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게임 조연인데요, 죽이지 마세요 99화
[유력 예상 피해자 : 모니카 파울로
거주지 : 왕궁
참고 : 동료, 웨인 이슈의 실종 사건 수사에 협조 중. 까마귀 그림이 그려진 편지를 받았다고 함. 경찰에서 직접 보호 중.]
[유력 예상 피해자 : 랑비엘 맥레이
거주지 : 맥레이가
참고 : 까마귀 그림이 그려진 편지를 받았다고 함.]
[유력 예상 피해자 : 안톤 리오
거주지 : 고급 부티크 의상실 3층 자택
참고 : 까마귀 그림이 그려진 편지를 받았다고 함.]
……
총 6명 중에 내가 아는 이름은 셋뿐이었다.
나머지 셋인 마틸다, 제니, 에이스는 모두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게임 속에서 예정 피해자로 지정된 이는 그중 모니카와 랑비엘뿐이었다.
난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왜, 갑자기 이렇게 많은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게 된 거지?’
다시 한번 리스트를 훑어본 나는, 처음에는 당황해서 보지 못했던 문구에서 시선이 멈췄다.
[경찰에서 직접 보호 중.]
그래도 모니카에게 붙은 그 문구를 보니까 조급하기만 한 속이 좀 풀리는 것 같았다.
‘나와 앨라이의 설득이 먹힌 게 틀림없어.’
캐서 헌트 때는, 그녀는 내 이야기를 들을 생각도 안 하고 그냥 도망가 버렸으니까.
모니카를 떠올리자, 난 다시 그 협박장의 내용이 궁금해졌다.
피곤해 죽을 것 같았지만, 그대로 몸을 일으킨 나는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그린가에서 가져온 아르비체의 짐을 다시 아이템 창에서 열람해 보았다.
동화책과 소설책 몇 권에 앨범 하나…… 거기에 일기장 하나.
다시 보아도 별 특별한 단서 같은 건 눈에 띄지 않는 것들.
난 앨범을 뒤적이며 넘기다가 문득 어느 사진에서 손을 멈췄다.
아르비체의 유년 시절 사진인지, 지금의 샤인 나이쯤 되어 보이는 아르비체의 모습이 보였다. 에메랄드빛 머리를 두 갈래로 땋고 행복해 보이는 미소를 띠고 있는 아르비체의 양쪽으로 부부로 보이는 여자와 남자가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그중 남자는 고모와 썩 닮은 창백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아르비체의 엄마와 아빠겠지? 그러고 보면 이 두 분도 꽤 이른 나이에 돌아가셨네.’
생각해 본 적 없는 주제에 대해 잠깐 고민해 보며 앨범을 후루룩 넘겼다.
어린 시절 이후로, 아르비체의 웃는 얼굴은 도통 볼 수 없었다.
‘고모의 학대가 제일 큰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문제도 있었던 걸까? 그보다는 좀 더 이전부터?’
난 그린가에서 가져온 짐에서 제일 소용없는 물건이었던 일기장을 다시 꺼내 손에 쥐었다.
가장 최근 내용부터 읽기 시작했던 것을, 이번에는 제일 앞 페이지부터 천천히 넘기며 훑어보았다.
‘저번에 봤던 것처럼, 꽤 꼼꼼하게 적혀 있긴 하지만…… 이렇다 할 단서는 없는데……? 잠깐.’
난 후루룩 넘겨보던 페이지를 다시 앞으로 넘겼다. 뭔가 마음에 걸리는데, 뭐가 걸리는지 모르겠다.
다시 한 장 한 장 꼼꼼하게 만지며 넘기던 나는 그 위화감이 뭔지 곧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라, 여기 좀…… 두껍지 않아?’
자세히 보니 일기장의 딱 두 장이 풀칠해서 서로 붙인 것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난 침을 꼴깍 삼켰다.
그냥 낡고 오래된 일기장이라 페이지끼리 붙어 버렸을 수도 있지만, 뭔가 그럴듯한 단서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딱 달라붙은 페이지를 살살 뗐다.
