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게임 조연인데요, 죽이지 마세요 116화
이 상황에 질겁하며 놀란 것은 나 하나만이 아닌 것 같았다.
“이, 이게 무슨 소리죠?”
고고하기만 했던 마리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왜? 처음 듣는 소린가? 정말로?”
레이커스가 어딘가 비꼬듯 중얼거리자, 마리나가 고개를 내저었다.
“……저는 모릅니다.”
“키메라를 만드는 것도?”
“……저는 키메라 제작에 가담한 적이 없습니다. 오해가 있다면 부디 풀어 주십시오.”
“오해 같은 건 없어. 그저 난 마탑의 먼지 하나까지 다 증오스러울 뿐이니까.”
레이커스가 쏘아붙이듯 말을 받아치는 소리가 끝나자마자 다시 한번 계단을 울리는 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쐐애애애액-!
그건 몇 번이나 크리쳐를 직접 대면했던 내가 듣기에도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이었다.
마리나도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마리나가 든 등불이 떨리는지, 어두운 계단을 비추던 주황색 불빛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샤샤샤샤샥.
마치 여러 마리의 벌레가 바닥을 기는 듯한 소리가 계단 벽을 타고 울렸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져.’
내 머리카락까지 다 간지러워지는 기분에 이리저리 고개를 두리번거리기 바쁜 와중, 레이커스가 내 손을 끌어다 손등에 키스했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속삭이듯 다그치자, 레이커스가 칼을 고쳐 쥐더니 까딱, 고개를 위로 들었다. 무의식중에 그를 따라 시선을 돌리자 천장에 달라붙은 거미 크리쳐 한 마리가 우리를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순식간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둠 속에서 커다랗게 벌린 그것의 입으로 침이 뚝뚝 떨어지는 광경이며, 여덟 개의 눈이 번득거리며 우리를 살펴보는 그 무기질적인 시선이 견디기 힘들게 두려웠다.
심지어는 저 계단 아래쪽에서도 눈알들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빛에 반사되어 보였다.
금방이라도 몸을 돌려 달아나고 싶었다.
레이커스가 내 손을 쥐고 있었기에 그나마 마음이 안정되었다.
“무, 물러나라! 사악한 영혼들이여!”
가장 앞쪽에서 걸어가던 마리나도 그것을 봤는지 질겁해서 고함을 치며 레이커스의 뒤쪽으로 넘어지듯 물러났다.
그것을 신호로 삼기라도 한 듯, 천장에 붙어 있던 거미가 우리를 향해 뛰어내렸다.
레이커스가 검을 들고 뛰어오르자 계단 아래에 있던 다른 거미도 우리를 향해 뛰어들었다.
쐐애애애액-!
순식간에 몇 마리인지 모를 거미와 레이커스가 합을 주고받았다.
나는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권총을 불러내 손에 꽉 쥐고 그것들을 겨누었지만, 나까지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다행히도 한 갈래 길이었고, 거미의 덩치가 워낙 거대했다.
레이커스에게 동시에 덤벼들 수 있는 거미의 수가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그는 종횡무진 거미들을 베어 넘겼다.
‘……언제 봐도, 초인적인 힘이야.’
밝은 외부에서 봐도 알아보기 힘든 움직임인데, 이런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그의 움직임을 제대로 식별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순식간에 눈앞에 거미 사체의 산이 쌓였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체가 금방금방 사라졌기 때문에 거미들도 계속해서 덤벼들었다.
거미들이 계속해서 덤벼드는 십여 분 정도의 공방 끝에, 귀가 아플 정도로 울리던 끔찍한 소리가 한꺼번에 사그라들었다.
마치 밝은 하늘 아래 서 있기라도 한 듯, 레이커스가 여유작작한 얼굴로 칼을 털며 우리에게 다시 돌아왔다.
“다시 앞장서지, 할멈.”
어느새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마리나가 다리를 덜덜 떨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 같은 창백한 얼굴이었지만, 레이커스의 말을 거역하는 것도 두려운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마리나가 앞장서자, 나는 입술을 깨물며 그 뒤를 따라 내려갔다.
