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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감정의 덫 (2/18)

2장. 감정의 덫

정원 가장 안쪽에 있는 별관으로 엘리아를 데려온 아론은 그녀가 씻는 동안 여유롭게 책을 읽었다. 그러나 책장은 넘어가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은 어젯밤 제 형제들과 엘리아에 관한 얘기로 가득 차있었다. 제가 먼저 간 사이 프레드도 그녀를 찾아간 모양이다. 엘리아가 먼저 프레드를 찾아갔을 리는 없을 테니까.

와락 인상을 쓰며 아론은 제 입술을 짓씹었다. 자신에겐 매번 영혼 없는 기계처럼 굴어놓고 제 형제들과는 그리 질펀하게 즐겼다는 사실이 그의 심기를 사납게 만들었다.

‘그것도 모자라 셋이 즐겼단 말이지? 엘리아… 내가 널 어떻게 하면 좋을까.’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아론의 상태를 전혀 모르고 있는 엘리아는 깨끗이 씻고 나온 후, 여상한 표정으로 아론을 바라보며 정중히 인사했다.

“주인님, 감사합니다.”

고저 없는 음성, 무감한 표정. 언제나처럼 아무 감정 없는 모습에 아론의 기분이 더욱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아론의 심기가 어떤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엘리아는 언제나처럼 새하얀 나신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서서 그의 명령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의 상태는 점점 더 좋지 않아졌다. 온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정말로 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제발 빨리 끝내고 돌아가 주기만을 바라며 그녀는 이를 악물고 버텨 섰다.

그녀의 육감적인 몸을 나른하게 훑어 내리던 눈빛이 매섭게 번뜩인다. 언제나처럼 차가운 표정이었지만, 오늘따라 아론의 분위기가 더욱 서늘하게 가라앉은 것 같았다.

“이리 와.”

“네, 주인님.”

그녀는 여느 때처럼 자연스럽게 그의 다리 앞에 무릎 꿇고 앉았다. 그리고 익숙한 듯 손을 올리며 ‘벗겨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그의 사타구니로 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그의 단호한 거절에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한 손이 허공에서 멈추었다.

“아니.”

“…네?”

오늘따라 아론은 어딘가 많이 이상했다.

도대체 오늘 왜 이러는 거지?

“내 위로 올라와.”

“…네?”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먹는 거지?”

사납게 인상 쓰는 아론의 말에 엘리아는 얼른 일어섰다.

“죄송합니다.”

소파 등받이에 나른하게 기댄 아론이 다시 한번 이상한 요구를 했다.

“올라와서 다리 올리고 네 손으로 보지 벌려.”

“……?!”

“보지 빨리는 걸 좋아한다며? 진작 말하지 그랬어. 그랬다면 맛있게 빨아줬을 텐데?”

“주, 주인님!”

아론의 입에서 저런 상스러운 말이 나올 줄이야.

아론의 느닷없는 말에 그녀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가만 보니 그도 어제의 일을 안 모양이었다. 그러다 곧 생각을 달리했다. 그 둘과 몸을 섞은 게 처음도 아니고, 물론 아론도 다 아는 사실인데 새삼 그 일로 화가 날 게 무에 있겠나.

후우……! 알았든 몰랐든 무슨 상관이야. 제발 빨리 끝내고 가라. 그런데 정말 하려는 건 아니겠지?

엘리아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조심히 아론의 위로 올라섰다. 키스는커녕 가슴도 한 번 안 빨았던 아론이다. 그런 아론이 자신의 아래를 빤다는 자체가 상상조차 되질 않았다. 자세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몰라 쭈뼛거리자 그가 다시금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

“내 위로 다리 벌리고 서야지. 이런 것도 일일이 가르쳐줘야 하나?”

“죄, 죄송합니다.”

소파에 올라가 아론의 허벅지 양옆으로 다리를 벌리고 선 그녀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환한 대낮에 다른 공자도 아닌 아론의 얼굴 위에 제 부끄러운 곳을 대놓고 보여주려니, 프레드 때와는 다르게 너무나도 창피했다.

그는 언제나 그녀의 입으로 세우길 원했고, 그녀의 몸에 욕정만 해소하고 나면 미련 없이 떠나던 남자였다. 애무는커녕 적셔준 적도 없는 남자였는데, 그런 남자 앞에서 이런 꼴로 서있으려니 처음 알몸을 보인 양 몹시 부끄러웠다.

대체 안 하던 짓을 왜 이렇게 하는 거야…….

문득, 아론이 죽을 때가 된 게 아닌가,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면 죽을 때가 된 거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네 몸을 이리 자세히 보는 건 처음인 것 같네.”

“…….”

“부끄러워?”

“…….”

“대답.”

“…네.”

보기만 했을 뿐인데 벌써 촉촉하게 젖어드는 야한 몸과는 달리 부끄럽다고 얼굴을 붉히는 엘리아의 상반된 모습에 아론은 코웃음을 쳤다.

“부끄러운데 보지는 이미 흥건하게 젖었군.”

“……!”

아론의 손가락이 미끈하게 젖은 조갯살을 가르며 천천히 움직였다. 하마터면 소리를 낼 뻔한 엘리아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어제는 왜 그랬지? 나로는 만족이 안 됐나 봐?”

“흣, 아, 아닙니다.”

“아니긴. 그러니까 그렇게 저택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댔겠지.”

“…….”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더러운 건 끔찍하게 싫어하는 아힌이 프레드와 함께 네 몸을 나눠 먹었을까?”

“…….”

질구를 깔짝거리며 희롱하는 아론의 손가락에 엘리아는 이를 악물었다. 자꾸만 비집고 나오려는 신음을 참느라 변명조차 할 수 없었다.

“여기를 빨아줬나?”

으윽!

이번에는 음핵을 살살 문지르며 묻는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입을 열면 신음부터 터져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움찔거리는 몸은 참을 방도가 없었다.

“벌써 이렇게나 보짓물을 흘려대다니. 음탕하기 짝이 없군. 엘리아. 사실은 너도 즐기고 있었던 거 아니야?”

“흡, 주, 주인님.”

“그래. 엘리아. 네 주인은 나잖아. 그런데 그렇게 함부로 몸뚱어리를 굴리면 어떡하지?”

“흑! 죄, 죄송합니다.”

억울했다. 하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아론은 지금 제게 괜한 트집을 잡는 중이었으니까.

사람 괴롭히는 방법도 참 여러 가지였다. 그동안 제 형제들이 자신을 탐했던 일이 하루 이틀도 아니건만, 새삼 오늘따라 그것이 왜 불만이겠나. 엘리아는 아론이 그저 자신을 괴롭힐 다른 이유를 찾은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도 이상했다. 그가 언제부터 이유를 만들어 자신을 괴롭혔다고. 그냥 하고 싶으면 아무 때나 찾아와 마음대로 싸질러놓고 갔으면서.

질척하게 젖은 음부를 이리저리 휘젓던 아론의 손가락이 느닷없이 질구 속으로 쑥 들어오자, 잠시 딴생각에 빠졌던 엘리아는 저도 모르게 신음을 뱉어버렸다.

“하읏!”

“이런, 그동안 나 때문에 소리도 못 지르고 답답했었나 봐.”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좋아. 오늘은 허락하지. 어디 한번 마음껏 질러봐.”

“가, 감사합니다.”

머릿속에 강제로 입력된 것처럼 아론의 말끝에는 항상 정해진 대답이 나왔다. 아론이라는 남자가 준 공포에 대한 당연한 반응이었다.

“다리 올려.”

“…네?”

“나도 맛 좀 보게. 한쪽 다리 올리고 위에 있는 줄 잡아.”

그가 앉은 소파 위에는 두툼한 밧줄이 매달려 있었다. 몸이 푹 꺼질 정도로 푹신한 소파라 편하게 일어나기 위해 만든 손잡이 같은 것이었다.

용도와 다른 쓰임새가 된 밧줄을 붙잡은 엘리아는 한쪽 다리를 조심히 들어 아론의 머리 옆으로 올렸다. 그러자 애액에 푹 젖은 선홍빛 속살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더 가까이 와.”

아론의 명령에 쭈뼛쭈뼛 엉덩이를 더 앞으로 내밀자 그가 제 입술을 날름 핥으며 중얼거렸다.

“정말로 야해 빠진 몸이야.”

“…….”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입술이 길게 늘어지며 호선을 그렸다. 저 그린 듯한 입술 안에 얼마나 독한 뱀이 숨어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니 몸이 잘게 떨린다.

그러나 웃기게도 그녀의 마음 한편에는 묘한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본능적인 욕구는 어쩔 수 없는 법이니까. 그리고 이 오만한 남자가 제 아랫도리를 빨 거란 생각을 하니 왜 통쾌한 기분이 드는 건지 모르겠다. 언제나 위에서 자신을 깔보듯 하던 남자를 이번에는 자신이 위에서 내려다본다는 것으로 인한 희열감인 것 같았다.

그런데 당장 입술을 파묻을 듯 굴던 남자가 제 앞에 있는 먹잇감을 놔두고 그녀의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본다. 새빨간 눈동자 속에 자신의 음란한 모습이 그대로 비추자 민망함에 급하게 시선을 돌렸다.

“빨리고 싶어서 안달 난 얼굴이네.”

“…….”

“엘리아.”

“…네.”

“잘 기억해.”

“네.”

“너는 내 소유물이다. 내가 그들에게 잠시 너를 빌려주고 있는 것뿐이야.”

“…네.”

“그러니까 어디 가서 그딴 표정 짓지 마. 당장 빨아달라고 애원하는 꼴 같아서 짜증 나니까.”

“하읏!”

부드럽게 시작됐던 음성이 거칠게 변하더니, 기어이 사나운 뱀이 모습을 드러냈다. 물어뜯을 듯 이를 박고는 게걸스럽게 빨아댄다.

