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편 + 51편 -->
노블편수가 따로 있는 편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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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더러 참고인 자격으로 와줄 수 있냐고 하더라.”
“…….”
은기는 그가 들은 말이 무엇인지 가늠하려는 듯 한참을 침묵했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가정과 시나리오를 머릿속으로 빠르게 흘려보내는 건지, 아니면 그저 사고를 멈춘 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상태인 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한 건 언제나 자신감과 확신에 차 있던 그의 얼굴에 가느다란 실금이 갔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잘못들은 건가?”
은기가 그답지 않게 꽤 오래 뜸을 들이며 아주 천천히 윤수의 말을 되풀이했다. 늘 선명하고 총명하던 눈빛에 회의가 가득했다.
“참고인 자격이라니…. 설마, 직접 증거 대면서 나오라고?”
너무 혼란스러워 보여서 윤수는 차마 끼어들 수가 없었다. 제가 들은 것이 맞는 지 몇 번이나 확인해놓고는 은기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윤수를 가만히 올려보았다. 아니, 그의 뒤에서 판을 짰을 하진기를 노려보았다. 안경 낀 윤수의 모습이 진기의 얼굴과 겹쳐 보였다. 무표정한 얼굴로 그가 낀 안경만큼이나 차갑게 일처리를 하고, 안건을 전달했을 그가 보이는 듯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앞뒤 맞춰보면 결국 피해자더러 제가 입은 피해를 얼굴도 생판 모르는 타인들 앞에서 진술하라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더 억안이 막히는 것은 그 피해를 말하려면 윤수의 성정체성까지 밝혀야 한다는 점이었다.
분노로 붉어졌던 은기의 얼굴색이 곧 차갑게 가라앉았다.
“나가서 무슨 이야기해야 할지 다 알잖아. 형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철로 꼬아놓은 그네줄 위로 은기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러다 당장 검찰청으로 달려가 멱살잡이라도 할 것 같아 윤수는 급히 그의 어깨를 잡아 눌렀다.
“화내지마. 싫으면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어.”
그로서는 이리저리 빠져나가는 데 도가 튼 일해교를 잡는 데 효율적인 미끼를 제시한 것 뿐이었다. 결정적으로, 진기는 그리 간곡하게 윤수를 설득하지는 않았다. 정말 바란다면 몇 번이고 연락을 거듭하며 대답을 종용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저 의사를 확인하는 수준에 그쳤다. 담당 검사로서 승률을 높이는 사무적인 일을 하는 느낌에 가까웠다. 윤수는 그걸 강조했다.
“정말이야. 내가 안나가도 알아서 해결하겠다고도 했어.”
은기도 강압적인 내용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는 순간적으로 치솟았던 분노를 억눌렀다. 그래도 진기가 윤수에게 그런 제안을 했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갔다. 누구보다 그의 고통을 잘 알던 사람 아닌가?
“하아….”
한숨을 길게 뱉어 남은 감정의 여과를 버린 은기가 조금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럼 뭘 더 고민하는데? 당연히 듣자마자 거절했어야지, 설마 나가겠다고 이러는 거 아니죠?”
어깨를 누르던 힘이 약해졌다. 진기를 만난 용건에 대해 이야기 해주면 반응이 이럴 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반발이 더 거세어서 윤수도 당혹스러웠다. 목소리가 한없이 작아지고 발 끝에 채이는 모래마저 딱딱하게 느껴졌다. 은기가 자신을 생각해 주는 만큼 감정적으로 나서는 것은 알겠는데, 어쩌면 어려워도 지지해 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했다.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과거의 윤수였다면 이런 기대는 전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작은 변화도 은기에게서 나온 것이지만 한 발 내딛으려 할 때 그를 붙드는 것도 은기였다. 아이러니했다.
“…고민은 해볼 수 있잖아.”
은기의 냉정해진 얼굴이 그의 의기소침을 보고 한결 누그러지고 부드러워지긴 했지만 말투는 여전히 신랄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괴로워 했으면서, 무슨 고민? 고민할 가치는 있나?”
“오래 괴로워한만큼 내 손으로 끝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니까.”
머뭇거리던 끝에 나온 대답에 은기는 끝내 한 손으로 제 얼굴을 훑어 내렸다.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온 강렬한 눈빛에 윤수가 흠칫 했다.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
“…….”
