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편 -->
“네 몸 다른 사람이 보는거 싫어서.”
부끄러운 듯 손등으로 눈을 가리고 말하는 윤수를 은기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가슴이 뛰다 못해 내달리고 있었다.
그는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피윤수의 몸 전부를 먹을 수 있을까. 어딜 먹어도 달달한데. 못 참고 그의 어깨를 물었다.
윤수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울상을 지었다.
“왜 그래? 아파.”
붉게 달아오르는 곳을 은기가 핥았다. 그가 피식거리다 문 곳 위에서 중얼거렸다.
“살다살다 질투도 이렇게 귀엽게 하는 사람 처음 봤네.”
그리곤 위로 올라오더니 고개를 숙여 봉긋 솟은 유두를 빨았다.
“으응…. 그만.”
퉁퉁 부을 때까지 물고 빨던 은기가 흘끗 붉어진 윤수를 올려보았다. 턱끝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은기가 올라와 턱과 입술에 키스했다.
“한 번 더 할까요?”
“나 힘들어.”
“안 힘들게 할게.”
“…조금만 쉬자, 인간적으로.”
얼굴도 모르는 만인을 질투한 이 귀염 넘치는 피윤수를 지금 당장 또 발라먹어도 될까요.
은기가 다시 눕고는 슬쩍 뒤에서 그를 안고 반쯤 일어난 성기를 부볐다.
“카메라 그냥 부수지 그랬어요.”
윤수가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 또. 뒷감당 누가 해.”
“내가 다 해. 걱정말고 사고 쳐. 다치는 거 빼곤 다 허용이야.”
“날 감당할 수 있겠어?”
“물론. 내가 감당 안하면 누가 해.”
즐거운 얼굴로 말하던 은기가 벌떡 일어났다. 험악하게 윤수를 내려보며 그는 으름장을 놓았다.
“혹시나 감당할 놈 찾기만 해봐. 가만 안 둬. 바람 피면 진짜 나 죽고 그 새끼 죽는 거야.”
전 같으면 좀 무서웠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가 별로 위협적이지도 않다. 윤수는 그저 피식거릴 뿐이었다.
“바람 핀 나는 가만 두려고?”
은기는 구겨진 미간을 문지르며 당연한 듯 말했다.
“이 몸에 손댈 데가 어딨다고. 발 밑에서 빌빌대면서 애원이나 하고 있겠지. 다시 돌아오라고. 아, 상상만 해도 비참하네.”
“그럴 일 절대 없어. 걱정마.”
갑자기 시무룩해진 은기가 도로 자리에 눕는다.
“당신이 바람 피면 그럴 이유가 있겠죠. 내가 잘못했다든가, 내가 뭔가 실수했다든가.”
윤수는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 사람이 자존감이 어쩌고 하던 그 하은기가 맞나. 지금 그는 자존심도 모두 내려놓은 사랑꾼에 불과했다.
은기는 그에게 과분한 사람이다. 저자세를 취할 필요도 없다. 사랑 앞에 동등하다지만 현실은 동등하지 않음을 윤수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차가운 현실을 짚는 대신 그는 걱정스러운 눈빛을 던지는 것으로 대신했다.
“…너 진짜 이상해진 거 알아?”
은기가 한 손으로 제 얼굴을 덮었다. 손가락 사이로 봉우리처럼 올라온 높은 콧대가 곧은 능선처럼 길게 올라와 있다.
“알아요. 내가 봐도 좀 미친 것 같아. 왜 이러지.”
윤수가 그를 토닥이며 담담하게 말했다.
“호르몬 때문일거야. 지나가면 수그러들겠지.”
인간이 사랑을 하면 나온다는 옥시토신 호르몬. 시간이 지나면 언제고 줄어들겠지. 윤수는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말하면서도 정말 그럴까? 의문이 들었다. 은기의 것은 몰라도 자신의 호르몬은 영원할 것 같다.
은기는 손을 얼굴에서 치우고 단호하게 그를 보며 말했다.
“그럴 일 없다니까. 나는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알아.”
윤수는 고개를 돌리곤 화제를 바꾸었다. 그를 믿지만 섣부른 약속은 둘에게 좋지 않다. 좋은 감정 그대로 자연스럽게 만남을 이어가고 싶다. 뒤 생각 없이 지금을 즐기고 싶다.
“근데 위에서 파티라도 해? 연예인들 보이던데.”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은기가 한숨을 쉬더니 대꾸해 주었다.
“오늘이 설마 그 날인가. 나한테도 연락 오긴 했는데, 안간다고 했거든요. 별로 좋은 파티는 아니라 무시하는 게 나아.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파티는 여기 따로 있으니까.”
