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게임 조연인데요, 죽이지 마세요 124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크윽!”
랑비엘이 계속해서 고함을 지르다가 신성 기사단에게 크게 한 대 걷어차이고 다시 재갈이 물렸다.
앨라이는 그쪽을 흘끗 쳐다보곤 청량해 보이기까지 하는 희디흰 얼굴을 내게 다시 똑바로 향하며 말했다.
“제가 말씀드린 적이 있을 텐데요. 이 세상은 서로 수없이 많은 연결 고리로 이어져 있다고.”
“……그게 저와 무슨 상관이 있죠?”
“랑비엘, 저자가 원한 궁극적인 형태가 무엇이든…… 아르비체 님은 이미 그것을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그놈의 영생 말인가?
‘……당연하지. 나는 플레이어니까. 그러니까 당연히 나는 파크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 기억하지? 세이브 포인트로 되돌릴 수도 있고…… 다시 불러올 수도 있고…….’
혼자 멍하니 생각에 잠겨서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반짝거리는 내 몸을 내려다보던 나는, 문득 앨라이와 나누었던 말을 떠올렸다.
‘그게 말이 돼요? 거기에 제가 왜 불려 가냐고요.’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어떤 힘이 있었는지도 모르죠. 당신이 뭔가를 해결해 주길 바라는, 당신이 이 책의 마지막을 완성하고 덮어 주길 바라는 건지도 모르죠.’
마지막을 완성할 사람.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내가 진엔딩을 찾아내고 범인을 체포해 주기를 누군가 바랐기 때문에, 내가 게임에 불려 들어온 건 아닐까 하고.
‘……그런데 랑비엘이 나를 불러들였단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것이 착착 아귀가 맞다.
아르비체는 일찍 희생되는 희생자 중 한 명이었으니까. 랑비엘이 불러낸 무언가가 깃들 몸으로도 적당하지.
내가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는데, 레이커스가 나의 손을 꽉 쥔 채로 불쾌함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로 물었다.
“신을 멋대로 불러낼 수 있다면, 신도가 왜 필요하지? 신이라는 게 원래 그렇게 막 소환되고 하는 거야?”
앨라이가 동공의 사방에 그려져 있는 오망성들을 둘러보더니 양손으로 그것들을 가리키듯 팔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보십시오. 제물이 이렇게 많질 않습니까. 아마 차츰 방법을 찾아 나갔을 겁니다. 아마도…… 어느 시점에선 성공도 했을 겁니다.”
레이커스가 내 손을 더 꼭 쥐었다.
마치, 나를 놓치기라도 할 것처럼.
초조해하는 법이 없는 그를 조금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데, 레이커스가 인상을 구기며 다시 한번 물었다.
“그래서?”
“그래서…… 아마, 랑비엘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목표가 영생을 가진 신을 불러내는 거라고 한다면…… 아마 성공했을 겁니다.”
‘……그게 바로 나구나.’
나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
최종장의 이름이 ‘어서 오세요, PARK에.’였던 것도. 이 장소로 내려오는 입구에 최종장의 이름이 쓰여 있었던 것도.
나는 이 게임에 초대된 거다.
랑비엘에 의해서.
한 사람이 아니라, 너무 많은 사람을 흡수한 나머지 ‘살인자들’이 되어 버린 그에 의해서.
“그래서?”
거의 화내는 듯한 목소리의 레이커스를 보며, 앨라이는 고개를 저었다.
“랑비엘을 처단하고 나면…… 어떻게 될지는 솔직히 저로서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 의식 자체가 워낙 이교도의 것이고, 저보다는 마탑주님께서 더 잘 아실 듯합니다만…….”
우리의 시선은 바닥의 마법진을 손으로 짚고 있는 마리나에게 가 닿았다.
하지만 나를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면서도 입으로 뭔가의 주문을 읊조리길 멈추지 않는 마리나는 천천히 고개만 가로저어 보일 뿐이었다.
‘결국, 모른다는 거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뱉었다.
새하얀 드레스 자락 안으로 내 몸이 반짝반짝 빛을 뿜는 기세가 영 심상치 않았다.