윤수는 상한 조개처럼 입을 다물었고, 이내 은기가 답답한 듯 제 생각을 토로했다.
“참고인 출두해서 잡는 데 일조했다고 쳐. 그런데 그 일로 자칫 일상까지 희생해야 할지도 모르고, 제일 마주치고 싶지 않은 상황과 마주쳐야 할지도 모르는데. 왜 굳이 나서겠다는 건지 이해가 안 가.”
반드시 나가야 겠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너무 극심하게 반대하자 윤수는 작은 반발심이 들었다. 그를 만나면서 온건한 지지자를 얻은 기분이었는데 처음으로 받은 반대가 뼈 아팠다. 이런 말을 하려던 것이 아니었는데 자꾸 입에서 새어나가는 언어가 왜곡되어 나갔다.
“네가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했어.”
체념도 원망도 아닌 투정같은 말이 튀어나와 윤수는 제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제가 생각해도 못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심해….’
은기는 묘한 얼굴로 웃음을 머금었다가 재빨리 표정을 바꾸었다. 눈치 빠른 그는 윤수가 저도 모르게 뱉은 약한 말을 몹시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슬금슬금 올라오던 분노가 윤수의 매달리는 듯한 귀여운 말에 삽시간에 흩어졌다. 하지만 여기서 티를 내면 여태 했던 말들이 무의미해질 것 같아 자꾸만 솟는 입꼬리를 갈무리했다.
“잘못 생각했어.”
은기는 그네에서 몸을 일으켰다. 반쯤 접었던 긴 다리가 곧게 펴지고, 순식간에 긴 그늘이 윤수를 덮었다. 그가 입술을 피가 나도록 잘근잘근 씹는 윤수를 물끄러미 보더니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다치지 않도록 했다.
“난 당신의 성장을 진심으로 원하지만, 그렇다고 다치는 걸 바라지 않아. 상처 입는 건 더 끔찍하고, 고통 받는 건 죽어도 싫어.”
피부에 닿는 접촉에 누가 볼까 놀란 것도 잠시, 윤수는 숨막히도록 가슴에 파고드는 은기의 진심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가 이름표를 붙인 감정들은 언제나 따뜻하면서도 묵직했다. 만난 시간을 감안하면 가벼울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걸 온 몸으로 느끼고 나면 항상 왜 더 어른스럽지 못했나에 대한 자괴감이 몰려들었다. 적어도 그보다 더 쌓인 4년이라는 나이테만큼 듬직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윤수는 입술에 머물다 사라진 그의 손가락을 무심결에 아쉬운 듯 바라보다가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았어. 머리 좀 식히자. 내일 다시 이야기해.”
은기와 싸울 생각으로 꺼낸 말이 아니었다. 곧 그의 일생에서 중추를 무너뜨리고 타인에 대한 믿음을 앗아간 중대한 일을 매듭지을지도 모른다. 방향키를 혼자 잡아 결정하지 않고 은기에게도 한 켠 내줄 생각으로 어렵게 뱉은 말이었다. 그만큼 그가 윤수 자신에게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이렇게 대충 감정적으로 흘려보내고 싶지 않아.’
조금 더 머릿속을 정리하고 고민을 끝낸 뒤 말을 꺼냈더라면 좋았을텐데. 윤수는 작은 아쉬움이 들었다. 진기의 연락에 조급함이 생겨 섣불리 화제를 들먹인 것 같아 은기에게도 미안해졌다. 한심한 몰골을 보이고 싶지 않아 윤수는 뒤돌아 천천히 걸었다. 은기도 자켓을 휘날리며 긴 다리로 성큼성큼 그 뒤를 쫓았다.
“데려다줄게요.”
“아니, 괜찮아.”
제 키에 비해 한참 낮은 윤수의 어깨를 잡으려다 은기가 멈칫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윤수의 표정을 살피려 했다.
“화났어?”
윤수는 앞서 부지런히 걸은 것 같은데 어느 새 벌써 자신의 옆까지 와서 나란히 걷고 있는 은기를 허탈하게 보았다. 그리곤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나도 갑자기 이야기 꺼낸 거고, 준비없이 말 꺼낸 것도 미안해.”
