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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게임 조연인데요, 죽이지 마세요-86화 (86/130)

공포게임 조연인데요, 죽이지 마세요 86화

난 모니카를 데리고 사람이 적은 창가로 다가갔다.

걸어서 이동하는 동안 연회장의 중앙 댄스 플로어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아름다운 춤을 뽐내는 것을 한쪽 눈으로 보며, 난 이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갑자기 당신이 살해당할 수 있다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진짜 청천벽력일 텐데.’

모니카가 방긋방긋 웃으면 웃을수록 더 미안했다.

‘그냥 앨라이에게 보내 버릴 걸 그랬나?’

앨라이라고 해서 이런 책무를 짊어지는 게 반갑지는 않겠지만, 매일같이 사람들은 그에게 힘듦을 호소하니까…… 어두운 분위기에 더 익숙할지도 모른다.

‘아니야. 인제 와서 마음 약해지지 말자.’

솔직히 모니카에게 경고하기 위해서라면, 그냥 앨라이에게 모니카를 보내 버리는 게 제일 빨랐다.

그런데 굳이 내가 이렇게 먼저 모니카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건, 역시 초대장을 받는 사람들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범인이 닥치는 대로 살인 예고장을 발송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살인을 취미로 삼는 미치광이라면 길가에서 그냥 아무나 죽였을 텐데, 그러지 않는 게 마음에 걸린단 말이야.’

살인을 예고해서, 뭘 하려는 걸까?

머릿속의 실타래들은 점점 더 복잡해지기만 했다.

난 필요하면 언제든 메모할 기세로 사건 수첩까지 꺼내 들고 그녀에게 물었다.

“저, 혹시 최근에 이상한 점 없었어요?”

“이상한 일이요?”

“아니면, 수상한 사람을 만났다거나?”

모니카는 내가 그런 걸 왜 물어보는지 의아한 눈치였지만, 되묻지 않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따로 생각나는 건 없는데요…… 그건 왜요?”

“좀 더 생각해 봐요. 최근에 만난 사람 중에, 평소에 안 만났던 사람은 없었어요?”

“아뇨, 따로 없었어요. 며칠 전부터 왕궁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관리가 좀 심해져서,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는걸요?”

“신전은요?”

“전 신전은 잘 안 다녀서…… 물론 그러면 안 되지만요.”

모니카가 민망한 듯 눈초리를 내리며 웃었다.

난 딱히 건진 정보가 없다는 아쉬움에 수첩을 톡톡 두드리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러면 까마귀 그림이 그려진 편지…… 라고 하면 혹시 짚이는 게 있어요?”

모니카의 방긋방긋 웃기만 하던 얼굴이 순간적으로 얼었다. 그녀는 잠깐 멈춰 있다가 눈을 빠르게 깜박였다.

그러곤 어딘가 굳은 목소리로 내게 되물었다.

“……그걸, 어떻게 아세요? 처음부터 제 이름을 아시는 것도 그렇고…….”

“경시청 사람과 공작님이 이야기하는 걸 들었어요.”

처음에 그렇게 나를 반기던 사람 같지 않게, 그녀는 순식간에 나를 경계하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레이커스와 내가 연인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덕분에, 모니카는 내 말을 덥석 믿어 주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 서린 불안이 사라지진 않았다.

협박장에 관해 물었을 때, 캐서 헌트가 보여 주었던 그 불안한 눈빛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처럼.

모니카는 어딘가 딱딱한 말투로 더듬더듬 말했다.

“……그랬군요. 협박장이 왔거든요. 까마귀 그림이 그려진. 불길한 말이 적혀 있는 협박장이요. 발신자 이름이 적히지 않은 편지였어요. 그걸 받고 나니 소름이 끼쳐서…….”

“그런데 왜 여기서 계속 일하고 있는 거예요? 경찰에겐 말해 봤어요?”

“그게…… 그런 건 귀족 나리들이나 당하는 일이라고 하면서, 제 말을 귀담아들어 주지 않으시더라고요.”

“협박장을 보여 줘도요?”

모니카는 어설픈 거짓말을 숨기려는 아이처럼 눈알을 왼쪽 위로 굴렸다.

그러곤 입술을 짓씹으며 속삭였다.

“보여 주진 않았어요…….”

“왜죠?”

모니카가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무슨,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으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더 할 말이 없는데요. 일도 바쁘고 해서, 이만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그녀의 가시가 돋친 말투는 오히려 그녀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걸 뚜렷하게 암시하고 있었다.

‘……대체 뭐지?’

난 문득 내가 협박장 그 자체를 본 적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러스트 속에서 편지 겉봉을 본 적은 있는데, 그뿐이다.

협박장을 받은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는 게 너무 큰 문제니까, 협박장 자체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뭔가 있는 거야. 목숨이 달린 문제라는 것을 알면서도, 협박장을 남에게 보여 주지 못할 만큼의 무언가가.’

그게 대체 뭔지 궁금해 죽을 지경이었지만, 내가 조금이라도 더 추궁했다간 그녀는 달아나 버릴 기세였다. 캐서 헌트 때와 똑같이.

나는 아쉬웠지만, 다른 이야기를 꺼내기로 했다.

“사실 궁금한 건, 실종자 사건에 대한 거예요. 리어먼드가의 일꾼 중에도 실종된 사람이 있어서요. 왕실에도 실종자가 있다죠?”

“……아, 제 친구요. 웨인…….”

“네, 웨인 이슈라는 분이 실종됐다고 들어서요. 혹시 뭔가 아는 게 있을까 하고요.”

웨인 이슈의 이야기가 나오자, 모니카는 어떻게든 내게서 도망치려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시선을 멈추었다.

그러곤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뭔가 감탄했다는 눈을 했다.

