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게임 조연인데요, 죽이지 마세요 122화
“우욱.”
서로 다른 눈동자들이 나와 레이커스를 향해 눈길을 주는 모습은, 가히 그 자체로 공포였다.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워낙 눈들이 시선을 사로잡았기 때문에 알아채지 못했지만, 얼굴에 빼곡히 돋은 눈 사이에 용케도 자리 잡은 세 개의 각자 다른 입이 동시에 입을 벌려 말했다.
“왜? 내 꼴이 그렇게 보기 나쁜가?”
입마다 각기 다른 소리가 나는 느낌이었다.
나는 치미는 욕지기를 참으려 애를 쓰며 뒤로 몇 발짝 물러났다.
“……저게 대체.”
“……아무래도 신체적으로도 합성된 부분이 있는 것 같군요.”
레이커스도 불쾌하기 짝이 없다는 듯 오만상을 찌푸리며 나를 제 뒤로 숨기듯 물렸다.
‘가면은 그냥 정체를 가리기 위해 쓰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정말 안이했어.’
목소리가 변조된 것처럼 들리는 것도, 가면을 써서 목소리가 울리기 때문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동시에 여러 소리가 섞여 들었기 때문이라니.
“……평소엔 잘도 모습을 숨기고 있었군.”
아무리 공포 게임이라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다.
내가 이를 갈 듯 말하자, 랑비엘이 세 개의 입으로 동시에 웃었다.
“왜? 나만 이럴 것 같아? 성공적인 키메라라지만, 레이커스도 한 번씩 흥분하면 이를 드러낼 때가 있을 텐데?”
왜 레이커스와 저를 한데 묶어 말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머릿속 한구석에서 레이커스가 돌변한 모습을 떠올렸지만,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레이커스가 저 말에 당장 반박하지 못하는 게 신경 쓰여서, 내가 먼저 고함쳤다.
“……달라!”
“다르긴 뭐가 다르지?”
“레이커스는 너처럼, 제 손으로 인간을 죽인 적이 없어. 넌 마음도 몸도 그저 추악한 괴물일 뿐이야. 레이커스를 끌어들일 생각도 하지 마.”
“크크크…… 크크……. 아주, 사이가 좋으시군. 좋아……. 좋다고. 이젠 나도 인질이니 뭐니 하는 것도 질렸어. 어차피, 다 완성했어. 이제 곧 완성이야.”
웃음을 흘리는 랑비엘의 몸이 크게 출렁이듯 움직였다.
이미 더 이상 인간처럼 보이지도 않는 그의 몸은 그림자에 반쯤 녹아 있는 거미의 것이었고, 그 위에 자리 잡은 랑비엘의 머리에는 쉴 새 없이 희번덕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는 눈들이 있었다.
나는 문득 랑비엘의 은색 머리카락 사이로, 이마 한가운데에 검게 빛나는 무언가가 박혀 있는 것을 보았다.
평소의 랑비엘에겐 그런 게 없었는데.
‘……저게, 내가 총으로 노렸던 곳이구나.’
이마의 정중앙.
그곳을 맞으면 실체를 유지할 수 없다는 곳.
그래도 약점이 있긴 있는 모양이었다.
워낙 거대하고 재빨라서 내가 그 조그만 과녁을 명중시킨다는 게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랑비엘은 내가 제 미간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걸 눈치챘는지 더 깊게 웃으며 내 쪽을 쳐다보았다.
“아르비체 님, 기다려 주세요. 그대는 내 먹이가 되어야 하는 소중한 존재니까.”
결국, 그거였다.
스스로의 합성 재료를 찾는 것.
‘결국, 바라는 게 영생이라니.’
어쩌면 필멸하는 존재로서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같은 시간선 안에 갇혀 있는 파크에서 찾아낸 영생은, 내가 보기에는 지독히 괴롭고 고독해 보였다.
레이커스가 기억이 있었던 것이 마냥 축복이 아니었듯이.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는 내 앞으로 레이커스의 등이 내 시야를 가리듯 섰다.
“저 추악한 자를 너무 오래 바라보시는 건 좋지 않습니다.”
“아……, 네.”
확실히 랑비엘의 지독한 시선에서 벗어나니 정신이 좀 드는 기분이었다. 나는 숨을 겨우 몰아쉬며 양손으로 총을 거머쥐었다.