“화난거 아니면 거절마요. 이런 식으로 헤어져서 가는 거 찜찜해서 그래.”
더욱이 오늘은 윤수의 어머니와 마주한 역사적인 날이었다. 기분 좋게 마무리해도 모자랄 판에 날벼락 같은 폭탄으로 싱숭생숭하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윤수는 그의 말대로 했다. 집까지 가는 내내 둘은 말이 없었다. 차창으로 알록달록한 밤의 조명들이 쏟아져 내려 두 사람의 옆모습을 비스듬히 비추었다. 하나는 운전대를 붙잡은 채 색소가 옅은 눈을 앞 쪽에만 고정시켰고, 다른 하나는 가끔 지나가는 헤드라이트에 반응하며 동그랗고 까만 눈을 깜박였다. 딱히 대화를 하지 않으려 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라디오가 정적을 적절히 어색하지 않게 만들어 주는 동안 각자의 생각에 빠져 있을 뿐이었다.
거의 집에 다왔을 때쯤, 은기가 그를 흘끔 보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지 입술을 몇 번이나 달싹이다가 포기했다.
기어코 그는 윤수의 집까지 따라 들어왔다. 집 안에 도둑이 숨어있을지도 모른다는 핑계까지 대면서 와놓고는 ‘같이’ 씻고 가겠다며 우겼다. 윤수가 난색을 표하며 문을 닫고 들어왔다.
“우리 집은 좁아. 같이 씻는 건 무리야.”
현관에 같이 서 있는 것도 좁은데, 욕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은기는 억지를 부렸다. 평소의 그답지 않아서 윤수가 난감한 얼굴로 말렸다.
“내일 촬영날이라고 하지 않았어? 빨리 가야 하는 거 아냐?”
“빨리 보내고 싶은가….”
서운함을 비치는 은기의 표정에 윤수는 결국 또 그의 말에 말리고 말았다.
같이 씻는 것은 양보했지만 은기는 기어이 윤수의 집으로 밀고 들어왔다. 각자 씻고 나와서 라디오를 배경음악으로 틀어놨던 것처럼 이번엔 TV를 틀었다. 은기의 집에 비하면 현저히 작은 집 안에서 TV 예능 프로그램의 웃음소리가 널리 퍼졌다. 공교롭게도 은기가 나오는 프로그램이었다.
그 곳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윤수의 앞에도 들렸다. 하늘색 수건을 머리에 얹고 은기가 조용히 물었다.
“정말 참고인으로 나가고 싶어요?”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물을 마시던 윤수가 갑자기 던져진 화제에 콜록댔다. 은기는 그의 등을 두들겨 주며 시원하게 뻗은 눈썹을 찌푸렸다.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당시 받았던 그 말도 안되는 상황 다 이야기할 수 있어? 그걸 정말로 원한단 말야?”
“아니.”
“그럼 하지 마요.”
단호하게 떨어지는 은기의 말에 윤수가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은기가 긴 두 팔을 뻗어 윤수의 허리를 감싸고 그의 어깨에 턱을 올렸다. 한숨 소리에 따라 윤수의 작은 어깨가 풀썩였다.
“너 이러려고 온 거지? 설득하려고?”
윤수가 물잔을 내려놓고 한 손을 올려 은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복슬복슬한 머리칼 대신 거칠거리는 수건이 만져졌다. 이러고 있으니 커다란 짐승을 만지는 기분이었다.
“겸사겸사.”
“뭘 겸하려고?”
“이거.”
은기가 고개를 쭉 빼어 윤수의 뺨에 가볍게 키스했다. 물기가 다 빠지지 않아 촉촉한 입술이 부드러운 윤수의 피부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뭐야.”
간지러운 감각에 윤수가 맑은 웃음을 동반해서 몸서리치자 은기도 짧게 미소지었다. 그러더니 망설임 없이 한 손을 그의 셔츠 속으로 집어 넣었다. 셔츠가 말려 올라가면서 서늘한 온도가 윤수의 배와 가슴에 닿았다.
은기의 손이 천천히 움직이다가 갈색 유륜을 아프지 않게 꼬집었다.
“이거랑.”
대번에 흠칫하며 가늘게 떨리는 몸은 그 큰 손이 선물하는 쾌감을 기억하고 있었다. 윤수의 뺨에 대고 은기가 뒤에서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것도.”
