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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게임 조연인데요, 죽이지 마세요-130화 (완결) (130/130)

공포게임 조연인데요, 죽이지 마세요 130화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눈을 휘게 웃고 있는 레이커스의 얼굴. 그다음으로 보인 것은, 메시지 창이었다.

아른아른 레이커스의 호감도가 올랐다는 것을 나타내는 메시지가 떠 있는 게 보였다.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 부드럽고 싱그러운 그의 체향, 어디선가 들려오는 캐럴 소리, 소복소복 눈이 내리는 날 특유의 공기.

레이커스와 나의 감정은 그와 나의 지금을, 이 특별한 순간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것들로 판단하고 싶었다. 단순한 글자 몇 개가 아니라.

메시지 창을 읽을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 이번에는 시야의 한가운데에 새로운 메시지 창이 떴다.

[크리스마스 이벤트 보상 : 시스템 창 ON/OFF 기능

시스템 창을 비활성화할 수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메시지를 보다가 나는 문득, 깨달았다.

지금의 내게는 하나의 목숨밖에 없다는 걸.

그리고 난 이제 이곳의 미래를 더 이상 알지 못한다는 걸.

거기에다 시스템 창까지 끄면, 이곳이 정말로 내게 그냥 새로운 ‘현실’이 되어 버린다.

‘……그건 좀 무섭긴 해.’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어 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더 이상 이렇게 호감도가 수치로 표시되는 것도 지겨워.’

시스템 창에 대한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생각이 너무 길군요.”

내가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 레이커스는 조바심이 났던 모양이었다. 등이 서재에 닿았고, 레이커스의 입술이 다시 내 입술을 삼켰다.

나는 매혹적인 그의 키스를 맛보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모든 생각을 곧장 잊어버렸다.

다음 날 아침.

나는 퀭한 눈으로 내 방에 도착해 한숨을 쉬며 화장대 앞에 앉았다.

이젠 완전히 ‘내’가 되어 버린 아르비체가, 녹색 눈으로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눈은 피곤으로 퀭해져 있었고, 입술은 평소보다 더 붉고 도톰하게 보였다.

절로 어젯밤이 떠올랐다.

레이커스와 나는 밤새 이야기를 나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밤새 키스를 하고 그사이에 잠깐잠깐 겨우 이야기를 나눴다는 게 맞겠다.

‘……드래곤의 피가 섞여서 그런가? 어떻게 사람이 지칠 줄을 몰라?’

하지만, 싫지 않았다.

레이커스도 나도…….

참 오랫동안 서로의 곁을 뱅뱅 맴돌기만 했으니까.

그를 좋아해도 괜찮은지, 그것에 대해 마음을 정하는 데만도 정말 오랜 세월이 걸렸으니까.

마침내 레이커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나자, 마음속에 머물렀던 감정들이 둑이 터지기라도 한 듯 흘러나왔다.

그래서 거절하지 않았다. 밤새도록 키스해도 좋을 만큼, 우린 서로의 곁에 항상 있었음에도 서로가 항상 그리웠으니까.

레이커스도 언젠가 내가 떠나갈 거라 생각했던지, 여기에 머물겠다는 확답을 한 후부터 내 얼굴 구석구석, 손등 구석구석까지 다 키스를 퍼부어 대는 바람에…….

‘……어후.’

어젯밤의 일을 생각하는 사이,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정말 딸기처럼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누굴 마주친다면, 레이커스 생각하는 걸 금방 들키겠는데. 이래서야.’

양 볼을 손으로 꾹꾹 누르다가, 문득 시야의 구석에 줄곧 떠 있던 상태창에 시선을 주었다.

하나 남아 있는 하트, 스테미너 창, 그리고 우상단의 인포메이션 마크.

여기 들어온 뒤로 내게 항상 여기가 게임이라는 것을 알려 주던 것들.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이것들이 불편해지기도 했다.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손을 뻗어 허공을 터치했다.

[시스템 창을 비활성화하시겠습니까?]

[네]

그 간단한 동작 하나로, 정말 이곳은 내게 현실이 되었다.

* * *

똑똑똑.

‘……음, 누구지?’

난 노크 소리에 눈을 뜨고서도 한참 비몽사몽간에 정신을 못 차리다가 겨우 눈꺼풀을 밀어 올렸다.

