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게임 조연인데요, 죽이지 마세요 102화
레이커스의 새까만 눈동자를 마주하는 것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그 까만 눈동자는, 물 위에 까만 기름이 둥둥 뜬 것처럼 아주 기분 나쁘게 보였다. 레이커스의 아름다운 눈동자와는 전혀 다른 눈 같았다.
“레이커스.”
내 부름에, 그는 나를 빤히 바라본 채로 작게 웃음 지었다. 붉은 입술이 이상할 정도로 길어 보이도록.
그리고 입 사이로 혓바닥을 내밀어 입술을 한 번 핥은 그가 나를 빤히 보면서 내게 다가왔다. 검은 언제부터 들고 있지 않았는지, 그의 손은 비어 있었다.
그의 까만 눈동자를 마주했던 첫 번째와도, 두 번째와도 다른 반응이었다.
첫 번째의 그는 바닥에 쓰러졌었고, 무작정 나를 공격했다.
두 번째의 그는 왕궁에서 재빨리 도망치다시피 사라졌었고, 제 몸을 자해했다.
그리고 세 번째의 그는, 지금의 레이커스는…… 아찔할 정도로 야하고, 악마처럼 사악해 보였다.
힘이 빠지던 손에 겨우 다시 다부지게 힘을 넣어 리볼버를 꽉 붙들었다. 손바닥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는 감각이 기분 좋지 않았다.
‘언제 그가 내게 덤벼들지 몰라.’
그를 똑바로 겨눈 총구를 보면서도 태연하게 다가온 그는, 마차의 바로 앞에서 나를 보며 손을 뻗었다.
“……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죠?”
레이커스가 내 손을 만지려는 듯 손을 내미는 순간, 나는 그가 저번에 내 총을 간단히 빼앗아 들었던 동작을 떠올리며 재빨리 총을 다른 손으로 옮겨 쥐며 그의 미간을 조준했다.
레이커스가 내 왼손을 붙드는 것과 내 오른손이 그의 미간에 정확히 총구를 들이대는 것은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함부로 굴지 마세요. 언제든 쏴 버릴 거니까.”
손에서 땀이 나고 머릿속이 복잡해 미칠 것 같았지만, 나는 최대한 단호하게 으름장을 놓았다.
그의 검은 눈은 평소에 비해 소름끼치고 무서웠다. 호랑이의 앞에 선 토끼처럼, 심장이 미칠 듯이 뛰었다.
레이커스는 내 위협이 재밌다는 듯 입술을 더욱 벌리며 웃더니, 내 손을 제 입가로 당겨 갔다.
워낙 동작이 빠르고 예측하기 힘든 그였다.
‘내 손목을 비틀려고 하면…… 아니, 무슨 짓이라도 하면 바로 쏴 버릴 거야.’
이를 악다물며 방아쇠에 힘을 주는 순간, 레이커스가 제 입가로 가져간 내 왼손의 손등에 제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뭐 하는 거야?’
아주 소중한 것을 대하듯, 그는 두 손으로 내 왼손을 부드럽게 받쳐 쥐곤 다시 한번 키스했다.
리볼버를 쥔 손에 힘이 절로 빠질 것 같았지만, 억지로 계속 움켜쥐고서 그를 노려보았다.
“무슨…… 무슨 생각이죠?”
레이커스가 길게 한숨을 쉬며 내 손등에 입술을 붙인 채로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재밌군.”
목소리가, 어딘가 낯설었다.
‘레이커스가 맞아? 아주 다른 사람 같아.’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건가 싶어 미간을 찌푸리는데, 반짝하고 레이커스가 눈을 떴다.
눈을 뜬 순간에는 검은 먹물이 섞여 있는 듯하던 잿빛 눈동자 속에서, 천천히 검은색이 걷혀 가는 것이 보였다.
그는 내 손등에 다시 한번 키스하곤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르비체.”
‘……레이커스다.’
이번에는 틀림없이, 레이커스였다.