은기는 은근히 뒤에서 성기를 엉덩이 사이로 부볐다. 등판까지 후끈해지는 기분이라 윤수는 얼굴을 뺨까지 붉히고 버둥거렸다. 도망 못가게 잡고 은기가 그의 정수리에 키스했다.
“그건 왜 물어요?”
“신경쓰이는 게 있어서.”
“사람? 아니면 상황?”
“둘 다.”
은기는 인상을 쓰더니 그를 세게 끌어안았다.
“뭐지. 우리 피윤수 씨가 신경쓰는 사람과 상황이라는 게? 나 말고 그런 사람이 있단 말야?”
“그…. 아무것도 아냐.”
“좀 기분 나빠지려 하는데요. 진짜 누구지.”
“사실은….”
윤수는 돌아누워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송예나 이야기를 짧게 풀었다. 찬찬히 듣던 은기가 피식 웃었다.
“그 사람 답네. 참견쟁이에, 쓸데없이 기운만 좋아선.”
그녀가 눌렀던 층수도 말했더니 은기의 얼굴이 굳는다.
“그런 곳에도 출입하는 건가? 그렇게 안봤는데. 설마, 다른 룸이겠지?”
심각해진 은기의 표정에 윤수가 눈치를 보다 물었다.
“별로 안 좋은 파티란 게 무슨 의미야?”
“독한 술과 약도 오가고 모두가 이성을 잃는 파티. 이 호텔이 비밀 보안 유지가 잘 되는 곳이라 많이들 찾거든요.”
“너도 그런 파티에 간 적 있어?”
“없어요. 내 취향도 아니고. 불법 약도 유통할 수 있어서 그런 덴 얽히는 거 아냐.”
“정말?”
“진짜, 맹세코. 내 동생을 걸고 말하는 거에요. 이거 나한테 무슨 의미인지 알죠.”
“응. 잘 알지.”
윤수는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 은기에게 그의 죽은 동생이란 모델을 시작한 이유이자 동기였다. 불가침 영역을 두고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 그는 은기를 잠시나마 의심한 것이 미안해졌다.
관계에 있어서 항상 의심하고 신뢰를 믿지 못하는 버릇이 고쳐졌나 싶더니, 아직인 모양이다. 그런 자신이 답답하고, 빨리 변하고 싶은 윤수였다. 그가 은기의 단단한 품 안에서 꿈지럭댔다.
“나 좀 갑갑해서 그런데 밖에 다녀올게.”
“요 앞에서 바람쐬요. 굳이 나갈 필요가 있나?”
은기가 턱으로 커튼 너머 펼쳐진 테라스를 가리켰다. 와인까지 준비된 멋진 곳이었지만 윤수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좀 걷고 싶어. 오면서 맛있는 것도 사올게. 편의점 들르려고.”
“룸서비스 시키면 된다니까.”
“그래도 아껴. 믿는 구석 있다 해도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은기가 품에서 빠져나가는 윤수를 미처 잡지 못하고 구시렁댔다.
“알뜰한 애인 만나서 지갑만 굳네. 내 거기도 굳고….”
윤수가 쿨럭, 헛기침을 했다. 뒤를 돌아보니 은기의 것이 단단하게 발기해 있었다. 어느 틈에? 잠깐 엉덩이에 비볐을 때 바로 선건가. 정말 건강한 아랫도리다.
윤수가 벌개진 얼굴로 대꾸했다.
“갔다와서 또 하면 되잖아.”
그가 붙들새라 윤수는 얼른 옷을 끼워입고 한 쪽 발을 허둥지둥 바지에 끼워 넣었다. 그러다 넘어질 뻔 해서 몇 번이나 바닥을 퉁퉁 튀었다. 편한 자세로 이를 지켜보던 은기가 웃어버렸다. 언제 봐도 놀리는 맛이 나는 사람이다.
“이쁜 말만 하는 피윤수 씨, 잘 다녀와요.”
***
윤수는 맥주와 안줏거리를 사들고 근처 편의점을 나섰다. 인사하는 알바생 목소리가 금방 멀어진다. 거리는 호텔과 가까워서 조금만 걸으면 된다. 걷는 김에 자꾸만 앞날을 미리 생각하는 스스로를 꾸역꾸역 나오지 못하게 밀어넣어 봉인해 버렸다.
‘지금만 생각하면 돼.’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 예전의 그에 비하면 놀라운 발전이었다. 그것이면 족하다. 그 사람이 슬퍼할 짓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다.
호텔에 들어올 때 봤던 유리문이 다시 보였다. 도시의 불빛들이 예쁘게 반짝이며 꽃처럼 유리문에 반사된다. 돌아가면 은기가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겠지.
윤수가 미소지으며 들어가려 할 때였다. 뒤에서 작은 실랑이 소리가 들려 휙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이 이상해진다.
“어? 아까 그….”
