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 1. 비비아나는 뭔가 속은 기분이다 (12/13)

검은 뱀 (외전)

1. 비비아나는 뭔가 속은 기분이다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이다. 희미한 달빛마저 어두운 구름에 가린 밤, 서늘하고 음험한 기운이 무섭도록 높이 일렁인다.

아주…, 아주 이상한 전조를 보이는 밤이다. 왠지 이런 날에는 바깥을 돌아다녔다간 좋은 꼴 보기는 어려우리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그런 이상하고 불길한 예감이 느껴지는 밤.

“나가 봐, 리케.”

“네, 마님.”

검은 머리, 검은 눈을 가진 중년의 여인. 눈 밑이 거뭇해 창백한 뺨에 빛이 흐르는데도 다소 우울하고 어두운 느낌이다.

그녀는 빈홀프 공작 부인인 비비아나의 축객령에도, 두 손을 마주 잡고 머뭇거리며 떠나지 않았다. 주인을 올려다보는 눈동자에 어떤 간절함과 욕망이 서려 있었다.

“저….”

비비아나는 이제 검은 뱀의 습성에 대해서 아주 빠삭했으므로, 피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래, 이리 와.”

리케는 얼른 달려와 무릎을 꿇었다. 주인이 내미는 손을 조심스레 붙잡고 손등에 입술을 댔다.

“하….”

뜨겁고 온유한 햇살, 차갑고 시린 몸을 순식간에 감싸 안는 한도 끝도 없는 온기. 햇살 바른 봄날, 바짝바짝 잘 마른 건초 안에 도르르 몸을 말고 잠든 것처럼 안락하고 평온한 그런 기분….

비비아나의 측근 시녀인 그녀는 다시 한번 검은 뱀 굴의 여왕인 주인을 가까이서 모실 수 있음에 감사하며 손등에 뺨을 문질렀다. 울컥울컥 밀려드는 온기를 빨아 당기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때였다.

“리케.”

“읏!”

비비아나의 마르고 가는 손가락이 리케의 턱을 세게 움켜쥐었다.

그녀는 언제나 부드럽고 자비로운 제 주인의 손에 우악스럽게 붙들린 채 눈을 치켜떴다. 바람이라도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체구로는 짐작하기도 힘든 힘이었다.

“주, 주인님….”

“이런.”

비비아나의 은빛 눈꼬리가 축 처졌다. 부드럽게 위로 흰 속눈썹이 팔랑이자 천사의 날개가 허덕이는 것 같다. 눈동자마저 은빛인 까닭에, 그녀가 때때로 아무 말 없이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투명한 눈동자에 거짓과 위악, 기만과 추잡스러운 것이 비칠까 절로 전전긍긍하게 됐다.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에 자신의 추악함은 조금도 묻히고 싶지 않은 그런 마음으로.

“겁먹었구나, 리케. 불쌍한 것….”

비비아나는 쯧쯧, 혀를 차며 부드러운 엄지로 리케의 뺨을 쓰다듬었다. 눈꼬리가 밑으로 처지자 곧 눈물이라도 흐를 것처럼 처연한 인상이 됐다.

유약하지만 눈꼬리가 어쩐지 색스럽다. 커다란 눈동자에 고인 은밀하고도 위험한 분위기는 사람을 절로 긴장시켰다.

“주인님, 잘못했습니다. 제가 너무 건방을….”

“아냐.”

비비아나는 자신의 허벅지를 툭툭 두드렸다.

유혹하는 몸짓이다. 뭔가를 내어 줘야 하리란 걸 알면서도 다가갈 수밖에 없다.

잠시 머뭇머뭇하던 리케는 감히 비비아나의 온기를 거부할 수는 없었는지 무릎걸음으로 두어 걸음 다가왔다. 슬며시 주인의 허벅지에 자신의 뺨을 뉘었다.

“하….”

마치 거지에게 한두 푼 적선하듯 비비아나가 툭 내민 손에도 부르르 떨 정도로 만족스러운 온기를 느낀 그녀다. 주인의 허벅지에 뺨을 문지르자 등골을 서늘하게 적실 정도로 짜릿한 전율이 흘렀다.

부드러운 손바닥이 등을 쓰다듬자 당장 죽어도 좋을 것 같다는 어떤 황홀경의 상태까지 몰려왔다.

“리케.”

“네…, 네, 주인님.”

리케의 목소리에서 점점 힘이 풀렸다.

비비아나는 그런 제 시녀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부드럽고 건조한 바람처럼 속삭였다.

“로비는 지금 어디 있지?”

“공작님은….”

“그래, 공작님은?”

아…, 따듯해. 따듯하고 안락해서 그만 이대로 죽고 싶다.

리케는 몽롱한 눈으로 아름다운 제 주인을 올려다보았다.

“주인님….”

이렇게 죽고 싶다. 이렇게 따듯하고 부드러운 햇빛 속에서 자듯이 죽고 싶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온기 속에서 이렇게 눈을 감고 싶다….

“리케!”

비비아나의 단호한 목소리에 리케는 번쩍 눈을 떴다.

“로비는 어디 있지?”

물론 그는 지하실에 있을 테지만, 안주인에게 함구하라던 집사 할아범의 경고도 잊어버리고 리케는 덥석 주둥이를 나불거리고 말았다.

“지, 지하실에 계십니다!”

“지하실?”

“네, 마님. 마님께는 절대 함구하라고 하셨지만 오늘 오전부터 그곳에 내려가 계셨습니다.”

“오전부터….”

비비아나는 여전히 자신을 찬란한 태양처럼 바라보고 있는 리케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로비는 지하실에 온갖 끔찍하고 더러운 것이 다 모여 있다고 했다. 비비아나의 눈에 보이기에 꺼려지는 그런 음험하고 비천한 것이 모여 있어 절대로 보여 주지 않았다.

때때로 그리로 내려가 몇 시간 죽치고 올라올 때도 있었지만, 뱀의 규율을 어긴 죄인을 단죄하는 일이 많아 보여 주기가 어렵다고 했다.

