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편 (뜨거운 밤) -->
잘못 들은 건가 했지만 술자리와 섹스를 아무렇지 않게 말하던 그때처럼, 은기는 진심이었다. 그가 폭탄을 던져놓고 일어나 이번엔 과일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손을 눈으로 따라가며 윤수가 멍하게 말했다.
”갑자기?“
”갑자기는 무슨. 우리 할 거 벌써 다 했잖아요. 지금 와서 사귀자고 내 입으로 말하는 것도 쪽팔린데.“
포도알 하나를 집은 은기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반대편 손으로 뒷머리를 손으로 마구 훑으면서 그는 털썩 앉았다.
”안 그러면 그 쪽은 못 알아들을 것 같으니까, 한다.“
”너,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렇게 걱정되면 사귀면서 직접 확인하면 되잖아. 그 쪽이 형이랑 날 겹쳐보든 말든 신경 안 쓴다고. 나는 계속 있는 그대로를 계속 보여줄 거고, 이후 판단은 다 보고 나서 해요.“
포도를 씹어 삼킨 그가 남은 단물을 혀로 헹구어냈다.
”내가 어떤 놈인지, 제대로 보란 말입니다.“
그리곤 윤수가 뭐라 말하기 전에 그가 이야기의 끝을 맺어버렸다. 양 손을 들어올리며 그가 명확하게 말했다.
”됐죠? 해결?“
어깨에 힘이 죄 빠져나간다. 윤수는 머리 터지게 고민한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회사에서 일도 제대로 못 해가며 굴렸던 문제가 사실은 눈덩이가 아니라 고작 눈송이 하나였다는 사실에 허탈하기까지 했다.
”…뭐가 그렇게 간단해.“
은기는 당연하다는 듯 가볍게 말했다.
”처음부터 복잡할 문제도 아니었어요. 당신이 멋대로 꼬아서 생각한거지.“
”나한텐 아니야.“
소심한 반발이 이어졌지만 코웃음 한 방에 넉다운 된다.
”물론 아니겠죠. 섬세한 성격인 것 같으니까.”
“…….”
”그래도 생각해 봐요. 키스할 때 거부도 전혀 하지 않고, 섹스도 합의 하에 했고, 할 거 다했으면서. 나에 대해서 정말 좋은 감정이 하나도 없었으면 그 정도까진 허락 안 해줬을 거 아냐. 다시 생각해봐요. 뭐가 좋았는지.“
묻는 눈길에 윤수가 기분 좋았던 어제의 자리를 떠올렸다. 은기는 진지하게 그의 말을 모두 들어 주었다. 중간에 끼어든 적도 없고, 묵묵히 미소를 띄며, 혹은 같이 눈을 찌푸리며 안타까워하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슨 말을 해도 사감없이 들어주니 속으로 끌어안고 있던 것들까지 거침없이 풀어 버렸다.
그리고 격렬했던 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좀 아프긴 했지만.
은기가 재촉하듯 다시 물었다.
“그래서, 뭐가 좋았어요? 술자리? 섹스?”
“…둘 다.”
망설이다 떨어진 대답에 은기는 만족한 듯 눈을 휘었다.
“둘 다 좋았으면 오늘 둘 다 할 수 있겠네.”
고즈넉한 식탁에 양주병이 놓인 것이 이제야 윤수의 눈에 들어왔다. 기와가 있는 곳이라 전통주일 줄 알았는데, 꼬냑이다. 아래가 둥글고 주둥이가 좁은 갈색 병을 은기가 휘어잡았다.
“내 취향껏 시켰는데, 양주 잘 마셔요?”
“못 마시진 않아.”
“그럼 마신다는 소리고.”
그는 크리스털 잔에 각기 일정량을 담아 윤수에게 내밀었다.
“이건 사귀는 기념.”
윤수는 그에게 휘둘려 한 잔씩 주고받았다. 잔 부딪치는 소리가 농밀하게 들리기는 또 처음이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은기와 엮이면 항상 이랬다. 뭐가 뭔지 인식하기도 전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 있다. 근데 그것이 또 기분 나쁘지 않아서 윤수는 더 미칠 노릇이었다.