가슴을 문지르던 손가락이 아래로 내려갔다. 뱀처럼 스스륵 내려가던 손이 이내 앞섶을 움켜쥐었다. 잠잠하게 죽어 있던 윤수의 것이 화들짝 달아올랐다. 허리가 뒤틀리고 그의 입술에서 뜨거운 숨이 터졌다.
은기의 반대편 손가락 몇 개가 윤수의 입 안을 휘젓다가 입천장을 긁었다. 그러다 붉은 혓바닥을 자극하고 누르자 윤수의 신음이 갈라졌다.
"하... 으..."
은기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은 어느 새 탁자를 짚었다. 샤워하고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온 몸의 체온이 뜨겁게 올랐다.
은기의 움직임이 커지자 머리를 덮고 있던 하늘색 수건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가 젖은 머리칼을 윤수의 뜨거워진 목에 부볐다.
"전부 겸사겸사.”
벌써 반쯤 커진 은기의 성기가 뒤에서 뭉근하게 비비고 있었다. 놀란 윤수는 엉덩이를 피하려 했지만 은기가 허리를 붙들고 잡아당기는 바람에 도망칠 수 없었다. 성난 페니스가 까만 트레이닝 바지 속으로 숨은 구멍에 들어가고 싶어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탁자를 짚었던 윤수의 손가락이 잘게 떨렸다.
“내일 촬영…흐읏…!”
침착한 답변이 그에게 돌아왔다.
“아침 스케줄은 아니니까 괜찮아요.”
흥분해서 서 있지만 섣불리 바지를 내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대신 윤수가 잘 느끼는 곳을 공략해서 입김을 불거나 손가락으로 열심히 지분댔다.
은기가 하얗고 가느다란 목 뒤, 윤수가 약한 부위를 살짝 물었다. 단숨에 목줄기가 움츠러들고 흰 살결이 벌겋게 물들었다.
“그래서, 참고인 할 거에요?”
정신 없게 해서 하지 않겠다는 대답을 받아낼 심산인가. 윤수는 심술 궂은 은기의 손길에 어쩔 줄 모르고 바르르 떨었다.
“생각 좀 더 해보고…. 으응….”
무거웠던 화제가 성교를 목전에 두면서 반복되어 언급되자 무게가 덜어진다. 이렇게 대화할 무게가 아니었는데, 신음 소리에 섞여서 희석되고 있었다.
+) 51편.
“너 이런 식으로 은근슬쩍 넘기려는 거야?”
어느 새 셔츠를 위로 벗겨내는 손길에 대고 윤수가 불만스럽게 물었다. 은기는 얇고 하얀 팔에 키스하며 피식 웃었다.
“그래주면 참 고맙겠는데.”
이번엔 바지가 아래로 내려간다. 방해가 되었던 바지가 윤수의 발목 위로 떨어져 사라지자 은기가 속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한번에 앞을 그러쥔 강한 압력에 윤수가 또다시 움찔 떨었다. 입에서 신음과 함께 단내가 났다.
은기가 앞으로 바짝 무게중심을 두고 귓불 아래에서 뜨겁게 속삭였다.
“겪어보니까 생각보다 피윤수 씨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더라고요.”
“아, 아아, 아흑!”
앞으로 천천히 쓸어내리다가 위로 올리면서 표면을 손톱으로 아프지 않게 살짝 긁자 윤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젖혔다. 목 뒤에서는 듣기 좋은 저음이 끊임없이 그의 귀를 파고들었다.
“분명 무작정 반대하면 뒤로 다른 생각할 거고.”
이번엔 뭉툭한 귀두 끝을 손톱이 꾸욱 눌렀다. 윤수가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다리가 후들거리다 못해 쓰러질 것 같이 진동했다. 그가 은기의 팔을 붙들고 애원하듯 말했다.
“잠깐, 갈 것 같아. 잠시만. 손, 손 좀 떼….하윽!”
“가요. 마음껏.”
은기가 쥔 성기 끝에서 등줄기로 짜릿하게 전류가 흘렀다. 몸 안을 간지럽게 맴돌던 쾌감이 머리 끝까지 치받고 오른다. 회오리처럼 도는 강렬한 쾌감이 간지러움을 찢고 윤수의 성기 끝에 서 정수리까지 단번에 도달했다.