‘……돌아가게 되는 걸지도 몰라.’
그토록 바랐던 결말이었다.
진엔딩을 보고, 범인을 찾고, 범인에게 응당 받아야 할 죗값을 치르게 한 다음…… 다시 돌아가는 거. 내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거.
공포 게임이라는 비정상적이고 음울하기 짝이 없는 공간에서 벗어나,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는 거.
‘……그런데 왜 이렇게, 기쁘지 않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떨구고, 내 손을 으스러질 듯 꼭 쥐고 있는 레이커스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긴 그 손에서, 랑비엘을 상대할 때도 느껴지지 않았던 초조함과 긴장이 전해져 왔다.
우리 사이에 다시 정적이 찾아 들자, 랑비엘이 눈을 홉뜨고 내 쪽을 쏘아보며 신음을 흘리는 소리와 마리나가 주문을 중얼거리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얼마나 그렇게 시간이 흘렀을까?
억양도 없이, 뭔가의 주문을 계속해서 읊조리던 마리나가 크게 숨을 들이쉬는 소리와 함께 랑비엘이 고통에 울부짖었다.
“……크으윽!”
“으윽!”
“크으으!”
결박당해서도 요동치듯 버둥거리는 랑비엘의 몸을 사방에서 붙들어 눌렀고, 마리나가 크게 힘주어 말했다.
“망각은 망각으로, 죽음은 죽음으로.”
마리나의 길게 이어지던 주문은 그 말로 끝이었다.
정적이 찾아듦과 동시에 미간에 여섯 발의 총알을 맞고도 움직이고 말을 하던 랑비엘의 몸뚱이에서 난 상처들에서 일순 피가 솟구쳤다.
그것은 왕궁 정원에서 봤던 모습처럼 지독하게 징그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그냥 평범해 보였다.
크리쳐나 키메라가 아니라, 그냥 하나의 인간처럼 보였다.
“랑비엘의 육신과 영혼이 하나가 된 거군요.”
앨라이가 중얼거리며 랑비엘에게 다가가더니, 랑비엘의 입을 가로막고 있던 재갈 중 하나를 벗겼다.
“감상이 어떠십니까.”
“……크으으윽.”
랑비엘이 육신의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는 것을 내려다보며, 앨라이가 다시 한번 물었다.
“당신이, 사람들을 해쳐 가면서까지…… 그들을 모두 재물로 만들어 가면서까지 불러내려 했던 존재가 아르비체입니다. 만족하십니까?”
“……그럴 리가 없어. 내가…… 내가 찾아내려 했던 건, 크윽…… 전지전능한…… 존재였다. 저런…… 여자 한 명이 아니라…….”
“됐습니다. 그러면 됐습니다. 당신이 저지른 일들에 대해 사죄할 인간은 아니니, 그 패배감이라도 안고 죽으십시오.”
앨라이가 랑비엘의 손을 들어 가슴 위에 모으도록 해 주었다.
허망하게도, 그게 정말로 끝이었다.
파크를 공포에 떨게 했던 수많은 사건의 범인은, 그저 제 육신을 되찾았다는 이유로 그렇게 죽었다.
두 눈은 감지도 못하고 나를 바라본 채 홉뜨고 있었고, 뭔가를 말하고 싶었던 듯한 입술도 크게 벌려진 채였다.
그의 눈에서 빛이 꺼지자, 거의 동시에 내 몸이 반짝반짝 빛나던 효과도 사라졌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불안한 마음으로 레이커스의 손만 꽉 쥐고 있는데 알림음이 시끄럽게 울려 댔다.
띠링! 띠링!
[마리나 라커의 호감도가 상승했습니다.
Lv.2(59/198)
호감도 이벤트 – 지하의 수호자 개방]
[앨라이 쿠스의 호감도가 상승했습니다.
Lv.4(49/396)
호감도 이벤트 – 고백 개방]
[레이커스 리어먼드의 호감도 상승 이벤트
필요조건 : 살인자들의 종말]
[레이커스 리어먼드의 호감도가 상승했습니다.