아론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언제나 단정하고 반듯해 보이던 남자에게 이렇게 난잡한 면도 있었다니. 처음 보는 아론의 흐트러진 모습에 엘리아는 평소보다 강한 흥분을 느꼈다.

그녀의 몸에는 손 하나 대지 않고 오직 혀와 입술로만 여린 살을 쑤시고 빨아대며 아론은 천천히 그녀의 정신을 흩트려놓았다.

물이 가득 찬 골짜기를 유영하듯 휘젓고 다니던 뱀 같은 혀가 이제는 그녀의 질구를 노렸다. 몸통을 꼿꼿하게 세운 살덩이가 질구를 간질이며 점점 깊숙이 들어온다. 혀뿌리까지 넣을 심산인지 아론의 고개가 뒤로 한껏 젖혀졌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엘리아를 향했다. 눈이 마주치자 엘리아는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꿰뚫을 듯 집요하게 닿아오는 남자의 시선을 이런 수치스러운 자세로 마주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윽……!”

이리저리 내벽을 휘저으며 살랑거리는 아론의 혀에 그녀는 손에 잡힌 줄을 붙들고 끙끙거렸다. 이미 그 앞에서는 소리를 내면 안 된다는 강박증이 강하게 박혀 있어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고 흐느끼듯 작게 신음을 뱉었다.

생각지도 못한 능수능란한 아론의 혀 놀림에 점점 쾌감이 차올랐다. ‘조금만 더’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와 관계를 하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쾌감이 스멀스멀 전신을 휘감고 있었다.

흐읏……! 거기, 흐응! 조금만 더……! 하윽, 갈 것 같아…….

고개를 쳐든 엘리아가 더는 참지 못하고 스스로 허리를 움직였다.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채우려는 듯 더없이 음란하게 엉덩이를 흔들자, 아론의 혀가 쑥 빠져나간다.

아쉬움에 잔뜩 일그러진 입술 사이로 탄식이 새어 나오려는 찰나, 아론의 입술이 그녀의 음핵을 쭙 빨아 삼켰다. 그러곤 사정없이 혀를 털어대기 시작했다. 갑자기 가장 민감한 곳을 집요하게 빨리자, 엘리아는 더는 참지 못하고 교성을 내질렀다.

“하윽! 아아… 하아앙!”

올 듯 말 듯 약 올리던 쾌감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하얗게 물들였다. 어젯밤 두 남자와 관계를 하며 밤새 느꼈던 쾌락이었지만, 매번 새롭게 휘몰아치는 절정은 오늘도 역시 황홀할 정도로 좋았다. 이쯤 되니 자신도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는 아론의 말에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바르르 떨리던 여체가 풀썩 아론의 품 안으로 주저앉았다. 더는 줄을 잡을 힘도 남아있지 않을 만큼 기력이 다했다. 밤새 두 짐승한테 시달리고, 잠 한숨 못 자고, 또 다른 짐승한테 기를 빨리니 버틸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가, 아까보다 머리가 더욱 몽롱해지고 핑그르르 도는 기분이었다. 뜨거운 숨이 심장을 옥죄는 것 같아 엘리아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그렇게 좋았나? 발정 난 암캐처럼 스스로 엉덩이를 흔들어댈 정도로?”

그의 신랄한 독설에 그제야 제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은 엘리아는 수치스러움에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데 하필 그녀의 입술이 아론의 목덜미에 닿았다. 생경한 기분에 몸을 흠칫 떤 아론은 그녀가 알아서 금세 떨어질 거라 생각했지만 아예 얼굴을 더 묻고 쌕쌕거리는 엘리아의 숨소리에 당황하고 말았다.

그녀의 뜨거운 숨결이 목덜미를 간질이자, 아론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엘리아는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사실 그녀는 지금 정말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몸 상태가 더 안 좋아졌기 때문이다. 빙글빙글 도는 머리는 어질거리고 뻑뻑한 눈은 자꾸만 감겨들었다. 아론의 따뜻한 체온에 정신은 점점 더 몽롱해졌다.

그녀의 상태를 모르는 아론은 엘리아의 행동에 기막혀하면서도 밀어낼 수가 없었다. 그녀의 따스한 숨결이 생각보단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거슬렸다.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에 널뛰는 제 감정이 어색하고 이상했다. 지금 자신의 품 안에 있는 이 아름다운 몸도, 기계처럼 대답하던 목소리가 색스럽게 변하는 것도, 순진한 눈망울로 음란하게 허리를 흔드는 것도, 아론의 눈에는 모든 게 거슬렸다.

“엘리아.”

“…….”

“엘리아……?”

대답이 없자 그녀의 어깨를 밀어내려다 옆으로 툭 떨어지는 자그마한 머리통에 아론의 인상이 와락 일그러졌다.

“빌어먹을. 이 상황에, 그것도 내 앞에서 지금 잠이 든 거야?”

아론의 으르렁거림에도 엘리아에게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해가 저물 때까지 일어나지 않는 엘리아를 보며 아론은 몇 번이나 이를 드러냈다. 수도 없이 깨우고 싶었지만, 그녀의 쌔근거리는 숨소리가 아론을 망설이게 했다.

“하아… 일어나기만 해봐. 가만 안 둘 테니까.”

이를 부득부득 갈며 다시 소파로 돌아가 책을 펼치면서도 시선은 여전히 한쪽으로만 향했다. 오전부터 내내 같은 페이지만 펼쳐놓고 아론은 자기와의 싸움 중이었다.

‘이 정도면 많이 봐준 거 아닌가? 그래, 조금만 더 기다려주지. 대신 이 벌은 혹독하게 치르게 될 거야. 엘리아.’

이제는 아예 잠든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붉게 홍조 띤 엘리아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풍성한 속눈썹이 파르르 떨린다. 그 안에 들어있는 파란 눈동자가 얼마나 예쁜지 아론은 알고 있었다. 오뚝한 콧날에 앙증맞은 입술. 저 작은 입술로 매번 제 자지를 빨아주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저 엘리아는 자신의 욕구를 해소할 도구였을 뿐인데, 오늘따라 그녀가 달리 보였다. 매번 죽은 시체처럼 보였던 엘리아가 오늘은 살아있는 꽃처럼 싱그러워 보였다.

원래 예쁜 얼굴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아름다운지는 몰랐다. 여태껏 그녀를 제대로 눈여겨본 적이 없었다. 그저 쓰고 버릴 도구였기에 제대로 살펴볼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안쓰럽거나 불쌍해서 나서준 건 아니었다. 그저 지나가다 우연히 보게 된 장면과 처음 보는 하녀의 입에서 나온 소리에 기분이 더러웠을 뿐이다.

“두 주인님의 좆을 물고 좋다고 울어댔으니 뻔뻔하게 거짓말은 못 하겠지.”

“오늘 네 방에 손님 좀 보내줄까? 그 음탕한 보지를 확 찢어놓으면 주인님들도 더는 널 찾지 않으실 텐데 말이야?”

감히 제 것을 가지고 하찮은 하녀 따위가 꼴 같지 않은 협박이라니.

엘리아를 망가뜨릴 수 있는 건 오직 자신뿐이다. 그런데 고작 하녀 따위가 누구를 시켜서 제 것을 망가트릴 수가 있단 말인가.

아무래도 아랫것들을 너무 편하게 놔둔 모양이었다. 그들에게 내릴 벌은 따로 생각해 두었다. 그리고 엘리아에게는 제 형제들과 난잡하게 뒹군 벌을 줄 생각이었다. 잠시 빌려준 것도 모르고, 제 형제들과 아주 즐겁게 즐기고 있었다니. 그렇기에 그녀는 혹독한 벌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무슨 벌을 줘야 그녀가 자신에게 잘못했다며 매달릴까? 예전처럼 겁이라도 먹었다면 이렇게 괘씸하진 않았을 텐데, 요즘은 별로 무서워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이 상황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감히 주인을 배신한 도구인데도 하늘 같은 자신이 처음으로 아랫도리도 빨아줬건만 그 상황에 건방지게 잠까지 들었다. 제 형제들과 난잡하게 밤새 즐긴 탓에 역사적인 그 순간에 잠이 든 그녀를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아론은 제 뜻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자 슬슬 약이 올랐다. 그런데도 시선은 그녀에게서 떨어지질 않았다. 눈이 가는 것도 모자라 그녀가 자꾸만 달리 보였다.

‘내가 미친 건가……?’

아론은 짝 소리가 날 정도로 제 얼굴을 때리곤 다시 책을 펼쳐 들었다. 그러나 머릿속이 복잡해 여전히 한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군.’

이러다 자신이 엘리아에게 빠질지도 모를 것 같다는 어이없는 생각마저 들자 헛웃음이 나왔다.

“쓸데없는 생각이군. 내가 하녀 따위에게 빠지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얘긴가? 엘리아가 나한테 빠진다면 모를까.”

아힌과 프레드, 그리고 엘리아. 거기다 밟아 죽여도 시원찮을 하녀 하나 때문에 오늘 너무 신경을 쓴 모양이다. 그러니 이런 쓸데없는 생각까지 드는 게 아니겠나.

아론은 세상모르고 자는 엘리아를 보며 이를 바득 갈았다. 그러다 문득 예전에 프레드가 한 말을 떠올렸다.

“형! 여자는 사랑에 약한 동물이야. 조금만 잘해 주고 다정하게 속삭여주면 안 넘어올 여자 없다니까?”

여자는커녕 동물 암컷도 안 만나본 놈이 매번 이상한 놈들이랑 어울려 다니며 헛소리나 주워듣고 와서는 잘난 척 떠들어대는 꼴이 같잖아 욕했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프레드의 말이 머릿속에 꽂혔다.

사랑. 그래, 여자는 사랑에 약한 동물이다. 조금만 잘해 주고 사랑을 속삭이면 모든 것을 다 내어주는 것이 여자였다.