독한 술이 목구멍으로 넘어간 직후, 은기는 둥글게 둘러싼 소파 위에 그를 밀어 눕혔다.
“술자리는 했고, 이제 좋았던 다음 걸 해야죠.”
“뭐, 뭐?”
웃음을 가장해 탈의가 신속하게 이루어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잠시만!”
벌써 윤수의 셔츠가 말려 올라가고 은기의 입술이 소름으로 뾰족이 솟아오른 갈색 유륜을 물고 있다. 혀를 굴려 천천히 돌기를 얽었다가 풀자 뜨거운 간질거림이 벼락처럼 아래로 내리꽂힌다. 윤수가 허리를 전기 맞은 것마냥 뒤틀었다.
“으응…. 기다려봐. 잠깐만.”
은기가 눈을 올려 윤수의 반응을 살피더니 다시 눈을 내리깔았다. 그의 긴 속눈썹이 꽃 위로 내려앉듯 사뿐하게 내려앉았다. 그 사이 손을 앞으로 내어 윤수의 부풀어 오른 앞섶을 자극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손이 워낙 커서 대부분이 잡혔다. 윤수는 다리를 덜덜 떨면서도 무심결에 더 느끼고 싶어서 엉덩이를 쉴 새 없이 들썩였다. 아마 자각도 못하고 있을 것이다.
은기가 속으로 웃었다.
‘귀엽네.’
그는 달아오른 열기를 억지로 누르며 앞으로 다가올 더 큰 쾌감을 기다렸다. 수풀 속에 숨어 더 큰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유륜을 빠는 볼이 담배를 필 때처럼 꺼졌다가 불룩해졌다. 살이 달다. 남자의 살이 달다고 느끼다니, 은기에게도 나름의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가슴을 빨자 콩알처럼 작았던 것이 커지고 온 몸을 덜덜 떨며 신음을 흘리는 것이 신기했다. 저번에는 넣는 것에 급급해서 제대로 애무도 못해준 것이 아쉬웠다.
은기가 고개를 들어 이번에는 윤수의 떨리는 턱으로, 입술로 공략점을 옮겼다. 부드럽고 따뜻해서 오늘은 제대로 모두 삼키고, 씹고, 맛보고 싶다.
그는 붉어진 귀도 아프지 않게 이로 살짝 물었다가 짐승처럼 핥았다. 그리고 속삭였다.
“오늘은 뒤로만 느낄 수 있게 최선을 다하죠.”
귓전에서 들리는 야릇한 저음에 윤수가 끙, 앓는 소리를 냈다. 아까부터 계속 무르익어있던 페니스가 갑갑한 바지 속에서 꿈틀댔다.
하지만 아무리 밖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유리로 트인 곳에서 하려니 두려움이 앞선다. 윤수가 양 옆을 휘휘 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서 정말 하게?“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차분하게 그를 달랜다.
”이런 방을 왜 잡았을 것 같아요? 할 수 있게 되면 하려고 잡았지.“
이대로면 어젯밤처럼 바로 직행이다. 윤수가 변명같은 비명을 질렀다. 뭐든 이 상황만 피해가고 싶다.
”이, 이야기만 해도 되잖아!“
거침없던 은기의 손이 멈칫한다. 고민하던 그가 제 손을 회수하고는 윤수를 똑바로 내려보았다. 진위를 파악하려는 탐색의 눈길이었다.
윤수는 이 눈빛에 약했다. 그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속마음까지 모조리 꿰뚫리는 것 같아서. 정말 섹스를 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이대로 속절없이 말려가는 것을 더 경계했다.
이윽고 은기가 허리를 곧추세우더니 옆자리에 앉는다.
”정말 그러고 싶은 거면, 알았어요.“
은기가 푹신한 시트에 허리를 대고 머리를 뒤로 젖혔다. 그의 불룩한 목울대가 크게 일렁인다.
”이야기…. 뭐 나쁘지 않지.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 하나.“
그가 눈을 굴려 윤수를 훑었다. 특히 아래를 중점적으로. 여전히 풀지 못해 터질 듯 부풀어오른 아래가 보였다.
