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게임 조연인데요, 죽이지 마세요 123화
내가 쏜 여섯 발의 총알은 놈의 미간에 가서 박혔다.
‘명중했나?’
“크아아아악!”
“꺄아아악!”
“아파…… 아파……!”
지금까지는 세 개의 입이 하나의 소리를 내 왔지만, 비명만은 각자 달랐다.
명중했는지를 알아보기도 전에, 귀가 찢어질 것 같은 끔찍한 비명들과 함께 랑비엘의 몸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휘청거리는 몸을 겨우 중심 잡는데, 나를 거머쥐듯 잡고 있던 놈의 다리들이 나를 짓이겨 버릴 듯 움직이는 게 보였다.
‘……안 돼!’
“괜찮으십니까?”
눈을 질끈 내리깔기도 전에, 레이커스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내가 있는 곳까지 왔는지, 그가 나를 안아 올려 랑비엘의 몸에서 멀어졌다.
총알을 다시 재정비해야 한다는 생각과 랑비엘의 지독히 끔찍한 얼굴을 코앞에서 봤던 공포 같은 것들이 머릿속을 엉망으로 헝클어 놓아서 제대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괜찮으십니까?”
레이커스가 다시 한번 나를 달래듯 물었을 때야, 나는 우리가 랑비엘에게서 꽤 떨어진 정원 바닥에 서 있음을 깨달았다.
“크아아악!”
“크으윽!”
“으아악!”
제 머리를 움켜쥔 채 엉망으로 몸을 비틀어 대는 랑비엘의 모습이 보였다.
세 개의 입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랗게 벌어지더니, 거기에서 붉은 액체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그동안 삼킨 피들을 다 토하는 것 같아.’
마치 풍선이 쭈그러들 듯, 바닥으로 폭포수 같은 피를 토해 내는 크리쳐의 거대한 몸뚱이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끝낼 수는 없어!”
“내가 어떻게 모아온 것들인데…….”
“……크아악!”
랑비엘의 얼굴에 박혀 있는 눈들이 각기 다른 방향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랑비엘은 어떻게든 입을 다물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듯 계속해서 울컥거리며 피를 토해 냈다.
그 모습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기괴했다.
“……저게 대체.”
“저렇게 징그러운 건, 난생처음 보네…….”
“……세상에.”
경비병들 사이에서 술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너무 괴이한 광경에 머리가 핑 돌 지경이었다.
“……아무래도 명중한 것 같아요.”
내가 작게 중얼거리는 말에, 레이커스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부담이 너무 큰 일이었습니다만…… 아무래도, 성공한 것 같습니다. 다시는…… 이런 위험한 역할을 맡지 않게 하겠습니다.”
레이커스의 달래는 듯한 음성에 바짝 긴장해서 딱딱하게 굳어 있던 몸이 조금 풀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랑비엘은 순식간에 쭈그러들더니, 이내 보통 인간의 크기 정도로 줄어들었다.
상황이 종식된 것을 눈치챈 경비병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랑비엘을 포박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싶었다.
이 게임의 최종 흑막이자, 연쇄 살인마의 초라한 모습을.
기세등등해서는 반성을 할 기색은 한 줌도 보이지 않던 그가, 제가 저지른 죄에 대해 뉘우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협한 자의 최후를 보고 싶어. 사과를 받아 내야 속이 시원하겠어.’
나는 레이커스의 팔을 톡톡 두드렸다.
“이제 괜찮으니까, 내려줘요.”
“하지만……”
“괜찮아요.”
레이커스가 나를 살포시 내려놓자, 나는 내 다리로 똑바로 섰다.
여기 온 후부터, 나도 꽤 정신적으로 많이 단단해졌다.
어지간한 정신으로는 이런 삭막하고 무서운 곳에서 못 버티니까.
나와 레이커스는 흙에 잔뜩 스며들어 발을 흠뻑 적실 만큼 흘러내린 피 웅덩이를 밟으며 랑비엘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피 웅덩이 사이에 누워 있는 그 모습은, 그저 한 명의 인간처럼 보였다.
랑비엘은 이마에 징그러운 총구멍이 난 채로 온몸을 비틀어 대고 있었다. 온몸이 포박당한 채로도 퍽 기세가 사나웠다.
그사이에 수많은 눈은 다 어디로 갔는지, 얼굴에는 세 개의 입만 남아 있었다.
“크하하, 크크큭, 멍청이들. 멍청이들아.”
“나는 이런 식으로 끝나지 않는다……”
“다시 한번의 기회를! 어차피 시간은 되돌아갈 것인데…… 크하하.”
세 개의 입이 서로 다른 말을 지껄여 대는 모습은 무서울 정도였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고 있구나.’
“이자를, 이송해 주세요.”
그 순간 입을 연 것은 정원에 나와 있는 줄도 몰랐던 앨라이 쿠스였다.
정갈한 새하얀 의복 차림의 차기 대신관은 불결한 피 웅덩이를 밟고 서서도 참 곱디고왔다.
그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왕궁경비병 차림을 한 신성 기사단에게 명했다.
“이자가 돌아가야 할 곳으로.”
나는 든든하기 짝이 없는 앨라이를 향해 감사의 인사를 담아 눈인사를 하곤 그의 말을 받았다.
“마탑 근처로 이송해 주시면 돼요. 그 뒷일은…… 마탑주님께서 맡아 주실 겁니다.”
앨라이의 눈이 살짝 커졌다가 느리게 휘어졌다.
“역시, 안배가 다 있으셨군요. 아르비체 님께서는.”
