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짐승들의 변화
아힌의 집무실 앞에 선 아론은 드물게 망설였다. 무슨 일이든 거침없는 자신이었지만, 오늘따라 제 형의 방에 들어가기가 망설여졌다.
‘젠장. 그런 약속은 왜 해서는.’
한 번도 아힌에게 무언가 부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다른 일도 아닌 엘리아의 일을 가지고 제 발로 찾아온 자신의 모습이 한심하면서도 어이없었다.
‘엘리아, 이번 일에 대한 감사는 두고두고 받아내도록 하지.’
언제나처럼 그냥 무시하고 방치하면 그만인 것을, 아론은 굳이 엘리아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힌을 찾아왔다. 그리고 한참을 망설이다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아힌의 사무적인 목소리에 한숨을 푹 내쉰 아론이 방문을 열었다.
“언제 들어오나 기다렸잖아. 도대체 나한테 무슨 할 말이 있길래 밖에서 그렇게 오래 서있었던 거지?”
자신과 똑같은 핏빛 눈동자가 비웃음을 머금자, 아론은 다시 한번 이곳에 발을 들인 제 다리를 분질러버리고 싶었다.
베르타른 공작가의 소공작.
영지에 있는 베르타른 공작을 대신해 공작저의 모든 일을 도맡고 있는 아힌의 책상에는 각종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리고 엘리아를 하녀장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저 쌓여 있는 서류 중 한 장과 아힌의 인장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아론은 어쩔 수 없이 그를 찾아온 것이었다.
“무슨 일이지?”
닮은 듯 다른 두 형제의 시선이 싸늘하게 부딪쳤다.
아힌은 들고 있던 깃펜을 내려놓고는 느른하게 턱을 괴며 웬일로 저를 찾아온 동생을 빤히 봤다.
별관에 엘리아를 숨겨두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아힌은 자신의 귀에 들려온 각종 소문을 믿지 않았다. 잔인하기로는 저 못지않은 아론이 아픈 엘리아를 돌보고 있다는 말에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단체로 미친 것도 아니고, 아론이 어떤 놈인지는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인데, 그런 그가 엘리아를 돌보다니.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설마 죽였다고 찾아온 건 아니겠지?’
순간 엘리아의 시체를 치워야 하는 건가 생각이 들자, 아힌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론이라면 그게 더 맞는 상황일 테니.
어차피 쓰다 버릴 계집이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아까웠다. 다른 여자들이 눈에 안 들어올 정도로 엘리아는 아름답고 맛있었으니까. 만약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 해도 엘리아를 놔줄 생각은 없었다. 그녀는 그 어디에도 없을 별미였으니까.
밖에서도 한참을 망설이더니 들어와서도 내내 입을 다물고 있는 아론에게 아힌이 재차 물었다.
“뭔데 그래? 죽였나?”
아힌의 말에 아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어디 있는데? 별관이야? 좀 참지 그랬어. 엘리아만큼 맛있는 장난감이 또 어디 있다고. 쯧, 아쉽네.”
입맛을 쩝 다시는 아힌의 행동에 아론의 눈빛이 차게 식었다. 감히 자신의 장난감을 모두의 것인 양 말하는 꼴이 어이없었기 때문이다.
“후… 아론, 이제 성질 좀 죽일 때가 되지 않았나? 언제까지 기분대로 행동할 건데?”
“…….”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자신보다 못한 아힌이 소공작이 된 것부터가 못마땅했었다. 그런데 저렇게 자신에게 같잖은 충고를 할 때면 더욱 심사가 뒤틀렸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기분대로 생각하고 말하는 남자였다. 그래서 아론은 제 형이 더욱 싫었다. 더는 아힌과 오래 마주하고 싶지 않아 아론은 제가 여기에 온 목적을 꺼내놨다.
“엘리아를 하녀장으로 올려.”
“…뭐?”
뜬금없는 아론의 말에 아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잘못 들었나 싶은 생각에 귀를 후비적 파내고는 다시 한번 되물었다.
“누굴 어디로 올리라고? 내가 지금 뭘 잘못 들은 거지?”
“엘, 리, 아를 하, 녀, 장, 으로 올리라고.”
아론이 다시 한번 또박또박 내뱉자 아힌은 못 볼 걸 봤다는 듯 제 눈을 쓸어내렸다.
“…하!”
내내 여유롭게 앉아 아론을 쳐다보던 아힌이 처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넓은 책상을 돌아 소파로 오는 내내 아힌의 시선은 아론에게서 떨어지질 않았다. 그만큼 아론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신기한 구경을 하는 양 아론을 집요하게 보던 아힌이 소파에 앉으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불을 붙이고 연기를 후 내뿜으면서도 제정신인 것 같은데 미친 소리를 하는 제 동생을 빤히 쳐다봤다.
“앉아봐.”
아론은 아힌의 맞은편 소파에 여유롭게 다리를 꼬고 앉았다. 다시 한번 담배를 쭉 빨아들인 아힌이 아론의 얼굴에 담배 연기를 후 뱉는다.
아론의 인상이 사납게 일그러지자.
“미친 건 아닌데? 반응만 보면.”
혼잣말인 듯 아닌 듯 크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 미쳤어. 그리고 이 정도는 나도 말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래, 사용인들 문제야 너도 충분히 말할 수 있지. 그런데 원래의 너라면 ‘죽였다’, 혹은 ‘죽이겠다’가 나와야 정상이잖아.”
“흥, 누가 들으면 나만 살인마 새낀 줄 알겠네.”
“물론 그렇지. 우리가 죽인 것들이 한둘이 아니니까. 그래서 지금 내가 이렇게 놀라는 중인 거잖아.”
“피곤하군. 말 길게 하고 싶지 않아. 그렇게 알고 난 이만 가봐도 되겠지?”
가만 보니 오늘 아론의 얼굴이 드물게 퀭해 보이는 게 잠을 못 잔 듯 보였다. 아힌은 오늘따라 아주 많이 이상한 제 동생의 모습에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 설마.”
“뭐.”
“진짜로 엘리아를 간호하기라도 한 거야? 아니지?”
“흥, 그동안 내가 너무 얌전하게 굴었나 보군. 본보기를 보일 때가 됐나?”
“뭐?”
“사용인들 입을 찢는 것까지 형의 인장이 필요한 건 아니겠지?”
“…하! 사실이란 말이야? 정말로 엘리아를 간호했다고? 네가?”
입을 떡 벌린 아힌의 웃기지도 않은 표정에 아론은 적의를 담은 눈빛을 번뜩거렸다. 그러다 이내 이 사달을 만든 아힌을 탓하며 이죽거렸다.
“후우… 그러니까 애를 좀 재웠어야 할 거 아니야. 밤새 두 짐승 새끼가 그렇게 난잡하게 잡아먹었으면 잠이라도 자게 일을 빼주든가. 그러니 병이 안 나?”
“…….”
아론의 입에서 저런 말까지 나올 줄은 꿈에도 상상 못 한 아힌은 이제는 튀어나올 듯 눈을 커다랗게 떴다. 제 형의 놀란 표정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아론은 제가 왜 이러는지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놨다.
“거기다 어떤 미친년이 엘리아의 방에 하찮은 짐승 새끼 한 마리를 풀어놓겠다고 협박까지 하더군. 감히 겁도 없이 내 장난감을 망가뜨려 놓겠다는데 내가 가만히 있어야 해?”
“뭐?! 누가 어디에다 뭘 풀어놔?”
매번 다 들어놓고 다시 묻는 아힌의 말에 아론은 굳이 답하지 않았다. 멍청하게 벌어졌던 입매가 사납게 비틀리고, 튀어나올 듯 커졌던 아힌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싸늘하게 식었다.
“어떤 년이 감히, 내 장난감에 손을 대려고 했다고?”
서로 제 장난감이라고 우기는 두 공자의 눈빛이 더없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형제였다. 아까와는 다르게 조금 진지해진 아힌이 담배 한 모금을 쭉 빨아 피운 후, 긍정의 답을 말했다.
“…흠, 좋아.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진 모르겠지만, 일단 그건 허락하지.”
“그럼 난 이만,”
“대신 조건이 있어.”
“…조건? 그게 뭔데?”
아힌의 긍정적인 대답에 일어서려던 아론은 다시 자리에 앉아 그를 노려봤다. 음흉하게 웃는 아힌의 모습에 아론의 심기가 또다시 사나워졌다. 제 형이 어떤 부류의 인간인지 뻔히 알기에 그가 무슨 말을 할지 듣기도 전에 화가 끓어올랐다.
* * *
“야! 일어나.”
누군가 거칠게 깨우는 소리에 엘리아는 겨우 잠에서 깨어났다. 눈이 부시도록 내리쬐는 햇살에 실눈만 겨우 뜨고 비몽사몽 간에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팔자 좋네?”
“도련님…….”
뭔가 못마땅한 듯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서있는 프레드를 보자 덜컥 겁부터 났다. 아직 몸이 좋지 않은 게 분명하게 느껴졌다. 거기다 밤새 아론에게 시달리느라 안 좋은 몸이 더 물에 젖은 듯 푹 꺼진 느낌이다.
그런데 제 눈앞에는 세 공자 중 가장 발정 넘치는 짐승 새끼가 눈을 부라리고 있으니 겁이 날 수밖에.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키려는데, 프레드가 손가락으로 엘리아의 이마를 꾹 누르며 다시 눕힌다.
“그냥 있어. 많이 아팠다며? 아론이 제이든까지 불렀다던데.”
제이든……? 공작가 주치의까지 왔었단 말이야?