슬쩍 주위를 다시 둘러보니, 잠깐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우리의 주변으로 왕궁 경비병들이 빼곡하게 몰려들어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모두 랑비엘의 드러난 얼굴과, 금방이라도 사람을 찔러 죽일 듯한 위협적인 다리에 가 닿아 있었다.
경비병들은 함부로 다가오지 않고 주변을 포위하고 있었지만, 혐오와 공포가 뒤범벅된 얼굴을 보니 큰 전력이 될 거라곤 기대하기 어려워 보였다.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아. 랑비엘이 새로운 인질이라도 잡는다면 그땐 정말 귀찮은 일이 될 테니까. 아리아 알터를 구해낸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야.’
나는 심호흡을 하며 레이커스의 등을 살짝 손으로 짚으며 속삭였다.
“랑비엘과 싸우더라도, 전력을 다하지 말고 시간을 끌어 주세요.”
“알겠습니다.”
레이커스가 내게만 들리게 대답하곤 앞을 보며 증오 섞인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말이 많군. 이제 슬슬 그만 지껄이고 담판을 짓지.”
랑비엘은 뭐가 그렇게 우스운지 혼자 낄낄거려 댔다. 여덟 개의 다리가 들썩였다.
“담판……. 크크크, 담판이라니. 매번 똑같이 싸우고, 매번 똑같이 나를 이기지. 하지만 이미 알잖아? 우리는 영원한 숙적이라는 걸. 우리 사이에 담판이라는 건 없어.”
“혀가 길군.”
레이커스가 달려듦과 동시에, 랑비엘을 향해 투창과 화살이 쏟아져 내렸다.
피슉! 피슉! 피슉!
랑비엘은 그것 중 일부를 앞발로 쳐 냈고, 또 일부는 그대로 맞았다. 하지만 내가 그를 겨눠 쐈던 총알들이 그랬듯, 실체가 제대로 있지 않은 자를 상대로 한 공격들은 허무하게 맨땅에 꽂혔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공격들이 시선을 끌어 준 덕분에 레이커스가 공격할 틈을 벌 수 있었다.
레이커스는 마치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사뿐히 뛰어올라 랑비엘의 거대한 앞다리들을 밟고 랑비엘의 얼굴이 있는 곳까지 짓쳐 들었다.
‘하지만 지금의 거대해진 랑비엘에 비해 레이커스는 정말 새 발의 피처럼 보이는걸…….’
그의 대단한 능력을 알고 있지만, 걱정을 멈출 수가 없었다.
둘의 공방은 워낙 치열했기 때문에, 레이커스와 랑비엘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다.
초조함에 나도 모르게 양손을 모으며 그 광경을 바라봤다.
기술적으로는 레이커스가 우위에 있는 듯 보였지만, 아무래도 몸집 자체가 다르다 보니 승기를 잡기란 어려워 보였다.
레이커스를 위해 경비병들이 지원 사격을 했지만, 유효한 타격이 없었기 때문에 전투는 생각보다 꽤 길게 이어졌다.
그렇게 복잡한 공방이 오가는 와중, 랑비엘의 시선이 문득 내 쪽을 향하는 게 보였다.
자연스레 레이커스도 그의 시선을 따라 내 쪽을 돌아보았다.
“커헉……!”
순간적으로, 레이커스가 나를 신경 쓰느라 랑비엘의 공격을 막지 못한 모양이었다. 크게 튕겨 나가듯 나가떨어진 레이커스의 등이 큰 나무에 처박혔다.
“괜찮아요?”
깜짝 놀라 외쳤지만, 레이커스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 자리를 그대로 박차 몸을 피했다. 다음 순간, 랑비엘의 앞다리가 그 나무를 그대로 찌그러뜨렸다.
“……비겁하게!”
“아닙니다. 제가 방심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며 다시 랑비엘에게로 돌아가는 레이커스의 등을 보며 난 입술을 깨물었다.
랑비엘의 말이 맞다.
레이커스와 랑비엘은 오랜 숙적이었다.
실력으로 어떻게 결판이 날 사이라면 그간 어떻게 결론이 나도 진즉에 났을 거다.
이대로라면, 레이커스가 이긴다고 해도 랑비엘이 또 그림자가 되어 도망가는 것으로 결론이 나겠지. 그러면 또 연쇄살인 사건이 계속 일어날 거고…… 나는 계속해서 먹잇감으로 노려질 거다.