비비아나도 구태여 잔인하고 무시무시한 광경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싶진 않았기에 내려가겠다고 고집을 피우진 않았다.

이때까지는.

하지만….

“그건 어디 있지?”

흐리터분한 눈동자를 한 리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인간의 형상을 유지할 때는 뱀의 특성을 모두 감추는 것이 가장 중요한 규율이건만, 지금 거의 약에 취한 듯 정신을 놓은 시녀의 송곳니가 삐죽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뺨과 이마에는 벌써 검은 비늘이 약간 덮여 있었다. 아마 조금 더 이성을 놓으면 동공까지 세로로 길게 찢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도 모르고 멍청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그, 그것이라면….”

비비아나는 자신의 온기에 너무 취해서 이성을 잃고 있는 리케의 몸에서 손을 뗐다.

“주, 주인님.”

비비아나의 손이 멀어지자 리케는 숨이 넘어갈 것처럼 다급한 목소리로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억센 손이 가늘고 부드러운 손목을 움켜쥐려고 했을 때.

“리케.”

비비아나의 차가운 목소리에 불쌍하게도 온기에 완전히 홀려 버린 검은 뱀의 움직임이 뚝 멎었다.

“정신을 잃지 마. 너는 뱀이잖아, 검은 뱀. 그렇지?”

정신을 잃은 뱀은 타락하기에 십상이다. 약한 뱀은 절대로 살아남지 못한다.

리케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맞…, 맞습니다, 주인님.”

“그래, 검은 뱀이면 뱀답게 기품을 지키렴. 착하지, 리케.”

리케는 제 주인의 목소리에 얼른 정신을 차리고 허리를 곧바로 세웠다.

“대답해야지. 내가 물었잖니.”

검은 뱀의 굴로 걸어 들어왔을 때의 비비아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모가지를 길게 빼고 있는 어린 사슴 같았으나, 지금 그녀는 누구보다도 검은 뱀의 주인과 닮았다.

무도하고 차갑지만 사악하고 가식적인…, 클로비스 빈홀프.

“그 비린내 나는 백사를 이르시는 거라면, 그것도 지하실에 같이 있습니다.”

리케는 묘한 암내를 풍기며 공작의 주변에서 맴돌던 백사 한 마리를 떠올리곤 인상을 크게 찌푸렸다. 그녀의 콧구멍이 벌름거렸다.

“그년의 비린내가…. 비린내가 어찌나 심한지 숨을 쉬기가 어렵습니다. 부디 주인님께서 쫓아내 주셔요.”

비비아나는 싱긋 웃었다.

리케는 흠칫 몸을 굳혔다. 분명 인간인 안주인의 송곳니가 삐죽 튀어나온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럴 리가 없다. 눈을 깜빡이고 새 눈으로 다시 바라본 주인의 이는 뭉툭하기만 했다.

“흠…, 그렇구나. 클로비스는 그 빌어먹을 하얀 뱀이랑 지하실에 내려갔구나.”

비비아나는 온유한 목소리로 다소 거친 단어를 내뱉었다.

“네, 주인님. 지금 저택의 모든 뱀이 난리입니다. 발정기가 왔는지 수컷을 꾀어내겠다고 온 사방에 암내를 풀풀 풍기고 다니니 말입니다. 게다가 감히 백사 주제에 어디 검은 뱀을 넘보는 건지….”

리케는 아주 오래전부터 노예로나 부려 오던 하얀 뱀이 검은 뱀의 우두머리를 탐내는 것이 탐린하다고 느꼈는지 퉤, 침을 뱉을 기세였다.

“하얀 뱀 주제에.”

하얀 뱀은 사특한 주술을 부려 타락의 길로 이끈다고 알려져 있었다.

평소 조용하고 음전한 리케의 목소리가 유난히 날카로웠다.

“왕께서 워낙 평화를 사랑하시어 노예를 저희와 같은 백성으로 해방하셨더니, 감히 제 주제도 모르고 왕을….”

리케는 거기까지 말했다가 슬쩍 눈을 치켜뜨고는 비비아나를 힐끔거렸다. 눈이 마주치자 손을 저으며 민망한 듯 웃었다.

“물론 왕께서는 주인님밖에 모르시니 그깟 하찮은 백사의 유혹 따위에 흔들리지 않으시겠지만요.”

“그거야 모를 일이지.”

“주인님!”

비비아나는 검지로 자신의 입술을 꾹 누르며 그녀의 입을 다물렸다.

“나가 봐, 이제.”

“네, 주인님. 평안한 밤 되시길….”

리케는 할 말이 어쩐지 더 남은 눈치였지만, 깊이 허리를 숙이고 뒤로 총총걸음 쳐서 사라졌다.

비비아나는 화장대 앞의 작은 의자에서 짜증스럽게 일어섰다.

그 하얀 뱀…, 그녀는 이를 까드득 갈았다.

이 모든 의심은 비비아나와 비슷한 하얀 머리칼을 가진 암컷, 브리아나가 나타나면서부터 시작됐다.

***

“아으, 로비….”

로비는 비비아나의 좁은 구멍에 두 개의 좆을 한 번에 박아 넣은 채 허리를 커다랗게 움직이고 있었다. 홍수가 난 듯 물을 줄줄 내고 나서야 좆을 박아 넣었지만, 안쪽 길은 너무도 빡빡해서 허리를 흔들기만 해도 사정감이 치밀었다.

커다란 성기를 동시에 받아먹느라 찢어질 정도로 벌어진 구멍은 움찔움찔 힘들게 떨어댔다.

밑을 살짝 물어서 마비시키지 않았다면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울 거다.

비비아나의 하얀 몸에는 여기저기 빨아댄 울혈 자국과 함께 이로 꽉꽉 물어댄 듯한 날카로운 치흔이 남아 있었다. 그중에도 송곳니가 살을 찌른 곳이 유난히 발갛게 부었다.

