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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Epilogue (11/13)

11장. Epilogue

비비아나는 오늘도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흣!”

땀을 뻘뻘 흘리며 잠에서 깨자 제 여자의 기색에 무척이나 민감한 클로비스도 스르르 눈을 떴다. 뱀처럼 여자를 꽁꽁 둘러싸고 있다가 얼른 손과 다리에서 힘을 풀고 몸을 일으켰다.

잠을 덜 깬 상태에서도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는 비비아나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닦아 내며 입을 맞추었다.

“쉬…, 비비아나. 괜찮아.”

“끄, 끔찍한….”

“괜찮아, 비비. 꿈이야, 다 꿈이야. 옆에 내가 있잖아, 이제. 불안해하지 마.”

클로비스의 말에 그녀는 절박하게 그의 품을 찾았다. 너른 품을 파고들며 애교를 부리듯 가슴팍에 뺨을 비비다가 커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마른 어깨와 등에서 힘을 축 빠졌다.

로비는 비비아나를 꽉 끌어안고 등을 토닥이다가 뺨과 턱에 장난스럽게 입술을 쪽쪽쪽 맞추었다. 흐릿한 웃음소리에 귓불까지 꽉 깨물었다.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고 낑낑거리며 불안감을 지우고 있던 비비아나가 고개를 들고 입술을 내밀자 그것을 넙죽 받아먹으며 이마를 비볐다. 불룩 솟은 배를 자신의 몸으로 가볍게 누르며,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무슨 꿈을 꾸었기에 이렇게 땀을 흘려, 비비.”

“잠시…, 잠시 아이들에게 다녀올게요.”

“지금?”

비비아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잡을 새도 없이 몸을 일으켰다. 커다란 젖가슴이 이불 밖으로 비죽 고개를 내밀었다. 곧이어 낮은 언덕처럼 완만하게 솟은 배도 드러났다.

“비비아나….”

클로비스는 부드러운 살덩이를 쥐고 가볍게 흔들며 주물럭거렸다. 이완되어 꾹 누르면 그대로 팰 것처럼 부드러운 젖꼭지를 슬쩍슬쩍 긁어내자 비비아나는 앙칼지게 손등을 쳐 냈다.

“손대지 말아요!”

그녀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가운을 챙겨입었다. 허리를 묶고 머리칼을 대충 정리하자 클로비스도 따라 일어났다.

“아냐, 클로비스. 당신은 자고 있어요. 바로 옆인걸…. 잠시 갔다 올게요.”

그는 탄탄하고 늠름한 어깨에 부드러운 비단을 걸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같이 가달라고, 비비? 알았어. 영광이야.”

비비아나의 앞에 가서 서자, 그녀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부풀어 있는 성기를 손바닥으로 한 번 툭 두드리고는 끈을 매어주었다.

“더 만져 줄 생각은 없어, 비비?”

“시끄러워요. 시도 때도 없는 발정을 어떻게 다 받아 준담?”

클로비스가 허리를 껴안고 지분거리기 전에, 그녀는 얼른 방을 나섰다.

건넛방 문을 열고 쏙 들어가자 순간 두 쌍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빛났다. 밝은 빛을 싫어하는 아이들을 위해 그녀는 불을 켜지 않았다. 스르르 스르르 움직이는 소리에 잠시 멈춰 기다렸다.

서늘한 감촉이 발목을 슬쩍 감더니 위로 슬금슬금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느릿하지만 끈질기게 비비아나의 허벅지를 타고 올라왔다. 판판한 배를 타고 올라와 앙가슴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비록 남들이 보기에는 다 똑같은 실뱀이라도, 비비아나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대가리와 주둥이가 달랐고, 그녀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달랐다.

조그만 뱀 하나가 인사를 하듯 혓바닥을 내밀어 부드러운 살갗을 핥았다. 비비아나가 검지 끝으로 납작한 머리를 슬슬 긁어 주자 허리를 곧추세우고 잠시 감촉을 즐기더니, 슬금슬금 목을 감고 올라왔다

비비아나는 입술을 내밀었다.

실뱀은 얼른 붉은 입술에 자신의 주둥이를 가져다 댔다. 조그맣고 동그란 눈동자가 웃고 있는 듯 가늘어졌다.

