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98번의 밤
“이것은 아가씨께 드리는 계약의 세부 사항입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집사가 내미는 서류를 받아 든 비비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그녀는 자신에게 배정된 어마어마하게 화려한 방에 한번 기가 죽은 상태였다.
도에테 백작과 백작 부인의 침실도 이렇게 화려하지는 않았다. 마치 이곳은 황제와 황후가 기거하는 침실처럼 웅장하고 화려했다.
그녀는 가만히 그것을 펼치고 내용을 읽었다.
1. 비비아나 빈홀프(이하 갑)는 나흘에 한 번, 지정된 곳에서 밤을 보낸다. 그날, 갑은 누구와도 말을 섞어서는 안 되며 제공되는 식사와 차를 제외하고 일절 입에 대지 않는다.
2. 갑은 지정된 장소에서 밤을 보내고 사흘 동안 블랙 우드 숲의 호수에 몸을 담가 몸을 씻어 낸다. 가장 중요한 일이므로 절대로 거르거나 허투루 하지 않는다.
3. 백 번의 밤을 보내고 나서 클로비스 빈홀프(이하 을)와 결혼식을 올린다. 그전까지 갑과 을은 만날 수 없다. 갑은 을의 행방을 묻거나 궁금해하지 않으며 만남을 요구하지 않는다.
4. 갑과 을의 이혼은 불가하다.
5. 갑은 어떤 일이 있어도 공작가를 떠날 수 없다.
6. 을은 갑이 사인하는 즉시 뒷장에 첨부된 광산과 저택의 명의를 즉각 갑의 앞으로 정리하여 이틀 안에 결과를 갑에게 명시한다.
7. 공작 부인의 품위와 전반의 운신을 위하여, 을은 갑에게 매달 천오백만 페르나를 내탕금으로 지급하며, 내탕금의 운용은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8. 이 일은 절대 기밀을 유지한다.
몇 개 안 되는 조항을 스르륵 다 읽고 비비아나가 고개를 들었다.
“몇 개 되지 않네.”
“네, 도에테 가문에서도 이혼은 없다고 못 박았으니 지키기 어려운 조항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마님께서는 어떠실까요?”
비비아나는 그저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눈동자를 하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여섯 조항에 오십이억 페르나를 썼으니, 꼭 지켜줘야겠지.”
“그런 의미로 드린 말씀은 아니었습니다만 실제 금액은 그것의 대여섯 배를 훌쩍 웃돕니다.”
집사는 몇 개의 조항을 짚으며 진지하게 대꾸했다.
비비아나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마어마한 현물과 금액이 적혀 있으나, 평생을 빈한하게 살아온 그녀로서는 규모를 짐작하기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걱정하지 마시게. 다행히도 다 내가 지킬 수 있을 것 같으니.”
집사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그는 비비아나의 흔쾌한 긍정이 정말로 기쁜 듯 희미한 미소까지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는데, 무시무시한 빈홀프의 수문장이라는 소문을 듣고 왔던 비비아나에게는 다소 의외였다.
그는 머리가 반백인 것을 제외하면 꽤 젊고 단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심술보가 달라붙어 있지도 않았고, 잔악하거나 비열한 얼굴도 아니었다. 목소리도 단정했고,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는 비비아나의 긴장을 어루만져 주기도 했다.
“소문이란 게 참 믿을 만한 것은 못 되는군….”
“예?”
비비아나가 피식 웃으며 절레절레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아닐세.”
새로운 주인의 안색이 나쁘지 않아 뵈자, 그는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보더니 씩 웃었다.
“그럼 우선 너무도 연약하신 우리 마님을 좀 살찌워 볼까 하는데…. 즐겁게 응해 주시겠습니까?”
집사는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그녀에게 한 손을 내밀었는데, 비비아나는 그이의 하얀 이를 보며 이유 모를 한기를 느껴야 했다.
통통하게 살찌워 한입에 꿀꺽 잡아먹을 것만 같은 그런….
그녀는 퍼뜩 고개를 저으며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짧은 생이지만 한평생을 신의 자녀로서 살았는데 이런 선입견에 찌들어 있다니. 자신의 부족함과 편협함에 고개를 저으며.
“아….”