로비는 엎드린 채 힘이 빠져 널브러진 그녀의 어깨에 이를 박아 독을 흘려 넣고 있었다. 혹여 제 여자가 고통이라도 느낄까 봐 걱정된 탓이다.

독액이 혈관을 타고 흐르자 여자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아, 더…. 으응? 조금 더요, 여보.”

“뱀독에 꿈쩍도 하지 않는 여자는 당신이 유일할 거야, 그렇지?”

로비는 그렇게 말하면서 엉덩이를 빼냈다가 빡빡하게 빠져나온 매끈한 살덩이를 다시 푹 쑤셔 넣었다.

“하읏!”

비비는 새하얀 등을 바르르 떨며 베갯잇을 물었다.

“조금만 더 깨물어 주면 나 정말 갈 수 있을 거 같은데….”

“비비, 그거 뱀독이라고. 중독되면 큰일 나요.”

“하응, 하지만 기분이 좋은걸요.”

로비는 눈물점이 움찔 떨리도록 야하게 웃었다. 그는 비비아나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거칠게 잡아당겼다.

“아읏!”

그 바람에 억지로 상체를 세운 그녀는 균형을 잡기 위해 하반신에 힘을 꽉 주었다.

클로비스는 구멍 하나에 비비아나의 팔뚝만 한 성기 두 개를 한 번에 박아 넣고 뭉그적뭉그적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살덩이가 터질 것 같은 압박감을 느끼고는 사정하지 않기 위해서 엉덩이에 힘을 바짝 주어야 했다. 그 바람에 엉덩이에 움푹 보조개가 팼다.

“아으….”

“눈 돌아가게 쫄깃해, 비비.”

클로비스는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하얀 손바닥이 자신의 허리를 붙잡았다가 동그랗게 솟은 엉덩이를 슬금슬금 쓰다듬는 감촉에 성기 끝이 간지러웠다.

“비비, 그렇게 쓰다듬지 말고 쥐어짜 봐. 번쩍 정신이 들게….”

구멍에 간질간질 짜르르 전류가 흐른다. 당장이라도 여자의 좁은 구멍에다가 자신의 흔적을 푸지게 흘려 넣고 싶었지만 이를 악물었다.

아직, 아직은 안 된다.

요즘 비비아나는 어쩐지 조금 날카로워서 발딱 선 성기라도 엉덩이에 문지를라치면 차가운 눈동자로 노려보기 때문에 한 번 얻은 기회를 최대한 오래, 길게 끌어 볼 심산이었다.

“이 구멍은 사람을 아주….”

“하으…, 으응. 뱀인 주제에 뻔뻔하게 사람인 척하긴.”

로비는 대답 대신 여자의 귓불을 핥고 귓구멍을 쑤시며 질척하게 혀를 놀렸다.

“으으응…, 로비.”

“불렀어, 내 사랑?”

클로비스는 여자의 골반을 두 손으로 단단히 붙잡고 축 힘이 빠져 널브러져 있는 하반신을 단숨에 잡아 일으켰다.

“아윽! 로비, 너무 깊…, 아응!”

“힘줘, 비비.”

비비아나는 비척비척 엉덩이를 들었다. 그 바람에 자신의 안을 쑤석이고 있는 성기가 짜부라지고, 남자의 입에서 격정을 내리누르는 신음이 터지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엉덩이를 높이 치켜들고 밑으로 살덩이를 물었다 뱉었다 하며 스스로 느끼기 시작했다.

클로비스가 움직임을 멈추자 비비아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허리를 움직였다. 그의 말대로 성기가 터지든 말든….

탐스러운 엉덩이가 마구 흔들렸다.

“하…, 커. 커서 좋아.”

“두 개인 건 더 좋지, 비비?”

“응….”

로비는 하얗고 동그란 복숭아 같은 여자의 엉덩이를 부여잡고 천천히 허리를 앞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잔뜩 흐무러진 내벽을 빠듯하게 문지르며 뜨거운 성기가 앞뒤로 움직인다.

“아으, 로비…. 로비, 하, 아으응!”

“더 쑤셔 줄게, 비비. 어디, 여기?”

“하응!”

클로비스가 여자를 놀리듯 비스듬하게 성기를 찔러 넣자 비비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자지러졌다.

“어디로 쑤셔 줘도, 좋아하니까, 보람 있네.”

여자의 몸속을 깊게 파고들 때 남자의 복부가 딱딱하게 굳었다. 동그랗고 뽀얀 엉덩이가 바르르 흔들리면, 남자는 그것을 군침을 다시며 바라봤다.

“로비…, 로비, 읏! 더, 더 빠르게 움직여 줘요, 아응!”

여자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뜨거운 몸에 성기를 박아 넣은 남자는 여자의 허락만을 기다렸다는 듯 힘차게 허리 짓을 했다. 불기둥이 푹 쑤셔 박히면 환영하듯 씹어대는 구멍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차진 점막이 빠져나가려는 성기에 달라붙어 끝까지 놓아주지 않는다. 뜨거운 물이 철퍽철퍽 튀어 단단한 복부를 적셨다.

“흐, 로비! 아응, 깊어…. 흐윽, 더….”

비비아나의 신음 끝에 울음기가 스며들어 있었다. 쾌락을 견디다 못해서 눈물이 터지는 거다.

로비는 자신이 앞뒤로 세게 움직일수록 탐스럽게 흔들리는 가슴을 한 손으로 세게 쥐어짜며 따듯한 몸에 자신의 살갗을 비볐다. 귓바퀴를 잘근잘근 씹으며 신음 같은 감상을 남겼다.

“아…, 비비. 쫀득하고 좁은 비비. 달고 따듯한 비비. 쫄깃하고 맛있는 내 사랑.”

“당신은…, 흣! 당신은 그런 말밖에 못 하는 거야?”

여자는 인상을 팩 썼지만 남자의 성기가 빠져나갈 때면 득달같이 허리를 뒤틀었다. 조금이라도 그를 더 오물오물 씹고 내뱉기 위해서다. 남자의 성기가 깊이 쑤셔 박힐 때면 허리를 둥그렇게 휘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다리를 벌리고 구멍을 벌렁거렸다.