그는 뭔가에 놀란 듯한 눈으로 나를 빤히 보곤, 자신을 겨누고 있는 총도 한 번 바라보더니 몸을 똑바로 일으켜 세웠다.
“……보통은 이렇게 제 마음대로 돌아올 수 없습니다. 이렇게 아무런 일도 없이 돌아온 건 처음입니다.”
그가 나를 한참 바라보다가 뭔가가 생각난 듯 몸을 뒤로 돌렸다.
온화해진 그의 목소리에 내 손에 들려 있는 총이 어딘가 무색하게 느껴졌다. 천천히 총을 내리며 레이커스가 보고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부티크에서 방금 나왔던 사내들은 거미에게 당하지 않고 무사히 살아남았지만, 안도하는 얼굴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공포에 질려서, 구토라도 할 것 같은 새파란 얼굴이었다.
“대체…… 내가 뭘 본거지?”
“저…… 저, 괴물이 대체 뭐야? 저, 저, 저런 괴물이 대체 왜 있어?”
“……리어먼드 공작님께선 지금 뭘 하신 거야?”
“뭐, 뭐야. 괴물 같은 건 전설에나 나오는 것 아니었어?”
사람은 물론이고 동물까지 공황에 빠져 있었다.
부티크 앞을 지나던 마차들도 날뛰는 말들 때문에 마차가 뒤집힐 듯한 상황이었고, 상점가의 창문마다 고개를 내밀고 이 사태를 구경하던 사람들 모두가 우왕좌왕 비명을 질러 댔다.
“거, 거, 거미! 거미다!”
“살려 줘, 사람 살려!”
레이커스는 그 광경을 한번 둘러보는가 싶더니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본 것들을 모두 잊어라. 이 순간을 잊어라.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일상일 뿐이다.]
그의 목소리가 윙윙 울리는 듯 들렸다.
내게도 그렇게 말을 한 적이 있다는 걸, 난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멍하니 레이커스가 바라보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내 눈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의 눈빛이 흐리멍덩해졌다. 심지어는 지나가던 말까지도 날뛰며 치켜들었던 앞발을 얌전히 내려놓고 흐린 눈으로 가만히 멈춰 섰다.
‘3……2……1…….’
나는 그가 내 기억을 삭제하려다 실패했던 때를 떠올리며 세 번의 카운트를 속으로 헤아렸다.
그리고 모든 것이 아무렇지 않아졌다.
너무나도 평범한 일상이 돌아왔다.
눈을 깜박 감았다 뜨는 사이에, 거미 크리쳐의 시체는 오간 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
고급 상점가의 손님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 멀리서 레이커스와 나를 지켜보며 우리가 얼마나 잘 어울리는 커플인지에 대해 찬탄하는 말소리, 한가롭게 마차가 지나다니는 바퀴 소리 같은 것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한낮에 눈 뜬 채 꿈이라도 꾼 기분이 들었다.
방금까지 이 거리의 사람들이 모두 어떻게 되어 버릴까 봐 조바심을 냈던 내가, 파크 전체로 거미가 퍼져 나가기라도 하는 건 아닐까 상상하던 내가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로 평화로웠다.
“……이건. 이건, 다 뭐죠?”
레이커스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마차 밖에서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평소와 다를 것 하나 없는 레이커스의 부드러운 미소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땀 하나 흘리고 있지 않은 그의 낯도.
“제 손이 무안해지질 않습니까? 이렇게 보는 눈이 많은데.”
내가 잡아 주지 않는다고 손이 무안해질 만큼 낯이 얇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등 뒤에서 총을 아이템 창으로 되돌리곤, 그의 손을 쥐고 마차에서 내려섰다.
‘어머머- 파크의 영웅 두 분이셔.’
‘오늘 어쩐지 상점가에 놀러 오고 싶더라니. 두 분이 함께 계신 걸 보다니, 운도 정말 좋지.’
‘그러게 말이야. 마권이라도 살까 봐.’
