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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마음을 담아 칭찬을 건넸다. 

“멋지네, 형.”

“아무튼 신경 끄고 촬영 조심히 해. 몸이 자산이잖아, 안 그래?”

어쩐지 악명 높은 한 감독의 제안을 성큼 받는다 했다. 어떻게 한건지 몰라도 집요하게 들들 볶아 일정 변경을 이뤄낸 그의 집념이 ‘실장’이라는 그의 직급이 무색하지 않게 했다. 

병수가 그의 어깨를 툭 치며 한 쪽 눈을 찡긋했다. 

“내일 방송 되지?”

Living Alone에서 윤수와 함께 찍은 방송 분량이 내일 공개된다. 은기가 빙긋 웃으며 로드 매니저가 사온 커피를 받았다. 

“어. 기대되네. 뭐라고 할지.”

일회용 커피 컵에 반 이상 가려지는 얼굴에 대고 병수가 물었다. 

“뭐가.”

“그런 게 있어.”

의미심장한 말 뒤에 감춰진 하얀 건치가 빛났다. 그는 어렵지 않게 윤수를 생각의 바닥에서 건져냈다. 얼마 전에 피디에게서 연락이 온 것도 한 몫 했다. 

[은기 씨, 번역사 씨랑 친하지?]

[예? 아, 네.]

[그림 좋게 나왔어. 뜻밖의 관전 포인트가 있더라고? 기대해.]

예능은 관계의 미학이고, 친한 만큼 뽑혀 나오는 분량이 달라진다. 시청자들은 조용히 파닥거리는 활어를 발견할 것이다. 크게 드러나지는 않더라도 윤수의 대화나 작은 행동, 몸짓에서 어떤 실마리가 보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은기와의 친밀한 관계나 그의 집이 익숙한 자의 친숙한 공기 및 밀도 그런 것들 말이다. 

‘어디서나 눈치 빠른 시청자들은 있지.’

지나치게 자극적인 예능은 추구하지 않는 피디였다. 그림이 좋다고 했으면 나쁜 의미는 아니다. 그러니 작은 징조나 징후가 가져올 파장이 어떤 것이 될지 그는 몹시 기대가 되었다. 

메이크업과 협찬받은 의상까지 갖춘 은기가 시멘트가 이리저리 벗겨진 옥상에 섰다. 회색 콘크리트 사이로 헐겁게 구멍이 나 있어 거친 질감이 가득했다. 병수가 불안한 듯 잡동사니가 군데군데 놓인 옥상을 휘휘 둘러보았다. 

“바람 많이 부네.”

오늘 촬영은 하얀 셔츠에 넥타이, 옅은 파스텔 톤의 면바지, 투명 메이크업으로 순수한 소년 콘셉트로 잡았다. 깨끗한 이미지가 더해져 어린 왕자 같았다. 그 와중에 카메라 감독의 불평불만은 끊이지 않았다. 

“리스크 없이 좋은 사진이 어떻게 나와. 외국에선 초고층 첨탑에 올라가서 찍는 모델들도 있다고. 내 옛 인연 봐서 해주는 거지, 다음 번엔 어림도 없어요. 다른 애들은 불만 없는데 좀 뜬다고 까탈스럽게 구는 거야? 다들 못해서 안달들인데 원.”

“아이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다음 번에는 이런 일 절대 없도록 하겠습니다. 은기가 이번에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서 큰 사고 날까봐 그런다니까요.”

“정신 바짝 차리고 촬영 집중하면 그런 사고가 날 리가 없는데.”

은기와 함께 온 매니저들이나 대기하고 있던 스태프들의 얼굴이 굳었지만 카메라 감독은 개의치 않았다. 실제 경미한 사고가 나도 그의 영향력에 쥐도 새도 모르게 묻혔다. 신인을 띄우는 카메라 감독으로 유명했고, 언제부턴가 입김이 센 중견급 모델이나 배우들 촬영은 잘 맡지 않았던 터라 뒤로만 소문이 돌았다. 신인들은 어차피 큰 소리를 내지 못했다. 