비비아나의 작은 손을 정중하게 붙잡은 집사가 눈에 띄게 몸을 떨었다. 그녀의 손을 당장이라도 놓고 멀리 떨어지고 싶은 것 같기도 했고, 당장이라도 움켜쥐고 싶은 것 같기도 했다.
그녀는 떨리는 손을 꽉 붙잡으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아니, 아닙니다. 마님께서는 참 따듯하신 분이로군요.”
비비아나는 의미 모를 말을 흘려 넘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비비아나는 덜덜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거대한 침대에 누웠다. 온몸을 누르는 무거운 이불로 벗은 몸을 감싸자 미친 듯한 불안감이 조금 가시는 것 같았다. 동그랗게 뜬 두 눈만 빼고 전신을 가리고 나서야 이제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불안함으로 번득이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가 주변을 살폈다. 탁 트인 개방적인 곳이었고 사람이 숨을 만한 공간도 없었다. 그녀가 들어온 문 하나가 유일한 통로인 셈이었는데, 그 문은 밖에서 잠금쇠로 잠그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들어올 만한 여지는 없었던 셈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비비아나는 다소 공포에 질려 몸을 둥그렇게 말았다. 뜨끈한 차가 들어가자 몸에 훈기가 돌았다. 긴장이 풀리자 절로 졸음이 몰려들었다.
숨겨진 비밀 통로가 있어서 그리로 누군가 불쑥 들어오는 걸까. 숨을 곳 하나 없고 문도 꼭꼭 걸어 잠근 이곳에서 대체 무슨 짓을….
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곧 무겁고 깊은 잠의 그림자가 그녀의 목덜미를 콱 물었다.
‘…비. 비비…, 비비아나.’
‘흣!’
깜짝 놀란 비비아나가 번쩍 눈을 떴다. 처음 듣는 낮고 부드러운 음성이 그녀의 귀를 매만지고 있었다.
‘깼나?’
눈앞에 검은 한 쌍의 검은 눈동자가 있었다.
비비아나는 이불을 꼭 쥐고 모로 누워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낯선 남자의 눈동자를 멍하니 응시했다. 남자의 붉은 입꼬리가 슬그머니 움직이자 정신을 차리고 얼굴을 붉혔다.
‘누, 누구….’
커다란 손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비비아나의 가슴을 덮은 이불 위를 툭툭 두드렸다.
깜짝 놀란 비비아나가 얼른 몸을 뒤로 물렸으나, 그는 그다지 개의치 않는 얼굴이었다. 그저 팔꿈치를 세우고 주먹에 제 얼굴을 괸 채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남자는 아름다웠다. 완연히 남성의 얼굴이었으나 말로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미려함과 야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선명한 검은 머리칼과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 가지런한 눈썹. 왠지 처연해 보이는 눈물점과 우뚝 솟은 콧대, 그리고 붉은 입술에 자꾸만 눈이 갔다. 가운 사이로 슬쩍슬쩍 드러나는 탄탄한 어깨와 가슴팍 같은 것들이….
‘누, 누구….’
‘로비.’
‘로비?’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말없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는데, 비비아나는 마치 그것을 거부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당위성을 느끼며 그 손을 마주 잡았다.
차가웠다.
‘하…. 뜨거워.’
비비아나의 손을 잡은 그가 눈을 감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천천히 다시 드러난 검은 눈동자에는 숨길 수 없는 만족감과 충족감이 가득했다.
‘몸이…, 몸이 녹을 것 같아. 드디어…, 드디어 이 얼음장 같은 추위에서….’
커다란 손이 따끈따끈한 허리춤을 감싸 안았다. 그녀의 몸이 스르르 끌려갔다. 단단한 몸이 부들부들하고 보들보들한 몸을 꾹 누르자 절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아…!’
‘비비아나.’
‘으, 으응…?’
그녀는 순식간에 남자의 품에 안기게 된 자신의 상태를 알고서도 딱히 앙탈을 부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는 전혀 위험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의 마른 등과 조그만 엉덩이 그리고 쏙 들어간 허리를 쓰다듬는 커다란 손바닥을 느꼈으면서도.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보드라운 맨살을 마치 제 것처럼 점령해서, 당당하게 매만지는 무도한 손바닥에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못했다.