정말 풀칠을 한 건지, 윗부분은 찍 소리를 내며 한쪽 종이가 뜯어져 버렸지만, 중요한 부분은 쩍 소리와 함께 깔끔하게 분리가 되어 글씨를 읽는 데는 지장이 없게 펼쳐졌다.
[xx월 xx일 가을.
오늘은 신전을 갈 생각이었다.
신전을 가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들 하니까.
하지만 가지 못했다.
신전에 간다고 한들,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을 테니까.]
[xx월 xx일 가을.
신전에는 가지 않았지만, 매일같이 빌고 있다.
누군가, 내가 봤다는 사실만 모르게 해 달라고.
그러면 나도 모르는 척 눈을 가리고 지낼 거다.]
왼쪽, 오른쪽 페이지에 각각 짤막하게 적혀 있는 글은 평소의 단아한 글씨체와는 달리 조금 엉망으로 흔들린 글씨로 적혀 있었다.
‘……뭐지? 뭔가…… 뭔가를 봤어. 알고 있다는 사실조차 들키고 싶지 않은 뭔가를.’
심장이 뛰었다.
내내, 궁금했다.
협박장을 받는 사람들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그리고 모니카를 만나러 갔을 때도, 캐서 헌트를 만났을 때도 모두들 협박장 이야기만 꺼내도 안색이 달라졌으니까…… 도대체 거기 뭐라고 적혀 있는 걸까 궁금했었는데 이제 단서를 좀 잡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직 모호하긴 하지만, 뭔가의 진실을 알아낸 사람들이 협박장을 받는 거야.’
그렇다면…… 그들은 그 진실을 누설할까 봐 살해당하는 건가?
‘……하지만 봤다는 것조차 이렇게 괴로워할 진실이 뭐지?’
이 파크는 게임 바깥에서 보았을 때는 음산한 분위기의 추리 공간에 불과했지만, 안에 직접 발을 들여놓고 보니 훨씬 더 미스터리한 공간이었다.
나는 일기장을 비롯한 물건들을 다시 아이템 창으로 돌려놓고 한숨과 함께 침대에 드러누웠다.
아까, 6명의 피해자 목록을 봤을 때부터 빠르게 뛰던 맥박은 아직도 제 박자를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 온종일 너무 많은 사건이 있었고 나는 너무 피곤했다. 몸은 침대 속으로 꺼져들 것처럼 무거운데도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어쩌면, 모니카를 해칠 수 없게 된 것 때문에 다른 희생자를 노리게 된 걸지도 몰라.’
또 다른 생각도 들었다.
‘아니면, 왕궁 연회에서 그렇게 날뛰고 나서도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해서 이렇게 다른 희생자를 찾아 나선 걸지도 모르고.’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이 이렇게 되었는데도, 내가 납치범과 연쇄살인마를 동일시하고 있는 건 레이커스를 믿고 있다는 뜻일 거다.
레이커스를 떠올리자, 여섯 건의 살인 예고를 봤을 때만큼이나 머리가 지끈거렸다.
‘제 입으로 고백했다고 해서 죄가 없어지는 게 아니잖아. 그가 제 형을 죽였다면…… 그도 살인마야.’
‘‘누구’를 어떻게 하지도 않았습니다. 애초에 전, 인간은 건드리지 않습니다.’
레이커스가 했던 말 중 하나가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하아. 내가 알아낸 바로는 레이커스가 지금까지 내게 거짓말을 한 적은 없어. 그건 맞아. 하지만 그가 한 말 전부가 진실이라면…….’
그렇다면…….
그의 형이 인간이 아니었다는 말밖에 안 된다.
‘레이커스 한 명을 믿자고, 생각이 어디까지 흘러가는 건지 모르겠어.’
난 도리질을 쳤다.
인간이 아닌 존재는 나 또한 죽여 봤다.
샤인과 루나와 함께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사진을 찍은, 바로 이 저택의 지하에서. 한때 인간이었던 크리쳐를 죽여 봤다.
레이커스가 대체 왜 제대로 변명을 해 주지 않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좀 더 들어봐야 한다.
‘입이 너무 무거운 게 문제야. 도대체 왜 한 번에 제대로 이야기해 주는 법이 없는 거야?’