특히 엘리아 같은 상황이라면 더 쉬울 터. 이곳에 그녀가 기댈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그녀라면 조금만 보듬어줘도 제게 빠질 것이 분명했다.

‘사랑이라 믿었던 남자에게 처절하게 버려지면 넌 어떤 표정을 지을까? 기계처럼 감정 없던 여자가 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그것도 모자라, 사랑하는 남자의 형제들에게 끝없이 탐해지면 죽고 싶을 만큼 괴로울 것이다. 죄책감에 시달려 하루하루 말라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감히 제 배려를 이용해서 제 형제들과 난잡하게 놀아난 벌로 그녀에게 딱 알맞은 방법인 것 같았다. 아론은 잠든 그녀를 보며 씩 웃었다. 제 덫에 걸려 허우적거릴 순진한 여자의 모습을 상상하니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기대되는군. 훗.”

오늘 아론은 누가 봐도 정말 미친놈이었다.

나름 완벽한 계획을 세운 아론은 기분 좋게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 불현듯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한 번쯤 눈을 뜰 때도 됐는데……. 어떻게 한 번을 안 일어나지?”

아론은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엘리아에게 다가갔다. 여전히 곤히 잠든 모습이었지만, 가만 보니 아까랑은 뭔가 다른 것 같았다. 숨소리도 조금 가빠진 것 같고, 이마에 물기도 어린 것이 땀이 맺힌 것 같았다. 조심히 손등을 그녀의 이마에 대자 불덩이처럼 뜨거운 체온이 느껴졌다.

“젠장. 이 미련한 여자 같으니라고.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했어야 할 거 아니야!”

그제야 엘리아의 상태를 알아차린 아론은 얼른 문 입구로 가서 거세게 종을 울렸다. 그러곤 다시 엘리아의 곁으로 다가와 그녀를 살폈다. 곤히 잠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아론은 제가 지금 불안해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할 정도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잠시 후, 하녀 하나가 빠르게 뛰어 들어왔다. 숨을 헐떡일 정도로 뛰어온 하녀는 혹시라도 아론의 심기가 불편한 건 아닌지 눈치부터 살폈다. 그가 종을 이리 다급하게 쳐댄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부르셨습니까, 공자님.”

“서둘러 가서 제이든을 불러오거라. 그리고 넌 이리로 다시 돌아와.”

“네, 공자님.”

아론의 심각한 표정에 하녀는 침을 꼴깍 삼켰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큰일이었다. 잔인하고 포악한 그의 성격을 잘 아는 사용인들은 그의 눈 밖에 나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다. 만약 그의 심기를 거스른다면 그날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을 테니.

하녀는 올 때보다 더 빠르게 내달렸다. 목숨을 건 심부름이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그녀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던 아론이 문 열리는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생각보다 늦게 도착한 제이든에 짜증이 치밀었지만, 지금 그걸 닦달할 시간이 없었다.

“부르셨습니까, 아론 도련님.”

“얼른 와서 이 아이 좀 살펴.”

“…네?”

“서둘러.”

원래도 차가운 남자였지만 오늘 아론의 분위기는 더욱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그런데 누군가를 살피라니, 제이든은 지금 제 눈앞에 있는 남자가 아론이 맞는 건가 의심스러웠다. 아론이 가리킨 곳으로 다가가니 낯익은 여자가 누워있었다.

‘엘리아……?’

제이든도 엘리아를 알고 있었다. 하녀라는 직업이 아쉬울 만큼 예쁜 얼굴이면서도 어딘가 음울해 보이던 여자. 그리고 이 집 공자들의 성 노리개. 또한 그는 그녀의 과거를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여자가 왜 여기에 누워있는 거지? 그것도 아론 도련님하고 함께?’

처음엔 죽은 줄 알았다. 아론과 함께 있었으니까. 그런데 숨은 쉬고 있다.

‘대체 뭐지……?’

차라리 프레드와 함께 있었다면 이리 놀랍지는 않았을 거다. 물론 프레드도 오만하고 이기적이긴 했지만, 그래도 아론보다는 인간적인 면은 있는 남자였으니.

그런데 저 피도 눈물도 없는 아론이 엘리아를 돌보고 있었다고? 하, 내일 해가 거꾸로 뜨겠군.

제이든은 일단 엘리아를 살폈다. 그녀의 체온을 재보고 심장 소리를 들었다. 눈을 까뒤집어 보고, 입술을 열어 혀의 색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녀의 손목을 잡고 맥을 짚어보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적당히 좀 주물럭거리지?”

“…네?”

그녀의 약한 맥에 집중하는데 아론의 서늘한 음성이 제이든의 목덜미를 스쳐갔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론을 쳐다보자, 손에 검이라도 들렸으면 당장 휘두르고도 남았을 정도로 눈이 돌아있었다.

‘하, 아론이 정말 미친 건가?’

왠지 검사는 아론이 받아야 할 듯싶었다. 하지만 차마 아론의 맥을 짚어볼 순 없기에 제이든은 숨을 고르며 다른 말로 아론을 살짝 떠봤다.

“그녀의 상태를 확인한 것뿐입니다. 주물럭거리다니요. 제가 왜 하녀 따위의 몸을 만지겠습니까? 서지도 않을 텐데. 저는 음식을 가려 먹습니다. 도련님.”

“흥, 그랬나? 네 입맛이 그리 까다로운지는 몰랐군. 듣고 나니 궁금한데? 과연 하녀 따위의 몸을 보고도 그 비싼 좆이 설지, 안 설지?”

“전 귀족 가문의 레이디만 선호하는 편입니다. 그녀들이 보기도 좋고 맛도 좋지요. 원래 고귀하고 비쌀수록 맛이 좋은 법이니까요. 싸구려는 영…….”

일부러 조금 더 자극적으로 표현하자 아론의 눈빛이 점점 더 싸늘하게 식어간다. 입매가 사납게 비틀리는 걸 보니 여기서 더 선을 넘으면 누워있는 엘리아보다 제가 먼저 죽음의 신을 만나러 갈 것 같았다.

“크흠. 그건 그렇고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얼른 화제를 그녀로 돌리자, 예상대로 아론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 여전히 싸늘했지만, 다행히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어디가 안 좋은 건데.”

“영양실조와 과로입니다.”

“뭐? 영양실조……?”

“네. 아무래도 제대로 된 음식을 못 먹은 모양입니다. 잠은 물론이고, 제대로 쉬지도 못한 것 같군요. 맥을 짚는데 팔목이 어린아이처럼 아주 가늘더군요. 조금만 힘을 줘도 똑 부러질 정도입니다.”

제이든의 말에 아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의 표정을 보니 오늘 아마도 공작가에서 누구든 하나는 죽어 나갈 것이 분명해 보였다. 제이든은 아론의 이상한 모습에 누워있는 엘리아를 힐끔 쳐다봤다.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아론을 이리 만든 거지?’

가녀린 그녀가 새삼 대단해 보일 정도였다.

“그래서 약은.”

“지어서 보내겠습니다. 그러나 약보다는 일단 잘 먹고 잘 쉬는 게 더 중요합니다. 안 그러면 얼마 못 가 송장 치를 수도 있겠습니다.”

“뭐?!”

제 말 하나하나에 반응을 보이는 아론의 상태가 신기하면서도 재미있어, 제이든은 일부러 더 자극적인 말로 아론을 놀려먹었다.

‘각하께 말씀드리면 재미있어하시겠군. 각하도 그녀를 보고 싶어 하시려나?’

차갑고 오만하기로 유명한 베르타른의 남자들.

잔인하고 냉철하기 그지없는 성격인데도, 조각같이 아름다운 외모에 홀린 귀족 가문의 레이디들은 기회만 생기면 이들에게 불나방처럼 덤벼들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공자들은 홀려만 놓고 그녀들에게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그래서 귀족들 사이에서는 공자들이 성불구라느니, 남성을 좋아한다느니, 세 공자끼리 밤마다 몸을 섞는다느니, 별별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

하지만 제이든은 알고 있었다. 이 세 공자가 어떤 장난감에 빠져있는지. 처음엔 그저 잠시 몇 번 가지고 놀다 말 줄 알았는데, 그 시간이 생각보다 꽤 길었다.

‘참 대단한 여자긴 해? 훗.’

그런데 가만 보아하니 생각보다 보통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다른 공자들도 아니고 공작을 제일 빼닮은 아론이 그녀에게 이렇게 빠질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감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그가 누군가를 돌본다는 자체부터 말이 안 되는 얘기였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죽이면 죽였지, 절대 살릴 인간이 아닌 아론이었기에 사태는 더욱 심각해 보였다.

‘거기다 저렇게 걱정하는 표정이라니. 내가 지금 귀신을 보고 있는 건가?’

제이든은 문득 엘리아가 궁금해졌다. 도대체 어떤 여자길래 그 망나니 같은 세 공자가 이 여자만 취하는 건지 갑자기 호기심이 일었다. 거기다 저 냉혈한을 이렇게까지 미친놈으로 만든 여자라니.

‘저 예쁜 얼굴 아래 대체 뭐가 숨겨져 있는 거지……?’

제이든의 눈에 호기심이 가득 차올랐다.

제이든을 보내고 아론은 다시 소파 위에 앉아 엘리아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제 앞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스튜가 지금 몇 번째 들어왔는지도 그는 알지 못했다. 아니, 관심도 없었다는 말이 맞을지도.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가늘게 숨을 내뱉는 엘리아의 모습만 가득 차있었으니까.

그 탓에 공작저의 사용인들은 비상사태였다. 자신들이 제일 괄시하던 엘리아가 지금 별관에서 공작 부인 못지않은 대접을 받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다른 이도 아닌, 그 차갑기로 유명한 아론이 그녀를 돌보고 있다니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아마 한 명이 말했다면 그 한 사람은 미친년 취급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엘리아를 돌보다 온 하녀가 여럿이었다.