레이커스도 나도 그 이상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기 때문에, 한참 동안 우리는 저벅저벅 걷는 소리만을 들으며 걷기만 했다.
난 그의 뒤를 따라 걸으며 레이커스의 등을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거미들의 정체를 아는 만큼, 레이커스가 지금 느끼고 있을 감정이 어쩐지 가엾어서.
촉.
레이커스가 내 손을 쥐고 또 입을 맞추었다.
그러느라 내 쪽을 돌아본 그의 눈동자에는, 잔잔한 슬픔과 기쁨이 섞여 있었다.
‘레이커스가 기억에 집착했을 법도 해.’
이렇게 시간을 되돌아와 보니 기억이라는 게 생각보다 훨씬 소중했다.
레이커스는 이렇게 누군가에게 이해받아 보는 게, 아주 아주 오랜만일 거다.
안쓰러운 마음에 그의 손을 꽉 움켜쥐는데, 얼핏 레이커스의 잿빛 눈동자에 검은 구름 같은 것이 서린 것처럼 보였다.
두근, 두근.
심장이 가볍게, 빠르게 뛰었다.
다시 눈을 깜박이고 바라보니, 새까만 구름 같은 것은 걷히고 없었다.
‘……착각이었을까?’
레이커스의 눈이 까맣게 물들 때마다 나타나는 그 포악함이…… 드래곤의 피 때문에 나타나는 거라면…….
‘그게 나타나는 순간은 어떨 때인 거지?’
“레이커스.”
“네?”
“레이커스는…… 저한테 방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잖아요.”
“그랬죠.”
“그건…… 레이커스의 피 때문인 거죠?”
레이커스는 앞서 걷고 있는 마리나를 흘끗 바라보더니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제가 무섭습니까?”
난 부드럽게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면, 진즉에 도망갔을 거예요. 그런 게 아니라…… 조건이 있을 것 같아서요. 평소에는 이렇게 부드럽고 상냥한걸요.”
레이커스는 내 한 손을 쥐고 조금 멀어진 마리나를 따라잡기 위해 계단을 다시 내려가며 작게 속삭였다.
“저도 완벽히 이해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요?”
“다만 드래곤의 피를 많이 쓰고 나면, 지배당하는 것 같습니다.”
레이커스의 추론은 그럴듯해 보였다.
왕궁에서도, 그리고 캐서 헌트의 집에서 나온 집을 다녀온 날에도 모두 기묘한 칼을 쓰고 난 뒤였으니까.
그렇다면 지금도 안전하지만은 않을 테다. 방금 그가 죽인 크리쳐의 수는 두 손으로 셀 수 없을 만큼 많았으니까.
하지만 난 그의 손을 놓지 않고 그저 고개만 주억거렸다.
“알겠어요.”
레이커스는 아래쪽의 마리나를 바라본 뒤 내게 보조를 맞춰 천천히 걸으며 물었다.
“저로서도 확신할 수 없는데, 제가 무섭지 않으십니까?”
그 목소리엔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처음엔 날 죽이지 않아 다행이라느니 하는 말을 농담처럼 했던 주제에.’
난 속으로는 투덜거리곤, 어두운 곳에서도 소름 끼치리만큼 아름다운 옆얼굴을 향해 씩 웃어 보였다.
“실체가 있잖아요, 레이커스는. 내가 얼마든 상대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뜻밖의 대답이었는지, 그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대화를 끝으로 우리는 한 손을 깍지 낀 채로 조용히 계속 걷기만 했다. 몇 번이고 발을 헛디딜 뻔했지만, 어두운 곳에서도 뭐든 잘 보이는 듯한 레이커스가 그때마다 나를 부축해 주었다.
‘꽤 오래 내려왔다고 생각했는데도 내려가도 내려가도 끝이 없네. 레이커스의 집에 있는 지하실 같아.’
