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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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예나 씨 말야.”

왠지 진 기분에 은기가 툴툴댔다. 

“선배가 왜요?”

“전화했을 때 뭔가 이상했어. 그러고 보면 병수 씨도 이상했고.”

“뭐가 이상했는데?”

윤수가 하나하나 꼽아가며 그들의 반응을 이야기했다. 먼저 송예나부터. 그의 작은 머리가 은기의 단단한 팔 위를 지긋이 눌렀다. 

“예나 씨는 전화하자마자 내 안부부터 걱정하더라고. 네가 다칠지도 모를 상황이었는데, 내 마음부터 걱정하는? 아무튼 이상한 기분이었어.”

목소리를 노래처럼 들으며 은기는 자신의 어깨에 걸린 머리를 물끄러미 보았다. 윤수의 무게가 가볍되 가볍지 않았다. 그가 삶의 무게를 온전히 나눌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기다림이 있었는지. 

옷 위로 얕게 펼쳐진 머리칼을 보니 염색물이 뿌리에서 많이 빠져 다시 해야 할 시점이 온 듯 했다.

‘다음에 또 같이 가자고 해야겠다.’

은기는 알게 모르게 야릇한 미소만 지었다. 

“그럼 병수 형은?”

“병수 씨는 뭐라고 해야 하나…. 너무 흔쾌히 병원까지 와도 된다고 하셔서. 네가 미리 날 언급했다고 하니 이상한 건 아닌데, 상식적으로 좀.”

“좀, 뭐요?”

윤수는 기댄 어깨에서 머리를 떼고 진지하게 말했다. 떨어지는 머리를 아쉽게 보던 시선이 윤수에게 고정되었다. 

“솔직히 그렇잖아. 어느 매니저가 업무 계약상 관계에 불과한 사람을 선뜻 안으로 들여? 그것도 기자들이 앞에서 그 야단을 치고 있는데.”

게다가 당시 병수 반응은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은기에게 걱정스러운 눈길이 쏟아졌고, 그는 고요한 까만 눈가에 키스했다. 

“병수 형은 설명해 줄 수 있어요.”

은기는 끝나지 않는 CF의 향연을 보며 이마를 긁었다. 잘나가는 예능이다 보니 역시 줄댄 곳이 많다. 

“특별한 친분이 생긴 사이라고 미리 이야기 해놨거든요. 일적으로 만나긴 했지만 너무 잘 맞아서 요즘은 거의 친한 형동생으로 지낸다고. 생각도 비슷해서 번역 일도 수월하다고 밑밥 많이 깔아뒀어.”

그런 거면 프리 패스가 아주 이상한 건 아니다. 윤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아직 우리 관계 아는 건 아니겠지?”

“그럴 걸요. 눈치 그리 빠른 사람은 아니니까. 근데….”

은기가 힐끗 윤수의 눈치를 보고 모른 척 천장을 보았다. 

“예나 선배는 모르겠네.”

사실 예나는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은기는 진실 대신 의뭉스러운 회피를 택했다. 괜한 말로 윤수의 마음을 심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은기의 예상대로, 생각나는 모든 가정을 떠올려보던 윤수는 믿었던 그마저 확신을 하지 못하니 괜히 신경이 쓰였다. 예전만큼 죽을 것처럼 미래가 불안해지거나 아프지는 않지만 현실적인 대처가 필요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너도 모르겠어?”

은기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알면서 모르는 척 하기 참 힘들다. 더욱이 이렇게 끙끙대면서 다 뻔히 보이는 고민을 하고 있는 귀여운 사람에게 말이다. 

그가 팔을 뻗어 윤수의 등 뒤로 걸쳤다. 가까이 엉덩이를 붙이고 온 몸을 바짝 붙인 채 속삭였다. 

“한두 사람 쯤 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 없잖아요.”

“문제는 그 한두 사람이 비밀을 지켜줄 사람이냐는 거지만.”

“쓸데없이 너무 현실적으로 돌아가지 마요. 그냥 지금 있는 시간을 즐기고 복잡한 건 잊어.”

