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나희] 공작저의 하녀는 짐승들을 모신다
1장. 하녀 엘리아
작고 허름한 다락방.
높이 달린 작은 창문 사이로 해처럼 환한 달빛이 가늘게 드리웠다. 그러나 저만큼 들어오는 달빛만으로는 이 어둡고 작은 방을 환하게 비춰주진 못했다. 물론 서랍 속에 초가 있었지만, 그녀는 그것을 꺼낼 엄두조차 내질 못했다.
괜히 문틈 사이로 빛이 새어 나간다면, 그래서 만약 제가 안 잔다는 것을 누구라도 알게 된다면 여지없이 또 짐승들의 방으로 끌려 내려가야 했기 때문이다. 오늘은 정말로 쉬고 싶었다. 일이 고됐으니까.
“후, 정말 못 해 먹겠네.”
한숨조차 편히 내쉬지 못할 정도로 방음에 취약한 방이었지만, 그래도 그녀에게는 이 작은 방이 가장 안전하게 느껴졌다. 이 더럽고 좁은 방에는 귀하신 제 주인들이 들어오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지금 그녀, 엘리아의 표정은 몹시 불편해 보였다. 매일 조심, 또 조심했건만 생리적인 현상은 제 뜻대로 할 수 없었다.
“큰일이네.”
그동안은 혹시라도 이런 일이 생길까 봐 저녁을 먹은 후 물도 마시지 않았다. 물론 저녁도 새 모이만큼 먹었다. 방에 들어온 후에는 절대로 이 방을 나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조금 짠 음식에 물을 한 컵 마셨더니 여지없이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다. 그녀는 퍽 난감한 상황에 다리를 꼬며 어떻게든 버티고 있었다.
어떡하지? 지금쯤이면 다들 잠들긴 했을 텐데. 하아… 재수 없게 누구라도 만난다면? 미치겠네. 정말.
일단 최대한 참을 수 있을 만큼 참으려고 애를 썼다. 주먹을 꾹 쥐고 다리를 배배 꼬아봤지만, 한 번 급해진 요의는 더 이상 참기 힘들 정도였다. 결국 엘리아는 어쩔 수 없이 방문에 귀를 대고 바깥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괜찮을 거야. 이 시간이면 다 잠들었을 거라고.
긴장되는 마음을 애써 달래며 조심스레 문고리를 돌렸다.
끼이이익.
낡아빠진 방문이 조용한 공작저를 소름 끼치는 소리로 깨웠다. 순간,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잠시 얼어붙었던 엘리아는 겨우 얼굴만 빼꼼히 내밀고 주위를 살폈다.
그러나 어두컴컴한 복도는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긴장감이 배가 되니 더욱 급해진 느낌이다.
엘리아는 조용히 방을 나와 복도 벽을 더듬으며 하녀들이 쓰는 공용 화장실로 걸음을 옮겼다. 몇 걸음이면 금세 도착할 거리임에도 그녀는 최대한 기척을 숨기느라 도둑고양이처럼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걸어갔다.
겨우겨우 화장실에 도착한 엘리아는 변기에 앉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어휴!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상황을 맞닥뜨릴 뻔했다.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나와 다시 복도의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길 때였다. 막 한 걸음 내디디려는데.
“엘리아.”
“……!”
순간, 심장이 쿵 떨어져 내렸다. 잠시 멈췄던 숨이 가빠지고 호흡 곤란이 오는 것 같았다. 정신이 아찔하고 다리가 풀려 몸이 휘청거렸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자, 어느새 다가온 건지, 검은 인영이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새빨간 눈동자가 번뜩이는 것처럼 보이는 건 착각일까……?
그녀는 서늘하게 내려앉은 음성의 주인을 알아차리고 얼른 고개를 숙였다.
“주, 주인님.”
“따라와.”
“…네.”
어찌나 놀랐는지, 고요한 정적 속에 미친 듯이 펄떡거리는 자신의 심장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최대한 놀란 마음을 억누르며 그녀는 제 주인의 뒤를 따랐다.
두렵고 불안했던 마음이 체념으로 바뀌는 건 한순간이었다. 자주 겪었던 익숙한 상황 탓인지, 막상 닥치고 나니 포기가 빨랐다.
그나마 급한 볼일은 보고 나와서 얼마나 다행인가. 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참지 말고 그냥 갈걸, 하는 생각에 짜증이 치밀긴 했지만.
제일 꼭대기 층인 그녀의 방에서 계단 하나를 더 올라가면 공작저의 옥상이 나온다. 익숙한 곳으로 가는 듯, 어두컴컴한 길을 거침없이 앞서가는 남자를 따라 옥상으로 발을 디디자, 제 방에서는 가느다란 빛줄기만 보였던 커다란 달이 눈앞 남자의 모습을 환하게 비추었다.
칠흑같이 새까만 머리칼에 진한 피를 머금은 듯 지독하게 새빨간 눈동자. 탄탄한 근육으로 짜인 몸은 그가 입은 새하얀 셔츠를 터트릴 것처럼 도드라져 보였다. 유혹적인 몸만큼이나 매력적인 남자의 외모. 그는 공작가의 둘째 공자 ‘아론’이었다.
매번 볼 때마다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잘난 남자였지만, 엘리아는 그를 볼 때마다 설렘이 아닌 한숨이 나왔다. 감정 없는 짐승. 무감각하고 잔인한 남자. 그리고 자신을 이 어이없는 상황으로 가장 먼저 내몬 남자였으니, 어찌 좋을 수가 있겠나.
“엘리아.”
“네. 주인님.”
“뭐 하고 있어? 벗지 않고.”
“…네.”
물은 왜 마셔서 이런 상황을 만든 건지.
그녀는 자신을 탓하며 입고 있던 허름한 하녀 옷을 거리낌 없이 벗어 내렸다. 이 상황이 탐탁지 않으면서도, 그녀의 행동에는 망설임이나 부끄럼 따윈 없었다. 어차피 눈앞의 남자는 자신을 여자가 아닌, 성욕 풀이 장난감쯤으로 여기고 있으니까. 그래서 엘리아도 그저 기계처럼 행동할 뿐이었다.
엘리아의 새하얀 나신이 달빛을 받아 아름답게 빛났다. 하녀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예쁜 얼굴, 그리고 남자들의 눈요깃거리나 되는 육감적인 몸은 그녀의 하녀 생활에 하등 쓸모없는 것들이었다. 저를 빤히 보는 남자의 음욕 어린 눈빛에 시선을 내리자, 그는 관심 없다는 듯 무감한 음성으로 다시금 명령했다.
“얼른 끝내지. 내일 일찍 나가봐야 해.”
내가 더 일찍 일어나야 하거든!
차마 뱉지 못할 말을 꿀꺽 삼키고 엘리아는 속내를 감춘 채 제 주인 앞으로 다가가 언제나처럼 순종적인 하녀의 모습으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제 주인의 바지를 조심히 벗겨 내렸다.
여느 때처럼 속옷을 입지 않은 남자의 발기한 페니스가 그녀의 눈앞에서 꺼덕거렸다. 뭘 했다고 벌써 이렇게나 발기한 건지. 그녀는 헛웃음을 삼키며 조심히 남자의 기둥을 잡고 천천히 혀를 내밀었다.
“날 봐야지.”
그의 요구에 귀두 능선부터 할짝거리던 그녀의 시선이 아론을 향했다. 새하얀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검붉은 좆을 물고 빠는 그녀의 모습이 몹시도 야해 빠졌다. 요즘따라 더 농익은 엘리아의 음란한 모습에 아론의 눈동자가 짙게 일렁였다.
그러나 엘리아의 머릿속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다.
빨리 끝내고 가서 자자.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엘리아는 최대한 빠르게 제 주인의 성욕을 풀어주기 위해 입술에 힘을 주고 물고 빨기를 반복했다. 내일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기에 얼른 끝내고 쉬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그의 좆 기둥을 어루만졌다. 저를 빤히 내려다보는 남자와 눈을 맞추고 능숙하게 남자의 자지를 입에 물고 혀를 굴렸다. 혹시라도 아플까 봐 기둥을 천천히 쓸어내리며 입 안에 들어온 귀두를 사탕 굴리듯 살살 굴린다.
그러나 아프긴커녕 조심히 움직이는 그녀의 작은 손은 아론의 욕정을 더욱 부추길 뿐이었다.
완전히 발기한 놈의 흉포한 크기에 점점 입꼬리가 아려오기 시작했다. 이쯤 했으면 그만할 때도 됐는데, 오늘따라 아론은 그녀의 오럴을 꽤 오래 즐기고 있었다.