더, 깊이. 더…, 더 깊이.

“아, 혼나겠는데.”

“무슨 말…, 아악!”

로비는 여자의 가슴을 두 손으로 꽉 움키며 하반신을 밀어붙였다.

정열적이고 오랜 삽입으로 한껏 예민해진 질벽을 거친 가시가 사정없이 긁었다. 클로비스의 독으로 신경이 다소 마비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덜덜 떨리는 질벽을 사정없이 긁어대는 감각은 엉덩이가 바짝 설만큼 날카로웠다.

“내, 내가 이거 하지 말라고….”

“미안, 미안, 비비. 하…,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었어.”

비비아나는 엉덩이에 힘을 꼭 준 채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숨을 들이켰다.

“여왕님, 그만 좀 씹어요. 좆이 터져요, 응?”

무려 천 년하고도 몇 년이 더 묵은 검은 뱀은 연약한 척 가증을 떨어대며 그녀의 귓가에 처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 좆 터지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 아무리 욕심이 많아도 그렇지. 이거 끊어 먹으면 안 돼, 비비. 하…, 비비. 비비아나, 씨발.

로비는 좁은 구멍에 무식하게 좆 두 개를 처넣은 상태로 비비적거리다가 결국 욕설을 내뱉었다. 성기에 솟은 가시는 더 날카롭게 질벽을 밀어냈다.

앞으로 도망가려는 여자의 엉덩잇살을 꽉 쥐고 복숭아 가르듯 반으로 갈라 굵은 기둥을 끝까지 완전히 쑤셔 넣었다.

“으윽….”

“넣고만 있어도 싸겠어, 비비.”

클로비스는 쉴 새 없이 귓가에 더럽고 천박한 말을 흘려댔다.

“당신이 내 좆을 쥐어짜 줬으면 좋겠어. 발로 차도 돼. 난 당신이 그 조그만 손으로 내 불알을 쥐고 터뜨릴 것처럼 힘을 줄 때가 제일 좋더라….”

“당신은…, 흐.”

비비아나는 몸을 뒤틀었다. 거센 자극에 조금이라도 버티기 위해서 바짝 허리를 휘고 엉덩이를 내밀었다. 클로비스를 향해 벌름거리는 또 다른 구멍에 시선이 느껴졌다. 그녀의 주름이 바짝 오므라들었다.

로비가 쿡쿡 웃었다.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더러운 말을, 뻔뻔하게 잘하지?”

“일단 그건 나중에. 한 번만 싸고, 응?”

클로비스는 둥글게 휜 여자의 가는 허리를 두 손으로 꾹 붙잡았다.

비비는 몸을 떨었다. 그의 성기에 가시가 솟아나면 움직일 때 동반되는 고통에 저도 모르게 엉금엉금 기어 도망가려고 할 때가 많았다.

로비는 그런 비비아나를 예상하고 도망치지 못하도록 몸을 결박하는 거다. 그리고 그런 상태로….

“하읏!”

목덜미에 그의 송곳니가 파고들었다. 화한 느낌과 함께 뱀독이 밀려 들어왔다. 동시에 가시가 솟은 좆 두 개가 귀두 끝까지 빠졌다가 굵은 밑동까지 한 번에 푹 처박혔다.

“아으응, 로비! 아, 아읏!”

비비아나는 턱을 치켜들고 비명을 질렀고, 몸을 지탱하고 있는 두 팔은 부들부들 떨려서 당장이라도 이불에 고개를 처박고 쓰러질 것 같았다.

로비는 이제 봐주지 않겠다는 듯 깊은 곳을 한번 쿡 찍고 내벽에 상처를 입히며 쓸려 나갔다. 짜릿하고 뜨거운 열상이 느껴졌다. 깜짝 놀라 길이 좁아지면 감각은 더욱더 선명해진다.

“아!”

“하, 비비. 어쩜 이렇게, 맛있는지.”

“아, 아응!”

뱀독에 마비된 신경에서는 고통보다 가려운 곳을 벅벅 긁는 데서 비롯된 쾌감이 더 컸다.

비비아나는 남자가 거세게 앞뒤로 움직일 때마다 비명을 질렀고, 남자는 여자의 신음이 더 커질수록 더 세게 성기를 짓쳐 넣으며 헐떡거렸다.

커다랗고 무거운 주철로 만든 침대가 앞뒤 양옆으로 흔들리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로비가 뒤로 천천히 허리를 빼냈을 때는 끼익 울었다가 빠른 속도로 여자의 안에 자신을 처박으면 급하게 앞으로 쏠리며 듣기 싫은 소리를 낸다.

쿵, 쿵, 쿵, 끼익, 쿵!

요란스럽기도 대단했다.

“아, 아아!”

그야말로 짐승의 정사였다.

“비비, 더 크게 울어 봐. 여기 뱀 굴에 모든 뱀이 당신 우는 소리를 듣게…, 응?”

“아, 아읏! 로비, 더, 더 세게요! 더…, 거, 거기, 하응!”

로비는 그녀의 희끄무레한 음모를 더듬어 붉게 솟아오른 살점을 꾹 눌렀다.

“아읏!”

비비아나는 그것이 어떤 신호라도 된 양 허리를 앞뒤로 격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클로비스가 성기를 박아 넣을 때 엉덩이를 뒤로 밀었다가 그가 살덩이를 뺄 때 자신도 엉덩이를 잡아 뺐다. 오물오물 씹으며 움직일수록 자극은 더 강렬해졌다.

그녀는 음핵을 잔인할 정도로 세게 문지르고 꼬집어 대는 남자의 밑에 깔려 허덕였고, 남자는 여자의 엉덩이와 허벅지가 발갛게 달아오를 정도로 강하게 움직였다. 커다란 불알이 뭉툭한 소리를 내며 여자의 밑을 때렸다.