“조안나 님. 이대로 두고만 보실 겁니까?”

지금 막 돌아온 하녀 한 명이 인상을 찌푸리며 하녀장에게 하소연을 했다.

“지금 엘리아 그년이 그 비싼 별관 침대에 누워서 아론 공자님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고요!”

“…목소리 낮춰라.”

“조안나 님!”

하녀의 언성이 높아지자 하녀장 조안나의 눈꼬리가 무섭게 치켜 올라갔다.

“그 입 다물지 못해? 다른 분도 아니고 아론 공자님이시다. 잘못 걸리면 어찌 되는 줄 잘 알 텐데? 오늘 베시의 얘기를 들어놓고도 지금 그리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냐!”

“…죄송합니다.”

“일단은 조금 두고 보자꾸나. 짐승도 아프면 돌보는 법이다. 그 아이가 아픈 모습을 처음 봐서 도련님도 신기하신 거겠지. 곧 시들해지실 거다.”

조안나는 자신의 입으로 그리 말하면서도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생각했다. 그 아론인데. 어린아이일 때도 아픈 짐승을 보면 목을 꺾어 고통을 덜어주는 게 더 나은 거라 말하던 주인이었다. 그런 그가 아프다고 해서 엘리아를 챙긴다는 것은 우스갯소리로도 할 수 없는 얘기였다. 차라리 엘리아의 유혹에 잠시 홀렸다는 게 더 말이 되는 얘기일지도.

하녀들 못지않게 하인들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그녀를 건들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는데. 공자들의 관심이 사그라지면 바로 엘리아를 자기들의 노리개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사그라지긴커녕 공자들이 더 빠져드는 것 같으니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하녀장님.”

막 별관에서 돌아온 하녀 한 명이 조안나를 찾았다.

“무슨 일이냐.”

“아론 공자님께서 찾으십니다. 얼른 별관으로 가보세요. 빨리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하녀의 말에 조안나의 인상이 더욱 싸늘하게 식었다.

‘설마 그깟 년을 돌보라고 나를 부르시는 건 아니겠지?’

일단 조안나는 서둘러 별관으로 향했다. 베시의 말을 들었을 때 설마 했는데 이런 사달이 날 줄이야. 일단 조안나는 이참에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로 했다.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면 공작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별관에 들어서자마자 조안나는 얼른 입을 틀어막았다. 아론이 직접 물수건을 들고 엘리아의 땀을 닦아주는 모습에 하마터면 헉 소리를 낼 뻔한 것이다.

‘보통 일이 아니구나.’

만약 엘리아가 아론의 정부라도 돼서 그녀의 위치가 공고해진다면, 그녀를 괴롭힌 자신들은 몸 성히 쫓겨나지 못할 것이 뻔했다. 무엇보다 절대로 그렇게 돼선 안 될 이유가 따로 있었다. 벌렁거리는 심장을 애써 가라앉히며 조안나는 고개를 숙였다.

“찾으셨습니까, 도련님.”

“조안나.”

“…네.”

아론의 입에서 나온 제 이름에 조안나의 낯빛이 파랗게 질렸다. 아론이 제 이름을 불렀다는 건 그의 심기가 지금 몹시 불편하다는 뜻이었다. 조안나는 벌벌 떨려오는 손을 주무르며 최대한 침착하려고 애를 썼다.

“가문의 재정이 어려운가?”

“…네?”

“집사가 돈을 안 주냐고.”

“무슨 말씀이신지…….”

엘리아만 바라보던 시선이 천천히 조안나를 향했다. 그의 무감한 눈빛에도 조안나는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흡사 굶주린 맹수 앞에 선 기분이었다.

“영양실조라니. 우리 가문이 그렇게 가난했었어? 아랫것들 밥 먹일 돈조차 없었냔 말이다.”

“그, 그게…….”

그제야 아론의 말뜻을 알아차린 조안나가 말을 더듬었다.

“너도 영양실조인가? 사용인들이 다 굶고 있는 거야?”

“도련님. 그게 아니라.”

조안나가 얼른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그러곤 억울하다는 뜻을 내비치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엘리아가 원래 밥을 잘 안 먹습니다. 밤마다 뭘 하는지 잠도 안 자고 일하는 시간에도 매번 졸았지요. 일부러 밥을 더 챙겨줘도 엘리아는 새 모이만큼도 안 먹었답니다. 저도 저 아이가 걱정돼서 더 챙기려고 했는데.”

“그러니까 밥을 잘 줬는데도 엘리아가 안 먹었다는 말이군. 그럼 엘리아가 일부러 죽으려고 했단 말인가?”

“그, 그게 아니라.”

“흐음, 알았어. 조안나가 그렇다는데 믿어야지.”

“가, 감사합니다. 도련님.”

그래도 세 공자를 어릴 적부터 키우다시피 돌보았던 정 때문인지, 자신을 믿어준다는 아론의 말에 조안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안나.”

“네. 도련님.”

“당분간 엘리아는 여기서 쉴 거다.”

“네……?”

“아프잖아. 조안나도 엘리아가 걱정됐었다며.”

“…아, 네.”

“그러니까 내가 따로 말할 때까지는 하녀장의 권한으로 엘리아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분배해.”

저런 다정한 음성도 어릴 적 이후로 처음 듣는지라 놀라웠지만, 조안나는 지금 아론이 하는 말의 내용이 더욱 놀라웠다. 그가 하녀를 보살피는 것도 모자라 그녀의 일에 직접 관여를 하다니. 조안나는 다물어지지 않는 입을 겨우 오므리며 아론의 명령에 고개를 조아렸다.

“그리고 내가 없을 때는 조안나가 직접 엘리아 좀 돌봐줘. 내가 믿을 사람이 조안나밖에 없네?”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음식도 영양가 있는 거로 골고루 좀 먹이고.”

“…네.”

“그럼 이만 가봐. 오늘 밤은 내가 있을 테니까. 그리고.”

갑자기 서늘하게 바뀌는 아론의 음성에 조안나는 또 한 번 흠칫 떨었다.

“다들 입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만약 오늘 밤 프레드나 아힌이 여길 찾아온다면 오늘 이곳에 들어왔던 하녀들의 입을 다 찢어버릴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역시 아론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변했다. 조안나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곤히 잠든 엘리아를 힐끗 쳐다보고는 이내 별관을 빠져나왔다. 더 소문이 돌기 전에 얼른 사용인들의 입을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얘기가 다른 공자들의 귀에 들어간다면 아론의 경고대로 자신은 물론이고, 오늘 별관을 드나들었던 하녀들은 죽은 목숨이 분명했으니.

조안나의 발걸음이 다급해졌다.

밤새 정신 못 차린 엘리아의 이마에 물수건을 얹어주던 아론이 이제야 한숨을 내쉬었다. 내려갈 것 같지 않던 뜨거운 체온이 새벽녘이 다 돼서야 조금 내려갔기 때문이다.

숨소리도 편안해지고 혈색도 조금씩 돌아오는 것 같았다. 여전히 땀은 흘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까에 비하면 사람 같아 보였다.

“피곤하게 하는군. 시작부터 이러면 곤란한데.”

엘리아의 바싹 마른 입술에 물을 축여주며 아론이 구시렁거렸다. 그녀의 옆에 팔을 괴고 누워선 이불을 내리고 축축하게 젖은 몸을 닦아주었다. 대충 건성건성 하는 행동이었지만, 만약 이 모습마저 하녀장이 봤다면 그녀는 오늘 아마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만큼 몹시 놀라운 광경이었다. 정작 본인은 태연했지만.

“엘리아, 너를 조금 더 오래 괴롭히고 싶어서 이러는 거야. 그러니까 얼른 일어나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이러면 곤란하다고.”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가슴 둔덕부터 납작한 아랫배까지 쓱쓱 닦아 내리던 아론의 움직임이 갑자기 멈췄다. 봉긋하게 솟아오른 엘리아의 젖가슴에 시선이 닿았다.

홀린 듯 엘리아의 여체를 쭉 훑어 내리다 보니 아랫도리에 피가 몰리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도 그녀의 몸이 먹음직스러워 보인다는 생각이 들자, 아론은 실소를 흘리며 욕설을 뱉었다.

“짐승 새끼.”

제게 욕설을 내뱉으면서도 아론은 피식 웃었다. 어쩔 수 없는 본능이니까. 그리고 지금 이 시간이 아론은 생각보다 꽤 즐거웠다. 엘리아가 자신만의 소유가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꾸만 딴생각이 드는 머릿속을 애써 털어내고 건전한 마음으로 다시 그녀의 몸을 닦아주려던 찰나였다.

“……!”

“하아…….”

처음으로 움직인 엘리아가 몸을 돌리며 아론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열은 내렸지만 여전히 그녀의 몸은 뜨거웠다. 굳어버린 듯 팔을 든 채로 멈춘 아론이 그녀를 내려다본다. 그러나 아직도 그녀의 푸른 눈은 보이질 않았다.

‘잠버릇이 고약하군.’

아론은 천천히 팔을 내려 손에 든 물수건을 내려놨다. 그러곤 그녀를 다시 똑바로 눕히려고 엘리아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는데, 무슨 떨어지는 꿈이라도 꾼 건지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제 몸을 덥석 끌어안았다.

“…엘리아?”

아론의 부름에 엘리아의 눈꺼풀이 힘겹게 뜨였다. 그렇게 기다리던 파란 눈동자를 마주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꽤 아프긴 했던 건지 생기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몇 시간 만에 겨우 정신 차린 그녀를 보니 마음이 놓였다.

“하아… 주인님. 어떻게 된 거죠…….”

