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필로그 -->
결혼식이 좀 늦은 시각이었고, 아침 일찍 부산히 움직여 그들은 모든 준비를 끝내놓았다.
시간이 조금 남아서 카페에서 대기하고 있던 윤수는 제 결혼식도 아닌데 혼자 긴장해서 연신 손톱을 긁고 있었다. 긴장하면 나오는 버릇 중 하나였다.
색이 진한 잿빛 정장을 입은 윤수는 수정의 손길을 거쳐 귀여운 얼굴이 제법 단아하고 정돈된 성숙미가 보였다.
그래봤자 은기 눈에는 작고 아담한 귀여운 비둘기였지만.
(이 날 특별히 한수정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출동하여 두 사람과 그 날의 신랑, 신부를 손봐주었다. 신부가 몹시 만족했다는 후문이었다. )
손가락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 윤수를 보며 맞은편의 은기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누가 보면 피윤수 씨가 결혼하는 줄 알겠네.”
윤수와 마찬가지로 풀메이크업을 한 은기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빨더니 불만스레 지적했다. 빼입은 명품 정장 안에 편하게 푼 하얀 셔츠가 그 날따라 더욱 빛나는 얼굴을 받치고 있었다. 테이블이 낮아 은기의 긴 다리가 모두 수용되지 못하고 반쯤 접어서 구기고 있는 상태였지만 그는 썩 괜찮아 보였다.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는 듯 했다.
“그렇게 긴장돼요? 대체 왜?”
“몰라. 그냥, 사람도 많고….”
오랜만에 듣는 윤수의 불분명한 발음이었다. 은기가 카페 안을 휙 둘러보고 바깥도 고개를 빼서 이리저리 보더니 알만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기 형 인맥이야 뭐, 우리 부모님도 그렇고. 좀 보기에 무섭긴 한가?”
검은 차가 어찌나 줄줄이 들어오던지, 결혼식장이 아니라 장례식장인 줄 알았다. 근엄으로 무장한 나이 지긋한 법조계 사람들은 어깨들과 같이 다녔고, 대기업 임원들도 많이 왔다.
사람이 많은 것은 그렇다 쳐도, 온 사람들의 포스가 하나같이 압도적이었다.
“이 정도일 줄은….”
“잠깐 나가죠.”
잔뜩 긴장한 윤수를 풀어준답시고 은기가 대뜸 그를 끌고 차 안으로 갔다. 구석진 곳으로 주차를 해 놓아서 인적이 많지는 않았지만 카메라가 여기저기 설치되어 있었다. 윤수는 안이 거의 보이지 않는 차량임에도 더 긴장했다. 은기의 웃는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뭐, 뭐하려고.”
“긴장 풀어주려고.”
“근데 왜….”
손이 이상한 곳으로 가냐는 물음은 당황스런 신음으로 대체되었다. 바지 아래로 자연스럽게 은기의 길고 큰 손이 내려가고, 입술이 닿을락말락 가까이 머물렀다. 은기의 선명한 갈색 눈이 윤수의 까만 눈과 마주쳤다.
“그만. 메이크업 지워져.”
윤수가 다가오는 입술을 손으로 간신히 막아냈다. 손바닥에 닿은 입술이 한껏 불만을 담아 우물거렸다. 윤수는 그럼에도 한숨 쉬며 그를 끝까지 막았다.
“오늘 네 형 결혼식이다.”
“새벽에도 해놓곤.”
“조금 있으면 식 시작하잖아.”
지금의 문제는 오롯이 은기만의 것이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윤수가 예전보다 많이 대담해지고 풀어져서이기도 했다. 결혼식 당일인 새벽에도 한 번 했다. 은기가 오늘따라 더 유혹적으로 나오고, 그의 인내심에 불을 지르긴 했지만 예전의 그였다면 달랐을 것이다. 특히 공식적인 행사가 있는 날이라고 하면 절대 몸에 무리가 가는 섹스는 하지 않을 것이다.
윤수는 얌전히 제자리로 돌아가는 은기를 보며 안도했다.
“지워지면 어떡해. 수정 씨가 공들여서 해준 건데.”’
“날도 춥고 원래 땀 별로 안 흘리잖아.”
“그래도….”
다시 은기의 몸이 바싹 다가온다.