비비아나는 제 목을 감고 있는 서늘한 비늘을 조심스럽게 툭툭 두드렸다.

“자고 있었니? 칼리엇?”

비비아나는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며 걸음을 옮겼다.

검은 뱀은 부드러운 목소리에 대답하듯 뺨에 제 몸을 문지르며 연신 몸을 비비 꼬았다. 비비아나의 따듯한 몸이 좋아 죽겠다는 듯 쉴 새 없이 쉭쉭 혀를 날름거린다.

“엄마가 좋아? 좋아서 그래?”

비비아나는 정신없이 비비적대는 아이의 목을 슬쩍 잡고 다시 입을 맞추었다.

“엄마의 공주님과 왕자님들, 어디 있을까?”

비비아나는 벌써 잠에서 깨고도 남았을 아이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다들 몸이 칠흑처럼 검어서, 그녀의 눈으로는 어둠 속에서 분간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주변에 모여들어 대가리를 치켜들고 있는 새끼들을 몇 번 밟고 난 뒤로부터는 먼저 아이들을 몸에 주렁주렁 매달고 움직여야 안심이 되었다.

“엄마의 여왕님, 셀리에! 공주님 헤본느! 아기 왕자님 바옌!”

비비아나가 다가오길 기다렸다는 듯 이번에는 셀리에가 철썩 들러붙어 그녀의 몸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허리를 지나 슬금슬금 등을 타고 오른다. 칼리엇은 누나의 성질을 익히 알기에 얼른 비비아나의 목을 감았던 몸을 풀고 슬금슬금 어깨를 타고 내려왔다. 비비아나는 등을 스치는 서늘한 감촉을 여상히 넘기며 방의 가장 안쪽, 가장 어두운 곳 앞에 섰다.

서늘하고 가는 뱀 한 마리가 비비아나의 발목을 감았다. 가장 마지막에 태어난 막내 바옌이었다. 바옌은 아직 낑낑거리며 위로 올라올 힘이 없어 발목이나 발등에 착 달라붙어 있는 것이 다였다. 셀리에는 비비아나의 얼굴이나 목을 감지 못하면 마구 성질을 부렸고, 칼리엇은 그런 누나의 등쌀에 못 이겨 팔뚝이나 가슴을 맴돌았다.

“헤본느.”

비비아나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헤본느의 침대에 손을 내렸다.

헤본느는 한 번 비비아나에게 세게 밟힌 뒤로, 얌전히 그녀가 안아 주기만 기다렸다. 조금 기다리자 조그만 실뱀이 기다렸다는 듯 엄마의 손을 타고 올라와 가는 팔뚝을 감았다.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보드라운 살갗에 제 냄새를 가득 묻혔다.

비비아나는 손을 들어 서늘한 비늘에 뺨을 비비고 입을 맞추었다. 헤본느가 잠시 조그만 대가리를 들어 눈을 마주했다가 다시 찰싹 팔뚝에 달라붙었다.

발에 한 마리, 팔에 두 마리, 그리고 목에 한 마리 매달고 있으니 어쩐지 몸이 무거워지는 기분이었다. 더구나 커다란 알까지 하나 배고 있는 상태니 오죽하랴마는….

“하….”

비비아나는 어쩐지 배부른 암컷 뱀이 된 기분으로 제 목을 감고 뺨에 머리를 문지르는 셀리에의 턱을 손톱으로 시원하게 긁어 주었다. 셀리에는 유난히 비비아나의 곁을 욕심냈다. 헤본느와 바옌은 터울이 많이 나서 아예 달려들지도 못하지만, 꼭 가까운 남동생에게 이를 세우고 쉭쉭 위협해댔다. 칼리엇이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오면 말이다.

그 와중에 칼리엇이 비비아나의 여린 팔뚝을 갉작였다. 이가 간지러운 모양이었다.

“앗, 따가워!”

비비아나는 기함하며 살에 이를 박고 있는 칼리엇을 슬쩍 떼어내고 팔뚝을 살폈다. 마치 조그만 포크로 쿡 찍어 놓은 것처럼 뚜렷하게 자국이 남았다.