Lv.6(1/594)
호감도 이벤트 – 사냥터 데이트 개방
호감도 이벤트 – 약혼반지 개방
호감도 이벤트 – 달밤의 키스 개방]
[-True End – 루트 ‘살인자들의 종말’을 클리어했습니다.
클리어 조건 : 밀로라드의 비밀 상점에서 수호자의 총알 획득, 살인자의 정체 식별, 살인자의 죽음
클리어 보상 : 게임의 강제 종료 권한 획득, 분기 ‘Happy End’ 개방]
게임을 플레이할 때는 보상에 그렇게 집착했던 나였는데, 드디어 진엔딩을 맞이했다는데 그렇게 신이 나지도 않았다. 이런저런 것을 읽고 있을 정신조차 없었다.
밀려 올라가는 알림창과 시끄럽게 울리는 알림음 같은 건 그냥 귀찮을 뿐이었다.
다만, 그것들을 보고 있자니 실감이 되긴 했다.
‘……정말 끝났구나.’
내겐 이게 정말, 레이커스와 모두를 지키기 위한 목숨을 건 사투였으니까.
다리에 힘이 빠져 바닥에 주저앉으려는 순간, 레이커스가 나를 급히 끌어안았다.
“어디가 안 좋습니까? 어지럽습니까?”
걱정이 뚝뚝 묻어나는 말이었다.
“아뇨,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차마 다 대답을 하기도 전에 레이커스가 내 몸을 다시 제 품에서 놓더니 허리를 숙이고 내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부드러운 구름 같은 아름다운 잿빛 눈동자 속에는 염려가 가득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아.’
난 멍하니 손을 뻗어 레이커스의 뺨을 만졌다.
대리석보다도 더 매끄럽고 부드러운 뺨은 썩 차가웠고, 완벽하게 빗어 넘긴 머리카락이 흐트러진 모습은 썩 유혹적이었다.
“기억이…… 아니, 제가 누군지 알겠습니까? 당신이 누군지는 알겠습니까?”
‘레이커스가 걱정하는 것도 당연할지도 몰라. 인간은 보통 그렇게 빛이 나거나 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난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럼요. 알죠.”
“제가 누굽니까?”
난 그의 뺨을 손으로 쓸며 대답했다.
“레이커스요. 잘나디잘난 리어먼드 공작가의, 그 레이커스 리어먼드 공작님이요.”
“……정말로 다 괜찮은 겁니까?”
“응. 저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괜찮은 것 같아요. 그냥, 줄곧…… 랑비엘을 상대하는 일만 생각해 왔으니까요. 모든 일이 마무리되고 나자 힘이 빠져서…….”
내 말을 끝으로 모두는 약속이라도 한 듯 랑비엘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바닥에서 일어날 기운도 없는 듯 아예 주저앉은 채인 마리나도, 대신관을 대리하는 화려하고 새하얀 복장에 피를 묻히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는 앨라이도, 그리고 레이커스와 나도.
“……저렇게 쉽게 죽도록 두는 게 아니었습니다.”
레이커스가 으르렁거리듯 화를 냈지만, 나는 그의 팔을 쥐며 고개를 저었다.
피해자들의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죗값을 치르게 하는 게 물론 더 좋았을 테지만, 랑비엘은 그런 걸로 수치를 느낄 인물도 아니었다.
그가 그토록 바랐던 것이 고작 플레이어를 불러낸 일이라는 게, 그에겐 가장 큰 형벌이었을 거다.
심지어는 그조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죽은 것이.
“일단 자세한 이야기는 올라가서 나누시죠. 여기에서 나갑시다. 여긴…… 이제 정말 봉인해야 할 것 같으니까요.”
마리나가 아주 긴 한숨 끝에 나지막이 중얼거린 말을 시작으로, 모두들 다시 지상으로 올라갈 준비를 했다.
랑비엘을 한참 바라보고 있던 나도 계단 쪽을 향해 천천히 돌아서는데, 다시 한번 알림음과 함께 메시지가 떴다.
[게임의 강제 접속 모드가 해제되었습니다.
접속을 해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