목소리 끝이 갈라진 엘리아의 음성에 아론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미련하긴. 아프면 아프다고! 후… 아니다. 일단 더 자라.”

“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죄송합니다.”

“얼른 더 자. 한 번만 더 떠들면 덮쳐버릴 거니까.”

“…….”

아론의 말에 엘리아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사실 그녀가 놀란 건 다른 것 때문이었는데, 아론은 제 말에 겁을 먹은 거라 생각했다.

‘흥, 내가 아무리 미친놈이라도 그렇지. 설마 아픈 너를 건드릴 거라 생각한 거야? 날 대체 뭐로 본 건지. 쯧.’

그러나 생각과는 다르게 이미 아론의 아랫도리는 힘차게 발기된 상태였다. 그녀의 젖가슴이 달리 보이는 순간부터 몸은 솔직하게 반응하고 있었으니.

“자라. 나도 이만 자야겠다.”

그녀의 곁에서 떨어지는 게 나을 것 같아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

“……!”

자신을 안고 있던 팔에 힘을 준 엘리아가 난데없이 고마움을 표했다.

“감사해요. 주인님…….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떨치고 일어나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었으면서도 아론은 굳은 듯 그녀의 품에 갇혀버렸다. 그리고 힘겹게 전한 감사의 말에도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아론의 상태가 급격히 이상해졌다. 머릿속에 남은 한 가닥 이성이 툭 끊어지고, 꾹꾹 누르고 있던 욕정이 전신을 휘감았다. 엘리아를 바라보는 아론의 눈빛이 음험하게 바뀌었다.

“빌어먹을. 네 잘못이야. 한 번만 더 떠들면 덮칠 거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왜 말을 안 들어!”

“으읍…….”

아론의 입술이 기어이 엘리아의 입술을 삼켰다. 그러나 으르렁거린 거와는 다르게 몹시 부드러운 키스였다. 온몸에 흐르는 전율 때문인지 욕정은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그녀의 뜨거운 숨결을 삼킬 때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에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키스가 이런 느낌인 줄은 몰랐다. 다른 이와 타액이 섞이는 건 더럽다고만 여겼기에 아론은 그 누구와도 입을 맞춰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자신이 먼저 엘리아의 입에 제 입을 갖다 댈 줄이야. 아론은 자신이 이럴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그리고 생각했던 거와 다르게 그녀의 타액은 더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식사 전 입맛을 돋우는 애피타이저같이 그녀의 입술은 아론의 정욕을 더욱 돋우고 있었다.

그녀의 아픈 몸을 생각해 최대한 천천히 하고 싶었지만, 이성을 삼켜버린 욕정은 그를 점점 더 조급하게 만들었다. 터져버린 성욕은 아론을 다시금 짐승처럼 만들었다. 그녀의 모든 것을 삼키고 싶어 안달이라도 난 듯 아론은 엘리아의 입술을 갈급하게 빨아 삼켰다.

강하게 휘감은 그녀의 작은 혀를 사정없이 빨면서 아론은 엘리아를 일으켜 제 품에 가두어 안았다. 연신 그녀의 혀를 쭙쭙 빨아 물며 그의 손이 다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먹음직스럽게 부푼 젖가슴을 움켜쥐곤 손가락으로 그녀의 젖꼭지를 희롱하듯 간질였다. 제 손짓에 따라 움찔거리는 그녀의 반응에 묘한 희열감이 차올랐다. 그녀의 뜨거운 체온이 제 이성을 흐물흐물 녹이는 것만 같았다.

처음 맛본 맛있는 음식에 취해 정신을 놓은 듯 미친 듯이 혀를 섞던 아론의 이성이 그녀의 거친 숨소리에 잠깐 돌아왔다.

입술을 떼자 감겼던 엘리아의 눈꺼풀이 스르륵 뜨이며 자신을 바라본다. 몽롱하게 풀린 눈으로 쌕쌕 숨을 몰아쉬는 엘리아에게 아론은 냉정하게 말했다.

“그렇게 봐도 소용없어. 네가 먼저 날 유혹했으니까.”

“하아… 주인님.”

“더는 봐줄 마음이 없다니까? 이 정도면 많이 봐준 거야.”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에라도 엘리아가 쉬고 싶다고 하면 그렇게 해주게 될 것 같아 아론은 아예 그 상황을 차단하고자 쐐기를 박았다.

단호한 아론의 말에 엘리아는 그의 얼굴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평소 같았으면 이런 말은커녕 제 욕구만 해소하고 남았을 남자인데, 오늘따라 자꾸 변명 같은 말을 늘어놓는 아론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신기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기절하듯 잠든 것까지는 알겠는데, 그 후로는 아무 기억이 없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은 아직 아론과 함께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아프니까 더 자라니. 처음엔 꿈인 줄 알았다.

그의 몸이 떨어져 나가자 그제야 현실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감사의 인사를 한 것뿐인데, 놈이 다시 짐승처럼 돌변했다. 그런데 지금은 또 망설이고 있다. 그동안 본 아론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눈앞의 남자가 정말 아론이 맞는 건지, 아니면 자신이 많이 아파서 다른 이를 아론으로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닌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주인님…….”

“왜.”

여전히 차갑고 무뚝뚝한 음성. 분명 아론이 맞는 것 같은데, 왜 이런 표정인 거지?

“어디… 아프세요……?”

“뭐?”

엘리아의 어이없는 물음에 아론의 미간이 좁혀졌다. 갑자기 환자 취급당한 아론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아픈 건 너잖아. 기껏 살려줬더니 누굴 환자 취급이지?”

“그럼 왜…….”

“뭐가 왜야?”

“…아니에요. 죄송한데 이만 좀 눕혀주시면…….”

아론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잔뜩 달아오르게 해놓고 눕혀달라니. 언제 그랬냐는 듯, 흥분이 싹 가신 듯한 엘리아의 순진무구한 표정에 아론의 심기가 다시 뒤틀렸다.

“주, 주인님……?”

싸늘하게 돌변한 아론의 표정에 엘리아는 습관적으로 몸을 웅크렸다. 하여간 어디로 튈지 종잡을 수 없는 남자였다.

“다리 벌려.”

“…네?”

“쑤시고 싶으니까 다리 벌리라고. 두 번 말하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럼 그렇지.

원래대로 돌아온 아론의 모습에 엘리아는 헛숨을 삼키며 다리를 살짝 벌렸다.

“다시 말하지만, 난 정말 이럴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네가 날 잡은 거야.”

“…네.”

“그러니 날 탓하지 마.”

“…네.”

확실히 이상했다. 왜 저렇게 몇 번이나 다짐을 받는 건지. 집요하게 닿아오던 시선이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엘리아의 입술에 닿을 듯 말 듯 멈춰 선 그가 또다시 으르렁거린다.

“각오해. 네가 다시 아파 쓰러져도 난 오늘 널 먹어치워야겠으니까. 간호해 준 값은 받아야지.”

“하읏!”

입술을 삼킬 줄 알았는데, 그의 입술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 봉긋하게 솟아오른 젖가슴을 덥석 베어 물곤 질척하게 빨아댄다. 그와 동시에 아론의 손이 그녀의 음부를 흥건하게 적시기 시작했다.

“하아… 주인님. 흐읏!”

아론이 이렇게 농밀하게 만져준 건 처음이라 엘리아도 순식간에 흥분에 취해버렸다. 살짝 젖었던 구멍에선 남자의 손길을 반기는 듯 쉴 새 없이 애액이 흘러나왔고, 그것이 아론의 움직임을 더욱 부추겼다.

아래위로 가해지는 참을 수 없는 자극에 엘리아는 몸을 비틀었다. 그러나 꽉 틀어쥔 남자의 힘에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바르작거리기만 할 뿐 어디로도 피할 수가 없었다. 거친 남자의 손바닥이 여린 음부를 사정없이 비벼대자 엘리아는 참을 수 없는 강렬한 느낌에 자꾸만 다리를 오므렸다.

“아아…… 하읏!”

반항하듯 몸을 비트는 엘리아의 젖꼭지를 잘근 이로 깨문 아론이 다시금 으르렁거렸다.

“자꾸 오므리지 마. 반항하면 네 보지가 헐 때까지 쑤실 거니까.”

제 말만 하고 아론은 다시 엘리아의 가슴을 게걸스럽게 빨기 시작했다. 손으론 여전히 무자비하게 음핵을 비벼대다 구멍 속을 헤집으며 그녀를 미치게 했다. 한참을 괴롭히듯 애무를 즐기던 남자가 신나게 빨아대던 젖을 놓아주곤 그녀를 빤히 보며 물었다.

“느끼고 싶어?”

“흐읏, 주인님…….”

무자비하던 손가락이 이제는 살살 음핵을 간질이듯 가지고 놀며 그녀를 농락했다. 아론의 물음에 뭐라고 답은 해야 하는데, 그녀는 그가 주는 쾌감에 달달 떨기만 할 뿐 아무런 답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물었잖아. 대답해야지, 엘리아?”

“아흑! 흐으응.”

제 질문에 답을 안 한 벌로 아론의 손가락이 가차 없이 그녀의 구멍을 쑤시고 들어왔다. 물론 대답을 하나 안 하나 쑤실 생각이었지만.

“네가 이렇게 야한 여잔 줄 몰랐어. 진작 알았더라면 더 재미있게 놀았을 텐데.”

“하아… 주인님.”

“왜? 더 깊게 쑤셔주길 바라나?”

“아니, 하읏. 주인님……! 하아앙……!”

아론의 긴 손가락이 다시 한번 엘리아의 질구를 깊숙이 찌르고 들어왔다. 그러곤 이리저리 휘적거리다 배 안쪽 어느 한 곳을 꾹 누른다. 오늘따라 그녀가 부르는 ‘주인님’ 소리가 아론은 꽤 마음에 들었다. 언제나 감정 없이 들렸던 음성이 오늘은 왠지 저를 갈구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저를 부를 때마다 아론은 엘리아를 더 잔뜩 괴롭히고 싶었다. 촉촉하게 젖은 그녀의 긴 속눈썹 아래 방울방울 눈물을 매달고 싶었다. 자신도 몰랐던 가학욕이 아론의 이성을 서서히 지배하기 시작했다.