비비아나의 몸이라면 눈을 감고도 구불구불한 내벽을 그릴 수 있는 클로비스가 그녀의 두 팔을 잡아당겨 허리를 일으켜 세웠다.

“아앙!”

성기 두 개가 몸속에서 비벼지며 자궁을 긁었는지 비비아나는 입을 크게 벌리고 헐떡였다.

“하, 신음도 꼴려.”

“너, 너무 커, 하윽!”

그녀는 움직이지 않으려고 몸에 잠시 힘을 주었다가 그럴수록 버티기 더 힘들다는 걸 깨달았다. 로비가 의도한 대로 허리를 세우고 그의 목덜미를 붙잡자 대번에 서늘한 입술이 귓불을 물고 쪽쪽 빨았다. 커다란 손바닥이 말캉한 가슴을 감쌌다.

로비는 비비아나의 가슴이 터질 정도로 세게 조몰락거리더니 그녀의 가는 몸을 두 팔로 꽉 껴안았다. 조금도 움직일 수 없어서 숨이 막힐 정도였다.

“로, 로비?”

“힘들지, 비비. 나 이제, 다 왔어.”

로비는 곧 그녀의 어깨를 깨문 채 허리를 아래에서 위로 퍽퍽 쳐올렸다.

“하응! 응, 으응, 읏!”

비비아나는 그가 드나들 때마다 불룩불룩 솟아오르는 뱃가죽을 문지르며 비명을 질렀다. 목이 쉬어 비명이 끊겼으나 쉭쉭거리는 바람 소리와 간헐적인 신음은 끊이지 않았다.

뱀의 교미는 길고 길었다.

자신의 무릎으로 여자의 다리를 넓게 벌리고 구멍에 좆을 쑤셔 넣던 클로비스의 움직임이 어딘가를 찌르고 뚝 멎었을 때, 비비아나는 쾌락으로 점철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아아….”

오랜 시간 참고 참았던 정액이 밀려 나와 성기가 꿀렁거렸다. 완전히 팽창한 성기 탓에 가시는 내벽에 단단하게 틀어박혔고, 클로비스는 혹시라도 그녀가 쾌락에 몸을 뒤틀지 않도록 온몸을 단단하게 껴안았다.

비비아나의 작은 몸이 커다란 남자의 몸에 완전히 속박되었다. 그녀는 비명을 지를 힘도 없어 숨을 거칠게 내쉬며 눈물을 흘렸다. 눈물이 뺨을 타고 턱 끝에 맺혔다가 뚝 떨어지는 걸 선명하게 느끼며 힘없는 한숨을 내뱉었다.

“하, 로비….”

“뭐, 나 사랑한다고?”

비비가 피식 웃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 줄 순 없었어요? 굳이 제 입으로…, 그렇게 뻔뻔하게.”

비비아나의 작은 타박에 로비는 키들거렸다.

“움직이지 마요, 느물거리는 왕뱀 주제에.”

“아, 슬픈데. 느물거린다니.”

애석하다는 듯 자신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짚으면서도, 왕뱀이라는 데는 딱히 이견이 없는 모양이다.

클로비스는 녹은 설탕 과자처럼 늘어지는 비비아나를 바라보며 눈꼬리를 축 늘어뜨렸다. 눈물점이 요사스럽게 흔들렸다. 비비아나가 죽고 못 사는 매력적인 미소였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볼 수 없었다.

로비는 여자의 자궁 속에 가시 좆을 처박은 상태로 장난스럽게 엉덩이를 공글렸다.

“흐읏!”

비비는 몸서리를 쳤다.

뜨거운 정액은 여전히 울컥울컥 그녀의 안을 채우고 있다.

비비아나는 뱃가죽을 밀어 올리는 동그란 귀두를 손가락으로 꾹꾹 문지르며 쾌락의 잔열에 헐떡였다. 창백한 얼굴에 붉은 눈가, 잔뜩 짓무른 눈꼬리가 정사의 격렬함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렇게 만지면 선다고, 비비.”

비비아나는 피식 코웃음을 쳤다.

“거짓말하지 마요, 로비. 내가 속을 줄 알아요? 애초에 다시 세울 일이 없겠지.”

“그래, 그래. 나도 사랑해, 비비아나.”

그녀의 온몸을 물고 빠느라 말캉거리는 입술로 가는 목을 쓸었다.

“흐으….”

“이번에는 발로 밟아 주기야, 비비.”

“이번, 같은 건…, 어, 없….”

그때였다.

비비아나의 목을 길게 핥고 빨며 흔적을 남기는 데 여념이 없던 로비가 고개를 쳐들었다.

바람에 그녀는 성기가 자신의 자궁부를 긁어내고 미끄러지는 느낌에 신음을 삼켰다.

“왜요?”

비비는 조금씩 늘어지기 시작한 몸을 그에게 기대며 힘없이 물었다.

“집사인데.”

“집사…?”

비비아나가 고개를 갸웃했을 무렵, 그녀의 귀에도 뚜벅뚜벅 빈 복도를 걷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클로비스는 비비와 시간을 방해받은 것에 대해 짜증을 느끼며 슬쩍 허리를 뒤로 뺐다.

“아, 로비! 천천히….”

“그래, 그래. 여왕님 구멍이 놀라지 않게 천천히 빼 드려야지.”

로비는 비비아나의 동그란 엉덩이를 부드럽게 두드리며 허리를 슬금슬금 움직였다.

어느새 가시는 가라앉고 없었다. 미끈한 성기는 물이 줄줄 흐르는 구멍에서 부드럽게 빠져나왔다. 동그란 귀두까지 빠지자 뽁,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난 것 같기도 했다.

“하….”

온몸에 힘이 빠진 비비는 탈력감을 느끼며 침대 위로 툭 쓰러졌고, 남자는 그런 여자가 영 귀엽다는 듯 바라보다 엉덩이를 왕 물었다. 자근자근 씹어대는 게 퍽 악질적이었다. 송곳니 흔적이 여지없이 남았다.

