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게임 조연인데요, 죽이지 마세요 106화
쐐애애액-!
랑비엘이 내민 협박장을 바라보는 순간에도, 크리쳐가 내는 울음소리가 다시 한번 귀를 때렸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레이커스는 괜찮을까?’
협박장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한들, 지금은 누구와 대화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었다. 이러다 튀어나오지 않을까 싶을 만큼.
‘지금까지…… 이렇게 심하지 않았잖아? 캐서 헌트의 집 앞에서도 한 마리였고, 그리고 왕궁 정원에서도 한 마리였잖아.’
그런데 오늘은 개체 수도 많거니와 하루 만에 두 번째 사건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들었던 ‘바람 소리’가 그렇게까지 잦지 않았던 것을 돌이켜 생각해 봐도, 오늘이 이례적인 날이라는 것은 틀림없었다.
‘……뭔가, 잘못된 걸까? 뭔가의 루트를 잘못 들어선 걸까?’
잇새로 입술을 깨무는데, 랑비엘이 눈썹을 으쓱 들어 올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게 하십니까?”
“……그게.”
급한 용무가 아니면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하고 싶었지만, 랑비엘도 예상 피해자 목록에 올라 있는 사람이었다. 애초에 그를 만나러 온 것이기도 했고.
‘나는 내가 할 일을 하자. 레이커스는…… 괜찮을 거야. 그의 대단한 무력을 봤잖아.’
그리고…… 드래곤의 피가 섞였기도 했고.
‘파크의 개’라고 스스로를 칭하며 자조하던 레이커스의 얼굴이 떠올라서, 나는 가슴속이 괜히 술렁였다.
어쩜 사람이 그렇게, 처연한지 모르겠다. 어쩜 사람이 그렇게…… 아직 의심을 다 벗지도 못한 주제에 그렇게 마음이 가게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대답할 생각도 못 하고 한참 위만 올려다보다가 천천히 랑비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겨우 마음을 진정하고서야 랑비엘을 다시 바라보았다.
고양이처럼 가는 눈동자가 유들유들하게 웃고 있었다.
‘협박장을 들고 있는 것치곤…… 어딘가 여유 있지 않아, 이 사람?’
“제게 하실 말씀이라는 게 뭔가요?”
랑비엘은 작게 웃으며 레이커스가 뛰어간 쪽과 반대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여기는 이목이 너무 많으니, 저쪽으로 가서 이야기하시죠.”
‘이목?’
그런 게 무슨 상관이야?
나는 눈살을 가볍게 찌푸렸다.
물론 사람들이 오가는 중심에 서 있었고, 마차길 가까이에 있었기 때문에 자리를 조금 옮길 필요도 있겠지만…… 레이커스가 걱정되어서라도 자리를 뜨고 싶지 않았다.
내가 머뭇거리며 그를 바라만 보자, 랑비엘이 망설이듯 한참 입만 달싹거리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곤 어딘가 연극조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까다로운 레이커스가 고른 연인이라, 충성도도 남다른 모양이군요.”
“……네?”
“하지만, 전 어디까지나 그린 양이 속고 있는 게 안타까워서 조언을 드리러 온 겁니다. 괜히 절 의심하실 필요는 없어요.”
“아뇨, 의심하는 게 아니라…….”
8번째인지, 7번째인지의 피해자였으니까. 새까맣게 탄 그의 시체가 발견되었으니까. 그를 의심할 필요는 없지.
내가 자꾸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듯 굴자, 랑비엘이 혀를 길게 빼서 입술을 핥더니 웃음을 싹 지우고 눈을 가늘게 뜨며 내게 편지를 쥐여 주었다.
나는 어쩐지 그의 그런 태도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사실, 경찰도 아니고 뭣도 아닌 내게 랑비엘이 협박장을 굳이 보여 준다는 것 자체가 너무 이상한 일이니까.
난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펼쳤다.
그토록 오랫동안 내용을 알고 싶었던, 그 협박장의 내용이 눈앞에 펼쳐졌다.