물렁물렁하던 이가 단단해지기 시작했는지, 칼리엇이 평소처럼 물어뜯자 바늘에 찔린 것처럼 따끔했다.

“우리 칼리엇 벌써 이가 단단해지기 시작했어?”

이 조그만 검은 뱀의 독 한 방울에 거대한 황소도 그 자리에서 고꾸라진다는 것을 비비아나는 알고 있을까?

비비아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제 새끼가 예쁘다고 칼리엇의 이를 손끝으로 살살 긁었다. 검은 혀가 찰싹찰싹 손가락을 두드렸지만, 그저 언제 이렇게 이로 살갗을 뚫을 정도로 단단하게 자랐나 싶어 마음이 뿌듯해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제 배로 낳았다지만 팔불출이 따로 없었다. 처음 팔 개월 만에 커다란 알을 낳고서, 비비아나는 허여멀건 얼굴로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갓 배에서 나온 알은 물컹물컹하고 안이 조금씩 비치기도 했는데, 그 안에서 어떤 것이 꿈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알을 낳게 될 거라는 사실을 익히 들어 알고 있긴 했지만, 실제로 맞닥뜨리는 것은 정말로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첫 알, 그러니까 셀리에가 들어 있던 알을 낳고 나서, 클로비스마저 촉각을 곤두세우며 비비아나와 알을 주시했다.

혹시나 비비아나가 알에게 해를 가하거나, 아니면 자해할까 봐. 물론 비비아나는 첫 출산으로 정말로 힘이 빠졌을 뿐이고, 알을 낳자마자 바로 새끼를 만날 수 없다는 상태에 조금 실망한 상태긴 했다.

팔 개월 만에 태어난 알은 꼬박 이 개월 동안 비비아나의 애를 태우고서 쩍 소리를 내며 쪼개어졌다. 커다란 알의 크기에 비하면 정말 볼품없이 작았던 실뱀 한 마리가 기다렸다는 듯 대가리를 흔들며 비비아나를 찾았다.

클로비스가 조심스레 들어 올려 따듯한 수건으로 분비물을 닦았을 때, 셀리에는 작고 동그란 두 눈으로 비비아나만 바라보며 입을 벌렸다. 안아 달라고 보채듯이 말이다.

“이것들.”

“아, 로비.”

뒤늦게 들어선 로비는 조그만 실뱀 두 마리를 한 손으로 움켜쥐고 제 여자에게서 떼어 냈다. 그의 차가운 손이 닿자마자 새끼들은 손톱만 한 송곳니를 드러내고 쉭쉭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아무리 자식이라지만, 감히 왕에게 성질을 내며 이를 세우다니…. 로비는 어이가 없었지만, 제 씨로 비비아나가 낳은 자식이라 겨우 성질을 내리눌렀다.

뱀이라는 종족은 원래 부성애와 모성애가 뭔지 모르고 산다. 자신의 반려는 기가 막히게 챙기지만, 다들 자식 새끼들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본인들 모두 그렇게 자랐기 때문에 새끼들도 태어났으면 이후로는 알아서 살아남는 게 당연하지 않나 하는 것이다. 그래서 블랙 우드 숲에 실뱀을 모아 놓고 클로비스가 직접 관리하는 것 아니겠는가.

비비아나가 인간이라 그런지 유독 새끼에 대한 정이 각별했다. 클로비스는 그것에 맞추기 위해서 성질도 내리누르고 갖은 애를 쓰고 있었다. 비비아나는 클로비스가 저처럼 새끼에게 헌신적이길 원했다. 그러면 그로서는 아내에게 맞출 수밖에.

사랑받고 싶으니까 말이다.

“엄마한테 이 세우지 말랬지.”

로비가 칼리엇의 주둥이를 쥐고 아래위로 흔들자 그것은 고개를 양옆으로 도리질하다가 안 되겠는지 몸을 부풀렸다.

“아, 아이, 아파!”

순간 팔뚝만 하던 실뱀 두 마리가 사라지고 검은 머리 검은 눈을 가진 어린아이 두 명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칼리엇은 특히 반항적인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기까지 했다.

“하!”