전혀 몰랐던 사실에 엘리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몰랐어? 아론이 오밤중에 제이든까지 부르고 하녀들을 쥐 잡듯 잡았다던데?”
‘이건 또 뭔 개소린가요?’라는 눈빛으로 프레드를 바라보자 그가 픽 웃는다.
“몰랐나 보네? 그건 그렇고, 그날 그렇게 힘들었어?”
그날이라면 아힌과 프레드 두 짐승 새끼가 엘리아를 질펀하게 잡아먹었던 날이었다.
“말하지 그랬어. 그럼 하루 쉬게 해줬을 텐데.”
하! 웃기는 소리하고 있네.
하마터면 대놓고 코웃음을 칠 뻔한 걸 겨우 참아낸 엘리아는 대답 대신 배시시 웃었다.
“참! 넌 영양실조가 뭐냐? 과로야 뭐 그렇다 치고, 너 밥 안 먹어? 애들이 밥도 안 주던?”
영양실조? 내가?
“저 영양실조래요?”
“그래. 야! 쪽팔리게 대베르타른 공작가에서 일하는 하녀가 영양실조가 뭐냐?”
너희들 때문에 밥을 못 먹은 거잖아요. 이 새끼들아. 밤마다 끌려갈까 봐, 화장실도 안 가려고!
엘리아는 목구멍까지 치미는 말을 꿀떡 삼키고는 이번에도 배시시, 웃음으로 때웠다.
내가 영양실조라니.
그녀는 생각지도 못한 자신의 병명에 꽤 충격을 받았다. 그건 저기 어려운 나라 아이들이나 걸리는 건 줄 알았는데, 살다 살다 별 경험을 다 하는구나, 싶은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다.
하긴, 책 속에 들어온 거에 비하면 별거 아닐지도.
“웃기는. 뭐가 그렇게 좋아서 웃는 건데? 아론이 너 사랑이라도 한다던?”
“네?”
“너 아론 너무 믿지 마라. 지금 잠시 뭐에 홀려서 저러는 거지, 수틀리면 바로 모가지를 칼로 쓱싹 하는 인간이라고.”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요.
뻔뻔한 프레드의 말에 입술을 삐죽이다, 문득 책에서 봤던 놈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베르타른 공작가는 검술로 명맥을 이어온 가문이다. 대대로 베르타른 공작가의 가주들은 황궁의 기사단장이나 황제의 최측근 호위단장을 맡아왔다. 그리고 지금은 베르타른 공작가의 가주가 황제의 호위단장을 맡고 있었다. 그래서 황제의 명으로 영지에 가있는 공작을 대신해 소공작인 아힌이 제도의 저택을 맡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세 공자도 이미 어릴 적부터 전쟁을 경험했다.
그게 문제였을까……?
어린 나이부터 타고난 실력으로 전장을 휩쓸고 다녔던 공자들은 누군가를 죽이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고, 동정이나 연민 같은 감정은 아예 결여된 채 살아왔다.
무엇보다 일찌감치 세상을 떠난 공작 부인의 부재로 그들은 사랑이라고는 준 적도 받아본 적도 없는 불쌍한 인간들이었다. 그들이 이렇게 비정상적인 성격이 된 건, 어쩌면 그들을 강하게만 키우려고 했던 공작의 잘못된 교육 방식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엘리아는 그들이 불쌍하지 않았다. 그들의 포악한 성격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하는 건 자신이었으니.
누구보다 불쌍한 건 자신인데, 누가 누굴 동정하겠는가.
“엘리아.”
“…네?”
잠시 상념에 빠진 그녀를 나지막이 부른 프레드가 슬그머니 다가앉았다. 눈빛을 보니 역시나 원하는 게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 몸은 좀 어떤데……? 괜찮아? 움직일 만해?”
안 괜찮다고 해도 덮칠 놈이 왜 오늘따라 눈치를 보며 묻는 건지. 어제오늘 아론이나 프레드나 아주 이상했다. 그래도 물어는 보니 혹시나 싶어 엘리아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직… 몸이 조금 힘드네요. 어지럽고, 속도 메스껍고. 무엇보다 기운이 하나도 없어서 좀―”
“그럼 넌 누워만 있어. 내가 다 알아서 할게.”
“네? 뭘 다 알아서…….”
그가 뭘 말하는지 뻔히 알았지만, 그녀는 제발 아니길 바라며 모르는 척 말을 흐렸다.
“모르면 그냥 눈 감고 가만히 있어. 누가 그러는데.”
갑자기 프레드가 목소리를 작게 내며 누워있는 엘리아의 귓가로 입술을 가져갔다. 그는 당장이라도 덮칠 듯 엘리아를 양팔로 가두고는 아주 다정하게 속살거렸다.
“아픈 여자가 그렇게 맛있다나 뭐라나? 자지가 그냥 살살 녹는대. 그러니까 넌 가만히 누워서 내 자지나 살살 녹여주면 돼.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할게.”
이 또라이 새끼가 지금 뭐라는 거야?
이젠 아픈 제 몸까지도 맛보겠다는 남자의 말에 엘리아는 저도 모르게 와락 인상을 구겼다. 그러나 달라질 건 없었다. 그녀의 허락을 구하려고 물어본 것은 아니었으니까.
이미 그는 엘리아의 드러난 젖을 주물럭거리며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꽤 오래 참았다는 양 프레드의 손길이 조급하게 닿아왔다.
야릇하게 젖을 주물럭거리며 집요하게 닿아오는 프레드의 음험한 눈빛에 엘리아는 고개를 돌렸다. 거부할 처지도 못 됐지만, 그렇다고 이 상황에 신음까지 흘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행동은 프레드를 더 자극할 뿐이었다. 더 괴롭히고 싶고, 더 울리고 싶도록. 엘리아의 몸을 잘 아는 프레드는 그녀의 약점이 어딘지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동그란 유륜을 따라 손가락을 살살 돌리며 젖꼭지만 남겨두고 희롱하듯 약 올린다. 새빨간 눈동자가 어디까지 참는지 두고 보겠다는 양 연신 그녀의 약점 주변만 맴돌며 빤히 쳐다봤다.
엘리아는 입술을 꾹 깨물고 최대한 참아보려 했지만, 능수능란한 프레드의 손길에 음란한 몸은 속절없이 반응했다. 차라리 대놓고 젖꼭지를 비틀었다면 이렇게 애가 타진 않았을 텐데.
만질 듯 안 만져주니 아랫도리가 뻐근해진다. 의도치 않게 몸을 움찔거리며 제 반응을 고스란히 내보였다. 그녀의 야릇한 몸짓에 프레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닌 척하면서, 몸은 좋아 죽겠나 봐?”
“도련님. 제발 오늘은 그냥 쉬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씨알도 안 먹힐 소리라는 건 알았지만, 아까 프레드가 한 말 때문에 혹시나 하고 애원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여전히 제멋대로였다.
“넌 가만히 누워만 있으면 된다니까. 자지도 내가 알아서 물려주고 흔드는 것도 내가 할게. 그러니까 넌 누워서 그냥 푹 쉬어.”
개새끼.
말 같지도 않은 개소리를 해맑게 늘어놓는 놈의 행태에 그녀는 가까스로 욕설을 삼키고 이내 체념했다.
“어디부터 빨아줄까? 참, 어제는 아론이 빨아줬어? 안 빨아줬지? 하여간 형이 그렇지, 뭐. 그래도 나만큼 엘리아 너를 생각해 주는 사람은 없을걸?”
퍽 생각하는 양 뻔뻔한 프레드의 말에 엘리아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대꾸할 필요도 가치도 없었기에. 이제는 차라리 얼른 싸고 나가줬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연신 유륜을 따라 빙글빙글 돌아가던 프레드의 손가락 끝이 엘리아의 젖꼭지 끝을 살짝 스쳤다.
“아!”
결국 그녀 입에서 짧은 신음이 나오자, 프레드의 입꼬리가 히죽 올라갔다. 또다시 유륜 주변을 빙글빙글 맴돌다 이번에는 손가락 두 개로 딱딱하게 선 젖꼭지를 잡아 살살 비틀었다. 아쉬웠던 곳이 만져지자 엘리아의 입에선 여지없이 신음이 뱉어졌다.
“흐읏!”
“풉. 귀엽기는. 뭘 그렇게 참고 그래? 그냥 좋으면 느끼면 되지. 어디 보자, 얼마나 젖었으려나……? 설마 이 정도로 질질 싼 건 아니겠지?”
그는 그녀가 덮고 있는 이불 속으로 손을 쑥 넣고는 잘빠진 여체의 허벅지를 야릇하게 쓸어 올라가다 제 목적지에서 멈추었다. 폭 덮인 조갯살을 살살 가르며 들어오는 손가락에 엘리아의 몸이 격렬하게 반응했다.
“흑! 도, 도련님.”
짜릿한 감각에 얼른 그의 팔목을 붙들고 다리를 오므리자.
“흠, 오늘따라 우리 엘리아가 왜 이렇게 반항하는 거지?”
금세 싸늘하게 가라앉는 핏빛 눈동자에 엘리아는 흠칫 몸을 떨었다. 세 공자 중 가장 대하기 쉬운 프레드였지만, 한 번 심사가 뒤틀리면 그도 아론 못지않게 무서운 남자였다.
“손 올려. 그리고 더는 반항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웃음기가 사라진 프레드의 음성에 그녀는 그의 팔목을 붙들었던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머리 위로 양손을 들어 올리고 고개를 돌리자, 그의 손가락이 기다렸다는 듯 엘리아의 비부를 적시기 시작했다.
