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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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달라진 모습에 진기가 말해 보라는 듯 눈짓을 보냈다. 확실히 예전과는 많이 변했다. 이렇게 오래 눈을 마주치고 있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늘 먼저 피하거나 자신감 없이 아래로 내리곤 했는데. 

맥주가 없어진 윤수의 빈 잔 속을 진기가 조용히 따라주었다. 깍지를 끼며 그 역시 진지한 태도로 대꾸했다. 

“말해봐.”

같은 시각, 은기는 선배인 예나와 만나고 있었다. 원래 윤수와 하루종일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지만 약속이 있다며 안된다는 통보를 받고 마음을 돌려 그녀를 만났다. 용건이 있기도 했다. 

예나가 어둑한 칵테일 바에서 손을 번쩍 들어 은기를 맞았다. 

“뺄 줄 알았더니 용케 나왔다?”

네온사인이 가득한 내부에서 그가 회색 후드를 벗어내리며 선글라스도 뺐다. 긴 다리를 테이블 안 쪽으로 구겨 넣으며 은기는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안 나오려고 했지. 그런데 버려졌어.”

과장되게 놀라움을 표시하며 예나가 턱을 괴었다. 큰 눈에 화려한 외모를 띈 그녀를 사람들이 연신 흘끔댔다. 맞은편에 있는 훤칠한 키의 미남까지 더해지자 시선은 두 배로 불어났다. 

“흐응. 누구야? 하은기를 걷어 차고 다른 약속을 잡는 여자가?”

“글쎄. 용감하다 못해 아주 멋진 사람.”

“푹 빠졌나 보네. 잘났어. 너 그런 얼굴 처음 본다?”

은기는 다가온 직원에게 주문을 넣고 담배를 물었다. 불을 붙이며 그가 눈만 올려 예나를 마주보았다. 

“아무튼 그 이야긴 됐고, 나 부른 게 피윤수 씨 다리 놔달라는 용건이지?”

“역시 너라면 알 줄 알았지. 정확해.”

재떨이를 앞으로 끌어다 놓으며 그가 연기를 피웠다. 

“접근용이야, 아니면 정말 감사의 의미야? 그건 확실히 하자, 선배.”

“애매한데?”

“키 작은 남자 싫어하지 않았나?”

“살다 보면 취향 안 타는 사람도 나타나기 마련이야.”

은기는 도착한 블랙 러시안을 한 번에 들이켰다. 입술을 손등으로 훔치며 그가 단호하게 말했다. 

“관심 꺼. 그 사람, 애인 있어.”

예나는 실망한 듯 한숨 쉬며 어깨를 작게 들썩였다. 

“역시. 괜찮다 싶으면 다 짝이 있구나. 골대는 어때? 공 넣어볼 만한가?”

은기가 피식 웃더니 한 손에 끼우고 있던 담배를 까딱여 재떨이로 잿빛 먼지를 떨어뜨렸다. 

“꿈 깨. 완벽 방어니까. 절대 불가능.”

“아쉽네. 네가 그렇다면 정말 그런 거겠지. 휴.”

잠깐이나마 기대하던 예나가 정말 아쉽다는 얼굴로 칵테일이 든 잔을 휘휘 흔들었다. 이를 지켜보던 은기가 불쾌한 듯 눈썹을 찌푸렸다. 

“뭐야. 진심이었어?”

“네가 그 상황 안 되어봐서 모르겠지만, 정말 백마 탄 기사님 나타난 기분이었다니까? 게다가 경찰서 앞에서도 다시 한 번 좋아지더라고. 날 정말 이해해주는 것 같아서.”

은기가 연기를 뿜더니 혀를 찼다. 

“선배 진짜 외롭구나. 사람 찾아봐. 다른 사람으로.”

“아니면 네가 다시 올래?”

농담처럼 넌지시 던져지는 말에 은기는 피식 웃기만 했다. 그가 그녀의 헛바람을 몰아내듯 연기를 길게 뱉었다. 

“그것도 꿈 깨. 내 골대도 만만치 않으니까.”

“이렇다니까, 정말.”

그녀가 투덜대며 남아 있는 칵테일을 홀짝댔다. 달달한 향이 넘어가도 끝은 알싸한 알코올 향이 맴돈다. 사실 연애에 급한 것도 아니고, 정말 윤수에 대해 궁금해서 은기를 부른 것이었다. 

’겸사겸사.‘ 

은기와는 어떤 이야기를 해도 마음이 편했다. 최근 안 좋은 일도 당한 터라 함께 있을 때 편한 사람과 대화를 하고 싶었다. 물론 은기가 윤수와 긴밀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고 말이다. 