분명 동이 틀 때 내 방으로 돌아온 것까지 기억이 나는데, 창밖은 이미 어두컴컴하게 저물어 있었다.

‘……그러니까, 앰버의 시중을 받으며 겨우 드레스를 벗고 잠자리에 들었던 것까지 기억이 나는데…… 헉.’

오늘 분명히 랑비엘의 사건에 대해 경찰 측에서 청취하겠다고 했던 것 같은데, 너무 많이 자 버렸다. 이미 밤이 되어 버린 것 같은데.

나는 마음이 갑작스레 급해져서 들어오라는 말을 할 생각도 못 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슬리퍼에 발을 꿰고 문으로 달려갔다.

달칵.

“제가 깨웠습니까?”

하지만 내가 활짝 연 문으로 보인 건 나를 데리러 온 시녀도 아니고, 경찰도 아니었고, 블리에 씨도 아니었다.

레이커스가 하얀 원피스 잠옷 차림의 나를 슬쩍 훑어보더니 날 밀다시피 해서 문 안쪽으로 한 발짝을 들여놓았다.

탁.

그러고는 제 등 뒤로 방문을 닫았다.

난 어둠 속에서 이상할 정도로 반짝거리는 레이커스의 잿빛 눈동자를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져 있는 것 같았는데, 너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레이커스?”

그는 내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게 고개를 숙였다. 밖에 나갔다 온 건지, 그의 손과 상큼하고 차가운 숨결에서 겨울 공기가 듬뿍 느껴졌다.

키스는 갑자기 시작되었지만,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내가 숨이 차서 헐떡이며 뒤로 한 발짝 물러나자, 그가 겨우 나를 놓아주었다.

예고된 키스에도 쉽사리 놀라는 내 심장은 정말로 이젠 터져 버릴 것 같았다.

“……가, 갑자기 이러는 법이 어딨어요.”

내가 눈을 흘기며 중얼거리자, 레이커스가 내 입술을 손으로 부드럽게 만지며 능글맞게 속삭였다.

“이런 차림으로, 문을 덥석덥석 열어 주는 분의 잘못인 것 같습니다.”

“……잠옷이잖아요.”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웃음이 묻어나는 대답을 듣고서야 난 레이커스가 어둑어둑한 곳에서도 남다르게 눈이 좋았음을 떠올렸다.

난 갑자기 창피해져서 내 몸을 팔로 감싸 안았다.

“……이거 놔요. 다른 옷 걸치고 올게요.”

“잠깐만. 잠깐이면 됩니다.”

“……왜요? 경찰청에서 왔어요?”

“그런 일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중요하죠?”

반짝.

아직도 저택의 벽면 쪽에 크리스마스 조명이 켜져 있는 건지, 순간적으로 밖에서 빛나는 불빛에 레이커스의 얼굴이 환하게 보였다. 그의 얼굴에는 지금껏 정말 보기 드물었던 기분 좋아 보이는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하지만 부드러운 입매와는 달리, 미간이 좁아져 있었고 눈썹을 일자로 긋고 있었다.

게다가 옷차림도. 레이커스는 왕궁 연회에 다녀올 때만큼 기합이 바짝 들어간 슈트 차림이었다.

평소에도 늘 말끔하게 옷을 차려입는 그였지만, 투피스나 스리피스 정도로 차려입는 게 전부였다.

‘이렇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반짝반짝하게 꾸밀 일이 뭐가 있었을까? 왕궁에 또 다녀왔나?’

난 의아함에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가만히 만졌다.

그는 내 손을 막지 않고 제 얼굴을 만지도록 두었기 때문에, 나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함부로 미술품을 만지는 관광객의 심정이 되어 그의 미간을 살살 쓸어 주었다.

‘……묘하게, 긴장되어 보여.’

그건 이상한 일이었다.

‘이제 레이커스에게 거슬릴 일은 아무것도 없을 텐데. 위협될 일도 없고.’

의아함을 가득 담아 그를 올려다보자, 레이커스가 긴 숨을 토하곤 다시 한번 입꼬리를 끌어당겨 웃더니 내 왼손을 청했다.