투둑!
정액이 잔뜩 나와 은기의 손을 적셨다. 숨을 몰아쉬며 윤수가 얼굴을 붉혔다.
“손 떼라고 했잖아. 빨리 닦아.”
“아까운 걸 왜 닦아? 써야지.”
“뭐, 뭐로?”
부끄러움 가득한 물음은 곧 여유로운 행동으로 돌아왔다. 다른 손으로 브리프를 내리고 은기가 손에 잔뜩 묻은 것을 윤수의 엉덩이 사이로 넣었다. 미끌대며 식은 정액이 구멍 사이로 말려들었다.
찌걱찌걱
듣기에도 야하기 짝이 없는 소음이 윤수의 얼굴에 아로새겨진 열기를 더했다. 긴 손가락이 갈고리처럼 구부러져 빈틈없이 구멍을 이리저리 누르는 통에 윤수는 뒤로 잡은 은기의 팔에 힘을 잔뜩 주었다. 구멍이 뻐금대며 은기의 손가락을 자를 듯이 조였다.
“힘 빼요. 다쳐.”
담담하게 말한 은기는 가차없이 손가락 개수를 늘려 구멍의 크기를 늘렸다. 붉은 점막이 그의 손가락을 집착하듯 들러붙었다가 떨어져 나갔다. 정액이 은기의 손가락과 구멍 사이에서 녹아 흐르고, 은기는 그럴수록 구멍을 더 녹진하게 휘저었다.
윤수의 눈에 불꽃이 튀고, 그는 신음을 참으려 했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으으…. 하앗! 아, 아아!”
바닥 위 뼈가 불거진 발가락이 미세하게 경련을 일으키고, 전립선 쪽의 쾌감점을 꾹 눌렀을 때는 온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한 번의 배출로 풀 죽었던 윤수의 성기가 다시 차오르기 시작했다. 은기가 마른침을 삼키며 야한 장면을 갈색 눈에 담았다.
‘미치겠다.’
당장이라도 넣고 싶었지만 은기는 인내심을 발휘해 간신히 잔뜩 차오른 자신의 성기를 달랬다. 참는 것의 반동으로 그가 일부러 짓궂게 성감으로 달아오른 윤수의 하얀 몸에 대고 말했다.
“하여간 야한 몸이야. 뒤로도 잘 느끼네요.”
“네가 그렇게 만들었…잖아.”
중간에 부르르 떠느라 항의하듯 쏟아지던 윤수의 말이 끊겼다. 순간 은기가 왕복하던 손가락질을 멈췄다.
방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그는 이성이 끊길 뻔 했지만 참을성 있게 입을 열었다.
“그 말 한 번 더 해봐요.”
“무슨 말…?”
멍한 얼굴로 윤수가 간신히 뱉자 은기는 구멍을 더 늘리면서 구멍 안의 민감한 곳을 세게 눌렀다. 내벽이 급격히 수축되며 은기의 손가락을 다시 꽉 깨물었다.
“아흐윽!”
덜덜 떨리던 다리가 기어코 무너져 내렸지만 은기가 재빨리 받아 넘어지지는 않았다.
“방금 했던 말.”
윤수는 자꾸만 벌어지는 입술을 꽉 닫으며 떨리는 턱 끝을 갈무리했다. 은기가 원하는 것을 알아챈 그가 숨을 가다듬고 똑바로 된 문장을 뱉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을 이렇게 몰아세우거나 열정적으로 변하게 하는 건 은기 밖에 없었다.
“네가 날 이렇게 만들었잖아.”
“…….”
은기가 가쁜 숨을 내쉬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들었던 모든 말과 언어 중에 최고로 섹시한 문장이었다.
가늘게 떨며 뱉는 소리에 은기는 드디어 마지막으로 유지하던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깍아질 듯한 반듯한 이목구비에서 비스듬한 균열이 생겼다.
공들여서 구멍을 녹인 은기의 손가락이 한꺼번에 빠져나갔다. 그가 성욕으로 달아오른 눈빛을 윤수의 하얗고 마른 어깨에 고정시켰다. 물어 뜯고 싶을 지경인데 다칠까봐 겨우 참았다.