로비는 얼른 칼리엇과 셀리에의 엉덩이를 받치고 떨어지지 않도록 든든하게 안아 들었다. 칼리엇은 제법 아팠는지 입술을 문지르며 우는 시늉을 했다. 칼리엇은 짜증을 내며 도리질했다. 아비를 노려보는 눈동자에 온기라곤 없었다.

셀리에는 부자의 투덕거림을 영 관심 없는 얼굴로 외면하고 비비아나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그녀가 태양이라도 되는 것처럼.

“힝…, 그렇지만 이가 간지러워. 막…, 막 긁고 싶어!”

칼리엇의 투정에 셀리에는 한숨을 내쉬며 눈을 흘겼다.

“그래도 엄마를 깨물면 어떡해! 너 바보야?”

“누나는 간지럽지 않아? 대단해, 어른처럼 잘 참아?”

동생의 반짝거리는 눈동자에 셀리에는 가슴을 쭉 내밀고 잔뜩 부풀렸다. 그러더니 제 아빠의 어깨를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으르르.’ 목을 긁으며 아빠를 힐끔 쳐다보았지만, 로비는 가소로운 이빨로 어깨를 물어뜯든 말든 살점을 뜯어내든 말든 영 관심이 없는 얼굴이다.

오히려 조그만 턱을 문질러 주며 피식 웃었다.

“간지러운데, 공주님.”

“거짓말! 나는 사나운 뱀이야! 내 송곳니는 무시무시하단 말이야! 내 독은…, 내 독은 아빠도 무너뜨릴 수 있어!”

로비의 단조로운 목소리에 셀리에는 다소 약이 올랐는지 송곳니를 박아 넣으며 꽉꽉꽉 살을 씹어대었다. 제 딸이 그러든 말든 로비는 이제 쳐다보지도 않고 반응도 하지 않았다. 붉은 이빨 자국이 간지럽다는 듯 벅벅 긁기나 했다.

“헤헤! 누, 누나 이빨은 너무 자, 작은가 봐! 귀여워! 셀리에 귀여워! 칼리엇은 용감해!”

셀리에는 아빠의 어깨에 매달려서 제 동생의 검은 눈동자를 노려보았다. 짧은 두 다리를 휘젓자 클로비스는 셀리에를 바닥에 조심히 내려주었다. 그녀는 얼른 달려가 커다란 알을 쓰다듬으며 기도하고 있는 비비아나의 다리에 매달렸다.

“엄마, 동생이 아파?”

비비아나가 손을 내밀자, 셀리에는 얼른 그것을 덥석 잡았다.

동생이 몇이건, 그것들이 아프건 말건 사실 셀리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기운을 풍기는 아비의 자식이라면, 아무리 약하더라도 어디에서 굶어 죽지는 않을 거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 어미는 달랐다. 이 말랑말랑하고 따듯한 어미는 달랐다. 숨 쉬는 소리마저 희미할 정도로 너무 여리고 약해서, 셀리에는 어미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렸다. 자신처럼 강하지 않았다.

이를 박아 넣으면 붉은 피를 흘리고 말겠지. 조금 더 큰 자신이 마음먹고 몸을 또르르 감으면 뼈가 우득 우드득 부서지고 말 것이다.

“나의 셀리에….”

알의 상태를 확인하고 기도를 마친 비비아나는 드디어 불안한 마음을 모두 내려놓고 자신의 첫째 딸을 안아 올렸다. 셀리에는 얼른 엄마의 목을 껴안으며 보드라운 뺨에 자신의 것을 비볐다. 엄마는 뜨거워서 기분이 좋았다.

“엄마, 무서웠어?”

“조금.”

비비아나는 눈앞에 있는 검은 눈동자 한 쌍을 바라보다가 매끄러운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동생이 아프면 엄마가 슬퍼?”

셀리에가 진지하게 물었다.

“무서워, 셀리에. 엄마는 너희 중 하나라도 잘못될까 봐 너무 무서워.”

비비아나는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는 듯 어깨를 떨었다.

“하지만…, 하지만 저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알인걸.”

셀리에는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약한 건 먹히는 게 당연한 건데….”