“근데 나보다 더 급해 보이는데.”
어제를 기억하고 있는 윤수의 몸이 들썩댔다. 애태우다가 중단해버린 뜨거운 손길이 벌써부터 아쉽고 그리웠다. 타인과 제대로 된 성행위를 한 적이 까마득하다 보니 굶주렸던 육체가 한참 모자르다며 항의하고 있었다.
은기는 다시 시선을 위로 고정시키며 남일처럼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괜찮겠어요?“
사람을 쥐락펴락 하는 기세에, 윤수는 결국 기어이 굴복했다.
은기도 자신 못지않게 흥분해 있고 아래가 솟아 있었지만 묘한 여유가 있다. 스스로를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의 태도다. 책상에만 매달려 살아 물리적인 자극에 약한 윤수와는 달랐다. 은기는 살면서 무수한 자극을 겪어 그로 인한 인내심도 터득한 것 같았다.
윤수는 인정하고 솔직해 지기로 했다.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게는 뻗대봐야 소용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 끝 남은 자존심 때문에 퉁명하게 말했다.
”…안 괜찮아.“
은기가 피식 웃더니 그를 바라보았다.
”다시 솔직해졌네.“
빙긋 웃은 은기는 하얀 셔츠를 벗어 옆 좌석에 던져두었다. 그림처럼 날씬하고 잘 짜여진 상체의 복근이 어젯밤처럼 똑같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럼 이야기는 이따가 하고, 급한 것부터 먼저.“
크고 긴 손이 대뜸 윤수의 바지 중심에 매달렸다. 그 손이 능숙하게 버클을 풀고 자신의 것도 풀어 내린다. 윤수가 당황해서 그의 단단한 팔을 붙들었다.
”너무 급해. 이건 내가 할게.“
하지만 붙들린 손 말고 다른 팔이 윤수의 얼굴 옆을 스치고 시트 헤드를 짚었다. 은기가 얼굴을 숙이고 그의 귀를 가볍게 깨물었다.
따끔한 감각에 움찔하는 윤수의 반응을 즐기며 그는 귓바퀴를 핥았다. 흥분한 저음이 속삭였다.
”급하다고 했잖아요.“
꿈틀대면서 윤수가 자신의 무릎에 걸린 바지를 마저 내렸다. 투덜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잘 참았으면서.“
그러면서도 꾸준히 저도 회색 라운드 티셔츠를 위로 벗어 올렸다. 은기가 도와주었다.
”참아야겠다고 생각한 시점이 지나버려서. 이제 남은 여유 없거든요.“
귀를 배회하던 입술이 목으로, 움푹 파인 쇄골로 미끄러져 내려간다. 잠시의 머뭇댐도 없었다. 윤수가 부드럽게 방황하는 은기의 입술 감촉에 신음을 참으며 뱉었다.
”너, 선수지?“
혀로 단단하게 선 갈색 유두를 핥던 은기가 고개를 들었다. 흥분으로 붉어진 눈가에 빼곡히 욕망이 들어차 있었다.
“그게 중요한가?”
말해놓고 멈칫하던 그가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아, 섬세한 성격이었지. 과거지사 다 알아야 하고 궁금하고 뭐 그런 건가. 그건 좀 피곤한데.”
피곤하다는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가 연애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자 아킬레스 건이었다.
누군가를 피곤하게 하는 사람. 감정도 더디고, 행동도 굼뜨고, 뭐든 느린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천천히 그 사람을 기다리고 지켜보는 것이었다. 느린만큼 끊기도 힘들었다. 그 결과로 지금 은기와도 함께 있는 것 아닌가.
윤수가 상처 받은 눈으로 그를 올려보자 은기가 한숨을 내쉬며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요. 내 과거 더럽지도 않고, 상식적인 연애만 했으니까. 사람을 많이 만나고 다니긴 했지만.”
은기는 그의 턱을 잡고 눈을 가까이 들여다 보았다. 까맣고 두려운 눈이다. 소심하고 겁 많은 사람의 떨림도 그 속에 있었다.