“넣을게요.”
윤수의 어깨 위로 턱을 기댄 채 은기가 잔뜩 성이 난 성기를 밀어넣었다. 손가락이 나가자마자 쪼그라들던 구멍 사이로 몇 배나 되는 커다란 것이 들어오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윤수가 무너져 내렸다.
은기의 팔을 쥐었던 손이 떨어져 나가고, 윤수는 탁자 위로 손을 짚어 겨우 균형을 잡았다. 손바닥에 난 땀 때문에 탁자가 미끄러워서 주먹을 쥐었다.
“으윽….”
항상 천천히 들어오면서 윤수의 반응을 살피던 여유가 오늘따라 없었다. 은기가 모두 넣자 바로 움직였다. 평소와 달리 아예 말도 없었다.
그 사이 구멍 사이의 정액이 조금 말라서 뻑뻑했다. 평소보다 더 커진 것 같은 성기의 크기에 윤수는 버거웠다.
하지만 민감해진 구멍 사이로 혈관이 불거진 성난 성기가 꽉 차자 곧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곧 어깨에서 턱을 떼어낸 은기가 윤수의 가느다란 허리를 붙잡고 앞뒤로 몸을 흔들었다.
“아, 아윽, 하아…!”
무자비하게 구멍의 주름까지 모두 펼 기세로 밀고 들어온 성기가 거칠게 드나들었다.
퍽, 퍼억!
윤수가 엎드려 탁자에 붙인 주먹을 폈다가 다시 말아쥐었다. 땀에 젖은 손바닥이 흔들리며 탁자를 미끄러지는 소리가 기이하게 들렸다.
짜악, 끼익!
마찰로 붉어진 구멍 사이에서 흉흉하게 발기한 성기가 힘차게 박혔다. 은기의 이마에도 송글송글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삽입이 깊어질수록 윤수의 신음도 높아졌다. 느끼는 곳을 내리찍는 기세에 휩쓸려서 머릿속에 불길이 일었다. 온 몸이 타서 사라질 것 같았다.
끼이익, 끽--
탁자가 부서질 것처럼 두 사람의 움직임에 흔들렸다. 소리가 너무 커지자 두려워진 윤수가 손을 뒤로 뻗어 은기의 손목을 붙들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삽입이 더욱 깊어지면서 은기의 성기가 안 쪽을 쑤셨다.
“윽, 윽, 앙…, 흑!”
방금 무슨 소리를 내뱉은 건지, 깜짝 놀란 윤수가 제 신음을 삼켰다. 교태부리는 듯한 높은 신음이었다. 억지로 삼키자 부작용으로 딸꾹질이 나왔다. 허파가 무리하게 움직여서 부풀었다가 꺼지기를 반복했다.
“히끅!, 끅!, 으윽….”
도저히 못 참겠어서 윤수가 탁자에 머리를 대었다. 흔들리면서 탁자 위로 그의 부드러운 머리칼이 물결쳤다. 그래도 딸꾹질이 멎지 않았다. 아래에서 끊임없이 치고 올라오는 쾌감과 딸꾹질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윤수를 구해준 것도 은기였다.
은기가 그를 잡아 일으키고는 턱을 옆으로 돌려 키스했다. 달아오른 윤수의 등과 단단한 은기의 복부가 뜨겁게 닿았다. 물론 허리짓은 여전히 유지한 채였다. 은기의 달달한 혀가 입 속으로 파고들고, 그조차 알지 못한 성감대를 훑었다.
“으흡….”
입천장을 부드럽게 훑거나 혀 안 쪽을 감고 당기는 말캉한 살덩이에 속수무책이었다. 윤수의 하체가 작살맞은 고기처럼 움찔움찔 떨렸다.
“힛, 으응…!”
딸꾹질마저 가라앉힐 정도로 지독한 키스였다. 윤수가 쾌감을 피해 달아나자 집요하게 혀가 달라붙어 그를 쾌감 아래 찍어눌렀다. 턱의 각도를 바꿀 때 살짝살짝 들어오는 공기가 시원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러다 보니 정말로 딸꾹질이 서서히 멎었다.
윤수가 그만하라며 은기의 팔을 꽉 잡으며 겨우 맞닿은 입술 사이로 말을 꺼냈다.
