 물었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말씀은 원래 드리면 안 되지만 하얀 뱀이 왜 노예였는지 아실 필요가 있습니다.”
“…이유?”
“네, 주인님.”
집사는 깊숙이 허리를 숙이고 나직하게 속삭였다.
“환영을 일으키는 사특한 종족이기 때문입니다. 뱀은 다른 뱀의 모습으로 변해 이간질하는 행동을 엄격히 금지해 왔습니다. 하지만 하얀 뱀은 감히 뱀으로 변신하여 편 가르고 불신을 조장하는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노예로 타락한 겁니다.”
비비아나는 아무 말 없이 손을 휘휘 저었다. 집사가 인사를 마치고 사라진 뒤 가운을 벗고 침대에 누웠는데, 갑자기 어떤 환상이 그녀를 덮쳤다.
‘로비.’
대리석처럼 새하얀 나신에 붉은 젖꼭지. 음모 한 자락 나지 않은 깨끗한 아래는 여태껏 순결했던 몸을 증명하듯 단정히 오므라져 있었다.
하얀 뱀이 손을 뻗어 닿은 것은 바로 검은 머리칼, 서글서글한 듯 야한 눈동자, 눈물점이 예쁘게 흔들리는 뱀의 왕.
비비아나의 남자였다.
‘브리아나.’
남자가 손을 뻗어 여자의 가는 허리를 껴안았다.
‘많이 기다렸어요?’
‘물론, 나의 여왕.’
‘그 인간은요?’
로비가 붉은 입술을 한쪽으로 밀어 올리며 피식 웃었다.
‘글쎄.’
‘너무 불쌍해요, 로비. 자신이 정말로 왕의 반려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잖아요.’
하얀 뱀의 목소리에는 누군가에 대한 같잖은 위선이 가득 묻어 있었다.
‘멍청한 인간이잖아, 나의 반려.’
‘당신처럼 강한 뱀을 고작 인간이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니 너무 불쌍해….’
하얀 뱀은 안타까워 죽겠다는 듯 가는 눈꼬리를 아래로 축 늘어뜨리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러자 커다란 손이 포동포동한 엉덩이를 꽉 쥐고 제게로 끌어당겼다. 엉덩잇살을 아무렇게나 주무르며 한 손으로는 발딱 솟은 젖꼭지를 툭툭 퉁겼다.
‘하으, 로비.’
‘그래, 고작 100년도 채 살지 못할 그런 인간 따위가 내 옆을 차지할 수 없지.’
‘많이 기다렸어요, 로비?’
남자의 눈꼬리가 야하게 위를 향했다. 요사스럽게 박힌 눈물점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리라.
브리아나는 수줍은 얼굴로 왕의 뺨을 쓸었다.
‘기다렸어. 당신을 천 년이나 기다렸다고.’
‘당신을 감당할 수 있는 암컷은 나밖에 없어요, 로비.’
‘그래, 내 자지를 감당할 수 있는 암컷은 당신뿐이지.’
뭔가 바르지 않는데도 항상 붉고 말캉한 입술이 여자의 하얀 뺨을 쓸었다. 귓바퀴를 타고 쓸어내리더니 천천히 목을 핥기 시작했다.
‘하으….’
하얀 뱀이 눈꺼풀을 파르르 떨다 눈을 감았다. 남자의 키에 맞추려다 보니 발뒤꿈치를 들고 목을 길게 내밀게 됐다. 자연스레 튀어나온 가슴을 커다란 손이 주무르고 있다. 붉은 정점을 희롱하며 끈적한 애무를 이었다.
‘아, 로비….’
‘브리아나, 내 사랑.’
순간,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비비아나의 심장이 지이잉 울었다.
읏, 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며 비틀거렸다.
아팠다, 무척이나 아팠다. 너무 아파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정도였다.
자신이 아니라 다른 여자의 몸에 입술을 문지르며 사랑한다고 하는 클로비스 빈홀프라니…. 다른 여자의 향기를 맡으며 발정하는 검은 뱀이라니….
커다란 남자의 품에 안겨 긴 목을 내어놓고 있던 하얀 뱀이 비비아나의 눈동자를 마주하고 씩 웃었다.
순간, 자신이 그들을 훔쳐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들켜 버렸다는 사실에 놀란 비비아나가 입을 틀어막았다.
하얀 뱀은 그녀를 입이 찢어지도록 비웃고 있었다.
‘나도.’
그녀가 클로비스의 몸을 껴안으며 보란 듯이 귓가에 속삭였다.
‘나도요, 로비. 나도 사랑해요….’
비비아나가 눈을 번쩍 떴다.
“헉…!”
그녀는 상반신을 벌떡 일으키고 주위를 둘러보며 거친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하아, 하아, 하아….
너무 짙은 어둠 속이라서 꿈인지 현실인지 가늠이 잘 안 됐다. 인간의 눈은 어둠 속에서 끔뻑이며 빛을 잡으려고 시간을 끌었고, 비비아나의 심장은 불안하게 뛰고 있었다.
지독하게 더웠다.
뜨거운 바람이 드러난 목덜미를 스치자 그제야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가슴께를 손바닥으로 꾹 누르며 불안정한 심장 고동을 가만히 관조했다.
그때, 차갑고 서늘한 것이 마른 옆구리를 지나 가슴을 스르르 타고 올라왔다.
바옌이 반질반질한 대가리를 불쑥 내밀었다.
“바, 바옌.”
현실이 아니었다.
비비아나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것은 현실이 아니었다. 현실은 바로 눈앞에 있는 바옌과 손목에 둘둘 감겨 있는 헤본느였다. 자신의 허리를 끌어안고 잠들어 있는 셀리에와 허벅지에 똬리를 틀고 있는 칼리엇이었다.
비비아나의 현실은 바로 지금이었다.
“왜…, 왜 그러니, 바옌?”
목이 말라 그녀의 목소리가 끔찍할 정도로 갈라졌다.
“엄마…, 목 아야 해?”
비몽사몽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셀리에가 눈을 비비며 일어나 그녀를 챙겼다.
“아니, 아니야. 셀리에, 다시 자렴. 중간에 깨면 내일 늦잠 자요. 쉬….”
비비아나가 고개를 숙여 아이의 귓가에 대고 쉿쉿거렸다. 아이는 익숙하고 부드러운 입소리에 금방 다시 잠에 빠졌다.
이제 이가 나기 시작한 바옌이 쇄골과 어깨뼈를 물고 갉작갉작 긁어댔다.
“바옌.”
막내는 그녀의 목을 타고 올라와 눈 바로 앞에 대가리를 내밀었다. 그러고는 검은 혀를 날름거리며 비비아나의 부드러운 광대와 뺨에 자신을 비비적거렸다.
“착하지, 바옌. 엄마 힘들어요, 응?”
그녀가 손을 내밀자 고집이 있어 들은 척도 안 하던 칼리엇과는 다르게 대번에 손가락을 타고 팔뚝을 감았다.
“고마워, 엄마 위로해 줘서.”