얼떨떨하게 그의 오른손 위에 내 왼손을 올리는 순간, 그 키가 큰 남자가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같이 고르고 싶었는데, 마음이 너무 조급해서 제가 먼저 골랐습니다.”

“……네?”

“저와 결혼해 주시겠습니까, 아르비체 그린. 아니, 당신이 누구라도.”

너무 잘생긴 남자에게 청혼을 받으면, 그의 손에 들린 반지를 빨리 발견하는 게 쉽지 않은 법인지.

나는 뒤늦게 그의 손에 들린 커다란 반지를 발견하고는 입을 틀어막았다.

솔직히 잘 모른다. 그의 손안에 들린 반지 함에서 반짝이는 저것이 어떤 보석이고 얼마나 대단한 값어치를 할지.

물론 내가 넘볼 수 없을 만한 돈이긴 하겠지.

하지만 그런 것을 지나서…….

‘……꿈같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해 준다는 게.

“이번 대답도, 오래 기다려야 합니까?”

넋이 나가서 눈앞의 아름다운 사람을 멍하니 바라보는 사이에, 레이커스가 그답지 않게 초조한 목소리로 나를 재촉했다.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왈칵 터져 나오는 것을 느끼며, 쓰러지듯 그에게 안겼다.

내게, 이런 식으로 가족이 생길 줄은 몰랐다.

여기가 게임 속이든 아니든 좋았다. 여긴, 이제 나의 새로운 삶의 공간이었다.

“좋아요.”

레이커스의 목을 꼭 끌어안고 속삭인 말에, 그의 굳어 있던 어깨가 겨우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참 다행이군요.”

그가 내 머리카락에 부드럽게 키스했다.

레이커스는 내 손에 반지를 끼워 주다가 속에 오래 담아 두었던 말을 꺼냈다.

“이젠 괜찮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제가 제 형처럼 피에 사로잡히는 날이 온다면 절 떠나셔도…….”

나는 그의 품에 안긴 채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싫어요. 이렇게 비싼 반지도 받았는걸요? 그런 날이 와도 떠나지 않을 거니까, 알아서 잘 다스려요.”

레이커스는 웃음을 터뜨렸다.

랑비엘도 죽었고, 그의 피가 날뛸 만큼 큰일은 당분간 없을 거다.

‘게다가 지난번, 레이커스의 의식이 잡아먹혔을 때조차 그는 날 사랑스럽게 바라봤는걸.’

우리는 괜찮을 거다.

우리는, 꽤 행복하게 잘 살 거다.

이렇게 아름다운 그가 존재하게 해 준 그 피의 저주도, 또 다른 행복으로 만들 수 있을 거다.

무엇보다, 레이커스가 자신을 가장 경계하고 있으니까. 괜찮을 거다.

내 손에서 반짝 빛나는 반지를 바라보다가, 주저하듯 나를 바라보는 레이커스에게 내가 먼저 키스했다.

* * *

오늘은 꽃이 피는 봄을 맞이해서 그간 있었던 사건들의 피해자들을 위한 합동 영결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나는 창가에 앉아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이제는 멀게 느껴지기만 하는 그 추악한 사건에 대해 회상했다.

사건이 있은 지 넉 달이 흘렀다.

리어먼드가뿐만 아니라, 온 파크 내에서 연쇄살인마의 죽음에 대한 뜬소문이 종식되기까지는 그만큼의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실종 사건들이 제대로 처리되어 시신의 일부나마 유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데까지도.

‘범인이 랑비엘이라고 공표되자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던지 몰라.’

겉으로만 봐서는 정말 말쑥하고 번듯해 보이는 청년이었으니까.

‘그래도, 이제 정말 많은 게 바뀌었어.’

화창한 햇살과 정원 가득 피어 있는 봄꽃 사이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의 얼굴에는 작년 가을까진 찾아볼 수 없었던 생기가 감돌았고, 모두 즐겁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정원 사이에 새하얀 웨딩 아치가 세워졌고, 하객들이 앉을 테이블이며 의자 곳곳이 붉은 장미로 꾸며지고 있었다.

흐뭇하게 그 광경을 바라보는데,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똑똑.

“일어나셨어요?”

“응. 앰버지? 들어와.”

문이 열리고, 앰버가 환하게 미소 지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긴 갈색 머리를 한 앰버가 나를 보고, 제 가슴을 손으로 눌렀다.