“그흐…마….”
입술을 짓누르던 은기의 입이 떨어졌다. 동시에 속도를 늦춰서 느리고 뭉근하게 아래를 찌르던 성기가 다시 가열차게 움직였다. 딸꾹질이 멎기만을 기다렸던 모양이었다. 거의 본능에 의지한 허릿짓이었다.
퍽, 퍽, 퍼억!
엉덩이 사이를 찧는 빠르고 거센 삽입에 윤수는 자지러질 듯 신음을 토해냈다. 여러 번 몸을 섞는 사이 은기는 이제 그의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의 턱 끝으로 맺힌 땀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작은 웃음소리가 섞인 은기의 목소리가 간지럽게 윤수를 파고들었다.
“좋아요?”
“으, 윽, 하윽!, 좋아, 좋…, 아…!”
은기의 것이 깊숙한 구멍 안의 자극점을 마구 찔렀다. 참을 수 없는 간지러움이 열기로 번져 그를 잠식했다. 온 몸이 발발 떨리고, 윤수의 하얀 목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한계까지 내몰린 몸이 쾌감으로 산산히 부서질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구멍에 힘이 들어갔고, 자연히 은기의 성기도 꽉 조여 그에게도 더한 쾌감을 선사했다.
은기가 묽은 액을 선단 끝에 머금은 윤수의 것을 손으로 훑었다. 앞뒤로 자극이 밀려오자 윤수는 참지 못하고 사정감이 빠르게 찾아왔다. 쾌감의 열기가 그의 까맣고 동그란 눈에 맺히고, 생리적인 눈물이 솟았다.
너무 느껴서 죽을 것 같았다.
두 번을 연이어서 하고 나서 윤수는 작은 주방 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딱딱한 바닥 위에서 허리가 부서지는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힘들어….’
이렇게 격렬하게 했는데 왜 은기는 멀쩡해 보일까. 오히려 안그래도 빛이 나던 얼굴에 번쩍번쩍 윤이 났다. 은기가 냉장고에서 물을 따라와서 뻗어버린 윤수의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괜찮아요?”
윤수가 반대편으로 고개를 슬쩍 돌리며 환한 은기의 얼굴을 외면했다.
“안 괜찮아.”
“정말 힘들었나 보네.”
은기가 피식 웃으며 건네는 생수잔을 윤수가 잡아채어 벌컥벌컥 마셨다. 자신의 저질 체력을 욕하며 그는 손바닥에서 나는 땀이 유리잔과 닿아 미지근하게 식는 것을 느꼈다.
물을 마시고 입술을 훔치는 윤수를 물끄러미 보던 은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까 전 윤수에게 질퍽한 섹스같은 키스를 퍼붓던 붉은 입술이 가지런하게 위아래로 왕복했다.
“아까 화낸 건 미안해요. 오면서 생각해 봤는데, 뭐가 옳은 건지 모르겠어.”
빈 물잔을 회수해서 탁자에 놓은 그가 돌아와 윤수의 옆에 또 무릎을 접고 구부정하게 앉았다. 주방의 하얀 백광이 은기의 넓은 등에 닿아 널리 퍼져나가고 나무처럼 너른 그림자를 윤수 위로 드리웠다.
은기는 미간을 찌푸리고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못하게 막는 게 맞는 건지, 하고 싶은 대로 두는 게 좋을지. 그런데 난 정말 남들 앞에서 다치는 모습은 보고싶지 않아. 생각만 해도 피가 거꾸로 솟아요.”
진지하게 가라앉은 눈이 느리게 깜박였다. 눈썹마저 잘생겼다. 그 사이로 자리잡은 시원스레 뻗은 콧날과 그 아래 존재한 입술, 단단하고 날렵한 턱끝에 마지막으로 시선을 두었던 윤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
억지로 밀어붙여서 자신의 마음은 편해져도 은기는 편치 않을 것이다. 그의 마음도 존중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이 기회를 흘려보낸다면 그건 그것대로 후회를 남길 것 같았다.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선택은 없는 걸까. 어느 누구의 마음 하나 다치지 않고 행복할 선택은 없을까.
윤수는 시간을 쥐어 짜고, 또 쥐어 짜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욕심쟁이라고 욕해도 상관없었다. 그의 선택의 기준은 어느새 ‘하은기’ 라는 사람과 과거로부터의 해방에 가로놓여 있었다.