못마땅해 하는 카메라 감독을 상대로 병수가 굽실대면서 분위기를 좋게 이어나갔다. 그러자 그도 더 이상 별 말은 하지 않고 촬영에 임했다. 

“아무튼, 됐고, 슛 들어갑시다.”

“예에-.” 

로드 매니저가 병수에게 속삭댔다. 

“저 감독님, 이상한 업체 끼워서 소문 죽인다던데, 진짜인가 몰라.”

“완전히 근거 없는 소문은 아닌 것 같던데, 그래도 은기 거 잘 뽑아주면 큰절이라도 해야지.”

마지막으로 휴대폰을 확인하자 여지없이 윤수의 메시지가 떠 있었다. 

-조심히 촬영해 

메시지가 뜬 창에 대고 은기가 입술을 붙였다. 행운의 부적 같았다. 쌀쌀하게 부는 바람이 그만 비껴가는 기분이 들고, 금세 마음이 따뜻해졌다. 

***

윤수는 휴대폰에 계속 눈길을 고정하고 있었다. 은기 관련 기사도 찾아보고, 괜히 그가 나오는 예능 기사도 뒤적거렸다. 은기와 아침에 헤어졌는데 벌써 며칠은 못 본 것 같았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일에 몰두하다가도, 잠깐 숨을 돌리면 자연스럽게 그의 얼굴이 머릿속을 온통 가득 메웠다. 자신이 한심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병이다, 진짜….’

지나가던 하 수석이 고개를 빼고 윤수를 가만히 보면서 펜을 끼운 손가락을 까딱댔다. 

“괜찮더니 또 시작이냐?”

움찔. 

윤수의 작은 머릿통이 떨리더니 슬그머니 모니터로 돌아갔다. 

“뭘.”

“얼마 전 중요한 미팅 건 기억나지. 거기서 네가 영업직으로 전환한 줄 알았잖냐.”

“또 무슨 소릴 하려고.”“그 까탈스런 클라이언트께서 넘어갔잖아. 난 네가 애교부릴 수 있다는 거 처음 알았다.”

어이없다는 듯 윤수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마우스를 잡았다. 

“애교? 그런 적 없는데?”

“모르는 척 하기는.”

당시 시안은 A안과 B안이 있었다. 번역 사무소 측에서는 해당 번역사의 번역 스타일과 맡은 금액을 고려해서 B안을 밀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해당 고객은 A안을 고집했다. 더 나은 결과를 위해 설득하던 것이 장기전으로 가고 있을 때, 윤수가 나섰다. 그는 전에 없던 상큼한 미소를 연신 날리며 차분하게 고객을 설득했다. 

“그 사람 얼굴 봤어? 너한테 완전 빠진 얼굴이던데? 게이인가.”

한 수석이 떨떠름하게 그를 평했다. 확실히, 나가기 전까지 상기된 얼굴로 윤수만을 빤히 보기는 했다. 고집부리던 완고한 태도는 어디가고, 발그스름하게 익은 뺨을 보이기도 했다. 

윤수는 그럴 리 없다며 귀찮은 파리 내쫓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잘 모르면서 함부로 말하지마. 농담이라도 실례다, 그거.”

“시선이 너무 끈적거렸단 말이다. 나만 느낀게 아니라니까? 수현이가 그러는데, 그 사람 나가면서 너 여자친구 없냐고 물었대.”

“그래?”

여직원한테까지 물었다는 걸 보면 의심의 정황이 생기지만 윤수는 그에게 조금의 관심도 없었다. 사실 은기가 보내는 수많은 신호에 반응하느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보내는 감정은 신경 쓸 겨를도 없는 쪽이 더 정확했다. 

윤수에게는 하은기가 ‘즐거운 숙제’ 같았다. 앞으로도 계속 풀어나가야 할 즐겁고도 재밌는 과제 말이다. 

‘촬영 잘 끝냈겠지?’

오후 촬영이라고 했으니 조금 뒤에는 다 끝날 것이다. 그가 무심결에 시간을 확인하고 있자 하수석이 답답한 듯 제 가슴을 쾅쾅 쳤다. 

