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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게임 조연인데요, 죽이지 마세요-81화 (81/130)

공포게임 조연인데요, 죽이지 마세요 81화

리어먼드가로 돌아가면서 우리는 곧장 경시청에 연락을 넣었지만, 경관들이 온 파크를 다 뒤져도 지나의 어머니는 쉽사리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밤 12시가 가까워진 시각까지 버티고 버티던 지나가 쓰러지듯 잠들자, 난 레이커스를 찾아갔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저 창가에 선 채로 밖을 쏘아보고 있었다.

방에 불조차 켜지 않아서, 달빛만을 받아 반짝이는 그의 옆얼굴이 꽤 우수에 젖어 보였다.

똑똑똑.

열려 있는 문을 굳이 한 번 더 두드리자, 레이커스가 날 바라보았다.

탁한 색감에도 불구하고 유리구슬 같기도 하고 수정 같기도 한 그 눈동자에 대해, 눈을 마주칠 때마다 매번 찬탄을 아니 할 수가 없었다.

봐도 봐도 적응되지 않는 외모였다.

그리고 방금 막 씻었는지 평소와 달리 깔끔하게 빗어 넘기지 않고 흐트러져 있는 금발이 썩 퇴폐적이고 매혹적인 구석이…….

‘또 이런다. 감탄도 병이다, 병이야.’

난 혀를 차며 소식을 전했다.

“지나는 자요.”

레이커스는 희미하게 웃었다.

“이제 제게 말 안 거시는 줄 알았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그는 미소를 거두고 다시 창밖을 쏘아보았다.

“예감이 좋지는 않군요.”

“……공작님은 지나의 어머니가 범인에게 납치됐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그 점이 이상합니다.”

“왜요?”

“지금까지 제가 알기론, 범인은 굳이 사람을 납치하지 않습니다. 죽이면 죽였지.”

레이커스의 말에 섞인 확신에, 난 오싹한 한기가 들어 팔을 쓰다듬었다.

“……전, 납치했었잖아요?”

그는 여전히 창밖에 시선을 둔 채로 고개를 위아래로 아주 느리게 움직였다.

“그게 특이한 점이었죠. 하지만 그건 놈이 제게 관심이 아주 많아서 그런 겁니다. 제가 걸리적거리는데 저를 직접 어떻게 하진 못하니 제 주변을 노린 거죠.”

난 등 뒤로 문을 천천히 닫으며 생각에 잠겼다.

‘……레이커스의 말대로, 지금까지 사라진 실종자들이 모두 거미로 변해서 레이커스가 지하에 가뒀던 거라 생각해 보자. 일단은 그 말을 믿는다면…….’

“……혹시 그분도 거미가 된 건 아닐까요?”

“그랬다면 벌써 파크의 어딘가에서 큰 난리가 났을 겁니다. 그건 아닙니다.”

“그럼…… 대체 뭐죠?”

레이커스가 나를 천천히 돌아봤다.

그의 얼굴에는 급하게 돌아가는 지금 상황과는 잘 맞지 않는 이상한 표정이 서려 있었다.

볼우물이 살짝 들어갈락 말락 희미하게 올라간 입꼬리와 샐쭉하게 길어진 눈초리, 눈썹의 끝이 아래로 처지는 그 미소는…… 마치 마음에 쏙 드는 칭찬이라도 들은 아이 같았다.

가만히만 있어도 심장에 안 좋게 잘생긴 미남자가 눈앞에서 그렇게 웃는 건, 정말 참…… 반칙이라고밖에는…….

나도 모르게 그의 입술에 시선을 주게 될 것 같아서 일부러 미간에 안 들어가는 힘을 주며 인상을 찌푸려 보이자, 레이커스가 그 특유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제가 했던 이야기는, 믿어 주신다는 거군요.”

난 순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말문이 턱 막혔다.

꼭 그렇지는 않다.

그가 한 말에는 아직 아무런 근거도 없으니까.

하지만 내 마음 속에 그를 향한 신뢰가 손톱만큼이라도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와 같이 범인에 대해서 상의하고 있으니까, 당연히 그렇게 보이겠지.’

“……지금 그런 게 중요해요? 지나의 어머니가 실종됐는데.”

“저에겐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정말 큰 문제이긴 하죠.”