“제가 잠깐 오해했던 것 같아요.”

“……뭘요?”

“아르비체 님께선 경시청에서도 신경 써 주지 않는 보잘것없는 평민들의 일에 일일이 관심을 두시는 거였군요.”

“보잘것없다뇨. 사람 나고 신분 났지, 신분 나고 사람 났나요.”

“……다들 아르비체 님, 아르비체 님하는 이유가 있었네요.”

“……네?”

[모니카 파울로의 호감도가 상승했습니다.

Lv.2(22/198)]

모니카는 붉어진 눈시울에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날 바라봤다.

“경찰들은 귀족의 사건이 아니면, 그렇게까지 파고들진 않으니까요. 웨인이 사라진 지 이렇게 오래 지났는데도, 공개수사 포스터 몇 장을 달랑 붙인 게 끝이라니까요. 제게 이렇게 뭘 물어본 적도 없어요. 아르비체 님께서 따로 사건을 알아보시는 건 줄도 모르고…….”

“제가 물어본다고 한들, 큰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는걸요.”

“아녜요. 그래도 관심 가져 주시는 것만 해도 그게 어디예요. 도대체 어딜 간 건지…… 저랑 정말로 친했거든요…….”

난 죄책감을 느꼈다.

내가 대단한 사명감을 가지고 모두를 돌볼 생각으로 이렇게 조사하고 다니는 게 아니니까.

그냥 나 하나 살자고, 어떻게든 이 게임의 살인마를 알아내서…… 내 한 목숨 부지해 보려고 하고 있는 짓에 불과했다.

진엔딩을 보려고 하는 것도, 그냥 그래야 이 끔찍한 꿈 같은 일이 끝날 것 같아서 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자꾸 다들 내가 뭐 대단히 정의로운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직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몰라요. 그 친구의 어머니와도 가깝게 지내는데, 한 번씩 찾아가 보면 어찌나 우시는지 몰라요.”

난 입술을 꼭 깨물었다.

갑작스럽게 머리가 핑글 돌았고, 지금까지 계속해서 외면해 왔던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내가 리어먼드가 저택 지하에서 거미 크리처를 쏴 죽이던 순간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레이커스의 말이 정말이라면…… 어쩌면 내가 죽인 건…….’

아무리 거미로 변해 버린, 크리처가 되어서 인간의 모습이라곤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곤 하지만, 그래도 내가 죽인 건 한때 인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그 무엇을 죽인다 해도 이렇게 죄책감이 들지 않을 텐데.’

애초에 게임에서 크리쳐들은 죽이기 위해 존재하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미칠 것 같은지 모르겠다. 갑자기 모니카의 눈도 마주하기 힘들 정도로.

나는 뭐라 대답이 나오지 않아서 눈을 내리깔고 고개만 주억거렸다.

내가 갑자기 침울한 눈치이자 모니카는 좀 당황한 것 같았다.

“……제가 너무 무거운 이야길 꺼냈죠? 죄송해요.”

난 얼른 손을 저었다.

“아니에요. 제가 먼저 물어본 거잖아요.”

“하지만 너무 당황하신 것 같아서…….”

“아녜요. 말해 줘서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관심 가져 주셔서 제가 훨씬 더 감사하죠. 뭐, 생각나는 건 경찰한테 다 말하긴 했는데, 귀담아들어 주시지 않으셔서…….”

모니카는 생각을 더듬는 듯 눈알을 굴렸다.

그때 마침 고위 귀족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는 앨라이 쿠스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꽤 근엄하고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다가, 나를 발견하곤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그러곤 주위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듯하더니 내 쪽으로 곧장 걸어오기 시작했다.

난 이쪽으로 다가오는 앨라이 쿠스에게 손을 들어 보이곤 모니카의 손을 꼭 쥐었다.

‘……이번 희생자는 꼭 지켜 내야 할 텐데.’

이제 난 퇴장할 때였다.

“더 생각나는 게 있으면 그때 말씀해 주세요.”

“네……? 네…….”

앨라이 쿠스가 가까이 다가오자 막 자리를 뜨려는데, 모니카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 사소한 거라도 괜찮다면…… 기억이 잘 안 난다는 말을 하긴 했어요. 자꾸 깜박깜박한다고. 밭에 간 기억도 없는데 채소들이 집에 와 있다는 둥, 집 안 물건들을 치운 적도 없는데 치워져 있다는 둥. 기억나는 건 이것뿐인데 정말 별소리 아니긴 하죠?”

난 눈을 가늘게 떴다.

레이커스에게서 비슷한 말을 들었던 적이 있는 것 같아서.

“안녕하세요, 차기 대신관으로 임명받은 앨라이 쿠스입니다. 모니카 양이시죠?”

갑자기 다가온 차기 대신관이 제게 말을 걸자, 모니카는 당황과 선망이 번진 얼굴로 앨라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난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둘을 지켜보았다.

모니카가 얼굴이 새파래진 채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니 앨라이가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잘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당분간 믿을 수 있는 사람과 함께 다니라고. 그게 안 된다면 신전에 와서 지내라고 설득하고 있겠지.’

내가 알기로는 신전에서는 단 한 번도 사건이 벌어진 적이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세이브 포인트는 안전한 곳이어야 하는 게 게임의 불문율이니까.’

앨라이가 습격을 당한 곳도, 신전이 아니라 그의 사택이었던 것을 기억해 낸 나는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톡톡.

멍하니 모니카와 앨라이를 구경하고 있던 난 누군가 어깨를 두드리는 감촉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여기 계셨군요.”

내 뒤에는 모니카와 절대 만나게 하고 싶지 않은, 아직 유력 살인마 후보의 딱지를 다 떼지 못한 남자가 내가 바라보던 방향을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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