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장. 먹잇감을 노리는 또 다른 짐승 (5/18)

5장. 먹잇감을 노리는 또 다른 짐승

엘리아는 겨우 정신 차리고 힘들게 샤워까지 마쳤다. 그러고도 그의 입술을 몇 번 더 받아준 다음에야 그곳에서 나올 수 있었다.

아힌의 집무실에서 나온 엘리아는 아직도 덜덜 떨리는 다리에 겨우 힘을 주고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밖은 어두워지고 저녁 시간도 지난 것 같았다.

오늘도 굶어야 하는구나.

이 꼴로 하녀들이 모인 식당을 가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제 방으로 몸을 돌리려던 엘리아의 발걸음이 멈춰 섰다. 불길한 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분명해. 분명히 있을 거야. 지금 가면 난 오늘 죽는다.

왠지 제 방에서 시뻘건 눈을 부라리고 있을 사나운 맹수 한 마리가 떠올랐다. 지금도 죽겠는데 여기서 프레드까지 덤벼들면 오늘은 정말 복상사라는, 아주 끔찍하고 황홀한 사망을 맞이할 것만 같았다.

안 돼. 절대로 안 돼.

그녀는 다시 몸을 돌려 다락방으로 향했다. 긴장된 몸을 살금살금 움직여 혹시나 모를 불상사를 대비했다. 문이 살짝 열려 있는 방을 보니 아무래도 프레드가 왔다 간 모양이었다. 조심히 문을 열고 안을 살펴보니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얼른 몸을 들이고 조심히 문을 닫았다.

그제야 한숨 놓은 엘리아는 그대로 제 낡은 침대에 몸을 누였다. 새 방 침대처럼 푹신하진 않았지만 마음이 편해서 그런가, 잠이 솔솔 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허름한 이불을 끌어당기고 몸을 웅크린 채로 눈을 감았다. 기력이 쇠한 몸은 금세 수마에 사로잡혔고, 엘리아는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잠들어 버렸다.

끼이이익.

완전히 곯아떨어진 엘리아의 방에 검은 인영이 숨어들었다. 자다가 더웠는지 덮고 있던 이불은 그녀의 발치에 널브러져 있고, 입고 있던 치마는 말려 올라가 그녀의 배를 덮고 있었다.

거기다 아힌의 명령으로 벗었던 팬티는 여전히 그녀의 옷 주머니에 들어가 있어 아랫도리가 훤히 드러나 있는 상태였다. 작은 창문 안으로 들어온 달빛이 하필 그녀의 음부를 비추자, 보송보송 난 음모 아래로 보이는 붉은 보지 살이 침입자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기척을 완전히 감춘 침입자의 손이 망설임 없이 그녀의 아랫도리로 향했다. 꽉 다물린 조갯살을 가르고 들어간 손가락이 살살 비벼대자, 엘리아의 작은 구멍이 반짝거렸다.

침입자는 그녀가 흘리는 애액을 손가락에 적시곤 입 속에 넣어 맛을 보았다. 침입자의 입꼬리가 아주 맛있는 걸 맛본 양 기분 좋게 올라갔다.

엘리아의 다리를 조금 더 벌려놓곤 침입자는 다시 손가락을 세워 잠든 그녀의 질구를 살살 비벼댔다. 기절했나 싶을 정도로 잠이 든 상태인데도 야해 빠진 몸은 금세 질척하게 젖어들었다. 연신 지분거리는데도 죽은 듯 자는 그녀의 상태에 침입자의 손가락은 점점 자신감 있게 움직였다.

살짝 벌어진 조갯살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넣고는 이리저리 쑤석거린다. 민감한 음핵을 쓱 비빌 때면 본능적으로 움찔거리는 몸뚱어리가 몸의 주인이 살아있음을 알려줬다.

“씨발, 자면서도 느끼고 있네.”

달빛에 비친 엘리아의 음부가 제가 덕지덕지 발라놓은 미끈한 애액으로 인해 반짝거렸다. 벌겋게 달아오른 보지를 빤히 보던 침입자의 눈은 회까닥 돌기 직전이었다. 당장이라도 이 음란한 몸을 덮치고 개처럼 허리를 흔들고 싶었지만, 침입자는 꾹꾹 참아냈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설 마음도 없었다. 발기된 자지를 해결하지 못하면 오늘 밤은 한숨도 못 잘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엘리아가 누운 침대 끄트머리에 겨우 몸을 올린 침입자가 그녀의 얼굴 쪽으로 제 아랫도리를 대고 자신의 얼굴은 그녀의 가랑이 사이로 향했다. 생각 같아서는 자면서도 오물거리는 저 입 속에 제 자지를 처넣고 싶었지만, 깨우지 않기로 마음먹었기에 아쉬운 대로 제 자지를 그녀 손에 쥐여 줬다.

그러곤 벌어진 여체의 가랑이 사이로 코를 박곤 할짝거리기 시작했다. 제 자지를 쥔 그녀의 손을 같이 말아 쥐고 흔들면서 말이다. 빨기만 하는데도 왜 이리 흥분되는 건지. 침입자는 그녀의 몸을 미약 같은 음탕한 몸이라 구시렁거리며 혀를 움직였다.

조심히 움직이던 혀 놀림이 점점 거세진다. 제 자지를 흔드는 속도만큼 저도 모르게 바빠지기 시작했다. 제 손으로 말아 쥔 엘리아의 손을 탁탁탁 흔들어대며 그녀가 잘 느끼는 음핵을 집중적으로 빨아댔다. 할짝거리다 쫍 빨아 당기면 의식이 없는 여체가 여지없이 움찔거린다. 그것마저도 자극적이라 침입자는 점점 사정감이 몰려오는 걸 느꼈다.

그녀의 색스러운 신음을 들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오늘은 일단 이 정도로만 만족하기로 했다. 점점 몰려오는 사정감에 침입자는 그녀의 손을 더 꽉 움켜쥐었다. 그러곤 사정없이 허리를 흔들어대며 엘리아의 조갯살을 쭙쭙 빨아 삼켰다.

‘씨발. 아픈 여자 먹는 것도 좋고, 자는 여자 먹는 것도 좋다더니, 진짜 장난 아닌데? 크윽!’

개처럼 허리를 파닥파닥 흔들어대던 침입자는 기어이 그녀의 자그마한 손에 질펀하게 싸질렀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느라 제 손에 잡힌 그녀의 손을 꽉꽉 오므리며 쾌감을 만끽했다. 뭔가 부족했지만, 그래도 일단 물은 뺐으니 잠은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후… 엘리아. 오늘 나를 이 꼴로 만든 걸 후회하게 해줄게. 오늘은 정말 특별히 한 번만 봐주는 거야.”

저녁 내내 엘리아만 죽어라 찾아다녔던 프레드는 이 시각이 돼서야 겨우 이 좁은 다락방에서 그녀를 찾아냈다. 평소 같았음 발도 안 들일 공간에 두 번이나 온 것도 모자라, 저 낡아빠진 침대에 제 몸을 올리고 잠든 엘리아의 손에 짐승처럼 싸 재낀 게 이제야 열이 올랐다.

시원하게 싸고 나니 이제야 현실이 자각된 프레드는 잠든 그녀를 매섭게 노려봤다. 그러면서도 프레드는 엘리아를 깨우지 않았다. 이 다락방에 비하면 비교도 안 될 만큼 좋은 방을 줬음에도, 여기서 쪼그리고 잠든 그녀에게 알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미친놈. 사람 되려고 그러냐? 하녀 따위한테 무슨 동정이야? 에이 씨! 짜증 나. 이게 다 아론 그 새끼 때문이야!’

자꾸만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자, 프레드는 사납게 머리를 헝클이고는 그 방에서 나왔다. 그것도 문을 쾅 닫아버리고 씩씩거리며 제 방으로 향했다. 얼마나 피곤했던 건지, 천둥 번개 같은 소리가 들렸음에도 엘리아는 몸을 한 번 움찔거렸을 뿐 여전히 수마에 빠져있었다.

사나운 맹수가 질펀하게 영역 표시를 하고 갔음에도 엘리아의 숨소리는 아주 평화로웠다.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늘어지게 잔 엘리아는 뭔가 불길한 기분에 눈을 번쩍 떴다. 이곳에 온 이후로 처음 가져본 휴식이라, 순간 늦잠이라도 잔 줄 알고 깜짝 놀랐다.

“하아… 습관이란 게 무섭구나.”

삭신이 쑤시는 몸을 겨우 일으키며 기지개를 쭉 켜다 이상한 느낌에 손을 쳐다봤다.

“뭐지……?”