점점 힘에 부치자 엘리아는 있는 힘껏 입꼬리에 힘을 주고 기둥의 반을 입 속으로 집어삼켰다. 숨을 들이켜고 목구멍 깊숙이까지 넣었던 좆 기둥을 다시 핥아 내리다 귀두를 힘주어 빨아 삼켰다. 연신 고개를 앞뒤로 흔들며 기둥을 머금었다가 빼내고, 기둥을 잡은 손 또한 조금씩 속도를 내 움직였다.
남자의 것을 물고 빠는 음란한 소리가 고요한 밤공기를 가득 채웠다. 한계에 다다랐을 때쯤, 다행히 그녀는 오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만, 뒤로 돌아.”
“하아… 네, 주인님.”
엘리아는 남자가 흘린 프리컴과 제 타액으로 엉망이 된 입술을 팔뚝으로 쓱 닦아내곤 자연스럽게 옥상 난간을 붙잡고 엉덩이를 내밀었다.
성큼성큼 다가온 그가 엘리아의 잘록한 허리를 붙들었다. 그러곤 거침없이 제 자지를 그녀의 몸속에 밀어 넣었다.
“흡!”
아, 아파……!
전희도 없이 대뜸 쑤시고 들어오는 아론의 흉포한 페니스에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제가 흠뻑 묻혀놓은 타액으로 인해 몇 번의 피스톤질만으로 남자의 성기를 부드럽게 삼켜 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남자의 맛을 아는 몸은 금세 질척하게 젖어들어 그의 추삽질을 도왔다.
자꾸만 새어 나오려는 신음을 힘겹게 참으며 그녀는 질구에 힘을 주고 부르르 떨었다. 어떤 자극을 줘서라도 남자의 사정을 끌어내 이 의미 없는 시간을 빨리 끝내는 것만이 지금의 목표였기 때문이다.
본능에 충실한 몸은 물을 흘리고 사내의 좆을 느낄지 몰라도 그녀의 정신은 이 행위를 즐거워하지도 설레어하지도 않았다. 소리조차 마음껏 지르지 못하게 하는 남자와의 강압적인 섹스가 좋을 리가 있나.
하녀를 탐하는 공자와 주인에게 순순히 몸을 바치는 하녀.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될 일이지만, 이미 저택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다 알고 있을 터였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는 짐승들이 그녀의 상황 따윈 안중에도 없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몸을 탐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 짐승은 때와 장소라도 가려주니 얼마나 다행인지.
안 그래도 요즘 노골적으로 음흉한 눈빛을 내비치는 하인들이 많아져 그녀는 더욱 조심스러웠다. 이 금단의 관계가 대놓고 퍼진다면 그들도 어찌 돌변할지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그녀의 작고 허름한 방은 더는 안전하지 못할 터였다. 하인들은 방이 낡았든 어떻든 상관없을 테니.
핏줄이 도드라질 정도로 발기한 좆 기둥이 쑥 빠져나갔다가 다시금 힘차게 처박힌다. 쩡, 하게 울리는 아랫도리의 통증에 잠시 들었던 상념이 파스스 사라졌다. 그가 뿌리까지 깊게 밀어 넣고선 엉덩이를 살살 돌리자, 빳빳한 기둥이 온 내벽을 사정없이 휘젓는 기분이었다.
“후우… 제기랄.”
“하읏!”
“오늘따라 왜 이렇게 못 참는 거지? 소리도 그렇고, 평소보다 더 많이 젖는 걸 보니 너도 내 좆이 퍽 그리웠던 모양이야?”
아론의 빈정거림에도 엘리아는 입을 꾹 다물었다. 괜한 말대꾸는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싫어도 좋은 척, 좋아도 아닌 척. 그들이 그녀에게 바라는 모습이었다.
“시간 없으니 빨리 끝내도록 하지.”
“네. 주인님.”
달밤에 저택 옥상에서 젖가슴을 잡힌 채, 연신 치받는 굵은 주인의 좆에 몸을 흔들면서도 엘리아는 아무 감정 없는 눈빛으로 이를 악물었다. 자꾸만 터져 나오려는 신음을 막으려고 제 손등을 물어뜯으며 악착같이 버텨낼 뿐, 기계처럼 몸을 대주는 여자의 몸짓이나 소리 없는 신음엔 아무런 의미도 담기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거세지는 허릿짓에 더는 버티기가 힘들었다. 비집고 나오려는 신음에만 집중하다 보니 쾌감은커녕 젖은 음부가 도리어 말라가는 기분이다. 뻑뻑하게 끼인 좆 대가리에 살이 쓸리자 이젠 고통까지 더해졌다. 제발 이 시간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며 그녀는 더욱 이를 악물었다.
“흡!”
한참을 내달리던 추삽질이 쿵, 한 번 치받고는 이내 멈춘다. 그토록 기다렸던 뜨거운 좆물이 그녀의 배 속을 가득 채웠다. 아론이 교접부를 꾹꾹 누르며 마지막 한 방울까지 쏟아내는 동안 엘리아는 밭은 숨을 몰아쉬며 호흡을 골랐다.
볼일 다 봤다는 듯 미련 없이 좆을 쑥 빼내자, 그가 쏟아낸 백탁액이 텅 빈 질구를 빠져나와 다리를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애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그저 본능에만 충실한 행위였다.
“하아, 하아.”
“내일 저녁 식사는 네가 방으로 가져와.”
“하아, 하아… 네, 주인님.”
아론은 바지를 추슬러 입고 미련 없이 옥상을 내려갔다. 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미끄러지듯 주저앉은 엘리아는 가쁜 숨을 고르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시원하네. 여기서 잘까……?
덥고 좁은 다락방에 있다가 탁 트인 곳으로 나오니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위험 지역. 어떤 짐승을 또 만나게 될지 모르기에 어느 정도 숨을 고른 후 그녀는 얼른 하녀복을 주섬주섬 입었다.
지퍼가 앞에 달린 원피스였기에 그녀는 빠르게 옷을 입고 종종걸음으로 옥상을 내려갔다. 다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끈적한 느낌이 찝찝했지만, 그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또 누군가에게 걸려 이 꼴이 되느니 차라리 찝찝한 게 더 나았다.
여전히 캄캄한 복도를 더듬거리며 그녀는 서둘러 방으로 향했다. 방문 앞에 다다르자 그제야 마음이 놓인다. 요란한 문소리를 최대한 감추기 위해 조심히 문고리를 돌리는데, 그 순간 듣고 싶지 않았던 음성이 그녀의 심장을 또 한 번 패대기쳤다.
“씨발. 또 한발 늦었네. 하아… 엘리아, 지금 내 방으로 와.”
보이지도 않는 벽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사나운 음성에 그녀의 인상이 와락 일그러졌다. 완전히 꼬여버린 이 밤에 짜증이 치밀었다.
빌어먹을……!
둘째 공자인 아론에게서 겨우 벗어나니, 다음으로 기다리고 있던 건 공작가의 막내 프레드였다. 그것도 세 공자 중 가장 뇌가 해맑고 망나니 기질이 다분한 개차반.
세 공자 모두가 제멋대로인 것은 물론이고, 제 기분대로 행동하는 놈들이었지만 프레드는 그 궤를 달리하는 놈이었다. 그런 남자에게 걸렸다는 건, 오늘은 정말 잠자긴 글렀다는 거나 마찬가지다.
끓어오르는 짜증을 애써 삼키며 엘리아는 프레드를 따라 3층으로 내려갔다. 물 한 컵 잘못 마셨다가 이게 무슨 꼴인지. 이젠 헛웃음마저 피식 새어 나왔다.
어쩜, 이렇게 재수도 없을까.
프레드의 방으로 들어서자 좋은 향이 코끝을 맴돈다. 다른 공자들과 다르게 프레드는 화려하고 예쁜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엘리아는 예뻤다. 하녀답지 않은 외모와 농염한 분위기. 청초한 것 같으면서도 은은한 색기를 흘리는 엘리아에게 프레드가 빠지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이치였다.
자신의 외모가 다른 사내들에게 어찌 보이는지 잘 아는 그녀는 그걸 가리려고 일부러 촌스럽게 머리를 땋고 허름한 옷을 입었다. 하지만 숨긴다고 숨겨질 외모였다면 공자들의 노리개가 되지는 않았을 터.
“뭐 하고 서있어? 얼른 씻고 와.”
“네.”
엘리아는 서둘러 욕실로 향했다. 자신의 방보다 더 좋은 화려한 욕실에 들어가니, 여기서라도 자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그녀는 옷을 벗고 거울에 비치는 제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예쁜 게 이렇게 독이 될 줄이야. 하녀가 쓸데없이 예뻐도 너무 예뻤다.