비비아나는 고개를 저으며 아이의 코끝에 입을 맞추었고, 셀리에는 기분 좋게 키스를 받으며 비비아나의 목을 끌어안았다. 제 어미의 한쪽 팔뚝에 턱 하니 감겨 있는 헤본느를 거칠게 잡아당겨 땅바닥에 패대기치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았다. 비비아나는 저희끼리 싸우는 것을 무척이나 슬퍼했으니까.

“여기는 야생이 아니야, 셀리에. 엄마는 너희를 짐승처럼 키우지 않았어. 너희에게는 형제 남매가 있고,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어. 우리는 함께야, 셀리에.”

“함께?”

비비아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목을 슬쩍 긁어 주자 아이는 눈을 질끈 감고 몸을 떨었다. 유난히 목 밑을 긁어 주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다.

그것을 보고 있던 칼리엇이 엉덩이를 들썩거리더니 결국에는 소리를 빽 지르고 말았다.

“나, 나도…! 나도 어, 엄마…! 으, 으, 으아아앙!”

“칼리엇, 누나가 먼저 안겼으니 조금만 기다렸다가 차례를 지키자. 엄마는 너무 작아서 우리 귀염둥이들을 한 번에 못 안아줘요.”

클로비스가 작은 등을 두드리고 뺨에 입을 맞추며 아이를 달랬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도 않으면서 거짓 울음을 울고 있던 칼리엇은 금방 방긋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다시 한번 포동포동한 뺨에 입을 맞추고 코끝을 비볐다.

“무슨 꿈을 꿨기에 그래, 비비?”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허리를 끌어안자, 셀리에의 엉덩이를 두드리고 있던 비비아나가 로비의 어깨에 머리를 툭 기댔다. 커다란 손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부드러운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알이 흔들리더니 갑자기 쪼개지는 거야…. 안을 들여다보았더니 텅 비어 있는 것 있죠. 너무 놀라서….”

“쉬…, 괜찮아.”

클로비스는 비비아나를 달래면서도 그녀의 품에 안겨 있는 셀리에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발칙하게도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동생을 삼켜 흡수하려고 한 제 딸에게 엄한 눈초리로 경고했다. 네가 무슨 짓을 하든지 상관없지만, 그것이 비비아나를 슬프게 하는 것이라면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아서 말이다.

셀리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휙 돌렸다.

알에서 셀리에의 페로몬 냄새가 덕지덕지 진동했다. 분명히 알을 감싸고 이를 박아 넣었을 것이다. 그러니 기겁한 새끼가 알에서도 비비아나에게 도움을 요청한 거겠지.

가증스럽게도.

“한번 만져봐요, 클로비스. 정말 아무 문제 없는 건지.”

비비아나가 클로비스의 등을 떠밀었다. 그녀는 제 가슴을 주무르며 가물가물 눈을 감았다 뜨는 아이의 매끄러운 이마에 코를 대고 고소한 젖냄새를 흠씬 들이마셨다. 불안한 마음을 감추듯 아이를 꼭 껴안고 자신의 심장 소리를 꾹 눌렀다.

“하아암!”

“잠 오지, 셀리에? 어서 자렴.”

“뽀뽀….”

비비아나는 아이의 입술에 얼른 자신의 입술을 꾹 찍었다.

“잘 자렴, 내 사랑.”

셀리에는 어미의 온기에 넋이 나가 해롱해롱하다가 금세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비비아나는 얼른 아이를 침대에 내려놓고 두꺼운 이불을 덮어주었다. 매끄러운 이마를 손바닥으로 쓱쓱 닦아 내고 입을 맞추었다. 아이는 입을 헤 벌리고 잠들었다. 동그란 이불이 풀썩 내려앉더니 잠든 실뱀 꼬리가 도르르 말린 채 툭 튀어나왔다. 그것은 천천히 꼼지락거리다가 움직임을 멈췄다. 완전히 잠에 빠져들었다.

“자, 칼리엇. 이리 온, 엄마한테 와.”

비비아나가 손을 내밀자 조그만 아이는 엉덩이를 들썩이며 좋아했다.

“내 왕자님, 착하기도 하지…. 차례를 기다렸구나.”