뭔가 끈적한 게 손에서 말라비틀어진 것 같았다. 냄새를 맡아보고 손을 비벼봐도 도통 뭔지 알 수가 없었다.

“흐음. 일단 방으로 돌아가자.”

제 방의 좋은 욕실을 두고 굳이 공용 화장실까지 가고 싶진 않아 그녀는 덮고 잤던 이불을 차곡차곡 개켜놓고 제가 쓰던 몇 가지 짐만 챙겨 방으로 돌아왔다.

3층으로 내려와선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걸어 겨우 제 방에 도착했다. 조심히 문을 닫자 그제야 안심이 된다. 엘리아는 편안하게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갔다. 다시 한번 제 손에 눌어붙은 정체불명의 멀건 자국을 유심히 쳐다보다 이내 벅벅 씻어냈다.

어제 간단하게 샤워만 하고 온 터라, 다시 한번 몸을 깨끗이 씻었다. 언제나 말끔하게 준비하고 있어야 했던 것이 습관이 돼버린 그녀는 따뜻한 물을 맞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몸이 괴롭다고 마음마저 괴로울 순 없었다. 마음마저 힘들어진다면 자신 또한 여주였던 엘리아처럼 스스로 생을 끊을 것 같았기에, 그녀는 일부러 우울감을 떨쳐내고 더 좋은 생각만 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난 살 거야. 누구보다 잘 살 거라고. 난 그럴 수 있어.”

거울 속에 비친 제 모습을 빤히 보며 스스로 세뇌했다. 샤워를 마치고 푹신한 침대 속으로 쏙 들어간 엘리아는 배시시 웃었다.

좋다. 이 방 너무 좋아!

바로 전까지 자다 온 낡아빠진 침대나 허름한 이불과 비교하니 이 방에 있는 자신이 꼭 공주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녀한테는 지급되지 않는 좋은 이불을 얼굴에 부비며 헤실헤실 웃었다. 색깔이 영 마음에 안 들긴 했지만, 그래도 특별히 신경 써준 프레드가 아주 조금은 고마웠다.

그런데 웬일인지 프레드도 아힌도 이 시간까지 자신을 찾지 않았다. 좋긴 한데 왠지 불안했다.

이럴 놈들이 아닌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뒤따라오는 불안함은 어쩔 수가 없었다.

“에이, 몰라! 아, 배고프네.”

어제부터 내내 굶은 터라 슬슬 배가 고팠다. 이러다간 낫기는커녕 병이 더 도질 것만 같았다.

“안 되겠다. 뭐라도 먹어야지.”

엘리아는 방을 나서 주방으로 향했다. 아직도 그곳에 발을 들이기가 내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계속 이렇게 숨어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건들기만 해봐. 아주 그냥 싹 다! 후……!

크게 심호흡을 한 후 그녀는 주방으로 들어섰다. 다행히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터라 주방에는 소수의 인원만 남아있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불편해서 얼른 제 몫의 음식만 챙겨 나올 생각에 움직임을 서둘렀다.

대충 챙긴 후 몸을 돌리는데 문 앞에 조안나가 서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언제나처럼 베시가 함께 있었다.

저를 노려보는 베시의 시선에 먹기도 전부터 체할 것 같았다. 거기다 저 무시무시한 조안나의 시선까지 함께 받으려니 빈속이 쓰린 느낌이다.

혹시라도 음식을 담은 쟁반을 엎기라도 할까 봐 엘리아는 손에 든 쟁반을 꽉 움켜쥐었다. 비켜줄 기미가 안 보이자 엘리아가 어쩔 수 없이 먼저 말을 꺼냈다.

“비켜주시겠어요?”

“흥, 걸레 같은 년.”

“…….”

엘리아의 말에 대답한 건 베시였다. 노려보는 그녀의 눈빛은 정말 더러운 거라도 보는 양 사납기 그지없었다.

“후우… 베시. 말조심해.”

차게 식은 엘리아의 눈빛과 서늘한 음성에 베시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갖은 아양으로 조안나의 수족 노릇을 하며 자리 잡은 베시는 사실, 조안나만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베시의 뒤에는 항상 조안나가 있었기에 웬만한 하녀들도 그녀에겐 꼼짝도 못 했다. 그녀에게 잘못했다가는 조안나에게 밉보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녀들 사이에선 베시도 그다지 좋은 평판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공공의 적인 엘리아가 있었기에 그들은 여태 똘똘 뭉칠 수가 있었다. 그런데 만약 조안나에게 더 이상 예전 같은 힘이 없다면, 그리고 공공의 적인 엘리아가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선다면?

물론 엘리아를 쉬이 인정하지는 않겠지만, 베시도 예전처럼 안하무인으로 나댈 수는 없을 것이다. 조안나만 아니라면 베시는 끈 떨어진 연, 즉 아무것도 아닐 테니.

그런데 이제 엘리아가 그들 중 가장 높은 곳에 섰다. 조안나도 앞으론 그녀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그렇다는 건 베시는 이제 껌이라는 얘기다. 질겅질겅 씹어도 되는.

당황한 베시가 조안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다시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이 미친년이 누구보고 말조심하래? 너 돌았어? 네가 정말 무슨 하녀장이라도 된 줄 알아?! 우리가 널 인정할 거라 생각하냐고!”

욕설도 모자라 악다구니를 써대는 베시를 물끄러미 보던 엘리아는 제 손에 들린 쟁반을 내려다보며 그 안에 든 내용물을 살폈다.

그리고 아론이 한 말을 떠올렸다.

“그깟 년들한테 지지 말라고 하녀장 만들어줬잖아. 그러니까 멍청하게 당하고만 있지 말고, 어제 내가 시킨 것처럼 날려버리라고. 알았어?”

네, 그래야겠네요. 후회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네요. 당신이 쥐여 준 칼, 마음껏 휘둘러보죠. 대신 잘못되면 책임은 당신이 져야 할 거예요. 안 그러면 도망가 버릴 거니까.

일순 엘리아의 눈빛이 매섭게 번뜩이고 입꼬리가 씩 올라간다. 그녀의 달라진 분위기에 베시와 조안나의 눈빛이 흠칫 떨렸다. 그 순간, 엘리아는 제 손에 들린 쟁반을 베시의 머리 위로 엎어버렸다.

“꺅!!”

묽은 스튜와 빵에 발라 먹으려던 진득한 소스, 그리고 우유까지 뒤집어쓴 베시는 엉망이 된 몰골로 얼어붙었다.

“너……! 너어!!”

“조안나?”

“……?!”

난데없는 엘리아의 하대에 조안나의 눈도 베시와 마찬가지로 휘둥그레졌다. 바르르 떨리는 조안나의 시선이 엘리아를 향했다. 그러나 그녀는 여태껏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어제부터 굶어서 말이야. 이제 겨우 한 끼 하려는데, 이렇게 돼버렸네?”

“…….”

“그래서 말인데, 조안나가 음식 좀 챙겨서 내 방으로 가져다주겠어? 이 정도는 부탁해도 되지? 내가 지금 너무 기운이 없어서 그래.”

부드러운 음성으로 부탁하는 말이었지만, 그것은 분명 명령이었다. 조안나가 자주 부려먹었던 것처럼 엘리아도 똑같이 하고 있었다. 역시나 조안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싫어?”

“…아닙니다. 갖다 드리죠.”

“하녀장님!!”

의외로 순순히 대답하는 조안나의 행동에 엘리아도 내심 놀랐다. 그것도 모자라 조안나가 자신에게 존대까지 하다니. 엘리아는 놀란 마음을 애써 감추고 상냥하게 웃었다.

“그럼 부탁할게. 참, 그리고 베시?”

“……!”

조안나가 꼬리를 내리자 사납게 쏘아보던 베시의 눈빛이 한풀 꺾였다. 대신 방금 전까지 상냥했던 엘리아의 얼굴이 다시 싸늘하게 바뀌었다.

“네 그 건방진 행동을 봐주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야. 한 번만 더 이따위로 굴면 그때는 내가 아닌, 아론 도련님을 만나게 될 거야.”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엘리아는 없는 아론까지 들먹이며 베시에게 잔뜩 겁을 줬다. 지금보다 더 소문이 부풀려진다 해서 더 좋아질 것도, 나빠질 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용할 수 있는 건 다 이용해서 있는 동안만이라도 편하게 지내면 그만일 뿐.

그리고 아론을 경험해 본 베시라면 이래야 더는 기어오르지 못할 것이었다.

무섭게 으름장을 놓은 엘리아는 여유로운 척 사뿐사뿐 걸어 주방을 나왔다. 그러곤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으으……! 심장이야!’