‘정예나’. 전생에 그녀의 이름이다. 그리고 이 몸에서 눈을 뜬 지 벌써 석 달이나 지났다. 물론 처음에는 기가 막혔다. 책에서만 보던 빙의라는 것을 자신이 겪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곳이 어디인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작고 허름한 다락방’이란 소설의 첫 구절, 그리고 자신을 부르는 ‘엘리아’란 이름 때문이었다.
그녀가 즐겨 읽었던 19금 피폐물 소설『짓밟힌 꽃』에서 여주였던 엘리아가 유일하게 숨 쉴 수 있던 공간이 작고 허름한 다락방이었다.
소설에서 묘사한 대로 엘리아의 다락방은 정말로 작았고, 허름했다. 달빛조차 그 방에 들어오길 거부하는 듯, 어둡고 쓸쓸했다. 그리고 엘리아는 매일 밤 그 방에서 신께 빌었다. 이곳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소심한 성격의 엘리아는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들의 음험한 시선에서 제 몸을 지켜야 했다.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돌아가며 저를 탐하는 세 공자의 명령까진 거스를 수가 없어 심신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인물이었다.
암암리에 퍼진 세 공자와의 소문에 같은 하녀들에게 괴롭힘당하기 일쑤였고, 온종일 쉬지도 못하고 일을 해야 했다. 엘리아는 모든 이들의 표적이었고, 눈엣가시였다. 그저 예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유가 어디 있고, 여주를 굴려도 너무 굴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읽는 내내 화가 났었다. 그러면서도 엘리아가 여주인공인 만큼 언젠가는 화려하게 비상할 거라 기대했다.
물론 연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소설이었기에 좀 이른 감도 없진 않았지만, 예나는 얼른 엘리아가 좀 더 악독하게 마음먹고 그 예쁘다는 얼굴로 누구 하나 꾀어서 세 공자에 복수하는 장면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엘리아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것도 초반부에 말이다.
여주가 떼굴떼굴 구르기만 하다가 픽 죽어버렸다. 어찌나 화가 나던지, 그 장면을 본 순간 예나는 이 소설을 제가 즐겨보는 소설 목록에서 삭제해 버렸다.
세 공자에게 복수하길 간절히 바랐는데, 그렇게 어이없게 죽을 줄이야. 눈앞에 작가가 있었다면 다시 쓰라고 멱살을 잡고 짤짤 흔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결국 그녀는 성질나는 대로 댓글을 남기고『짓밟힌 꽃』 초반부에서 하차했다. 여주인공 없는 소설을 무슨 재미로 보냔 말이다. 그것도 19금이었는데.
그런데 악플을 썼다고 벌이라도 받은 걸까?
어이없게 죽은 것도 모자라, 죽었다가 깨어나니 엘리아가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죽은 그녀의 몸속에 제 영혼이 들어간 거라고 하는 게 맞는 말일 거다. 기억은 자신의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이곳이 소설 속이라는 것도 인지할 정도였으니까.
엘리아에 대해서 아는 거라곤 책에서 본 내용까지가 다였다. 그래서 정신을 차린 순간, 처음으로 후회했다. 소설을 끝까지 보지 않고 하차했다는 것을 말이다.
거기다 제대로 생각을 정리할 새도 없이, 상황을 가늠할 시간도 없이 예나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강제로 깨달아야 했다.
글로만 봤던 온갖 노동은 물론이고, 자신을 바라보는 음흉한 하인들의 시선, 그리고 자신을 경멸하는 눈으로 보는 하녀들의 괴롭힘까지 몸소 겪으려니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정신적 충격이 그녀를 이 말도 안 되는 현실에 빠르게 적응시켰다.
무엇보다 그녀를 가장 경악하게 만든 건 이 소설의 빌런인 세 공자였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자신을 불러 제 성욕만 처리하고 방치하는 세 공자의 만행에 예나는 처음으로 엘리아의 심정을 이해했다.
정말 죽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 끔찍한 시간은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이었다. 거기다 자신도 죽어야 끝날 건지, 세 공자의 부름은 더욱 잦아졌다. 빌어먹을 오늘처럼 말이다.
그나마 적응력 하나는 뛰어난 터라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거지, 안 그랬다면 자신 또한 수백 번은 더 목을 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엘리아처럼 그렇게 무력하게 죽을 생각은 없었다. 죽는 게 어떤 기분인지 뼈저리게 느껴봤으니까.
그래서 ‘어차피 하는 섹스, 까짓것 나도 즐겨주면 될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다가도, 오늘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어쩔 수 없이 무력해졌다. 몸과 정신이 피로하니 피폐해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피곤함에 전 눈으로 잠시 상념에 빠졌던 그녀는 밖에서 들리는 프레드의 음성에 인상을 찌푸렸다.
“엘리아? 거기서 자냐?”
후…….
“다 됐어요. 금방 나갈게요.”
순종적인 하녀의 목소리로 고분고분하게 대답한 엘리아는 대충 씻고 얼른 밖으로 나갔다. 더 있다가는 성질 급한 프레드가 무슨 트집으로 자신을 괴롭힐지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한 듯, 엘리아는 헐벗은 몸으로 프레드 앞에 섰다. 프레드는 그녀의 나신을 감상하는 걸 좋아했기 때문이다.
형제이지만 생김새가 다른 변태들답게 성 취향도 제각각이었다. 그리고 엘리아는 그것을 파악하기까지 꽤 노력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이 엿 같은 상황을 빨리 벗어날 수 있을 테니까.
침대 위에 나른하게 앉은 프레드가 그녀의 나신을 음흉하게 훑어 내리며 빈정거렸다. 말투를 보아하니 오늘 곱게 나가긴 그른 것 같았다.
“좋았어?”
“…….”
“엘리아, 솔직하게 말해 봐.”
“네.”
“아론 형보다 나랑 하는 게 더 좋지?”
미친, 후…….
“네.”
엘리아는 겉과 속이 다른 얼굴로 프레드에게 기계처럼 답했다. 의심받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최대한 엘리아의 성격을 흉내 내며 그들의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러면서도 여주 엘리아가 조금씩 변하는 것처럼 아주 조금씩, 서서히 바뀌어가는 중이었다. 계속 이런 답답한 성격으로 살았다가는 말라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큰 변화가 세 공자의 시중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거다. 물론 처음엔 원작의 엘리아처럼 눈물을 흘리고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그래야 의심받지 않을 테니까.
그러고는 마치 서서히 길들고 있는 것처럼, 순진한 하녀가 타락의 길로 들어선 것처럼 그녀는 그렇게 순종적으로 변해갔다. 누구나 욕정은 있는 법이니까 이 정도는 의심받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녀의 생각대로 다행히 의심은 받지 않았지만, 문제는 몸이 더 피곤해졌다는 것이다. 오늘처럼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고, 부름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세운 계획을 생각하면 아주 안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엘리아가 하지 못한 복수와 자신의 자유를 위해서 그들을 길들이려면 차라리 자주 보는 게 더 나을 테니까.
그러나 제발 밤에는 쉬고 싶었다. 잠은 자야 할 거 아닌가. 오늘 같은 날에는 복수고 뭐고 그냥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다.
“내 앞으로 와.”
“네.”
두어 걸음 다가서자 프레드가 입고 있던 가운을 벗어 내렸다. 자연스럽게 성기를 노출한 남자가 씩 웃는다. 저 꼴로 3층에서부터 다락방까지 자신을 잡으러 온 남자를 보니, 더는 다락방도 안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더러운 거라면 끔찍하게 싫어하니 방까지는 들어오지 않을 거란 마지막 희망을 버리고 싶진 않았다.
발기된 상태를 보니 거기서 당장 덮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다. 그러나 아론이 먼저 자신의 몸을 탐했다는 것을 알았기에 꾹 참았을 터였다. 한편으론 다행이라 생각하며 앞에 있는 프레드를 바라봤다.
아론과 닮은 듯하면서도 다른 분위기. 아론이 퇴폐미가 좔좔 흐르는 조각같이 생긴 남자라면, 프레드는 미소년 같으면서도 막내 티가 나는 개구쟁이 같은 모습이었다.
같은 까만 머리칼에 시뻘건 눈인데 분위기가 어쩜 이리도 다른 건지. 아마 머리 스타일이 달라서이기도 하겠지만, 웃음이 없는 아론과 다르게 프레드는 해맑게 잘 웃는 얼굴이라 그런 것 같았다.
세 공자의 외모는 타고났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잘난 남자들이었다. 성격이 지랄 같아서 문제였지만.
그래도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했다고, 이들과 몸을 섞는 게 끔찍할 정도는 아니었다. 보는 맛도 있고, 가끔은 그녀도 정신 못 차릴 만큼 좋을 때도 있었으니까.