바옌이 쉿쉿 소리를 냈다. 비비아나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제 나름의 도리를 하는 거다. 그녀의 가는 손가락 사이사이에 대가리를 밀어 넣어 아무렇게나 비비고 몸을 꼬며 애교를 부린다.
비비아나는 드디어 흐릿하게 웃었다.
“안 되겠어, 바옌.”
헤본느가 팔을 타고 올라와 비비아나의 가슴 위로 툭 몸을 던졌다.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는 마치 그녀의 생각에 동의한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그래, 헤본느.”
비비아나는 아이의 서늘한 턱 밑을 기분 좋게 긁어 주며 제 허리를 껴안고 있는 셀리에를 끌어안았다.
“네 말이 맞아.”
작은 뱀이 고개를 끄덕였다.
“뱀은 자신의 것을 빼앗기지 않지.”
자는 줄로만 알았던 셀리에가 눈을 뜨고 조용히 속삭였다.
“죽여 버려, 엄마. 내 걸 탐내는 것은 모두 다 죽여 없앨 거야.”
비비아나는 아이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래…, 다 없앨 거야. 로비는 내 거니까.”
그녀는 이미 검은 뱀의 일족이었다.
***
겨울이 가까워지면 클로비스는, 아니, 검은 뱀 일족은 모두 날카로워진다. 원래 체온이 낮아서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다들 짜증이 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한 게 바로 엄살쟁이 클로비스 빈홀프였는데, 어쩐지 그가 요즘 조용했다.
금방 하얀 뱀 비린내를 처리하고 자신에게 끈덕지게 들러붙을 줄 알았던 비비아나는 이상함을 느꼈다. 나무뿌리처럼 목을 칭칭 감고 있는 셀리에의 턱을 긁어 주며 살살 달래 떼어내고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엄마….”
“바옌.”
어느새 인간으로 변해서 자신의 허리를 꾹 껴안고 가슴에 뺨을 비비는 막내 왕자 바옌의 엉덩이를 툭툭 두드리자 잠시 잠투정하던 아이도 금세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비비아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이들이 자고 있는 방은 숨이 막힐 정도로 더웠다.
그녀는 목덜미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상하네….”
로비는 요즘 눈에 띄지도 않았다. 그는 헌신적이고 다정한 연인이어서, 비비아나에게 자신의 거취를 조금도 숨김없이 밝히는 편이었던지라 이렇게 갑작스러운 부재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것도 하얀 뱀의 등장과 맞물리니 기분이 께름칙했다.
비비아나는 육아실을 벗어나자마자 목덜미를 스치는 서늘한 바람에 한숨을 내쉬었다. 후텁지근한 열기에서 벗어나니 등허리를 타고 전율이 흐를 정도로 상쾌했다.
그녀는 아주 오랜만에 제 남자를 좀 달래 줄 심산으로 침실로 향했다. 그곳의 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로비…?”
비비아나는 문고리를 잡고 조용히 잡아당기며 눈으로 자신의 남자를 찾았다.
항상 로비의 쌉싸름하고 서늘한 향기가 맴돌던 침실이 텅 비어 있었다.
“어딜 간 거지?”
그때, 비비아나는 로비가 오늘도 지하실을 찾았다던 리케의 말을 떠올리고 잠시 머뭇거렸다. 제법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거기에 있는 건가 싶어서.
그 하얀 뱀과.
검은 뱀은 그녀에게 그곳을 허락한 적이 없었다. 물론 냉정한 율법으로 금지하진 않았으나 항상 묘하고 색스러운 눈빛으로 그곳의 이야기가 나오는 족족 막아 버렸다. 눈물점이 바르르 떨리는 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그러면 자연스레 다가와 입을 막아 버리고는 다리 사이를 제 성기로 박아 버리는 작태가 심히 악질적이었다.
그만큼 들키고 싶지 않은 무언가 감추고 있는 게 틀림없다. 그런데 하얀 뱀과 그곳을 향했다고 하니 속에서 천불이 일 수밖에.
비비아나는 반쯤 열린 침실 문을 달칵 닫고 잠시 어두운 복도에 가만히 서 있었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눈앞에 두고 있는 기분이었다.
판도라의 상자 안에 든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녀가 과연 검은 뱀의 비밀을 감당할 수 있을까.
비비아나는 잠시 지하실로 이어지는 계단을 지그시 노려보며 두근두근 떨리는 심장의 고동을 느끼고 있었다.
둥 둥둥.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어 흉곽을 뚫고 나올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이런 기분을 느꼈던 적이 있었던가…. 아, 몇 년 전, 클로비스의 실체를 마주했을 때도 심장이 이렇게 빨리 뛰었다.
비비아나는 지금 지하실에서 뭔가 마주한다면 그것이 클로비스의 완전한 본모습일 거라고, 이때까지 야살스러운 웃음과 색스러운 애교 뒤에 감추어 온 어떤 잔인한 짐승의 습성이리라 예상했다.
그래서 망설여졌다.
굳이 클로비스가 숨기려고 애를 써 왔던 어떤 잔혹한 비밀을 마주할 필요가 있을까. 비록 그를 사랑하지만, 밑바닥까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자신이 모르는 어떤 것을 감히 다른 ‘암컷’과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욕지기가 치밀 정도로 역겨웠다. 용납할 수 없었다.
클로비스는 온당 제 것이어야 했다. 비비아나가 클로비스의 것이듯이.
그것이 뱀의 반려였다.
비비아나는 굳은 결심을 한 얼굴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두운 복도를 천천히 걸어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밟았다.
나선형의 계단을 돌아 밑으로 내려가자 지하로 향하는 곳을 거대한 철문이 가로막고 있었다. 주철로 만든 문은 얼마나 두꺼운지 손으로 슬쩍 밀어서는 꿈쩍도 하지 않을 정도였다.
비비아나는 손잡이를 돌려 부드럽게 밀었다. 의외로 거대한 문은 잠금장치 하나 걸려 있지 않았다.
마치 언제나 비비아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아….”
분명 사방이 꽉 막힌 지하실인데 어디선가 축축하고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그것은 비비아나의 목덜미를 한 번 쓱 매만지고 뱀 비린내를 묻혔다.
클로비스의 냄새였다.
그녀는 어깨를 떨었다.
‘비비, 당신은 나의 무엇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한때 로비가 장난스레 물었던 적이 있었다.
비비아나는 그때 깊이 생각지 못하고 뭘 더 숨기고 있는 거냐는 둥, 음험한 왕뱀이라는 둥 타박만 했던 것 같다. 자신의 입술을 머금고 한참을 헤집다가 떨어져 나간 남자의 어깨가 조금 아래로 축 처져 있었던 것 같기도….
비비아나는 잠시 망설이다 결국은 문이 가로막고 있던 어둠의 저편으로 발을 디뎠다. 저 멀리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것이 비비아나의 종착지라는 걸 알려 주듯이. 조그만 요정이 어둑한 밤 숲을 지나는 나그네를 유혹하듯이….
물론 떨리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것이 클로비스의 비밀이라면 감당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비비아나는 클로비스의 하나뿐인 반려였으니까.
그녀는 벽을 짚으며 천천히 앞을 향해 걸었다. 가끔 뒤를 돌아보며 길을 외우려고 노력했지만, 어쩐지 걸을수록 구불구불 길이 복잡해지는 느낌이었다.
