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면 위로 올라온 하진기 -->
윤수의 눈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모른 척 할 수 없었던 것은 그의 과거와 양심이었다. 그 날 어두운 창고 속에 버려둔 피윤수 자신이었다.
은기는 부어오른 턱에 손을 가져다 댔다. 냉찜질기를 잡고 있던 탓에 차가워진 손이 그의 아픔을 달랜다. 그가 윤수의 부은 곳을 만지작대며 진지하게 말했다.
“나 이제 들을 자격 생긴 것 같은데. 무슨 일 겪었는 지 듣고 싶어. 알아야 할 것 같아. 아니, 알고 싶어.”
언제까지 도망만 갈 수는 없다. 함께 알고, 아픔은 공유하고 싶다. 더 이상 윤수를 그만 아는 새까만 시궁창 속에 두고 싶지 않았다.
윤수는 차가운 손 위를 제 손으로 덮으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알면 네가 날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여기까지 와서도 그런 걱정이라니. 은기가 말도 안된다는 듯 피식 웃었다.
“무슨 소리야. 절대 그럴 일 없다는 거 알잖아. 나 못 믿어요?”
윤수가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하나하나 그가 가진 새까만 과거의 실타래를 풀어 놓았다.
대학교 정문 문턱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고, 그 전화가 가리킨 장소에서 납치당했다. 그 곳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윤수는 자세한 것은 은기를 위해 생략했다. 하지만 얼추 언급되는 묘사나 어두운 창고, 거듭되는 폭력과 인간의 존엄을 깎는 잔인한 말들에 은기의 얼굴은 서서히 굳어 갔다.
그 뒤로 이어지는 윤수의 피나는 노력,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반복되는 관계 부분에 접어들자 은기는 더욱 심각해졌다. 거듭되는 실패에 이르러서는 숨만 쉰 채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어 진기에게 닿았다. 윤수는 머뭇댔다. 그의 동생이자 현재 애인이 된 은기에게 그와의 일을 풀고 싶지 않았다. 은기에게도 그다지 기분 좋은 일이 아닐 것이다.
다행히 은기가 윤수의 말을 적절하게 끊어 주었다.
“알았으니까 그만 해요.”
정신 차려보니 윤수는 은기의 품에 갇혀 있고, 온 몸에 식은땀을 흘리며 발작하듯 떨고 있었다. 은기가 그의 등을 쓰다듬더니 땀으로 흥건한 이마를 쓸어주고 끌어안았다.
“이제 그만해.”
그래도 뱉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응.”
은기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많은 것이 포함된 기나긴 한숨이었다. 그 속에서 분노와 슬픔, 아픔과 고통이 휘몰아쳤다.
“나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남자랑 만나고 있었네. 나같음 그렇게 못 버텼을 것 같은데.”
입으로 꺼내놓기 힘든 것들을 토해낸 여파였는지 몸에서 번지는 떨림들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이를 숨기려고 윤수가 그답지 않게 가볍게 말을 던졌다.
“너라면 나보다 좀 더 잘 버티지 않았을까. 체력도 좋고, 싸움 잘하니까 때려 눕히고 나올 수 있었을지도.”
은기는 그 말조차 떨면서 하는 그에게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이 상황에서 농담이 나와?”
신체 건장한 남자라도 여러 사람이 작정하고 도구를 이용해 묶어 두는데 당할 수는 없다. 나이도 어릴 때였다.
“그만 떨어요. 가서 그 새끼들 죽여버리고 싶어지잖아.”
은기가 그의 정수리 위로 턱을 얹고 다독였다. 머리에서 그가 쓰는 장미 샴푸향이 났다. 윤수는 진정시키려 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누군가한테 말하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잘 안 멎네.”
윤수가 괜찮아질 때까지 기다려주던 은기는 터지는 화를 참다 못해 밖에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돌아왔다. 많이 차가워진 가을의 새벽 날씨가 그의 등과 품 안으로 넉넉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깊게 가라앉은 갈색 눈에 옅은 분노의 안개가 깔려 있다. 그 안개는 쉽게 걷힐 것 같지가 않았다.
은기가 술잔과 양주를 꺼내 왔다. 지금은 술이 필요할 때다.
“범인은 잡힌 건가?”
건네는 술잔을 받자 냉큼 황금빛 액체가 꼴꼴대며 차오른다. 윤수가 고개를 내젓고 자신의 잔에도 술을 따르는 은기를 물끄러미 보았다. 그는 양반 다리로 침대에 앉더니 협탁 위로 술병을 올려 두었다.
“…아직. 전부는 아니야. 일부는 잡혔어.”