예나가 빙긋 웃으며 연주하듯 잔 위를 손가락으로 훑었다. 

“너처럼 눈치 빠르고 알아서 배려해주고 척척인 사람 찾기 힘들더라. 불편해.”

은기가 가볍게 말하며 블랙러시안을 한 잔 더 추가했다. 

“나같은 놈 찾기 힘들 거라고 했잖아.”

분명 헤어질 때 그렇게 말했다. 그때는 갓 신입 모델이 무슨 자신감인가 했는데 몇 년 사이 대형 팔방미인으로 커 버렸다. 

“그 자신감은 여전하고.”

은기가 무표정한 얼굴로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꺼버렸다. 

“나를 잘 아니까.”

농을 섞어 그녀가 제안을 던졌다. 진심은 아니고 시간을 떼우는 정도의 가벼움이었다. 다른 장르와 믹싱되어 간간이 섞여 흐르던 재즈가 볼륨을 더욱 커진다. 

“넌 골대 있는 거 확실해? 사귀는 사람 없으면 다시….”

“있어. 진짜로.” 

“그럼 다음 텀은….”

“다음도 없어.” 

너무 단호했다. 정색하는 태도에 예나가 볼멘 목소리로 투덜댔다. 던져본 말인데 단칼에 계속 잘려나가자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앞으로 그 사람이랑 어떻게 될지 네가 어떻게 알아?”

그가 팔에 걸리적대는 선글라스를 후드 끈이 달린 가슴팍 위로 꽂아 버렸다. 

“말했잖아. 날 잘 안다고 내가 어떤 놈인지 잘 아니까.”

“여행하면서 깨달았다는 그거?”

“잘 기억하고 있네.” 

은기가 세계여행을 하며 가장 많이 던졌던 질문이 ’나‘에 대한 의문이었다. 아무리 돌이켜 생각해도 그는 동생에게 카메라를 사주었을 거고 상황은 변하지 않을 것이었다. 후회해도 변할 건 없었다. 그러니 더 이상 자신을 책망할 것도 없었다. 

그는 있는 자신 그대로 행동하고 산 것일 뿐이다. 동생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집에만 갇혀 우울증에 시달리던 동생이 카메라로 인해 얼마나 달라졌던가.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상황들에 대해 정확히 안 순간 그는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보다 거침없어졌다. 어떤 상황이든 자신감이 충만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윤수 이상으로 좋아할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도 가슴에서 나왔다. 

은기는 좀 더 부드럽게 웃더니 블랙 러시안을 한 번에 반쯤 넘겨 버렸다. 

“선배도 선배 좋아하는 사람 널렸잖아.”

“널린 사람 중에 내 건 잘 안 보이더라. 넌 찾은 것 같아 보이지만. 나도 찾은 줄 알았더니 튼튼한 골대가 버티고 있다고 하질 않나.”

말없이 씨익 웃는 은기를 못마땅하게 보던 예나가 추가 정보를 말해주었다. 별 영양가 없는 이야기긴 하지만 가쉽거리는 언제나 이 곳에서 환영이다. 

“민영이가 너 좋아한다고 소문 파다하던데. 알아?”

“누구? 주민영?”

주민영은 아역 배우에서 커서 이제 떠오르는 샛별이었다. 어려 보이는 페이스에 연기력도 출중해 감독들이 탐낸다는 인재기도 했다. 

“응. 걔가 네 얼굴 한 번 보겠다고 온갖 수 다 쓰고 다니던걸.”

은기가 머리 뒤로 깍지를 끼고는 푹신한 소파에 기대었다. 

“그러라고 해. 헛수고지.”

“그 만만찮다는 네 골대?”

“어. 튼튼하다 못해 방어력 만렙이니까 어림도 없어.”

“잘났다, 잘났어.”

예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곤 화려한 보석이 박힌 클러치를 냉큼 집어 들었다. 

“가자. 윤수 씨 연결해 줄 거 아니면 볼 일 끝났어. 나도 윤수 씨한테 번역 일이나 맡길까.”

은기가 도끼눈을 뜨고 그녀를 노려보았다. 

“아까까지 나한테 다음 텀이 어쩌고 했으면서.”

예나가 팔짱을 끼고 코웃음을 쳤다. 

“해본 소리지. 설마 내가 너랑 다시 사귀겠니? 비슷한 인간끼리 사귀는 게 얼마나 별로인 지 온 몸으로 알았는데.”

“그건 그렇지만.”

피식 웃은 은기가 계산하러 일어서자 예나가 뒤에서 그를 부르며 카드를 흔들었다. 

“이미 계산은 끝.”