“아!”

“말캉거리니까 군침이 돌아서.”

로비는 자신의 동그란 잇자국이 남은 엉덩이를 애틋한 눈동자로 바라보다가 허리를 세웠다. 다리를 모으지도 못하고 밭은 숨만 내쉬고 있는 제 여자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비비아나, 당신 구멍에서 내 좆물이….”

“그만 좀 해, 로비.”

베개에 고개를 처박고서 비비가 짜증을 내자 그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가운을 들었다. 그것을 대충 걸치고 아무렇게나 끈을 묶고 나니 딱 맞게 똑똑 노크가 울렸다.

“밖에서 이야기해요, 로비. 냄새나….”

“어차피 굴 전체에서 내 좆물 냄새가 풀풀 풍길 텐데, 뭐.”

로비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젓고 집사를 불러들였다.

그의 말대로 왕이 짝짓기하면서 내뿜은 페로몬에 집사는 고개도 들지 않고 문을 열었다. 고개를 들어 조그맣고 하얀 발바닥이라도 보는 날에는 다시는 두 눈을 뜨고 하늘을 볼 수 없으리라는 걸 아는 까닭이다.

“주인님.”

“무슨 일이야.”

“동쪽 경계에서 사고가 있었습니다.”

“사고? 피 냄새가 나는데.”

로비는 집사에게 가까이 다가가 숨을 커다랗게 들이마셨다.

“네, 주인님께 인사를 드리러 오던 하얀 뱀의 공주를 어린 뱀 하나가 물었답니다. 많이 다쳤습니다.”

클로비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뱀을 물어?”

“네, 죄송합니다.”

클로비스는 뱀끼리 물고 공격하는 행위를 엄격하게 금지해 왔다. 특히나 그의 권역 안에서는 말이다.

“이상한데. 몇 년 된 놈이지?”

“이제 고작 200년 좀 넘었을 겁니다.”

클로비스는 인상을 쓰며 혀를 찼다.

“완전 햇병아리군. 하지만 규율은 규율이니까. 죽였나?”

집사는 고개를 저었다.

“분명 자신이 하얀 뱀을 문 건 맞지만 이상한 냄새를 맡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워낙 건실하고 바른 놈이라, 부끄럽지만 저도 믿고 있습니다. 주인님께서 한번 살펴 주시기를 바랍니다.”

로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주는? 공주를 감히 여기로 불러들여?”

다소 분노한 듯 딱딱해진 목소리에 집사는 번뜩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푹 숙였다.

“그, 그럴 리가요. 주인님 허락 없이 제가 감히 어떻게 다른 뱀을 이곳에 들일 수 있겠습니까. 우선 어찌 처분하실지 몰라 응접실에….”

그러자 클로비스가 집사의 어깨 너머 어두운 복도 한편을 노려보며 비스듬하게 웃었다.

“그럼 저건 뭐지?”

“네…?”

반백의 집사가 의문을 가득 담은 눈동자로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을 때, 검은 어둠을 뚫고 흰 머리칼, 흰 눈썹과 속눈썹을 가진 나신의 여자가 비틀비틀 다가와 감히 왕과 왕비의 보금자리에 발을 내디뎠다.

“로비?”

역시나, 반쯤 잠들었던 여왕님이 어색하고 비린 냄새를 맡고 슬쩍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잠시 주위를 살피다가 제 남자 앞에 무릎을 꿇고서 피를 흘리고 있는 ‘암컷’을 발견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저게…, 저게 뭐예요?”

여왕님 심기가 상했는지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비비, 미안. 별것 아니야.”

“우리 보금자리에 감히….”

순간 여자가 다 터진 입술을 달싹였다.

“와, 왕이시여.”

은빛 눈동자가 새하얀 여자를 향했다.

감히 왕과 왕비의 보금자리에 발을 디딘 여자가 비틀비틀 다가왔다.

“저, 저를 살려 주….”

여자는 그 말을 끝으로 툭 쓰러졌다. 차가운 바닥에 쓰러진 여자의 나신을 바라보는 비비아나의 눈동자가 매우 찼다.

그녀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가운을 걸쳤다.

남자는 얼른 달려와 두 손을 마주 비비며 그녀를 만류하려고 했다.

“비비…, 비비. 가지 마, 금세 깨끗하게 치울게.”

“감히 내 침실에 다른 암컷이 발을 디디다니 더러워서 참을 수가 없어, 로비. 저 계집은 뱀이 아니라 도마뱀이라도 되는가 봐.”

뱀에게 있어서 다른 한 쌍의 보금자리를 침범하는 건 굉장히 실례되는 행동이었다. 누구도 다른 뱀과 그이의 암컷이 교미하는 동안 흘리는 페로몬 냄새를 맡기 원하지 않았을뿐더러, 맡게 하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서로에게만 허락된 것이었기에.

그러니 지금, 비록 쓰러져서 정신을 잃기는 했지만, 클로비스의 페로몬 냄새가 덕지덕지 묻어 있는 곳에서 낯선 암컷이 익숙하지 않은 페로몬을 풀풀 풍기고 있다는 건 심각한 문제였다.

“비비!”

클로비스는 그에게서 냉정하게 몸을 돌리고 쓰러진 여자를 지나 방을 나서는 그녀를 애타게 불렀다.

“어딜 가?”

로비가 비비아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분명 그다음은 날 밟아 주기로….”

비비아나는 비스듬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돌아보았다. 차가운 은색 눈동자로 검은 뱀의 왕을 일갈했다.

“그다음은 없어, 로비. 내 보금자리에서 이 뱀의 비린내가 다 빠지기 전에는.”

그녀는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난 그동안 아이들에게 가 있을 테니까.”

여왕님이 사라진 굴에 적막이 흘렀다.

클로비스는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벌거벗은 여자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손을 발로 툭 쳐내며 목의 상처를 살폈다.

“우선 치워. 공주인지 뭔지 방문 통보 없이 경계를 넘었으니 즉결 처분해야겠지만 검은 뱀에게 물렸으니 우선 깨어나면 정황 파악부터 해 봐야겠군.”