“대체 어떤 미친 새끼들이지? 누구야?”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가득 찬 술을 조금 입 안에 머금었다. 써야 할 술이 이상하게 달았다. 현실이 더 차갑고 쓰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사람들 있어. 본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받지 못할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
맹목적이고 광적인 믿음으로만 살 수 있는 그들을 떠올리자 윤수는 다시 한기가 들었다.
“경찰들이 찾고 있을 거야. 이제 신경 끄자.”
은기가 헛웃음을 짓더니 무시무시한 얼굴로 술을 원샷했다. 그리곤 협탁 위로 술잔을 세게 내려놓았다. 그는 술이 묻은 입술을 손등으로 거칠게 훔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법 기관 그렇게 무시 안했는데. 그때 잡은 놈들은 제대로 형 집행한 거 맞죠?”
“돈써서 형량을 줄였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잘 모르겠어.”
은기가 냉소적으로 말했다.
“진기 형이 그런 놈들한테 형을 최대한 때려줘야 할텐데. 뒤로 봐주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가만히 있던 진기가 소환되었고, 윤수는 그를 위해 대변하듯 더듬댔다.
“진기는 그럴 사람이 아니잖아. 잘하겠지.”
형을 두둔해 주는 것이라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닌데, 하필 그 형이 윤수의 전애인이기도 하다. 은기는 묘한 기분에 미간을 구기고는 술을 더 따랐다.
“하긴, 그리고 요즘 사이비 종교 사건이니 뭐니 그것 땜에 정신 없어 보이던데. 엄청 신경 쓰는 것 같긴 했어요.”
윤수가 눈을 크게 뜨더니 은기가 던진 단어를 곱씹었다.
“사이비 종교?”
그러더니 허겁지겁 은기를 붙들고 물었다.
“파가 어디라고…? 혹시 들었어?”
술잔을 입에 털어 넣으려던 은기가 의아하게 그를 보았다.
“거기까진 못 들었는데. 물어볼까요?”
휴대폰까지 들어가며 적극적으로 나오는 은기를 오히려 윤수가 말렸다. 막상 물어보기 두려운 얼굴로 그는 슬잔을 꽉 쥐었다.
“…아니, 됐어. 괜찮아.”
윤수를 수상하게 보던 은기는 그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자 금방 포기 했다. 억지로 묻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제 그런 이상한 건 신경 끄고. 나도 알았으니까, 혼자 끙끙대지마. 무슨 일 생기면 아까처럼 나한테 제일 먼저 연락하고. 스케줄이고 뭐고 째고 달려 갈테니까.”
일이 제일 소중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은기에게도 소중한 것은 윤수에게도 소중한 것이 되었다. 윤수는 그를 말렸다.
“그러지마. 매니저님한테 나 찍힌다. 블랙리스트, 요주의 인물로.”
“그 형 블랙리스트 같은 건 신경 안써도 돼. 완전히 자기 기분 위주니까.”
서로의 입가에 머문 웃음이 가벼운 공기를 타고 두 사람에게 각자 옮겨다닌다. 은기가 저도 모르게 입술을 윤수의 턱 위로 가져다 대려다 멈칫 했다. 그러자 윤수가 선수를 쳤다.
“입술은 좀 가라앉은 것 같아.”
멀어지려던 은기가 어이없다는 듯 픽 웃엇다.
“뻥 치지 마요. 아픈 거 다 아니까.”
“진짜야. 키스 정돈 해도 될 것 같….”
변명처럼 주절대던 그 작고 오물대는 입을, 은기의 적당히 도톰한 입술이 먹어 버린다. 큰 손이 윤수의 정수리를 감싸쥐고 두피를 파고든다.
입술이 위아래로 크게 움직이고 그 사이로 혀가 야하게 얽혀들었다. 윤수가 무게를 지탱하듯 은기의 셔츠를 끌어당겼다. 마치 그 행동이 보채는 것처럼 느껴져 흥분한 은기가 부드럽게 이어가던 키스를 격렬한 톤으로 바꾸었다.
“흐읏.”
각도를 바꾸어 코 아래로 붙다시피 한 입술 사이로 엉겨 붙은 붉은 살덩어리들이 외설스럽게 오갔다.
은기의 혀가 입천장을 훑고 도돌도돌한 부분과 혀 뿌리까지 삼키려 했다. 온 몸에서 날카롭게 일어선 성감대가 우수수 요동을 쳤다.
그 즈음에서 은기는 초유의 인내력을 발휘해 키스를 끊었다. 참을 인 자가 새겨진 이마를 하고서 은기가 아쉬움을 달랬다.
“사람 미치게 하는 데 뭐 있어. 너무 빨리 진화하지 마요. 적응 안 돼.”
숨을 고른 윤수가 미소지으며 맞받아친다.
“내가 이 정도로 진화해야 널 따라잡을 수 있지.”
은기가 키득대며 장난스런 으름장을 놓는다.