[안녕하십니까.
최근 당신의 가족이 참혹한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당신은 봤을 겁니다.
당신은 그로 인해 앞으로 일주일 안에 죽을 겁니다.
파크에 사는 이상.
- 레이커스 리어먼드 ]
레이커스.
레이커스라는 네 글자가 눈에 콕콕 박혔다.
머릿속이 미친 듯이 어지러웠다.
‘왜 이 편지의 발신자가 레이커스지?’
그 순간 전신에 소름이 쫙 끼쳐 들었다.
첫날. 내가 이 게임에 들어온 첫날.
그날 처음 만지면서 소름 끼치게 현실적인 감촉이라고 생각했던, 그 이후로 리어먼드가에 드나들 때마다 매번 만졌던 물건이 번개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리어먼드가 대문에 붙은 금속제 장식은 분명…….’
까마귀였다.
‘……세상에.’
내가 휘청거리자, 랑비엘이 내 어깨를 부축하듯 나를 붙들어 주었다.
“저쪽으로 가서 잠깐 앉으시죠.”
“……아뇨, 저는…… 알았어요. 잠깐만 앉아요.”
랑비엘이 나를 끌고 어딘가로 천천히 걸어가는 동안 나는 혼란으로 점철된 머릿속을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지 몰라 숨마저 헐떡였다.
‘간신히 믿어 보려고 했는데. 간신히…… 이제 믿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레이커스가 걱정되어 못내 두근거리던 심장이, 이제는 다른 이유로 두근거렸다.
‘하지만, 다른 증거가 많잖아.’
‘어떤 증거?’
‘……예를 들면, 아직 밝혀지지 않은…… 범죄 현장에 남겨져 있던 비늘 같은 거.’
난 내가 물은 말에 내가 대답하고서, 그게 정말 말도 안 되는 질답이라는 걸 깨달았다.
상세 내용이 조회되지 않던 그 비늘.
라떼도 아직 그 비늘에 대해 조사 중이지만 그 비늘이 뭔지, 이제는 알 것 같았다.
‘리어먼드가에는 인간이 아닌 존재의 피가 섞여 내려옵니다. 좋게 말하면 드래곤의 피를 이은 가문입니다만, 나쁘게 말하면 드래곤의 피까지 섞어 만든 파크의 개라고 할 수 있죠.’
레이커스가 흘린 비늘이다.
난 입술을 아프도록 깨물었다.
‘……하지만 캐서 헌트의 부검 영상에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도 있었잖아. 속단하지 말자.’
쐐애애액-!
다시 한번 어딘가에서 크리쳐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나는 한층 더 혼란스럽기만 한 머리로 고개를 흔들었다.
‘또, 또 이렇게 그를 의심하고 싶지 않아. 그가 그렇게 내도록 나를 배려해 준 것도, 그가 파크를 위해 노력해 왔던 걸 잘 생각해 봐.’
‘하지만, 협박장에 적힌 이름이…… 레이커스의 것이잖아?’
‘그래도 그가 납치범에게서 구해 준 건 잊었어?’
‘……그건 다 뭐였을까? 연기라도 한 걸까? 공범이라도 되나?’
나는 어떻게든 치밀어 오르는 배신감을 가라앉히려 애를 썼다.
하지만 그런 모든 것을 다 제쳐 두고라도, 나는 그의 눈에서 그동안 진심을 봤다고 믿었다. 내 감을 믿었고, 그동안 그가 내게 보여 준 진심을 믿었다.
냉정하게…… 최대한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여기 잠깐 앉으시죠. 저도 충격입니다, 레이커스가 그런 자식이라니.”
“저는…….”
나는 랑비엘이 나를 앉혀 주는 벤치에 주저앉으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생각이 너무 복잡해서, 머릿속이 빙빙 돌았다.
“괜찮으십니까?”
랑비엘이 나를 달래듯 말했다.
그 부드러운 음성에, 나는 한숨을 토하며 고개를 들었다.