그녀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얼른 방으로 돌아왔다. 베시 때문에 순간 욱해서 일을 치긴 했는데, 막상 그러고 나니 심장이 터져 나갈 것 같았다. 원래는 이런 성격이 아닌데, 몸의 주인이 워낙 소심한 성격이었던 탓인지 그 영향이 미치는 것 같았다.

예전 생에선 당차고 밝은 성격이었다. 사람들하고 금세 친해지고 주위에는 다가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활발하고 다정한 성격이었다. 물론 고집도 좀 있고, 화내야 할 땐 화도 낼 줄 알았다.

무엇보다 승부욕이 강한 그녀는 지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엘리아의 바보 같은 선택에 그리 화가 났었던 건데, 막상 엘리아의 몸으로 들어오고 나니 자신도 어찌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유도 모른 채 사람들의 적대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도 모자라 무시무시한 짐승들에게 밤낮없이 몸을 바쳐야 하니, 정신 차릴 틈도 없이 휩쓸릴 수밖에 없었다. 원래 성격대로라면 세 공자한테도 이리 발발 기지는 않았을 텐데.

이 몸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엘리아처럼 행동하려다 보니, 어느새 그게 몸에 익은 모양이었다. 눈치 보고, 소심해지고, 무슨 일이든 겁부터 나고. 그리고 돌아서면 왜 이랬나, 후회가 들었다. 조금씩 자신의 페이스를 찾아야 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로 죽도 밥도 안 될 테니.

“하… 정신 바짝 차리자. 언제까지 이러고 살 건 아니잖아.”

그녀는 자신의 뺨을 짝 소리 나게 때린 후 눈을 부릅떴다.

“그나저나 하녀장님이 정말로 밥을 들고 올까? 그럼 그때도 계속 이대로 밀고 나가야 하나? 아니면 미안하다고 사과해? 베시 때문에 잠깐 돌았었다고?”

흐음…….

계속 아까처럼 밀어붙이자니 더 큰 적을 만들 것 같아 께름칙하고, 그렇다고 다시 꼬리를 내렸다간 더 우스운 꼴이 될 것 같아 그럴 수도 없었다.

“후, 너무 저자세도 말고, 그렇다고 너무 막 나가지도 말자. 적당한 선으로 대하면 되는 거지. 그러다 열 받게 하면 또 들이받는 거고 뭐. 에잇, 몰라.”

마음은 굳게 먹어놓고 다리는 달달 떨린다. 왜 이렇게 소심해진 건지. 자신의 변한 모습이 한심스러웠다.

똑똑!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노크했으니 짐승들은 아닐 거고, 아무래도 조안나가 온 것 같았다. 엘리아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문을 열었다.

“누구, 아……!”

“기다렸나요?”

엘리아의 이마에 주름이 졌다. 제이든이 온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터라, 싫은 티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건 아닌 모양이군요?”

“들어오세요.”

어쩔 수 없이 문을 열고 옆으로 비켜서자, 제이든이 익숙한 듯 거리낌 없이 방으로 들어섰다.

밥은 또 다 먹었구나.

이놈들은 제 병을 낫게 해주려는 건지, 도지게 하려는 건지 도대체 모르겠다. 타이밍 한번 거지같이 맞춰 온 남자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제이든이 들어오고 엘리아는 원래 앉아있었던 화장대 앞에 가서 앉았다. 스스로 먼저 침대에 누워 그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어제와 다르게 웬 가방을 들고 온 제이든이 침대 옆에 그걸 내려놓곤 재킷을 벗어 의자 위에 대충 걸쳐뒀다. 그러곤 제 방인 양 자연스럽게 침대에 앉는다.

무슨 소파도 아니고, 왜 죄다 저기에 앉는 거야?

몇 번 더 오면 아주 자연스럽게 제 침대인 양 누울 기세였다.

“거기서 진료받을 겁니까?”

“아… 제가 아직 밥을 못 먹어서 밥을 기다리는 중이었어요.”

“음, 점심시간은 한참 지난 것 같은데?”

“어쩌다 보니…….”

“그러고 보니 어제보다 더 야윈 것 같군요. 잠깐 이리 와볼래요?”

제 앞에 와서 서라는 듯 고갯짓을 하는 남자를 빤히 보다, 한숨을 푹 내쉬곤 비적비적 걸어가 그의 앞에 섰다. 제이든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부터 쭉 내려가다 가녀린 허리에서 멈췄다. 무슨 면접 보는 것도 아니고, 민망한 분위기에 엘리아는 고개를 돌렸다.

한참을 보기만 하던 제이든이 그녀의 한 줌도 안 되는 허리를 붙잡았다. 제 커다란 손이 맞닿을 정도로 가는 허리에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어제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나요?”

“…네.”

“나을 마음이 없는 모양이군요.”

“그게 아니라…….”

“어제도 도련님들하고 몸을 섞었나요?”

“…….”

도대체 이런 질문이 진료와 무슨 상관이길래 이렇게 대놓고 묻는 건지.

수치스러움에 엘리아의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다.

“밥은 조금 있다 먹고 일단 눕죠. 어제도 말했다시피 내가 워낙 바쁜 사람이라.”

바쁘면 안 오면 되잖아!

“…네.”

치미는 말을 꼴깍 삼키고 엘리아는 그의 옆으로 슬금슬금 비켜섰다. 자리를 비켜주려는 듯 침대에서 일어난 그가 갑자기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는다.

“……!”

“딱 적당한 키군요. 너무 작지도 않고, 크지도 않은.”

“…….”

키 크다고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그녀의 정수리에 턱을 콕 찍어본 남자가 피식 웃는다.

“어서 누우시죠.”

그러고는 정말로 키만 재보려고 안은 것처럼 그는 순순히 놓아주었다. 민망함에 쭈뼛거리며 침대 위에 올라가 누운 엘리아는 짧은 메이드복의 치마를 연신 아래로 내리고 이불을 배까지 덮었다. 그러나 터질 듯이 튀어나온 가슴까지는 숨길 수가 없었다. 그건 너무 그를 의식하는 행동인 것 같아 나름 태연한 척 표정을 지으며 허공을 바라봤다.

어제처럼 그는 간단한 질문 몇 가지로 진료를 시작했다. 그러고는 또 빤히 쳐다본다. 그냥 보는 건데도 엘리아에게는 그의 눈빛이 음흉하게 느껴졌다. 어제 그런 일을 당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경계일지도.

“벗은 것도 좋은데, 이런 차림도 나쁘진 않군요.”

“…….”

쓸데없는 말을 주절거린 남자가 단정하게 내려져 있던 제 소매를 둥둥 걷어 올린다.

“어제는 처음이라 대충 봤으니 오늘은 좀 더 자세히 검사할 겁니다.”

뭐? 뭘 어떻게 자세히 한다는 거야?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힐끔거리자, 제이든이 피식 웃으며 들고 온 가방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상한 기구 하나를 꺼냈다. 생긴 건 마치 바나나와 비슷한 것 같은데, 그것보다는 훨씬 길고 굵어 보였다.

엘리아는 본능적으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생김새가 왠지 어디선가 많이 본 듯했다. 저 물건이 제 몸 속 어딘가로 들어올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은 왜일까?

“이게 뭔지 압니까?”

그가 뿌듯하게 웃으며 손에 쥔 기구를 엘리아의 눈앞으로 들이댔다. 침을 꼴깍 삼킨 엘리아는 생긴 것만으로도 혐오스럽게 느껴지는 기구에서 시선을 돌렸다.

“안다는 건지, 모른다는 건지……?”

“…모, 몰라요.”

“당신이 혹시라도 아이를 가지면 안 되니, 오늘 이것으로 그 불행의 싹이 생기지 않도록 예방할 겁니다.”

“네?”

뭐라고? 그럼 저게 피임기구라는 거야? 그렇다는 건…….

불길한 예감이 딱 들어맞았다. 저 해괴하게 생긴 기구가 곧 제 아랫도리를 쑤시고 들어올 거란 얘기였다. 물론 자신도 원치 않았기에 아이를 가질 수 없도록 해주겠다는 말은 아주 찬성이다.

그런데 생긴 것이 남자의 그것과도 너무 비슷했다. 정말 피임기구가 맞는 걸까? 소설 속이니 뭔들 없겠냐마는 아무리 그래도 저건 좀…….

엘리아의 눈빛이 불안함에 파르르 떨렸다. 진료라는데 제 몸이 또 어떻게 반응할지 불안했기 때문이다.

“벌써 기대하는 것 같군요?”

“그게 아니라… 그걸로 뭘 어떻게 한다는 거죠?”

“바로 할까요?”

“네?”

“궁금해하는 것 같으니 바로 시작하죠.”