손가락 기둥을 눕혀 갈라진 속살을 길게 비벼댄다. 고기라도 자르는 양 쓱쓱 문지를 때마다 그의 손가락 끝이 숨겨져 있던 작은 돌기를 톡톡 건드렸다. 민감한 곳을 건드릴 때마다 그녀의 아랫도리가 질척하게 젖어들었다.
“쯧, 이 정도로 질질 싸면서 왜 아닌 척하는 건데? 하여간 좋으면서 싫은 척은.”
“하읏!”
이리저리 애액을 묻히며 자극하는 통에 착실한 몸은 점점 더 애액을 흘리며 그의 손을 반겼다. 능숙하게 흥분시키는 프레드의 손길에 엘리아의 숨소리가 조금씩 야릇하게 변했다. 눈은 몽롱하게 풀리고, 얼굴은 발그레하게 물들었다. 풍만한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며 프레드를 유혹했다.
“자, 이제 빨아줄게. 원하는 곳을 말해 봐. 보지? 젖? 아니면… 내 것부터 먹을래?”
“그만.”
“……!”
“……?”
그때 갑자기 들린 싸늘한 음성에 엘리아는 얼른 손을 내리고 이불을 끌어 올려 훤히 드러난 가슴부터 가렸다. 그러곤 아래를 빼꼼히 내려다보니 아론과 아힌이 한심스럽다는 듯 프레드를 쳐다보며 혀를 차고 있었다.
“뭐야? 갑자기. 예의도 없이.”
“예의 같은 소리하고 있네. 넌 아픈 애 붙들고 그러고 싶냐?”
아힌의 빈정거림에 프레드의 입꼬리가 비죽 올라간다. 그리고 시선은 아론을 향했다.
“어제 정신 놓은 애를 밤새 잡아먹은 사람도 있는데, 나 정도면 양호한 거 아닌가?”
프레드가 대놓고 아론을 겨냥하자 그가 실소를 흘렸다.
“난 빚을 받은 거고. 넌 뭘 했다고? 병을 줬으면 미안해라도 하든가. 기껏 살려놨더니, 또 죽이러 온 거냐?”
“…형. 진짜로 엘리아 간호했어?”
눈을 커다랗게 뜨고 아힌과 똑같은 질문을 하는 프레드의 모습에 아론의 인상이 살벌하게 구겨졌다. 잔인하게 번뜩거리는 눈빛을 보니 오늘 아무래도 뭔 사달을 낼 것 같은 표정이다.
“엘리아. 괜찮나?”
성큼성큼 제 앞으로 다가오는 아힌을 보며 엘리아는 이불로 온몸을 감싸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정신 나간 짐승 새끼들 사이에 홀로 놓인 엘리아는 극도로 불안해졌다.
“소, 소공작님.”
“음, 일어날 필요 없어. 많이 아팠다며? 그래서 아론이 간호는 잘 해줬나?”
얼핏 들으면 더없이 다정한 말 같았지만, 아힌의 음성에는 아론을 향한 비웃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할 얘기나 빨리 하고 나가지? 나 좀 쉬고 싶은데. 엘리아도 더 쉬어야 하니까 용건만 간단히 하고 얼른 나가.”
아론의 축객령에 아힌과 프레드의 눈동자가 동시에 그에게로 향했다. 그러곤 프레드가 커다래진 눈으로 아힌을 다시 쳐다보자 그가 픽 웃는다. 아까 자신이 지었던 표정을 프레드를 통해 보니 꽤 웃겼기 때문이다.
“그래. 엘리아를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특별히 시간을 주지. 작별 인사라도 거하게 나누라고.”
웬일로 순순히 대답하는 아힌에게 프레드가 되물었다.
“아론 형 어디 가?”
“응. 나 대신 아론이 이번 영지 토벌 작전에 나갈 거야. 왜? 너도 갈래?”
“미쳤어?! 내가 왜 가? 안 가!”
영지 토벌 작전……?
엘리아는 그게 뭔지 잘 몰랐지만, 일단 아론이 공작저를 잠시 떠난다는 말인 건 알 것 같았다. 아론을 물끄러미 바라보자 눈이 마주친 아론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참, 엘리아. 축하해.”
“…네?”
“너, 오늘부로 베르타른 공작가의 하녀장이 됐거든.”
“네에……?”
“뭐?! 엘리아가 하녀장이라고? 왜? 언제부터?”
엘리아보다 더 놀란 프레드가 제 형들을 번갈아 보며 누구라도 대답하라는 듯 눈을 부라렸다. 가만 보니 저만 모르고 형들만 아는 것이 많은 게 영 짜증스러운 모양이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엘리아는 아론을 쳐다봤다. 그가 정말로 약속을 지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냥 저를 가지고 놀기 위해 한 말일 거라 생각했는데. 물론 약간의 기대도 있긴 했었지만, 정말로 이렇게 바로 들어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아론이 정말 죽을 때가 된 건가? 혹시 이번에 나가서 시체로 돌아오는 거 아니야?
어제부터 변해도 너무 심각하게 변한 아론이 한편으로는 조금 걱정됐다. 저를 도와준 것 때문인지, 아니면 기억에는 없지만 이들 말대로 자신을 간호해 줘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제 시선에도 팔짱을 낀 채 다른 곳만 보는 아론의 무심함에 엘리아는 조금 섭섭함을 느꼈다. 그렇게 무서웠던 남자인데. 하룻밤 같이 지샜다고 그새 정이라도 든 모양이다.
“참, 그리고 방도 옮겨.”
“네?”
“앞으로 넌 3층을 사용하게 될 거야.”
3층이라면……. 안 돼!
하녀들과 하인들이 기거하는 곳은 본관 옆에 따로 지어진 작은 건물이었다. 엘리아도 원래는 그곳에 있어야 했지만, 그녀의 방은 본관 가장 꼭대기 층인 다락방이었다. 왜 엘리아 혼자 그곳에 떨어지게 된 건지는 자신도 모른다. 소설 속 첫 문장이 그랬기 때문일거라는 막연한 추측뿐이었다.
그래도 그곳이 좋았던 건 낡고 허름한 방이라도 이 짐승 같은 공자들이 그곳엔 침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인들이 기거하는 곳이라 하인들이 몰래 그녀의 방을 급습하는 일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3층이라니.
세 공자의 방이 모두 다 3층이다. 물론 넓은 저택이라 방마다 거리가 있긴 했지만, 그쪽으로 방을 옮긴다면 더는 안전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공자들의 방만큼 넓고 크진 않겠지만 다락방만큼 좁고 허름하지는 않을 테니 그들은 거리낌 없이 자신의 방을 아무 때나 들어올 것이 분명했다. 다른 이들이었다면 좋아서 함박웃음을 지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엘리아에게는 앞으로의 생활이 더 끔찍하게 다가왔다.
이제 굶을 필요는 없겠구나. 굶으나 안 굶으나 매일 밤 시달릴 것이 뻔할 테니. 하아…….
그래도 혹시 몰라 엘리아는 아힌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소공작님.”
“응?”
“그냥 전 원래 제 방에 있을게요. 그곳이 가장 편하기도 하고.”
“왜? 또 굶으려고?”
“그, 그게 아니라…….”
뭔 말만 하면 싸늘해지는 짐승들의 기세에 엘리아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옆에는 프레드가 바짝 다가앉아 있고, 앞에는 아힌이 마주 보고 있어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그냥 고개를 푹 숙였다.
세 공자와 함께 있으려니 점점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러면서도 셋이 같이 덤비지 않는 게 감사하게 느껴질 정도라니. 제 어이없는 생각과 비참한 처지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때 집사가 들어왔다.
“도련님, 모두 모였습니다.”
“문 활짝 열어. 그리고 다들 앞으로 모이라고 해.”
“알겠습니다.”
1층으로 지어진 별관의 통창이 활짝 열렸다. 원룸 형식인 별관의 창문이 열리니 따스한 바람이 코끝을 간질였다.
눈이 휘둥그레진 엘리아는 본능적으로 이불을 더욱 끌어당겨 몸을 완전히 덮고는 한껏 웅크린 채로 눈만 끔벅거렸다. 그런데 아론이 천천히 다가와 엘리아 뒤에 섰다. 그러곤 어설프게 가려 살짝 드러난 그녀의 어깨 아래로 늘어진 이불을 올려 단단히 여며줬다.
슬쩍 시선을 올려 그를 바라보자 상냥한 행동과는 다르게 마주 닿은 아론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했다.
“다 모인 건가?”
아힌의 음성에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밖을 본 엘리아는 깜짝 놀라 앞에 있는 아힌의 등 뒤로 얼른 몸을 숨겼다. 그러자 눈치 없는 프레드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아 제 품으로 당기고는.
“야, 왜 숨어? 지금 너 때문에 다 모인 거 같은데. 네가 주인공이잖아.”
“도, 도련님.”
큰 소리로 떠들었다. 수많은 시선이 느껴졌다. 눈동자를 도로록 굴리자, 문밖으로 줄지어 선 공작저 사용인들의 시선이 모두 자신에게 향했다.
세 공자에게 둘러싸여 있는 자신의 모습이 그들의 눈에 어찌 보일지, 생각만 해도 한숨이 나왔다. 그들의 눈에는 경멸과 멸시, 그리고 질투와 조소가 담겨 있었다. 아마도 저들의 눈에는 자신이 몸 파는 창녀처럼 보일 터였다. 엘리아는 언제나처럼 그냥 고개를 푹 숙였다.
“잘 들어라.”
