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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게임 조연인데요, 죽이지 마세요-97화 (97/130)

공포게임 조연인데요, 죽이지 마세요 97화

그에 대해서 잘 알고 싶으냐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

나는 그에 대해 너무 알고 싶은 나머지, 레이커스의 지하실도 뒤지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봤던 사람이다.

레이커스는 내 침묵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는지, 작게 웃음을 머금은 채 내 손으로 제 피부를 쓸어 올리더니 제 가슴 위에 올려놓았다.

아주 건강한 새 한 마리가 손안에서 파드득 날갯짓하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 느리지 않게, 적당한 빠르기로 그의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손바닥으로 다른 사람의 심장 박동을 느끼는 건, 어딘가 지독하게 야한 구석이 있다.

‘너무 가까워.’

밀착한 몸도 그랬지만, 이 분위기 자체가.

손을 떼어내려는 순간, 레이커스가 상체를 휙 일으켰다.

평소에 눈높이가 꽤 차이가 나는 그와 나였지만, 그가 이렇게 어딘가에 기대앉아 있으면 눈높이가 같아졌다.

레이커스는 아주 느리게 다가와 입술이 닿을락 말락 한 곳에서 얼굴을 멈추었다.

이번에는 갑작스럽지 않았다. 거절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거절이 더 옳은 선택지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누가 이 순간, 그의 말을 거역할 수 있을까?

레이커스는 아름다웠다. 내 손이 느끼는 심장의 주인이 천사이든 악귀이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을 정도로.

나는 내 입술을 더듬듯 아주 느릿하게 다가오는 그의 입술을 거부하지 않았다.

레이커스의 입술이 내 입술 위를 연주하듯 훑었다.

우리의 입술이 맞닿아 있는 동안 손 안에서 그의 심장이 조금 박자를 빨리하는 것을 느끼는 건, 정말 야릇했다.

두근, 두근, 두근.

스무 번이 넘는 심장 박동을 헤아리다가, 횟수를 까먹어 버렸다가, 문득 정신이 든 나는 파드득 그의 가슴을 밀어냈다.

언제나처럼, 그는 무리하게 내 입술을 더 탐하지 않고 선선히 뒤로 물러났다.

금빛의 속눈썹이 사르르 위로 올라갔고, 여느 때와 같은 아름다운 잿빛 눈동자가 나를 맞았다.

“아르비체.”

그가 내 이름을 부를 때마다 가슴속에 있는 호수가 너울거리며 파도가 인다는 것을, 그는 알까?

난 그의 심장께에 손을 올려놓는 것조차 갑자기 부담스럽게 느껴져서 손을 빼냈다.

“……그렇게 이름으로 부르시기로 한 거예요?”

레이커스는 웃으며 피아노 의자에 걸터앉곤, 나를 달래듯 잡아당겨 제 무릎에 앉혔다.

나는 어린아이가 안기듯 그의 무릎 위에 폭 안겨 앉았다.

그 자세가 정말 연인이라기보단 어린아이를 대하듯 하는 자세라, 난 거부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그냥 그대로 앉았다.

레이커스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나를 가볍게 토닥였다.

‘이거 봐. 완전 어린애 키우는 습관이 몸에 밴 사람 같지 않아?’

새로 온 유모가 루나를 안고 있을 때 종종 등이나 엉덩이를 토닥여 주는 딱 그거잖아.

“아이들을 그렇게 안아 주지도 않으시는데, 아이를 꽤 오래 키우신 것 같단 생각이 들 때가 있다니까요.”

레이커스는 내 말에 뜻밖에 우울한 기색을 내비쳤다.

“……제가 샤인과 루나를 매정하게 대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난 어깨를 으쓱했다.

“좀 더 다정하게 대해 주시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긴 하지만, 엄하게 키우실 생각이시라면 제가 뭐라 입댈 입장은 아니죠. 전 그냥 고용인이니까요.”

“엄하게 키울 생각이라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럼요?”

“그냥…… 최선을 다한다는 게 지칠 때가 있으니까요. 그것도 한두 번이지……”

의미를 잘 모를 말에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자, 그가 내 이마에 키스했다.

‘……세상에.’

그와 키스를 하는 순간에도, 낯빛이 바뀌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속이 아주 뒤집히게 울렁거리긴 했지만, 얼굴이 붉어지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건 너무…….

난 틀림없이 새빨개졌을 얼굴을 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정면을 바라보며 그의 말을 들었다.

레이커스의 가슴을 통해 말이 울리는 감각이 싫지 않았다.

“샤인과 루나는, 마땅히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네.”

“제가 그럴 수 없다는 걸 아니까, 가정교사를 제대로 구하려고 애를 쓴 겁니다.”

“네.”

“그래도 아이들이 아르비체, 당신을 이렇게까지 따르게 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레이커스는 내 등을 부드럽게 쓸었다.

“……뭘요.”

“당신을 고용인이 아니라……”

이야기가 깊어지는 기색을 알아채는 건 아주 쉬웠다.

내 심장이 아주 크게 쿵 하고 뛰었으니까.

나는 입술을 꼭 깨물면서 황급히 손을 저었다.

왕궁에서부터 자꾸, 이런 식이다. 자꾸,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꺼내려고 한다. 내 이름을 부르면서.

사람 마음을 휘두르려고.

난 얼른 입을 열었다.

“……다른 얘기. 다른 얘기 해요.”

레이커스가 나직하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이럴 때 제 의견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대신, 내 말을 순순히 따라 주는 편이었다.

레이커스는 말을 고르는가 싶더니, 한 번도 꺼낸 적 없는 말을 꺼냈다.