아까 봤던 송예나와 왠지 익숙한 느낌의 잘생긴 남자가 호텔 앞에서 작은 몸싸움을 하고 있었다. 행인들은 무슨 상황인지 몰라 지켜보다가 지나가기 일쑤였다.
윤수도 봉지를 들고 상황을 지켜보았다.
‘애인 사인가?’
그때, 예나와 눈이 잠깐 마주쳤다. 풀려 있던 눈에 체념과 두려움, 슬픔 같은 것들이 한데 섞여 돌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의 걸음이 갈수록 이상해졌다.
이상함을 느낀 윤수가 호텔문 앞에 봉지를 아예 내려두고 그녀를 더 자세히 살폈다. 동공도 풀려 있고, 어깨에 걸친 핸드백은 달랑대다 거의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놔! 집에 가, 갈거야!”
발음도 불안정했다. 언제나 드라마에서 명품 연기와 발성을 보여주던 그녀였는데.
“이리와.”
뒤에서 따라오던 허우대 좋은 미남이 그녀를 붙들었다. 걸음걸이가 점점 흐트러지던 송예나는 그를 피하려 하다가도 의지하기 시작했다. 몸이 제어가 안되는 듯 보였다.
윤수가 눈썹을 찌푸리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저 쪽은 남승우 아냐?’
그도 이름 있는 배우였다. 아무래도 은기가 잡은 이 호텔은 연예인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인 듯 했다.
남승우는 송예나의 허리를 한 팔로 감고 부축하여 다시 호텔 위로 데려가려 했다. 몇몇 보이는 사람들의 무관심, 혹은 불손한 호기심이 그들의 등에 머물렀다 금방 사라진다. 하지만 윤수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녀를 저대로 보내면 안 될 것 같다는 것을.
하지만 막상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괜한 상황에 끼어드는 것은 아닌가. 흔한 연인끼리의 다툼일 수도 있다.
윤수의 발걸음이 다시 호텔 쪽으로 향하다가 주춤 돌아선다. 은기와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별로 안 좋은 파티란 게 무슨 의미야?]
[독한 술과 약도 오가고 모두가 이성을 잃는 파티. 이 호텔이 비밀 보안 유지가 잘 되는 곳이라 많이들 찾거든요.]
뭔가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아냐. 외면하면 안 돼. 우선 알아보자.’
20살 언저리, 어둑한 골목에서 납치당할 때도 그 사람들은 가족 싸움이라는 핑계를 댔다. 아니라고 외쳐도 소용없었다. 윤수는 예전의 자신과 닮은 눈빛을 차마 지나칠 수 없었다. 고민하던 그가 눈을 질끈 감았다.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면 돕고, 아니면 그냥 오지랖 넓은 사람 되면 되니까.’
그는 은기에게 상황을 한 줄로 정리해 메시지로 보냈다. 늦을 것 같다는 것도 덧붙여서. 그리고 떨리는 가슴을 진정 시키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죄송한데, 이 분은 호텔이 아니라 집으로 모셔야 할 것 같은데요.”
금방 답장이 왔지만 윤수는 송예나를 붙들고 자신 쪽으로 데려오느라 보지 못했다.
‘역시.’
예상대로 그녀의 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는다. 술 냄새가 많이 나지도 않는데 뭔가 이상했다.
평소엔 쌀 한 포대도 낑낑대면서 무슨 힘이 솟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에게서 무력함과 좌절, 자신과 같은 눈이 보인만큼 절대 물러설 수 없었다.
“저기. 왜 이러지?”
황당한 얼굴로 윤수를 고압적으로 보던 남승우가 다시 예나를 뺏으려 했다. 하지만 윤수는 얼른 몸을 피하며 그녀를 더욱 가까이 끌어당겼다.
”예나랑 아는 사이에요?”
“모릅니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던 남승우가 그의 대답에 곧장 인상을 험악하게 구겼다.
“그럼 꺼져. 다음부턴 낄 데 안 낄 데 구분하고.”
“못 꺼집니다.”
“하? 이 새끼 봐라?”
“이 분 데려가서 어쩌려고요.”
”내 여친이랑 호텔방 잡고 논다는데, 네가 무슨 상관? 할 짓은 하나밖에 없지.”
고개를 숙인 예나가 남승우의 목소리를 듣다가 불현듯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내가 언제부터 네 여친이야, 거지같은 포주 새끼….”
확인한 윤수가 굳은 얼굴로 예나를 자신 쪽으로 더욱 끌어당겼다.
“그쪽 여친 아니라잖아요. 집으로 보내게 택시 잡겠습니다.”
“그쪽? 너 내가 누군지는 알아?”
“제가 알아야 합니까?”
남승우가 순간 욱하는 얼굴로 욕을 뱉더니 대뜸 주먹을 날렸다. 못 피한 윤수가 한 대 맞고는 넘어졌다. 예나도 중심을 잃고 휘청대다 윤수 위로 넘어졌다.