바짝 붙은 뜨거운 체온과 솔솔 흘러들어오는 나직한 저음에 윤수의 눈이 감겨 왔다. 

“최면 거는 거야?”

“걸면 걸려줄 건가?”

“생각해보고.”

은기가 웃음 지으며 윤수의 코를 장난치듯 집게 손으로 잡았다. 예전 같으면 한두개쯤 걸려서 쩔쩔매거나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이 크고 까만 눈을 굴리기만 할 텐데, 이젠 제법 잘 빠져나간다. 

“언제 이렇게 미꾸라지가 됐어요?”

“너랑 있어서 그렇지, 뭐.”

“할 말 없네.”

농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보니 예능 시작 시간이 되었다. 스튜디오에서 시작하는 인사 멘트가 끝나고, 자리에 앉은 연예인들이 잡담으로 오프닝을 열었다. 

-이 멤버 중에 가장 다사다난했던 사람 있죠? TV 속의 은기가 슬금슬금 손을 들었다. 다들 웃었고, 그는 자진납세했다.

-접니다. 

부드러운 인상의 배우 게스트가 가볍게 은기를 타박 주었다. 친해서 가능한 멘트였다. 

-뭘 그리 사고를 치고 다녀요? 못 나올 일인지 알고 다들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은기는 뒤로 빠진 의자를 바짝 당겨 앉으며 그 날의 일을 해명했다. 

-남이 친 사고에 휘말린거죠. 저랑 같이 일하던 분도 당했고요. 

남승우를 겨냥한 말이었다. 여전히 웃음을 띠고 말하고는 있지만 은기의 주변에 있던 게스트들이 긴장했다. 그러자 오프닝을 열었던 진행자가 서둘러 개입했다. 

-우리 은기 씨가 워낙 와일드하시니까 ‘불의’도 못 참고, 그, 저번 크리스마스 때도 몰래카메라 했다가 예능이 아니라 다큐된 거 기억합니까?

다들 와르륵 웃으며 동의했다. 웃는 소리가 꽤 커서인지 윤수와 실컷 놀고 멀찍이서 잠들어있던 일리야와 투투가 귀를 쫑긋 거렸다. 윤수가 그를 보고는 얼른 리모컨을 잡았다. 

“소리 낮추자.”

진행자 및 MC는 능숙하게 어색한 분위기를 와해시켰다. ‘불의’라는 말로 은기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예전에 보여줬던 은기의 정의로운 에피소드도 언급함으로써 트러블로부터 선을 긋는 능숙함을 보였다. 

윤수 역시 진행자의 능숙함에 안도하며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예능을 지켜보았다. 문득 생각나는 장면이 있어 물어보려던 윤수는 슬금슬금 셔츠 안을 파고드는 손길에 흠칫 몸을 떨었다. 

모처럼 기다렸던 예능 첫 방송인데, 집중하고 싶었다. 윤수는 익숙하게 은기의 손을 잡아 내리면서 물었다. 

“근데 그 위험한 촬영 강행하던 카메라 감독님은 어떻게 되는 거야? 인터넷에 난리났던데.”

그 사이 윤수의 방어력까지 올라갔다. 날이 갈수록 공략(?)이 어려워지고 있지만 그럴수록 은기의 손기술도 나날이 발전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이번엔 아래를 노렸다. 

“글쎄요, 업계 사람들이 알아서 판단하겠지만 당분간 일 맡기 힘들지 않을까? 일부러 신인 위주로만 촬영하던 사람이라 이제 줄잡기 힘들 거에요.”

윤수가 은기의 팔목을 꽉 붙들었다. 하지만 반대편 손이 기필코 윤수의 하얀 줄 달린 트레이닝복 바지로 들어갔다. 많이 예민해진 몸인지라 은기의 손이 속옷 위를 머무르자 바로 반응이 왔다. 

윤수가 이를 질끈 깨물고는 겨우 입을 열었다. 

“다행이다. 피해자 또 나오면 안 되잖아. 아, 잠깐만! TV 봐야지.”

“나중에 재방송 봐요. 아니면 인터넷으로 결제해줄게.”

“됐어. 지금 하는 거 보면 되잖아.”