“야. 넌 생판 모르는 남자가 너한테 이상한 쪽으로 관심 보인다는데 아무렇지도 않냐? 괜찮아?”

“그 사람이 어떤 감정을 갖든 나하곤 상관 없고,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애초에 그 고객, 내 담당 아니야. 마주칠 일도 별로 없을 건데.”

하수석은 한숨 쉬며 긍정적이기 짝이 없는 윤수에게 찬물을 씌웠다. 

“담당 번역사 바꿔달라고 하면? 그 고집에, 사람 바꿔달라고 하는 거- 일도 아니야. 너 진상 한두번 겪냐? 겪을 때마다 패닉 되선, 힘들어하면서. 이번에도 그러려고?”

윤수는 딱 잘라 거절하는 타입도 아니었다. 의사 표현을 무르게 한 탓에 클라이언트에게 끌려다니는 경우도 많았다. 업무적인 것과는 별개로 사적인 자리까지 불려다닌 적도 있었다. 통역 쪽은 일이 아니라는데도 억지로 불려나왔던 일도 있었다. 

하지만 걱정하는 하수석과 다르게 정작 장본인인 윤수는 느긋했다. 

“그 분이 바꿔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왜 벌써부터 지레 겁먹어. 내버려둬. 정말 관심 보였다 해도 일시적인 거겠지.”

심드렁한 반응에 걱정해주던 것이 오히려 민망해질 지경이었다. 하수석은 뒷머리를 어지럽게 박박 긁었다. 

“속도 편하다, 편해. 나도 모르겠다~. 나중에 힘들다고 징징대지나 마라. 아니, 정정. 그런 일 생기면 제발 징징대줘. 혼자 안고 있다가 폭탄 돌리기 되도록 내버려두지 말고.”

윤수는 당시 일 외적인 것으로 시달려도 말을 하지 않았다. 결국 그가 스트레스와 업무 과다로 지쳐서 나가떨어질 때까지 아무도 그 사태를 몰랐다. 뒤늦게야 사무소 차원에서 항의하고 처리했지만 윤수는 그 일로 심각한 몸살과 병을 얻어 며칠을 침대에서 끙끙 앓았다. 

지금 생각해도 분한지 하수석이 머리를 긁적이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우유부단한 것도 정도껏 해야지. 우리가 무슨 자원 봉사자냐? 앞으로 제발 그 통역까지 시키던 염치없는….”

목소리가 커지자 소장이 일 안 하냐는 눈빛으로 하수석을 쏘아보았다. 자라목처럼 목을 움츠린 하수석은 구시렁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사람 또 걸리면 말을 해.”

“걱정마. 전처럼 당하진 않을테니까.”

모니터에서 나오는 환한 불빛이 윤수의 하얀 얼굴을 밝혔다. 솟아 있는 파티션에 팔을 올리며 하수석이 껄렁하게 말했다. 

“어쭈? 믿는 구석이 있는가본데?”

“그런 게 좀 생겼지.”

윤수가 피식 웃으며 코에 걸린 안경을 똑바로 꼈다. 자신감 가득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예전의 내가 아니거든.”

은기를 만나서 허하게 비워졌던 마음 속이 벌판이 조금씩 융기하여 산을 이루고 푸른 숲을 이루게 되자 발 아래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서 있던 곳은 생각만큼 그리 지옥은 아니었다. 

윤수가 회전의자에 등을 기대며 미소지었다. 그는 뒷목을 손으로 주무르면서 말했다. 

“목이 전보다는 빳빳해졌어.”

여태까지 죄 지은 사람처럼 하늘을 보려 하지도 않고 전전긍긍하며 땅만 보며 걸었다. 사실 하늘이 있는지도 잊고 살았다. 그러니 매번 있지도 않는 장애물을 걱정하며 땅만 죽어라 봤다. 

“안된다고 하는 게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게 됐고.”

이제 누군가의 거절이나 부정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거절 당해도 내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윤수가 마우스를 손 안에서 의미없이 굴렸다. 

