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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중?
윤수가 보자마자 바로 휴대폰을 붙들고 답장을 보냈다.
-응 근데 대답할 여유는 있어
-끝나고 시간 돼요?
-괜찮을 것 같아
-오케이 조금 있다가 봐요
그 뒤로는 메시지도 더 오지 않고 잠잠했다. 하지만 윤수는 휴대폰을 손에서 떼놓지 못하고 연신 흘끔댔다. 그렇게 5분 정도 지났을까.
다시 진동이 왔다. 깜짝 놀란 윤수가 화면을 확인하자 짧은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확인하자마자 그는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렸다. 예상치 못한 기분 좋은 폭탄을 맞은 기분이었다.
-피윤수씨 사랑해
한참을 휴대폰 화면이 깨질새라 바라보던 윤수도 곧이어 바삐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리고 답장을 보냈다. 가슴께가 뻐근할 정도로 행복해서 이래도 되나 싶었다.
누가 보지도 않는데 혼자 들킬까봐 괜히 주변을 두리번 거리던 윤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가 메시지를 확인하기를 기다렸다.
얼마 되지 않아 은기가 확인했다는 것을 보고는 윤수는 휴대폰을 멀리 치워 두었다. 더 이상 그의 메시지를 봤다간 아예 일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제발 집중하자. 근데 뭐라고 했을까.‘
은기가 뭐라고 할까 다시 궁금해졌지만 그는 머리를 흔들고는 모니터에 얼굴을 박았다. 집 나간 집중력을 되찾기 위해 부던히 애를 쓰며 그는 남은 작업을 조용히 해치워 나갔다. 어색함을 지우려는 듯한 키보드 소리만 그의 주변을 메웠다.
***
“할 말이 뭐냐?”
병수가 불안한 얼굴로 은기의 얼굴을 살폈다. 막 방송을 끝내고 나온 것이라 피곤할 법도 한데, 그는 지친 기색조차 없이 생생했다. 방송에서 준비했던 세트에서 내려오자마자 휴대폰부터 확인하는 그는 얼굴에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갈수록 박력 넘치네. 귀여워.‘
윤수가 보낸 답장은 이랬다.
-하은기씨 내가 더 사랑합니다
이러니 방송 내내 출연자들로부터 무슨 좋은 일이 있냐는 질문을 골백번을 받았다. 심지어 기분 나쁠 법한 공격을 받아도 웃음이 떠나질 않는 그를 보고 사회자조차 이상하게 여겼을 정도였다.
병수가 내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그가 물었다.
“방송 잘 끝냈냐고 먼저 물어봐야 하는 거 아냐?”
“그렇긴 하지만. 알잖아. 나 성격 급한 거. 그리고 네가 잘 못 끝냈을 리도 없고.”
피식 웃은 은기가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무리를 보고는 슬슬 걸음을 옮겼다.
“다음 화보 촬영이 건물 위에서 진행된다고 했었지?”
“그래. 신경 바짝 쓰고 있어. 네가 고소공포증 없다고는 해도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안전 장치도 철저한 곳이라 안심은 되지만.”
은기는 얼음이 달각대는 아메리카노를 흡입하며 목마름을 달랬다. 그가 빨대에서 입을 떼고 평소처럼 여상하게 말했다.
“형이면 알아서 어련히 준비하겠지. 근데 그 촬영 전에 나랑 해결봐야 할 일이 생겼다.”
“해결봐야 할 일? 뭔데?”
“형 대답 여부에 따라서 다음 스케줄 때부터 새로운 사람 찾아야 할 수도 있어.”
그의 옆에 서서 나란히 걸어가던 병수가 우뚝 걸음을 멈췄다. 은기는 무표정하게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었지만 그가 뱉는 소리는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무슨 소리 하려고 이래. 무섭게.”
놀라서 멈춘 병수를 따라 은기도 제자리에 섰다. 그가 얼굴을 반쯤 가리던 1회용 아메리카노 컵을 아래로 내리더니 사형선고 마냥 잔인하고 충격적인 말을 던졌다. 그것도 평소와 전혀 다를 바 없는 평이한 목소리로.
“요즘 사귀는 사람이 생겼거든. 진지하게 만나는 관계고. 좀 멀리 보고 있어.”
담담하게 뱉은 고백에 병수는 그만 앞이 아찔해졌다. 너무 고저도 없고, ’밥 먹었어?‘ 정도의 안부를 묻는 것 같은 일상적인 말투에 자신이 잘못 들은건가 귀를 의심하기도 했다.
순간 말문이 막혀 무엇부터 지적해야 할지 깜깜했던 그는 치열하게 버벅댄 끝에 간신히 여러 반응 중 가장 적절한 것을 골라 냈다.