“정 신경쓰이면 최대한 안 닿게 할게요.’
“그래도 안 돼.”
차라리 아예 메이크업을 안했으면 상관 없었겠지만, 격한 키스나 스킨십을 해서 어정쩡하게 지워지면 더 이상하게 보일 터였다. 단호한 윤수의 대답에 입맛을 다시던 은기가 문득 피식 웃었다. 정말은 할 생각이 없었다.
“긴장 다 풀렸어요?”
“응. 완전, 전부 풀렸어. 하나도 안 떨려. 고마워.”
혹여나 은기가 더 손장난을 할까봐 빠른 대답이 튀어나왔다. 그는 방어 태세를 갖추는 윤수를 보며 짧게 웃었다.
“알았어요. 가요. 더 안할게.”
차를 빠져나가는 긴 다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윤수가 그를 따라 식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화려한 샹들리에와 고급스런 하얀 천을 덮은 동그란 원형의 테이블이 런웨이처럼 펼쳐진 무대 옆으로 곳곳에 포진되었다.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북적대는 이 곳에서 이 날의 주인공이 보였다.
일해교를 일망타진하고, 큰 공과 실적을 쌓은 앞날 유망한 하진기 검사의 결혼식이었다. 위압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음에도 담담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의 모습을 윤수가 멀리서 물끄러미 보았다.
“괜찮은 거죠?”
“뭐가?”’
은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윤수가 얼핏 떠오르는 생각에 흠칫 놀라며 은기를 올려 보았다.
“설마, 아직도 못 잊었을가봐?”
키차이가 워낙 있어 윤수가 꽤 높은 구두를 신어도 눈높이는 여전했다. 은기가 빙긋 웃으며 시선을 내렸다.
“설마.”
멀리서 은기를 부르는 손짓과 목소리들이 크게 들려왔다. 진기의 친동생이기에 그도 이제 이 곳에서 할 일이 많았다. 윤수의 어깨를 은밀하게 짚으며 은기가 낮게 속삭였다.
“두고 가도 혼자 괜찮겠냐고 물은 거에요.”
얼굴이 화끈해진 윤수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아, 괜찮아. 다녀와. 난 이 쪽 테이블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빨리 올게요. 잠시만.”’
두 사람만의 밀회 같은 대화가 끝나고, 윤수는 성큼성큼 멀어져 금세 사람들 속에 파묻히는 은기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는 테이블에 앉아 흐뭇한 얼굴로 한 쪽 턱을 괴고 인파 속에서 우뚝 솟은 작고 잘생긴 얼굴을 보았다.
옆에 모르는 사람이 앉았지만 그녀 또한 은기를 보고 있었기에 윤수의 행동이 별로 이상하지 않았다. 사실 은기는 원래부터 눈길을 부르는 힘이 있었다. 저런 사람이 어쩌다 제 옆에 서 있게 되었을까.
사람들과 웃고 이야기하는 은기를 보며 윤수는 소용돌이치는 과거로 휩쓸려갔다.
[지금 강간당해요?]
188cm의 장신이 윤수의 위에서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윤수는 술기운에 들떠 붉어진 눈을 살짝 아래로 굴렸다. 빠른 속도로 벗겨졌던 옷이 바닥으로 떨어져 있었다. 깜박이는 시야로 동그란 빛이 들어왔고, 그 사이에 TV나 잡지로만 보던 놀라운 비주얼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뭐지?’
어디선가 봄직한 얼굴이 윤수의 위에서 황당하게 웃고 있다. 머릿속에서 점멸하는 기억이 드문드문 하은기를 뱉어냈다.
‘아, 생각났다.’
검찰청이 다시 눈 앞에 아른댔다. 회백색 건물 앞에 서 있는 남자가 보였다.
인연과 술, 하은기.
진기를 기다리다 그를 만났고, 진기의 동생과 어쩌다보니 술기운에 침실까지 왔다.
윤수가 아무 말 하지 않자 억지 웃음이 가신 자리에 은기의 한숨이 빼곡히 대신한다.
[너무 떠니까 내가 나쁜 놈 같잖아.]
인식 못했는데, 정말 몸이 떨리고 있었다. 은기를 잡은 팔에서 미약하게 진동이 올라오고, 손가락까지 떨리고 있었다.