“역시, 너무 아름다우세요.”

난 작게 미소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치맛자락이 바닥에 길게 끌렸다. 실크 원단으로 된 흰 드레스라 때가 금방 타는지라, 앰버가 급하게 달려와 내 치맛자락을 잡아 주었다.

앰버가 부지런히 내 머리카락과 드러난 피부에 금가루 같은 것을 뿌려 주었고, 내 화장을 다시 손봐주는 동안 나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머리에는 새하얀 면사포에 리어먼드 가문 정원에 가장 많이 핀 꽃인 장미를 장식했고, 레이스와 작은 보석을 아낌없이 사용한 드레스를 입었다. 안톤 리오가 특별히 두 달에 걸쳐 만들어 준 그 드레스에는 진짜 보석이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정말 아름답긴 했다.

에메랄드색 눈, 에메랄드빛 머리카락은 흰색과 너무 잘 어울렸다.

‘……얼마일지 두려워서 가격을 물어보진 못했지.’

난 이리저리 빙글 돌아보며 완벽한 내가 된 아르비체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르비체는 결국 살리지 못했어. 아르비체는 내가 빙의되기도 전에 랑비엘에게 살해당했으니까.’

그건 내가 게임에 들어오기도 전부터 이미 정해진 사실이었다.

아무리 불가항력이었다곤 해도 결국 구하지 못한 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가슴을 무겁게 눌렀다.

‘하지만 그녀의 영혼도 이제 해방되었겠지. 랑비엘의 죄를 낱낱이 밝혔으니까, 조금이나마 억울함이 풀렸으리라 믿자.’

내가 굳이 합동 영결식 날을 결혼식 날로 고른 데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그래, 오늘은 내 결혼식이 있는 날이기도 했다.

“자, 이제 다 됐어요…… 후, 어떻게 해요. 제가 다 떨려요.”

“그래?”

“저만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손님들도 벌써 오셔서 기다리고 계신걸요?”

“이렇게나 이른 시간에?”

내가 조금 놀라서 옆을 돌아보자, 앰버가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새 마탑주가 되신 라떼 님이랑 밀로라드 님, 르뮈에 님, 그리고 대신관님까지 와 계셔서 블리에 집사님께서 아주 혼비백산하고 계시다니까요?”

그렇게 들으니, 정말 화려한 구성이긴 하다.

나는 웃음을 왈칵 터뜨렸다.

블리에 씨는 레이커스와의 결혼 예정을 발표한 뒤로, 누구보다 내게 신경을 많이 써 주었다. 순식간에 내 방과 서재가 따로 마련되었고, 예비 공작 부인에게 걸맞은 의상 일체와 예절 수업을 받을 수 있는 강사도 대령되었다.

그렇게 똑 부러지는 그녀가 혼비백산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 귀엽고 우스웠다.

“그럼, 이제 손님들께 인사하러 가 볼까?”

“네, 그래요. 슬슬 내려간다고 말을…….”

그때 앰버의 말소리를 자르고,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똑.

“준비 끝났어요!”

문이 벌컥 열리며 두 아이가 쏟아지듯 들어왔다.

무릎까지 오는 짤막한 하얀 드레스를 입은 루나와 역시 반바지 정장 차림의 샤인은 둘 다 꽃을 한 바구니씩 안고 있었다. 하얀색, 빨간색의 장미가 둘의 바구니에 반반씩 들어 있었다.

보통은 흰 꽃으로만 장식한다고 하지만, 나는 꼭 저 붉은 장미가 장식되었으면 했다.

이곳이 내게 공포 게임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많은 이들의 피와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꼭 기억하고 싶어서.

“축하해요, 알비 선생님!”

“……축하해.”

루나와 샤인이 내게 차례로 인사를 건넸다.

난 한 철 사이에 불쑥 자란 것 같은 두 아이에게 차례로 볼 키스를 해 주었다.

루나는 방긋 웃으며 내게 안기느라 꽃을 절반이나 쏟았고, 샤인은 부끄러운지 제 볼을 손으로 비비며 물러나서 뜻 모를 한숨을 지었다.

앰버가 웃으며 둘을 물렸다.