“그 감독님 이야기 중에 뭐 더 들은 거 없어요?”

“무슨 이야기? 딱히 없는데. 왜? 무슨 이야기 더 있어?”

윤수가 죽어 있는 휴대폰 화면을 살려 검색해 보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으읏…!”

은기가 약한 목 뒤와 속옷 속에서 얌전히 잠들어 있는 성감대를 집요하게 노렸기 때문이다. 윤수의 시야에서 선명했던 화면이 점점 멀어졌다가 가까워지기를 반복했다. 

결국 윤수는 참지 못하고 다시 아래를 주무르는 은기의 팔을 잡았다. 휴대폰이 기어이 바닥으로 투두둑 떨어졌다. 

“이거만 다 찾고….”

은기는 윤수를 소파 위로 눕히고 고개를 숙여 깊이 키스했다. 떨어진 휴대폰을 잡으려던 손을 은기가 홱 잡아서 위로 올려버렸다. 맞잡은 손으로 빈틈없이 은기의 길고 단단한 손가락이 꽉꽉 들어찼다. 그가 윤수의 귀에 가까이 얼굴을 대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난 지금 하고 싶은데.”

바르르 떨리는 턱끝을 입술로 물면서 그가 농밀하게 윤수의 마른 몸을 만졌다. 

은기가 윤수의 시선을 인터넷에서 떨어뜨리려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해당 감독에 대한 다른 이야기까지는 윤수가 모르기를 바랐다. 처음부터 그 감독이 고층 촬영같은 위험한 작업에 목숨걸지는 않았다. 

해당 감독의 옛 인터뷰를 찾아 보면 실마리가 나왔는데, 높은 곳을 촬영하면 뜰 거라는 ‘조언’을 받은 뒤부터 작업이 술술 잘 풀렸다고 했다. 네티즌들의 추적으로는 조언을 받았던 곳이 사이비 종교라는 가설이 꽤 많았다. 은기는 믿는 정보통도 있고, 네티즌들의 추측이 맞을 것이라 예상했다. 

‘또 일해교와 연관이 있다는 거 알아봤자 참고인 출두하겠다는 말만 더 할테니까.’

은기는 최대한 윤수가 모르기를 바랐다. 은기가 피해자가 될 뻔한 것을 알게 되면 진기에게 바로 연락해서 증언이든 뭐든 다 하겠다며 나설지도 모른다. 

안 그럴 것 같으면서 윤수는 가끔 예측못할 궤도를 그리며 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각도를 모르고 튀는 공을 제어하려면 애초에 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아픈 일은 다시 생기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게 은기의 다짐이었다. 

TV에서는 예능이, 소파 위에서는 두 사람의 진한 스킨십이, 멀찍이 떨어진 고양이 두 마리에게서는 조용한 평화가 각자 펼쳐지고 있었다. 

물론, 소파 쪽은 다음 진도로 넘어가고 있었지만. 윤수는 정신없는 사이 트레이닝복 바지마저 벗겨지고 울상을 지었다. 방어력이 높아지면 뭐하나. 은기의 손기술도 시간을 등에 업고 같이 좋아지는데. 

“너 진짜, 이럴 거야?”

씨익 웃은 은기가 집에서만 입는 회색 셔츠를 한 번에 잡아 휙 벗었다. 화보 촬영 때문에 더 공들인 복부의 반듯한 근육이 균형잡혀 박혀 있었다. 욕구로 음습해진 갈색 눈이 휘었다. 

“이럴 건데.”

예능과 두 사람의 진득한 화학 작용(?)이 끝난 뒤 한 팬카페의 익명 게시판은 은기 팬들의 반응들로 붐볐다. 

└같이 폭력사건 휘말렸던 사람아님? 

└ㅇㅇ맞 

└저 번역사아니었음 더큰일날뻔했음 기사봐바

└송예나 대신 맞았다고함 

└돌아다니는짤 봄? 대장님 헐크였음 

└헐킄ㅋㅋㅋ 하대장님 그렇게 화난거 첨보긴함

└대장님 눈에서 ㄹㅇ 빔쐈음 

└근데 저 순딩강아지상 대장이랑 무슨 사이임? 강냉이 털려도 쓰리강냉이 내가라고 부탁할 상같이 생겨서 >>>>>>>>> 귀엽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ㅁㅊ 

└쓰리강냉이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 뺨 내주면 두뺨 줌?