“엘리아.”

“하아… 네, 주인님.”

“네게 기회를 줄게.”

“무슨…….”

아론의 입꼬리가 음흉하게 올라갔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지만 그녀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오늘 내가 시키는 대로 다 한다면 널 하녀장으로 만들어주지.”

“네……?”

뜬금없는 아론의 제안에 엘리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생각지도 못한 아론의 파격적인 말에 순간 정신이 멍했다. 그러나 혹한 것도 잠시, 이런 제안을 할 정도라면 아론이 제게 바라는 건 보통 일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대체 뭘 바라길래 이러는 거지……?

겁이 나기도 했지만, 그녀는 곧 마음을 정했다. 고민하고 말고 할 필요도 없었다. 무슨 꿍꿍이인지는 몰라도 그가 이런 제안 없이도 그저 명령한다면 따라야 했을 테니.

차라리 하녀장이 된다면 앞으로 이곳에서의 생활이 한결 나아질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돈도 더 받을 테고. 가만히 생각하니 이건 황금 같은 기회였다.

“하겠습니다.”

“흥, 역시 머리가 나쁘지는 않네.”

“무엇이든 말씀하세요. 주인님의 명이라면 뭐든 다 하겠습니다.”

“좋아. 이래서 내가 널 좋아하는 거야. 엘리아.”

“흡.”

환한 남자의 미소에 잠시 정신을 놓았던 엘리아는 다시금 제 입 속을 휘젓는 아론의 혀에 바짝 정신 차리고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오늘은 왠지 수동적인 면보다는 능동적인 모습을 그가 더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엘리아.”

“하아… 네.”

“다리 벌리고 앉아.”

“네? 아, 네.”

바로 시작된 명령에 잠시 당황했던 엘리아는 그의 품에서 일어나 앉아 그를 바라봤다. 그러곤 무릎을 세우고 천천히 다리를 벌렸다.

“안 보여. 뒤로 조금만 누워.”

“네, 주인님.”

그녀가 팔을 굽히고 살짝 눕자 불그스름하게 익은 은밀한 속살이 아론의 시선을 붙잡았다. 그녀를 완전히 제 노리개로 만들 작정인 아론은 그녀의 음부로 다시 손가락을 가져갔다. 그녀의 얼굴을 빤히 보며 도톰하게 부푼 보지 살을 이리저리 치대자 몽롱하게 풀리며 일그러지는 엘리아의 얼굴이 퍽 볼만했다.

“흐응…….”

“지금 내가 뭘 해줬으면 좋겠지?”

뜬금없는 질문에 엘리아는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지금 제 부끄러운 모습이 더 당황스러워 입술만 달싹일 뿐, 아론의 얼굴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다.

“대답해야지.”

“흐응… 하아, 주, 주인님이 원하시는 대로…….”

“그딴 말 말고.”

무슨 말을 원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차라리 프레드가 물었다면 답은 아주 쉬웠을 거다. 그런데 아론이기에 그가 뭘 원하는 건지 단정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아론의 집요한 표정에 엘리아는 아닐 거라 생각하면서도 급한 대로 제가 알고 있는 답을 말했다.

“…주, 주인님의 자지를 먹고 싶어요. 제 보, 보지에 넣어주세요…….”

그녀의 입에서 나온 적나라한 말에 아론의 움직임이 일순 멈춰버렸다. 그것도 모자라 표정까지 굳어졌다.

아닌가…….

제가 뱉은 수치스러운 말에 그녀의 얼굴이 붉어지는 순간, 덩달아 얼굴이 빨개진 아론이 어이없다는 양 헛웃음을 흘렸다.

“하! 미치겠군. 정말 할 줄은 몰랐는데. 내 장난감이 언제 이렇게 음탕해진 거지?”

말은 기가 막힌다, 하면서도 광대는 실룩거렸다. 언제나 얼음처럼 차가웠던 남자의 얼굴에는 오늘따라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아론이 가까이 다가와 앉았다. 엘리아와 같은 자세로 무릎을 세우고 앉은 남자가 그녀의 다리를 제 허벅지 위로 올린다. 그러곤 그녀의 몸을 일으켜 자신을 마주 보게 했다. 은밀한 곳을 가깝게 맞댄 자세로 앉은 아론이 그녀에게 다시 명령했다.

“먹어. 맛있게.”

“…감사합니다.”

엘리아는 터질 듯이 발기된 아론의 자지를 손으로 쥐고 제 구멍에 맞추었다. 그러곤 엉덩이를 조금씩 앞으로 움직여 잔뜩 성이 난 그의 것을 착실하게 삼키기 시작했다.

음문을 뚫고 서서히 모습을 감추는 검붉은 살덩이에 엘리아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 음란하고 야해 빠진 장면을 같이 보는 것만으로도 이상한데 아래를 빠듯하게 채우는 감각이 몹시 흥분됐기 때문이다.

“흐으읏……!”

“윽… 엘리아, 너무 세게 조이지 마.”

“하으응… 주인님……!”

아론의 성기가 깊이 들어올수록 엘리아는 저도 모르게 아랫도리에 힘을 주며 옴찔거렸다. 정면으로 밀고 들어오던 빳빳한 자지가 낭창하게 휘며 그녀의 자궁구를 꾹 누른다. 오늘따라 유난히 더 굵은 아론의 좆 몽둥이에 숨이 턱 막혔다.

매번 뒤에서만 들이받고 사라지던 남자의 얼굴을 정면에서 보고 있자니 새삼 민망하고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랐다. 거기다 이런 부끄러운 장면을 그와 함께 보게 될 줄이야. 이건 정말 너무너무 창피했다.

호기롭게 잡고 넣긴 했는데, 이제부터는 뭘 어찌해야 할지 몰라 연신 질구만 옴찔거리자 아론이 고개를 빼고 그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발긋하게 달아오른 엘리아의 얼굴에 아론의 입꼬리가 비죽 올라갔다.

“부끄러워?”

“흐으…….”

“겁도 없이 내 자지를 삼켜놓고?”

자기가 시켜놓고 딴소리를 하는 아론을 원망 어린 시선으로 흘기려다 엘리아는 얼른 시선을 내렸다. 어차피 따지지도 못할 거 굳이 욕을 벌 필요는 없으니까.

“날 봐야지. 엘리아.”

“…….”

푹 숙였던 고개를 억지로 들어 올려놓고도 차마 마주 보기가 힘들어 눈동자를 요리조리 굴리는데.

“어때? 뒤로 박히는 것보다 앞으로 쑤셔주는 게 더 좋아?”

“…….”

아론의 미친 소리에 엘리아의 시선이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겨우 용기 냈던 마음이 그의 음란한 질문에 파사삭 흩어져버렸다.

저기다 무슨 대답을 하라는 말인지.

“아래 보지를 쑤셨는데, 왜 입이 다물리는 거지? 내가 입보지를 쑤신 것도 아닌데.”

“…죄송합니다.”

역시 쉽지 않을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이런 종류로 괴롭힐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아무리 괴롭혀봐야 몸이 힘들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정신적으로 공격을 해올 줄이야.

차라리 프레드가 이런 말을 했다면 그냥 그러려니 했을 터였다. 프레드야 원래부터 입이 시궁창이었으니. 그런데 명령 외에는 별로 말도 없던 아론이 오늘따라 수다스러운 것도 모자라 이런 난잡한 말을 서슴없이 하니 생각보다 데미지가 더욱 크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어느 쪽이 더 좋냐고.”

정말로 궁금하다는 듯 아론이 재차 물었다. 대답하기 전까지는 이런 부끄러운 자세로 계속 있어야 할 것 같아 그녀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앞… 이요.”

“흥, 역시 그렇군. 너도 네 보지가 뚫리는 걸 직접 보는 게 더 흥분된다는 말이지?”

후우…….

무슨 말을 하든 자기 기분대로 해석할 것이 뻔했기에 엘리아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차라리 얼른 하고 끝냈으면 좋겠는데, 아론은 도통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론의 자지가 불끈거릴 때마다 저도 모르게 질구가 움찔거리는 것도 민망해 죽겠는데, 이 자세로 밤새 대화만 할 작정인지 쓸데없는 질문만 늘어놓는다. 그것도 모자라 그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불에 덴 듯 화끈거렸다.

그러다 보니 의지와는 다르게 아랫도리에서 자꾸만 질척한 게 흐르는 느낌이었다. 아론의 시선에 애무라도 당하는 양 그의 좆을 삼켜 문 질구가 점점 더 미끈거리자 엘리아는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쑤셔줬으면 좋겠다는 얼굴이네.”

“주인님…….”

“왜. 쑤셔줘?”

“그냥, 얼른…….”

“얼른 뭐……? 말을 해야 알 거 아니야. 쑤셔달라고 말하면 되잖아. 그럼 이렇게.”

“하읏!”

“쑤셔줄 거 아니냐고.”

느닷없이 푹 찌르고 들어오는 좆 대가리에 엘리아의 몸이 파드닥 경련했다. 아론의 엉덩이가 또 살짝 움직이자 엘리아의 미간이 안쓰럽게 일그러졌다. 살짝 엉덩이를 돌리기만 했을 뿐인데, 그녀는 저도 모르게 아론의 좆을 또 한 번 콱 조여 물었다. 구멍이 살짝 풀어지자 그 사이에서 말간 애액이 새어 나와 아론의 자지를 흥건하게 적셨다.

“내 장난감 몸이 이렇게나 야해 빠졌을 줄이야. 오늘 정말 볼수록 새롭군.”