“뭐, 아직 멀긴 했나?”
“조금씩 따라잡을게. 늦어도 기다려줘.”
“당연하죠.”
윤수는 아무리 늦어도 마음을 내어 움직인다. 이미 떠난 출발선으로 되돌아 가려던 것도 은기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마음을 보이자 그는 출발선을 등지고 은기가 기다리고 있는 피니쉬 라인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은기는 촉촉하게 젖은 윤수의 입술을 손으로 매만졌다.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 이유가 이건데.”
결국 그는 보란 듯 당당하게 골인했다. 고백도 그가 먼저 하지 않았는가. 그 말도 안 되는 어둡고 불합리한 과거 속에서도 윤수는 낯선 폭력에 굴하지 않았다.
은기는 울컥 올라오는 쓴 맛을 삼키고 윤수의 가슴에 머리를 기댔다.
“사랑해요. 아프지마. 정말 농담 아니야. 당신 아프면 내가 더 아파.”
윤수가 위로하듯 맞닿아오는 갈색 머리를 안았다. 흐트러진 머리조차 사랑스럽다. 그 곳에 키스하며 윤수가 중얼거렸다.
“응. 나도 그래.”
아프지 않고선 사랑할 수 없는 것인가.
윤수는 조금 원망도 들었지만, 은기를 주었기에 더 이상 이 곳이 원망스럽지 않았다.
***
윤수는 번역 사무소에 연락해서 이틀 연차를 냈다. 하루는 완벽히 쉬었고, 이튿날은 진기를 만났다. 은기와 만나고 나서는 진기가 있는 검찰청에 더 이상 가지 않게 되었고, 이번에 만나는 것이 처음이었다.
그와는 끝내야 할 산이 있었기에.
서울 지검 근처 술집은 싫다며 진기는 최대한 먼 곳으로 약속 장소를 잡았다. 하진기 다웠다. 그는 언제나 윤수를 자신의 직업과 멀리 떨어뜨려 놓고 싶어 했다.
’그래서 와서 기다리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약속한 술집으로 가자 칼같이 정시 정각에 도착한 진기가 보였다. 5분 정도 늦은 윤수가 헐레벌떡 뛰어갔고, 여전히 차가운 얼굴로 앉아 있는 진기의 맞은편 의자를 끌어당겼다.
이마가 반듯하고 코가 높으며, 선이 굵은 남자가 윤수를 보고 인사하다 딱딱하게 표정을 굳혔다. 여기저기 멍이 빠지지 않은 얼굴과 맞은 흔적이 보였기 때문이다.
“…데이트 폭력도 상담 받는다.”
잠깐 무슨 뜻인지 이해 못 하던 윤수가 그 말을 알아듣곤 손사래 쳤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은기는 절대 아니야.”
펄쩍 뛴 윤수는 물끄러미 바라보는 진기의 시선에 소스라쳤다. 생각해보니 진기에게 은기와 사귄다고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실수했다.‘
창백해진 윤수가 가방을 내려놓곤 제 몫의 냉수를 한 번에 들이켰다. 목이 탄다. 데이트 폭력이라고 언급했는데, 은기를 말했다. 그와 어떤 관계인지 제 입으로 밝힌 셈이다. 동생과 사귄다는 걸 알면 경멸할까.
냉수에 코를 박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면서 윤수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백하려 했다.
“나 사실은, 은기랑 사….”
“사귀는 거 알고 있어.”
진기가 한 발 더 빨랐다. 그가 메뉴판을 가까이 끌어당기고 뒤적였다. 멍해진 윤수는 눈만 깜박대다 겨우 말끝을 내었다.
“어, 어떻게?”
“그 놈이 이야기 했으니 아는 거지.”
“은기가? 뭐라고 했어?”
“너와 사귄다고 선전 포고를 했다.”
“뭐?”
아득해지는 정신을 부여잡고 윤수는 자초지종을 들었다. 진기는 그답게 짧고 간결히 은기가 했던 말을 전해주었고, 윤수는 들으면 들을수록 얼굴이 붉어졌다.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은기의 진지한 마음이 전해져서였다. 달아오른 볼에 냉수가 담긴 잔을 갖다대며 윤수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걘 정말…. 대단해.”
은기는 윤수와의 관계를 두고 솔직하게, 정면으로, 온 몸으로 부딪쳐 왔던 것이다. 어떻게든 끌어안고 함께 이겨나가기 위해 노력했다. 타고난 에너지를 타인을 위해 쓸 줄 아는 사람이다.
윤수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가 정말 고마웠다. 별 것 아닌 자신을 위해 이렇게까지 노력해줘서.
진기가 피식 웃는다.
“하은기가 난 놈이긴 하지.”