약간의 불만이라면 기왕 하는 거 같이 좋아야지, 자기들만 즐기다 쌩 가버리는 게 대부분이라는 것이었다. 오늘 아론처럼 말이다.
“엘리아.”
“네.”
다리를 쩍 벌리고 나른하게 앉은 남자가 느닷없이 그녀의 가랑이 속으로 손을 쑥 집어넣으며 물었다.
“형이 여긴 만져줬어?”
“흣!”
프레드가 엘리아의 메마른 음부를 손으로 쓱쓱 비비며 히죽 웃었다. 마치 제 손이 닿으면 마른 골짜기에서 금세 물이 흘러나올 거라 생각하는 듯, 그의 얼굴엔 자신감이 가득 차올라 있었다.
그래도 이런 상황에선 차라리 프레드가 아론보다는 더 나았다. 그나마 적셔는 주니까 삽입할 때 아프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요.”
“그럼 또 그냥 쑤셔 넣었어?”
“네.”
“아팠겠네.”
“…….”
처연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자, 프레드가 애처롭게 바라본다. 그러나 저 모습이 진심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프레드는 이런 식으로 제 형들과의 관계를 묻고 확인했다. 그리고 자신이 더 괜찮은 남자라는 걸 각인이라도 시키려는 듯, 어울리지도 않는 연극을 했다. 물론 속진 않지만.
“나 같았으면 먼저 적셔줬을 텐데. 그게 남녀 간에 기본 예의 아닌가?”
“…….”
기본 예의 같은 소리하고 있네. 예의하고는 가장 거리가 먼 놈이.
그의 뻔뻔한 말에도 엘리아는 처연한 표정을 그대로 유지하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결국 남자의 손길에 젖어든 몸이 조금씩 민감해졌기 때문이다.
“그럼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겠네? 그럼 내가 제대로 보내줄게. 나는 엘리아를 아끼니까.”
“……감사합니다.”
“올라와.”
“네.”
침대 위에 걸터앉았던 프레드가 그대로 누웠다. 엘리아는 침대 위로 조심히 올라가 그의 얼굴 위로 다리를 벌리고 섰다. 이건 프레드가 가장 좋아하는 자세였다. 그녀의 가랑이 사이에 숨겨진 도톰한 조갯살을 보며 프레드가 쩝,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역시, 엘리아 보지는 언제 봐도 예뻐.”
“감사합니다.”
비죽 올라간 입꼬리를 실룩거리며 프레드가 상큼하게 명령했다.
“앉아.”
“네.”
프레드의 얼굴 위로 다리를 벌리고 천천히 앉은 엘리아는 무릎 꿇은 자세로 그의 입술 가까이에 제 음부를 대주었다. 그러자 그의 뜨거운 숨결에 아랫도리가 뻐근해진다. 남자의 입술이 닿을 듯 말 듯한 곳에 있으니 그녀 또한 점점 흥분되기 시작했다.
“많이 싸는데……?”
“…….”
“더 싸도 돼. 다 마셔줄 테니까.”
혀를 날름거리며 입술을 적신 남자가 그녀의 음부에 쪽, 입을 맞춘다. 그러곤 혀를 길게 빼내어 그녀의 음부 앞머리를 살짝 핥아 올렸다.
“흣!”
츄르릅……!
점점 빨라지는 남자의 혀 놀림에 엘리아는 이를 악물었다. 제 아랫도리를 게걸스럽게 빠는 소리가 지독히도 야하게 들렸다. 그때 프레드의 퉁명스러운 음성이 들렸다.
“흔들어야지, 뭐 해?”
“하… 네.”
프레드의 명령에 엘리아의 탐스러운 엉덩이가 천천히 앞뒤로 움직였다. 남자의 혀가 더욱 길게 나오자, 엘리아는 스스로 더 느껴지는 곳을 찾으며 그의 혀에 제 붉은 속살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낯선 쾌락에 엘리아의 미간이 사정없이 찌푸려졌다. 그녀는 미칠 것 같은 감각에 제 손등을 물고, 엉덩이를 흔들었다. 조금 전 아론과 했던 의미 없는 행위도 섹스였다고 몸이 달았던 걸까. 이번에는 온전히 제 쾌락만을 위해 움직이니 저절로 몸이 들썩거린다.
더없이 음란하고 더할 나위 없이 야해 빠진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건 본능이었다. 쾌락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
“흐흡……!”
“소리 참지 마. 난 소리 참는 거 싫어하는 거 몰라?”
“네. 하으응!”
천천히 움직이던 탐스러운 엉덩이가 조금씩 빨라진다. 부드러우면서도 꺼칠한 혀에 사정없이 음부를 문지르다가도 한 번씩 혀끝을 세워 간질이는 프레드의 장난에 엘리아는 완전히 취해버렸다.
츄르릅.
“좋아?”
“하아앗! 하, 네. 도련님. 너무 좋아요……. 흣!”
“킥, 오늘따라 반응이 아주 마음에 드는데?”
츄르르릅!
“하으… 아앙!”
물이 뚝뚝 흐를 정도로 질펀하게 젖은 엘리아의 음부를 게걸스럽게 핥아대던 프레드는 그녀의 질구에 가득 맺힌 애액을 츄릅 빨아 삼키곤 과장되게 탄성을 내지르며 헛소리를 뱉었다.
“캬아……! 엘리아 보지 물은 왜 이렇게 달콤한 거지?”
“흐응, 흐으… 감사합니다…….”
“그 감사하다는 말 좀 그만해. 하여간 아론 형은 이상한 취미가 있다니까.”
습관적인 감사 인사는 아론 때문에 생긴 버릇이었다. 제 몸을 주는 걸 감사하게 여기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레드는 그런 순종은 싫어했다. 침대에서만큼은 엘리아가 요부가 되길 원하는 남자였다. 참, 맞추기 까다로운 놈들이었다.
“자, 쌀 때까지 한번 흔들어봐. 소리는 참지 말고. 아! 그 젖도 야하게 만지면서.”
“하아… 네.”
바라는 것도 많은 프레드가 혀를 쭉 내밀자, 엘리아는 다시 엉덩이를 흔들며 시동을 걸었다. 커다란 가슴을 터트릴 듯 야하게 주물럭거리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야릇한 비음을 흘리며 물결이 출렁이듯 음탕하게 몸을 흔든다.
눈을 부릅뜨고 엘리아의 음란한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프레드는 제 자지를 만지작거렸다. 정말 말도 안 되게 매혹적인 여자였다.
‘씨발, 나만 갖고 싶은데. 아깝단 말이야.’
“아흣! 하앙……!”
츄르릅.
일부러 한 번씩 그녀의 음부를 소리 나게 빨아 먹으면 엘리아의 아랫도리는 더욱 음탕하게 움직였다. 그녀의 작은 입에서 나오는 야릇한 신음에 프레드의 자지가 이제는 아예 터질 듯이 팽팽하게 발기했다.
점점 몸짓이 빨라지는 걸 보니 그녀가 한계에 다다른 모양이었다. 신음이 격해지는 걸 보니 절정의 문턱까지 오른 것 같았다. 그녀의 쾌감을 위해 프레드가 양손을 올려주자 엘리아는 그의 손을 맞잡고 더욱더 격렬하게 허리를 흔들며 프레드를 불렀다.
“하읏, 하응! 도련님!!”
하지만 프레드는 대답 대신 현란하게 혀를 움직여 그녀의 부름에 화답했다. 아래에서부터 피어오른 전율이 순식간에 온몸을 휘감자 신음은 교성으로 바뀌고, 음탕하게 흔드는 허릿짓은 쾌락을 찾아 쉼 없이 달렸다.
“흐아아……! 하윽……! 하아아앙! 흑!”
곧 정점에 다다른 쾌감을 맞이하자 정신없이 흔들리던 엘리아의 몸이 파닥거리다 멈추었다. 엉덩이가 움찔거릴 때마다 프레드의 입 속으론 그녀가 싼 달큼한 애액이 주르륵 흘러 들어갔다.
쾌감에 취해 헐떡거리는 엘리아의 상태를 보고 프레드는 악동처럼 씩 웃었다. 그러곤 그녀의 엉덩이를 꽉 붙들고 다시 한번 사정없이 혀를 털어댔다.
“하아앙! 그, 그만! 도련님! 하으읏!”
프레드의 짓궂은 장난에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민감했던 공알은 또 한 번 쾌락을 선사했다. 얼마 만에 연달아 느끼는 오르가슴인지.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펄떡거리는 몸 때문에 엘리아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좋았어?”
“하아, 하아…….”
“자, 그럼 이제 제대로 시작해 볼까?”