“그리고 나 섬세한 사람 좋아해요. 그런 사람이 독점욕 가지면 더 짜릿하거든. 그러니까 오해 금지.”
독점욕? 윤수의 눈이 미약하게 흔들렸다. 말하는 것도 참 거침없다. 보통 그런 거 싫어하지 않나? 못 참겠다는 듯 그의 입술에 키스하며 은기가 속삭였다.
“나한테 집착해주면 좋을 텐데. 집착해줘요. 당신한테 집착 당하면 왠지 기분 좋을 것 같아.”
외모나 여러 모를 따져보면 집착이 아니라 집적의 느낌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윤수는 얼결에 대답했다.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노, 노력해볼게.“
은기의 페이스에 휩쓸리다 보니 자꾸 말을 더듬게 된다. 세상 최고의 멍청이가 된 기분에 윤수의 얼굴이 수치로 붉게 물들었다. 그런데도 은기는 별 타박 없이 씩 웃기만 했다. 윤수는 그가 자신에게 이러는 이유를 전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혹시 좋았어? 어제. 그래서 그래?”
잠깐 생각하던 은기가 쇄골에 얼굴을 파묻으며 혀를 굴렸다.
”미안하지만, 평범 수준?“
정말 솔직하다. 약간의 거짓은 섞어줘도 괜찮을 텐데. 속궁합이 미치도록 좋아서 이런다면 약간은 이해가 갔지만 그것도 아니란다. 새삼 부끄러움이 해일처럼 몰려왔지만 애써 몰아내며 윤수가 반박하듯 말했다.
”그런데 나한테 왜 이렇게까지 해? 이해가 안가서.“
은기는 대답 않고 손을 내려 잔뜩 발기해 있는 윤수의 것을 벌주듯 세게 주물렀다. 고개가 자연스럽게 뒤로 젖혀지고 윤수는 기어이 신음을 뱉었다. 쾌감에 덜덜 떨리는 턱끝을 은기가 만족스럽게 보았다.
“잡담 그만. 집중해요.”
은기의 사타구니도 단단해질 대로 단단해져서 제 순서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결에 속옷도 모두 사라진 채로 윤수는 그의 손과 입술에 희롱당했다. 푹신한 업소용 대형 소파가 언제 등에 닿았는지도 몰랐다. 가슴을 끈질기게 공략하는 입질에 그가 저도 모르게 은기의 머리칼을 휘어잡았다. 하얀 불꽃이 윤수의 눈 앞에서 반짝반짝 점멸했다.
“하아…. 아!”
갈색 돌기는 이미 번들번들하게 젖어 있고 꼿꼿하게 허공으로 섰고 은기는 차가운 공기 속에 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을 귀여운 듯 내려보았다.
“빨기 딱 좋은 모양이네.”
너무 작지도 않고, 크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와 예쁜 모양이었다. 입을 내려 귀두 부근을 사탕처럼 핥던 은기는 정성스레 집중하고 있었다.
주홍빛 조명 아래 곧은 콧날이나 내리깐 눈이 찍어낸 조각 같아서 그 모습에 윤수는 새삼 감탄했다. 한치의 오차 없이 빚어낸 것 같았다. 한국인 피만 흐르지는 않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진기도 그랬다. 지나치게 잰 듯 이목구비가 반듯하고 우월했다.
또다.
흠칫한 윤수는 지나간 생각을 휘발시키며 성기로 느껴지는 은기의 뜨거운 입김에 집중했다. 눈도 질끈 감았다.
‘그만 생각해.’
은기가 한 손으로 그의 성기를 잡고 기둥을 혀로 핥았다. 그리곤 수시 때때로 확인하듯 윤수의 표정을 올려본다.
윤수는 헐떡대면서 쾌감에 어찌할 바 모르고 붉어진 뺨을 소파에 비볐다. 가끔 다른 생각도 하는 것 같지만 은기는 용서해 주기로 했다. 스쳐 지나가는 잡념까지 그가 조절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열받는 건 어쩔 수 없다.