“당장은 기분 나빠할 수 있어도 지나고 나면 금방 잊는 것 같고.”

사람들은 생각보다 그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 은기와 하는 스킨십들은 그저 사람들에게 동성간, 직장 동료 간, 혹은 지인과의 장난으로 보였다. 은기의 말대로였다. 

눈길을 주더라도 짧은 유희일 뿐, 시간이 흐르면 금방 있었던 일도 아닌 것처럼 잊혀졌다. 시선에 하나하나 겁먹을 필요도 없었다. 아직 부족하지만 극복해나가는 중이었다. 

묘한 얼굴로 듣고 있던 하수석이 헛기침을 했다. 

“흠흠. 알아서 하시든지요. 내일 촬영분 방송 뜬다면서. 카메라 샤워 좀 받고 나니 없는 자신감이 생기든?”

“너도 자신감 떨어지면 카메라 샤워 좀 받아봐. 효과 좋은 것 같다.”

“아, 그래그래.”

성의 없는 대답과 손짓 뒤로 하수석이 성큼 멀어졌다. 윤수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정작 카메라 앞에서 엄청 떨었던 과거는 모른 척 넘겼다. 고작 카메라 몇 대에 그렇게 두려웠던 것이 지금은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혹시나 다음에 또 촬영할 일이 생기면 똑같이 또 떨겠지만….’

하얀 문서 안에서 ‘bluffing’ 이라는 영어 문자가 보였다. (*주 : bluffing, 허세를 부리다, 엄포를 놓다) 

‘왠지 은기랑도 어울리네.’

윤수는 없는 허세를 자신감처럼 둘러치고 일에 집중했다. 은기가 빙의된 것 마냥 콧노래까지 불러가며 물론 본인은 몰랐다. 처음 듣는 윤수의 콧노래에 번역 사무소 직원들이 의아해했다. 

“하수석님, 윤수 씨 무슨 좋은 일 생겼대요?”

“진짜 여자친구 생긴 거 아니에요?”

“나도 몰라. 생겼겠지.”

소장이 숙덕대던 곳에 의자에 앉은 채로 슬쩍 끼어들어 새로운 소식을 들려주었다. 

“근데 그 고객님 정말로 번역사 교환 신청했던데.”

하수석이 당황해서 어버버 입을 벌렸다. 

“아? 원래 저였잖아요.”

“윤수 씨가 정말 마음에 들었나보지.”

“연예인 붙고 방송 타니까 사람도 붙나 보지요. 저러다가 이상한 사람 또 안 붙나 몰라.”

질투 절반, 걱정 절반을 섞어 하수석이 칭얼대자 소장이 묵직한 팩트를 날렸다. 

“방송은 아직 안 탔잖아.”

“아, 몰라요!”

윤수는 뒤에서 자신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오가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번역에 힘썼다. 집중이 잘 되는 백색 소음 앱으로 잔잔하게 파도 소리를 들으며 일하던 중, 비명 소리가 사무소 내를 채웠다.

“꺅! 어떡해!”

얼마 뒤에 소리를 지르는 여직원의 목소리에 윤수는 겨우 모니터에서 물러났다. 귀에 꼈던 이어폰을 빼면서 윤수가 고개를 빼들었다. 

“무슨 일이에요, 성아 씨?”

“하은기 씨 다쳤나봐요!”

“…네?”

윤수는 뒤 생각할 것도 없이 벌떡 자리를 박찼다. 의자가 넘어져서 큰 소리를 냈고, 시선이 집중됐다. 직원들도 놀란 듯 삼삼오오 떠들었다. 은기가, 뭐가 어떻게 됐다고? 그가 해당 여직원에게 달려갔다.

“은기가, 아니, 은기 씨가 왜요?! 무슨 소리에요? 다쳤다뇨?”

“여, 여기 보세요. 기사….”

포털사이트 실검에 떠 있는 자극적인 제목이 윤수의 눈에 바로 들어왔다. 