고양이를 닮은 얼굴이 나를 걱정스레 들여다보고 있었다.
“……네, 괜찮아요. 이런 내용일 줄은…….”
난 뒤늦게 편지의 다른 문장들에도 신경이 미쳤다.
“그런데, 참혹한 모습이라니…….”
랑비엘이 내 말에 입술을 비틀어 보였다. 그게 마치, 슬픔을 연기하는 피에로의 얼굴 같아서, 나는 눈을 두어 번 깜박였다.
“그것에 대해선 길게 드릴 말씀이 없군요. 아무에게나 말해도 좋은 이야기는 아니라서.”
“……네?”
눈물이라도 글썽일 듯한 얼굴을 보며 나는 더 추궁할 수가 없었다. 랑비엘은 얼른 고개를 흔들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레이커스의 반반한 얼굴만 보고 그린 양이 속아 넘어가시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죠?”
“걱정하지 마십시오.”
랑비엘은 제 가슴을 가볍게 두드려 보였다.
“이미, 비밀리에 조직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레이커스의 폭주를 막고, 그에게 정의를 구현하려는 사람들이 모여 있죠.”
“……그, 그래요?”
그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리고 어지간한 여자였다면 녹아내렸을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얼른 말을 받았다.
“그렇습니다. 파크의 경찰들을 믿을 수나 있겠습니까? 레이커스의 수족이나 다름없는걸요. 말도 안 되는 잘못된 범인을 잡질 않나. 정말 한심해서 저희 귀족들이 단합해서 그를 체포하기로 했지요.”
나는 눈을 깜박였다.
너무 갑작스러운 이야기였다.
‘들어 본 적도 없는 이야기야…….’
하지만 게임 밖에서 바라봤던 파크와, 안에서 살아가면서 바라본 파크는 전혀 달랐다. 이런 일들이 진행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내가 모르고 있었을 가능성은 농후했다.
마치, 거미 크리쳐가 파크 안에서 활보하고 다니는 것을 내가 전혀 눈치조차 못 챘던 것처럼.
나는 침을 크게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커스가 자리를 비운 지금이 기회입니다. 마탑 옆의 지하에, 조직원들이 모두 모여 있습니다. 거기로 모시겠습니다.”
랑비엘이 내 어깨를 부축해서 일으켜 주었다.
나는 얼떨결에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도 모르게 목걸이를 손으로 꼭 움켜쥐었다가 놓았다.
“거기…… 누구누구가 있어요?”
랑비엘은 내 걸음을 재촉하듯 발걸음을 한층 서두르다 한 박자 느리게 대답했다.
“아, 누가 있냐고요. 그린 양과 친한 분들도 거기 다 계십니다. 라떼, 르뮈에, 밀로라드도 있고 공주님도 개입해 계시죠. 레일러 남작님이나 이번에 협박장을 받으신 다른 분들, 그리고…….”
나는 유창하게 이어지는 랑비엘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물론 그들이 연쇄 살인 사건에 관심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모임에 가담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정말로 그들이 가담해 있는 모임이라면, 어느 정도 믿을 만하긴 할 거다.
나는 점점 레이커스를 향한 신뢰가 흐려지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발을 떼놓다가, 문득 발을 딱 멈췄다.
마탑 바로 앞에서 우뚝 멈춰 선 나를 보고, 랑비엘이 몇 발짝 먼저 앞서 나가다가 나를 돌아보았다.
“음? 왜 그러십니까?”
난 침을 꼴깍 삼키고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DAY 1에 내가 지났던 공원 쓰레기통에서, 이후에 레일러 남작의 팔인지 다리인지가 발견된다는 걸 난 알고 있어. 신체 일부가 발견된 건 게임 속 날짜로 따지면…… 어제.’
경찰들은 아직 신원을 파악하지 못했을 시점이니, 그게 레일러 남작의 신체라는 걸 아는 건 나뿐이다.
‘레일러 남작은 죽었어.’
뒤로 물러서고 싶어 발이 자꾸 달싹거렸지만, 나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으려 무진 애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