어두운 공간에서 걷는 게 답답해서 숨도 잘 쉬어지지 않는 것 같았는데, 일순 동굴처럼 울리는 소리가 줄어들더니 눈앞이 훤히 트였다.
마리나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벽에 걸린 횃불에 불을 밝히자, 순식간에 거대한 동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레이커스의 지하와 워낙 구조가 비슷했기 때문에, 여기에도 감옥 같은 시설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여기에는 전혀 다른 게 있었다.
‘……이게 뭐야?’
난 눈앞에 펼쳐진 참담한 풍경에 말조차 나오지 않아서 입을 가만히 벌렸다.
바닥과 벽에 정신없을 정도로 많은 오망성이 그려져 있었고, 그 오망성마다 새빨간 색의 손바닥 자국 같은 것이 남아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죽임당하기 직전 발버둥을 친 흔적인 것처럼.
일렁이는 횃불 사이로 보이는 핏자국이 숨 막힐 정도로 무서웠다.
동공의 정중앙 바닥에는 가장 큰 오망성이 그려져 있었는데, 마치 피로 그린 것처럼 새빨간 액체로 그려져 있었고…… 그 오망성의 꼭짓점마다 뚜껑이 덮인 단지가 하나씩 놓여 있었다.
그리고 오망성의 가장 중심 부분에는 어떤 남자가 누워 있었다.
반짝이는 은발의, 꽤 키가 큰 미남자.
“……랑비엘 맥레이.”
내가 놀라서 중얼거리자, 레이커스가 내 손을 놓고는 오망성으로 다가갔다.
“……지독한 피 냄새군.”
오만상을 찌푸린 그가 몸을 구부려 랑비엘의 맥을 짚듯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러곤 내 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숨을 쉬지 않는군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레이커스도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듯 몸을 일으켜 단지들을 하나씩 열어 보았다.
세 개의 단지에는 검붉은 액체가 넘칠 듯 가득 차 있었고, 나머지 두 개는 거의 비어 있었다.
그는 그중 하나에서 나온 듯한 길고 붉은 실 같은 것을 쥐고 들여다보았다.
그때, 횃불에 불을 밝히다 말고 어느새 바닥에 주저앉아 벌벌 떨고 있던 마리나가 외쳤다.
“……이, 이런 의식이 행해지고 있었다니. 마, 막아야 합니다!”
“어떤 의식이지? 아는 게 있다면 똑바로 설명해.”
레이커스가 마리나를 바라보며 쏘아붙이자, 마리나가 바닥에 누운 랑비엘을 손으로 가리켰다.
“키메라…… 키메라를 만드는 진이에요. 그것도 아주…… 위험한.”
키메라라는 단어 자체가 불쾌하다는 듯 레이커스가 몸을 일으키며 마리나를 노려보았다.
“어떤 키메라지?”
마리나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마법진을 쳐다보다가, 그간 입에 올리지 않던 것을 무엇에게 홀리기라도 한 듯 중얼거렸다.
“……파크에 드리운 어둠을 걷어내기 위해, 온갖 마법적인 술식들이 동원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키메라를 만드는 것도 그중 하나였지요.”
마리나는 레이커스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드래곤이건 뭐건 모두 절멸해 버린 지금의 시대에, 리어먼드가만큼 완벽한 키메라를 다시 만들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요?”
“그래서 생각한 거죠, 전전대 마탑주님께서는. 어떻게 하면 더 강한 존재를 만들 수 있을까. 전 그 기록의 일부만을 보았습니다만…… 이렇게 직접 보니…… 이건, 사람의 피를 제물로 바치는 술식입니다.”
“……사람의 피를 제물로 바쳐서, 그래서 뭘 이루려는 건데요?”
“자각.”
“자각?”
“자각…… 이라고 했습니다. 파크라는 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각.”
마리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덜덜 떨며 말했다.
“저는 그것이 과장된 기록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전전대 마탑주님의 기록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파크의 이름을 다시 되새겨 보라고.”
나는 이해하지 못할 말에 눈을 찌푸렸지만, 좋지 않은 예감에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