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편 (거짓과 진실 사이) -->
오감에서 쾌감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기분이었다. 윤수는 덜덜 떨리는 턱을 감추려 입을 다물고 잡히는대로 마구 쥐었다. 윤수의 뒤에서 그는 소파가 마구잡이로 구겨지는 광경을 내려보았다. 은기는 뜻 모를 정복감에 휩싸였다.
사출로 인해 구멍이 급격히 조여 드면서 은기도 뜨거운 숨을 뱉었다.
욕을 씹어삼키며 은기는 몰려오는 사정의 기운을 억지로 밀어냈다. 아직은 아니다. 여운이 가시지 않은 윤수의 것에서 제 것을 휙 빼내었다. 움찔거리던 구멍이 빈 공기를 아쉬워하며 뻐끔댔다.
은기는 윤수의 어깨를 위에서 눌렀다. 미처 감추지 못한 열띤 그의 흥분이 소리가 되어 어깨 위로 내려앉는다.
”더 갈게요.“
윤수가 고개를 미처 끄덕이기도 전에 위압적으로 짓눌렀다. 점점 이성의 퓨즈가 끊어진다. 그의 말대로 어제는 정말 ‘첫 섹스’ 였던 걸까. 확실히 갈수록 그의 육체가 받아들이는 쾌감의 높이가 계단처럼 건너뛰어 올라간다.
‘대체 형이랑 뭘하고 만난 거야.’
풀리지 않는 의문을 품고 은기는 우물대며 다시 조여드는 그의 구멍에 제 것을 힘차게 밀어넣었다. 그의 안은 뜨거운 용광로 같았다.
***
”일리야~、투투!“
빳빳한 진회색 꼬리가 살랑 흔들리며 러시안 블루 고양이 두 마리가 도도도 뛰어왔다. 둘이서 놀고 있다가 은기의 기척을 듣고는 바로 달려온 것이다. 하나는 녹색, 하나는 호박색의 맑은 눈을 하고 앞발로 은기의 바지를 찍기도 하고 폴짝폴짝 뛰기도 했다.
”잘 놀았어?“
자동으로 사료가 나오는 기계를 확인하니 역시 똑똑한 애들이라 잘 챙겨먹은 듯 하다. 오늘도 한시름 놓은 집사는 차키와 지갑을 어딘가 놓고는 드넓은 집 안에 대자로 뻗었다.
그가 바닥에 누워버리자 물 만난 고기처럼 회색 고양이 두 마리가 달려들어 그의 뺨을 핥거나 가벼운 머리 박치기를 했다.
”알았어, 알았어. 조금만 쉬고 놀아줄게.“
그가 다소 거칠게 고양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천장을 올려 보며 중얼거렸다.
“선수라니, 너무하네. 나보단 형이 더 했는데.”
실타래처럼 풀려나오는 조금 전의 상황과 윤수의 표정에 은기는 괴롭게 한 손으로 눈을 가렸다.
“괜히 말했나. 아, 내 진짜가 이런 게 아닌데. 병신 새끼.”
마지막 말을 씹어 뱉듯 말하곤 은기는 주먹으로 바닥을 쾅 내리쳤다. 고양이들이 놀라 후루룩 달아난다. 그러다가도 다시 와서 그의 다리나 어깨에 머리를 비볐다.
놀란 고양이들을 달래듯 그가 고양이들의 턱과 머리를 긁어주니 가르릉대는 만족스러운 비음을 내었다.
은기는 애교를 부리는 고양이들을 눈으로 흘끗 내려보며 한숨 지었다. 피윤수가 이래 주면 참 좋을 텐데.
‘이 정도까진 바라지도 않는다고.’
울컥해서 나중에 이야기 하려던 것을 뱉어 버렸다. 상처 받은 까만 눈이 주홍 조명 아래 일렁였고, 충격이 가득 괴어 있었다.
발단은 윤수가 시작했다. 어쩌다 튀어나온 진기의 이야기에 금방 동요하고 그 큰 눈을 떤다. 은기는 그게 보기 싫었다. 치밀어 오른 오기로 그는 그만, 형의 근황을 말해 버렸다. 아직 지인들에게도 알리지 않은 사항이라 윤수는 당연히 모를 것이었다.
[우리 형, 곧 결혼해요.]
그 말을 했던 자신의 입을 빨리 닫아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뱉은 말은 사라지지 않고 피윤수의 마음에서 아픔의 파동이 되어 멀리멀리 번져 나가고 난 뒤였다.
3번에 걸친 섹스가 겨우 끝나고 나서 윤수는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그다지 체력이 좋지 않아 보이긴 했는데, 정말 저질 체력이었다.
그에 반해 은기는 아직 생생했다. 그리고 궁금한 것도 많았다. 그건 윤수도 마찬가지 인 듯 했다. 눈치 게임이 짧게 이어졌고, 동시에 물음이 튀어나와 두 사람의 목소리가 허공에서 한데 얽힌다.
[나 처음 봤다는 거, 거짓말이지?]
[섹스 처음 이라는 거, 거짓말이죠?]