언제나 자신을 괴롭히던 뜨거운 열기가 그의 손이 닿을 때마다 스르르 스르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으므로. 항상 건조하고 더운 사막에 홀로 서 있는 것 같던 비비아나는 처음으로 상쾌함이라는 것을 느꼈다. 시원했고 오랜 갈증이 내려간 듯 후련했다.
‘비비아나. 비비아나…. 역시, 역시 당신은 내 짝이었어. 그렇지? 나를 이 얼음 속에서 꺼내주려고. 나를 녹여주려고….’
남자는 취한 듯 중얼거리며 느릿하게 웃었다.
비비아나의 투명한 눈동자가 절로 붉은 입술을 향했다.
남자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그녀의 이마에 슬그머니 입 맞추었다.
‘아!’
비비아나의 미약한 놀람을 무시하고, 그는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에도 슬며시 입술을 내렸다.
검은 눈동자를 가까이에서 마주한 비비아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그의 눈동자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그 깊은 어둠은 그녀를 삼키고 안온하고 고요한 침묵으로 감싸줄 것 같았다.
서늘한 입술이 또다시 그녀의 뺨을 쓸었다.
‘하….’
그녀는 눈을 감고 매끄럽고 부드러운 촉감을 즐겼다. 남자가 귓가에서 쿡쿡 웃음을 짓자, 부드러운 숨결이 그녀의 귓바퀴를 쓸고 귓구멍을 훑었다.
귓가에 솜털이 바짝 섰다.
‘너무 오래 기다렸어.’
‘나, 나를요?’
‘그래, 너를. 내 반려를…. 내 심장을.’
서늘한 숨결이 그녀의 코끝을 간질이고 입술로 내려왔다.
비비아나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뻐끔거리며 뭔가 닿지 않아 애타는 심정을 달랬다. 그의 윗입술이 슬쩍 스치자 척추를 타고 짜릿하게 전류가 흘렀다.
‘아…, 읍!’
애타게 비비아나의 입술을 슬쩍슬쩍 스치던 그가 마침내 격렬하게 몸을 붙이며 그녀의 목을 꺾었다. 벌어진 입 사이를 파고들며 서늘한 자신의 혀를 찔러 넣었다.
‘아, 아읏!’
그녀의 벗은 몸을 연신 무도한 폭군처럼 쓰다듬더니, 한쪽 허벅지를 들어 올려 자신의 허리를 감싸게 했다. 벌어진 밑에 바람이 돌아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서늘했다. 남자는 온몸이 다 서늘했다.
‘하, 비비아나….’
‘으, 으읍!’
비비아나는 자신의 안을 폭력적으로 휘젓는 남자의 혀를 느끼며 그의 어깨를 조그만 주먹으로 콩콩 두드렸다. 숨이 모자랐다.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그는 비비아나의 숨을 약탈하듯 갈취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밀어 넣었다. 뜨거운 입속을 미친 듯이 헤집고 조그만 혀에 자신을 비벼 댔다. 그녀를 삼키고 조그만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손자국이 남을 정도로 꽉 쥐고 주물럭거리며 단단한 어떤 것을 배에다 느릿하게 치댔다.
‘그, 그만…! 그만!’
비비아나는 겨우 입술을 떼어 내고 참았던 숨을 헉헉 몰아쉬었다. 그는 자신 때문에 붉어진 입술을 이글이글 타오르는 듯한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이, 이게….’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제 입술을 가리며 중얼거렸다.
이것은 감히 상상도 해 본 적 없던 일이었다. 남자와 입을 맞추고 혀를 섞는 일 따위…. 도에테 백작의 집무실에 불려 가 온기를 느끼기 위해 외고 또 외웠던 바로 그 불결하고 추잡한 색사. 남자와 여자를 타락시킨다는 교합이었다!
‘뜨겁고 부드러워, 비비아나.’
남자의 손은 끊임없이 부드러운 여체를 만지고 쓰다듬고 있었다. 그는 어딘가 취한 듯 몽롱한 목소리로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녹을 것 같아…. 따듯해. 따듯해, 비비아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 끝이 어딘가 축축 늘어졌다.
‘비비아나…, 내 여자. 내 반….’