그녀의 반응에 재미 들린 아론이 엘리아의 엉덩이를 바짝 끌어 제 뿌리까지 그녀의 몸속에 집어넣었다.

“하아응!”

제 몸의 열기 때문인지, 아론의 자지가 뜨거운 건지 속살이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만 질질 싸고 이제 흔들어봐. 내가 네 몸에 미치게 만들어보란 말이야. 그래야 하녀장 자리를 주지. 그냥 날로 먹으려는 거야?”

“하아, 네. 주인님.”

이러고 계속 있느니 뭐라도 하고 얼른 끝내는 게 나을 것 같아 엘리아는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팔을 뒤로 받치고 엉덩이를 조금씩 뒤로 빼자 그녀가 흘린 애액으로 범벅이 된 남자의 성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자신이 보는 것만으로도 음란하기 짝이 없는 광경을 그와 같이 보려니 죽을 맛이었다. 그래도 해야 했다. 시작이 있어야 끝이 있을 테니.

차마 삼키는 모습을 다시 보기 민망했던 엘리아는 고개를 살짝 돌리고 엉덩이를 앞으로 쭉 밀었다. 일순 단단한 살덩이가 제 속살을 가르고 들어오는 적나라한 느낌에 고개가 뒤로 한껏 젖혀졌다.

“흐으응.”

어디 마음껏 해보라는 듯 아론은 그녀의 얼굴을 빤히 보다 제 자지를 삼키는 음탕한 보지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이제 한 번 뺐다 넣었을 뿐인데, 엘리아의 가녀린 팔뚝이 바르르 떨렸다. 운동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몇 번을 더 움직여야 아론이 쌀까 싶은 생각이 들자 머릿속이 아찔했다.

다시 한번 엉덩이를 뒤로 물리자 가득 찼던 자지가 빠져나가며 내벽을 긁어댔다. 인상을 찌푸리고 부르르 떠는데 앞에서 돌연 볼멘소리가 튀어나왔다.

“장난해? 그렇게 해서 언제 싸게 할 건데? 내일까지 이러고 있을 참이야? 자지가 다 불어터지겠군.”

느닷없이 타박하는 아론의 말에 엘리아는 또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이 습관성 비굴함은 아무래도 고치기가 힘들 것 같았다.

“야하게 하라고. 음란하고, 음탕하게 해보란 말이야. 프레드랑 아힌이랑 할 때도 이렇게 했어?”

“죄, 죄송합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엘리아의 눈에 꿈틀거리는 아론의 자지가 보였다. 제 애액으로 범벅된 좆을 보니 아랫배가 저릿거렸다. 본능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이 아름다운 남자와 몸을 섞는 게 싫은 건 아니었으니.

‘그래, 까짓 거 뭐가 어렵다고. 처음도 아닌데. 차라리 지금이 기회일지도 몰라.’

아론을 완전히 홀려버릴 기회.

엘리아는 엉덩이를 살짝 들어 그의 좆을 다시 삼켰다. 이번엔 뒤로 빼지 않고 더 가까이 밀어 좆 뿌리까지 삼켜버렸다. 그리고는 보란 듯이 엉덩이를 아래위로 비비기 시작했다. 교접부에 닿은 음핵이 이리저리 뭉개지자 점차 흥분이 느껴진다. 여전히 아랫도리만 대준 채 제 모습을 구경하는 남자의 시선을 외면하고 그녀는 조금 더 바삐 엉덩이를 흔들었다.

“아앙, 하응……!”

교접부에서 나는 찔꺽찔꺽 소리가 부끄러웠다. 그러나 점차 부끄러움보다는 짜릿한 쾌감이 엘리아의 몸을 움직였다.

이제는 아예 엉덩이를 들고 남자의 사타구니에 정신없이 비벼대자 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처음으로 반응을 보인 아론의 표정에 용기가 불끈 솟았다. 자신이 생각해도 음란하기 짝이 없는 이 행위에 그라고 아무렇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엘리아는 더없이 격렬하게 엉덩이를 흔들었다. 자신의 야해 빠진 모습에 아론이 완전히 미치길 바라며.

“하읏, 아아앙……!”

점점 흐려지는 아론의 눈빛을 바라보며 나오는 대로 신음을 흘렸다. 그의 파정을 보기 위해서라면 온갖 방법을 총동원해도 모자랄 판이었으니.

“흐윽, 주, 주인님. 하윽.”

안쓰럽게 풀린 눈으로 그를 부르자, 아론의 반듯한 눈썹이 사납게 치켜 올라갔다. 그러곤 곧 무시무시한 음성이 튀어나왔다.

“…제기랄! 하란다고 정말로 이렇게 음탕해지면 나보고 어쩌라는 거지?”

“……!”

갑자기 욕설을 내뱉으며 와락 인상을 쓰는 아론의 모습에 엘리아의 몸은 또 그대로 굳어버렸다. 자신이 또 뭔가를 잘못했나 싶어 슬그머니 엉덩이를 뒤로 물리는 순간, 아론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거칠게 잡아당겼다.

“하읏!”

강하게 치받는 힘에 엘리아의 팔이 풀썩 꺾여버렸다.

“진짜로 쌀 뻔했잖아. 엘리아. 누가 이렇게 야하래? 짜증 나게. 응?”

“하악! 하읏, 주, 주인님!”

아론이 갑자기 왜 이러는지 영문도 모른 채 엘리아의 몸이 사정없이 아래위로 흔들렸다. 아무 감각도 없다는 듯이 멀뚱히 쳐다보기만 하던 남자가 뭐에 이렇게 성이 난 건지, 그의 행동은 거칠고도 난폭했다.

가녀린 몸이 정신없이 아론의 자지에 쑤셔 박혔다. 골반을 틀어쥐고 그녀의 몸을 아래로 당기며 제 좆은 위로 치받는다. 힘없는 여체는 종잇장처럼 팔랑거리고, 그 위에 붙은 풍만한 젖가슴은 더없이 음란하게 출렁거렸다.

“하윽, 주인님……!”

“하아… 엘리아. 넌 정말……!”

그녀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아론은 제 좆을 연신 삼켜 무는 보지에 넋이 빠져 추삽질을 멈추지 않았다. 빠듯하게 물어오는 그녀의 속살이 제 좆을 물고 딸려 나올 때마다 아론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살면서 이렇게 야해 빠진 장면을 처음 본 아론은 생경한 광경에 눈을 떼질 못했다. 이유 없이 짜증이 나면서도 미치게 좋았다.

한참을 미친 듯이 내달리던 아론의 허릿짓이 쿵, 한 번 치받고는 잠시 멎었다.

“하윽!”

덩달아 신나게 달린 엘리아는 턱까지 차오른 호흡을 가다듬느라 정신이 없었다.

“후우… 엎드려.”

“하아, 하아, 네.”

아직도 진정되지 않는 숨을 헐떡이며 그녀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기운이 다 빠진 몸을 겨우 돌리자, 아론이 양손으로 그녀의 엉덩이를 활짝 벌리며 명령했다.

“엉덩이 들어.”

이번에는 또 뭘 하려고 이러는 건지, 덜컥 겁이 났다. 그러면서도 그가 제 아랫도리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 이제는 부끄럽다기보단 몹시 흥분됐다.

“많이도 쌌네. 그렇게 좋았어?”

“…하아, 하아.”

“모자랐나? 그리 음탕하게 흔들어대더니. 그럼 이번에는 내가 확실하게 보내주지.”

“으응… 하윽!”

아론의 자지가 다시금 그녀의 음문을 벌리며 깊숙이 틀어박혔다. 남자의 강렬한 허릿짓에 엘리아의 상체가 바닥으로 푹 고꾸라져버렸다. 엉덩이만 꿰인 채 달달 떠는 엘리아의 등줄기를 야릇하게 훑어 내리던 손가락이 그녀의 탐스러운 엉덩이골을 따라 내려간다. 그러고는 주름진 밑살에서 멈춰 섰다.

“여긴 아직 처음이지……?”

“흑! 주, 주인님. 거긴 안 돼요!”

“알아. 나도 여기에다 넣을 생각은 없어. 대신.”

잔뜩 긴장한 엘리아의 엉덩이를 살살 치대던 한 손이 그녀의 한쪽 엉덩이를 활짝 벌렸다.

“이 정도는 괜찮을 거야.”

“하악! 주인님?! 거긴, 하흐윽!”

“잔뜩 느껴봐. 엘리아.”

아론의 손가락이 기어이 그녀의 다른 문을 침범했다. 아론의 검지 한마디가 기어이 그녀의 항문을 뚫고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금 맹렬한 추삽질이 시작되었다.

“하윽! 하아앙!”

새하얀 침대 시트를 꽉 움켜쥐고 엘리아는 온몸에 힘을 줬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각에 연신 부르르 몸을 떨었다. 처음 느끼는 이물감에 미칠 것 같으면서도 그곳에서부터 피어오르는 짜릿한 감각에 의도치 않게 아랫도리에는 자꾸만 힘이 들어갔다.

“윽, 엘리아. 힘 빼. 내 자지랑 손가락이랑 둘 다 잘라먹을 셈이야?”

“흐윽, 주, 주인님. 하으앙!”

아론의 손가락이 다시 한번 꿈틀 움직인다. 아래 구멍을 찢을 듯 쑤셔 박는 감각도 모자라 생경한 곳까지 간질거리자 엘리아는 참을 수 없는 쾌락에 몸부림쳤다.

“하앙, 하앙, 흐응……!”

‘미치겠군.’

엘리아와 처음도 아닌데 왜 이렇게 좋은 건지, 아론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와 몸을 섞어본 이래 가장 좋은 황홀감이었다.

문득 엘리아를 처음 봤을 때가 떠올랐다.

