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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99번째 밤 (3/13)

3장. 99번째 밤

그 방으로 향하는 과정은 언제나 똑같았다.

“아가씨, 제가 손을 받쳐 드려도 될까요.”

언제나처럼 조심스러운 목소리였다.

비비아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내밀었다. 서늘한 주먹이 그녀의 손을 슬그머니 받쳐 드는 것을 느끼고 그것을 꼭 움켜쥐었다.

“그럼 가시지요.”

그이의 손에 자신을 내맡기고, 비비아나는 약간 멍한 상태로 훈기가 도는 복도를 걸었다. 복도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어두웠고, 그녀의 발소리를 제외하면 풀벌레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기이한 일이었다. 걷고 있는 사람은 분명히 둘인데….

비비아나는 새롭게 깨달은 사실에 헛바람을 들이켰다. 입술을 깨물어 갑자기 치밀어 오르는 비명을 삼켰다. 목과 어깨를 타고 뻣뻣한 긴장이 흘렀다. 이상하리만큼 낮고 음산했던 노파의 음성이 되살아나 그녀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뱀 비린내가 진동을 합니다, 아가씨.’

뱀 비린내….

그녀가 다시 한번 입술을 짓씹었다.

‘이 앵두를 드시면 다 알게 되실 겁니다. 아가씨 몸에서 왜 이렇게 뱀 비늘 냄새가 진동을 하는지…. 그날 다 알게 되실 겁니다.’

비비아나는 빈홀프 공작가에서 처음으로 느끼는 한기에 몸을 떨었다.

그 작은 앵두 한 알을 손에 쥐고 얼마나 고민했던가. 100번째 밤까지 고작 며칠만 더 견디면 되는데 하며 그것을 눈 밖으로 치워 버렸다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또 그것을 쥐고 주물럭거리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결국 호기심이 비비아나를 집어삼키고 말았다. 그녀는 그 다디단 과일을 씹어 삼키고 입술을 타고 흐르는 과즙을 핥으며, 자신의 선택을 두고두고 후회하리라는 것을 예감하고 말았다.

“아가씨.”

“아….”

비비아나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그 밤’에는 다른 사람과 일절 말을 섞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문을 열겠습니다.”

순간 그녀는 당장이라도 고개를 젓고 도망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느꼈으나 한편으로 자신이 이곳에 팔려 온 액수를 떠올리며 그것을 꾹 내리눌렀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끼이익.

마치 지옥의 사자가 죽은 이의 방문을 여는 것처럼 불길한 소리에 비비아나의 신경이 바짝 곤두서고 말았다. 그녀는 마른침을 삼키며 입술을 잡아 뜯었다. 익숙한 온풍이 몸을 감싸 안자 스르르 손을 놓았다.

“그러면 저는 내일 아침 여덟 시에 모시러 오겠습니다.”

사실은 이곳에 저를 혼자 내버려 두고 가지 말라고 애원하고 싶었다. 이 문이 닫히는 것이 두려워 참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으나, 고개를 끄덕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곧 비비아나의 긴장한 등 뒤에서 문이 스르르 닫혔다. 육중한 것이 부드럽게 닫히며 잔바람이 일었다. 그녀는 몸을 흠칫 떨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부드러운 너울을 벗어 던졌다.

여느 때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그것을 툭 놓지 못하고, 동아줄처럼 움켜쥔 채 사위를 살피는 것만이 평소와 달랐다.

“아….”

이곳은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바뀐 것은 오직 비비아나의 마음가짐뿐이었다. 그녀는 떨리는 심장을 꾹 억누르며 조심조심 걸었다. 그러면서도 불안한 눈동자로 주위를 살피는 것이, 뱀의 아가리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야 하는 작고 여린 피식자를 닮았다.

비비아나는 얼른 푹신한 침대에 몸을 숨기고 흐린 김이 피어오르는 차를 들어 올렸다. 몇 번 불어 후루룩 넘기자 순식간에 목구멍을 타고 흘러내려 갔다. 그녀는 푹신푹신한 베개를 베고 곧은 자세로 누웠다.

미친 듯이 빠르게 달리는 심장 소리가 울려 골이 터질 지경이었다. 그녀는 불안한 가슴을 뜨거운 손바닥으로 꾹 내리누르며 마음을 다독였다.

자자, 자자…. 자고 일어나면 밝은 아침일 테고, 그럼 그녀는 괜히 약 팔러 다니는 노파의 꼬임에 넘어가 불안에 떨었다고 생각하며 웃을 것이다.

어서 자자….

비비아나의 은빛 속눈썹이 날개를 떨었다. 곧 그녀는 붉은 입술을 살짝 벌리고 규칙적으로 새근거리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커다란 방을 밝히고 있던 수많은 촛불이 훅 꺼졌다.

***

비비아나는 눈을 떴다.

그녀는 커다란 침대 위에 바른 자세로 누워 있는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며 하품을 했다. 어둠이 그녀의 하얀 몸을 슬쩍슬쩍 핥기도 하고, 새하얀 몸에 저를 문대고 비비기도 했다.

하품하던 그녀가 입을 떡 벌린 채로 굳었다.