비비아나는 심한 탈력감을 느끼며 스르르 눈을 감았다. 아니 저절로 눈이 감긴 것에 가까웠다. 뭔가 갈취당한 것처럼 피곤이 몰려왔다. 자신의 귓가에서 계속해서 속삭이는 낮은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그녀는 잠을 청했다.
‘내 암컷.’
그저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고 치부하며.
곧 비비아나는 색색거리며 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
비비아나는 오늘도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자면서도 자신이 곧 눈을 뜰 것을, 그리고 그 옆에는 검은 머리 검은 눈의 남자가 있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비비아나는 이 방에서 잠들 때마다 더럽고 음란한 물소리와 흥분한 냄새가 피어오르는 꿈을 꿨으니까.
그것이 벌써 스무 번이 넘었다.
그의 이름은 ‘로비.’ 이상하리만치 아름다운 그 사내는 그녀의 몸에 꿀을 발라 놓은 것처럼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빨고 핥았다.
바로 지금처럼.
‘으응…. 로비?’
비비아나의 목소리 끝이 뚝뚝 밑으로 떨어졌다. 무겁고 진득해서 귀에 흔적을 새기는 그런 야한 목소리였다.
‘하읏!’
서늘하고 촉촉한 입술이 매끄러운 어깨를 핥고 짙은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그녀의 부름에 답할 생각은 없는 듯, 그것은 툭 튀어나온 경추를 쓰다듬고 천천히 밑으로 내려갔다. 척추를 따라 서늘한 입술을 미끄러뜨리자 허리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비비아나는 머리를 치켜들며 입을 크게 벌렸다.
‘흐, 흐읏…. 이, 이상해요….’
그녀는 요즘 몰아치는 새로운 감각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것은 도에테에 있었던 시절에는 감히 상상해 본 적도 없었지만, 지금 그녀를 무엇보다도 달뜨게 하고 흥분시키는 야릇한 감각이었다.
‘아읏, 로비!’
비비아나는 짧은 숨을 들이켜며, 남자의 혀가 자신의 등을 뾰족하게 쓰다듬는 것을 느꼈다. 등허리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의 젖은 입술이 뜨거운 입맞춤을 남길 때면, 그 세차게 빨아 대는 소리에 귀가 녹을 것 같았다.
‘하, 비비…. 더 크게 울어 봐. 내 암컷….’
‘로비, 나, 더….’
비비아나는 자신의 속마음이 당장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아 입을 꾹 다물었지만, 그는 흐릿한 목소리를 재주도 좋게 들어 버렸다. 커다란 손으로 젖무덤을 움켜쥐고 재촉했다. 붉은 젖꼭지를 손가락 사이에 넣고 강하게 비비자 끝이 찌릿찌릿 울었다.
‘응? 비비아나, 방금 뭐라고 했지?’
‘아, 아니….’
비비아나가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지만 남자는 포기할 마음이 없었다. 툭툭 튀어나온 갈비뼈를 혀끝으로 쓰다듬으며 질 낮은 장난을 쳐 댔다.
‘아, 아응! 하으…, 로, 로비….’
남자는 제가 깨물면 깨물리는 대로, 빨면 빨리는 대로 족족 반응하는 여자의 예민한 몸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는 움찔거리는 허리를 꽉 붙잡고 날씬한 옆구리에 이를 세워 긁어내렸다.
‘아아앗!’
비비아나가 고개를 치켜들고 비명을 질렀다. 새하얗던 몸은 금방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가 느끼는 감각이 얼마나 뜨겁고 거대한지 누구라도 알 수 있을 만큼.
그것을 내려다보는 남자의 검은 눈동자에 진득한 만족감이 번들거렸다.
‘비비, 왜 자꾸 엉덩이를 흔들지?’
커다란 손바닥이 포동포동한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응?’
거친 손바닥이 아프지 않게 살덩이를 찰싹 두드리자, 비비아나는 대답도 하지 못하고 몸을 바르르 떨었다.
로비의 말이 사실이었다.
비비아나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의 손과 입술이 주는 쾌락에 빠져, 엉덩이를 슬금슬금 흔들어 댔다. 마치 그 안에 숨겨진 어떤 것이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처럼.
‘허벅지가 축축해, 비비. 물을 줄줄 흘렸어. 내 좆을 받아먹으려면 아직 멀었는데 어쩌지…. 이렇게 좆을 졸라대서야.’