“하아, 네…….”
“내려가서 네가 끼워. 그리고 이번에도 네 마음껏 흔들어봐.”
“네. 감사, 아니 알겠습니다.”
채 가시지 않은 전율을 애써 가라앉히며 엘리아는 터질 듯이 빳빳하게 고개를 쳐든 프레드의 자지 위에 앉았다. 손으로 그의 것을 잡고 엉망으로 젖은 질구에 천천히 맞춰 끼워 넣으려는 찰나, 지금 들리면 안 될 목소리가 그녀의 정신을 화들짝 깨웠다.
“오늘따라 엘리아의 소리가 담장을 넘는군.”
“……!”
갑자기 들려온 음성에 엘리아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엘리아는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애타는 눈빛으로 프레드를 바라봤다.
제발 보내. 나 죽는다고!
그러나 그녀의 간절함 따위는 보이지도 않는지, 프레드는 태연하게 누운 자세로 들어오는 남자에게 해맑게 인사했다.
“형! 집에 있었어? 난 또 오늘 안 들어온 줄 알았지.”
“바로 옆방이 내 방이란 걸 잊은 모양이군.”
프레드의 인사를 깔끔하게 무시한 아힌은 제 동생의 좆 대가리에 몸을 끼워 넣으려다 그대로 굳어버린 엘리아만 뚫어지게 바라봤다.
“소, 소공작님.”
“음, 시작도 전에 그렇게 교성을 내지른 건가? 프레드가 맛있게 빨아준 모양이야.”
“죄, 죄송합니다.”
“말로만 죄송해하면 안 되지. 내 좆을 이리 만들었으니 책임은 져야지. 안 그런가? 음탕한 엘리아?”
아힌의 말에 프레드의 인상이 미미하게 찌푸려졌다. 그러다 툴툴거리는 음성으로 그가 아힌에게 물었다.
“형, 같이 하게?”
“왜? 싫어?”
“…크흠. 아니, 나야 뭐 상관없긴 한데……. 엘리아가 좀 힘들긴 하겠네.”
금세 또 무슨 재밌는 생각을 한 건지, 말은 걱정하는 척하면서 프레드가 히죽 웃었다.
어느새 그녀의 뒤로 온 공작가의 첫째, 아힌이 제 것인 양 자연스럽게 그녀의 풍만한 젖가슴을 이리저리 치대며 주물렀다.
아무리 그래도 하루에 세 놈이 다 덤빈 적은 없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거기다 처음으로 꼼짝없이 두 짐승을 한꺼번에 상대하게 생긴 엘리아는 다시는 절대로 저녁엔 물을 마시지 않으리라 또 한 번 다짐했다.
그녀의 귓불을 살짝 핥아 올린 아힌이 야살스럽게 속삭인다.
“뭐 하고 있어, 엘리아? 날 보면서 요염하게 프레드 자지를 넣어봐. 난 이 요망한 입이 내 잠을 깨웠으니까 일단 여기다 한 번 싸고 시작하지.”
아힌의 말에 엘리아의 몸이 찬기를 맞은 듯 부르르 떨렸다. 하지만 이미 명령은 내려졌다. 체념한 듯 엘리아는 몸을 돌려 아힌을 바라봤다. 그러곤 천천히 프레드의 단단한 살덩이를 제 구멍 속으로 끼워 넣었다.
“야해 빠졌군.”
“씨발, 여기서 보니까 엘리아 보지가 내 자지 먹는 게 적나라하게 보이잖아. 꼴려 뒈지겠네.”
“하아…….”
두 남자가 보는 앞에서 프레드의 성기를 뿌리까지 삼킨 그녀의 입에서 옅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색기 어린 엘리아의 모습에 아힌이 피식 웃는다. 그녀의 아랫입술을 쭙 빨아 삼켰다가 놓으며 선심 쓰듯 말했다.
“오늘 황홀경을 맛보게 해주지.”
아래에서는 빠듯하게 틀어박힌 자지가 쿵쿵 쳐올리고, 앞에서는 또 다른 사내가 야릇하게 젖꼭지를 비트며 목덜미를 핥아 올리니, 엘리아의 정신은 금세 몽롱해졌다. 그리고 쾌락은 그녀를 더욱 순종적으로 만들었다.
언제나 일대일로만 상대했던 공자들에게 동시에 몸이 만져지자 엘리아는 처음 겪는 이 상황이 두려우면서도 몹시 흥분됐다. 그녀의 신음이 조금씩 끈적해지자, 발긋하게 달아오른 여체를 농락하던 아힌이 엘리아의 귓가에 속살거렸다.
“꽤 좋아하는군. 이런 것도 좋아하는지는 몰랐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이렇게 해줄 걸 그랬군. 매번 죽을상만 하더니, 오늘따라 제대로 즐기는 모습이 아주 마음에 들어.”
“흐으응…….”
아힌의 이죽거림에도 그저 달뜬 신음만 뱉을 뿐, 엘리아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할 말도 없었거니와 할 수 있는 말도 없었으니까.
“크읏! 엘리아, 오늘 조여주는 게 장난이 아닌데……? 진짜 이런 모습은 또 처음 보네?”
제 것을 꽉 물어주는 그녀의 쫀득한 속살에 오만상을 찌푸리면서도 프레드의 목소리는 한껏 높아져 있었다.
몽롱하게 풀린 엘리아의 눈빛을 빤히 보던 아힌이 씩 웃으며 입고 있던 옷을 천천히 벗기 시작한다. 아주 여유롭고 오만한 짐승의 모습이었다.
아직 완전히 서지 않은 아힌의 자지가 점점 고개를 들며 꺼덕거렸다. 저게 다 서면 어느 정도인지 잘 아는 엘리아는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벌써 먹고 싶은 건가? 기다려, 곧 줄 테니까.”
그녀의 앞으로 다가온 아힌이 그녀의 머리끈을 쏙 빼버렸다. 단정하게 땋아 놓은 머리칼을 흩트려놓고는 마음에 든다는 듯 또 피식 웃는다. 구불거리는 긴 머리칼이 엘리아의 풍만한 가슴을 보일 듯 말 듯 가리며 유혹하자, 그의 입에서 드물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크으… 역시, 엘리아는 이 모습이 더 아름다워. 음탕한 여신이 내 눈앞에 있는 것 같군.”
“하아, 감사합니다.”
“이제 음탕한 여신이 내 자지를 얼마나 맛있게 빨아 먹는지 보고 싶군. 자, 맛있게 빨아봐, 엘리아.”
“네, 소공작님.”
엎드리듯 상체를 숙인 엘리아가 아힌의 발기한 페니스를 조심스럽게 손에 쥐었다. 한 손으로는 다 잡히지도 않는 성기가 그녀의 손길을 기꺼워하며 꿈틀거린다.
맑은 벽안을 요염하게 치뜬 그녀는 제 주인을 빤히 바라보며 혀를 내밀고 그의 자지를 입 속으로 집어넣었다. 지독하리만큼 유혹적이고 음탕한 모습에 아힌의 목울대가 꿀렁거렸다.
“움직여. 엘리아.”
아힌에게 정신이 팔려 움직임을 멈추었더니 불퉁해진 프레드가 타박하듯 명령했다. 그의 명령에 엘리아가 아랫도리에 힘을 주고 엉덩이를 살짝 들어 올리자 아힌과 마찬가지로 프레드의 목울대도 꿀렁거렸다.
그녀의 통통한 엉덩이 아래로 제 좆을 머금은 선홍빛의 예쁜 보지가 적나라하게 보이자, 격한 욕정이 들끓었다. 프레드는 베개를 하나 더 높이 올려 제 좆을 삼키는 그녀의 질 구멍을 더 자세히 관찰했다. 뽀얀 엉덩이가 앞뒤로 살살 치댈 때마다 제 자지가 그녀의 보지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가 드러난다.
벌어진 구멍 사이를 드나드는 제 좆이 엘리아가 흘린 애액으로 인해 축축하게 젖다 못해, 온 살덩이가 번들거렸다.
그녀의 부드러운 속살이 꽉 조여 무는 감각만으로도 미치겠는데, 그녀의 몸속에서 빠져나오는 제 것을 보고 있자니, 금세 사정감이 몰려왔다. 말간 애액으로 번들거리는 자지가 모습을 드러낼 때면 선홍색 보짓살이 딸려 나오며 더없이 음탕한 장면을 연출했다. 프레드는 그녀의 음란한 허리 놀림에서 눈을 떼질 못했다.
아래위로 두 남자의 성기를 물어 삼킨 엘리아의 모습은 정말로 음탕하기 짝이 없는 모양새였다. 아래에선 찌걱거리는 마찰음이 나고, 위에선 추릅거리는 소리가 연신 울렸다.