나를 경외하는 듯한 시선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데, 청록색 옷을 입은 등이 우연인 듯 내 시선을 가렸다.
나는 고개를 돌려 랑비엘이 드러누워 있던 쪽을 바라보았다.
포박당한 채로 수많은 경비병에 둘러싸여 이송되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던 레이커스와 나는 천천히 그 뒤를 따랐다.
마탑의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를 통해, 정예의 경비병들과 앨라이 쿠스, 그리고 미리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마리나 라커가 랑비엘을 호송해 함께 내려갔다.
지루하게 긴 통로를 내려가는 동안, 랑비엘이 자꾸만 저주 섞인 말을 던져 대서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경비병 중 몇 명이 랑비엘의 입들에 전부 재갈을 물려 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기분 나쁜 신음 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마치 최면에라도 걸릴 것처럼 길게 반복되는 계단 밟는 소리를 얼마나 오랫동안 들었을까?
우리는 지하실 바닥의 동공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긴.”
앨라이 쿠스가 기분 나쁜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리며 주위를 한 바퀴 휘 둘러보았다.
밝은 등불을 여기저기 놓았는데도, 벽면 곳곳에 어지럽게 그려져 있는 오망성과 핏자국으로 보이는 수십 개의 손자국 같은 것들은 끔찍하게만 보였다.
“맞습니다. 여기가 바로, 저자가 탄생한 곳입니다.”
지난번과는 달리, 검고 단정한 원피스 차림을 한 마리나가 그의 말을 받았다.
마리나는 경비병들을 인도해서, 아직도 몸을 비틀어 대고 있는 랑비엘을 데려오게 시켰다. 바닥의 정중앙에 그려진 커다란 마법진에 누워 있는 또 다른 랑비엘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위에 놓아 주십시오.”
경비병들은 똑같은 인간이 두 명 있는 모습을 영 이상하다는 듯 번갈아 바라보면서도 마리나가 시키는 대로 했다.
랑비엘의 몸 위에 재갈이 물려져 있는 랑비엘을 내려놓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는데, 둘이었던 몸이 순식간에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 자리에 서 있던 모두가 의아해하는 게 보였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잘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마리나가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어젯밤부터 밤을 새워 조사했습니다만, 실체가 없는 존재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수십의 목숨을 흡수해서라도, 껍데기와 영혼을 분리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유령 같은 존재라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저희가 할 일은 이제, 두 개를 다시 붙여 놓는 거지요. 풀칠하듯.”
나는 그 이상한 말을 이해했다.
‘실체가 있는 존재여야, 죽을 수도 있는 거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리나는 천천히 뭔가를 읊조리며 바닥에 그려진 진에 손바닥을 대었다.
‘그러고 보니…… 오망성이 아니라 육망성이 됐어.’
분명 어제 여기 왔을 때만 해도, 랑비엘의 껍데기가 드러누워 있던 마법진은 오망성이었는데.
마리나가 중얼거리는 말은 적막밖에 없는 동공 내를 울렸기 때문에, 아주 나지막한 음성이었지만 몇 가지 단어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질서 ……순리 ……생에서 죽음으로…… 모든 생명이 그렇듯…… 단수는 단수일 것이 순리이니…….”
마리나가 땀을 뻘뻘 흘리며 계속해서 말을 읊조려 감에 따라 랑비엘의 표정이 점점 더 일그러졌다.
워낙 엉망으로 버둥거리는 통에 어느새 입에 물려 두었던 재갈이 벗겨졌다.
랑비엘이 눈을 홉뜨고 천장을 바라보며 고함을 쳤다.
“신이시여. 신이시여!”
“신이시여, 여기에 강림하십시오!”
“당신의 종이 여기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신이시여. 이 모든 시간의 흐름을 관할하는 신이시여!”
“시작과 끝을 관할하는 신이시여!”
“저의 목소리를 들어 주십시오!”
발악하듯 외치는 랑비엘의 목소리들은 하나로 겹쳐져 이상하게 울렸고, 마리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지경으로 컸다.
어딘가 기분이 나빠진다고 생각하며 귀를 막는 순간, 지하의 동공에 그려져 있던 수십 개의 오망성이 동시에 음산한 붉은색으로 빛났다.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 아냐?’
내가 그렇게 말을 하려는 순간, 내 손이 반짝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의아해서 내 손을 들어 내려다보는데, 내 에메랄드빛 머리카락도 반짝반짝 빛이 났다.
마치 내가 하나의 발광체가 된 것처럼.
머리가 새하얀 마리나가 계속해서 주문을 읊조리며 나를 돌아보았다.
앨라이 쿠스도, 그리고 레이커스도.
이 상황이 당황스러워 어쩔 줄 모르고만 있는데, 앨라이 쿠스가 내게 천천히 다가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이제야 이해했습니다. 당신이 그의 신이군요.”
“내가 왜…….”
나는 멍하니 중얼거리며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내가…… 왜? 내가 왜 저런 살인마의 신이란 말이야?’
하지만 그런 의문을 품은 것은 나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레이커스가 앨라이에게서 나를 보호하듯 뒤로 물리며 쏘아붙였다.
“그게 무슨 소리지? 똑바로 알아듣게 설명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지? 말도 안 되는 소리 지껄이지 마.”
그리고 레이커스의 목소리와 거의 동시에 들린 말은, 바닥에 누워 있던 랑비엘의 것이었다.
죽음이 코앞에 다가와도 절대 당황하는 법이 없던 그의 눈에는, 이제야 지독한 의문과 당황이 서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