휘었다가 얽힌 두 목소리가 여운을 남긴 채 사라졌다. 윤수는 어색한 얼굴로 말했다.
[너부터.]
은기는 두 손을 들어올리며 깔끔하게 인정했다. 소파에 등을 떼며 그가 과일을 하나 더 집어들었다. 몸 관리 중이라 칼로리를 조절하는 중이었다.
[처음은 아니고, 형 일하는 데 앞에서 기다리는 거 종종 봤어요.]
[그걸…봤다고?]
윤수의 얼굴이 수치로 붉어졌다. 연식이 오래된 미련한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다. 목까지 붉어진 윤수를 물끄러미 보던 은기가 혀를 찼다.
[참나, 그게 뭐라고. 괜찮아요. 하나도 안 부끄러워. 그럴 수 있지.]
[그래도….]
윤수는 진기의 일터에도 자주 왔었다. 들어가지는 않고 벽에 머리를 대고 가만히 하늘을 올려보다가, 가끔 열리는 서울지검의 문을 힐끔거리던 것이 다였다.
형이 근무하던 곳으로 종종 가던 은기는 피윤수를 몇 번이나 보았다. 형인 하진기는 그를 투명인간인 양 못 본 척 했고, 불편해 했다.
피윤수는 진기가 퇴근하기 전에는 반드시 돌아갔다. 하마터면 마주칠 뻔 한 적도 있었지만 달려서 도망치듯 사라졌다.
그는 공기처럼 투명한 사람이었다. 빛을 별로 받지 못한 듯한 뽀얗고 작은 얼굴이 소년처럼 보이기도 했다.
세상의 때가 덜 묻은 사람, 혹은 세상에게 너무 혹독히 두들겨 맞아 쪼그라든 사람.
셔츠와 청바지로 패션도 늘 비슷했다. 색이 다른 셔츠를 돌려 입는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치 빠른 은기는 그가 형과 보통 사이 이상임을 눈치 챘다. 진기에게 보내는 그 시선은 끈끈한 애착과 일렁이는 후회, 놓지 못하는 아픔 등의 여러 가지 것들이 혼합되어 있었다. 한가지로 정의 내릴 수 없는, 이리 휘고 저리 휘는 뼈아픈 갈등의 산물이었다.
특이한 점은 윤수는 진기와의 관계에서 물러서지도 않지만 함부로 침입하지도 않았다. 물끄러미 올려다보다가 일상처럼 사라지곤 했다.
유리창 커튼 뒤로 윤수가 여느 때처럼 터덜터덜 사라지는 것을 보던 은기가 서류에 눈을 떼지 못하는 진기에게 물었다.
[누구야?]
그도 보고 있었는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친구.]
[친구면 들어오라고 해. 밖에 세워두고 뭐하는 건데.]
[용건 없을 거야. 만날 시간도 없어.]
[잠깐 들여보내. 내가 이야기 상대 해주면 되잖아.]
그제야 진기는 서류에서 집중력을 흩뜨리고 그의 동생을 올려보았다.
연예인인 동생은 갈수록 인물이 훤칠해지고 그만큼 속도 영글어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마냥 예쁘기만 했던 어린 시절과는 달리 완숙미와 성숙함이 더해져 눈매도 깊어지고, 키에 걸맞는 넓은 어깨와 단단한 육체가 그의 남성적인 향을 끌어올렸다.
어딜 봐도 지극히 평범한 ‘남자’ 에 불과한 자신의 옛 연인을 신경 쓸 구석이 보이지 않는다.
[네가 왜?]
미세한 움찔거림이 있었지만 은기는 능숙하게 제 어색함을 흘려 보냈다.
[형 친구니까.]
[됐어. 너답지 않게 왜 그래. 바쁠텐데 빨리 가봐.]
언젠가부터 그가 기다려 주는 사람이 형이 아니라 자신이 되면 어떨까 생각을 불쑥 했다. 한 번 떠오른 생각은 반복되고, 이상한 흐름을 만들어 냈다. 마치 꼭 그랬으면 좋겠다는 암시같이 은기를 감쌌다.
저런 무색무취의 사람이 맹목적으로, 혹은 순수하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 순해 보이는 눈망울이 형이 아닌 자신을 담는다면?
‘저렇게 기다려도 아무 보상도 없을 텐데.’
형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은기였다. 저 기다림은 분명 허사가 될 것이다. 저런 사람을 무수히 봐 왔다. 무뚝뚝해 보이지만 자상한 구석이 있는 진기는 예전부터 인기가 많았다. 그리고 그 인기만큼 견고한 마음의 벽도 높았다.
은기는 학창시절부터 완벽한 모범생이었던 형이, 자주 바뀌는 연인관계를 결벽증처럼 깔끔하게 잘 잘라내는 것도 알고 있었다. 뒤끝이 없게 말끔히. 필요하면 돈도 썼다. 바람을 핀 것도 아니지만 너무 자주 바뀌어서 문제였다.
가끔 지금처럼 형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멀리서 지켜본 적도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진기가 나타나면 달려들어 매달리고, 울고, 집착했다.