그래, 처음에는 그저 얼굴이 봐줄 만해서 눈이 갔다. 그리고 한 번 시선에 박히자 자꾸만 거슬렸다. 언제부턴가 그녀의 모습을 찾았고, 눈에 안 보이면 신경이 쓰였다.

그러다 우연히 보게 된 그녀의 육감적인 몸에 뭐에 홀린 듯 그녀를 탐했다. 처음 맛보는 여체의 맛은 더할 나위 없이 황홀했다. 그것도 모자라 중독이라도 된 듯 밤마다 그녀가 떠올랐다. 한 번 맛본 몸은 그의 이성을 완전히 앗아가 버렸다.

그 후론 그녀의 연약함을 짓밟는 게 즐거웠다. 엘리아는 하녀니까. 제 소유니까. 그동안은 그 누구한테도 이런 음욕이 생기지 않았다. 아니, 몸을 섞는다는 것 자체가 더럽다고 생각했었다. 엘리아를 보기 전까지는.

그녀를 처음 탐했던 날, 만신창이로 쓰러진 그녀를 두고 그냥 돌아왔다. 제 볼일은 끝났으니까. 하녀 따위를 챙기고 돌볼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그날 프레드마저 그녀를 탐했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얼마 후 아힌까지도. 아마도 프레드가 자랑 삼아 늘어놓은 말에 아힌도 혹했을 터였다.

아힌이 엘리아에게 빠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제 처음을 줄 만큼 엘리아는 매력적인 여자였으니까.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어차피 하녀 따위에게 뭘 더 바라겠는가.

그리고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됐을 때는 그저 엘리아도 야욕에 눈이 먼 여자라 생각했다. 몸을 팔아 세 공자 중 누구의 눈에라도 들어 제 처지를 바꾸려는, 그런 골 빈 여자. 그래서 그녀를 안고 싶지 않았다. 그냥 필요할 때만 찾고 욕구만 해소하면 그만이었다.

물론 그녀에게 날개를 달아줄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그리고 그건 제 형제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그저 도구였다. 자신들의 성욕을 해소할 도구. 언젠가는 쓰다 버릴, 꽤 쓸 만한 도구.

그런데 왜?

왜 이제야 그녀가 자꾸만 눈에 밟히고 거슬리는지 모르겠다. 그저 욕구 해소를 위한 장난감이었을 뿐인데.

왜 인제 와서 제 형제들과 난잡하게 뒹굴었다는 말이 그리도 불쾌했는지, 그녀를 괴롭히는 하녀가 한둘이 아니라는 건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그건 또 왜 그리 거슬렸는지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도 모자라 입을 맞추고 간호까지 했다니. 그것뿐인가, 가장 더럽다고 여긴 여자의 음부를 입으로 물고 빨기까지 했다.

‘제기랄, 완전히 미쳐버렸군.’

부아가 치밀면서도 아론은 허릿짓을 멈추지 않았다. 이 시간이 황홀할 정도로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녀에 대한 말도 안 되는 제 감정은 부정할 수 있어도, 이 황홀한 기분만큼은 거짓이라 말할 수 없었다.

그녀의 몸이 좋았다. 아름답고 음란한 여체가 미치도록 맛있었다. 영혼 없이 움직이던 인형이 스스로 살아 움직이니 더할 나위 없이 황홀했다.

바르작거리는 여체를 뚫어져라 보며 그는 허릿짓에 속도를 올렸다. 강하게 치받을수록 그녀가 내지르는 교성이 더욱 커지자, 그는 일부러 더 강렬하게 추삽질을 가했다.

아래위로 꽉 조여 무는 그녀의 구멍을 느른하게 보며 아론은 입맛을 다셨다. 처음 맛봤던 그녀의 부드러운 속살이 떠오르자 다시 한번 빨고 싶어졌다. 그리고 제 손가락이 들어가 있는 저 구멍도.

왜 엘리아의 몸은 다 맛있을 것 같은지 모르겠다. 그녀를 남김없이 핥아먹고 싶은 충동이 들끓었다.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지?”

“흐응, 주인님…….”

“도대체 내게 무슨 짓을 했길래 내가 이렇게 된 건지 설명해 봐, 엘리아.”

“하악! 흐으응…….”

뒷구멍을 뚫고 있던 손가락이 바뀌었다. 아까보다 조금은 더 길고 굵은 손가락. 그것도 이제는 한 마디가 아니라 조금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대답을 요구해 놓고 입도 벙긋 못 하도록 만든 아론은 엘리아의 몸에 점점 더 취해갔다.

엘리아는 제 여린 살을 뚫고 들어오는 손가락에 부르르 떨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한참을 넣고 있어서 익숙해진 건지, 처음 들어올 때 빼고는 이물감이 느껴진다거나 불편한 느낌은 없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점점 그 느낌마저 미치게 좋다는 것뿐.

생경한 느낌마저도 황홀하게 바뀌자, 엘리아는 저도 모르게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점점 휘몰아치는 쾌감에 연신 엉덩이를 흔들다 고개를 홱 젖히고는 부르르 떨었다.

뚝뚝 떨어질 만큼 애액을 흘려가며 몸을 비트는 엘리아의 행동에 아론은 격한 사정감이 몰려오는 걸 느꼈다. 입술을 질끈 깨물고 그녀의 뒤를 침범한 손가락을 쑤석거리며 그는 허리를 더욱 맹렬하게 움직였다.

“하악! 주인님!! 흐앙! 하아앙!”

공작저가 떠나가라 엘리아가 교성을 질러대자, 애써 참았던 사정감이 또 한 번 급격하게 몰려왔다.

“크윽!”

더는 참기 힘들어지자, 아론은 본능적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손가락 또한 추삽질만큼이나 격렬하게 움직였고, 발기된 자지는 엘리아의 납작한 아랫배를 뚫을 듯 쑤셔댔다.

더는 악 소리도 내기 버거울 만큼 지친 엘리아는 제 밑에 깔린 침대 시트를 꽉 물고 끙끙거렸다.

쿵쿵 치받으며 끝을 모르고 달리는 짐승 새끼의 좆에 이제는 아랫도리가 얼얼한 느낌이었다. 거기다 처음 뚫린 곳마저 미친 듯이 휘저어대니, 더는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퍽퍽 치받을 때마다 반쯤 풀린 엘리아의 동공이 정신없이 흔들렸다. 제발 이 시간이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떠날 줄 모르는 쾌감에 그녀는 아랫도리에 힘을 꽉 주었다.

그때 갑자기 아론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욕설을 내뱉었다.

“씨발, 엘리아! 크윽! 젠장! 젠장! 큭!”

“흐으, 아아…… 흣!”

아론의 뜨거운 좆물이 배 속으로 왈칵 쏟아지자, 엘리아는 또 한 번의 강렬한 쾌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쾌락의 잔 여운에 정신이 혼미할 때쯤, 몇 번을 더 쿵쿵 받아대며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 낸 아론이 그제야 그녀의 몸에서 제 것을 빼내었다.

다리가 풀려 엉덩이를 내리자 그녀의 가랑이 사이에선 아론이 잔뜩 싸지른 씨물이 쪼르륵 흘러나왔다. 엉망이 된 엘리아의 구멍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론이 그녀의 엉덩이를 활짝 벌렸다. 깜짝 놀란 엘리아가 움찔 몸을 떨자, 조금 더 많은 양의 멀건 백탁액이 주르륵 흘러나온다.

“엘리아. 이걸 다 뱉어내면 어떡해. 최대한 먹어서 씨라도 품으면 네 팔자가 달라질 텐데.”

“…….”

그의 말도 안 되는 헛소리에 엘리아는 헛웃음을 삼켰다.

‘그래, 달라졌겠지.’

만약 아론의 애라도 가지게 된다면 자신은 그대로 죽은 목숨일 것이 분명했다. 벌레만큼이나 하찮게 여기는 하녀 따위의 몸에 고귀한 공자의 씨가 자란다면 누구라도 그녀를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됐을 테니.

명예로운 공작가의 수치를 그냥 둘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자신을 먼저 죽일 사람은 아론일 거라 엘리아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느 정도 진정되자 슬슬 눈이 감겨왔다. 피곤이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쌓인 기분이다. 온몸은 두들겨 맞은 듯 욱신거리고, 아직 식지 않은 열기 때문인지 전신이 뜨겁게 느껴졌다. 자꾸만 감겨드는 눈꺼풀을 억지로 버텼지만, 결국 그녀는 그대로 정신을 놓았다.

잠시 일어나 물을 떠온 사이 잠든 엘리아의 모습에 아론은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찼다. 저부터 마시지 않고 그녀부터 주기 위해 들고 온 물잔을 한심스럽게 쳐다보던 그는 이내 벌컥벌컥 마셔버렸다.

자꾸만 안 하던 짓을 하는 스스로가 짜증스러웠다. 그러면서도 아론은 그녀를 소파 위에 옮겨놓고, 엉망이 돼버린 침대 시트를 걷어냈다. 그러곤 다시 엘리아를 안아 침대 위에 조심스럽게 옮겨놓고는 이불을 덮어주었다. 이마를 짚어보며 상태를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시 열감이 느껴지자 그는 자연스럽게 물수건을 적셔와 그녀의 머리 위에 얹어주었다. 난생처음 하는 간호인데도 이젠 꽤 능숙할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그녀의 옆에 누워 쌔근쌔근 잠든 엘리아의 얼굴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대체 이 기분은 무얼까?

제 이상한 감정에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엘리아. 너를 어떡하면 좋을까?”

쓰고 버릴 도구가 자꾸만 눈에 밟힌다. 자꾸만 자신을 멍청한 놈으로 만드는 것 같아 마음에 안 들었다. 그동안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은 가차 없이 죽였는데, 왜인지 자신은 그녀를 살리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아론은 혼란스러운 눈으로 밤새 엘리아의 자는 모습을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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