둘 다 소중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만큼 그가 정신적으로 많이 성장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사랑은 받은만큼 윤수의 곱은 등을 바로 펴고, 작은 키를 늘렸다.
윤수는 고민 끝에 제 입술을 작게 오물거렸다.
“네가 싫다면 나도 싫어.”
밝아지는 은기의 얼굴을 아래로 잡아당기자 균형을 잃고 기우뚱하던 그가 아슬아슬하게 바닥에 제 손을 탁, 짚었다.
가까워진 은기의 얼굴을 윤수가 더 가까이 당겼다. 불빛이 그의 등뒤로 쏟아져내리고, 역광 속에서 일렁거리는 은기의 갈색 눈이 보였다. 윤수가 그 반짝이는 눈에 대고 맹세하듯 말했다.
“더 고민해볼게.”
말이 더 없어도 윤수의 진심이 전해져 왔다. 어두운 흔적이 아니라 밝은 빛을 염두에 둔 고민이었다.
은기는 그런 고민마저 사랑스러웠다. 윤수가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상대였지만 갈수록 왠지 더 휘말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아래를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천천히 생각해요. 기다릴테니까.”
할 수 있는 만큼 치열하게 고민해서, 모두에게 해피엔딩을 선사할 것이다. 윤수는 다가온 입술에 제 다짐을 불어넣었다.
밤은 길었다.
***
매끈한 얼굴로 촬영장에 도착한 은기는 컨디션이 매우 좋아 보였다. 햇빛도 촬영날을 축복하는 것처럼 반짝였고, 촬영장 분위기도, 스태프들의 표정도 밝았다.
특히 아주 개운해 보이는 은기를 보며 매니저 병수가 재차 확인하듯 물었다.
“이번에 촬영 장소 바뀐 건 알지?”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수정에게도 환하게 인사한 은기는 병수에게 붙들렸다. 그가 어쩐지 뭔가 말하고 싶어 근질거린다는 얼굴인 병수를 보며 의아해했다.
“알지.”
병수의 밀어붙임으로 고층 건물에서 낮은 건물로 촬영 장소가 바뀐 것을 알고 있는 은기가 가벼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이 난리쳐서 낮은 건물로 바꿨잖아.”
병수는 과거에 소속사 대표 이력도 있는데다 말발이나 입김도 워낙 셌다. 그래서 불리한 조건을 그의 인맥이나 입으로 바꾼 것도 많은 편이었다. 은기의 대답에 병수가 만족한 듯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랬지. 거기다 아래에 그물도 설치하기로 했어.”
이번엔 좀 놀랐는지 메이크업을 받으러 가던 은기가 고개를 그에게 휙 돌렸다.
오늘자 촬영 감독은 옥상에서 아슬아슬한 장면을 연출하며 위험한 촬영을 하는 것을 즐기기로 악명 높은 한승진 감독이었다.
“정말?”
병수가 자랑스러운 얼굴로 헛기침을 했다. 제 공을 내세우려니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그래. 안된다는 한 감독님 내가 어떻게든 설득했어.”
실제 바람이 매우 심한 날 촬영을 억지로 진행해서 인명 사고가 난 적도 있었다.
다행히 해당 모델은 다리가 부러진 것으로 그치긴 했지만 한 감독의 고집과 기행은 멈추지 않았다. 업계에서도 인정받는 솜씨와 예술적인 감각으로 얻은 유명세로 안전장치 없이 위험한 촬영을 했던 것이다. 강압적이어도 그의 피사체가 되고 싶은 모델이나 배우들은 위험을 감수하기도 했다.
이를 잘 알고 있던 은기는 다시 한 번 병수의 수완에 놀랐다. 그가 마음을 담아 칭찬을 건넸다.
“멋지네, 형.”
“아무튼 신경 끄고 촬영 조심히 해. 몸이 자산이잖아, 안 그래?”
어쩐지 악명 높은 한 감독의 제안을 성큼 받는다 했다. 어떻게 한건지 몰라도 집요하게 들들 볶아 일정 변경을 이뤄낸 그의 집념이 ‘실장’이라는 그의 직급이 무색하지 않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