아힌의 묵직한 음성에 그들의 시선이 모두 소공작을 향했다.
“오늘부터 이 저택의 하녀장은 여기 있는 엘리아가 맡을 것이다.”
그의 말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차갑게 얼어붙었다. 처음엔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힌의 말이 왠지 사형 선고처럼 들렸다. 밤낮 없이 이 짐승들의 노리개로 살다 죽을 운명. 그리고 이제는 저들과 가까워질 기회마저도 영영 사라져버렸다. 자신은 정말로 철저하게 혼자가 돼버렸다.
그냥 오늘 밤에 도망쳐버릴까?
더 미룰 것도 없이 이제는 당장 사라져버리고 싶어졌다. 하녀장이 되게 해 주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그저 직위와 봉급만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줄이야. 그녀는 어디로 도망가야 자신이 살 수 있을지 고민했다.
싸늘한 분위기 속에 세 공자의 무시무시한 성격을 잘 아는 하녀들과 하인들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하나도 무서운데 무려 셋이나 모여있으니 그들은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그리고 그 정적을 다시 깬 건 아힌이었다.
“그러니 잘 따르도록. 알았나?”
“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였지만,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제 주인의 명령에 대답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 방은 엘리아가 맡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 방 청소를 제외한 나머지는 엘리아가 시키는 대로 하도록.”
슬그머니 고개를 든 엘리아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부들부들 떨고 있는 하녀장 조안나였다.
화가 나겠지. 가장 경멸하고 무시하던 자신에게 제 자리를 빼앗겼으니 얼마나 화가 나겠는가.
엘리아는 아론이 준 기회를 덥석 문 어젯밤을 후회했다. 자신이 하녀장이 된다 해도 저들은 자신의 말을 절대로 따르지 않을 터였다. 그리고 저 무서운 하녀장이 조용히 넘어갈 사람도 아니고.
어쩌면 자신의 방에 정말 어떤 놈을 밀어 넣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차라리 3층으로 옮겨진 게 다행인 건가.’
자꾸만 왔다 갔다 하는 마음에 엘리아는 죽을 맛이었다. 지금이라도 하녀장 자리를 없던 것으로 해달라고 빌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 그들은 제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을 것이 뻔했기에 입도 벙긋할 수가 없었다. 이젠 밤낮으로 자신의 방을 드나들 빌미가 생겼는데 이 좋은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저 스스로 제 몸을 짐승들에게 내던진 꼴이 된 것 같아 그녀의 눈빛은 후회로 물들었다.
“다들 알아들었으면 돌아가.”
“네.”
아힌의 말에 하인과 하녀들이 꾸벅 인사한 후, 몸을 돌리려는 찰나.
“잠깐.”
한겨울 서릿발 같은 차가운 음성이 그들을 멈춰 세웠다. 바로 밑에 있던 엘리아마저도 움찔하게 만든 아론의 싸늘한 음성에 몇몇 하녀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조안나를 포함해서 어제 여기에 왔던 것들은 남아.”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빼꼼히 들자, 하녀장을 포함해 몇몇 하녀들이 죽음을 목전에 둔 양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두려움에 기름을 부은 것은 아힌이었다.
“정말로 입을 찢게?”
뭐? 입을 찢어?
“입을 왜 찢어? 쟤들이 뭐 나불거렸어?”
프레드가 아주 해맑은 얼굴로 엘리아 대신 물었다.
“조안나. 내가 너를 너무 믿은 모양이야.”
“도, 도련님.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땅바닥에 철퍼덕 엎드린 조안나가 양손을 모으고 싹싹 빌자, 다른 하녀들도 조안나와 마찬가지로 엎드려 빌며 울음을 터뜨렸다.
“살살 해라. 조안나는 그래도 우리랑 꽤 오래 지냈잖아. 다른 것들은 몰라도 조안나는 봐줘. 아버지도 조안나는 아끼시잖아.”
“그래, 형. 뭔지는 모르겠지만 조안나 입은 조금만 찢어.”
누구에게는 죽을 만큼 두려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 두 공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엘리아. 푹 쉬고 있어. 이따가 밤에 올게.”
“엘리아, 빨리 낫는 게 좋을 거야. 제이든에게 약을 지어 보내마.”
“네, 가, 감사합니다.”
누가 보면 오빠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사는 막냇동생인 줄 알 정도로, 그들은 살갑게 인사하고 별관을 나섰다. 더 웃긴 건 조안나는 살려주라고 말했으면서도 정작 그녀에겐 시선 한 가닥 주지 않고 유유히 사라졌다는 것이다.
아힌과 프레드가 사라지자 아론이 그녀들 앞으로 나섰다. 그러곤 더없이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
“엎드린 것들 제외하고 다들 가서 일 봐.”
“네, 네.”
혹시 불똥이라도 튈세라 나머지 하인들과 하녀들은 쏜살같이 사라졌다. 자리를 지키고 있던 나이 든 집사만이 남아 아론을 바라봤다. 세 공자가 태어나기 전부터 공작저를 지켜온 집사는 아론의 성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남자였다. 그렇기에 혹시라도 정말 이곳에서 눈 뜨고 보기 힘든 참사가 벌어질까 싶었는지 자리를 뜨지 못했다.
“집사.”
“네, 도련님.”
“가서 내 칼 가져와.”
그의 걱정을 확인이라도 시켜주겠다는 양 아론이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말했다.
“도련님. 노여움을 푸시고…….”
“집사도 이젠 내 말이 우스운 건가?”
“그게 아니라…….”
“가져와.”
“…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혼자만 이해 못 한 엘리아는 그저 눈만 끔벅거렸다.
‘정말로 입을 찢을 생각인 거야? 왜?’라고 생각했지만, 곧 그런 생각을 한 자신이 우스웠다. 이들이 무슨 일을 하든 언제나 이유는 없었으니까. 그냥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할 뿐.
벌벌 떠는 그녀들을 보니 왠지 조금은 불쌍했다. 사람은 정말로 망각의 동물이란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그렇게 자신을 괴롭히고 멸시했던 이들인데도 저런 꼴이 되자 불쌍한 마음이 드는 걸 보니.
“네년들이 뭘 잘못했는지는 알고 있겠지?”
“도련님.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조안나. 난 용서라는 걸 못 배운 놈이란 거 잘 알잖아. 그걸 알면서도 떠벌렸다는 건 내가 우스웠다는 거 아닌가?”
“아닙니다. 도련님!”
“그럼 말해. 누가 떠벌린 거지? 솔직히 말하면 다 찢지는 않겠다.”
아론의 으름장에 하녀들은 서로 힐끔힐끔 눈치만 보며 벌벌 떨었다. 그들을 보니 곧 누군가가 다른 이를 지목할 것 같았다. 그리고 나머지는 동조하겠지.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치 않았다. 그들의 세계는 원래 그랬으니까. 나만 살면 그만인 아주 이기적인 인간들.
그 전쟁 같은 곳에서 유일한 목표물이었던 엘리아는 그들의 경멸과 멸시를 매일 받으며 살았다. 자신이 당했던 생각이 떠오르자 불쌍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잠시, 이제는 고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집사가 아론의 검을 들고 나타났다. 그걸 받아 든 아론이 잘 벼려진 칼을 꺼내 들곤 칼집을 엘리아의 옆에 툭 던졌다. 그 탓에 깜짝 놀란 엘리아가 몸을 바짝 웅크렸다.
그가 천천히 하녀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뒷모습만 봐도 무시무시한데 앞에서 보는 저 사람들은 얼마나 무서울까.
진짜 찢으려는 거야? 여기서? 정말로?
설마 했는데 정말로 그녀들의 입을 찢을 모양인지, 아론의 발걸음엔 망설임이 없었다. 입도 벙긋 못 하고 눈물만 뚝뚝 흘리며 벌벌 떠는 그녀들 앞에 칼을 들고 서있는 남자의 단호한 등짝을 보니, 아무리 그들이 미워도 이건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기에 엘리아는 덩달아 바르르 떨며 눈앞의 광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차라리 다른 데서 하지, 왜 하필 여기서 이러는 거야?
꼭 자신에게 검을 들이댄 것만 같아 아론에 대한 공포심이 더욱 강하게 뇌리에 박혔다.
“도련님. 노여움 푸시고, 제발 다시 한 번만…….”
“나와.”
재차 자신을 막는 집사에게 싸늘하게 일갈한 아론이 칼을 어깨 위에 걸쳐 메곤 죽음의 사자처럼 무섭게 으르렁거렸다.
“말 안 한다 이건가? 좋아. 그럼 원대로 해주지. 너부터 고개 들어라. 안 그러면 목이 떨어질 거야.”
아론의 지목을 받은 하녀가 당장이라도 기절할 듯 벌벌 떨며 고개를 들었다. 이미 정신이 반쯤 나갔는지 그녀의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어 보였다.
설마, 아닐 거야. 아니야. 겁만 주려는 거겠……!
그녀의 믿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론의 손에 들린 칼이 허공에서 빙그르르 돌다 가차 없이 내려오려는 순간.
“아악! 아이고, 배야! 아흑……!”
엘리아가 다급하게 비명을 질렀다.
갑자기 배를 잡고 떼굴떼굴 구르며 비명을 지르는 그녀에게로 모두의 시선이 향했다. 들고 있던 칼을 내던지고 다가온 아론이 그녀의 이마를 짚으며 다급하게 물었다.
“어디가 아픈 거야? 응? 집사! 당장 제이든을 불러와!”
“네, 도련님.”