비비아나는 아직 많이 남은 길을 응시하다가 잠시 왔던 길을 되짚어 보았다. 지금이라면 도망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비비아나의 은빛 눈동자가 깊은 어둠 속을 직시했다.
어떤 직감이 그녀의 뇌리를 스쳤다.
분명, 분명히 이곳에는 클로비스가 그녀에게 숨겨 놓았던 어떤 비밀이 잠자고 있었다. 그녀가 알아주기를 바라면서도 감히 먼저 알아달라고는 하지 못했던 어떤 비밀.
비비아나는 고개를 젓고 성큼성큼 발을 내디뎠다. 혹여 갈림길이라도 나오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그런 건 없었다. 좁은 길은 마지 누군가에게 인도하듯 한 갈래뿐이었다.
“아…, 흐. …읏.”
클로비스의 목소리다.
비비아나는 번쩍 고개를 치켜들고 뛰다시피 했다. 어쩐지 클로비스의 목소리가 잠겨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자신의 몸속 깊이 들어와 쾌락에 잠긴 신음을 내지르는 것처럼.
머릿속에서 더러운 어떤 그림이 그려졌다. 누워 있는 클로비스, 그의 몸을 타고 쾌락에 젖어 있는 하얀 뱀….
비비아나의 표정이 굳었다. 그녀는 흐릿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곳을 향해 타닥타닥 뛰었다. 그곳으로 다가갈수록 남자의 익숙한 신음이 더 선명해졌다.
그녀는 동그란 굴처럼 생긴 보금자리 입구에 서서 떨리는 마음을 안고 안쪽 공간을 살폈다.
마치 제물을 받치듯 대리석으로 깎아 만든 차가운 제단에 로비가 덩그러니 누워 있었다. 이 추운 겨울에, 그는 특히나 추위를 많이 타는 엄살쟁이 검은 뱀인데!
그는 창백한 얼굴로 땀을 뻘뻘 흘리며 몸을 비틀었다. 뭔가 엄청난 고통을 꾹꾹 참고 있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가 참다못해 툭 튀어나온 제단의 난간을 쥐자 대리석은 잠시도 견디지 못하고 파스스 소리와 함께 부서져 내렸다.
당연한 말이지만 클로비스는 저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보지 않고서도 냄새와 소리로 파악하는 기민한 남자였다. 하지만 지금 그는 비비가 바로 앞에 서 있는 것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열에 들떠 있었다.
“아….”
로비에게 다가서려던 비비아나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 그녀는 떨리는 눈동자로 앞을 응시하고 있었다.
“왕이시여, 많이 아프세요?”
그 옆에는 벗은 것과 다름없는 하얀 뱀이 서 있었다. 놀랍게도 비비아나와 똑 닮은 모습을 하고서.
“클로비스.”
브리아나는 문 앞에 멈춰 서서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비비아나를 향해 비스듬히 웃었다.
“비비….”
고통에 잠식당해 있던 클로비스는 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슬쩍 뜨고는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너무 아파, 비비. 너무, 너무 아파서 죽을 것 같아. 날 좀 안아 줘…. 응? 당신의 온기로 날 달래 줘. 터질 것 같은 내 자지를 물고 죄어 줘, 비비…. 비비, 아, 나의 여왕님.
로비의 손끝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는 것 같다.
비비아나는 그의 고통에 감화되어 가슴을 부여잡았다.
“로비.”
하얀 뱀의 입에서 비비아나와 똑같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녀는 클로비스에게 손을 뻗었다.
“불쌍한 클로비스. 하찮은 인간을 반려로 맞아서 발정기를 계속 이렇게 보내 왔을 걸 생각하니 제 마음이 너무 아파요.”
당장이라도 뛰어들 것 같던 비비아나의 발이 허공에서 멈췄다.
“이 고통을 어떻게 감당했을까…. 갑자기 진한 암컷 페로몬을 맡으니 당신의 본성이 날뛰는 거야. 당신은 뱀이니까. 뱀의 왕이니까 나를 가질 자격이 있어요.”
브리아나의 손짓에 하얀 슈미즈가 툭 떨어졌다.
순간, 암컷이 페로몬을 뿜어냈는지 로비의 몸이 고통스럽게 뒤틀렸다. 그는 브리아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비, 비비…! 비비, 너무 아파. 너무 아파, 비비. 당신 다리 사이에 코를 처박고 싶어…, 응? 비비, 어서….”
“아, 내 사랑.”
브리아나가 측은하다는 듯 검은 뱀의 왕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그녀가 로비의 어깨를 껴안았다. 로비의 얼굴을 가슴팍에 기대고 머리칼을 쓰다듬기 시작했을 때, 그의 눈동자가 세로로 길게 찢어졌다.
“이건….”
로비는 여자의 어깨에 코를 파묻고 숨을 깊이 들이쉬고 내쉬었다.
“아아…, 왕이시여. 절 범해 주세요. 절 깔아뭉개고 짓밟아 주세요. 왕의 씨로 저를 적셔 주세요. 제 몸에서 가장 강력한 다음 왕을 보세요. 나는 검은 뱀의 여왕이 되는 거야…!”
로비의 코끝이 여자의 하얀 목을 천천히 지나서 보기 좋게 부푼 가슴팍을 쓸었다. 당장이라도 동그랗고 탐스러운 젖가슴을 입에 물 것 같다.
브리아나의 은빛 눈동자가 비비아나를 향했다. 입술이 비스듬히 그녀를 비웃고 있었다.
“흣!”
비비아나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자신을 향하는 하얀 눈동자를 도려내고 싶을 정도였다.
감히 자신의 모습을 흉내 낸 브리아나는 로비에게 양팔을 붙들린 채 비비에게 비릿한 조소를 흘렸다. 천천히 손을 들어 남자의 검은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불쌍한 나의 왕…. 길고 고통스러운 발정기를 이때까지 이렇게 보냈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파요.”
브리아나는 자꾸만 자신의 가슴팍으로 축축 쓰러지는 남자를 끌어안으며 슬쩍 뺨을 쓸었다.
아아, 신음을 흘리며 남자의 입술이 지나는 목을 길게 뺐다.
클로비스가 그녀의 가슴에 완전히 고개를 파묻었을 때, 그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워.”
“네?”
브리아나는 비비아나를 비웃던 것도 잊고 자신의 품에 무력하게 안겨 있는 수컷을 내려다보았다.
처음 봤을 때부터 가지고 싶었다.
남자는 아름답고 강력했다. 가만히 바라보기만 해도 강자의 향기가 줄줄 흘렀다. 자궁을 떨게 하는 강력한 페로몬. 입맛이 당길 정도로 강렬한 비린내.
커다란 성기를 쥐어짜 그의 정액으로 자신의 자궁을 적시고 싶었다. 강한 새끼가 생길 거다. 감히 누구도 도전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고 비정한 그런 왕….
브리아나의 가슴에 희열이 차올랐다.
“당신을 감히 저 인간이 더럽히고 있어요, 왕이시여.”