‘아….’
피윤수는 원래 모종의 사건으로 섹스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 사람이었다. 노력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런데 왜 이 자리에 또 누워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인형마냥 비현실적인 남자가 입을 열었다.
[쌍방 합의한 건데, 사람 쓰레기로 만들지 말죠.]
쌍방 합의? 합의를 했나? 했던 것 같기도 하고.
말하면서도 다시 은기의 손가락이 부지런히 구멍을 넓힌다. 손가락도 피아노 치는 사람처럼 길고 단단했다. 며칠 전에 자위 차 썼던 딜도가 구멍을 드나드는 기분이었다. 윤수는 관계가 두려웠을 뿐이지, 성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으응….]
윤수가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은 몸을 비틀며 시트를 꽉 쥐었다. 녹진하게 몸을 감는 침대 시트가 땀으로 젖어 간다.
[엉덩이 더 들어봐요.]
시키는대로 윤수는 남자가 허리에 힘을 주고 엉덩이를 좀 더 들었다. 만족스러운 미소가 잘생긴 얼굴에 스쳐 지나간다. 젤을 바른 손가락이 움찔대며 손가락을 삼키는 구멍에 공을 들이고 젤이 녹아 엉덩이 사이로 흘러내린다. 찌걱대는 소리가 야했다.
‘지금 뭐하는 거지….’
윤수는 누워서 호텔 천장의 밝은 조명과 그의 얼굴을 번갈아보면서 숨을 삼켰다. 선이 굵은 얼굴선에 곱상한 이목구비가 조화된 우아한 얼굴이었다. ‘진기’ 와도 확실히 닮은 구석이 있다. 집중할 때 짓는 표정이라던가…. 진기를 생각하니 미약하게 아래에서 놀던 쾌감이 몇 계단 뛰어오른다.
윤수는 움찔거리다 기어이 입 밖으로 흥분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아흑!]
은기가 기어이 윤수의 약점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윤수는 온 몸을 사시나무 떨 듯 떨면서 닿을락말락 다가온 절정의 기운을 참아냈다. 몇 번 더 찌르더니 윤수가 거의 넘어갈 때쯤 되자 꽤 진지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구멍에서 빼내었다.
본능적으로 다시 몸이 움츠러들었지만 윤수는 이상하게 크게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묘했다. 왜 이럴까. 나 혹시 이상한 병에 걸린 건가.
멍한 얼굴로 윤수는 눈 앞에 펼쳐진 모델을 훑었다.
‘예쁘다….’
젖은 앞머리를 쓸어올리는 은기의 눈이 자세히 보였다. 촬영 때문에 염색한 것인지 진한 갈색이었다. 눈썹도 갈색, 긴 속눈썹이 우아하게 차양을 드리운다. 음영이 질 정도로 높은 코가 꼭 외국인 같았다. 윤수는 그걸 만지고 싶었다.
‘코도 엄청 높고.’
호텔로 들어와 방 문을 열자마자 키스할 때 저 높은 코 때문에 부딪쳐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났다. 타이밍 좋게 은기의 시선이 윤수의 입술에 꽂힌다. 윤수는 그 시선만으로도 몸이 뜨거워졌다. 문 바로 옆 벽에 밀어서 힘으로 몰아붙이던 키스가 정말 격렬했다. 그러다 능숙하게 리드하며 입 속을 자유자재로 노닐던 혀가 생생했다. 그 입이 예쁘게 열렸다.
[정말 싫다고 하면 그만둘게.]
윤수는 당황했다. 그랬다. 그가 느낀 감정은 분명 ‘당황’ 이었다.
그만 둔다니?
조금만 더 열면, 어쩌면, 그 동안 꽁꽁 봉인해 두었던 몸이 열릴 것 같았다. 그의 본능이 외쳤다. 이대로 한 번만 눈 딱 감고, 지나가 보라고. 이 알 수 없는 길을, 이 수풀을 헤쳐서 끝까지 지나가 보면 뭔가가 나올 것이라고.
열띤 흥분이 윤수의 얼굴 가득 차 있었고 뜨거운 숨을 뱉고 있었다. 윤수의 당황을 읽은 은기가 피식 웃었다. 이미 그는 답을 알고 있는 듯 했다.
[싫어요?]