‘응?’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비비아나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천장에 둥둥 떠 있는 상태였는데, 손이며 발이 흐릿하고 투명했다.

‘이, 이게 뭐지?’

비비아나는 제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곱게 눈을 감은 채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자신을 바라보았다. 마치 영혼과 육신이 분리된 것 같지 않은가! 신기하고 불안한 마음에 다가가려고 하자 머리가 찢어질 듯 아팠다. 오른 손목이 어디에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당겨 왔다.

‘윽!’

머리를 감싸 쥐고 가쁜 숨을 헐떡이던 비비아나가 어둠 속 어떤 곳을 응시했다. 분명 희미하고 어렴풋한 소리였지만 다른 소리가 끼어들었다. 그것은 들릴 듯 말 듯 비비아나의 예민한 신경을 긁었다. 불안한 마음에 짜증이 강파르게 일 정도로.

그녀의 눈동자가 바쁘게 여기저기로 움직였다.

‘저게 뭐지…?’

검은 어둠 속에서 분명히 뭔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부드럽고 건조한 비단이 사락사락 스치는 듯한 소리를 내며 먼 곳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비비아나는 미간을 좁히며 그것을 더 자세하게 바라보려고 애썼다. 너무 캄캄한 어둠 속이라 분간하기가 쉽지 않았다. 분명 뭔가 움직이고 있긴 한데,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커다란 창문에서 은은하게 흐르는 희미한 달빛을 눈짓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조금만 더 다가와 준다면…. 작은 두 주먹을 움켜쥐며 눈을 빛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저것이 어둠을 헤치고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오면 비비아나는 모든 것을 알게 되리라. 대체 자신이 잠든 이 거대한 방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 대체 그 노파는 왜 그런 말을 지껄인 것인지….

비비아나는 투명한 눈동자를 빛내며 인상을 찌푸렸다. 보이지 않았지만 느낄 수는 있었다.

뭔가 거대한 것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부드럽고, 서늘하고, 또 매끄러운 어떤 것이….

‘흡!’

비비아나는 눈이 찢어질 듯 커다랗게 부릅뜨며 자신의 손으로 입을 꽉 틀어막았다. 커다란 눈동자가 요란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것이 스르르 움직이자 은색 눈동자도 그것을 따라 도르르 굴렀다.

부릅뜬 눈에서 경악과 공포가 새어 나왔다.

비비아나가 누워 있는 거대한 침대로 대가리를 치켜들고 혀를 날름거리는 그것은 바로….

‘배, 뱀…. 검은 뱀!’

비비아나는 다급한 마음으로 침대에 누워 있는 자신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당장이라도 작은 어깨를 잡아 흔들어서 깨워야 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곤히 자고 있는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검은 뱀은 어둠 속에 가려져 있어서 크기를 정확히 가늠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몸통이 그녀의 몸보다 더 두껍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것은 매끄러운 눈동자를 빛내며 천천히 침대를 타고 대가리를 들이밀었다.

‘아, 안 돼!’

비비아나는 다시 한번 소리 지르며 손을 뻗었으나 어마어마한 고통이 그녀를 덮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부들부들 떨었다.

검은 뱀은 곧 새하얀 이불 위를 타고 스르르 미끄러져 다가오기 시작했다. 검은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것이 꽤 익숙한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정말로 순식간에 그녀가 누워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검은 혓바닥이 하얀 뺨에 닿았다. 그것은 대가리를 그녀의 턱과 뺨에 문지르며 한참을 비벼 댔다.

‘이, 이럴 수가….’

뱀이 아가리를 쩍 벌려 그녀가 덮고 있는 이불을 콱 물었다. 그것을 커다랗게 들치자 두껍고 무거운 이불이 그녀의 몸을 타고 스르르 흘러내려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 거대한 것은 망설이지 않고 비비아나의 몸을 칭칭 휘감으며 제 몸을 들이댔다. 어찌나 거대한지 그녀의 하얀 얼굴과 목만 남겨 놓고 하얀 살결 한 자락 보이지 않을 정도로 꽁꽁 감싼 채였는데도, 매끈한 몸통은 끝이 없었다.

두 갈래로 갈라진 혀가 연신 새하얀 피부를 삭삭 핥았다.

‘배, 뱀 비린내가 납니다, 아가씨.’

순간 기이한 노파의 목소리가 그녀의 뇌리를 스쳤다.

‘부, 분명 뱀 비린내라고 했어.’

그이는 무언가 알고 있었던 걸까. 그것을 비비아나에게 알려 주기 위해서 찾아왔던 것일까? 빈홀프 공작가가 왜 저주받았다는 오명을 뒤집어써야 했는지, 왜 그것을 부인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이 뱀은 무엇인지.

비비아나는 자신의 몸을 당장이라도 바스러뜨릴 듯 똬리를 틀고 쉭쉭거리는 뱀의 매끄러운 눈동자를 바라보며 눈물을 줄줄 흘렸다.

빈홀프 공작가는 저주받은 것이 맞았다. 이곳에는 악마가 살고 있다, 정확하게는 검은 뱀의 탈을 뒤집어쓴 악마가! 그것은 끊임없이 그녀의 몸을 죄었다 풀었다, 핥았다 비비며 비비아나의 주위를 맴돌았다.