브리아나는 남자의 뺨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의 이마에 입술을 맞추고 콧등을 쓸고 내려가 드디어 입술을 삼키려는 순간이었다.
“차갑다고.”
“네?”
순간 클로비스의 동공이 세로로 길게 찢어지고 송곳니가 툭 튀어나왔다.
번식기는 이성보다 본능에 충실해지는 기간이었다. 식사를 줄이고 암컷과의 교미에 하루 24시간씩 몇 날 며칠 매달리게 되는, 이때는 공격성과 욕망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차가워….”
클로비스는 눈을 감은 채 천천히 하얀 뱀의 비린내를 들이마셨다. 입술을 내리누르는 거대한 송곳니는 가끔 비비아나의 어깨나 밑을 물 때 튀어나왔던 것과는 크기부터 달랐다.
정말 날 짐승의 그것이었다.
“너, 내 암컷이 아니구나.”
“와, 왕이시여?”
클로비스는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을 위로 밀어 올리고 브리아나의 거짓된 은색 눈동자를 마주했다.
세로로 길게 찢어진 동공은 이제 완전히 뱀의 그것처럼 세로로 깜빡였다. 당장이라도 벌어져서 먹잇감을 집어삼킬 것 같았다.
“로, 로비.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나 비비아…, 흑!”
커다란 손이 그녀의 목을 세게 움켜쥐었다.
위험을 느낀 브리아나가 도망치려고 몸을 잡아 뺐지만, 소용없었다.
왕의 천 년 묵은 송곳니에서 독물이 맺혀 뚝뚝 떨어졌다. 그것인 브리아나의 손등을 스치자 살이 타는 듯 고통이 밀려왔다.
“아아악!”
떨리는 손을 들어 올리자 독물이 닿은 곳이 반쯤 녹아 시뻘건 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천 년 묵은 독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브리아나가 죽음이 성큼 다가온 것을 느끼고 몸을 부르르 떨고 있을 때, 목을 죈 손에 힘이 더 실렸다.
“내 암컷은 이렇게 차갑지 않은데….”
왕의 눈동자에 이성이란 없었다.
“넌 누구지?”
“와, 왕이시여. 저, 저는 하얀 뱀…, 흐읏!”
클로비스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졌다. 목을 누르고 있는 악력은 점점 더 세졌다. 당장이라도 목을 꺾으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절명할 거다. 송곳니에 맺힌 독물이 또다시 뚝 떨어져 이번에는 판판한 가슴팍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아, 으아악!”
브리아나는 마구 몸을 뒤틀며 비명을 질렀다.
“감히…, 감히 내 암컷의 흉내를 내. 너 따위가.”
붉은 입술이 비스듬히 위로 올라갔다.
브리아나는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검은 눈동자에서 이상한 전조를 느끼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 안 돼…. 안 돼, 안 돼!”
클로비스는 순식간에 거대한 검은 뱀으로 현신하여 아가리를 커다랗게 벌렸다. 인간의 몸을 감싸고 있던 얇은 실내복이 갈가리 찢어지고 두 팔로 다 감싸 안지도 못할 만큼 거대한 뱀이 굴을 가득 메웠다.
“왕이시여….”
고작 400년 조금 넘게 산 브리아나의 눈으로는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 무엇으로도 해칠 수 없는 신, 그렇다면 그런 왕이 왜 이렇게 연약한 모습으로….
순간 그녀는 뇌리를 스친 어떤 음흉한 생각에 도리질하며 눈물을 흘렸다.
처음부터 모든 것이 다 계획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자신을 제 반려에게 바칠 제물 삼은 것은 아닌가 하는.
“와, 왕이시여…. 왕이시여, 제발 살려 주십시오! 제, 제가 잘못했습니다!”
커다란 뱀은 혀를 쉭쉭거리며 보금자리 앞에 서 있는 자신의 암컷이 들을 수 없도록 조그맣게 속삭였다.
“이미 늦었어. 네 활용은 다 했다, 하얀 뱀. 감히 뱀의 율법을 어기고 네 하찮은 재주를 사특하게 사용한 죄, 즉결 처분이다.”
그는 아가리를 크게 벌리고 처음 봤을 때부터 덜 익은 비린내에 골을 부여잡게 했던 하얀 뱀을 꿀꺽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아, 아아아! 와, 왕이시여…, 왕이시…!”
클로비스의 목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며 머리가 박살 난 뱀의 비명이 뚝 끊겼다. 그의 보금자리에는 와드득 와드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뭔가 삼켜지는 소름 돋는 소리만 난무했다. 여자의 덜덜 떨리던 발이 목구멍으로 모두 사라지고 나자, 검은 뱀은 깊고 커다란 숨을 내쉬며 천천히 입을 다물었다.
긴 혀로 입술을 슬쩍 쓸고 나서 고개를 치켜들었다. 몸을 뒤틀며 커다란 먹잇감을 천천히 아래로 내려보냈다. 검은 몸이 하얀 뱀의 굴곡을 따라 울렁거렸다. 꿀렁이는 비늘 위로 빛이 매끄럽게 흘러내렸다.
비비아나의 눈에도 모든 과정이 하나도 빠짐없이 샅샅이 담겼다.
“하….”
오래간만에 포식한 클로비스의 검은 눈동자가 비비아나를 향했다.
“흣!”
그녀는 깜짝 놀라 몸을 뒤로 뺐다.
“비비….”
남자의 목소리는 너무도 연약하고 처연했다. 검은 뱀의 비늘이 벗겨지고 천천히 인간화를 시작했다.
그는 비비아나가 익히 잘 아는 커다란 덩치의 창백할 정도로 하얀 남자가 되어 눈을 떴다. 바닥에 꿇고 있던 무릎을 천천히 일으켜 세우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너른 어깨, 단단한 가슴, 꽉 조여진 복근과 검은 음모. 그리고 그곳에 감싸인 커다란 성기 두 개….
분명 비비아나가 알고 있던 제 남자가 맞는데. 분명, 분명 맞는데…!
“비비, 내가 무서워?”
클로비스는 애달프고 구슬프게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천 살이나 묵은 주제에 어린 척 여린 척은 홀로 다하며 그녀의 품에 매달리던 남자가 맞는데, 그런데 아가리를 쫙 벌리고 하얀 뱀을 한 번에 삼키던 거대한 뱀의 모습이 그 위에 겹쳤다.
비비아나는 비척비척 뒤로 물러섰다.
“비비, 무서워하지 마. 응?”
그녀는 다소 경계하는 눈으로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제발…, 제발 내게서 멀어지지 마. 당신이 날 무서워하니 가슴이 너무 아파, 비비. 내 사랑, 내 여왕님. 제발 날 버리지 마. 날 두려워하지 마. 이런 짐승이어서 미안해.”
가슴을 손바닥으로 꾹 누르며 눈물을 흘리는 남자는 자신의 검은 뱀이 맞았다. 눈물이 가득 차오른 눈동자가 반짝였다. 그가 훌쩍일 때마다 눈물점이 요사스럽게 움직여 애처로운 연민을 자아낸다.
틀림없이 비비아나의 뱀, 클로비스 빈홀프가 맞았다.