‘얘는? 사설 경마는 참여자도 운영자도 처벌받는 범죄 행위야! 공주님을 구해 주신 분을 보고 그런 곳에 돈을 걸면 어떻게 하니? 난 신전에 기부할 거야.’
‘그러고 보니 오늘도 축일이네.’
다들 부채로 입을 가린 채였지만 속살거리는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내 귀에까지 다 들려왔다.
모든 것이 너무 평화로운 나머지,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고, 머릿속이 엉망으로 뒤엉켜 있었지만 난 최대한 크게 심호흡하며 이 상황을 받아들이려 애를 썼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레이커스의 팔을 쥐고 걸으며 그에게 나지막하게 물었다.
“이렇게……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나요?”
그는 내가 좀 더 놀랄 거라 생각했던 모양인지 좀 의외라는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괜찮으십니까?”
“제 질문부터 대답해 주세요.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신 것 같아서요. 사람들은 거미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것 같은데, 항상 이런 식인 건가요?”
레이커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웃지도, 인상을 찌푸리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나를 한번 바라보곤 다시 앞에 놓인 고급 부티크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레이커스는…… 항상 이렇게 살아왔던 거야.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크리쳐를 몰래 처리하면서.’
등줄기를 따라 소름이 쫙 끼쳤다.
내가 플레이어일 때, 게임을 하면서 파크 내에서 크리쳐를 마주친 적이라곤 한 번도 없었던 이유도 설마 레이커스일까? 크리쳐는 던전 안에만 있는 게 당연하다고, 그렇게 마음 편하게 생각해 왔던 것도…… 레이커스 덕분일까?
“왜……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알면, 더 잘 대비할 수도 있잖아요.”
레이커스는 희미하게 웃었다.
“저도 정확히는 모릅니다. 다만, 사람들이 패닉에 빠지고 동요가 퍼지면 금방 상황을 걷잡을 수 없게 되고…… 그렇게 되면, 저보다 더한 어떤 존재가 모든 것을 되돌려놓더군요.”
“더한 존재?”
“거기까지. 제가 아는 건 거기까집니다. 더는 대답해드릴 수 있는 게 없군요. 아쉽게도.”
레이커스는 눈썹을 늘어뜨리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레이커스의 말은 알아들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가 거미를 죽이러 나서기 직전 내게 했던 말은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왜 국왕이 나를 싫어하는지. 왜, 우리 형이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았던 제 부인을 죽였는지. 그대가 왜……. 그대가 왜, 나를 경계할 필요가 있는지.’
레이커스는 자신이 힘을 쓰면 이지를 잃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다.
‘레이커스의 다른 자아는 내게 말까지 걸었어.’
나는 소름이 돋는 걸 참으며 레이커스의 팔을 꽉 움켜쥐었다.
“눈이 까맣게 변하는 거, 그게 대체 뭐죠?”
레이커스는 가게 하나를 손으로 가리켰다.
“저기가 카넬레가 맛있는 집입니다.”
“……레이커스!”
“말을 돌린 건 아니었습니다. 어디서부터 말씀드려야 할까, 모르겠습니다. 나름대로 국가 기밀인지라.”
“처음부터요. 처음부터, 다.”
그는 가볍게 숨을 들이켰다가 말을 쏟아냈다.
“리어먼드가에는 인간이 아닌 존재의 피가 섞여 내려옵니다. 좋게 말하면 드래곤의 피를 이은 가문입니다만, 나쁘게 말하면 드래곤의 피까지 섞어 만든 파크의 개라고 할 수 있죠.”
“네? 드래곤이라니…….”
당혹스러운 이야기에 나는 눈을 깜박였다.
“키메라라는 말,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그야 당연히 들어봤다. 이종족끼리 섞어 만드는 괴물. 공포 게임뿐만 아니라 각종 콘텐츠에 등장하는 기괴한 생물들.
마치 자조하듯 웃는 그의 미소를 보는 순간, 문득 떠올랐다.
고저택에 걸린 리어먼드가 역대 가주 초상화가 모두 거의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던 기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