“네, 알겠습니다.”

클로비스는 훌쩍 뒤로 멀어졌다. 혹시라도 하얀 뱀의 피 냄새가 자신에게 배기라도 하면 비비아나는 같은 공간에 있으려고 하지도 않으리라.

그렇게 되면 비비아나의 하얀 살결에 손을 대기는커녕 쳐다만 봐도 부정한 오물 취급받으며 천대 아닌 천대를 감당해야 할 테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빨리…, 빨리 닦아.”

클로비스는 자신의 보금자리에 하얀 뱀 한 마리를 남겨 두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자신의 암컷의 심기를 더는 건들지 않았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을 지니고서.

비비아나는 클로비스가 자신을 위해 만들어 준 서늘한 정원의 간이침대에 누워 흔들흔들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심기가 별로 좋지 못했다. 일부러 차가운 바람을 틀어 놓은 곳이라 검은 머리칼을 가진 족속이라면 질색을 하는 곳이다. 그러니까 비비아나가 여기 있을 때는 홀로 있고 싶다는 투정 같은 거였다.

클로비스는 얼른 뱀 비린내를 지우고 자신에게 찾아올 거다. 그것을 알면서도 불뚝 성질이 솟을 건 뭐란 말인가.

대신관이 되기 위해 견뎠던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고행으로 인해 인내심만큼은 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나, 자신과 클로비스의 공간에서 다른 뱀의 냄새를 맡자 정말 억제하기 힘들 정도로 짜증이 일었다.

어찌나 화가 나는지 순간 눈이 돌아 벌거벗은 여자의 목을 부러뜨리고 싶다는 잔인한 상상까지 하고 말았다.

소름이 돋았다.

자신이 약육강식의 논리로 움직이는 짐승이 된 것 같아서.

“하….”

비비아나는 커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다 뱀이랑 살아서 그래. 클로비스가 문제야, 문제….”

그때였다.

“왕께서는 어떤 분이신가요?”

감히 클로비스와 제 새끼조차 침범하지 못하는 공간에서 완전히 방심한 채 늘어져 있던 비비아나가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누구지?”

의미를 두고 오래 쳐다보지 않아 얼굴을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하얀 머리칼과 창백한 피부만은 꼭 기억하고 있었다.

비비아나의 붉은 입술이 벌어졌다.

“하얀 뱀.”

“네.”

여자는 맑고 반짝이는 미소를 지었다.

이곳이 어디인지, 그리고 비비아나가 누구인지,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너, 여기는 어떻게…. 하, 누가 알려 줬지?”

그렇게 묻자 여자의 창백한 입술이 비스듬하게 위로 올라갔다.

“냄새를 맡았어.”

여자의 말꼬리가 짧았다.

“…맡았어?”

비비아나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그래, 냄새 말이야. 왕이 네게 처덕처덕 묻힌 페로몬 냄새. 왕께서는 욕심도 많으시지.”

“하…, 이건 뭐람.”

이곳에서 처음 듣는 반말에 어안이 벙벙했다.

비비아나는 자신을 향해 다가서는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딱딱하게 선 젖꼭지가 다 들여다보이는 홑겹의 슈미즈 하나만 걸치고 있는 여자를.

“대체 이런 추운 곳이 왜 좋은 거야?”

여자는 어깨를 움츠리고서 소름이 돋은 팔뚝을 싹싹 쓸었다. 으으, 작은 신음을 내뱉으며 순진무구한 눈동자로 비비아나를 바라보았다.

“인간이라 그런 거야?”

하얀 뱀은 차가운 바람이 흐르는 통로를 피해 비비아나에게 바짝 가까이 붙었다. 그리고는 뭔갈 깨달은 듯 탄성을 지르며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와…, 너 되게 따듯하구나? 네 옆에 가니까 온기가 흐르네. 대체 뭐지….”

손끝이 어깨를 스쳤다.

물론 뱀이라는 족속의 왕과 몇 년간 살을 붙이고 산 대가로 그들이 얼마나 차가운지 몸소 경험해 알고 있긴 했지만, 여자의 미끈거리는 손은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다.

비비아나는 얼른 그녀의 손을 거세게 쳐냈다.

“아…!”

“내게서 떨어져.”

그녀는 서늘한 감촉이 남은 어깨를 손바닥으로 닦아내고 몸을 일으켰다.

감히, 로비와의 보금자리뿐 아니라 자신의 사적인 공간까지 침범하다니. 검은 뱀과 살다 보니 점점 영역에 민감해지는 모양이었다. 낯선 이방인이 무척이나 신경에 거슬렸다.

비비아나가 머리칼을 정리하며 머리맡에 던져두었던 부드러운 숄을 들었다.

그것을 맞은편에 서 있던 여자가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검은 뱀의 왕께서는 왜 너 같은 하찮은 걸 좋아하실까. 네게서 그분의 페로몬 냄새가 풀풀 풍기네…. 마킹도 정도껏 해야지. 이 정도면 거의….”

하얀 뱀이 인상을 썼다. 좆물을 처덕처덕 처발라 놓은 수준이라는 말은 삼켰다. 같은 뱀이 맡아도 기가 죽을 정도로 말이다.

이 여자는 다름 아닌 자신의 것임을, 여자의 살갗 밑과 자궁 안에 똑똑히 각인해 두었다. 이 여자를 건드리면 자신과의 전쟁을 불사해야 한다고 경고하는 수컷의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다가오지 마.”

비비아나가 매섭게 쏘아붙이자, 그녀에게 손을 뻗은 채 한 발 한 발 다가오던 하얀 뱀이 우뚝 멈춰 섰다.

그러고는 연약한 생명체에 대해 안쓰러움을 보이며 슬쩍 미간을 모았다.

“이름이 뭐였지?”

비비아나는 네깟 것의 이름 따위는 알고 싶지 않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브리아나, 하얀 뱀의 공주야.”