“클, 로비스?”
클로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야, 비비. 당신의 로비. 당신의 귀염둥이. 당신의 검은 뱀.”
“저, 정말 로비예요?”
로비는 자신임을 보증하듯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한 발 다가섰으나, 아직 준비되지 않은 비비아나는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남자가 뚝 멈춰 섰다. 그의 창백한 얼굴은 온통 땀으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비비….”
클로비스는 창백한 얼굴로 너른 어깨를 아래로 늘어뜨렸다. 영 기운 없어 뵈는 눈치였지만 두 개의 성기는 꿈틀거리며 슬슬 대가리를 치켜들고 있었는데, 순진하고 아름다운 그의 반려는 음험하고 더러운 아랫도리 사정은 알아채지 못한 눈치였다.
다행이다.
“어, 얼굴은 왜 그래요? 어디 아픈 거예요?”
로비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비아나는 그가 울상을 짓는 것에 무척이나 약했다. 남자의 긴 속눈썹이 아래를 향해 팔랑이면 어쩔 줄 모르고 안달복달했다.
역시나 남자의 눈꼬리가 밑으로 축 처지자 비비아나는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다가섰다.
“비비는 내 이런 모습은 사랑해 주지 않겠지. 이해해…, 나는 뱀이니까. 당신에게도 완전히 사랑받을 순 없는 거겠지….”
사특한 검은 뱀의 애교에 홀라당 넘어간 전적이 한 번 있었던 비비아나는 다소 이성을 되찾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아니라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그러자 클로비스는 아주 쉬운 질문이라는 듯 피식 웃었다.
“차가워서. 당신은 곁에만 서 있어도 따듯하고 부드러운데…. 햇살 속에 서 있는 것 같은데. 감히 그것은 그렇지 않았어.”
“그게 끝이에요? 내가 차가워지면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클로비스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젓고는 한 걸음 다가섰다. 제 앞에 선 여자의 반응을 살피고는 다행히도 그녀가 뒤로 도망가지 않자 성큼성큼 다가와 억세게 끌어안았다.
“비비.”
“읏!”
남자의 서늘한 품에 안겨 망설이던 그녀는 천천히 그의 등을 끌어안았다. 차가운 살갗을 쓰다듬으며 언제나처럼 목덜미를 긁어 주었다.
클로비스가 기분 좋은 듯 목을 그르렁거렸다.
“당신한테서는 냄새가 나.”
“냄새요?”
비비아나의 심장은 아직도 빠르게 뛰고 있었다. 분명 두려움과 당황이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제 남자를 끌어안고 온기를 내뿜었다.
온기에 취한 남자는 이제는 숨길 생각도 없는 듯 커다랗게 부풀어 덜렁이는 성기를 부드러운 배에 치대며 엉덩이를 꽉 움켜쥐었다.
“응, 냄새. 내 좆물 냄새….”
비비아나가 다소 당황해서 숨을 멈추는 걸 느끼며 코끝으로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내가 당신 자궁 깊숙이 쑤셔 놓은 내 좆물 냄새…. 뱀 비린내. 내 여자, 내 암컷.”
남자의 성기가 불쑥하게 일어나 아래위로 꺼떡거렸다. 크고 두꺼운 송곳니가 길게 솟았다. 뺨에 비늘이 덮였다 사라졌다 다시 덮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커다란 몸이 들썩이는 느낌에 비비아나는 슬쩍 몸을 떼 냈다.
“로, 로비…?”
“하, 비비. 올라가 있어. 굴에서 며칠만 쉬다 올라갈게.”
“대체 왜 이런 거예요?”
클로비스는 두 발로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동공이 세로로 길게 찢어졌다가 다시 인간의 동그란 동공을 되찾고, 몸에 얼룩덜룩 비늘이 덮이길 반복하고 있었다. 송곳니 끝에 독물이 맺혔다.
“발정기라니 무슨 말이에요?”
클로비스가 자신을 점점 통제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어서 도망가.”
그는 자신의 입술을 찢어 피를 내고 정신을 잠시 되찾았다.
“발정기…, 하. 발정기에 며칠만, 앓고 나면….”
“당신 왕이라면서요? 세다면서요!”
비비아나는 축 늘어지는 몸을 부축하며 힘겹게 소리쳤다.
“원래 뱀은 발정기가 와, 비비. 내가 약해서 그런 게 아니라고.”
로비는 곧 죽을 것처럼 창백한 얼굴을 하고서도 피식 웃었다.
“지금 당신 얼굴을 보면 그런 소리가…!”
“비비.”
그가 손목을 아프게 잡아챘다.
비비아나는 순간 손목이 부서지는 고통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제 남자에게 두려움을 들킬 순 없었다. 분명 상처받고 아파할 게 뻔한 여린 남자니까.
“어서, 어서 올라가. 발정기는 별거 아니야. 제 암컷의 보지에, 좆을 쑤셔 박고 싶어서, 조금 힘들 뿐.”
“왜…, 왜 참는 거예요?”
비비아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있는데. 나 당신 반려잖아요. 대체 왜 참는 건데?”
클로비스는 그런 비비아나를 반들반들한 검은 눈동자로 응시했다.
“당신은…, 당신은 감당 못 해.”
“클로비스!”
“왜 이렇게 멍청하게 굴어!”
클로비스가 고함을 질렀다.
비비아나는 하얗게 질려서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당신 보지에 몇 번 박고 끝낼 수 있었으면 고민도 안 했어! 이건 당신이 감당 못 해. 발정기는…, 발정기에는 이성을 잃어. 분명 현신해서 흉측하고 커다란 검은 자지를 당신의 깨끗한 보지에 쑤셔 넣을 거야. 피를 봐도 못 멈춰. 그걸 원해, 비비?”
남자의 눈은 이미 눈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당신이 싫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쳐도 이성을 잃고 씨물을 흘려댈 거야. 자지를 입에 처박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가 하아, 하아 신음을 흘렸다. 안색이 점점 창백해졌다.
“몇 날 며칠 멈추지도 못해. 예쁜 보지가 퉁퉁 붓다 못해서 헐 때까지 좆질을 하겠지. 난 싫어, 비비. 당신이 날 무서워하는 건 바라지 않아. 당신이 날 떠나는 일이 있어서도 안 돼. 이딴 발정은 좆을 쥐어짜서라도 참을 수 있어.”
남자의 가슴팍이 커다랗게 부풀었다가 가라앉았다. 그는 이제 바닥에 축 늘어져서 가쁜 숨을 허덕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선고를 기다리고 있는 가련한 죄인 같기도 했고 목숨을 모두 비비에게 맡긴 가련한 짐승 같기도 했다.
비비아나는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비비…, 하. 비비, 어서, 응? 어서 올라가. 며칠만 참아 줘. 괜찮아지면 내가…, 흑!”
클로비스가 허리를 움찔 떨었다. 자신의 성기를 꾹 누르고 있는 제 암컷의 조그맣고 하얀 발을 바라보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꺼풀을 깜빡이며 눈동자를 들어 올렸다.
“…비비?”
“밟아 달라면서요, 로비.”