└예수 돋네 

└ ㅋㅋㅋㅋㅋㅋ하대장님네 고양이들 ㄹㅇ 까탈스러운데 저반응 ㅁ? 

└ ㅈㄴ 냄새나지않냐 

└ 타는냄새요?

└ ㅅㅂ 언제적 드립 고인돌이세요?

└ㄲ ㅓ ㅈ 

└ ㅋㅋㅋㅋㅋㅋㅋ

└요즘 찍힌 사진보면 둘이 잘 붙어다니더라 친한가봄 

└누가 뽀쨕뽀쨕한 떡밥떠봐 

└그림된다 ㅇㅇ쪄봐

└팬덤 이름 체인지해야하는거아니냐 

└하늘아래 초대박날 화보장인 -〉 하늘아래 초대박빙구같은 웃음장인

└너모하쟈낰ㅋㅋㅋㅋㅋ

└이댓글을 대장님이 싫어합니다

└나래들 그만해 대장님본다 

└돌판 시애미질 보다가 넘어왔는데 ㅈㄴ이너피스닼ㅋ 

└대장님도 원래 돌판있었음 ㅇㅇ

└내새끼 애미질어때서 내가니애미다 

└도랐?

└번역사볼때 하대장님 표정봤음? 홍삼 씨엪본줄

└미친새끼얔ㅋㅋㅋㅋㅋㅋㅋㅋ

└??홍삼 씨엪?

└대장님 ㅈ관장 씨엪찍은거 있어 거기표정 나라구한표정임

└나라구한표정뭔뎈ㅋㅋㅋㅋㅋ

└솔까 리어 요새 정털렸다가 대장님땜에 보는중인데 이번편 꿀잼빅잼

└리어왕?

└ㅋㅋㅋㅋㅋㅋㅋㅋ

└위에 고인돌 너냐ㅋㅋㅋㅋㅋㅋ 

└리빙 어ㄹ론 예능 말하는거잖 ㅋㅋㅋㅋㅋㅋ 리어왕 ㅁㅊ 

└리어왕 도랐맨ㅋㅋㅋㅋㅋㅋㅋㅋ

└꿀잼빅잼 인정 ㅇㅇ

└포인트가 3개 보임 하나는 윗물이 언급한 대장님네 고양이 반응, 두 번짼 대장님 표정 (홍삼씨엪ㅋㅋㅋㅋ), 내픽으론 세 번째가 가장 유력함 번역사님 돌아다닐 때 동선봤음? 거침없어 다 알고있는 눈치였음 분명 몇 번 와본거임 

└처음이라고 하지 않았나 

└ㅇㄱㄹㅇ 이상한거지 

└여기 코난 추가요 ㅋㅋㅋ

└소오름 

└성지순례 ㅇㅇ

└ㅈㄴ 김석이랑 번역사님 투샷 봤냐 하대장님 눈빛 새색시 보는 꼬마신랑인줄 

└드립뭔데ㅋㅋㅋㅋㅋㅋㅋㅋ

└번역사님 다소곳 

└ㅇㄱㄹㅇ 대장님 눈 쏘스윗 

└예능보면서 소설쓰는 나래들 너무많다 

└고인물들 팬픽그만쓰자 ㄴㄴ

└고인물 아닌데 유입인데? 

└정지화면으로 봤는데 새색시 보는 꼬마신랑 마즘 ㅇㅇㅋㅋㅋㅋㅋㅋㅋㅋ

└새색시 보는 꼬마신랑 마즘 ㅇㅇㅋㅋㅋㅋㅋㅋㅋㅋ22222222

└3333333333

└44444444

툭. 

바닥에 나동그라진 윤수의 휴대폰 위로 벗겨진 트레이닝복 바지가 덮었다. 까만 바지에 반 이상 가려 메시지가 하나 반짝였다. 

-윤수야 부탁한다 윤주 연락처 좀 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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