왜냐하면, ‘기억하는 자’니까.
‘이제 시간을 더 끌면 레이커스가 위험해.’
난 주위를 둘러보았다.
신성기사단과 왕궁경비병의 도움은 생각만큼 유효하지 못했다.
나는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덜덜 떨리는 두 손으로 꽉 쥐고 있는 권총을.
‘내가…… 내가 지금 당장 해야 해.’
긴장으로 양손에 땀이 잔뜩 났지만, 이젠 더 이상 물러날 구석은 없었다.
‘하지만, 랑비엘의 몸집이 저렇게 거대해졌는데, 이마에 있는 아주 조그마한 점을 어떻게 맞춰?’
랑비엘이 이런 전투 상황에서, 저번처럼 방심해 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나는 마음의 결단을 내렸다.
‘랑비엘이 아직 모르는 것이 남았어. 바로, 내가 이 게임 속의 존재가 아니라는 거 말이야. 그것을 이용하는 수밖에.’
그가 나에 대해 집착할 다른 이유를 만들어 준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나는 총을 인벤토리로 되돌려 놓고 양손을 허공에 번쩍 들었다.
“랑비엘, 여길 봐.”
내 목소리에 레이커스가 랑비엘로부터 몇 발짝 물러났고, 랑비엘의 눈들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크크, 크크크. 무슨 일이지? 나의 소중한 어린 양.”
“랑비엘.”
“응?”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알아.”
랑비엘의 얼굴에 돋아 있는 온갖 색의 눈들이 일제히 왼쪽 위에서 오른쪽 위로 도르륵 굴러갔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
나는 씩 웃으며 새하얀 드레스 자락을 흔들어 보였다.
“그냥 기억하는 게 아니야. 기억나? 내가 이걸 입고 레이커스와 춤을 췄던 것.”
랑비엘의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왜? 너는 기억을 못 해?”
“……나는, 나는…….”
랑비엘이 괴로운 듯 긴 다리를 비틀었다.
그래, 모든 기억을 온전히 가지고 있었다면 애초에 여기에 오지도 않았겠지.
그의 기억들은 완전하지 않았다. 고작해야 단편적인 것들에 불과하겠지.
마치, 지독한 건망증에 걸린 것처럼.
나는 랑비엘을 향해 자신만만하게 웃어 보였다.
“네가 원하는 그 영생, 나는 이미 손에 넣었어.”
“……아르비체…… 너는…….”
혼란으로 가득 찬 그 얼굴을 보며 난 다시 비어 있는 양 손바닥을 그에게 보여 주었다.
“됐어, 이제. 내가 필요한 거잖아, 넌? 나로 끝내. 나를 먹고, 그걸로 끝내.”
“……너는.”
“난, 영생 같은 건 바라지 않으니까.”
“지금, 자진해서 나의 먹이가 되겠다는 건가?”
“그래. 대신, 레이커스는 놓아줘. 여기 있는 모두도.”
조건을 내걸면, 상대는 더 쉽게 정말로 바라는 게 있다고 믿게 마련이었다.
랑비엘은 잠깐 의심하듯 나를 노려보았지만, 내 말을 더 의심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그래, 나쁘지 않지. 하하하하, 자진해서 먹이를 자처하다니, 하하하하.”
호쾌하게 웃으며 내게 몸을 구부리는 랑비엘의 찢어지게 웃는 얼굴 뒤로,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레이커스가 보였다.
랑비엘은 총은커녕 볼펜 하나 숨길 곳 없어 보이는 드레스 차림의 나를 이리저리 바라보며 기꺼운 얼굴로 날 쥘 듯이 제 팔로 밀어 올렸다.
가까이서 본 그의 얼굴은 멀리서 볼 때보다 훨씬 더 추악했다.
챙!
그 순간 레이커스가 덤벼들며 랑비엘의 시선을 다시 빼앗았다.
‘지금이야!’
나는 다급히 인벤토리에서 총을 꺼내 들며 동시에 조준했다.
‘왼쪽으로 쏠리지 않게, 너무 세게 쥐지 않고, 정중앙을 조준해서…….’
탕! 탕! 탕! 탕! 탕! 탕!
나는 몇 번이고 연습해 온 대로, 조금의 주저도 없이 격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