‘아, 아니….’
입술을 깨물고 흐릿한 신음을 삼키며 그녀가 겨우 부정했다.
뒤에서 로비가 킥킥 웃으면서 엉덩이를 한 움큼 베어 물었다.
‘읏! 로, 로비…. 거긴….’
‘아니야? 뭐가. 뭐가 아닌데.’
그의 손가락이 허벅지 사이로 파고들었다. 거칠고 단단한 손이 비비아나의 마른 허벅지를 벌렸다. 엉덩이가 푸딩처럼 흔들렸다.
‘로, 로비! 어, 어떻게 거길….’
베개에 붉은 얼굴을 파묻고 흐느끼고 있던 비비아나가 눈을 부릅떴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떨리는 눈동자로 그를 뒤돌아보았다.
남자는 여느 때처럼 음탕하고 난잡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물점이 예쁘게 움찔거렸다. 둥글게 휘는 남자의 눈꼬리가 그녀의 말문을 턱 막아버렸다.
비비아나는 자신의 허벅지를 벌리고, 그 사이를 문지르는 남자의 무도한 손가락을 느끼며 파르르 눈을 감았다.
‘하, 하읏….’
뭉툭한 손끝이 음모를 헤치고 젖은 살을 벌렸다. 그녀가 흘린 물로 흥건한 곳을 위아래로 길게 문지르자 비비아나는 당장이라도 졸도할 것처럼 놀라 버리고 말았다.
그곳을 매만지다니! 몸을 정결케 할 적에도 제대로 손대지 않은 곳인데. 그곳에 손을 가져다 대는 것만으로도 죄악의 냄새가 흐를까 봐, 감히, 감히 손으로 매만져 본 적도 없던 그런 은밀한 곳을….
‘하읏! 아, 아응…. 아읏!’
‘여기가 제일 뜨겁네, 비비.’
남자는 그녀의 부드러운 몸을 연신 쓰다듬으며 갈라진 곳을 뭉근하게 문질러 댔다. 손가락이 스칠 때마다 구멍이 팔딱 놀라 뻐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당장이라도 제 몸을 스치는 손가락을 물고 빨아 당기고 싶다는 듯 입을 크게 벌려 댔다.
비비아나 도에테는 깨닫고 말았다. 신이 금지하는 음란하고 불결한 행동은 이다지도 대단한 것이었다.
등 뒤를 타고 찌릿한 감각이 흐르고, 있는지도 몰랐던 자궁이 기대로 몸을 덜덜 떨며, 당장이라도 뭔가를 사타구니 사이에 끼우고 밑을 비비고 싶은 이 짜릿한 감각을!
‘로, 로비…. 이, 이상…, 하읏! 아앙!’
거친 손가락이 통통하게 부풀어 오른 살점을 꽉 누르고 문대자, 그녀의 몸이 절로 굳어 버렸다. 그녀는 흥건한 물을 뚝뚝 흘리며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뜨거운 것이 달콤하고 야한 향기를 풍기며 허벅지를 타고 천천히, 천천히 미끄러지고 있었다.
비비아나는 저도 모르게 엉덩이를 치켜들었다. 자신의 뒤에 로비의 검은 눈동자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엉덩이를 뒤로 빼고 가는 허리를 휘며 그의 코앞에 벌름거리는 구멍을 들이밀었다.
‘당신 구멍이 움찔움찔 몸을 떠는데….’
‘아, 아응!’
그녀는 격정을 이기지 못하고 커다란 가슴을 움켜쥐었다.
‘흑!’
두 손으로 살덩이를 움켜쥐고 마구 주무르며, 그의 손에 밑을 마구 비볐다. 엉덩이를 마구 흔들며 앙앙댔다.
부족해. 너무나도 부족해. 뭔가, 뭔가 더 거대한 것이…. 비명도 지르지 못할 만큼 거대한 것이 필요해!
비비아나는 제 젖꼭지를 마구 주무르며 흐느꼈다.
로비의 눈동자에 열기가 어린 순간이었다.
‘아….’
비비아나의 몸에서 힘이 축 빠졌다. 엉덩이를 한껏 치켜세우고 구멍을 벌름거리고 있던 그녀가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천천히 무너졌다.