안된 마음이 들어 훌쩍대고 있는 그들에게 잘 대해준 적도 있었지만 그 집착이 자신에게 향할 때, 은기는 더없이 냉정해졌다. 그 이상을 허락한 적이 없었다. 그들이 짧은 호의로 잠깐의 위로를 구하고 각자 자신의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랐을 뿐.
그 이후로 은기는 형이 내친 사람들에게 다시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보여도 못 본 척 했다. 마음앓이를 하다 언젠가 그들은 또 누군가를 다시 사랑하고, 삶을 견디며 살 것임을 알고 잇으니까.
그런데 아주 오랜만에 그의 눈길을 끄는 사람이 ‘피윤수’ 였다. 진기의 삶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어느 풍경처럼 그저 서 있기만 한다.
윤수에게는 기다림의 끝이 쉽게 보이지 않았다. 언제까지고 지속될 것 같이, 아스라이 멀었다.
은기는 자신을 빤히 올려보는 윤수를 내려보면서 진실을 뱉었다.
[형이 그 쪽 이야기 딱히 먼저 한 적도 없고요.]
그는 윤수처럼 섬세한 사람을 싫어하지 않았다. 선을 지키고 배려해주는 이가 생각보다 흔하지 않기 때문에.
하지만 그런 사람이 ’연인‘이 되었을 때는 각오해야 할 것들이 존재했다. 생각이 많다 보니 지나치게 겁이 많다. 성격 탓에 어릴 때부터 이런저런 상처나 고통이 많다 보니 사람에 대한 경계심도 뚜렷하고, 관계에 대한 두려움도 크다.
’차라리 길고양이 한 마리를 더 키우지.‘
집에 있는 귀요미 1, 2가 다시 떠올랐다. 하나는 숫자 1을 따서 일리야, 2번째는 투투라고 지었다. 형제인 둘을 추운 길거리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것을 발견해 거둔 것이 인연이었다.
은기가 눈을 빛내며 테이블에 반쯤 걸치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이건 딴 소리지만, 집에 고양이 키우는데 나중에 놀러 와요.]
[고양이?]
[마음 열기 힘들어 하는 아이들이라는데, 한 번 열면 그 진가를 알죠.]
당신도 그럴까. 은기는 윤수를 물끄러미 내려보다 입을 내려 깊숙이 키스했다. 열에 들떴던 몸이 금세 들썩였다. 말캉하고 여린 살이 은기의 거친 난입에 힘들어 했다.
하지만 받아들인다. 적응이 느리지만, 그는 착실하게 은기의 얽히는 혀에 반응하고 손을 목 뒤로 올리기까지 했다.
짙은 여운이 지나가고, 입술이 떨어진다. 그의 목에서 팔을 내린 윤수가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난 너처럼 거짓말 안 했어.]
[…….]
[정말이야. 섹스…나도 하고 싶었지. 근데 못 했어.]
[왜요?]
[진기가 싫어했어. 그래서 그냥….]
윤수가 얼굴을 붉혔다.
[입으로 하거나 손으로만 했어. 삽입은 안 했다고.]
가만히 듣고 있던 은기가 말문이 막혀 하나 더 집어 들던 체리를 내렸다. 기가 막히다는 얼굴로 따져들었다.
[뭐야, 거짓말 맞네. 입은 오럴 섹스 아니예요? 손으로 한 건 유사 섹스 아니야? 안했다고 해서 정말 아무것도 안 한 줄 알았잖아.]
’섹스‘ 라는 단어가 거듭될 때마다 윤수의 하얀 얼굴에 붉은 반점이 번져 나갔다. 생각하던 은기는 뭔가 알겠다는 얼굴로 피식 웃었다.
[형답긴 하네. 대충 이유도 알 것 같고.]
[이유가 뭔데?]
[알려주기 싫습니다. 형이 먼저 말한 것도 아닌데 모양새가 썩 좋지도 않고.]
딱잘라 말하자 윤수는 더는 묻지 않았다.
오가는 대화 속에서 진기 이야기가 몇 번 더 나왔고, 그 때마다 윤수의 얼굴은 다채로운 색을 보여 주었다. 공통 화제가 ’하진기‘ 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은기는 슬슬 속이 끓어 올랐다.
[다른 궁금한 건 더 있어요? 나에 대해서, 뭐 이것저것.]
[…….]
뭘 물어봐야 하냐는 멍한 눈을 보니 또 말문이 턱 막혔다. 하은기 인생이 이렇게 보잘 것 없지 않았다. 그의 고고한 자존감이 ’피윤수‘라는 칼날을 맞아 사각사각 깎여 나갔다.
은기의 옅은 눈이 차갑게 얼고,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에 대해선 별로 궁금한 게 없나 보네.]
유치하고 치졸한 거 다 아는데, 계속 화가 난다. 그래서 말하지 않으려던 형의 근황을 이야기 해버렸다.
[우리 형…]
상념이 거기까지 이어지자 은기는 누운 채로 제 머리칼을 뜯었다. 망할 입, 그냥 죽어라.
“제길!”
고양이들이 미용미용 울면서 그러지 말라며 그의 손에 매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