칼리엇의 포동포동한 엉덩이를 받쳐 들고 비비는 또다시 아이를 재우려고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클로비스를 쏙 빼닮은 아이는 비비아나의 어깨에 뺨을 문지르며 천천히 노곤한 숨을 내쉬었다.

“따뜻해…. 엄마, 좋아…. 칼리엇은…, 엄마가 좋아….”

앙증맞은 입이 천천히 벌어지고 커다란 눈이 점점 닫혔다. 곧 아이의 몸에서 힘이 축 빠졌다. 뒤로 넘어가려는 칼리엇의 고개를 받치자, 아이는 슬그머니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뭔가 이상한 거 있어요?”

“전혀.”

알을 이리저리 살피고 자신의 기운까지 불어넣은 클로비스가 손을 떼고 고개를 굳게 저었다. 하마터면 제 누이에게 그대로 삼켜질 뻔했다는 것을 알기라도 하듯 알은 다소 겁을 먹은 상태였다. 실뱀이 안에서 덜덜 떨고 있었다. 그의 힘을 불어넣고 나서야 진정했는지 떠는 것을 멈췄다.

“정말?”

비비아나는 영 미심쩍은 얼굴이다.

“응, 정말. 아무런 문제 없어, 비비. 당신이 계속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서 그런 걸 테니 정말 걱정하지 않아도 돼.”

셀리에는 오늘 일로 비비아나가 그녀를 비롯한 다른 뱀의 안전에 얼마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지 충분히 이해했을 테니, 더 이상 막냇동생을 산 채로 삼키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금세 배우는 영특한 아이니 말이다.

커다란 손바닥이 둥근 배를 쓸자 비비아나는 그제야 깊은 안도를 느꼈다. 제 옆에 선 남자의 가슴팍에 등을 기대고 몸을 이완시켰다.

“하….”

“아이만 가지면 겁쟁이가 돼요, 비비.”

“놀리지 말아요.”

“내 새끼가 약할 리가 없다니까…. 사막에 떨어뜨려 놔도 살아 돌아올 거야, 비비. 너무 애 취급하지 말라고.”

비비아나는 매서운 눈길로 뱀의 왕을 노려보며 몸을 홱 돌렸다. 마치 그에게서 조그만 칼리엇을 보호하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클로비스는 그것이 어이가 없으면서도, 제 새끼를 품에 안고 경계하는 비비아나의 모습이 기꺼워서 빙그레 웃었다. 칼리엇은 깊게 잠들었다. 아이를 그녀의 품에서 받아들고 침대에 뉘자, 칼리엇은 순식간에 뱀으로 변해 몸을 둘둘 말았다.

비비아나는 있는 듯 없는 듯 고요하게 손목과 발목을 차지하고 있는 헤본느와 바옌을 슬그머니 떼어내 각기 침대에 뉘었다. 셀리에와 다르게 조용한 헤본느마저 비비아나에게서 떨어지는 것이 싫은지 잠시 머뭇거렸다. 아직 인간화를 할 수 없는 어린 새끼들은 열이 펄펄 나는 이불 속으로 순식간에 꾸물거리며 기어서 들어갔다.

클로비스는 조그만 실뱀을 두꺼운 이불로 덮고 열난로의 온도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비록 이 가증스러운 새끼 뱀 네 마리는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사막에서도 살아남을 것이지만. 당장이라도 맹독을 뿜으며 거대한 짐승의 목을 물어뜯을 수 있는 사악하고 용맹한 것들이지만 말이다.

귀엽게도, 지금 당장은 제 어미에게 약한 척을 하고 싶어 하니까.

클로비스는 향후 몇 년간은 그 장단에 발을 맞추어 주기로 했다. 적어도 비비아나가 이 소꿉놀이에 싫증을 낼 때까지만이라도. 하지만 자식 욕심이 대단한 제 여자는 지치지 않을 것 같다. 그는 자꾸만 뒤를 힐끔힐끔 돌아보는 비비아나의 몸을 껴안고 천천히 방을 나섰다.

달칵 문이 닫혔다.

뱀 네 마리와 알 하나가 잠들어 있는 방 안에는 서늘한 침묵이 흘렀다.

<검은 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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