“아니요! 잠시만요.”

거침없이 아랫도리 쪽으로 다가오는 남자의 손길을 피해 엘리아는 얼른 몸을 웅크렸다.

“음… 역시 준비 과정이 필요하겠죠?”

“네……?”

“그럼 일단 적셔드리죠.”

“그게 아니고, 잠깐. 흡!”

아래를 공격할 줄 알고 다리에만 힘을 줬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입술이 삼켜졌다. 갑자기 덮쳐온 입술에 놀란 그녀는 말을 하다 잘린 상황이라 막을 새도 없이 제이든의 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굵은 살덩이가 거침없이 들어오더니 느릿하게 휘젓기 시작한다. 입 안 살을 고루 맛보려는 듯 샅샅이 훑어 내리다 치열을 간질였다. 길게 목구멍까지 넣어진 혀가 깊숙이 숨은 연약한 살덩이를 낚아채 휘감았다.

문제는 이 모든 행동을 아주 느릿하게 하니 거칠게 삼켜질 때와는 또 다른 느낌에 엘리아의 몸이 슬슬 반응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눈을 질끈 감고 남자의 어깨를 꽉 움켜쥔 채로 밭은 숨만 할딱거리며 엘리아는 제이든의 혀를 받아냈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그의 손이 제 단추를 풀고 있는 것도 모를 정도로 정신이 나가버렸다.

이 남자의 키스는 세 공자의 거친 키스와는 전혀 다르게 아주 부드럽고 농밀했다. 남자의 혀에 잔뜩 취해갈 때쯤 가슴을 움켜쥐는 서늘한 손에 엘리아의 몸이 흠칫 떨렸다. 그러나 놀란 것도 잠시 이미 흥분에 취한 그녀는 키스만큼이나 부드럽게 만지는 손길에 속절없이 빠져들었다.

타액이 섞이는 질척한 소리가 귓가를 맴돌고, 부드럽게 만져대다 아프지 않을 정도로 젖꼭지를 비틀어대니 엘리아의 아랫도리가 금세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간간이 드는 이성은 남자를 밀어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본능은 말을 듣지 않았다. 이미 쾌락을 아는 몸은 그의 혀와 손길을 아주 기껍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아, 하아……!”

남자의 입술이 그녀의 턱을 핥고 목덜미로 내려간다. 젖꼭지를 이리저리 비틀어 발딱 세워놓고는 그곳을 향해 점점 내려갔다. 제이든의 농밀한 애무에 엘리아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가 얼른 제 가슴을 빨아주길 바라는 본능과 그를 밀어내야 한다는 이성이 치열하게 싸웠다.

남자의 부드러운 살덩이가 온 가슴 둔덕을 적시며 내려가다 드디어 봉긋하게 솟은 붉은 꽃봉오리 앞에 멈춰 섰다. 그가 혀를 굴리며 유륜을 할짝거리자, 그녀의 온몸이 전기가 오르는 듯 저릿거렸다.

흐응, 아, 안 되는데!

“하아… 흐읏……!”

한껏 흥분에 부푼 가슴이 찌릿거리고 거의 이성이 마비돼 갈 때쯤.

쾅쾅!

“……!”

문을 부술 듯한 노크 소리에 저 멀리 사라지려던 엘리아의 정신이 퍼뜩 돌아왔다. 놀란 건 제이든도 마찬가지였는지, 벌떡 일어난 그가 손에 있던 기구를 가방 안에 쓱 집어넣는다. 그러곤 제 옷매무새만 단장하곤 제멋대로 방문을 열었다. 깜짝 놀란 엘리아는 이불을 목 끝까지 올리고 제kjmdm이든이 풀어놓은 단추를 다급하게 잠그기 시작했다.

미쳤어! 정말!

당황으로 물든 얼굴이 조금 전까지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 티가 날 정도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무슨 일이냐.”

“아, 제이든 님. 여기 계셨군요.”

목소리를 들으니 조안나였다. 다행히 제이든이 문을 가로막고 서있어서 조안나와 눈이 마주치는 민망한 상황까지는 일어나지 않았다.

“무슨 일이지? 아, 식사를 챙겨온 모양이군.”

“네.”

조안나의 음성이 일순 낮게 가라앉았다. 공작저에서 꽤 오래 하녀장을 맡았던 그녀였는데, 이제는 제일 밑바닥이었던 엘리아에게 하녀장 자리를 빼앗긴 것도 모자라, 이런 심부름을 하는 꼴을 제이든에게 들킨 게 자존심 상한 것이다.

엘리아는 조안나의 음성에 이불을 아예 머리끝까지 올려버렸다. 이 모습까지 보였다간 세 공자도 모자라 제이든하고까지 몸을 섞었다는 소문이 돌 것 같아 겁이 났다. 얼른 음식만 받고 보내지 왜 저러고 서있는 건지, 시간이 멈춘 것 같아 숨이 막혔다.

“이리 줘라.”

“네.”

“더 볼일은 없는 건가? 진료 중이라 방해받는 게 영 거슬려서 말이야. 있으면 지금 말해.”

“없습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화장대 위에 쟁반을 올리는 소리가 들린 후에야 엘리아는 이불을 살짝 내려 눈만 빼꼼히 내놓고 주위를 살폈다.

쥐새끼처럼 숨어서 눈동자만 도로록 굴리는 엘리아의 행동에 제이든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다. 생긴 거랑은 다르게 가끔 엉뚱한 면을 보이는 엘리아의 모습이 왠지 귀엽게 보였다. 제이든은 다시 제자리에 앉아 엘리아가 붙들고 있는 이불 끝자락을 잡으며 말했다.

“다시 시작할까요?”

“저, 저기… 아까는…….”

완전히 정신이 돌아온 엘리아는 자연스럽게 다시 시작하려는 제이든을 막아 세웠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까 그 짓을 다시 하진 못할 것 같았다.

아까는 어쩌다 갑자기 휩쓸려 저도 모르게 남자의 손길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아까 같은 상황이 또 벌어진다면 이번에는 정말로 그의 몸을 받아들이게 될 것 같아 겁이 났다.

그렇게 되면 세 공자 귀에 들어가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이고, 자신은 그 시간 동안 매일 숨 막히는 두려움으로 전전긍긍하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굳이 그런 일을 만들어 자신을 괴롭히고 싶지는 않았다. 안 그래도 녹록지 않은 생활인데 거기다 굳이 일을 하나 더 얹을 필요가 뭐가 있겠나.

엘리아는 저를 빤히 보는 제이든을 똑바로 쳐다보며 더는 선을 넘지 말길 부탁하려고 했다.

“아까는 뭐요?”

“그게…….”

그런데 막상 말하려니 뭐라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내가 조금 흥분한 건 사실이다. 네가 너무 잘해서 그건 본능적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원한 건 아니었다!’라고 해야 할는지, 아니면 아예 시치미를 뚝 떼고 진료 보는데 키스는 왜 하는 거냐고 따져야 할는지.

뭐라고 해야 하지…….

괜히 잘못 말했다가 또 이 남자의 심기를 건드리면 더 낭패 볼 것도 같고. 엘리아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머뭇거리자 제이든이 잡고 있던 이불에서 손을 떼곤 답답한지 셔츠의 맨 위 단추를 풀며 여상하게 말했다.

“아까는 실수했습니다. 키스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의외로 그가 먼저 제 실수를 인정하자, 엘리아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그래도 순순히 제 잘못을 인정하는 걸 보니 영 몹쓸 놈은 아닌 모양이다. 한결 마음이 놓이자, 이불을 꽉 쥐고 있던 손에서 힘이 빠졌다.

정말로 더는 안 할 생각인지 제이든은 가방 속에 넣었던 기구를 다시 꺼내 들고는 담백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제 바로 시작해도 될까요?”

“…네.”

기구를 다시 보니 살짝 겁은 났지만, 어차피 해야 할 일이기에 엘리아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혹시라도 저 혼자 또 흥분하게 될까 봐 이불을 끌어 올려 입까지 가렸다. 그리고 머릿속으로는 ‘산부인과야. 여긴 산부인과라고.’ 그리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아플지도 모르니 겁나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어도 됩니다.”

“…네.”

아플 거란 말에 다리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꼭 수술 직전 수술실 침대에 누운 기분이었다. 엘리아는 침을 꼴깍 삼키고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빠가 누군지도 모를 아이가 생기는 것보다야, 잠깐의 고통이 낫다고 생각하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두 눈을 꼭 감았다.