“나는 클로비스의 암컷이야. 내게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비비아나의 단호한 목소리에 할 말을 잃은 브리아나가 입을 꾹 다물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꾹 다문 입술이 고집스러워 보였다.

“싫어.”

뱀의 가는 입꼬리에 경련이 일었다.

“뭐?”

“아무리 생각해도 싫어.”

그녀는 비비아나가 막기도 전에 성큼성큼 다가와 가는 목을 쥐었다.

“흣!”

차가운 뱀 비린내가 비비아나의 코끝을 스쳤다.

브리아나는 뱀이 쉭쉭거리듯 갈라진 혀로 제 입술을 쓸더니 비스듬하게 웃었다. 눈꼬리가 축 떨어지는 게 언뜻 보기에 퍽 해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머리칼이 풀풀 위로 날리는 기세는 사납고 거칠기만 했다.

“감히 인간 따위가….”

하얀 뱀의 눈동자가 세로로 길게 찢어졌다.

비비아나는 이것을 잘 알았다. 이것은 뱀이 비비아나의 온기에 홀려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정신을 잃을 때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아니면 아예 이성을 통제할 생각이 없거나.

“한 손으로 멱을 따도 반항 못 하는 버러지 같은 게. 백 년도 못 살고 죽을 하루살이 같은 게….”

브리아나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흐….”

“감히 내 무릎을 꿇리려 해?”

“크, 클로비스….”

“주제에 어울리지도 않게 대단한 수컷을 손에 쥐고 의기양양하지. 그건 내게 더 어울리는데….”

숨이 막힌 비비아나가 겨우 입술을 달싹였다.

“닥쳐, 뱀. 로비는 내 거야.”

“왕에게 살려 달라고 비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못 하는 인간 주제에.”

브리아나는 엄지로 비비의 목을 꾹 누르며 쿡쿡 웃었다. 키들거리는 그녀의 눈동자는 새하얀 악의로 가득 차 있었다. 인간을 장난삼아 목 졸라 죽이는, 죄책감이라고는 조금도 깃들지 않은 눈빛이었다.

“흐, 흐으….”

비비아나는 해먹을 긁었다. 손톱이 그물을 긁으며 툭, 투둑 터지는 소리가 났다.

“왕은 너 같은 계집을 좋아하시나 보다. 대체 왜지? 이렇게 볼품없고 모양 빠지는 인간을….”

그러는 저도 무려 몇백 년간 검은 뱀의 노예로 부림을 당했다는 건 기억도 못 하는 모양이다.

브리아나는 마치 비비아나의 모든 것을 다 베껴 외우기라도 할 기세였다. 눈꺼풀 한 번 깜빡이지 않고 그녀를 가만히 살펴보기만 했다.

비비의 목덜미에 소름이 오스스 돋았다. 그녀의 은빛 눈동자가 여자의 목덜미로 향했다. 분명 어제 어린 뱀에게 물려 피를 철철 흘리던 곳이었다.

하지만 상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이 온기 때문인가….”

브리아나는 세로로 죽 찢어진 눈을 감고 비비의 곁에 흐르는 향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갈라진 혓바닥이 쉭쉭 움직이고 있었다.

이때까지 자신의 온기를 곁에 두고도 이성을 잃지 않고 거의 완벽에 가깝게 통제하는 검은 뱀의 일족만 보아 온 비비아나로서는 상당히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따듯해….”

이제는 소식도 알 길 없는 제 오라비가 어디서 싸구려 약을 먹고 취한 얼굴이다.

비비는 방심하고 있는 여자의 겨드랑이 사이로 망설임 없이 손을 밀어 넣었다. 반대로 난 비늘 하나를 찾아 뒤로 꺾으며 순식간에 손톱을 찔러 넣었다.

“크아악!”

브리아나는 몽롱한 정신을 단번에 일깨우는 날 선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송곳니가 불쑥 튀어나왔다. 하얀 눈에 붉은 핏줄이 섰다.

“클로비스에게 살려 달라고 비는 것밖에 못 해?”

비비아나가 조소했다.

“내가 네 비늘을 잡아 뜯지 않은 걸 감사하게 생각해, 하얀 뱀. 건방 떠는 꼴도 더는 못 봐주겠고, 비린내가 지독해서 이 정도로 봐준 거야.”

그녀는 흔들리는 해먹에서 가볍게 뛰어내려 치마를 정리했다.

“어찌나 암내를 풍기고 다니는지 코가 막히겠네.”

자신의 발밑에 널브러져 아직도 고통의 비명을 지르고 있는 하얀 뱀을 경멸하는 눈동자로 깔아 보았다.

“내 온기에 정신도 못 차리는 애새끼 주제에….”

그녀가 한 발 다가섰다.

역린을 공격당한 브리아나는 자신도 모르게 비비아나의 기백에 엉덩이를 주춤 뒤로 물리고 말았다.

“이제 사오백 년 살았나? 혓바닥도 제대로 붙지 않은 거 보면 젖가슴도 여물지 않은 어린애 같은데, 괜한 허세 부리지 말고 꺼져. 나 화나면 무서우니까.”

비비아나가 그녀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다시금 가만히 바라보며 온기를 내뿜자 대번에 흰 눈동자에서 이성이 사라졌다. 창백한 입술이 슬쩍 벌어지자 소리 없이 비웃었다.

“내 남자 넘보지 말란 소리야, 아가.”

창백하고 서늘한 뺨을 툭툭 두드리며 아까 브리아나가 그랬던 것처럼 환한 미소를 지었다.

“네 말대로 백 년도 못 사는 인간이라, 내 걸 뺏기고는 못 견디겠으니까.”

비비아나는 아직도 몽롱한 눈동자로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는 브리아나를 스쳐 지나가며 경고했다.

“그러니까 애새끼는 빠져. 꼬리 잘라 버리기 전에.”

후, 비비아나는 머리칼을 거칠게 쓰다듬으며 자신만의 정원을 나섰다.

여러모로 열받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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