“뭐! 내가 그렇게 조심하라고!”
“소리 내지 마. 사람들 다 들어.”
은기의 경고에 병수는 얼른 제 입을 솥뚜껑만한 손으로 틀어막았다. 이런 상황에도 은기는 아주 태연해서 더 얄밉고 돌아버릴 것 같은 병수였다. 심지어 그는 넉살 좋게 이런 제안도 했다.
“밖에서 오랜만에 이거, 같이 태울래?”
손가락을 까딱하는 것이 영락없는 담배 피우는 포즈였다. 은기의 매니저가 되면서 병수는 담배까지 끊었다. 초기에 몇 번 같이 피웠지만 여러 이유로 끊었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끊었던 담배가 절실해졌다.
은기의 제안대로 방송국 밖으로 나간 두 사람은 말없이 사이 좋게 담배 하나씩을 입에 물었다. 날씨가 쌀쌀해서 손가락 끝이 시렸지만 그런 것도 신경 안쓰일 정도로 병수는 억안이 막혔다. 몇 년 만의 담배가 눈물나게 달았다. 연기를 뿜으며 병수가 그를 윽박질렀다.
“야, 이, 미친! 누구랑? 대체 누구야!”
여전히 태연하기 그지없는 태도로 은기도 길게 연기를 뿜었다.
“터지면 아주 곤란해 질 수도 있는 관계.”
“…설마 유부녀는 아니지?”
그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최악수였지만 다행히도 그건 아닌지 은기는 바로 정정해주었다.
“그건 아니고. 아무튼 문제가 많이 커질 수 있어.”
“미치겠네. 아니, 언제부터? 그럴 틈이 있긴 했냐?”
되묻던 병수는 은기라면 왠지 충분히 어떻게든 가능했을 거라는 생각이 스치긴 했다. 역시 얼마간 불안하던 촉이 틀린 것이 아니었다. 괴로운 표정으로 헬슥해진 얼굴을 쓸어내리는 병수를 은기가 무표정하게 바라보더니 다른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김형규 씨 매니저 이번에 결혼해서 그만둔다더라. 그 쪽 연결시켜 줄 수 있어. 형이라면 얼마든지 그 자리 메꿀 수 있는 능력도 있고. 그 분도 형이라면 좋다고 했으니까.”
“뭐, 뭐, 뭐. 잠깐!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여기서 김형규 씨 이야기는 왜 나와?”
김형규는 영화 배우였고, 연기력으로는 30대 남자 배우 중 원탑을 찍는 사람이었다. 일일 드라마로 시작했던 사람이지만 요즘은 거의 영화만 찍었다. 게다가 넘치는 끼와 예능감도 인정 받아 휴식 기간에도 러브콜을 보내는 예능 PD 감독들이 즐비한 유망주였다.
은기는 그 사이 다 마신 아메리카노 컵을 근처 쓰레기통으로 던졌다. 풀썩 거리는 소리가 들린 후에도 얼마간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맴돌았다. 병수는 이 상황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정지된 사고로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처지였고, 은기는 이미 생각해 두었던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정리하는 중이었다.
그때 한무리의 걸그룹이 발랄하게 인사를 하며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다음 스케줄 때문에 바쁜 모양이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선배님!”
금방 그만두긴 했지만 은기는 어쨌든 짧게나마 아이돌 그룹을 했던 사람인지라 이력이 꽤 알려져 있었다. 그가 담배를 쥐고 있지 않은 반대편 손으로 빙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어, 안녕.”
걸그룹 중 몇 명은 조용히 얼굴을 붉혔고, 몇은 가벼운 괴성(?)을 지르며 방송국 안으로 사라졌다. 병수가 좋은 향기를 남기고 사라진 그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다 은기를 흘겨보았다.
“…저 가식. 관심도 없으면서.”
이상할 정도로 걸그룹에 관심이 하나도 없던 그였기에 병수는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은기가 담배를 입으로 가져다대며 말했다.
“쟤들, 곧 뜰걸. 얼굴 잘 봐둬. 잠깐이나마 제대로 보라고 인사한 거야. 혹시 모르니 안면 터놓으라고.”
병수는 작지만 기획사 대표도 했던 사람이고, 다시 기획사를 차리는 것이 꿈이니 비전 있는 연예인을 봐두는 것은 거의 습관이었다. 이를 아는 은기가 아무렇지 않게 흘리는 말에 병수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또 하은기 픽이냐? 네 말대로면 정말 뜰 수도 있겠네. 어디서 관상이라도 배웠냐?”