다리를 덮고 있던 이불이 거꾸로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서늘한 기운이 다리를 휘감는다. 맨다리가 드러난 게 느껴지자 엘리아는 이불을 악물고 덜덜 떨었다. 마취도 없이 수술받는 기분이라 점점 엄습해 오는 두려움 때문에 몸이 잔뜩 얼어붙었다.

“다리에 힘 빼고 벌리세요.”

아무 감정도 담기지 않은 제이든의 음성에 엘리아는 천천히 다리를 벌렸다. 그러자 그의 손에 의해 팬티가 벗겨지는 게 느껴졌다. 그나마 얼굴이라도 가리고 있으니 한결 낫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시간이 얼른 끝나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제이든은 제 눈앞에 보이는 여체의 모습을 보며 씩 웃었다. 얼마나 급하게 채운 건지, 단추 구멍도 제대로 못 찾아 삐뚤빼뚤 잠긴 원피스 위쪽엔 그녀의 풍만한 가슴살이 야릇하게 비집고 나와 유혹했다. 치마는 위로 올라가고 헐벗은 아랫도리에는 아까 잔뜩 흘린 애액이 마르지 않아 번들거렸다. 촉촉하게 젖은 음부를 보자 아까 그녀가 얼마나 흥분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이렇게나 흥분해 놓고 아니라 발뺌할 생각이었나? 역시 앙큼한 계집이야.’

제가 지금 무슨 짓을 할 것인지도 모르고, 얼굴을 가린 것도 모자라 이런 음란한 몸을 제 앞에 고스란히 내놓고 누운 여자가 어리석어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저를 철석같이 믿는 게 기꺼워 몹시 흡족했다.

‘믿어줬으니 그에 대한 보답은 해줘야겠지……?’

제이든의 얼굴에 정제되지 않은 미소가 그려졌다. 제 손에 맡겨진 실험체가 그는 꽤 마음에 들었다. 하루 만에 제 손길에 헐떡거리는 여자를 보니,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손쉽게 길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의 음부로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자 숨결을 느꼈는지 질구가 뻐끔거리고 다리가 움찔거렸다. 엘리아의 반응이 즐거워서 제이든은 혀를 내밀고 그녀의 조갯살을 살짝 핥아 올렸다. 혀끝에 닿은 끈적한 애액은 생각보다 꽤 달콤했다. 어제 그녀의 몸을 처음 만질 때 맡았던 향을 직접 맛보니 생각보다 더 흥분되는 기분이다.

슬쩍 엘리아를 보니 여전히 이불만 꽉 틀어쥔 채 꼼짝도 안 한다. 가만 보니 그녀도 모르는 척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앙큼할 데가.

엘리아의 무언의 허락에 제이든은 더욱 거침이 없어졌다.

이번엔 혀끝을 세우고 갈라진 조갯살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며 날름거리자 이불 속에서 옅은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흐읏…….”

그리고 끈적하게 말라가던 음부가 다시 미끈해지기 시작했다. 혀를 길게 말아 올려 주름 사이를 헤쳐 가며 요리조리 핥아댔다. 부드러운 소음순을 쭙 빨아 당겼다가 혀끝으로 구석구석 찌르고 빨아댄다.

아아… 어떡해…….

활짝 벌려놓은 다리는 꼼짝도 못 하고, 제이든의 애무에 엘리아의 정신은 또다시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생각지도 못한 그의 행동에 심장이 벌렁거렸다.

“하읏… 으읍!”

저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신음을 다시 이불로 꽉 틀어막고 정신을 바짝 차리려 애를 썼지만, 질펀하게 빨아대는 제이든의 입술에 엘리아의 머릿속은 또다시 본능에 사로잡히고 있었다. 말리고 싶었지만, 말릴 수도 없었다. 이성을 잡아먹은 본능은 그의 애무가 달가웠기 때문이다.

꼿꼿하게 세운 혀가 질 속으로 쏙 들어오자 왈칵 흐르는 애액에 야한 냄새가 진동한다. 질구 안쪽을 이리저리 핥으며 움직이는 바람에 엘리아는 저도 모르게 엉덩이를 들어 올리고 힘을 바짝 주었다.

“하으윽!”

조금씩 격렬하게 반응하는 엘리아의 몸짓에 제이든은 질구 속에 집어넣은 혀를 사정없이 흔들며 손으론 그녀의 클리토리스를 비벼댔다.

“으으… 흐으응… 하아앙!!”

기어이 쾌락의 끄트머리까지 닿은 엘리아는 연신 허리를 들썩거리며 애액을 펑펑 쏟아냈다. 진료하러 들어온 의사의 혀에 맛이 간 엘리아의 몸은 고쳐지긴커녕 고장 난 기계처럼 움찔대고 경련했다.

“흐음. 이 정도면 기구도 아주 잘 받아들이겠군요. 아플까 봐 특별히 적셔준 거니 오해는 하지 말아요.”

“…….”

그의 말도 안 되는 핑계에도 여전히 쾌감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한 엘리아는 대꾸조차 하지 못했다. 일부러 그랬든, 정말로 아플까 봐 그랬든 이젠 중요하지 않았으니. 이미 황홀경에 빠져버린 엘리아는 부족한 다음 것을 원하고 있었기에 그가 뭐든 얼른 해주길 바랐다.

그녀의 헐떡이는 숨결에 가슴께가 오르락내리락한다. 삐뚤빼뚤 채운 단추 사이로 비집고 나온 가슴살이 꽤 음란해 보였다. 얼굴을 가리고 있는 이불을 걷어내고 잔뜩 맛이 간 그녀의 표정을 보고 싶었지만, 괜한 짓으로 또 그녀가 거부할까 봐 제이든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기구를 들었다.

이걸 넣으면 그녀는 정말 자지러지게 좋아할 것이 분명했다. 아닌 척하면서도 민감한 그녀의 몸은 금방 달아오를 정도로 색을 밝혔으니.

‘분위기 봐서 살짝 넣어보는 것도 괜찮겠군.’

엘리아가 완전히 이성을 잃으면 기구를 빼고 제 좆을 넣을 생각에 제이든의 입꼬리가 비죽 올라갔다.

생각보다 순진한 엘리아를 가지고 노는 게 이렇게나 즐거울 줄이야. 싸구려 몸이라 생각했었던 때가 언제였냐는 듯 제이든은 제 앞에 누운 하녀의 몸에 완전히 홀려버렸다. 그것도 모자라 그녀의 몸을 갖지 못해 점점 안달이 나기 시작했다.

기구의 끝부분을 음부에 갖다 대자, 엘리아의 몸이 바짝 움츠러들었다. 식지 않은 몸은 아직도 애액을 질질 흘리고 있었지만, 본능적인 두려움이 그녀의 이성을 조금 깨워줬다. 기구를 살살 돌려가며 천천히 질구 속을 파고들자, 오물거리는 구멍 사이로 멀건 애액이 질펀하게 흘러나온다.

“진료 중인데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건지.”

“흐읍……!”

바짝 얼어버린 몸을 달래주려는 듯 제이든이 그녀의 음핵을 살살 문질러줬다. 그러자 잔뜩 힘이 들어갔던 다리가 서서히 풀린다. 다시 녹진하게 풀리기 시작한 질구에 기구의 기둥까지 밀어 넣자, 그녀의 입에선 또다시 신음이 흘러나왔다.

“하으응……!”

기분이 이상했다. 마치 남자의 것이 몸 안을 꿰뚫는 것과 같은 기분. 내벽이 빠듯하게 채워지는 감각에 정신이 나가기 직전,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벌컥!

“엘리아! 어……?”

“……!!”

갑자기 문이 열리고 들려온 남자의 음성에 엘리아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리고 심장이 떨어진 건 제이든도 마찬가지였다. 점차 싸늘하게 식어가는 프레드의 얼굴에 제이든은 식은땀까지 흘리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의 아랫도리에 꽂아 넣은 기구를 빼지도, 넣지도 못하고 얼어붙은 채로 프레드의 사나운 눈초리를 마주 보았다.

어제 감히 자신에게 그런 짓을 하게 만든 엘리아를 잔뜩 괴롭혀줄 생각으로 벌컥 문을 연 프레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장면에 온몸이 굳어버렸다. 상황 파악이고 뭐고, 일단 제 눈에 보이는 장면만으로도 순식간에 피가 거꾸로 솟았다.

지금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일까?

제 장난감이 다른 남자 앞에서 야해 빠진 몸을 훤히 드러내고 얼굴만 이불로 꽁꽁 싸맨 채, 맨 보지에는 이상한 걸 집어넣고 질질 싸는 꼴을 보게 될 줄이야.

하도 어이없는 장면에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눈에선 불길이 치솟고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 와중에도 프레드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제이든에게 물었다.

“지금 둘이 뭐 하는 거지……?”