조금 만 더. 더하면 갈 수 있었는데.
윤수가 젖은 눈으로 그를 올려보았다. 눈빛으로 애원했는데 은기는 직접 입으로 원하는 것을 말해주길 원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윤수는 이를 악물고 솔직하게 말했다.
부끄러웠지만,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 술이라는 갈퀴로 엉망이 된 머릿속이 그에게 끊임없이 본능의 길로 인도했다.
[아, 아니. 계속해. 처음이라 그래.]
그러자 바로 손가락이 진입해 들어온다. 그만둘까 물었던 사람답지 않게 거칠고 강한 힘이 실려 있었다. 미묘한 웃음이 은기의 입가에 계속 걸려 있다.
[처음? 당신 게이라면서. 배 맞춰보고 게이라고 도장 찍은 거 아니었어?]
[그, 그게 아니…. 으응!]
또 그 곳을 찔렀다. 꼭 남자와 섹스를 해봤어야 게이라고 판정하는 건 아니라 항변하려 했지만 이제 어떻게 되든 좋았다.
‘계속, 계속 해줘….’
드디어 미치기라도 한 건가. 그런데 몸이 굳을라치면 끊임없이 공략해오는 부드러운 손길과 입맞춤에 연체동물처럼 흐늘거렸다. 닥쳐 오는 무언의 예감을 막을 수가 없었다.
윤수가 허리를 뒤틀고 찾아오는 쾌감을 본능적으로 피하며 발버둥 쳤다. 하지만 은기는 어림없다는 듯 다른 손으로 윤수의 허벅지를 누르고 더욱 세게 찔러 넣었다. 날카롭게 단련된 창끝처럼 견고한 손가락이 구멍을 마구 휘젓는다.
[아, 아흐흑! 아…!]
약점이 수차례 닿자 결국 참지 못하고 윤수는 파정했다. 머리에 번쩍번쩍 불이 일었다. 다리가, 발가락 끝이 파르르 떨렸다. 눈에 생리적인 물이 괴었다. 죽을 것 같았다.
그건 그도 마찬가지인지 욕망이 가득한 눈으로 복근 아래에서 흉흉하게 발기해 있는 것을 윤수의 질퍽한 엉덩이 사이로 문질렀다. 윤수가 숨을 죽였다. 생각보다 너무 컸다.
‘헉….’
얼굴과는 다르게 중심은 흉폭하다. 은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못 참겠으니까 바로 하죠. 갑니다.]
급한 예고 뒤에 콘돔을 씌운 성기가 밀고 들어왔다. 끄트머리만 들어왔을 뿐인데 벌써부터 숨이 찼다.
윤수는 시트를 더 꽉 쥐면서 온 몸을 비틀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잠시나마 잊었던 공포감이 그를 휘감았다.
‘말도 안돼….’
너무 컸다. 꾸역꾸역 들어오는 것에 이러다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찾아들었다.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이내 따뜻하게 그의 등을 쓰다듬는 은기의 손길에 사라졌다.
[아파…! 천천히, 그만, 아아…!]
시트가 윤수의 손에서 처참히 구겨졌다. 허리를 가차없이 밀면서 은기는 윤수의 손 위를 감쌌다. 성기만큼 손도 컸다.
은기가 머리를 숙여 윤수의 귓가에 달래듯 속삭였다.
[조절할 테니까 힘 빼요. 안 아프게 해줄게.]
귓바퀴에서 사탕처럼 그의 저음이 녹아든다. 구멍을 밀치고 들어오던 속도도 조금 느려졌다. 윤수는 미친 듯이 고개를 흔들며 엉덩이에 가했던 힘을 줄였다. 성기를 자를 듯이 조이던 것이 이완되자 잘했다며 뺨에 상처럼 키스해준 은기가 다시 위로 쳐올렸다.
흥분을 가라앉힌 은기가 침착하게 물었다.
[여기?]
고개가 좌우로 짧게 흔들린다. 힘이 없어 보이는 고갯짓이지만 의사는 명확했다. 귀여워. 속으로 생각한 은기가 피식 웃더니 남자의 다리를 더 벌리고 다른 곳을 찔렀다.
이 사람 뭐야, 왜 이렇게 귀엽지, 스스로의 생각을 수상하게 여기면서.
[그럼 여기?]