남승우는 복싱을 취미로 해서 힘이 좋았다. 피일 게 분명한 뜨끈한 것이 볼에서 흐르고 입술이 다 터졌는데도 윤수는 넘어진 예나부터 챙겼다. 그리고 다시 벌떡 일어나 필사적으로 택시를 잡았다.
그녀의 눈에서 얼핏 본 것들은 자신도 아주 뼈저리게 알고 있는 감정이었다. 원하는 않는 상황에 억지로 구겨넣어져 좌절하고 절망만 느껴야 하는 비참함.
이 자리에서 그녀를 안전한 곳으로 보내줘야 한다. 그 생각만 머릿속을 점거했다. 두려움도 모조리 잊은 지 오래였다.
20살의 피윤수가 흐느끼며 시간 뒤에서 기어나왔다.
[살려주세요….]
어둠 속에서 죽어라 외쳐도 닿지 않았던 목소리. 도움을 청해도 닿지 않았던 무기력을 누군가가 겪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윤수는 자꾸만 손을 뻗는 남승우로부터 예나를 철저히 차단했다. 맞아도 움직이지도 않았다.
“이 새끼가. 안 비켜?”
“못 비켜요.”
활활 살아있는 눈빛으로 윤수는 그를 정면으로 노려본 채 물러서지 않았다.
‘이 사람 뭐지?’
예나는 구명줄처럼 윤수를 붙들고 반쯤 끌리는 하이힐로 간신히 버티고 섰다. 작은 사람인데, 작지 않았다. 오히려 커 보였다. 필사적으로 막는 그를 보니 눈물이 났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는데, 이 사람만 제 몸을 방패로 맞아가면서 버텨 준다.
‘어째서…?’
오늘은 그녀에게 있어 최고의 날이 될 예정이었다. 좋아하던 사람과 기분 좋은 밤을 보낼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사람 대신 온 것은 남승우였다. 그는 영향력 있는 사람에게 여배우를 배달하는 중간 다리 역할도 종종 하는 인간이었고, 예나도 그걸 알고 있었다.
그는 남자들과 다수와의 관계를 맺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충격과 배신감, 두려움에 휩싸인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더욱이 그 방에 있던 와인을 홧김에 마셨더니 이상한 기운이 돌아 몸을 가누기도 힘들었다. 이성적인 생각도 불가능해졌다.
방심한 틈에 간신히 도망쳐 나왔는데 남승우에게 잡혀 다시 그 방으로 꼼짝없이 돌아갈 뻔 했던 찰나였다.
사람들은 남 일이라는 타당한 핑계로 그녀를 도울 생각조차 않았다. 남승우가 적당한 핑계를 대며 그녀의 말을 번번이 끊었던 탓이었다. 이제 끝이라는 생각에 자포자기하려던 찰나였다.
그때 윤수가 나타난 것이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봤던 덩치 작고 소심해 보이던 남자가, 놀랍게도 제 몸보다 훨씬 커 보이는 사람의 팔을 붙들고 있다. 윤수는 그녀에게 다급히 말했다.
“택시 잡고 빨리 가요. 걸을 수 있으면 도망치던가. 얼른.”
하지만 택시는 멈추려다 번번이 눈 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방적인 폭력 앞에서 달아나기를 반복했다.
예나는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굴리려 애썼다. 그를 돕고, 자신을 도와야 한다. 생각하자, 송예나.
‘경찰에 신고, 신고 해야돼.’
예나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찾았지만 어딘가 정신없이 놓고 온건지 없었다. 그녀가 눈을 질끈 감고 소리쳤다.
“여기 좀 도와줘요! 사람이 맞고 있다고!! 신고라도 좀 해, 병신들아!”
그제야 사람들이 웅성대고 호텔 안에서 보던 직원들이 쫓아나왔다.
“뭐야, 뭐야?”
“싸움 났나봐.”
“헐. 남승우 아냐? 저긴 송예나네. 중간에 남잔 누구지?”
씩씩대며 직원들의 저지도 뿌리치며 윤수에게 다가가려던 남승우는 더 이상 걸어가지 못했다.
누군가가 뒤에서 그의 팔을 부러질 듯 잡은 것이다. 음산하고 감정 없는 낮은 목소리가 시끌벅적한 현장 속에서도 또렷하게 남승우에게 전달됐다.
“야, 쓰레기.”
꽈악!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다. 악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남승우는 식은땀이 맺혀 아픈 듯 비명을 질렀다.
“개 같은 버릇은 여전하네.”
팔을 부러지게 잡은 사람은 캡모자를 쓴 훤칠한 남자였다. 그가 캡을 한 손으로 올리더니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저 사람 때린 거, 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