온몸으로 야한 소리를 내고 몽롱하게 풀린 눈으로 제 시선을 놓지 않는 엘리아의 모습에 아힌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미치겠군. 엘리아, 넌 정말 갈수록 날 미치게 해.”
‘이런 순진한 얼굴로 이렇게 음탕한 모습이라니.’
오늘따라 지금까지와는 뭔가 다르게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아힌의 눈빛이 점점 짙게 물들었다. 음란하게 두 사내의 좆을 받아내는 모습이 천박해 보이기는커녕 아름다워 보일 지경이니.
‘내가 미친 건가? 하녀 따위가 아름다워 보이니 말이야.’
제 좆을 반도 머금지 못하는 저 자그마한 입술에 아힌은 제 자지를 힘껏 처넣고 싶은 욕구가 들끓었다. 그녀의 좁은 목구멍 깊숙이 쑤셔 넣고 흔들면 그녀의 좁은 보지 속만큼이나 황홀함을 느낄 것 같았다. 점점 그녀에게 홀리는 기분이 들었다. 저 맑디맑은 새파란 눈에 빠져드는 것만 같았다.
“크읏……! 엘리아. 더 조여……! 씨발, 더 조여봐!”
프레드의 신음에 정신이 번쩍 든 아힌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대공작가의 소공작인 자신이 어찌 하녀 따위에게 홀린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제법이군. 엘리아. 장난감 따위가 주인을 홀리려 들다니 말이야.’
갑자기 표정이 바뀐 아힌의 모습에 엘리아는 순간 움찔했다. 내내 연한 미소를 머금었던 남자의 얼굴이 돌연 사나운 들짐승처럼 변하자, 불안한 기분에 엘리아는 그의 좆을 문 채로 움직임을 멈췄다.
아힌은 비죽 웃으며 길게 늘어뜨려진 엘리아의 머리칼을 모아 잡고는 손을 그녀의 뒤통수에 올려 더는 물러나지 못하도록 옭아맸다. 그러고는 멈춰버린 자그마한 머리통을 고정한 뒤, 사정없이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으웁!”
목구멍을 치고 빠르게 드나드는 흉포한 대물에 엘리아의 눈가에는 금세 눈물방울이 맺혔다. 구역질이 치밀었지만, 절대 티를 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엘리아는 숨을 꾹 참고 제 입 안을 휘젓는 무도한 자지를 겨우겨우 받아냈다.
굵은 몽둥이가 빠르게 드나드는 바람에 입술이 불에 덴 듯 화끈거렸다. 아힌의 추삽질에 엘리아의 움직임이 멈추자, 얌전히 누워만 있던 프레드마저 그녀의 둥근 엉덩이를 붙들고는 아래서부터 위로 치받았다.
아래위로 거칠게 들이받는 놈들의 힘에 엘리아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좋았던 기분도 잠시, 또다시 괴롭고 고통스러웠다. 원래부터 배려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던 놈들의 거친 행동이 오늘은 동시에 가해지자 버텨내기가 버거웠다.
“크윽.”
“흐윽!”
두 남자의 신음과 동시에 정신없이 쑤셔 박히던 좆이 그녀의 목구멍을 찌르며 멈췄다. 그러곤 곧이어, 찐득하고 뜨끈한 물이 꿀럭꿀럭 목구멍을 타고 목 안으로 넘어간다. 엘리아는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아힌이 뱉어낸 정액을 그대로 받아먹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아랫배에는 프레드가 싸지른 좆물이 가득 찼다. 이런 상황에도 가장 먼저 머릿속을 차지한 것은 드디어 끝났다는 안도감이었다. 이제 잘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러나 그녀의 바람은 곧, 산산이 부서졌다. 마치 기르는 애완견을 칭찬하듯 부드러운 손길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힌은 다정하게 명령했다.
“이제 가서 프레드 좆물 빼고 와.”
“네……?”
“설마, 프레드가 싸질러놓은 네 구멍에 내 좆을 넣길 바라는 건가?”
“…아, 아닙니다.”
천천히 프레드의 자지를 빼내고 몸을 일으킨 엘리아는 달달 떨리는 다리를 겨우 세우고 욕실로 향했다. 속으로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서둘러 안으로 들어가는 엘리아의 얼굴은 사납게 일그러져 있었다.
“오늘 엘리아 장난 아닌데?”
“프레드, 잘 배워둬. 길은 이렇게 들이는 거야.”
“나도 잘 길들이고 있었거든?”
자신을 하찮은 짐승 취급하는 두 주인의 말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엘리아는 쪼그려 앉아 프레드가 싸질러놓은 좆물을 빼냈다. 손가락을 제 질구 속에 집어넣어 후벼 파고는 다시 한번 깨끗이 몸을 씻었다.
더러운 것을 싫어하는 아힌의 ‘깔끔병’을 잘 아는 터라 아까보다 더욱 꼼꼼히 몸을 닦았다. 괜한 거로 트집 잡힐 필요는 없었다. 뭐든 완벽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끓어오르는 화에 이가 바득바득 갈렸다.
피곤함이 한계까지 올라온 엘리아의 눈빛이 독하게 바뀌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 쌍욕을 퍼붓고 이 저택을 나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이곳에서 눈뜬 후로 공작저 밖을 나가본 적도 없었거니와 아마 욕을 뱉는 순간 자신의 목숨은 장담할 수 없을 터였다.
세 공자의 잔인하고 포악한 성격에 대해서는 사용인들의 대화를 통해 수도 없이 들었다. 무엇보다 그 무서운 하녀장마저도 세 공자와는 눈도 못 마주칠 정도였으니. 거기다 소설 속에서 봤던 놈들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일 정도였기에 엘리아는 다른 생각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물론 아직까진 그녀에게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은 없었지만, 엘리아는 그들에게 막연한 공포심을 갖고 있었다. 그건 포식자를 알아보는 본능이었다.
그러나 오늘 엘리아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잠을 못 잔 탓일까? 자꾸만 부아가 치밀었다.
복수고 계획이고 다 필요 없고, 이젠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어졌다. 사는 게 우선이니까. 복수보단 사람답게 사는 게 더 간절했다. 오늘은 그랬다. 그만큼 지쳤다는 얘기였다.
저들을 상대로 복수가 가당키나 한 걸까? 자신 같은 하녀가 어찌 대귀족을 상대한단 말인가. 무엇보다 저들은 절대로 자신에게 넘어오지 않을 것 같았다.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자신의 처지는 여기까지인 것 같았다. 한 번 나락으로 떨어진 생각은 점점 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허튼 꿈에 매달려 자신을 더 망가뜨리느니, 깔끔하게 물러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았다. 지친 몸과 마음은 모든 걸 포기하게 했다.
그래, 여길 뜨자. 오늘만 버티고 차근히 계획을 다시 세우는 거야.
마음을 고쳐먹은 엘리아는 서둘러 몸을 씻었다. 욕실을 나와서 보니 두 공자의 위치가 바뀌었다. 프레드가 누워있던 자리에 아힌이 누워있고, 프레드는 연신 제 자지를 주물럭거리며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로 재울 생각이 없어 보이는 두 남자의 느긋한 모습에 이가 갈렸다.
오늘은 정말 죽었구나. 개새끼들……!
밤새 이들과 몸을 섞더라도 그 후에 쉴 수만 있다면 이 정도쯤은 얼마든지 버텨낼 수 있었다. 그런데 잠 한숨 못 자고 또 온종일 일을 해야 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얼른 와. 엘리아.”
다정하게 부르는 프레드의 음성에 그녀는 작게 혀를 찼다. 저 목소리만큼만이라도 저를 생각해 주었다면 이러지는 못할 텐데.
엘리아는 초연한 얼굴로 저를 기다리는 짐승들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밤새 두 짐승의 좆에 울부짖으며 수도 없는 쾌락에 몸부림쳤다. 그래, 미치도록 좋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죽을 만큼 힘들었다. 그래도 다행히 끝은 있었다. 엘리아가 겨우 무자비한 짐승들의 손에서 벗어난 건 아침 해가 떠오른 후였다.
결국 한숨도 못 잔 엘리아는 퀭한 얼굴로 오늘 제게 맡겨진 일거리를 힘겹게 해치우고 있었다. 하필 오늘 그녀가 맡은 일은 공작저의 커튼을 모조리 뜯어내서 일일이 손으로 빨아 말린 후, 다시 제자리에 말끔하게 달아놓는 일이었다.
평소였다면 주방에서 다른 시녀들의 괴롭힘을 받으며 일하는 것보다는 나았겠지만, 지금 그녀의 체력으로는 하나도 빨아내기가 힘들다는 게 문제였다.