윤수가 눈을 부릅떴다. 슬금슬금 손이 그의 구멍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은기가 잠시 입을 떼고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엉덩이.”
들어보라는 뒷말은 하지 않아도 걸러 들렸다. 윤수가 흠칫 하며 얌전히 엉덩이를 들었지만 갈 곳 없는 다리가 허공에 배회했다. 은기가 차분하게 말했다.
“다리는 힘들면 내 어깨 위에 걸쳐요.”
이런 것이 수치스럽지 않은 것은 너무 침착한 은기의 태도 때문이었다. 이성을 놓고 다리를 벌려도 전혀 상관없다는 듯 보여서였다.
은기는 그의 앞을 입으로 자극 시키면서 꼬냑을 손에 붓더니 검지와 중지를 그대로 구멍에 삽입했다. 진한 꼬냑 향이 번졌다.
“아…!”
윤수는 은기가 입을 크게 벌려 내릴 때마다 움찔거렸다. 뜨겁고 간지럽다. 머리가 이상해 질 것 같았다. 그의 손가락이 들락날락하는 구멍도 어색해 하던 것도 잠시, 길고 단단한 손가락들이 어딘가를 꾹 누르자 윤수는 작살맞은 고기처럼 부르르 떨었다.
“으응! 거, 거기.”
윤수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까지 확인한 은기는 눌렀던 곳을 집중적으로 노렸다. 구멍을 넓히는 동시에 전립선을 꾹꾹 눌러 윤수에게서 기어이 비명을 뽑아냈다.
“아윽! 아, 하으윽….”
윤수가 손에 잡히는 소파 겉면을 쥐어뜯었다. 멀리 보이는 도심의 풍경 속에서 누군가가 지켜볼 것 같은 생경한 느낌에 그는 발가락을 한껏 오므렸다. 은기는 사냥감을 노리는 포식자처럼 날카로이 그가 느끼는 쾌감을 지켜보았다. 은기의 넓은 어깨가 입질을 할 때마다 위아래로 스스럼없이 움직였고, 단단한 복부가 인내심을 발휘하느라 꿈적댔다.
“으으….”
정성스럽게 빨아주는 성기가 한계에 다다라 묽은 액을 뿜기 시작했고, 은기는 입을 떼어냈다. 머리 끝까지 저릿저릿하다. 은기는 마지막까지 윤수의 쾌감을 쥐어짰다.
입을 뗀 은기가 욕망에 일그러진 눈을 했다. 윤수가 뱉어낸 절정이 그의 입가에 묻어 있었다. 멍한 머리로 윤수가 생각했다. 은기의 하얀 얼굴에 적당히 도톰한 입술에 튄 그것이 한 폭의 인물화 같았다.
그림 속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그는 끈끈한 점액을 손등으로 닦아내고 으르렁대듯 잔뜩 쉰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못참겠어.”
어떻게 준비해 왔는지 손을 뻗은 은기가 지갑 속에서 콘돔을 하나 꺼냈다. 입으로 찢고 내용물을 대충 자신의 것에 씌우는 것을 윤수가 달뜬 눈으로 보았다. 너무 참아서인지 만져주지 않아도 될만큼 커져 있었다. 어젯밤보다 더 큰 것 같아 윤수는 헛숨을 삼켰다.
“넣을게요.”
힘없는 고갯짓을 확인하자마자 은기가 한번에 끝까지 밀어넣었다. 차마 숨도 다 못 들이킨 채 윤수가 입을 벌렸다. 뜨겁고 살아있는 것이 머리를 제 구멍에 들이박은 느낌이었다.
구멍에 제대로 꽉꽉 맞물려 있는 것을 만족스럽게 내려본 은기가 짧게 웃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조여드는 구멍의 압력에 그는 눈가를 찡그렸다.
“힘 좀 빼요. 안 아프게 해줄테니까.”
윤수가 헐떡이며 변명처럼 말했다. 밀려들었다가 나가는 쾌감에 정신이 왔다갔다 한다.
“네가 너무, 헉, 갑자기 넣어서….”