반응이 솔직했다. 윤수의 얼굴이 삽시간에 붉어지며 어깨까지 떨었다. 허리도 위로 튀었다.
[으, 응.]
은기의 잘생긴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그리 예감이 나쁘지 않다. 아니, 앞으로 잊지 못할 것 같았다.
‘중독되겠는걸.’
엉덩이가 들썩이는 것이 마음에 들어서 은기는 윤수의 허리를 들어 올렸다. 성기를 물고 있는 구멍이 놀란 듯 뻐끔댄다. 무게가 실리자 침대 위로 닿는 무릎이 더욱 깊이 시트에 묻혔다.
은기는 윤수의 엉덩이를 잡고 아래로 찍어눌렀다. 빛을 받지 않아 창백한 엉덩이에 손모양의 붉은 자욱을 남긴다.
[하윽! 윽, 으...!]
윤수가 신음하며 믿을 수 없는 몸의 반응을 가까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열이 가득 오른 뺨을 시트에 대고 비비면서 뒤로는 찍어 누르는 손길에 열렬히 반응했다. 과격한 것 같으면서도 온화한 손길에 왠지 눈물이 났다. 생리적인 눈물인지, 속에서 솟는 묘한 열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구멍을 열고 쑤셔오는 성기에 알싸한 감정이 번졌다.
'뭔가 정상이 아니야.'
여태까지 아무리 노력하고, 시도해도 죽어도 되지 않던 것이 이 남자 앞에서는 쉬웠다. 말도 안 돼. 이상했다. 윤수는 슬금슬금 밀려오는 쾌감에 머리를 흔들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어떻게?”
더 원하게 될까. 끝나고 나면 계속 생각이 날까. 알 수 없는 자신의 마음에 몸을 맡겨 버렸다.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무책임한 생각만 가득 들었다.
모두 술기운 때문이었다. 윤수는 처음엔 분명 그리 생각했다.
수많은 인파 사이에서도 존재감을 전혀 잃지 않고 반짝대던 남자가 ‘제자리’로 되돌아왔다. 원래 있어야 할 곳이었다.
“다녀왔어.”
은기가 목이 마른지 손을 뻗어 와인잔에 담긴 냉수를 들이켰다.
“식 끝나고 사진 찍을 때 떨어지지 말고 내 옆에 서요. 사람 많아서 왠지 휩쓸릴 것 같아.”
“내가 애야?”
은기는 피식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멀리선 작아서 보이지도 않는다고요.”
“정말…!”
친숙한 대화가 오가고, 정신없이 북적대는 인파 속에서 식이 시작되었다. 어두워지고 무대 위의 동영상으로 두 주인공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쇼가 하나 끝나자 불이 켜지고, 두 주인공이 무대에 오른다.
그리고 한 테이블 아래로는 은밀한 대화가 오갔다. 농염한 손길이 중심을 흐트러뜨리기도 했다. 윤수가 얼굴을 휙 내리며 은기의 허벅지를 작게 꼬집었다.
“만지지마.”
“식 끝나고 우리도 오랜만에 호텔 잡을까?”
“쉿.”
미래를 약속하는 연인은 무대 위에서도, 아래에서도, 변함없이 반짝였다.
[우리 형 기다려요?]
검은 가죽 자켓에 평범한 청바지인데 완전히 보통 사람과 달라 보인다. 다리가 너무 길고 키도 커서 시선을 어디에 둬야할지 그의 시선이 위아래로 왕복했다. 얼굴은 신기할 정도로 작은데 서양인처럼 이목구비도 큼직큼직하고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칼과 눈썹이 하얀 얼굴 바탕을 그림처럼 장식하고 있었다.
많이 익숙한 얼굴이다.
어쩌면, 곧 익숙해질 얼굴이었다.
그가 주머니에 꽂았던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청하는 듯 했다.
[나 하진기 동생 하은기.]
남자가 자신감 있는 얼굴로 웃었다.
[이것도 인연인데 술이나 한 잔 할까요?]
물끄러미 그를 올려보던 윤수가 얼굴을 붉혔다. 묘하게 가슴이 뛰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떤 끌림이 이끌었다.
윤수는 들키지 않으려 호흡을 골랐다. 그리고 천천히 대답했다.
[그러죠.]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