밤새 두 공자에게 시달린 온몸은 두들겨 맞은 듯 욱신거렸고, 멍한 정신은 그녀를 계속 잠으로 이끌었다. 쉴 새 없이 나오는 하품을 해가며 엘리아는 힘없이 천 쪼가리를 조몰락거렸다.
“하아… 왜 하필 다 흰색이냐고. 대충 빨지도 못하게.”
공작저의 주인들이 모두 남자뿐인 터라 무조건 깔끔하고 깨끗한 거로만 치장하다 보니 침대보며 커튼, 그리고 소파를 덮어놓은 천까지 모조리 흰색이었다. 아직 안 빨아도 될 정도로 깨끗했지만, 굳이 이걸 시킨 이유는 그저 자신을 괴롭히려는 의도일 거라 생각했다.
엘리아는 잘못한 것도 없이 다른 이들에게 미움받는 아이였으니까. 매번 당하는 건 엘리아였는데, 소문은 항상 그녀가 반반한 얼굴로 남자들을 유혹하는 여우로 둔갑해 있었다.
하긴, 여주인공이 구를수록 소설의 인기가 더 높아지긴 했으니. 작가가 무슨 의도로 소설을 그렇게 썼는지는 알 것도 같았다. 그 고난을 자신이 겪고 있다는 게 억울했지만.
그렇다고 원래의 성격을 드러낼 수도 없었다. 이 거친 야생에서 홀로 살아남기란 아무리 그녀라 해도 벅찼기 때문이다. 홀로 다수를 상대하는 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으니.
어디 하나 기댈 곳이 없었다. 세 짐승은 엘리아의 몸만 좋아했지, 그녀의 고된 생활엔 아예 관심조차 없었다. 그래서 그게 더 화가 났다.
“안 챙길 거면 잠은 재워야 할 거 아니야!”
그녀는 순간 짜증이 솟구쳐 손에 들고 있던 빨래를 철퍼덕 던져버렸다. 제 처지가 한심하고 처량했다. 무슨 자신감으로 엘리아의 복수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건지. 그냥 맨 처음, 이 몸에 들어왔을 때 뒤도 안 보고 도망쳤어야 했는데.
주제도 모르고 그 짐승들을 길들이겠다는 계획을 세운 자신의 오만함에 치가 떨렸다. 거기다 하녀들의 괴롭힘이 도를 넘는 것도 그렇고, 밤에 화장실조차 편하게 갈 수 없다는 사실까지 떠오르자 이가 바득 갈렸다.
“엿 같네. 후…….”
잠을 못 자서 그런지 평소완 다르게 신경이 몹시 날카로웠다. 이 상황에 누구 하나라도 제게 시비를 건다면 이번에는 참지 못할 것 같았다.
후우… 진정해. 지금까지 잘 버텼잖아. 조금만 더 참아. 조금 더 모아서 바로 튀는 거야.
그녀는 매달 나오는 봉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뒀다. 이곳을 떠날 때를 대비해 달랑 옷 한 벌로 버티며 악착같이 모으는 중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옷은 다른 하녀들 것보다 더욱 해지고 낡았다.
혹시 냄새라도 날까 봐 거의 매일 빨아 입다 보니 더 빨리 닳을 수밖에. 물끄러미 제 옷을 내려다본 그녀가 쯧, 혀를 찼다.
이 꼴도 좋다는데 무슨 상관이야. 흥.
얼른 끝내고 조금이라도 쉬고 싶어 엘리아는 서둘러 움직였다. 어차피 저녁에 빨아 입을 옷이라 옷이 젖든 말든 아랑곳없이 제 할 일에만 몰두했다.
엎드린 상태로 커다란 통에 물을 채우려고 몸을 기울이는 동시에 누군가의 손이 등 뒤에 닿았다. 뒤를 돌아볼 새도 없이 엘리아의 몸은 완전히 앞으로 기울어졌다. 폭신한 잔디가 깔린 정원이라 제 뒤로 누가 오는지도 몰랐다.
“야!”
“흐앗!”
첨벙!
“푸하하하!”
느닷없이 제 몸을 밀치는 손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엘리아는 찬물이 담긴 통 속에서 물에 빠진 생쥐 꼴로 뒤를 돌아봤다. 저를 보며 배를 잡고 웃는 여인을 보자 울컥 화가 끓어올랐다.
“이게 미쳤나. 어디서 감히 눈을 치켜떠?”
죽일 듯이 노려보자 적반하장도 유분수라고, 베시가 더 앙칼지게 소리를 지르며 사납게 노려보았다. 하녀장의 오른팔인 베시는 엘리아를 괴롭히는 주동자로 틈만 나면 엘리아를 욕하고 골탕 먹였다. 아마 제가 오늘 이 일을 맡게 된 데에도 베시의 입김이 분명히 들어갔을 터였다.
“이게 무슨 짓이야?!”
“하, 이게 요즘 주인님들한테 갖은 아양을 떨더니 이젠 눈에 뵈는 게 없나 보네?”
“하아… 됐다. 나 바쁘니까 용건 없으면 가.”
끓는 속을 애써 삭이며 젖은 옷을 쭉 짜는데 베시가 생긋 웃으며 비아냥거렸다.
“왜 바쁠까……? 아! 얼른 끝내고 또 그 더러운 몸뚱어리 굴리러 가야 해서 바쁜가?”
“…….”
저걸 그냥 확 죽이고 다 끝내?
안 그래도 예민한데 이유 없이 시비를 거는 베시를 보니 끓어오르는 분기가 쉬이 가라앉질 않는다. 엘리아의 눈빛이 점점 차게 식었다.
“아니라고는 말 안 하네? 하긴, 아침까지도 두 주인님의 좆에 헐떡거리고, 좋다고 울어댔으니 뻔뻔하게 거짓말은 못 하겠지.”
“……!”
…하! 벌써 소문이 돈 거야? 제기랄.
머리가 지끈거렸다. 베시가 알고 있다면 벌써 공작가의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는 얘기였다. 더는 숨기고 말고 할 것도 없는 상황에 엘리아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고 한숨을 내쉬었다.
“엘리아. 몸 파는 년들도 너처럼 하지는 않을 거야. 너는 그년들보다 더 음흉하고 음탕한 년이라는 거 알아?”
“…꺼져.”
“뭐야? 하! 이게 정말 돌았나 보네. 오늘 네 방에 손님 좀 보내줄까? 그 음탕한 보지를 확 찢어놓으면 주인님들도 더는 널 찾지 않으실 텐데 말이야?”
베시의 눈동자가 광기로 번뜩였다. 왠지 오늘 밤 정말로 누군가를 자신의 방으로 보낼 기세였다. 그리고 베시는 그러고도 남을 아이였다.
엘리아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베시가 이렇게 겁 없이 굴 수 있는 건 세 공자가 엘리아의 몸 이외에는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걸 알아서였다. 여태껏 어떤 짓으로 괴롭혀도 놈들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질 않았으니까.
그래서 매번 화가 나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 큰 저택에 엘리아의 편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덤벼봤자 당하는 건 오로지 자신이었다.
아까와는 다르게 엘리아가 고개를 푹 숙이자 베시는 입꼬리를 쭉 찢어 올렸다. 기세가 하늘을 찌를 만큼 신이 난 그녀의 목소리가 카랑카랑하게 울려 퍼졌다.
“그러니까 까불지 마, 엘리아. 네가 한 짓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약과니까.”
“하아…….”
도대체 자신이 뭘 했다고 저렇게 독을 품은 건지 모르겠다. 얼굴이 예쁘다는 이유로 이러기엔 베시의 행동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그나저나 오늘 많이 힘들어 보이네? 그래서 내가 널 위해 특별히 선물을 준비해 왔어. 사실은 이걸 주려고 온 거거든.”
드물게 다정한 베시의 목소리에 엘리아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엘리아의 시선은 베시가 아닌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그 순간.
촤아악!
“!!”
눈앞에 검은 물이 흘러내렸다.
하! 이건 또 뭐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기가 막힌 상황에 엘리아의 입에서 헛웃음이 샜다. 이 정도까지 한 적은 없었는데.
검정 잉크를 그녀에게 뿌린 베시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러곤 어울리지도 않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어머! 어떡해? 빨래가 다 까매졌네. 저거 다 지우려면 오늘 밤도 못 자겠구나. 미안해서 어쩌지? 안 그래도 더러운 옷이 더 더러워졌네. 어휴.”
과장되게 말했다. 걱정하는 투로 말하면서도 그녀의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하지만 베시의 웃음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재밌군.”