커다란 손은 천천히 다가와 여자의 가는 발목을 감싸 쥐었다. 자신의 부푼 성기를 꾹 짓밟고 있는 보드라운 발바닥에 달아오른 살덩이를 치댔다.
“하…, 비비.”
“당신이 원했던 거죠, 그렇죠?”
비비는 자신을 붙잡고 있는 손을 떼 내기 위해 발을 세게 털었다. 바람에 동그랗게 팬 발바닥이 성기를 함부로 마구 밟았다.
클로비스는 약간의 고통과 흥분으로 몸을 뒤틀었다.
“비비, 나의 여왕님.”
바닥에 쓰러진 검은 뱀은 큰 손으로 비비의 종아리를 쓰다듬으며 서늘한 신음만 흘렸다.
그녀는 앞뒤로 끄떡이는 성기를 발등으로 툭툭 건들다가 동그란 불알을 꾹 밟았다.
“읏….”
남자의 다리가 점점 넓게 벌어졌다. 고환이 터질 것 같은 착각에 엉덩이에 힘을 바짝 주자 절로 복근이 섬세하게 갈라졌다.
그것을 보는 비비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당신에게서 비린내가 나.”
“비비, 당신 남편이 뱀이라고. 그런 차별적인 발언은, 흣!”
그녀는 항상 그가 귓가에 외고 또 외었던 것처럼 고환을 툭 찼다. 발끝으로 꾹 누르며 터뜨릴 듯 짓이겼다.
“아…, 비비.”
“당신한테서 빌어먹을 하얀 뱀 비린내가 난다는 말이었어, 로비.”
그녀는 혐오스러워 죽겠다는 듯 표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떨었다.
“당신에게 다른 암컷 비린내가 나. 역겹고 비린 냄새….”
“하, 어쩜 나의 여왕님은 이렇게 꼴리는 말만 골라서 하는 재주가 있을까, 응?”
비비아나는 자신의 말에 대가리를 바짝 치켜들고 허연 좆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 뱀의 성기를 뒤꿈치로 꾹 눌렀다.
“아, 비비…!”
눈을 꼭 감고 긴 속눈썹을 파르르 움직이는 남자의 눈꼬리가 미치도록 야했다. 덜덜 떠는 눈물점은 혀를 대 보고 싶을 정도로 먹음직스러웠다.
비비는 마른침을 삼키며 길고 두꺼운 기둥을 꾹꾹 문질렀다. 아래에서 흔들리고 있는 성기가 애처로웠다. 자신도 귀여워해 달라는 듯 아래위로 흔들리고 있었다.
“비비를 눕혀 놓고 말도 못 할 정도로 세게 처박는 것도 좋긴 하지만, 가끔은 밟히는 것도 좋은데.”
비비가 피식 비웃었다.
“시작의 문제겠지, 로비. 결국은….”
“왜, 하…, 왜 말을 하다 말아.”
비비아나는 로비의 벌어진 넓적다리를 발톱으로 세게 긁어 내렸다. 새하얀 피부에 붉은 실선이 그였다. 그것이 허벅지 안쪽을 지나서 무릎 가까이 긁어 내려오자 클로비스는 여자의 종아리를 쥔 채 허리를 뒤틀었다. 야한 신음을 흘리며 속눈썹을 팔랑였다.
“흐…, 결국은 내가 당신 보지에 좆 두 개를 욱여넣고 처박을 테니까. 그렇지?”
남자가 실눈을 뜨고 올려다보는데 그만 자궁이 덜덜 떨려서, 비비는 뜨거운 물을 주룩 흘리고 말았다.
클로비스가 코를 킁킁댔다. 아름답고 처연한 얼굴로는 상상하기도 힘든 천박한 행동이었다.
“상상했어?”
요 며칠 새 좆물을 싸질러 놓지 않았더니 자신의 비린내가 빠져 버렸다. 하지만 오랜만의 전조에 암컷의 흥분이 제법 짙었다. 짐승의 왕이 슬그머니 붉은 입술을 끌어 올렸다.
“많이도 흘렸네, 비비.”
“아…!”
그는 붙잡은 발목을 천천히 제게로 잡아당겼다.
“로비, 균형이…!”
비비는 남자가 자신을 막무가내로 끌어당기는 바람에 아무렇게나 성기를 짓밟게 될까 봐 비명을 질렀다. 허벅지와 성기를 아무렇게나 지르밟는데도, 남자의 신음은 더 깊어지기만 했다.
점점 달아올라 동그랗게 부푸는 남성을 바라보다가 그녀는 결국 남자의 위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것을 당장이라도 자신의 몸으로 품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기에.
커다란 손이 목덜미를 강하게 쥐고 끌어당겼다.
“읏, 로비.”
“비비, 나의 암컷. 날 초대해 주는 거야?”
남자는 정말로 즐거운 듯 웃었다.
“이 작은 몸으로….”
클로비스는 손끝으로 여자의 목을 부드럽게 쓰다듬다가 동그란 어깨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는 슈미즈 끈을 툭 밀어 버렸다.
어둠 속에서도 달덩이처럼 빛나는 새하얀 가슴을 먹음직스럽게 바라보다 꿀꺽 입맛을 다셨다.
“자비롭기도 하지….”
그런 남자의 눈동자는 여전히 세로로 길게 찢어진 상태였다. 뺨과 몸 전체에 비늘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반복하고 있었다.
이성을 잃었지만 아직은 도망갈 수 있다는 소리다.
“나를 정말로 감당할 수 있겠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어찌나 본능을 힘들게 내리누르고 있는지 까드드 이가 갈리는 소리가 났다.
비비아나는 천천히 남자에게 손을 뻗었다. 자신에게 순종하는 거대한 짐승의 뺨을 쓰다듬고 비늘에 입술을 대었다.
마치 몇 년 전 그들의 첫날처럼.
“날 아프게 해 줘, 로비.”
그녀는 이제 부끄러움도 수치심도 없는 평온한 상태로 조곤조곤 속삭였다.
“내 보지에 당신의 자지를 욱여넣어 줘. 세게 박아 넣고 밑이 다 헐도록 움직여 줘. 내가 아파서 울면 밑을 물어서라도 다시 쑤셔 줘. 로비, 날 온전한 당신의 암컷으로 만들어 줘.”
순간, 계속해서 위태롭게 흔들리던 남자의 동공은 완전히 세로로 갈라지는 것처럼 길게 찢어졌다. 그리고 이제껏 비비아나가 경기를 일으키고 도망갈까 봐 절대로 완전히 꺼내지 않았던 커다란 송곳니가 툭 튀어나왔다.
흥분한 나머지 독이 뚝뚝 떨어졌지만, 여태껏 왕의 독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던 비비에게는 아무런 해도 끼칠 수 없었다.
“언제나 내 굴에서 당신을 갖고 싶었어, 비비. ”
남자의 얼굴에 언뜻 황홀이 스쳤다. 자신이 태어난 곳, 자신이 오랜 시간 몸을 감고 있었던 곳, 자신의 힘이 가장 강해지는 바로 이곳에서 암컷과 교미하고 싶었다.