뒤에서 로비가 한숨을 쉬며 혀를 찼다.
‘제길, 벌써….’
비비아나는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할 정도로 밀려오는 잠기운에 꼬르륵 빠져 가라앉고 말았다.
‘비비, 하…. 날 말려 죽이려고 작정….’
그것으로 그날의 꿈은 끝이었다.
***
‘로비…?’
비비아나는 약한 흥분으로 떨리는 제 몸을 느끼며 천천히 잠에서 깼다. 분명 뭔가 부드럽고 촉촉한 것이 자신을 쪽쪽쪽 빨아 댔다. 눈을 비비며 양옆을 돌아보았지만, 남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로, 로비?’
그녀는 제 밑에서 들려오는 물소리에 얼른 이불 속을 들췄다. 아니나 다를까, 커다란 남자가 그녀의 다리를 벌리고서, 잔뜩 달아올라 꿀물을 줄줄 흘리는 가랑이 사이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비비, 깼나?’
로비는 야하게 눈가를 찡긋거리며 다시 그녀의 밑을 빨기 시작했다. 검은 눈동자는 비비아나의 은빛 눈동자에 못 박힌 듯 고정되어 있어서, 그녀는 그 시선을 외면할 수 없었다. 야살스러운 미소에 심장이 펄떡거렸다.
그는 보란 듯이 비비아나의 다리를 더 넓게 벌리고 붉은 혀를 꺼내어 틈을 길게 핥았다.
‘흐, 흐읏….’
서늘하고 축축한 혀가 밑을 뾰족하게 핥아 올리자 절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비비아나의 도톰한 살점을 옆으로 잡아 벌리고 그 안을 혀로 쿡쿡 찌르고 긁으며 맛을 보고 있었다. 넓게 혓바닥으로 밑을 핥기도 하고, 벌름거리고 있는 구멍을 약 올리듯 쿡쿡 찌르기도 하고.
‘흐, 흐읏…! 아응, 아! 아으…, 로비이….’
비비아나는 다리를 더 넓게 벌리며 엉덩이를 슬쩍 들어 올렸다. 그의 혀가 자신을 빨고 쓰다듬기 편하도록 말이다.
그녀의 틈에 입술을 댄 채 남자가 키들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서늘한 입김에 몸을 부르르 떨며 그녀는 자신의 손가락을 이로 꽉 물었다. 잇자국이 나도록 깨물어도 잇새로 새어 나오는 신음은 막을 수가 없었다.
‘아, 아응! 로비, 나, 너, 넣어….’
‘내 혀로 부족한가, 비비? 뭐가 필요하지, 응? 더 큰 게 필요한가?’
‘그, 그게 아니라….’
비비아나가 약하게 도리질했다.
부족했다. 셀 수 없이 많은 밤을 보내며 그의 애무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그녀로서는, 그저 밑을 혀로 빨고 쑤시는 것은 이제 너무도 부족했다! 벌름거리는 구멍이 가려웠다. 그 안이 가려웠고, 덜덜 떨리는 자궁이 근질거렸다.
뭔가 크고 뜨거운 것으로 그녀의 밑을 긁어 줬으면…. 거대한 것으로 뻐끔거리는 구멍을 푹푹 쑤시고 틀어막아 줬으면…. 음탕한 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 밑을 찢고 벌려 줬으면…. 덜덜 떨고 있는 자궁 깊숙이 찌르고 들어와 내벽을 시원하게 쑤셔 줬으면….
아아, 제발….
‘로비, 제발!’
그는 새된 비명에 응답하듯 밑을 더 급하고 세차게 쭉쭉 빨아 댔다. 비비아나의 살점이 찢어지도록 빨아 당기며 슬쩍 굵은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하, 하윽!’
비비아나는 두 다리를 넓게 벌린 채 엉덩이에 힘을 잔뜩 주었다. 조그만 발로 남자의 단단한 어깨를 꾹 누르고, 몸을 덜덜 떨었다. 동그란 턱이 하늘을 향했다.
‘하, 하으…. 아, 아응! 아, 아읏.’
마디가 굵은 손가락이 그녀의 구멍을 스치며 안팎을 드나들었다. 매끄러운 내벽을 세게 문지르고 휘저으며 혼을 쏙 빼놓았다.