별안간 제 뒤에서 들리는 남자의 서늘한 음성에 베시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등 뒤에 맹수를 세워놓은 듯 베시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머리에서 뚝뚝 떨어지는 잉크를 대충 쓱 닦은 엘리아가 태연하면서도 정중하게 인사했다.
“아론 공자님, 오셨습니까.”
단둘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 엘리아는 아론을 제대로 된 호칭으로 불렀다. 둘의 관계를 숨기기 위함이었지만, 어차피 다 아는데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엘리아.”
“네.”
“꼴이 우습군.”
아론의 말에 엘리아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벌을 받아야지.”
“네.”
한숨이 나왔다. 당한 건 자신인데, 왜 제가 벌을 받아야 하는 건지. 차라리 여느 때처럼 모른 척 지나갈 것이지, 왜 오늘따라 쓸데없이 나서서 저를 더 괴롭히는지 짜증이 치밀었다. 그러나 무슨 힘이 있겠나. 대공작가 안에서도 가장 피가 차가울 것 같은 공자가 그렇다는데.
피곤한 몸으로 찬물까지 뒤집어쓴 것도 모자라, 자꾸만 신경을 긁는 이들이 나타나니 지끈거렸던 머리가 이제는 핑핑 도는 것 같았다.
“거기 너.”
“네, 넵! 공자님.”
아론의 부름에 기세등등하던 베시가 털썩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매번 대놓고 괴롭히긴 했어도 이렇게 딱 걸린 적은 처음이었으니 베시도 겁이 난 모양이다.
“일어나.”
“네……?”
생긋 웃는 아론의 얼굴에 넋이 나간 베시가 천천히 일어서며 홀린 듯 그를 바라봤다. 평소라면 감히 눈도 못 마주쳤을 텐데, 악마의 미소에 홀린 베시는 자신이 지금 아론을 똑바로 보고 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했다.
아론의 미소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잘 웃지 않는 남자가 베시를 보며 웃고 있다. 엘리아의 눈에는 아론의 미소가 곧이곧대로 보이지 않았다. 눈앞의 벌레를 어떻게 밟아 죽여야 재미있을까 고민하며 즐기는 웃음으로 보였다.
“엘리아. 이리 와서 이거 앞에 서.”
“네? 아, 네.”
아론의 말에 그제야 정신 차렸는지 베시가 제 앞에 선 엘리아를 멍청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아론이 왜 이러나 싶으면서도 엘리아는 무기력하게 반응했다. 자신을 도와주려고 이러는 건 절대 아닐 테고, 오늘따라 심심한 모양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론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엘리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튀어나올 정도로 커진 눈은 베시도 마찬가지였다.
“쳐.”
“……?”
“……?”
뜬금없는 아론의 말에 베시와 엘리아의 얼굴이 자동으로 그에게 향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 못 한 듯 두 여자는 아론을 보며 눈만 끔벅거렸다. 그러자 미간을 찌푸린 아론이 엘리아만 쳐다보며 말했다.
“뭐 해? 치라는데. 저거 얼굴.”
“고, 공자님!”
베시의 부름에 아론의 고개가 삐뚜름하게 내려간다. 살기 가득한 눈빛을 번뜩이며 그가 당장이라도 찢어 죽일 듯 베시를 쳐다봤다. 엘리아를 볼 때와는 완전히 다른 눈빛이었다.
“건방진 년이군, 감히 그 하찮은 혓바닥으로 지금 누굴 부르는 거지? 네 방에도 손님 하나 보내줄까? 정신 교육이 필요해 보이는데?”
“헉, 죄, 죄송합니다.”
베시가 엘리아에게 한 말을 그대로 옮긴 아론이 다시 엘리아를 바라봤다.
“엘리아, 귀먹었어? 두 번 말하게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죄송합니다.”
그래, 무슨 꿍꿍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일단 때리고 보자.
어차피 아론의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었기에 엘리아는 그의 배려(?) 같은 명령을 따르기로 했다. 이참에 그동안 쌓인 것도 풀 겸, 망설이지 않기로 했다.
“베시, 미안. 나도 어쩔 수가 없네?”
“너……!”
짜악―!
“흑!”
엘리아는 가차 없이 베시의 뺨을 후려갈겼다. 온 힘을 다해 쳤더니 손바닥이 얼얼했다. 순간, 제게 이런 기회를 준 아론에게 뭐든 다 해주고 싶을 만큼 희열이 느껴졌다. 그동안에 쌓인 울분이 다 풀어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그런데 남자는 한술 더 뜨고 있었다.
“그렇게 약하게 쳐서 되겠어? 장난해? 다시 때려.”
“…….”
저게 정말 오늘 왜 저러지? 진짜 날 도와주려고 이러는 거야? …흥, 지나가던 개가 웃겠네.
세 공자 중 가장 감정이 없는 아론이었기에 절대로 그럴 리가 없었다. 혹시 프레드라면 몰라도 아론이 저를 위해서 이런 짓을 할 리가……. 그래,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때려.”
“네.”
짜아악―!
이번에는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내서 후려쳤다. 역시나 베시의 몸이 힘없이 털썩 쓰러진다. 눈물이 방울방울 맺히는데도 베시는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표독스러운 눈으로 저를 노려보는 베시를 보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때린 것까지는 좋았는데, 후폭풍을 생각하니 다시 가슴이 답답해졌다. 베시의 독기가 이전보다 더 독해질 게 뻔할 테니. 그리고 이 얘기가 퍼지면 다른 사용인들도 자신을 더욱 괴롭힐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언제나처럼 아론은 또 모른 척할 테고, 홀로 뒷감당할 생각을 하니 또다시 머리가 핑그르르 돌았다. 그런데 이번엔 더 어이없는 아론의 명령에 두 여자의 눈이 또다시 휘둥그레졌다.
“둘 다 옷 벗어.”
“……?”
“……?”
뭘 벗어?!
엘리아보다 더 놀란 베시가 바르르 떨며 아론을 애처롭게 바라봤다. 그런 눈으로 봐봐야 달라질 건 없다는 걸 잘 아는 엘리아는 금세 아무렇지 않게 아론의 명령을 따랐다.
자신이야 시도 때도 없이 아론 앞에서 벗었기에 이런 행위 따윈 별거 아니었지만, 아마 베시는 순결이라도 잃은 듯 수치심을 느낄 것이다. 역시나 머뭇거리며 움직이지 않는 베시를 향해 아론이 싸늘하게 일갈했다.
“경고하지.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죽고 싶지 않으면.”
섬뜩한 남자의 말에 베시가 정신없이 옷을 벗기 시작했다. 물론 엘리아는 지퍼만 내리면 끝이었기에 이미 그녀는 헐벗은 상태였다.
벌벌 떨며 몸을 웅크리는 베시의 행동에 마치 더러운 것을 본 양 인상을 찌푸린 아론이 아예 몸을 돌려 엘리아만 쳐다보며 말했다.
“엘리아.”
“네. 공자님.”
“네 옷, 저거한테 줘.”
“…네?”
“그리고 저거 옷, 네가 갖고.”
“고, 공자님?”
“두 번.”
아론의 일그러지는 표정에 겁에 질린 베시가 잽싸게 엘리아의 허름한 하녀복을 주워 들곤, 제 옷은 던지듯 엘리아의 손에 건넸다. 베시의 옷은 얼마 전에 새로 맞춘 옷이라 그런지 아주 새것이었다.
그러나 딱히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저보다 작은 베시의 하녀복은 자신에겐 작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정말 왜 저러는 거야……?
이유는 모르겠지만, 싫다고 말할 수도 없어서 엘리아는 얌전히 베시의 옷을 받아 들었다. 거기다 ‘저거’라니……. 참 아론다운 말투였다.
“엘리아는 따라와. 따로 시킬 일이 있다.”
“네, 공자님.”
“그리고 너.”
“네? 네.”
“저건 네가 빨아오도록. 해가 저물기 전까지 내 방에 달아놔. 아주 깨끗하게 빨아서.”
“네?! 아, 네. 공자님.”
아론의 성격을 잘 아는 베시는 얼른 고개를 푹 숙였다. 그는 제 마음에 안 들면 손에 피를 묻히는 것도 서슴지 않을 정도로 무서운 주인이었기에 베시는 그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엘리아, 따라와.”
“네. 공자님.”
정원 안쪽으로 향하는 두 남녀의 뒷모습에 베시는 그제야 이를 악물었다. 이런 수치와 모욕은 난생처음이었다. 자신을 이 꼴로 만들고 둘이 무슨 짓을 하러 가는지 눈치챈 베시는 부어오른 뺨을 문지르며 그들이 향한 곳을 노려봤다. 베시의 분노는 오롯이 엘리아에게만 향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