은기가 종종 누가 뜰 거라고 예견하듯 찍으면, 정말 얼마 있지 않아 뜨는 것을 몇 번이나 지켜보았다. 병수는 놀란 얼굴로 묻자 은기는 말도 안 된다며 피식 웃었다.
“무슨. 여기저기서 들리는 거, 하는 행동 보고 대충 맞추는 거지.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생각할걸.”
“그 잘난 판단력과 감으로 터지면 아주 곤란해 질 수 있는 관계는 어떻게, 피할 수 없었고?”
빈정거리는 병수의 말에 은기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불가항력이었어.”
윤수와의 첫만남이 자연스럽게 그의 기억 위로 떠올랐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진기를 기다리던 애처로움이 그 다음으로 이어졌다.
순수하기까지한 긴 기다림에 시선이 갔다. 눈을 빼앗긴 뒤에는 서서히 마음 속에 작은 호기심이 일었고, 안쓰러움이라는 감정이 밀고 간 자리에 어떤 바람이 깃들었다. 저 맹목적이기까지 한 시선 끝에 자신이 걸리면 어떻게 될까, ’다음‘을 바라게 되었다.
처음부터 정해졌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바람이 스쳤고, 은기는 스친 바람을 잡았을 뿐.
“일종의 사고 같은 거였어서.”
이윽고 담뱃재를 긴 손가락으로 털어내면서, 은기가 천천히 본론을 끄집어 냈다. 그는 불안해 보이는 병수를 똑바로 마주 보고 어려울 수 있는 이야기의 핵심을 짚었다.
“형이 뭘 생각하고 나랑 일한 건지 다 알아. 재기 성공하고 싶잖아. 성공한 연예인의 매니저로 크다가 조금씩 다시 자리잡고 싶은 거 아니었어? 근데 이제부터 형이 잡을 동앗줄이 썩은 동앗줄이 될 지도 모른다는 얘기야.”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병수는 아예 넋이 나간 듯 했다. 초점이 사라진 멍한 눈이 이를 증명했다.
“물론 일이 터지지 않게 조심할 거지만, 앞날은 어찌 될지 모르는 거니까. 나는 내 방식으로 그 사람 지킬 자신 있지만, 형까지 끌고 갈 자신은 없다. 그러니 선택하라고.”
“…….”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계속 갈 건지, 아니면 이쯤에서 각자 다른 길 찾을 건지.”
얼핏 냉정하게 들리지만 무엇보다 그를 배려하고 그의 입장을 고려한 선택지였다. 그럴 일은 없도록 하겠지만 만약의 경우, 은기가 윤수와 사귀는 것이 언론에 드러난다면 그동안 공들인 병수의 노력은 헛수고가 된다.
간섭을 좀 많이 하긴 했어도 그는 은기에게 늘 최선을 다 했다. 다른 매니저들의 몇 배를 더 신경 썼고, 개인사도 거의 포기한 채 모든 생활 패턴을 은기에게 맞춰왔다.
병수의 입장에서는 은기의 발언은 배신이고, 뒤통수를 수천 번 찍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병수는 피던 담배마저 버리고 발로 밟으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래.”
최대한 병수가 정에 흔들리지 않도록 감정을 배제한 채 말하던 은기도 흔들리는 그의 눈을 마주하고서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딱딱하게 굴던 그도 풀어진 얼굴로 한결 부드럽게 말했다.
“미안해.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사람 마음이 멋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
“씹, 그래도 그렇지.”
은기는 씩씩대는 그를 달래듯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형이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이랑 일할 수 있도록 미리 알아봤어. 김형규 그 사람 인성도 좋고, 과거도 깨끗해. 형도 알잖아. 요즘 핫한 예능 아이콘인거. 지금도 나보다 고정 출연도 더 많고, 숨겨진 끼도 많아서 앞으로 그 사람, 10년 이상은 더 뽑아야 할 걸. PD들 사이에서도 섭외 1순위야.”
“…내 다음 일자리까지 알아봐 준 건 눈물나게 고마운데, 나도 생각 좀 해보자. 너무 갑작스러워서 지금은 아무 생각도 안 든다. 어? 시간을 줘. 너랑 내가 이렇게 몇 분 사이에 끊을 인연이였냐?”
정말로 섭섭한 듯, 서운하게 쏟아내는 병수의 진심에 은기도 씁쓸하게 미소지을 수 밖에 없었다.
“진짜 미안.”
기어코 병수가 버럭대며 울분을 터뜨렸다.
“그러게 미안할 짓을 왜 하냐고. 미안하다는 소리 한 번만 더 해봐. 생각할 것도 없이 지금 당장 때려칠테니까.”