로비는 능글맞게 비비에게 달려들던 평소와는 다르게 정신도 제대로 차리지 못한 채 그녀의 슈미즈를 등 뒤에서 찢어냈다.
“앗!”
비비아나는 순식간에 알몸이 되었다. 그녀가 비명을 다 삼키지도 못했을 때, 완전히 이성을 잃은 거대한 뱀이 달려들었다.
“로비…, 로비!”
뱀의 혀가 축축한 허벅지를 깨끗하게 닦았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스칠 때마다 여자의 허벅지에 크고 작은 상처를 냈다. 그곳으로 독이 스며들면, 비비는 정신을 놓고 소리 질렀다.
눈앞이 어질어질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아…, 로비!”
클로비스는 벌어진 구멍 사이로 흘러나오는 암컷의 흥분을 모조리 빨아 마시며 욕심껏 혀를 밀어 넣었다. 차갑고 미끈한 혀에 여자가 몸서리치자, 그는 입술을 붙이고 쭉쭉 빨아당겼다.
“아, 아앙!”
동그란 무릎을 쥐고 가는 다리를 활짝 벌렸다. 아까부터 좆 두 개가 팽팽하게 솟아서 당장이라도 암컷의 보지에 쑤셔 박아 달라고 난리를 부리고 있었다.
여자의 밑에 입을 대고 있지만, 흥분시켜 삽입을 쉽게 만들려는 목적보다는 그저 제 식탐 때문에 물고 빨았을 뿐이다. 너무 꼴리는 냄새가 나서, 환장할 정도로 좋은 냄새에 도저히 지나칠 수가 없어서. 그래서 빨고 있을 뿐이다.
로비는 곧 여자의 밑을 깨끗하게 빨아 먹고는 부은 입술로 고개를 들었다. 자신의 성기를 쥐고 여자의 발목을 주르르 잡아당겼다.
“아, 아읏! 로비, 벌써 가시가….”
“어떡하지, 비비?”
클로비스는 요염한 미소를 흘리며 암컷의 정신을 홀려 놓았다. 이미 흥분이 최고조에 달해 가시가 우둘투둘하게 솟은 성기에 겁을 집어먹은 얼굴이 미치도록 예뻤다.
아아, 불쌍한 비비…. 그렇게 예쁜 표정을 지을수록 짐승 새끼는 더 꼴려서 달려든다는 것도 모르는 순진한 암컷.
하지만 지금 놓아줄 생각 같은 건 없었다.
클로비스는 제 모든 걸 암컷에게 모두 보여 줄 생각으로 비비아나를 이 굴로 불러들였다.
비비아나는 자신을 모두 가져야 했으니까.
“로, 로비 조금만 더 준비를…, 흣!”
그녀는 고래를 절레절레 저으며 겁먹은 듯 손을 뻗었지만, 로비는 그 보드라운 손바닥을 잘근잘근 깨물어 피를 냈다. 물론 이미 혈류를 타고 흐르는 독에 의해 고통에 둔감해진 비비는 잘 몰랐겠지만.
로비는 비비의 피를 핥으며 더 흥분했다. 성기는 이미 여자의 구멍에 걸렸다. 이제 뚫고 들어갈 일만 남았다.
“비비, 맛있게 먹어 줘.”
“로, 로비, 잠시만…!”
로비는 비비아나가 준비를 마치기도 전에 허리를 세게 쳐올렸다.
“아윽, 로비!”
가시가 우둘투둘 돋은 길고 굵은 성기 하나가 그녀의 구멍을 빠듯하게 벌리고 순식간에 깊은 곳까지 질벽을 긁으며 단번에 처박혔다.
“아. 아앗!”
그녀는 조그만 턱을 치켜들고 가슴을 내민 채 몸을 딱딱하게 굳혔다.
이미 오랜 삽입과 애무로 잔뜩 흐무러진 상태에서 변형된 성기를 삼킨 적은 있으나, 처음부터 변형이 시작된 상태로 삽입한 적은 처음이었다.
“아, 아아….”
가시가 질벽을 긁으며 짜릿한 고통을 안겼다. 커다란 이물감과 깊은 곳까지 찌르는 삽입감에 숨도 제대로 쉬기 어려웠다. 질벽이 덜덜 떨릴수록 가시가 더 돌출됐다.
비비는 엉덩이에 힘을 바짝 줬다.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다치지 않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밑이 찢어질까 하는 염려에.
“하…, 비비. 내 좆만 들어가면 입을 꽉 다무네. 내가 소름 돋게 좋아하는 거 알면서, 응?”
삽입된 곳을 동그랗게 매만지던 그는 퉁퉁하게 부풀어 오른 회음부를 손끝으로 부드럽게 긁었다.
“아악! 로, 로비…, 흣!”
“쉬…, 착하지.”
삽입으로 인해 부풀어 오른 회음부를 꾹꾹 누르자 안에 들어있는 성기가 왠지 꿈틀거리는 느낌이다. 그러면서 젖은 벽을 마구 세게 찌르고 긁었다.
눈앞에서 섬광이 번쩍번쩍 튀었다.
회음부를 문지르던 검지가 오물거리는 분홍빛 구멍을 꾹 문질렀다.
비비아나가 몸을 떨었다.
“흐, 로비. 제발, 조금만 있다가….”
로비는 세웠던 상체를 숙이고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나 지금 터지기 일보 직전이라고, 비비.”
그 바람에 비비아나의 다리는 더 넓게 벌어졌고, 몸속을 쑤시고 있는 성기는 따듯하고 질척한 물주머니 같은 곳을 부드럽게 휘저으며 여기저기 상처를 냈다.
“아, 아읏!”
그는 자신이 흘린 프리컴을 항문에 펴서 바르고 두 번째 성기를 움찔거리는 구멍에 갖다 댔다.
덜덜 떨리는 비비아나의 입술을 탐스러운 사과처럼 바라보다가 끝을 정확하게 맞추고 씩 웃었다.
“로비, 아아응!”
그녀가 가슴팍을 밀어내기도 전에 엉덩이에 힘을 주어 푹 찔러 넣었다.
“아아, 하으읏!”
역시나, 삽입으로 이미 절정을 느낀 비비아나의 안이 쫄깃하게 성기를 빨아 당겼다.
로비는 하는 수 없다는 듯 성기를 푹 박아 넣었다. 분명 가시가 솟은 귀두를 힘들게 욱여넣었는데 그 뒤로는 늪지처럼 그것을 삼키려 드니 박지 않을 수가 없다는 태도다.
“걸치고 있기만 해도 이렇게 빨아 당기니까, 비비.”
그의 왼뺨이 전부 비늘로 뒤덮였다.
“내가 좆질을 안 할 수가 없지, 안 그래?”
비비아나는 애석하게도 대답할 수 있는 상태가 안 됐다. 그녀는 가슴을 내밀고 허리가 끊어질 정도로 내밀고 있는 상태에서 바르작거렸다.
몸속을 가득 메운 남자의 성기에 숨도 깊이 들이마시고 내뱉지 못하고 가쁘고 밭은 숨만 내뱉었다.
“아, 흐…, 흐읏….”