은기에 대한 짧은 평을 듣던 윤수가 불만스럽게 눈썹을 찌푸렸다.
“그런데 평소에 은기를 어떻게 보길래 그런 막말을 해?”
메뉴판을 눈으로 훑은 진기가 아무렇지 않게 툭 내뱉었다.
“사고뭉치. 제멋대로 사는 놈.”
제도권의 정석으로 살아 온 진기의 눈으로 보면 확실히 그런 소지는 있다. 하지만 윤수는 은기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색하며 그를 두둔했다.
“착실하고 성실하게 사는 애야. 그런 말 하지마.”
진기는 묘한 눈으로 윤수를 보더니 다 고른 건지 메뉴판을 그에게 슬쩍 밀었다.
“많이 친해졌나 보지?”
친한 정도가 아니라 갈 데까지 간 사이다만. 윤수가 슬쩍 눈을 피했다.
“어느 정도는.”
진기는 딴청 피우는 윤수를 보더니 옅게 웃었다.
“은기라면 아마 너와 잘 맞을 거라 생각했지. 예상대로라 다행이야.”
“예상대로라니?”
진기는 윤수의 의문을 무시하고 벨을 눌러 직원을 호출했다. 독일산 수제 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시킨 그가 다른 이야기를 꺼내었다.
“상처가 나 있긴 해도 얼굴은 밝아 보여.”
아마 은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동생은 사랑하는 자를 행복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으니까. 게다가 욕망을 마주 보는 방식이 형제지만 많이 달랐다.
윤수가 망설이다가 찬찬히 본론을 끄집어냈다.
“너는 곧 결혼하지?”
“…그래.”
“청첩장은?”
“가지고 왔어.”
“축하한다.”
윤수는 진심으로 활짝 웃어 주었다. 마음을 담아 친구인 그의 앞날을 축하해 줄 수 있었다. 종업원이 내온 맥주가 아주 시원했다.
진기와는 가장 오래 갔다. 전애인으로부터 구해준 것이 계기가 되어 윤수는 자신의 과거를 모조리 털어놓았다.
그 이후로 종종 대학교 내에서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분홍 꽃잎이 캠퍼스 내에 아름답게 떨어지던 날, 꽃잎이 바람에 날리다 윤수의 손등 위로 떨어졌다. 진기가 충동적으로 꽃잎을 잡고, 윤수의 손을 잡았다. 그 뒤로 윤수가 키스하는 것을 진기는 거절하지 않았고, 둘은 계약 연애로 사귀었다. 서로 약속 하나씩을 걸고 말이다.
[삽입 섹스는 헤어지는 그 날까지 하지 말자.]
[남자와 사귀는 게 절대 밖으로 새지 않았으면 좋겠다. 계약 연애의 본질을 잊지 않도록 해.]
그는 약속대로 정말 선을 지켜 주었다. 반 년도 넘게 깊은 관계를 피하는 윤수를 처음 약속대로 그대로 두었다.
일 년 정도 되었던 날, 윤수가 딱 한 번 용기내어 먼저 삽입 섹스를 제안했지만 거절했다. 이유는 처음 약속대로 하자는 것이었지만, 그 이상은 알 수 없었다. 애무해 주어도 구역질이 나지 않았던 것은 진기가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이상은 허락하지 않았다. 약속은 윤수가 한 것이지만 오히려 그 약속에 얽매인 것은 하진기 같았다.
정말 이상한 관계였다. 윤수는 헤어지고 나서야 알았다. 정작 진기의 속내는 하나도 알지 못한 채 끝을 보았다는 것을. 그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자세히 알지 못한 채로 관계의 종말을 맞았다는 것을 말이다.
윤수는 맥주잔을 만지작대며 말했다.
“너를 너무 몰랐어.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
진기가 불쑥 물었다.
“이제 행복해?”
추상적인 질문이지만, 명확했다. 예전 같으면 할 수 없었던 말을 윤수가 입에 담는다. 그가 단호하게 자신만의 정답을 내놓았다.
“응.”
이번엔 윤수가 되물었다.
“그럼 너는?”
진기는 말없이 미소짓기만 했다. 그 웃음이 아주 묘해서, 윤수는 왜인지 은기가 보고 싶었다. 아주 많이.
그가 주는 안락함에 기대고 싶다. 하지만 해야할 일은 해야 한다.
“묻고 싶은 게 하나 더 있어.”
윤수가 태도를 바꿔 진지하게 목소리를 깔았다.
========== 작품 후기 ==========
사실 데미안 류의 알깨기 (알까기 x) 이야기를 좋아해서 ㅋㅋ 성장물 좋아하는데 고구마는 또 싫어서 최대한 성장과 고구마의 균형을 이루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찌 잘 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
추천, 선작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좋은 밤 되시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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