’미안‘을 입에 달고 살던 윤수가 떠올라 은기가 저도 모르게 웃었다. 윤수에게 하던 소리를 다른 사람에게 역으로 들으니 기분이 또 새로웠다. 그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싶었다. 그를 떠올리기만 해도 자동으로 입가에 미소가 달라붙는다.
“나도 그 사람한테 옮았나. 알았어.”
“웃지마, 자식아. 하여간 준비성 철저한 놈. 그새 김형규 씨까지…. 이러니 마음의 준비를 해도 소용이 없어. 매번 놀란다니까. 너 감당할 매니저 흔할 줄 알아? 어디로 튈지 모를 놈 쫓아다니는 거, 아무나 못 해.”
은기가 다 태운 담배를 바닥에 던져 비벼 끄고는 병수의 종알거림을 웃어 넘겼다.
“하하, 알지. 형 힘들게 한 거.”
“알면, 어? 말 좀 들어먹으라고. 앞으로 이런 놈 간수할 사람이 계속 내가 될지 다음 희생양이 될지 모르겠지만.”
“잘 생각해 봐. 다음 스케줄까지 시간 좀 있으니까.”
“알았다, 인마. 아주 고오맙다.”
빈정 상한 가벼운 비꼼은 그치질 않았지만, 병수는 심각해 보였다. 당연히 그렇겠지. 하지만 은기는 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제일 소중한 것은 이제 ’피윤수‘ 라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오래토록 함께 일해온 소중한 동료를 아무런 준비 없이 둘 수도 없었다.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고, 이제 던져진 공을 병수가 받아 제 것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되돌릴 것인지를 정하면 될 일이다.
’할 만큼 했어.‘
주변 사람들 모두를 지키는 건 욕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최소한 그를 아는 누구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옛날의 윤수처럼, 누군가가 소중했던 이에게 버림 받아 비맞은 강아지처럼 하염없이 같은 장소를 배회하는 것도 보기 싫었다. 누구나 ’다음‘을 얻을 기회와 권리를 누려야 했다.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은기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목소리를 떠올렸다.
[형들처럼 뭐든 쉬운 사람들이 내 심정을 어떻게 알아?!]
아주 오래 전, 은기가 사진기를 선물하게 된 본격적인 계기가 된 막내 동생의 눈물 섞인 처절한 외침이었다. 뭐라도 해보라며 선뜻 말한 은기에게 막내 동생은 그리 외쳤다. 생각지도 못한 큰 충격이었다.
뭐든 쉽게 얻는, 타고난 자들은 알지 못할 아픔이었다. 그래서였을 지도 몰랐다. 얻고 싶은 것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을 봤을 때 느꼈던 따끔한 무엇이 마음속에 생겼던 것은.
’모든 건 거기서 시작했을지도.‘
막내 동생으로부터 그 아픔을 듣지 못했더라면, 은기 또한 진기처럼 모른 척 해왔을 것이었다. 그리고 윤수를 만날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은기는 정해두었던 이야기를 모두 끝내자 병수의 등을 떠밀었다.
“오늘 집까지 안 데려다줘도 돼. 먼저 퇴근해.”
“뭐, 그 ’문제가 많이 커질 수 있는 사람‘ 한테 가보려고?”
그가 한 쪽 눈을 찡긋하며 장난스럽게 되받아쳤다.
“그건 들켰을 때 이야기지. 나 안 들킬 자신 꽤 있거든.”
“잘났다, 잘났어. 그럼 가본다! 실컷 보러 가라.”
병수가 코웃음치더니 손을 휘휘 흔들고는 빠르게 멀어져 갔다. 말은 저리 해도 속은 얼마나 심란할지 누구보다 최측근이었던 은기가 잘 알았다.
비틀대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은기는 마음을 다잡고 휴대폰을 고쳐 쥐었다.
’나도 슬슬 가볼까.‘
내가 더 사랑한다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그가 스마트키를 허공에 던졌다가 받으며 휘파람을 불었다. 운전하면서 윤수의 어머니께 가져갈 선물도 조금 더 생각해 볼 예정이었다.
’수정 누나한테 메이크업 부탁도 해놨고. 완벽해.‘
오늘 집에서 나오면서 생각했던 해야할 일은 모두 해치웠다. 남은 건 1시간이라도 윤수의 얼굴을 보고 가는 것 뿐이다.
차문을 열던 은기가 메이크업 아티스트 수정을 생각하자마자 떠오른 생각에 멈칫했다.
’아, 방영일 언제였지.‘
은기의 집에서 윤수와 함께 촬영했던 예능의 방영일도 차근차근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