“도련님. 아무리 급하셔도 노크는…….”

“하녀 따위 방에 오면서 노크를 왜 하냐고 말했던 게 누구였더라?”

고개는 삐뚜름하게 내려가고 입꼬리는 쭉 찢어져 올라가면서도 눈에서는 살기가 뚝뚝 떨어지는 프레드의 모습에 제이든의 등줄기에선 연신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당황한 제이든은 애써 표정을 갈무리하곤 침착한 음성으로 말을 돌렸다.

“크흠. 무슨 일이십니까? 지금 진료 중인데.”

“아… 지금 진료 중이었구나. 너는 엘리아 보지를 쑤시고, 엘리아는 질질 싸면서 진료하는 중이었군.”

서슬 퍼런 프레드의 음성에 엘리아는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그의 서늘한 목소리가 드러난 몸을 타고 올라와 목을 옥죄는 기분이었다.

순간 구멍에 꽂혀있던 기구가 쑥 빠져나갔다. 꽂고 있을 때는 너무 놀라서 그것조차 인지하지 못했는데, 기구가 빠지고 나니 휑한 제 아랫도리에 민망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 당장 이불로 몸을 가리고 싶어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움직이면 프레드가 제 이름을 부를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대로 기절이라도 했으면.

우려했던 상황이 기어코 벌어지고 말았다. 제이든의 말이 사실이라고 말해 봐야 프레드는 믿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어쨌든 보이는 광경만으로는 누구든 오해하고도 남을 상황임은 분명했으니.

“흠, 도련님. 사실은.”

제이든의 음성에 엘리아의 얼굴은 더욱 사색이 되었다.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네 몸을 마음껏 가지고 놀아놓고도 네가 날 유혹했다고 하면 도련님들이 누구 말을 믿어줄 거 같아?”

그가 혼자 빠져나가려고 자신에게 기어이 뒤집어씌울 모양이었다. 엘리아는 이가 딱딱 부딪칠 정도로 공포에 휩싸였다.

“엘리아 몸에 약을 주입하려던 중이었습니다.”

“약……? 무슨 약?”

‘……!’

질끈 감은 엘리아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머리가 핑 돌았다. 그래도 저 혼자 살겠다고 자신을 버리지 않은 그가 얼마나 고마운지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녀 몸에서 2세를 보실 생각은 아니죠?”

“뭐?!”

이런 음탕한 장면을 딱 걸려놓고도 제이든의 음성엔 조금의 떨림도 없었다. 정말로 진료만 보고 있었다는 양 그의 표정은 몹시 당당했다.

제이든의 망설임 없는 말과 표정에 프레드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분명 딴짓하고 있었던 게 확실한데 너무나도 당당한 제이든의 말투에 확신이 점점 의심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2세라니……?

“도련님들이 밖에다가 쌀 것도 아니잖습니까? 계속 그러다 보면 젊은 엘리아의 몸에서 아이가 생기는 건 시간문제겠죠. 그리고 그렇게 되면 과연 아이의 아빠는 누구일까요?”

“……?!”

“거의 매일 세 분의 정자가 그녀의 몸을 가득 채울 텐데, 그러다 세 정자가 나란히 하녀의 자궁에 자리라도 잡을까 봐 그것도 걱정이군요.”

제이든의 적나라한 말에 프레드의 눈이 커다래졌다.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좆 대가리나 휘두를 줄 알았지, 아이가 정확히 어떻게 생기는지 따위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프레드는 제 형들의 아이와 자신의 아이가 나란히 엘리아의 배 속에 생기는 상상을 하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 그런 문제를 예방하고자 진료 중이었습니다만, 그런 눈으로 저를 보시니 조금 섭섭한데요? 제가 설마 하녀 따위에게 다른 마음이라도 품었을까 봐 그러시는 겁니까?”

“크흠.”

되레 역공을 당한 프레드가 헛기침하며 시선을 돌렸다. 제이든이 뼛속까지 귀족인 걸 잘 알기에 지금 이 장면이 더 어이없고 화가 났었다. 제이든은 여자를 볼 때 외모보단 그 배경을 더 중시하는 남자였다. 그런 그가 하녀인 엘리아의 몸을 만지고 있으니 그도 결국 엘리아의 음란한 몸에 빠진 거라 생각했다.

제 섣부른 판단에 민망했다. 하지만 억울한 부분도 없진 않았다. 엘리아의 헐벗은 몸을 본 순간 그냥 눈이 휙 돌아간 걸 어쩌란 말인가. 그렇다고 아랫사람한테 사과할 프레드가 아니었다.

“큼! 내가 무슨 눈빛을 했다고 그러는 거야? 그냥 엘리아가 벗고 있으니까 놀란 거지. 그럼 그렇다고 진작 말을 했어야지!”

“얘기할 시간이나 주셨습니까?”

“아, 흠. 알았으니까 하던 거나 계속해. 그리고 확실히 막아놔. 엘리아 배에서 형들 애랑 내 애가 섞이는 꼴은 보고 싶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마시죠. 알아서 잘해 놓을 테니. 그럼 이만 나가주시겠습니까? 약이 굳으면 큰일이라…….”

“어? 어. 그래. 나갈 거야. 그런데 오래 걸려?”

“한 시간 정도면 끝날 겁니다.”

“한 시간이나……?”

프레드의 미간이 못마땅한 듯 또 찌푸려진다. 머릿속으로는 이해했는데, 뒷덜미가 싸한 게 자꾸만 뭔가 께름칙했다. 짐승 같은 감은 의심의 꼬리를 놓지 않았다. 그런데도 제이든의 당당한 얼굴을 보니, 그쪽으로는 문외한이라 따지고 들 수도 없었다.

“도련님?”

“어? 아, 그래. 하여간 최대한 빨리 끝내. 엘리아한테 볼일 있으니까.”

“곧 마음껏 싸게 해드릴 테니, 얼른 문 꽉 닫고 나가세요.”

“…알았어.”

쉬이 사라지지 않는 찝찝한 마음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애써 돌리고 프레드는 문을 닫았다.

제이든은 공작가의 주치의이기도 했지만, 머리가 좋아 공작의 신임을 한 몸에 받는 사내였다. 그런 그가 그렇다는데 거기서 더 뭘 의심하랴. 무엇보다 자신들을 위해 진료 중이라니 더 할 말도 없었고.

사그라지지 않는 찝찝함은 계속 고개를 쳐들었지만, 프레드는 어쩔 수 없이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방으로 돌아갔다.

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엘리아는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얼른 이불로 온몸을 가리고 빼꼼히 눈만 내밀자 인상을 찌푸린 제이든과 눈이 마주쳤다. 놀란 건 저 혼자뿐이었던 건지, 당당한 낯빛의 제이든을 보니 새삼 민망했다. 그는 정말로 진료를 한 것뿐이었는데, 저 혼자 흥분하고 즐긴 꼴이 된 것 같아 수치스러웠다.

“하녀 방에 왜 이렇게 드나드는 사람이 많은 건지. 쯧.”

“앗!”

혀를 차며 자리에 앉은 남자가 다짜고짜 다시 이불을 휙 걷어냈다. 화들짝 놀란 엘리아가 고개를 돌리자 거침없이 다리를 확 벌린다.

“그새 말랐군.”

“…….”

“또 빨아줘야 하나?”

제이든의 적나라한 말에 엘리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체 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의아하면서도 미심쩍었다. 처음에는 자신을 보는 그의 눈빛을 예사롭지 않게 느꼈었다. 그래서 그도 다른 놈들과 마찬가지로 이 몸에 욕정을 품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프레드와의 대화를 들어보니 또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는 귀족 여성만 상대하고 하녀 따위는 여자로도 안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제이든의 표정 또한 전혀 흥분한 상태가 아니었다. 제 아랫도리를 내려보는 표정은 무미건조했고, 얼핏 짜증까지 서려있었으니까.

정말 진료를 위해 이런 행위도 서슴없이 하는 거야? 그게 하녀라 해도?

정말 환자를 위해서 이러는 거라면 그는 의사로서 사명감이 대단한 남자였다. 환자가 아프지 않게 제 몸을 헌신하는 거니까.

그런데 정말 그게 다일까……?

어찌 됐든 다시 그 짓을 하고 싶진 않았다. 그러다 또 누군가 들어오면……. 하,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이대로 가다간 온종일 이 남자에게 휘둘릴 것 같았다. 남자가 잘하는 건지, 몸이 문제인지 그가 닿기만 하면 정신을 못 차리니, 원.

“…그냥 넣어주세요.”

“말라서 아플 텐데? 이미 한 번 빨렸는데 두 번 빨리는 건 창피합니까? 나야 뭐든 상관없지만.”