“흐윽.”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숨을 헐떡이는 엘리아를 아론이 일으켜 제 무릎에 눕혔다. 그러곤 연신 땀을 흘리는 그녀의 이마를 닦아주며 소리쳤다.
“조안나!”
“네? 네. 도련님!”
“얼른 가서 물 떠와!”
“네! 뭣들 하는 거니! 얼른 가서 물하고 수건 가져오너라!”
조안나의 고함에 엎어져 있던 하녀들이 기절 직전인 하녀를 붙들곤 쏜살같이 내달렸다.
모두 사라진 것을 확인한 엘리아는 그제야 고른 숨을 내쉬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프지도 않은데 아픈 척하려니 뭘 더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저 인상을 찌푸리며 끙끙거렸다.
그나마 더운 날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느라 배어 나온 땀 덕분에 아론의 의심은 피한 것 같아 다행이라 생각하며 그녀는 마지막까지 어설픈 연기에 힘을 썼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놀라는 아론의 모습에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피도 눈물도 감정도 없는 그가, 사람 목숨 알길 파리 목숨만큼도 여기지 않는 그가 자신을 이런 눈으로 바라본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가슴 언저리가 술렁거렸다.
하아… 어쨌든 막긴 막았구나. 다행이야.
“괜찮나?”
“하아, 네. 조금 괜찮아진 것 같아요. 하아, 하아.”
“흐음. 안 되겠군. 이따가 제이든 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사하는 게 좋겠어.”
“아니,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되는…….”
“하라면 해.”
단호한 음성. 언제나처럼 제멋대로인 명령. 그런데 뭔가 아론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분명 차가운 음성인데 그의 입꼬리가 조금씩 올라간다. 분명 그가 웃고 있는데도 등줄기가 섬뜩했다.
불현듯 뭔가 잘못됐다는 것이 느껴지려는 찰나.
“날 속이면서까지 이런 깜찍한 연기를 했으면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어?”
“……!”
아론의 서슬 퍼런 음성에 엘리아의 심장이 쿵 떨어졌다. 지독하리만큼 잔인하게 보이는 새빨간 눈동자가 위험하게 번뜩거렸다. 엘리아는 숨이 멎을 듯한 공포에 벌벌 떨기 시작했다. 괜한 오지랖을 부려 제 목숨이 위험하게 생기자 뒤늦게야 후회가 몰려왔다.
하, 내가 미쳤지. 이놈이 어떤 놈인지 뻔히 알면서…….
그가 당장 제 심장을 쥐어뜯을 것처럼 펄떡거리는 가슴 위로 손을 얹는다. 그녀는 차라리 이대로 기절하고 싶었다. 번뜩거리는 새빨간 눈동자가 곱게 접히는 모습마저도 엘리아에겐 공포였다. 아론이란 남자는 웃음과는 거리가 먼 남자였으니까.
자신의 연기가 썩 훌륭하지 않다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바로 알아차릴 줄이야.
그들이 불쌍해서 도와준 건 아니었다. 저를 그토록 괴롭혔던 그들을 도와줄 만큼 자신은 순진하지도, 착하지도 않았다. 그저 눈앞에서 잔인한 광경이 벌어지는 게 싫었을 뿐인데.
“앙큼한 엘리아. 너도 내가 우스웠던 모양이야? 내가 너무 잘해 줬나?”
왜 일이 이렇게 됐냔 말이다.
맹수의 무릎을 베고 누운 엘리아는 으르렁거리는 핏빛 눈동자를 마주 보며 벌벌 떨었다. 그 와중에도 본능은 이불을 슬금슬금 끌어 올리며 제 가슴에 얹힌 그의 손을 쓱 밀어냈다. 심장이 뜯길 것 같아 저도 모르게 한 행동이었다.
“흥, 아직도 겁이 없군. 아니면 일부러 이러는 건가? 날 자극하려고?”
아론은 겁에 질려 달달 떠는 엘리아를 이불째 달랑 들어 올리곤 튼실한 제 허벅지 위에 앉혔다. 순식간에 공주님 안기 자세로 그의 품에 갇힌 엘리아는 가까워진 그의 입술에 숨을 홉 들이켰다.
무섭게 왜 자꾸 웃는 건지. 아름다운 남자의 미소에 매혹되긴커녕 점점 더 겁에 질려 숨이 막힐 것 같던 엘리아는 아론의 손이 제 젖가슴을 움켜쥐는 순간, 그제야 막힌 숨을 토해 냈다.
“헉!”
“이젠 내 자지가 꽤 좋은가 봐? 이런 앙큼한 짓을 겁도 없이 벌이는 걸 보니.”
“주, 주인님. 잘못했습니다.”
이제야 말문이 트인 그녀는 다급하게 빌었다. 물론 용서해 줄 리 없겠지만, 살기 위해서라면 뭐라도 해야 했다.
“잘못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주인님…….”
“내 겁 없는 장난감에게 어떤 벌을 주면 좋을까?”
엘리아의 젖가슴을 움켜쥐었던 아론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가슴골을 지나 슬금슬금 이불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납작한 아랫배를 지나 검은 수풀 아래로 내려가는 감각에 엘리아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곧 그의 손이 어디에 도착할지 잘 알기에 겁에 질려 벌벌 떨면서도 가랑이 사이가 저릿거렸다. 이 와중에도 남자의 손길에 반응하는 몸이 어이없다 못해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정말 단단히 미쳤구나.
그녀의 상태를 기민하게 알아챈 아론이 피식 웃으며 음모를 살살 쓸어내렸다. 애라도 태우려는 모양인지, 닿을 듯 말 듯 한곳에 머물며 그녀의 둔덕을 간질였다.
“만져줬으면 좋겠어?”
장난치듯 묻는 아론의 말에 엘리아는 입술을 꼭 깨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왜……? 지금 만져달라고 애원하는 얼굴인데?”
“주, 주인님. 자, 잘못, 하윽!”
별안간 그녀의 구멍으로 손가락을 쑥 집어넣은 아론은 그녀의 신음에 비죽 웃었다. 파드득 떨리는 몸짓이 몹시 흡족했다.
“흥, 이젠 닿기만 해도 젖는군.”
“하아… 주인님, 정말 잘못했어요.”
“그러니까 지금 벌주는 중이잖아. 그런데 이렇게 즐기면 어쩌자는 거지? 야해 빠진 몸은 좋아 죽겠다고 질질 싸고 있잖아.”
아까 프레드가 적셔놓은 바람에 이미 그녀의 음부는 질척하게 젖어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다시 아론의 손길이 닿아오니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애액이 주르륵 흘러나온다. 짐승들의 손에 길든 몸은 주인의 손길만으로도 착실하게 반응했다. 이런 상황은 그녀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본능이니까.
매번 제 욕정만 해소하고 갔던 남자가 어제 오늘 줄기차게 몸을 만져주니 자신의 몸이 이상해진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흥분한 적은 없었는데, 아론의 손길에는 유달리 흥분의 감도가 거센 기분이었다.
그리고 남자의 손길도 달라졌다. 프레드나 아힌보다는 조금 서투르다고 느꼈던 손길이 지금은 너무나도 능수능란했다. 구멍을 헤집던 손가락이 쑥 빠져나와, 이내 가장 예민한 돌기를 쓱쓱 문지르며 그녀의 반응을 즐겼다.
“흐읏!”
그녀의 허리가 움찔 경련하고 다리가 바짝 오므라든다.
“벌려.”
“흑, 주인님.”
“이불 치울까?”
“아, 아니요.”
엘리아는 모았던 무릎을 천천히 벌렸다. 어차피 만져질 거, 그에게 수치스러운 곳을 보이는 것보단 차라리 이렇게라도 가리고 있는 게 더 나았다. 거기다 활짝 열린 통창 때문에 분위기는 야외나 다름없었다.
활짝 벌어진 보지 살 아래로 부드러운 손길이 미끄러지듯 유려하게 움직인다. 대음순 아래에 숨은 속살까지 쑤석거리다 또다시 그녀가 가장 잘 느끼는 음핵을 살살 간질였다. 그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자잘하게 밀려오는 쾌감에 엘리아는 저도 모르게 엉덩이를 들썩였다.
제 손길에 따라 달라지는 그녀의 표정을 아론은 즐겁게 감상했다. 일그러지던 얼굴이 울상을 지으며 신음을 뱉을 때는 가학심마저 생겼다. 제 아래 깔려 울부짖으면서도 좋아서 어쩔 줄 몰라 몸부림치던 엘리아의 모습이 그는 꽤 즐거웠기 때문이다.
“왜 그랬지?”
더없이 부드러운 손길로 그녀의 비부를 만지작거리며, 더없이 서늘한 음성으로 그가 물었다.
“하아, 흣. 죄송합니다. 흐응!”
대답 사이로 섞여 나오는 신음 때문에 간드러지는 목소리가 튀어나오자, 그녀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딴 말 말고. 난 네 속마음을 묻는 거다.”
“하윽! 주, 주인님. 손 좀. 흐으읏!”
질문했으면 대답을 하게 해주든가!
대답을 바라놓고 굵은 손가락을 질구 속으로 푹 쑤셔 넣는 것도 모자라, 나사라도 조이는 양 손가락을 이리저리 돌리며 더 깊이 쑤셔대는 통에 엘리아는 대답 대신 연신 신음만 흘렸다.
“대답 안 할 건가?”
“하앗! 주, 주인님! 흐아앙……! 하웃!”
이미 잔뜩 달아오른 몸에 손가락을 쑤셔 넣고는 사정없이 흔들어버리니 더는 버티지 못한 엘리아는 아론의 의도대로 질펀하게 가버렸다.