한 쪽 다리를 꼬고 까딱대며 금빛 카드를 흔드는 자신만만한 모습이 예전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예나가 다시 휙 뒤돌며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혹시 해서 말하는데, 끼어들지마. 남승우 그 새끼, 가만 안둘 거니까."

혼란이 사라진 자리에는 그녀다움이 살아나 어느덧 빈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활활 타오르는 눈빛이 그녀의 분노를 대변했다. 당한 것은 몇 배로, 복수는 나의 것이라 외치는 평소의 신념이 고스란히 보였다. 

’하여간 쿨해.‘

이런 사람이 왜 그런 일을 당했는지는 의문이지만 은기는 예상할 수 있었다. 누구나 원치 않은 상황을 갑자기 맞닥뜨렸을 때 패닉이 오고, 그럴 땐 평상심을 유지하기 힘들다. 평소처럼 행동할 수도 없다. 

’그 사람도 그랬겠지.‘

윤수 생각이 나자 입맛이 썼다. 그가 당해야 했던 일이 생각보다 끔찍해서 듣는 내내 어찌나 놀라고 분노했던지. 

갑자기 윤수가 보고 싶어진다. 그 까만 눈망울이 초롱초롱하게 자신만을 응시하는 것이 고팠다. 

은기가 새로운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며 주섬주섬 일어나는 예나에게 말했다. 

“먼저 가. 전화 좀.”

그가 전화를 걸 때, 윤수는 여기까지 온 본론을 막 진기에게 끄집어 내고 있었다. 

“네가 맡은 사건 말인데. 진척 상황이 어때?”

진기가 손가락을 흠칫 떨었다. 윤수가 알거라곤 생각을 못 했던 탓이었다. 이내 냉정을 되찾은 그가 고개를 들고 물었다.

“은기가 알려준 거지?”

말없이 고개가 위아래로 끄덕대는 것을 본 진기가 골치 아픈 듯 인상을 썼다. 

“자세한 건 말해줄 수 없지만, 조만간 이 일 때문에 너에게 연락하려고 하던 참이었다.”

진기는 윤수와도 연관이 있는 집단을 쫓고 있는 모양이었다. 해당 사이비 종교는 큰 규모의 기업을 기반으로 정계 쪽으로도 깊숙이 파고든 바람에 잡기가 힘들었다. 그때도, 지금까지도. 

윤수가 크게 한숨 지었다. 왜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건지. 

“역시. 그랬구나.”

진기는 걱정스러운 눈길을 던지며 술병을 잡았다. 

“참고인으로 출두할 수도 있어.”

꼴꼴대며 맥주병에 남은 황금빛 액체가 윤수의 잔으로 흘러들었다. 

“은기는 알게 하지마. 그런 일에 다시 엮이는 거, 분명 싫어할 테니까.”

“그 녀석이라면 그렇겠지.”

은기 이야기를 안주 삼아 주거니 받거니 하자 분위기가 한결 온화해진다. 이름을 거론하는 것만으로도 그리 된다. 이 자리에 없는 사람이지만 여기 있는 것 같아 윤수는 마음이 푸근해졌다. 사적인 이야기도 술술 나왔다. 얼마 전까지도 진기와 이런 분위기로 대화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는데, 놀라운 일이었다. 이 모든 것이 은기를 만나면서부터 가능해졌다. 

윤수가 맞은편에 앉은 단정한 미남을 흘끗 보더니 옅게 웃었다. 

’진기랑 은기 이야기도 편하게 할 수 있게 되다니.‘

진기가 펼쳐놓은 그늘 어딘가에 항상 걸려 파닥대는 기분이었는데, 그는 이제 헤쳐 나왔다. 드넓은 바다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옴짝달싹할 수 없었던 그늘을 자를 수 있도록 해준 것도 은기 덕분이다. 생각하자 또 보고 싶었다. 

’병이라니까.‘

요즘 윤수에게 새로 생긴 병이었다. 양반은 못 되겠는지 그 타이밍에 은기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윤수가 받자마자 이제 너무나 익숙해진 은기의 다정한 목소리가 노래처럼 흘러나왔다. 

-어디에요?

“여기 합정역 R-Texas.”

-어. 나도 그리 멀지 않은데. 그 쪽으로 갈까요?

윤수가 흘끔 진기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 쪽으로 이동했다. 의아한 듯 보는 진기의 시선이 여기까지 쏠린다. 들락거리는 남자들을 불편하게 보면서 윤수가 통화에 겨우 집중했다. 

“아니. 아직 이야기가 덜 끝나서.”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오래해? 친구랑 본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게….”