제이든의 당당한 말에 또 마음이 흔들렸다. 그의 말을 듣고 있다 보면 또 그게 맞는 말인 것 같아 혹하게 된다.

그래, 아이가 생기면 가장 곤란한 건 그녀 자신이다. 책임지긴커녕 죽이려 들지도 모를 일이었다. 거기다 어차피 그들도 제 몸을 노리개 취급하는데 굳이 아픔을 참아가며 정조를 지킬 필요가 있나? 누굴 위해서?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아픈 것보다는 안 아픈 방향으로 빨리 끝내는 게 낫다는 쪽으로 생각을 정했다. 그의 말대로 이미 한 번 했는데, 또 한 번 하는 게 뭐가 문제란 말인가. 어차피 제 진짜 몸도 아니거니와 그저 진료를 위한 하나의 행위일 뿐이라는데. 굳이 고통스럽게 버티느니, 그의 말을 따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래, 이건 그냥 진료야. 그렇게 생각하면 되지 뭐.

“그, 그럼… 부탁할게요…….”

“뭘 부탁한다는 말입니까?”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묻는 남자의 말에 엘리아는 이불을 조금 더 끌어 올리고 눈만 내놓은 채 우물쭈물 대답했다.

“적셔…주세요…….”

“흠. 그러죠. 부끄러우면 계속 이불로 가리고 있어도 됩니다.”

“네…….”

제이든이 심어준 공포와 논리적인 말은 그녀를 손쉽게 함락시켰다. 제 입으로 직접 빨아달란 말을 한 게 부끄러워 엘리아는 얼른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 올렸다. 심장은 콩닥거리고 얼굴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아프기 싫어서 말한 거야. 진료일 뿐이라고.

자신의 결정을 몇 번이고 합리화하면서도 몸은 기대에 부풀었다. 그가 다시 자신의 아랫도리를 빨 거란 생각만으로도 육욕을 아는 몸은 촉촉하게 젖어들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흥분되는 걸까?

그의 애무를 기다렸다는 듯이 발가락이 곱아들고 아랫배가 간질거렸다.

소설을 끝까지 읽지 않았던 그녀는 원작 속 엘리아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없었다. 그저 짐승들에게 짓밟히다 더는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불쌍한 여자라는 것뿐.

그녀가 읽었던 부분은 여주 엘리아가 죽기 전까지 세 공자에게 밤낮없이 탐해지는 장면과 하인들의 음흉한 시선에 하루하루 메말라가면서도 죽어라고 일만 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곳까지였다. 여주가 바보같이 죽어버린 게 짜증 나서 삭제해 버리는 바람에 뒤 내용은 전혀 몰랐다.

그렇기에 엘리아의 단편적인 부분만 본 그녀는 정말로 엘리아가 왜 죽었는지,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당연히 엘리아의 본모습도 알지 못했고. 그 부분들은 소설의 뒷부분에서 나올 예정이었으니까.

그렇다 보니 막상 이런 순간이 되면 저도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이 원작 여주에게 부여된 설정이라는 것도.

소설 속에 들어왔으면서도 원작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전혀 생각해 보지도 않은 터라, 자신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조차 자각하지 못했다. 그냥 막연하게 이곳에서 도망가면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한 안일함이 자신을 어떤 늪으로 끌어당기고 있는지 감조차 없었다.

그러나 소설은 진행되고 있었다. 죽었어야 할 엘리아가 다시 살아난 탓에 원작에서 조금 벗어났지만, 바뀐 상황에 맞게 소설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대신 엘리아에게 부여된 설정은 변하지 않았다. 19금 피폐물답게 음탕할 수밖에 없는 엘리아. 남자들 손에 익숙한 몸. 그리고 끊임없이 그녀를 노리는 사내들. 아직 상황을 제대로 모르는 그녀는 그 설정대로 아주 충실하게 제이든의 애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입에서 기어이 스스로 원한다는 말을 끌어낸 제이든은 기분 좋게 웃었다. 부끄러워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저 순진한 얼굴로 제 아래를 빨아달라니.

제이든은 아예 자리를 그녀의 가랑이 사이로 옮기고 오므려진 다리를 활짝 벌렸다. 금세 축축하게 젖어 번들거리는 구멍이 숨 쉬듯 벌름거린다. 빨아달라는 말 한마디에 메말랐던 음부가 벌써 이렇게 젖어들다니, 정말로 음탕한 계집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이제는 거리낄 것이 없었다. 프레드가 속아 넘어가자 자신감이 생겼다. 명분은 충분했다. 제이든은 제 손에 들린 기구를 보며 씩 웃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이번 한 번으로 제 호기심을 끝내기로 했다. 하찮은 하녀의 몸에 혹해 목숨을 내건 이런 불장난 따위는 한 번이면 충분할 터였다. 그녀의 몸을 한 번 갖고 나면 흥미가 없어질 게 뻔할 테니, 더는 귀족으로서 체면을 구길 일도 공자들에게 변명할 일도 없을 것이었다.

길들이는 것도 나름 재미는 있었겠지만, 굳이 하녀 하나 길들여서 가지고 놀자고 제 목숨을 위험 속에 던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저 공자들이 푹 빠진 장난감에 대한 호기심만 풀면 그만일 뿐, 딱히 엘리아에게 다른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녀의 무릎을 세워놓고 다리를 완전히 벌렸다. 옆에 있는 베개를 끌어다 그녀의 허리에 받치고 엉덩이를 들어 올리자, 번들거리는 불그스름한 속살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뻐끔거리며 저를 유혹하는 여린 속살을 보니 아랫도리가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당장 제 것을 쑤셔 넣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천천히 음미하기로 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먹을 별미인데 공들여 맛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제이든은 바싹 마른 제 입술을 한 번 축인 후, 질척하게 젖은 음부에 푹 처박았다. 움찔 떨리는 여체의 반응이 꽤 흡족하다. 손에 들린 기구까지 오물거리는 질구에 끼워 넣자, 엘리아의 미약한 신음이 흥을 돋우었다. 오랜만에 설레는 기분에 제이든의 광대가 비죽 올라갔다.

도톰하게 부푼 음핵은 입 속으로 쪽 빨아당겨 쭙쭙 빨아대고 손은 연신 기구를 움직여 좁은 구멍을 들쑤셨다. 그러자 미약했던 신음이 순식간에 격렬해졌다.

“하윽, 하읏! 흐으앙!”

한편, 난생처음 경험해 보는 강렬한 감각에 엘리아는 자지러지며 울었다. 제 소리가 공작저를 쩌렁쩌렁 울리고 있다는 생각조차 못 할 만큼 엘리아의 정신은 완전히 나가버렸다.

적시기만 해달랬는데, 제이든은 아예 줄줄 쌀 정도로 가랑이 사이를 질펀하게 물고 빨았다. 음핵만 쪽쪽 빨아대는 것도 죽을 맛인데, 바나나처럼 끝이 휜 것도 모자라 굵고 기다란 것이 질 속을 난잡하게 헤집어 놓으니, 엘리아는 참을 수 없는 쾌감에 몇 번이나 싸고 또 싸버렸다.

“흐윽! 제, 제이든 님……! 제, 제발! 하윽! 그만, 그만하세요! 하아앙!”

엘리아의 몸부림에 이불은 바닥으로 나동그라지고, 조안나 때문에 다급하게 채우느라 엇갈린 단추는 가운데만 투둑 풀려 붉은 젖꼭지가 야살스럽게 튀어나왔다.

조금만 빨다 집어넣을 생각이었는데, 흥분한 그녀의 반응에 취해 제이든은 쉴 새 없이 부드러운 속살을 빨고 쑤시길 반복했다. 자지러지는 교성도, 제 혀가 닿는 곳마다 뜨겁게 부풀며 질질 싸는 몸도, 그만하라고 앙탈을 부리면서도 연신 기구를 빨아 삼키는 구멍도, 그녀의 몸은 재미없는 곳이 없었다.

“하윽! 하아아앙… 끄윽, 흑! 흐으…….”

제이든의 가학적인 전희에 엘리아가 흘린 애액은 엉덩이를 적시다 못해 이불까지 흥건하게 적셔버렸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군. 내 좆도 무난히 잘 삼키겠어.’