엘리아를 보낼 작정으로 무자비하게 흔들었던 아론의 손이 그녀의 눈앞에 나타났다. 얼마나 많이 싸버렸는지, 그의 손에서 엘리아의 흔적이 뚝뚝 떨어졌다. 몽롱하게 풀린 눈으로 제 수치를 마주한 엘리아는 고개를 휙 돌렸다. 그런데 귀소 본능도 아니고, 하필 고개를 돌리고 보니 아론의 목덜미였다.
의도치 않게 아론의 목덜미에 입술이 닿자 화들짝 놀란 엘리아가 얼른 입술을 뗐다. 그런데 그 순간 이상한 장면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목부터 귀까지 붉어진 남자의 기묘한 상태가.
그 모습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을 음탕한 꼴로 농락하던 남자가 입술 한 번 닿았다고 이렇게까지 빨개지다니. 그녀는 제 눈을 의심했다. 그것도 모자라 아래서는 무언지 알 것 같은 묵직한 놈이 엉덩이를 꾹꾹 찔렀다.
녹진하게 풀린 그녀의 눈동자가 아론의 목덜미를 빤히 바라봤다. 이미 한 번 거하게 간 몸이 이제는 그의 것을 원했다. 본능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그와 밤새 몸을 섞었던 기억이 떠오르자, 부족한 곳을 가득 채우고 싶어졌다. 아론의 말대로 어쩌면 자신도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어떡해, 정말 미쳤나 봐.
서늘한 남자의 손이 다시금 뜨거운 음부를 휘젓자, 입술을 질끈 깨문 그녀가 아론을 애타게 바라봤다. 눈이 마주친 그녀의 눈동자엔 욕정이 들끓고 있었다.
엘리아는 이제는 스스로 다리를 벌리고 정말로 그의 손길을 즐기며 아론의 목덜미를 야릇하게 빨기 시작했다. 본능에 잠식된 이성은 더 이상 그녀의 욕정을 막을 수가 없었다.
작고 부드러운 선홍색 혀가 목덜미의 불거진 힘줄을 따라 유영하듯 할짝거린다. 아론의 손길에 옅은 신음을 흘리면서도 그녀는 아론에게 하는 애무를 멈추지 않았다.
제 목덜미를 할짝거리기만 하는 엘리아의 서툰 애무에도 아론은 이미 발기된 좆이 바지를 뚫고 나올 정도로 흥분했다. 바지춤에 잔뜩 구겨져 있던 자지가 고개를 쳐들고 싶어 꿈틀거리자 이제는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제기랄! 엘리아 넌 정말!’
더는 참기 힘들어진 아론이 팔을 내려 그녀의 몸을 아래로 기울였다. 몸이 기우뚱 넘어가자 잔뜩 풀린 눈으로 그를 애타게 바라봤다. 쌕쌕 숨을 내쉬며 자신을 바라보는 엘리아의 야릇한 눈빛에 아론은 머릿속에서 뭔가 툭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흐읍.”
덥석 입술을 삼킨 남자가 거칠게 혀를 집어넣곤 온 입 안을 휘저었다. 깜짝 놀라 숨은 자그마한 혀를 찾는 듯 흉포하게 움직이는 남자의 살덩이에 엘리아는 숨이 막혔다.
그러나 이미 한껏 흥분한 몸은 서서히 제 존재를 드러내며 남자의 키스를 받아들였다. 그가 원하는 대로 혀를 내어주다 다시 냉큼 빼앗아선 쭙쭙 빨아댄다. 아론보다 더 발정한 듯, 엘리아는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는 혀뿌리까지 빨아 삼켰다.
제 혀를 뽑아 먹을 작정인 양 덤벼드는 엘리아의 몸짓에 아론은 다급해졌다. 바지를 벗을 시간조차 참지 못할 만큼 급해진 그는 일단 지퍼만 열고 제 것을 꺼냈다. 잔뜩 구겨졌던 자지가 이제야 살았다는 듯 ‘퉁’ 퉁겨져 올라 기둥뿌리를 곧게 세웠다.
아론과 정신없이 혀를 섞으면서도 엉덩이를 꾹 찔러오는 아론의 성기에 엘리아는 아랫도리가 더욱 조여지는 기분을 느꼈다. 이제는 지위도, 위치도, 처지도 상관없이 오로지 상대의 몸에만 잔뜩 취한 두 남녀가 얼른 몸을 섞고 싶어 안달 난 듯 허겁지겁 서로의 타액을 빨아 마셨다.
다시 그녀의 몸을 똑바로 일으킨 아론이 엘리아의 엉덩이를 살짝 들어 올렸다. 옆으로 앉은 그녀의 질구에 그대로 제 자지를 끼워 넣자, 엘리아의 고개가 뒤로 홱 젖혀지며 만족스러운 신음이 새어 나왔다.
“하아앗! 흐응… 으응.”
질구를 연신 오물거리며 끙끙거리는 엘리아의 모습에 아론의 입꼬리가 비죽 올라간다. 다급했던 좆을 끼워 넣자 한결 여유가 생겼다. 빠듯하게 조여주는 엘리아의 보지는 언제나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가만 보니 역시나 그녀가 더 즐기는 듯 보였다.
“엘리아.”
“아흐흣, 네, 네. 주인님. 흐읏!”
“넌 지금 벌 받는 건데,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걸까?”
“죄, 죄송하, 하앙!”
미치겠어! 아니, 아니야! 이러면 안 되는데. 정신 차리라고! 흐읏! 너무 좋아……! 나 어떡해…….
두 개의 자아가 싸우는 듯, 그녀는 긍정과 부정을 반복하면서도 아론의 자지를 오물오물 씹어댔다. 몸의 쾌락을 정신이 이길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그를 유혹하려는 마음이 아닌, 엘리아의 몸은 진심으로 이 관계를 즐기고 느끼기 시작했다.
아론은 그녀의 몸을 살짝 들어 올렸다가 아래로 푹 찍어 내렸다. 맞닿은 접합부에서 그녀가 잔뜩 흘린 애액이 찰박 튀어 오른다. 아론이 입꼬리를 사악하게 비틀며 엘리아의 몸을 다시 들어 올렸다.
바르작거리면서도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는 그녀의 표정에 아론의 자지가 더욱 흉흉해졌다. 흉포한 좆 기둥을 흐드러지게 벌어진 그녀의 질구에 다시 한번 푹 쑤셔 박으며 아론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아론은 앙큼하게 저를 속인 엘리아를 용서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녀 스스로가 이런 상황을 만들었으니 아주 격렬하게 화답해 주는 게 주인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아론은 자꾸만 피식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엘리아의 여린 속살을 맛보고 또 맛봤다.
‘아주 헐 때까지 박아주지. 다시는 날 거역하지 못하도록 말이야. 각오해, 엘리아.’
별관으로 누가 오고 있는지도 모르고 이미 서로의 육체에 흠뻑 빠진 두 남녀는 정신없이 서로의 몸을 탐닉했다.
물론 누가 오든 아론은 아랑곳하지 않겠지만.
“흐아아앙! 주인니이…임!”
엘리아의 교성이 별관 정원까지 쩌렁쩌렁 울렸다.
몸이 다시 한번 푹 꺼지며 아론의 귀두부터 기둥뿌리까지 한 번에 몸속을 쑤시고 들어오자 엘리아는 온몸을 바르르 떨면서도 연신 좆 기둥을 오물오물 물어댔다.
매번 아래에 깔리든 엎어지든 하면서 받아냈던 자지를 생전 처음 하는 자세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상한 방향으로 속살을 가르고 들어오는 느낌에 그녀는 아론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부들부들 떨었다.
딱 공주님 안기 자세로 그의 좆을 삼키게 되자, 바짝 오므려진 다리 때문에 찰싹 달라붙어 있던 속살이 벌어지는 게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그의 자지 크기만큼 벌어지는 느낌에 엘리아는 도리질을 치며 흐느꼈다.
“하으윽, 주인님…….”
“하, 이것도 나쁘지 않군. 너는 어때? 좋아?”
“하아, 흐응…….”
“좋단 말이군.”
여전히 제 기분대로 해석한 아론은 그녀의 가느다란 다리 아래로 손을 집어넣고는 그녀의 몸을 다시 들어 올렸다. 빠듯하게 틀어박혔던 좆이 천천히 빠져나가자 아쉬운 듯 그녀의 내벽이 남자의 좆 기둥을 꽉 붙들었다. 완전히 나가는가 싶었던 몸통이 귀두 끝에서 멈추고는 다시 오므려진 속살을 벌리며 깊숙하게 틀어박혔다.
“흐으응…….”
“하, 미치겠군. 천천히 하면 금방 쌀 것 같단 말이야.”
엘리아의 쫀득한 속살이 연신 제 자지를 꽉꽉 물어주자 금세 사정감이 몰려왔다. 쌀 것 같다면서도 멈추지 않고 무슨 운동이라도 하는 양 그녀의 몸을 들었다가 내리길 반복하자 아론의 팔뚝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하아, 하아…….”
엘리아는 아론의 뜨거운 자지에 속살이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기분을 느꼈다.
녹진하게 풀린 보지 구멍만큼이나 몽롱하게 풀린 눈동자를 빤히 보며 아론은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냉정하기 짝이 없는 눈빛과 다르게 그의 입맞춤은 더없이 다정했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과 나누는 것 같은 부드러운 입맞춤이었다.