다들 아무것도 모르고 기름진 음식과 따듯한 잠자리에 희희낙락 기뻐하는 비비아나를 속으로 얼마나 비웃었을까. 검은 뱀의 아가리에 그녀를 집어 던져 놓고 그다음 날 그녀가 살아 있을지 죽어 있을지 내기했겠지.

비비아나가 까드득 이를 갈았다.

스르르 그녀의 몸을 놓아준 뱀이 슬금슬금 그녀의 주위를 몇 바퀴 돌더니 젖은 냄새가 흘러나오는 다리 사이를 파고들었다.

‘아아악! 안 돼!’

그녀는 발을 동동 구르며 도리질했다.

검은 뱀은 천천히 핏줄이 보일 만큼 새하얀 허벅지를 핥고 차가운 대가리를 비비며 조금 더 깊이, 더 깊이 파고 들어갔다. 비비아나는 그 끔찍한 광경에 소리를 지르며 절박하게 손을 뻗었지만, 여전히 어딘가 몸이 결박된 사람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짐승은 뜨겁고 후끈한 그녀의 밑에서 아주 오래도록, 오래도록 나오지 않았다. 사타구니에 대가리를 박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거대한 꼬리가 슬금슬금 다가와 부드러운 가슴을 쿡쿡 찔렀다.

평소에 질색하는 뱀이, 그것도 자신을 순식간에 집어삼킬 정도로 커다란 뱀이 콧김을 씩씩 내뿜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침대 위의 비비아나는 방만하게 다리를 벌렸다. 깊은 잠에 빠진 듯 몸을 뒤척이려고 했으나, 거대한 몸뚱이가 허벅지를 감아 고정했다.

검은 뱀은 콧등으로 붉은 속살을 쓸었다.

‘흐으응….’

비비아나는 신음을 흘리며 다리를 더 넓게 벌렸고, 꿀이 흐르는 구멍을 검은 혓바닥이 할짝거렸다. 서서히 빠끔거리기 시작하는 구멍 주위에 흐른 것을 닦아 내듯이 삭삭 쓸어올리다가, 천천히 구멍 안에 혀를 밀어 넣었다.

‘으, 으응…. 아흣!’

붉은 살을 젖히고 검은 혀가 왕복하기 시작하자, 비비아나는 엉덩이를 들썩이며 뱀의 몸통을 발바닥으로 느릿하게 쓸기 시작했다. 발바닥에서 동그랗게 튀어나온 곳으로 매끄러운 비늘을 문지르며 뜨거운 신음을 뱉어댔다.

‘아, 아앙…. 아응, 흐읏!’

뱀은 뭉툭한 코끝으로 갈라진 곳을 꾹꾹 눌러가며 혀를 쑤시고 또 쑤셨다. 매끄러운 혓바닥은 구멍을 스치듯이, 혹은 찌르듯이 움직이며 비비아나의 몸에서 흐르는 것을 게걸스레 갈취했다.

긴 혀가 깊게 쑤시고 들어가면, 비비아나는 엉덩이를 들어 올린 채 바들바들 떨었다.

뱀은 천천히 혀를 빼내었다.

‘하앗!’

검은 혓바닥이 마지막으로 밑을 깨끗이 핥아냈다.

뱀은 서서히 그녀의 몸을 타고 올라왔다. 마치 인사를 하듯 코끝으로 조그만 턱을 비비더니 꼬리에 오금을 걸고 하얀 다리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아주 천천히 앞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그녀의 허벅지 사이에 무언가를 끼우고 있는 것처럼.

비비아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자신의 다리 사이에서 움직이고 있는 검은 무언가를 관찰했다. 붉은 속살을 벌리며 앞뒤로 움직이다가 벌름거리는 구멍에 걸려 꿈틀거리는 그것은….

‘서, 설마…!’

꿈에서 보았던 로비의 성기와 모양도 크기도 흡사한…. 검고 울퉁불퉁한 성기는 끊임없이 끈적한 액체를 뚝뚝 흘리며 젖은 살을 벌리고 그 사이를 왕복하고 있었다. 허벅지와 허벅지가 겹치는 곳에 거대한 성기를 빠듯하게 밀어 넣었다가 빼낸다. 두 개의 성기는 비비아나의 매끄러운 살결에 비벼지기도 하고 저들끼리 몸을 맞대기도 하며 계속해서 마찰하고 있었다.

‘흐, 흐으읏! 아응…!’

왠지 뱀의 몸짓이 조금 더 빨라진 것 같다.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소리, 콧김을 부는 소리가 쉭쉭 공기를 스쳤다. 그것은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이며 성기 두 개를 비비고 치대며 절정에 올랐다. 순간 그것은 비비아나의 몸을 강하게 감고 몸을 움츠렸다.

성기에서 차례로 흰 액체가 튀었다.

‘아, 아응….’

비비아나의 몸을 칭칭 감은 뱀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비비아나는 핏발이 선 눈동자로 달빛을 노려보며 이 밤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길고 고통스러울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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