진기를 만난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강심장은 아직 아니었다. 싫어할 것이 분명한데 일일이 사정 설명하기도 어렵고, 대충 친구라고 둘러댄 것이었다. 

거짓말을 잘 못하는 성격 탓에 쩔쩔매자 은기가 짧게 침묵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지금 보고 있는 사람, 친구 맞아?

“정말 친구야.” 

진기도 친구니까 거짓말은 아니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윤수였다. 의심스러운 듯 진위를 파악하려는 것처럼 뜸 들이던 은기가 이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됐고. 친구면 가도 상관없겠네. 거기 있어요. 갈테니까. 

“자, 잠깐!”

하지만 이미 통화는 끊어졌고, 은기는 한다면 하는 성격이다. 

윤수가 고민되는 얼굴로 미간을 좁히고 불 꺼진 휴대폰 화면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아직 이야기는 덜 끝났는데 이대로 가야 하나.‘ 

은기도 마찬가지로 고민스럽게 휴대폰을 내려보았다. 평소라면 친구와 잘 만나고 오라며 넘길 수도 있었지만 워낙 윤수의 태도가 수상했다. 

’방금 거짓말 했어.‘

믿기지 않지만 직접 확인하기 위해 그는 곧장 윤수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거듭되는 고민을 하며 자리로 돌아가자 진기가 걱정스럽게 물어 왔다. 

“누구야? 왜 그렇게 쩔쩔매. 번역 쪽 클라이언트? 컴플레인?”

윤수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비슷해.”

“연차 냈다고 하지 않았나. 쉬는 날에 염치 없는 고객이군.”

문제는 당장 이 쪽으로 달려올 성질 급한 클라이언트다. 진기와 만나고 있는 것을 본다면 구도가 썩 좋지 못할 것도 분명했다. 

윤수는 빠르게 이야기를 매듭지으려 했다. 

“하던 이야기 마저하면, 은기는 모르게 해줘. 내가 이런 일에 엮여서 너와 만난다는 것도 불편해 할 거고. 이것저것 마음에 걸려.”

모든 일의 원흉인 그 사람을 떠올리자 윤수는 벌써부터 마음이 갑갑해졌다. 진기는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그를 위로했다. 

“알았다. 그렇게 하지. 너무 신경쓰지마. 내 선에서 처리할 수 있는 건 알아서 할 테니까.”

다음 전화 순번은 진기였다. 급한 용무인 듯 진기는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떴다. 은기가 올 시간이 다 되어 초조해진 윤수가 이대로 가버릴까 고민하다가 자리를 지켰다. 아직 청첩장도 받지 못했다. 

’빨리 와.‘

하지만 한참 기다려도 용무가 길어지는지 올 생각이 없어 보인다. 진기가 나간 곳을 원망스럽게 보던 윤수가 손을 꽉 쥐고 입구만 보았다. 

그리고, 은기가 기어이 도착하고야 말았다. 

오자마자 두리번대며 찾던 그는 귀신같이 윤수가 있는 곳을 바로 알아냈다. 감인지 눈이 좋은 건지 몰라도 은기는 회색 후드를 쓴 채 이 밤에 수상쩍어 보이는 선글라스를 낀 채 성큼성큼 다가왔다. 

윤수의 맞은편에 털썩 앉은 은기가 옆에 있는 빈 잔을 물끄러미 보았다. 

“친구는 갔어요?”

긴장된 기색으로 윤수는 진기가 나간 곳을 살폈다. 아주 급한 일이라 통화를 끝내자마자 바로 가게를 나갔으면 좋겠다. 은기와 마주치지 않게. 

그는 간절히 바랐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형체 없는 검은 손이 심장을 짜부라지도록 쥐어짜는 기분이었다. 

쿵쿵대는 가슴을 애써 감추며 윤수는 태연한 척 했다. 

“아니. 전화하러 나갔어.”

은기가 싸늘하게 웃으며 팔짱을 끼고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곧 오겠네.”

마침 투명한 유리문이 열리더니 덩치 큰 남자가 서둘러 들어왔다. 

윤수의 안색이 달라지고, 은기는 다가오는 이에게 선글라스 뒤로 알 수 없는 눈빛을 던졌다. 키스할 때 더없이 적극적으로 변하던 적당히 도톰한 입매는 냉정히 일자로 다물려 있었다. 

“은기?”

그제야 은기를 발견한 진기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네가 여긴 웬일….”

형의 말을 자르며 은기는 알았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 같이 있었구나.”

은기가 진하게 미소지으며 선글라스를 내려놓았다. 아무 감정 없는 유리알 같은 갈색 눈이 두 사람을 찬찬히 번갈아 보고 있었다. 

“이제 이해가 가네. 반응 이상했던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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