키스에 정신이 빠진 건지 잠깐 멈춘 남자의 움직임에 엘리아는 스스로 엉덩이를 흔들었다. 그네 타듯 앞뒤로 천천히 움직이자 굵은 좆 기둥이 이리저리 휘청이며 내벽을 찔러댔다. 목구멍까지 깊숙이 밀고 들어왔던 아론의 혀가 거칠게 한 번 휘젓고는 쑥 빠져나가자 엘리아가 하앙, 참았던 신음을 토해 냈다.
“엘리아. 넌 나쁜 년이야.”
“……!”
갑자기 욕을 하는 아론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날 이렇게 만들어놓고, 나 없을 때 그 새끼들 앞에서도 이리 음탕하게 굴겠지?”
“주인님…….”
“이 요망한 구멍을 자물쇠로 채워놓고 갈 수도 없으니 짜증 나서 돌아버리겠군.”
“…….”
갑자기 사나워진 남자의 분위기에 엘리아의 몸이 잔뜩 웅크려졌다. 무서운 것도 무서운 건데, 저런 말까지 하니, 정말로 아론이 미친 것 같았다. 꼭 프레드의 영혼이 그의 몸에 들어간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가만 보니 우리가 널 가지고 논 게 아니라, 네가 우리를 가지고 논 것 같군.”
그의 말도 안 되는 억지에 무슨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언제나처럼 그녀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억지 부리는 남자에게 무슨 변명을 할까.
입을 꾹 다물고 잔뜩 웅크린 그녀의 어깨에 입을 맞춘 남자가 그녀의 몸을 돌렸다. 힘이 쭉 빠진 엘리아의 한쪽 다리를 들어 반대편으로 옮기곤 저를 바라보게 한다. 굵은 자지를 배 속에 품은 채 몸이 돌아가자 핏줄이 도드라진 성난 몸통이 내벽을 빙그르르 돌며 속살을 긁어내렸다. 거기다 다리까지 활짝 벌어지니 더욱 깊숙이 파고들어 왔다.
마주 본 남녀의 눈빛은 흥분으로 잔뜩 취했다. 그녀를 감싸고 있던 이불을 홱 걷어내자 혼자만 헐벗은 상태인 엘리아가 화들짝 놀라 아론의 품으로 몸을 숨겼다. 그러다 곧 잊고 있던 무언가를 퍼뜩 떠올렸다.
미쳤어! 곧 하녀들하고 의사가 올 텐데!
흠칫 굳은 그녀의 상태를 기민하게 알아차린 아론이 겁도 없이 제 품에 안겨 든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는 등줄기를 긁어내리며 그녀의 이성을 다시금 흔들었다.
“움직이지 않고 뭐 하는 거지? 네 보지가 이렇게 원하잖아. 흔들어. 엘리아.”
“주, 주인님. 하녀들과 주치의님이 곧.”
“죽기 싫으면 알아서들 갈 거다. 다른 데 신경 쓰지 말고 넌 내 좆이나 신경 써.”
“하응!”
아론이 허리를 들썩이자 틀어박혔던 좆이 그녀의 자궁구를 푹 찌른다. 또다시 자극해 오는 남자의 거근에 엘리아는 어쩔 줄을 몰랐다. 걱정이 되면서도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엉덩이를 흔들었다.
자신의 선택지는 이것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어차피 공작저의 모든 사람이 다 알았는데, 인제 와서 숨겨봤자 달라질 것도 없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그냥 모든 걸 내려놓기로 했다.
닥치는 대로 살자.
엉덩이를 흔들 때마다 배 속을 꾹꾹 찌르고 내벽을 간질이는 느낌에 엘리아의 이성은 또다시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교접부가 뭉개지자 작은 돌기에 자극이 빠르게 느껴졌다. 한 번 휘몰아치기 시작한 느낌은 순식간에 그녀의 이성을 앗아갔다. 음핵에서부터 아랫배를 지나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쾌감에 그녀의 허리가 활처럼 휘었다.
몸은 부르르 떨리고 정신은 아찔했다. 멈추고 싶었지만, 엉덩이를 단단히 틀어쥔 남자의 손이 그녀의 움직임을 더욱 거세게 도왔다.
“하윽! 하앙! 주인님……! 흐아앙!!”
다른 사람들이 올까 봐 걱정한 것이 언제였느냐는 듯, 엘리아는 울음 섞인 교성을 쩌렁쩌렁하게 내질렀다.
“좋아 죽는군.”
“하아, 하아… 흐윽!”
경직된 몸을 풀어주는 양 아론이 그녀의 엉덩이를 살살 움직였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된 것 같은 엘리아의 표정에 아론은 다시 허리를 들썩였다.
“뛰어.”
“하윽……!”
아론이 움직이는 박자에 맞춰 그녀는 그의 어깨를 잡고 널뛰듯 엉덩이를 쿵쿵 찧었다. 몸에 힘을 줄수록 더 꽉 차게 느껴지는 남자의 자지에 그녀는 질구를 잔뜩 오므리고 날뛰었다.
“하응, 하응, 흐으응!”
아랫배를 찌르는 남자의 선단에 자잘한 쾌감이 연신 온몸을 휘감는다. 채 가시지 않은 쾌감이 다시금 온몸을 휘감는 느낌에 엘리아는 왈칵왈칵 애액을 쏟아냈다. 미끈거리는 좆 기둥이 부드럽게 쑤셔줄 때마다 그녀의 몸이 더욱 격렬하게 들썩였다.
또다시 쾌감이 몰려올 것 같은 느낌에 몸을 바르작거리는 순간, 갑자기 시야가 어두워졌다. 머리 위로 이불이 덮이고 그가 저를 꽉 끌어안는다.
뭐야……?
갑작스러운 아론의 행동에 그녀는 밭은 숨을 내쉬며 잠시 멈추었다. 또 무슨 심사가 뒤틀려 이러나 싶어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주인…….”
“언제 오셨습니까?”
아까보다 더욱 차가워진 아론의 음성에 엘리아는 입을 꾹 다물었다.
“제이든을 급하게 찾았다길래 당장 숨넘어가는 줄 알았더니, 다른 일로 숨이 넘어가고 있었구나.”
어디선가 들리는 낯선 음성에 엘리아의 몸이 흠칫 떨렸다. 잔뜩 겁에 질린 그녀는 아론의 품으로 몸을 욱여넣었다.
누, 누구지?
아론이 존대를 할 정도면 그보다 높은 사람인 게 분명했다. 그러나 누군지 영 감이 잡히질 않았다.
“알아서 치료하던 중이었습니다. 하던 건 마저 끝내고 갈 테니 먼저 가 계시죠.”
“적당히 해라. 소문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담장을 넘는 쥐새끼들은 알아서 처리하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크흠! 오래 안 기다린다.”
의문의 남자가 가는 모양이었다. 한숨을 놓으려는 찰나,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마지막 음성에 엘리아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네, 아버지.”
뭐? 아버지? 아버지라면, 공작 각하……?!
놀란 것도 잠시, 가려졌던 시야가 순식간에 환해지고 무표정한 아론의 눈동자가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주인님…….”
“들었지? 아버지 말씀은 잘 들어야 해서 말이야. 오래 기다리는 걸 싫어하시거든.”
“하윽! 흐응.”
당장 갈 줄 알았더니 정말로 하던 일은 마저 끝내고 갈 작정인지, 아론이 그녀의 몸을 벌러덩 눕히곤 다리 한쪽을 제 어깨 위에 턱 걸쳤다. 그러고는 기다렸다는 듯 격렬하게 박음질을 시작했다.
“주, 주인님! 허윽! 그냥 지금, 하윽! 가시는 게! 하아앙!”
“후, 뭐라는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으니까 입 다물고 꽉 조이기나 해. 얼른 보내고 싶으면.”
다 알아들어 놓고 못 들은 척은! 아흑!
잠시 쉰 탓인지, 아니면 놀란 탓인지 조금 말라버린 질구를 흉포한 불기둥이 정신없이 찔러대자 그곳이 아픈 건지, 아랫배가 아픈 건지 모를 고통이 느껴졌다. 퍽퍽 찍어 내리는 자지를 조금이라도 멈춰보겠다고 그의 아랫배를 밀어내며 힘을 줬다.
“하아, 하아, 아흑!”
“크윽… 역시 조이는 거 하나는 끝내준다니까.”
“흐응, 아아……! 아흣!”
말랐던 질구가 그의 박음질과 난잡한 말에 점점 미끄덩하게 젖어간다. 터질 듯이 팽창한 물건이 코팅액을 바르자 살판 난 듯 질구를 스치며 아주 부드럽게 드나들었다. 고통이 사라지자 쾌감이 몰려오고, 그럴수록 엘리아의 아래는 다시 흥건하게 젖어들었다.
먹잇감을 쫓는 맹수같이 내달리는 남자의 허릿짓에 엘리아의 시야가 점점 뿌옇게 물들었다. 갑자기 다리가 더 쭉 찢어지는가 싶더니, 그의 입 속으로 젖꼭지가 쭙 빨려 들어간다. 연신 자지는 거칠게 받아대면서 출렁이는 젖을 한 움큼 집어삼킨 것도 모자라 젖꼭지까지 털어버리니, 엘리아는 또 한 번 질펀하게 싸버렸다.
“아……! 안 돼! 주, 주인님! 하윽! 하아앙!”
“크윽!”
쓰나미처럼 몰려온 황홀한 쾌감에 흥분에 찬 몸이 펄떡거렸다. 그와 동시에 아론의 자지가 마지막으로 쿵 쳐올리자, 강렬한 힘에 아랫도리가 쩡하게 울렸다.