“샤인과 루나의 부모는, 제 형네 부부는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좋은 일도 많이 했습니다. 사실 전 누굴 돌보고 베풀고 하는 성격도 못 됩니다만, 그렇게 둘이 떠난 뒤에 갑자기 둘의 일을 떠맡게 된 셈입니다.”

그리움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에 난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최근 들어 속내를 잘 드러내게 된 그라서, 그래서 그의 다양한 감정 하나하나와 표정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용기가 나질 않았다.

나는 그러는 대신 레이커스의 목소리에 담뿍 담긴 그리움을 읽으며 되물었다.

“실례인 줄은 알지만, 그 두 분은 왜 돌아가신 거죠? 사고였나요?”

내 질문에, 그의 몸이 뻣뻣하게 굳는 게 느껴졌다.

나는 잠깐 대답을 기다리다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어, 레이커스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나를 내려다보고 입꼬리를 슬쩍 당겼다가 놓았다.

“사고였습니다.”

‘아니야.’

내 손에 낀 유리 반지를 쓸 필요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속내가 빤히 읽혔다.

“똑바로 말해 줘요.”

“……이런 피 칠갑을 한 제 말을 믿어 주실 생각입니까?”

“제가 당신을 믿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서, 이렇게까지 사람을…….”

“사람을?”

‘이렇게까지 사람을 유혹한 거예요?’

난 뒷말을 잇는 대신 그의 품을 밀치고 일어나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레이커스는 앉고, 나는 서 있는 탓에 우리의 눈높이는 제법 비슷한 곳에 있었다.

“당신을 더 알고 싶어요. 그러니까 털어놔요.”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천천히 사라졌다.

가식적인 표정이 사라진 곳에 읽기 힘든 복잡한 감정이 깃들었다.

그는 망설이듯 입을 몇 번 달싹거리다가 어렵사리 말을 내뱉었다.

“제 형은 저와 비슷한 피가 흘렀습니다. 탁하고, 어둡고, 저주받은.”

‘……피?’

“무슨 말이죠?”

“제 형은, 피에 잡아먹혀서 죽었습니다.”

난 눈을 깜박였다.

그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를 괴로워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또 제 속으로 말을 숨겨 버릴 것 같았다.

“알아듣게 말해요. 이런 식으로 얼렁뚱땅 넘기지 말고.”

“……알아듣게 요약해 보자면, 저는 당신을 해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형이 그토록 사랑하던 제 부인을 죽였듯이.”

담담하게 말하는 그의 표정은, 아주 괴로워 보였다.

일주일 전이었다면, 아니, 하다못해 하루 전만 되었더라도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서 그저 겁에 질려 그에게서 달아났을 거였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상하리만큼 머리가 맑았다.

‘레이커스가 정말 나를 해칠 거라면, 지난 며칠 동안 나를 그렇게 지독하게 보호하지도 않았겠지.’

나는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며, 그가 내게 한 섬뜩한 경고를 잘 생각해 보았다.

‘레이커스의 형이 피에 잡아먹혔다는 거…… 레이커스가 검은 눈을 하고 날 공격한 그것과 관련이 있는 걸까? 형이 제 부인을 죽였다는 걸 보면…….’

난 달아나는 대신 레이커스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뗐다.

“레이커스.”

“……말씀하십시오.”

“형이 죽었다는 이유, 당신이 가끔 이상해지는 것과 관련이 있나요?”

아직도 피아노방 바닥에, 그리고 레이커스의 셔츠와 겉옷에 잔뜩 묻어 있는 피를 흘끗 바라보며 묻는 말에 레이커스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렇습니다.”

“리어먼드가에 내려오는 정신병이라도 있나요? 다중 인격?”

내 질문은, 내 편의에 따른 해석이었다.

레이커스 안에 두 인격이 있다고 해석해 버리면, 모든 것이 손쉽게 해석되니까.

그는 신중하게 대답하려는 듯 눈을 슬쩍 굴리곤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정신병이라…… 전혀 틀린 말은 아닙니다. 다중 인격이라는 것도.”

레이커스가 내놓은 답은 애매하긴 해도 긍정이었다.

난 눈을 가늘게 뜨고 레이커스에게서 한 발짝 물러섰다.

“어느 시점에, 그 다중 인격이 발현되는 거죠? 아무 때나 정신이 이상해지는 건가요?”

레이커스는 조금 곤란한 얼굴을 했다.

“……여기부터는 다음에. 다음에 이야기하겠습니다.”

‘또, 또 이런다.’

양파도 아니고. 한 껍질 들여다보고 깜짝 놀라고 있노라면, 다음 껍질이 있고, 또 다음 껍질이 있다.

시원하게 속내를 다 드러내 주지 않는 그 이유가 뭘까?

나는 곰곰이 생각에 잠긴 채로 레이커스가 내게 들려주었던 이야기들을 다시 되짚어 생각했다.

‘형 부부의 죽음, 피, 다중 인격…… 형이 갑자기 홱 돌아 버려서 부인을 죽였단 말이지? 근데, 그럼 이상하지 않아?’

그에게 보이지 않게 한 걸음을 크게 물러나며 등 뒤로 아이템 창을 조작했다.

‘피에 먹혔다는 둥 얼렁뚱땅한 말로 넘어갔지만…… 잘 생각하면 할수록 이상하잖아.’

이젠 너무 많이 반복한 동작이라, 어렵지 않게 등 뒤로 리볼버를 꺼내 손에 쥘 수 있었다.

[6연발 권총. 전용 총알 3개.]

등 뒤에서 안전장치를 풀며, 레이커스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공작님.”

“네?”

“형이 부인을 죽였다면, 그 형은 누가 죽였죠?”

그가 피아노 덮개 위에 팔을 기대며, 쓰게 웃었다.

마치 내가, 결코 말해 주고 싶지 않았던 비밀을 알아내 버렸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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