-하은기 추락사고 

-하은기 입원 

그와 관련된 여러 파생 기사들도 자잘하게 아래를 장식하고 있었다. 고층 건물에서 위험한 촬영을 예술적으로 찍어내던 카메라 감독에 대한 지탄도 간간이 보였다. 

하얗게 탈색된 얼굴로 더 보지도 못하고 윤수가 사무소 밖으로 뛰쳐나가 급히 은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가는데 전화는 받지 않는다. 손끝 물어뜯는 습관은 어릴 때 버렸는데, 극도의 긴장 탓인지 재발했다. 

‘제발…받아라, 받아.’

옷도 걸치지 못하고, 슬리퍼 차림으로 나온 터라 어깨와 발이 시렸지만 그것조차 전혀 느끼지 못했다. 

헐벗은 그의 차림에 코트와 패딩을 입은 사람들이 흘긋대며 보다 지나쳤다. 그에게 많은 의미를 준 사람이 위험에 처해있을 지도 모르는데, 세상은 무심할 정도로 아무렇지 않았다. 

‘매니저님 전화번호도 알아둘걸.’

이럴 때 미리 알아두었다면 물어볼 수라도 있을텐데. 자꾸만 안 좋은 상상으로 뻗어나가 미칠 것 같았다. 애써 차단하고는 있지만 불길한 상상이 들 때마다 온 몸이 뜨거운 불구덩이 속에서 타는 기분이었다. 

은기를 알 만한 사람이 더 없을까. 업계 사람이라도 더 알면….

거기까지 생각하던 윤수의 머릿속에 번뜩 스쳐지나가는 이름이 있었다. 

‘아, 송예나 씨!’

기어코 전화번호와 연락처까지 써두고 간 덕에 연락할 곳이 있었다. 윤수는 망설일 것 없이 바로 예나에게 연락을 넣었다. 전화는 바로 받지 않길래 문자로 넣었다. 

[저 오랜만에 연락드립니다 다름 아니라 은기가 다쳤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연락이 안되어서요 그쪽 매니저 연락처나 혹시 알만한 소식이나 아무거라도 알려주세요 갑자기 죄송합니다]

두서없이 써서 보내고 나니 곧바로 연락이 왔다. 칼칼한 예나의 목소리가 윤수의 귓전을 때렸다. 

-소식 들었어요 은기 다쳤다는 기사 나갔던데, 윤수 씨는 괜찮아요?

은기가 위험할지도 모른다는데 태연하게 자신의 안부를 묻다니, 앞뒤가 이상했다. 윤수는 얼떨떨했지만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저는 당연히…. 아니, 그보다 어떻게 된겁니까? 혹시 아는 거 있으세요? 은기 씨 매니저 분 전화번호라든가.”

-그건 모르죠. 대신 알만한 사람은 알아요. 물어봐서 연락처 드릴게요. 너무 걱정마세요. 기사라는 건 보통 자극적으로 뽑으니까.

휴대폰이 구명줄이 된 듯 윤수가 꽉 붙들고 주저앉았다. 쭈그리고 앉아서 눈가를 닦자 밀려나왔던 눈물이 손등에 묻어 있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닦아냈던 곳에 금세 눈물이 괴어 글썽거렸다. 윤수는 한 순간, 심장이 그대로 뽑혀서 바닥에 패대기쳐지는 끔찍한 기분이 들었다. 온 몸의 피가 식은 반면, 머릿속은 온갖 괴로운 상상 때문에 유황불 속에서 고통당하는 것 같았다. 아직 덜 숙성된 마음이 초고온의 온탕과 초저온의 냉탕을 오가며 담금질 당했다. 

너무 놀라 숨쉬기도 벅찬 그에게 예나는 다 안다는 듯 다정하게 말했다. 

-정말 괜찮을 거에요. 제가 알기론 은기가 직접 다친 건 아니라고 하던데, 직접 매니저한테 확인해 보세요.

그녀가 담담히 알고 있는 것을 알려주었다. 단순한 위로가 아니었다. 윤수는 그렁그렁 눈물과 의문을 단 채로 물었다. 

“직접 다친 게…, 아니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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