그녀는 제 안을 그득하게 채우는 뜨거운 좆물을 느끼며 헐떡거렸다. 마지막까지 꾹꾹 찔러대며 백탁액을 뱉어내고는 그제야 아론의 자지가 쑥 빠져나갔다.
빠듯하게 차있던 거대한 물건이 사라지자, 잔뜩 벌어졌던 속살이 텅 비어버린 느낌이었다. 푸지게 싼 정액이 질구를 타고 조르륵 흘러나오는 느낌이 이상했다.
그런데 뭘 하는 건지 아래서 미동도 없던 남자의 입에서 또 한 번 헛소리가 튀어나왔다.
“볼수록 아깝단 말이야. 엘리아, 잘 삼켜서 애라도 만들어봐. 그럼 네가 베르타른 공작 부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대답할 가치도 없는 아론의 말을 엘리아는 입을 다무는 거로 무시했다. 소공작도 아니면서 무슨 공작 부인이 된다는 건지.
턱까지 차오른 숨을 고르며 그의 헛소리도 머릿속에서 골라냈다. 그런데 또다시 배 위로 올라타는 남자의 행동에 깜짝 놀란 엘리아가 풀린 눈을 동그랗게 뜨자, 그가 다정하게 입을 맞췄다.
그녀는 부드럽게 들어오는 아론의 혀를 기꺼이 받아들이면서도 불안했다. 공작이 기다리는데 아론은 도통 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러다 자신에게 불똥이 튀는 건 아닌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지나치게 가까운 새빨간 눈동자가 집요하게 닿아온다. 그의 눈빛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아 그녀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 떨었다.
“또 하고 싶나?”
아니요!!
차마 뱉지 못한 소리를 속으로 버럭 지르며 엘리아는 아론을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여기서 더 했다가는 정말로 아랫도리가 헐다 못해 찢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제발… 살려주세요.
하지만 그녀의 바람과는 다르게 아론의 입술은 다시금 그녀의 입술을 삼켰다. 키스에 맛들인 아론은 틈만 나면 엘리아의 목구멍에 혀를 쑤셔 넣었다. 숨구멍까지 막을 정도로 목구멍 깊숙이 밀고 들어온 커다란 살덩이에 엘리아는 숨을 참고 버텼다.
깊숙이 혀를 집어넣고 한참 동안 질척한 키스를 즐기고는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 아론이 입술을 할짝거리며 천천히 입을 뗀다. 다시 시작인 줄 알았는데, 떨어지는 남자의 입술에 엘리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
“큰일이네.”
“하아, 하아. 주인님. 얼른 가셔야죠. 공작 각하께서…….”
“알아. 네가 가지 말라고 해도 갈 거야. 그런데, 후우…….”
말을 하다 말고 아론이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깊게 쏟아지는 아론의 한숨이 귓가를 간질이자 엘리아는 또 한 번 움찔거렸다.
“…주인님.”
“엘리아.”
“…네.”
“문 잘 잠그고 자라.”
“…네?”
그의 갈라지는 음성에 엘리아는 눈만 끔벅거리며 말뜻을 이해하려고 애를 썼다.
“그 새끼들이 밤마다 네 방을 기웃거릴 거야. 그러니까 세 번 줄 거 최대한 버텨서 한 번만 주란 말이야. 어차피 한 번도 안 주진 못할 테니까.”
“…….”
“알았나?”
“하악!”
대답을 재촉하는 모양새로 아론이 엘리아의 젖꼭지를 콱 물어버렸다. 꽤 아픈지 금세 눈물을 글썽거리는 엘리아의 모습에 아론은 제가 물어버린 젖꼭지를 살살 핥아주었다.
“그리고 나 없는 동안 네가 널 지켜.”
“네……?”
“그깟 년들한테 지지 말라고 하녀장 만들어줬잖아. 그러니까 멍청하게 당하고만 있지 말고, 어제 내가 시킨 것처럼 날려버리라고. 알았어?”
“네.”
아론의 이상한 말에 습관적으로 입을 다물려다, 그의 입술이 제 젖꼭지 위에 있다는 걸 깨달은 엘리아는 냉큼 대답했다. 또 대답을 안 했다가는, 이번에는 물어뜯길 것만 같았다.
“하아, 정말 미친놈이 됐구나. 너 따위 때문에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건지.”
아론이 또다시 그녀의 목덜미에 입술을 박고 숨을 크게 내뱉었다.
도대체 이 남자가 왜 이러는 걸까? 아론의 의문스러운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 없는 동안 병 다 나아라.”
“네, 주인님.”
“살도 좀 찌우고.”
“네, 주인님.”
“하녀장 시켜줬으니까 네 일은 줄이고.”
“네, 주인님.”
“그리고 앞으로는 도련님이라고 불러.”
“네, 주… 네?”
기계처럼 대답하던 그녀가 깜짝 놀라 말을 멈추고 되물었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먼저 갈 테니까 씻는 건 네 방 가서 해. 여기 혼자 있지 말고.”
“네…….”
정말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언제나 당연하게 관계가 끝나면 말없이 가버리던 놈이 오늘은 먼저 가는 거로 미안해하는 표정까지 짓다니.
설마… 정말인가?
“주인님!”
엘리아는 벌떡 일어나 고개를 쭉 빼고 다급하게 아론을 불렀다. 젖은 수건으로 제 아래를 대충 쓱쓱 닦고 있던 아론이 무표정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엘리아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저도 모르게 하지 말았어야 할 질문을 던지고야 말았다.
“혹시, 죽을 수도 있는 곳에 가시는 건가요?”
“…….”
무해한 엘리아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 담겼다. 그런데 질문은 영 그렇지가 못했다. 뜬금없는 엘리아의 물음에 아론의 고개가 삐뚜름하게 내려간다. 눈은 사나운 맹수처럼 번뜩거리고, 한쪽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내가 죽기를 바라고 있었나 보군.”
“그, 그게 아니라 주인님이 너무 이상…….”
“도련님. 머리가 나쁜 거야? 아니면 귀가 먹었나?”
“아, 그러니까 도련님이 너무…….”
“너무 뭐? 그새 내가 좋아지기라도 한 거야? 이렇게 빨리 고백하면 곤란한데?”
…그냥 가서 죽으세요. 참나.
두 번이나 말허리가 잘린 것도 모자라 헛소리를 삑삑 내뱉으면서도 진지한 아론의 표정을 보니 그가 정말로 뭔가 착각하는 것 같았다. 정신 나간 짐승의 말에 김이 팍 샌 엘리아는 쭉 뺐던 목을 다시 제자리로 가져오려 했다. 그러나 아론의 커다란 손에 턱이 잡히는 바람에 어정쩡한 자세로 착각 속에 빠진 맹수의 얼굴을 강제로 마주 보게 됐다.
“미안하지만, 난 죽을 생각이 없어. 그리고 미친놈은 더더욱 아니고. 너에게 빠졌다는 착각도 하지 마. 그저 네가 조금 더 재밌어진 것뿐이니까. 이 흥미가 사라지면 예전으로 돌아갈 거야.”
“…….”
“그래도 내가 좋다면 그건 네 자유니까 뭐라 하지는 않겠다. 아, 그리고 너에게 흥미가 떨어져도 하녀장 자리는 뺏지 않을 테니까 감사하게 생각하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몸이나 잘 지키고 있어. 알았나?”
오만하기 짝이 없는 남자의 말에 엘리아는 잠시 들었던 그의 걱정을 패대기쳐 버렸다.
내가 미쳤지. 저 갱생 불가한 놈한테 무슨!
“대답.”
“네. 주, 아니 도련님.”
“좋아.”
잡았던 그녀의 턱을 놓아주곤 아론은 하던 일을 마저 했다. 곧 멀끔한 차림으로 변한 그는 멍하니 앉아있는 엘리아를 힐끔 보고는 그대로 나가버렸다.
멀어지는 남자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멀거니 보던 엘리아는 그제야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생각했다.
“정말 죽는 건 아니겠지? …쯧, 몰라! 죽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이야! 하나라도 사라지면 더 좋지, 뭐. 아흑…….”
이틀 밤낮을 맹수에게 시달리느라 온 삭신이 쑤셔 곡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래도 강제로 운동한 것처럼 땀을 흠뻑 흘렸더니 다행히 열은 내린 것 같았다.
옷을 입으려고 메이드복을 들었다가 깨끗한 옷을 보고는 그제야 이게 자신의 옷이 아님을 떠올렸다.
엘리아는 고개를 들고 별관을 쭉 훑어봤다. 꼭 며칠 이곳에서 꿈을 꾼 것 같았다. 그날 베시의 뺨을 때리고, 그녀의 옷을 가지고 이곳에 들어온 순간부터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으니. 그것도 다른 이도 아닌, 그 무서운 아론과 밤을 지새운 것도 모자라…….
“별 미친 소리를 들었지.”
엘리아는 그와 뒹굴었던 흔적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그러다 얼른 옷을 입고 습관처럼 엉망이 된 시트를 치우고 새것으로 갈아 끼웠다.
다들 안 온 걸 보니 왔다가 정말로 죽기 싫어서 간 모양이네. 쩝.
이젠 소문이 아닌, 사실이 되어버린 현실에 입이 썼다. 한편으로는 차라리 직접들 봤으니 더는 쉬이 건드리지 못할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널브러진 물수건을 치우는데 문득 그가 제 이마 위에 물수건을 올려주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진짜로 날 간호해 준 거야? 그 아론이……?”
믿기 힘들었지만,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이기에 안 믿을 수도 없었다. 또 멍해지려는 정신을 후딱 차린 그녀는 별관을 대충 정리한 후 자신의 새로운 방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