그제야 기구를 빼고 일어난 제이든이 그녀의 애액으로 축축하게 젖은 입술을 날름 핥아 올렸다. 그녀의 몸부림에 엉망이 된 머리칼을 다시 정돈하곤 바지 버클을 풀어 내렸다. 잔뜩 구겨졌던 살덩이가 금세 몸집을 부풀리며 꺼덕거린다. 그동안 숱한 여자들과 몸을 섞어봤지만, 이 정도로 터질 듯이 빳빳해진 좆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제 몸에 달린 건데도 녀석의 생소한 크기에 제이든은 실소를 흘렸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아랫도리의 뻐근함에 미간을 찌푸렸다. 잔뜩 피가 몰린 자지의 고통이 참기 힘들면서도 기꺼웠다. 곧 그녀의 몸속에서 노곤하게 풀어질 생각을 하니, 이 정도 고통쯤이야 웃으며 넘어갈 수 있었다.

‘오랜만이군,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라니. 어찌 보면 참 대단한 여자네. 세 공자야 그렇다 치고, 나까지 이리 만든 걸 보면 말이야.’

요즘 무료해진 일상에 딱히 재미를 못 느꼈던 탓일까? 오늘따라 기분이 몹시 생소하면서도 즐거웠다. 날고 긴다는 가문의 영애들한테도 이런 감정은 느껴보지 못했는데, 하녀 따위의 앞에서 이런 생각이 들 줄이야. 정말 볼수록 신기한 여자였다.

예쁘장한 얼굴에 육감적인 몸. 음탕한 것 같으면서도 수줍은 몸짓. 색기 흐르는 얼굴에 순진한 눈망울. 그녀는 사내의 마음을 홀리기에 충분한 여자였다.

‘흠. 이런 모습에 빠지게 된 건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됐는지, 그녀의 물기 어린 시선이 닿아왔다.

“하아… 제이든 님. 이제 다 끝난 건가요……?”

순진하게도 엘리아는 정말로 제 몸에 뭔가 들어갔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긴, 몇 번이나 맛이 갔으니 제 몸에 무슨 변화가 있었는지 모르는 게 당연할지도. 붙들린 제 다리 사이로 발기된 자지가 꺼덕거리고 있는 게 보일 텐데도, 그녀는 여전히 자신을 믿는 듯 어이없는 질문을 던졌다.

순진한 눈망울로 저를 보는 엘리아의 모습에 또다시 아랫도리에 통증이 느껴졌다. 저 순진무구한 눈망울을 욕정으로 가득 채우고 싶었다. 그런데 이불이 치워졌으니 이대로 자신의 좆을 처넣었다간 아무래도 그녀가 기겁할 것 같아, 제이든은 말을 바꿨다.

“약을 넣긴 했습니다. 그런데 하도 몸부림을 치고 질질 싸대서 제대로 들어갔는지는 모르겠군요.”

“…죄송합니다.”

“그래서 확인을 좀 해봐야 할 것 같은데?”

“네……?”

“들어간 정액 양이 잘 흘러나오는지 확인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안 그러면 오늘 한 일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힘들게 넣었는데, 제대로 안 들어가서 아이라도 덜컥 생기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그러게 왜 그렇게 몸부림을 친 건지. 진료일 뿐인데, 제가 다 난감하더군요.”

“…….”

제이든의 이죽거림에 엘리아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물론 자신도 참고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자극적으로 온 내벽을 긁어대는데 어찌 참을 수가 있단 말인가. 아무 감각을 못 느끼는 사람도 그 정도 자극이 가해졌다면 절대로 참지 못했을 거라 말하고 싶었지만, 엘리아는 그저 입을 꾹 다무는 걸 선택했다. 괴로웠어도 좋았던 건 사실이니까.

“어떻게 할까요? 그냥 이대로 그만둘까요? 그냥 운에 맡길래요?”

“아, 아니. 그게 아니고…….”

어떡하지? 아무리 진료라고 하지만, 이건 아닌 것 같았다. 이걸 만약 공자들이 알게 되면 아까처럼 이해해 줄까?

망설이는 와중에도 몸은 이미 남자의 것을 원하고 있었다. 기구와 입만으로 부족했던 몸은 정점을 갈구하고 있었다.

정말 미쳤나 봐. 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기분이었다. 이성은 안 된다고 외치고 있었지만, 몸은 그의 것을 품고 싶어 안달이 났다.

“시간 없다고 말했을 텐데. 그렇게 고민되면 직접 경험해 보든가. 그때 가서 날 원망하지는 말아요. 당신이 자초한 일이니.”

“자, 잠깐만요! 하, 할게요. 확인해 주세요.”

미련 없이 몸을 일으키려는 남자를 다급하게 붙잡았다. 고민할 틈도 안 주는 남자의 냉정함에 엘리아는 스스로 다리를 벌리고 고개를 돌렸다. 이러면 안 된다고 끊임없이 외치면서도 몸은 이미 그를 받아들일 준비를 끝마쳤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이 상황을 합리화할 말을 끊임없이 되뇌었다.

아이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야. 정말이라고, 이건 내가 원해서 그러는 게 아니야!

“흐음. 썩 내키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군요. 내가 시작한 일이니 내가 마무리 지을 수밖에.”

“…….”

“사심은 없으니 오해는 없길 바랍니다.”

“네.”

다시 제 무릎을 잡고 다가서는 남자의 움직임에 엘리아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제 앞에 이를 드러내고 웃는 남자의 얼굴을 보지 못한 엘리아는 두려워하면서도 설레어하고 있었다.

질척한 구멍에 남자의 살덩이가 문질러진다. 곧 들어갈 거라고 알리는 듯 남자는 제 자지에 그녀의 애액을 치덕치덕 발랐다. 그리고 금세 애액에 절여진 뭉텅한 선단이 질구 입구에 머리를 디밀었다.

“흣!”

‘큭! 뭐지……?’

버섯 머리만 살짝 넣었을 뿐인데, 등줄기로 전율이 흐르고 온몸의 피가 자지 끝으로 몰린 기분이 들었다. 소름이 돋고 온몸의 털이 바짝 곤두섰다. 뭐에 홀린 것 같았다. 손으로 느꼈던 감각과 입으로 맛봤던 느낌과는 차원이 달랐다.

제이든은 그 순간 직감했다. 오늘 한 번으로 끝날 수 없을 거라는 걸.

‘잘못 건드렸군. 젠장.’

“흐윽! 하아아…….”

“후… 힘 좀 뺍시다. 기왕 하는 거 조금은 즐기고 싶은데?”

“흐응, 흐응…….”

“바로 싸게 하려고 이러는 건 아니죠?”

“흐으윽…….”

어떻게 이 정도로 조일 수가 있는 거지?

세 공자의 좆을 거의 매일 받았던 몸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엘리아의 구멍은 생각보다 너무 좁아터졌다. 시작부터 급격히 몰려온 사정감에 그는 이를 악물었다. 이런 느낌은 난생처음이었다. 기구로 그렇게나 벌려놓았는데도 복원력이 좋은 건지, 그녀의 구멍은 완전히 문을 닫아버린 것 같았다.

‘정신 바짝 차려야겠군, 이러다 우스운 꼴을 보이겠어.’

귀두 능선만 겨우 꽂아 넣은 채 제이든은 숨을 골랐다. 이 상태로 완전히 집어넣었다간 정말 바로 쌀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얼른 쑤셔 박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시작부터 이런 황홀한 감각을 주는 여자의 몸이 미치게 궁금했다.

그는 고개를 젖혀 호흡을 고르고 좆 기둥을 움켜쥐었다. 정신을 환기하고 다시 아래를 내려다보자 제 좆을 꽉 문 구멍이 또다시 정신을 쏙 빼놓는다.

간당간당하게 끼워 넣은 좆이 그녀의 오물거림에 빠질 것만 같았다. 이러고 있느니 아예 깊숙이 끼워 넣고 다시 정신을 가다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후우, 숨을 내쉰 그는 엉덩이에 힘을 바짝 줬다. 입술을 축이곤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한 후, 힘차게 쑤셔 박으려던 찰나.

똑똑!

“……!”

“헉!”

나지막이 울리는 노크 소리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음장처럼 얼어붙었다. 놀란 엘리아가 얼른 몸을 웅크리고 이불을 뒤집어쓰는 바람에 갈 곳 잃은 좆이 덜렁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이제 막 맛만 봤을 뿐인데, 또다시 찾아온 불청객에 제이든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아무래도 프레드가 다시 온 것 같아 짜증스러웠다. 대충 바지를 추슬러 입고 일단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누가 됐든 이 꼴을 보이는 건 제 이미지에도 좋지 않을 테니.

“누굽니까!”

절로 짜증스러운 음성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문을 벌컥 여는 동시에 제이든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진료는 끝났나?”

“아, 아힌 도련님.”

생각지도 못한 불청객에 제이든의 등줄기에선 또다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방긋 웃는 아힌과 프레드를 마주한 제이든의 동공이 바짝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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