반면에 로비는 여자의 몸에 가시 돋은 좆 두 개를 모두 밑동까지 남김없이 박아 넣고서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까부터 자꾸만 좌우로 흔들리며 시선을 잡아 끌던 가슴을 세게 움켜쥐었다. 젖꼭지에 느물느물 혀를 갖다 대자 여자가 허리를 펄쩍 뛰었다.
“로, 로비!”
“자.”
그는 작은 귓불에 부드러운 입맞춤을 남겼다.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비비.”
“아, 아아?”
비비아나의 가슴을 두 손으로 꾹 눌러 움직이지 못하도록 단단히 고정한 로비는 젖꼭지를 손가락 사이로 세게 짓누르면서 엉덩이를 강하게 뒤로 잡아 뺐다.
“하읏!”
안쪽 깊숙이 박혀 있던 성기가 예민한 질벽을 말도 못 할 정도로 자극적으로 긁으며 빠져나오자마자 다시 엄청난 힘으로 푹 처박혔다.
“아, 아앙! 로비, 하으읏!”
그것이 시작이었다.
로비는 제 암컷이 눈물을 흘리든 말든, 소리를 지르든 말든, 가슴을 우악스럽게 주무르며 몸속을 앞뒤로 마구 헤집었다. 쑤석이고 쳐올렸다.
흉기나 다름없는 성기로 완전히 농숙한 몸속을 찌르고, 쑤시고, 쏘삭질하는데 완전히 정신이 나가 버렸다.
하얗고 말캉한 가슴에 시뻘건 손자국이 남았다. 벌어진 입술에서는 신음도 멎고 꺽꺽대는 가쁜 비명이 새어 나왔다.
“더…, 더. 비비, 조금만 더 쑤실게. 자지 끝이 간질거려. 자지가…, 내 자지가 간지러워서 참을 수가 없어.”
“아, 아악! 로비, 흐읏….”
가시가 날카롭게 튀어나와 질벽을 찢어지도록 벌렸다.
두꺼운 송곳니가 여자의 목을 푹 쑤셨다.
“아!”
비비아나는 울컥울컥 흘러 들어오는 독액에 전율하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반복된 거친 삽입에 슬금슬금 밀려오던 고통은 어느 순간 사라지고, 점점 감각이 무뎌지며 부글부글 끓는 열감이 그녀의 몸속에서 휘몰아쳤다.
이 상태로는 그의 성기를 삼긴 채 부끄러운 실수를 할 것 같은 위기감이 몰려왔다. 그녀는 하반신에 힘을 꽉 주며 구멍을 조였다.
“하, 하읏! 으, 로비…, 로비!”
“그래, 내 암컷. 내 반려.”
로비의 추삽질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비비의 가는 손가락을 입에 넣고 잘근잘근 씹으며 허리를 계속해서 흔들었다.
자지를 쫀득한 보지에 박아 넣고 쑤셔 넣을 때마다 구멍에 지글지글 전류가 흐르는 듯 간지러웠다. 이 작은 손가락으로 후벼 파 줬으면, 긁어 줬으면…, 입에 넣고 쪽쪽 빨아 줬으면!
거대한 욕망이 그를 덮쳤다.
순간, 정액이 터져 나오며 암컷의 자궁을 가득 채웠다. 비비아나는 순간 거대한 해일이 몰려와 자신을 완전히 집어삼키는 느낌에 비명을 질렀다.
“아, 하으읏! 클로비스, 어, 어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서 의지할 곳도 없이 표류하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제 남자를 찾으려고 손을 뻗었다. 이상하게 눈앞에 흰 막이 쓰인 듯 뿌옜다. 눈을 깜빡였다가 다시 떠봐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왈칵 두려움이 밀려와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로비…, 흑! 로비 어디 있어요. 어디 있어….”
“비비.”
서늘하고 음습한 목소리가 귓가에서 메아리쳤다. 다소 맥이 없고 쉭쉭거리는 게 평소와 조금 달랐지만 확인할 길은 없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이 익어 버린 듯 말이다.
비비아나는 손을 휘저었다.
“로비, 로비!”
“여기 있어, 비비.”
여전히 바람이 스치는 소리였다. 그녀는 손가락마저 굳어 가는 뭉툭한 감각으로 제 ‘수컷’을 끌어안았다.
그것은 부드럽게 비비아나의 몸을 누르며 앞뒤로 빠르게 움직였다.
“아, 아앙! 흐…, 로비! 로비, 더…, 더 세게! 더 세게 움직여 줘요!”
“걱정하지 말라고, 비비. 당신 구멍에서 내 자지가 빠질 일은 절대 없을 거니까.”
당신 보지가 헐 때까지…, 애석하게도 비비는 클로비스가 귓가에 바람처럼 속삭이는 낮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커다랗고 검은 성기가 여자의 발간 살을 벌리고 안으로 푹푹 쑤셔 박혔다. 그것이 치골에 맞닿을 때마다 축축한 물이 튀어 비늘을 적셨다. 그에 비늘에 윤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클로비스는 갈라진 긴 혀로 비비아나의 목을 쓸고 핥았다. 가시가 난 성기를 앞뒤로 동시에 쑤셔 박으며 점막을 마구 비볐다.
여자의 작은 배가 커다란 성기로 들썩이는 것을 서늘한 눈으로 바라보며 클로비스 빈홀프, 거대한 검은 뱀은 천천히 똬리를 틀었다. 두껍고 거대한 몸으로 여자를 꽁꽁 감싸 안고 완전히 비늘로 뒤덮인 차가운 좆을 또다시 뜨겁고 따듯한 여자의 몸속에 찔러 넣었다.
자신의 품에서 정신을 잃은 암컷은 지나치게 사랑스럽다. 자신이 인간의 가죽을 벗어 던지고 정말로 뱀 새끼가 되어서 보지를 범하고 있는 줄도 모르는 순진한 암컷.
그는 비비아나의 입술에 뭉툭한 주둥이를 비비며 지독하고 기나긴 발정기를 시작했다.
아마 이 발정기가 지나고 나면 비비아나의 보지는 당장이라도 찢어질 듯 헐어서 며칠 어르고 달래 줘야 할 거다. 밑에 코를 박고 냄새라도 한 번 맡으려 치면 경멸하는 얼굴로 새침하게 노려보겠지.
“아아, 사랑스러운 비비아나….”
하지만 클로비스는 절대로 멈추지 않을 거다. 비비아나의 모든 걸 아작 집어삼켜 전부 잡아먹기 전까지는.
뱀의 발정은 길고 집요했다.
클로비스는 반들반들한 눈을 감고 여자의 가슴과 겨드랑이 사이에 주둥이를 밀어 넣었다.
비늘이 스치고 철퍽철퍽 물이 튀는 소리가 간간이 이어졌지만, 정신을 잃은 암컷은 말이 없었고 수컷은 전율했다.
그밖에 다른 일은 없었다. 주인이 교미 중이라는 걸 깨달은 실뱀들은 몸을 사렸고, 이상한 비린내를 풍기던 침입자마저 사라진 뱀 굴은 고요했다.
흠잡을 데 하나 없는 완벽한 평화였다.
<검은 뱀> 외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