“자자, 도련님도 아가씨도 예행 연습하셔야죠.”

“……응!”

“재촉하긴. 안 그래도 가려던 참이었어. 가자, 루나.”

샤인이 다시 한번 한숨을 쉬며 방에서 나갔다.

루나는 그 뒤를 따라 나가려다 말고 갑자기 내게 달려오더니, 귀엣말로 속삭였다.

“선생님만 알고 계셔야 해요. 제가 마법 쓰는 거.”

그러곤 내게 윙크까지 해 보인 루나가 후다닥 방문 밖으로 사라졌다.

낯이 뜨거웠다.

결국 루나가 빈 소원대로 이렇게 결혼을 목전에 두고 있으니, 루나가 제 소원은 다 이뤄진다고 생각해 버리는 것도 무리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귀엽긴 한데, 어딘가 부끄러워.’

샤인에게서 옮았는지 나까지 한숨이 폭 나왔다.

문을 닫으려는 순간, 다시 한번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똑.

“누구…… 아, 저는 먼저 내려가 있을게요. 천천히 오세요.”

“응? 나랑 같이 가야지.”

“아, 그, 그렇죠. 옆방에 잠깐 있을게요.”

앰버가 어쩐지 신이 난 얼굴로 종알거리곤 후다닥 사라지는 것을 보다가, 난 어느새 방 안으로 들어와 서 있는 레이커스를 발견했다.

그는, 신부인 나보다도 아름다운 것 같았다.

딱 부러지게 넓은 어깨를 잘 드러내 주는 검은 정장의 목깃에는 그의 머리카락과 색이 같은 금사로 수놓아져 있었고, 금장 단추가 달린 슈트의 가슴팍에는 새하얀 장미의 부토니에르가 꽂혀 있었다.

“넋이 나갈 정도로 아름답군요. 저 혼자만 보고 싶기도 하고, 모두에게 자랑하고 싶기도 하고.”

레이커스가 내 마음을 그대로 대변하는 말을 중얼거리며 내게 다가와 허리를 감았다.

날 꼭 안았다 놓은 그는 화장을 망칠 것을 걱정했던지, 항상 습관적으로 하는 깊은 키스 대신 내 양쪽 손등과 손가락에 차례로 키스를 하고선 겨우 뒤로 물러났다.

그의 아름다운 얼굴을 올려다보던 나는, 금빛 머리카락을 빗어 넘긴 탓에 드러난 잘생긴 이마가 조금 구겨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작게 웃었다.

“긴장이라도 한 거예요?”

레이커스가 서늘해 보이는 눈매로 나를 바라보았다.

난 이제 그 눈이 살인마의 것이 아니라, 그냥 본래 성격이 나쁜 공작님의 습관적인 눈빛이라는 걸 안다.

“그게 아니라…….”

“그럼요?”

레이커스가 내 시선에 겨우 굳었던 얼굴을 허물어뜨리며 깊게 웃었다.

그러곤 다시 내 손등에 키스하며 속삭였다.

“너무 행복하면, 불안하기도 한 법이라는 말을 겨우 이해해서 그렇습니다.”

나는 그 말을 너무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정말, 그래. 너무 행복해서, 너무 불안해.’

“……하지만, 그 불안을 겪어도 레이커스와 함께라서 좋아요.”

레이커스가 고개를 끄덕이곤 한 걸음 다시 다가와 나를 품에 가뒀다.

“사랑합니다.”

창으로 들어오는 눈부신 햇살 때문에 은빛으로 반짝이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난 혼자 생각했다.

‘진엔딩 이외에 또 다른 엔딩이 있을까?’

이젠 내겐 한 번의 기회밖에 없다.

내가 찾아낼 수 있는 엔딩도 하나뿐이겠지. 현실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하지만 뭐든 좋아.’

그게 레이커스와 여기 있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엔딩이라면, 뭐든 그게 가장 좋은 루트이고 가장 좋은 해피 엔딩이 될 거다.

나는 나를 내려다보는, 이 게임에서…… 아니, 이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에게 발돋움해서 그 말을 되돌려주었다.

“사랑해요, 저도.”

행복한 미소를 머금은 그가, 못내 참지 못하고 내게 고개를 기울여 키스했다.

공포게임 조연인데요, 죽이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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