그놈의 망할 기억인지 뭔지. 내게 뭐 하나를 알려 줄 때마다, 내가 제대로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는지 물어보던 레이커스의 처연한 얼굴이 떠올라서 나는 이불을 푹 뒤집어썼다.
‘뭐가 이렇게 복잡해. 뭐가 이렇게 엉망진창이야.’
안 그래도 복잡한 것들이 많은데.
말도 안 되는 게임 속에 끌려 들어와 있는 것도, 게임 속인 줄 알면서도 포기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깊은 인연을 쌓고 있는 것도, 그리고 도대체 어떻게 탈출해야 할지도 알 수 없는 게임 속에서 진범을 쫓고 있는 것도.
‘그런데, 왜 자꾸 짐이 늘어만 가는지.’
이불을 뒤집어써서, 겨우 무거운 상념들을 내일로 다 미뤄 버리자 이젠 아주 다른 생각이 날 또 괴롭혔다.
레이커스의 핏기가 가신 입술이 내 입술을 더듬듯 덮어 눌러 오던 순간이 머릿속을 빙글빙글 돌았다.
“잠 좀 자자!”
난 들어 줄 이가 아무도 없는 이불 속에서 혼자 악다구니를 쓰고서야 겨우 눈을 감았다. 그러고도 한참 동안 상기하고 싶지 않은 장면이 자꾸 아른거렸지만, 다행히도 오래지 않아 피곤이 나를 잠으로 끌어내렸다.
나는 가까스로 길디긴 오늘 하루를 마칠 수 있었다.
“알비 선생님! 이 사진 좀 보세요! 루나 너무 무섭게 나오지 않았어요?”
“선생님, 아침 식사 호박 수프랑 호박찜이랑 호박 조림이랑 호박 주스래! 호박 속 파낸 게 너무 많다고 앞으로 나흘은 더 먹어야 한대!”
아이들의 종알거리는 소리에 못 이겨 무거운 눈꺼풀을 밀어내고 고개를 돌렸다.
두 아이는 처음처럼 내 침대에 기어오르는 대신, 침대가에 놓인 의자 하나에 같이 엉덩이를 대고 앉아서는 내게 종알종알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선생님의 잠자리를 방해하면 안 된다고 열심히 가르쳐 놨던 보람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는걸.’
난 웃음이 절로 나왔지만 엄한 얼굴로 둘을 바라보았다.
“우리 아침에는 식당에서 보기로 했잖아요. 자자, 둘 다 식당에 가 있어요.”
샤인이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고, 루나가 사진을 내 쪽으로 팔랑거리며 아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난 어쩔 수 없이 엄한 얼굴 그대로 루나가 원하는 말을 해 주었다.
“완전 마녀처럼 보여요. 아이고, 너무 무섭네.”
까르르.
루나는 내 반응에 만족했는지 환하게 웃으며 문으로 쪼르르 달려가다가 다시 내 쪽을 홱 돌아보았다.
“아, 그리고 루나한테 화내면 안 돼요! 오빠가 선생님이 어디 아픈 것 같다고 가 봐야 한다고 했단 말이야!”
“너는, 그런 말은 왜 하냐? 호박 수프, 네가 다 먹어!”
샤인이 루나의 말에 괜히 성을 내고는 얼른 루나의 손을 끌어당기며 나갔다.
난 둘의 조그마한 그림자가 문간으로 사라지고서야 엄한 얼굴을 그만두고 그만 픽 웃었다.
‘어쩜 좋아, 정말.’
어제는 그렇게 엉망이던 머릿속이 그 잠깐의 소란에 단번에 명료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 어떻게든 열심히 이 모든 것들을 헤쳐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이유가 있다.
그냥 게임을 잘 클리어해야지 하는 생각에서가 아니라…….
저 아이들도, 내게 소중해진 다른 사람들도 다 무사하길 바라서.
어느 순간에 바뀌어 버린 내 목표는, 게임에서 무사히 빠져나가고 싶다는 목표와는 서로 배치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난 호박으로 가득한 아침을 먹으러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