은기가 천천히 뒤로 빠져나가자 기둥의 질감이 구멍 내벽에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는 남은 꼬냑을 전부 맞물린 성기와 구멍의 접합부에 부어 버렸다. 차가운 액체에 윤수의 허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은기는 낮게 웃음을 흘리며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그리고 생리적인 눈물이 맺힌 윤수의 뺨을 짐승처럼 핥으며 속삭였다.
“뒤로만 가게 해줄게요.”
은기는 윤수의 다리를 잡고 한계까지 벌렸다. 그가 천천히 밀어넣었다가 빠르게 빼기를 여러 번 계속했다.
처음에 움찔거리던 구멍에 점점 탄력이 생기고, 윤수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신음은 아픔에서 야릇한 것으로 바뀌어 갔다.
은기가 이마에서 송글송글 맺히는 땀을 손등으로 닦아내곤 윤수의 돌기에 손을 뻗어 만져주었다. 빳빳하게 선 그것을 만져질 때마다 싸한 쾌감을 주어서 윤수가 허리를 뒤틀었다.
“이래도 아파?”
대답할 정신이 없는지 접합부가 꽉 찼다가 비는 순간마다 윤수는 입술을 짓씹었다. 은기가 손가락 하나를 그의 입 속에 밀어넣었다. 그 와중에도 은기의 손가락을 씹지 않으려 윤수는 안간힘을 썼다. 입가도 부들부들 떨렸다.
그 순간, 은기의 것이 윤수가 느꼈던 곳을 찔렀다. 반응이 격렬했다. 윤수의 온 몸이 전기 맞은 것 마냥 덜덜거리고 퍼드득 허리가 튀었다.
그는 못참고 은기가 넣었던 손가락을 신음 대신 깨물어 버렸다. 그것조차 이에 힘을 넣지 않으려 온갖 애를 쓴 것인지 별로 아프지도 않았다. 이 와중에 은기가 다칠까봐 무의식 중으로 조절하고 있는 것이다.
은기는 손가락을 거두곤 피식 웃었다.
”그냥 소리 질러요. 밖에 어차피 안 들려.“
그가 느끼는 곳을 최대한 가까이 붙인 은기가 허릿짓에 박차를 가했다. 얼굴과 다르게 흉폭한 성기가 핏줄까지 바짝 섰다. 구멍에서 흘러내리는 꼬냑이 소파를 까맣게 적셨다. 성기가 말려 나갔다가 불쑥 들어와서 구멍의 깊은 속까지 처박았다.
퍽! 퍼억-!
윤수는 터져나오는 비명을 푹신한 소파 겉면을 이로 물어뜯어서 삼키려 했다. 하지만 결국 격정적으로 흔들리는 리듬에 놓쳐버렸다.
”아흑, 윽, 아아아-!“
술이 뜨거운 체온에 섞여 뭉글뭉글 구멍 주위를 배회한다. 페니스가 드나들 때마다 질퍽거리는 야한 소리가 은기의 흥분된 뜨거운 숨에 섞여든다.
안 들린다고는 했지만 새어나갈까 걱정이 되는 윤수였다. 그는 낯선 공간에서의 이질감과 미쳐버릴 것 같은 뜨거운 감각에 두려움을 느꼈다.
훤히 비치는 유리에, 생소한 공간에의 섹스는 극한의 쾌감을 이끌어냈다.
은기도 힘으로 허리를 마구 구겨 넣으면서 신음을 연신 흘렸다. 그리고 제 자신에게 묻는 것인지, 윤수에게 묻는 것인지 모를 질문을 던졌다.
”좋아요?“
윤수의 성기에 더 이상 앞을 만져주지 않았는데도 찔끔찔끔 절정 직전의 백탁액이 새어 나왔다. 그러다 은기의 것이 전립선을 몇 번 더 찍거나 스쳐 지나가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컥 터졌다. 폭죽터지듯 윤수의 눈 앞에 온갖 색의 별이 반짝반짝 스쳐 지나갔다. 유성우의 꼬리 같은 눈물이 윤수의 눈을 짓무르며 흘러내렸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