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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흑 휴대폰 복사는 용량 많으면 복사가 다안되는군요 모르고 올려버렸. ㅜㅜ 뒤늦게라도 올려봅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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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다른 말을 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윤수가 웃는 그를 미심쩍게 보다가 다시 일 이야기로 돌아가려 했다.
요란하게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은기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 시간에 올 사람이 있었던가?
“부른 사람은 없는데.”
윤수도 미리 언질받은 것이 없었다.
“누굽니까?”
“보고 올게요.”
은기가 벌떡 일어나 밖을 확인하러 갔다. 인터폰 화면으로 본 그는 침묵했다. 이내 은기는 진심으로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왜 이 인간이 여기 있지?”
중얼거렸지만 그의 목소리는 윤수에게도 비교적 명확히 들렸다. 싫은 얼굴로 문을 열어주자 길쭉한 남자 하나가 불쑥 들어왔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흥겹고 친근한 인사를 건넸다.
“헤이, 브로.”
주먹을 쭉 내밀며 그가 노래처럼 말했다. 은기와 비슷한 경우처럼 예능인과 모델을 오가는 ‘김석’ 이었다. 윤수는 잘 모르는 얼굴이었다.
어리둥절한 그가 노트북 너머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은기가 삐딱한 시선을 던지고 있는 사람은 멀리서 봐도 꽤 미남이었다. 각지고 작은 얼굴에 쌍꺼풀 없이 찢어진 눈이 동양적인 느낌을 자아냈다.
두 사람의 존재만으로도 거실 한 켠이 꽉 찬 것 같다. 윤수가 긴장이 더해진 얼굴로 그들을 살폈다.
카키색 코트를 입고 베이지색 면바지를 입은 그는 은기보다는 조금 작고 더 마른 체형이었다. 눈매가 사납고 무표정하게 있을 때는 함부로 접근하기 힘든 구석이 있었다.
은기가 곧 불편한 시선을 걷고 피식 웃었다. 그리곤 내민 주먹에 자신의 주먹을 가볍게 마주 대었다.
이 변화는 편집상 기승전미소로 나갈 것이다. 마치 정말 친한 사이지만 장난 좀 쳐본 것처럼.
김석이 만족스럽게 히죽 웃더니 성큼성큼 거실로 진입했다.
고양이들이 멀리 도망가서 그를 숨어 노려보았지만, 그는 아랑곳 않고 휘파람을 짧게 불었다.
“좋았어. 관문 통과. 고양이들도 안녕.”
통과의례마냥 은기와 주먹을 주고받고 도망간 고양이들한테도 인사한 김석이 배고프다며 배를 문질렀다.
“온다는 소리도 없이 웬 일이야?”‘
“집도 가까운데 친구 집에 오면 안 되냐? 냉장고 털이라도 좀 해볼까 해서 왔지.”
“내 집이지 식당이 아니거든?”
윤수는 멀리서 은기가 입씨름에서 이기기를 응원했다. 그가 말로 질 리가 없다. 아직 김석은 윤수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듯 했다. 흥미진진한 눈으로 둘의 열띤 대화(?)를 듣던 윤수는 패색이 짙어진 은기를 보고 놀랐다.
그가 의미심장한 김석의 윙크에 금방 백기를 든 것이다. 김석이 새끼손가락을 팔랑거렸다.
“나한테 신세 진 것도 있잖아. 그거.”
“…….”
은기는 움찔하더니 입을 다물어 버렸다.
김석이 말하는 것은 윤수와의 두 번째 관계에서 큰 공을 세웠던 ’돌기형 콘돔‘ 이었다. 당연히 카메라가 돌아가는 이 곳에서 쓸데없는 말이 나오면 불리한 건 은기 쪽이다. 그는 속으로 한탄했다.
’왜 하필 그 때 보인 놈이 이 녀석이었던 거야.‘
급한 장소에 같은 프로그램 스케줄로 있었던 사람이 마침 김석이었고, 그는 데뷔 동기기도 했다.
하지만 김석은 같이 놀기 좋은 친구이지, 비밀을 공유할 만한 사람으로는 적절치 못했다.
성공적으로 은기의 입을 채워버린 그가 바로 부엌으로 들어가려던 찰나였다. 김석의 어깨를 은기가 꽉 잡았다.
“이쪽에도 인사해. 먼저 온 사람 있어.”
너무 조용히 있었던 탓에 눈치채지 못 했다. 그제야 인기척을 느낀 김석이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보았다.
노트북 앞에 멍하게 앉아 그를 보고 있는 적갈색 머리의 하얀 얼굴을 한 남자가 보였다. 까맣고 큰 눈이 정처 없이 배회하고 있다.
“어, 안녕하세요! 누구세요?”
뒤에서 지켜보던 은기가 냉정하게 말했다.
“그건 이 분이 물어야 하는 거지. 넌 굴러온 돌이라고. 일하는 중이었어.”
“어…. 그럼 이 분은 ‘박힌 돌’씨인가? 그것참, 다시 인사하겠습니다. ‘굴러온 돌’입니다.”
빠른 태세 전환과 능글대는 말투에서 예능감이 좋다는 아우라가 흘렀다. 분명 이 사람이 등장하는 순간 시청률이 소폭 상승할 것이다.
윤수는 그가 들어오자마자 알았다. 김석은 윤수가 힘들어하는 타입이었다. 말로 찌르는 것이 가능하고, 거침 없고, 또 그런 것에 거리낌도 없는 사람이다.
‘내가 빠져줘야 할 타이밍 아닌가?’
사실 일 이야기는 지금 다 할 것도 아니고, 앞서 오간 것들로도 충분했다. 정 피디가 원한 건 민간인의 발굴이겠지만 그는 사람을 잘못 봤다. 윤수는 그리 생각했다.
얼핏 봐도 자신은 예능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 보인다. 그런데 왜 정 피디는 식사까지 같이하는 수고를 들였을까.
‘이해할 수 없다니까. 잘못 봤겠지.’
윤수는 이번엔 그의 촉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모르는 것이 있었으니, 정 피디는 ‘야성적인 감’ 만으로 이 자리까지 올라온 사람이란 사실이다. 뜰 것 같은 요소는 귀신같이 찾아낸다.
정 피디는 의아해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윤수를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그 사람 자체가 예능감 있는 건 아니야. 다만 감 있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거나, 그런 상황을 이끌어내는 유형이지. 태풍의 눈 같은 존재? 두고봐. 재밌어질테니까.]
그의 호언장담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