비비아나는 턱을 치켜든 채 입을 크게 벌리고 끙끙 앓았다.
‘흐, 흣…. 로비, 로…. 아응!’
로비는 구멍을 벌리듯 그녀의 안에 손가락을 하나 더 밀어 넣었다. 굵은 마디에 구멍은 이미 제 모양을 잃고 늘어났다. 그것은 손가락을 끊어 낼 듯 꽉꽉 물고 씹으며 안으로, 더 깊숙이 빨아 당겼다.
‘하…, 비비. 이 구멍이 내 좆을 빤다고 생각하니 당장이라도 쌀 것 같아. 당신 구멍에 내 좆이 들어가면….’
‘조, 좆?’
비비아나 도에테는 맹세코 그런 천박한 단어를 입에 담아 본 적은 처음이었다.
‘그래, 내 좆. 당신 구멍을 찢고 들어갈 내 좆.’
그는 쉬지 않고 그녀의 밑을 푹푹 쑤시며 천천히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녀의 판판한 배에 입을 맞추고 배꼽을 혀끝으로 마구 쑤셨다.
‘아읏!’
옆구리를 세게 빨아 당기고 핏빛 자국을 남기며, 조금씩 조금씩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마침내 발딱 솟아 있던 붉은 정점을 콱 물어뜯었다.
‘하악!’
비비아나는 기다렸다는 듯 소리 질렀다.
‘아, 아읏! 더, 더 세게! 더 세게 빨아 줘요, 로비!’
그가 그 애원과 구걸에 응답하듯 통통한 젖꼭지를 세차게 빨기 시작했다. 폭력적일 만큼 세찬 움직임이었다. 그의 입 안으로 쭉쭉 빨려 들어갈 때마다 젖꼭지 끝이 찌릿찌릿했다.
로비는 한 손으로 제가 빨고 핥지 못하는 가슴을 꽉 움켜쥐고 엉망으로 주물렀다. 푸딩처럼 부드러운 살덩이에 새빨간 손자국이 남을 때까지. 비비아나의 몸에서 흘러넘치는 뜨거운 온기를 온몸으로 흡수하며, 그렇게 제 욕심을 양껏 채워 댔다.
‘아, 아응! 로비, 아으읏…. 나, 나…! 모, 못…!’
살덩이에 붉은 꽃잎을 새기고 있던 클로비스 빈홀프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투명한 은빛 눈동자를 마주 보았다. 그 안에 비치는 검은 뱀의 대가리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싸, 비비. 내가 다 빨아 먹어 줄 테니까.’
‘하, 하응…. 아응! 아, 아아아…!’
비비아나는 그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참고 있던 흥분의 끈을 놓아 버렸다. 그녀에게서 흐른 물이 그의 손으로 줄줄 흘렀다. 그녀의 안을 쑤시고 있던 그의 손가락을 꽉 물고 놓아주지 않으며 마구 몸을 뒤틀었다.
‘하, 하으….’
‘사랑스러운 내 암컷…. 비비, 다음에 봐.’
참고 참았던 긴장을 놓아 버린 그녀의 몸이 침대에 축 늘어졌다.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을 핥아 대는 남자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으며 잠에 빠져들었다.
***
비비아나는 천천히 쾌락에 눈떴다. 자신을 매만지는 남자에게 길들여지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때때로는 입술이 부르트도록 받는 봉사에 안절부절못했다.
입맞춤을 배우고, 온몸을 핥고 빨아 대는 질척한 애무를 받고. 가랑이 사이를 벌리고 구멍을 가는 손가락으로 쑤시며 앙앙 울었다. 소담스러운 가슴을 스스로 세게 움켜쥐고 몸을 뒤틀기도 했다.
자신의 몸을 꾹 누르는 커다란 남자의 어깨를 연신 쓰다듬으며 열정적으로 매달렸다. 그의 귓가에 뜨거운 숨결을 내뱉으며 온몸을 서늘하고 시원한 살갗에 억세게 비벼 댔다.
너무나도 순진하고 어리석은 비비아나 도에테는 알지 못했다. 그녀는 이미 길들었음을.
비비아나는 그렇게 98번의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