레이커스가 길게 숨을 토했다. 순식간에 미소가 지워졌고, 그는 시선을 높은 곳으로 돌렸다.

생각이 도무지 정리되지 않는 듯한 그를 보며, 난 하나의 가설을 세웠다.

‘내가 알기로도 범인은 예고장을 보낸 뒤, 희생자를 차례로 죽여 오기만 했어. 그자가 지나의 어머니를 납치한 거라고 가정한다면, 뭔가 이유가 있을 거야.’

“만약, 공작님의 말이 다 맞는다고 해 봐요.”

“네?”

“그러면, 절 납치한 것과 같은 이유 아닐까요?”

“……제 신경을 긁으려고 모리슨 알터의 부인을 납치했다는 겁니까?”

“그게 당장 가정할 수 있는 가장 논리적인 결론인 것 같아서요.”

레이커스는 엄지로 턱을 쓸고 한참 동안 생각하고서야 날 바라봤다.

“모르겠습니다. 그녀를 납치하는 게 저랑 무슨 상관이 있는지. 하지만 그린 양의 이론이 그럴듯하다는 건 인정하죠.”

“……우리끼리 생각을 해 봐야 결론이 안 나네요.”

“일단은 내일 연회를 다녀오고 나서 계속 수색해 봅시다. 정말 납치가 아니라, 개인적인 이유로 사라진 걸 수도 있고……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긴 하니까요.”

‘남편이 살인마로 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딸만 두고 사라질 수가 있나?’

다른 가능성을 떠올리는 게 쉽지 않았지만, 레이커스의 말대로 일단은 당장 내일 연회를 다녀온 뒤 생각해 볼 일이긴 했다.

“……알겠어요. 그럼 내일 아침 일찍 뵈어요.”

“그러시죠.”

“그럼, 주무세요.”

레이커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청록색과 베이지색, 흰색, 검은색 중에 뭐가 낫겠습니까?”

“네?”

“일단 그린 양의 머리카락 색을 고려해 청록색으로 골라 두었습니다만…….”

“뭘요?”

“제가 내일 연회에 입을 옷 말입니다.”

난 뜻밖의 화두에 조금 당황해서 레이커스를 쳐다봤다가, 무슨 국제 정세라도 논하듯 진지한 그의 얼굴을 보고서 어쩐지 얼굴이 빨개질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알아서 하세요.”

“그럼 청록색으로 해야겠군요.”

“내일 아침에 뵙죠.”

방으로 돌아온 나는, 씻고 침대에 누웠다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음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지나를 가로막고 있던 군중에 대한 분노였고, 두 번째로 생각난 건 무능한 경찰에 대한 짜증이었으며, 세 번째로 떠오른 건…….

색깔을 골라 달라며 진지하게 물어보던 레이커스의 얼굴이었다.

‘……데이트라도 할 생각이야?’

왕궁 연회에 대해서는 줄곧 모니카와 접촉하기 위한 장소라고만 생각해 왔었다. 레이커스와 함께 가는 건 보호 역이 필요해서였고.

난 이 방의 작은 옷장에는 들어가지도 않아 옷걸이째로 한쪽 벽에 걸어 둔 드레스를 바라보았다.

진주까지 박힌 새하얀 드레스는 숨 막히게 아름답긴 했다. 그리고 그 드레스와 함께 걸칠 장신구들도 하나같이 예뻤다. 물론 부가 기능도 훌륭했지만.

‘……괜히 그런 소리를 하니까 신경 쓰이잖아.’

난 자리에서 일어나서 몇 번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다가 이대로는 어차피 잠도 안 올 것 같아서 거울 앞에서 드레스를 대보았다.

그동안 이 게임 속의 복식에도 꽤 익숙해졌다. 뭐가 유행이 지난 것이고 뭐가 최신 유행인지도 대충 알아가고 있는 내 눈으로 봐도 예뻤다.

그리고 그냥 예쁜 게 아니라 잘 어울리기도 했다.

에메랄드빛으로 빛나는 내 눈동자와 머리카락을 손으로 덧그리듯 거울을 만져 보다가, 내 시야의 테두리에 있는 상태창이 뒤늦게 눈에 띄었다.

이젠 너무 익숙해져서, 가끔 있다는 것조차 까먹곤 하는 그 상태창이.

난 한숨을 쉬며 드레스를 내려놓았다.

“……지금, 뭘 하자는 거야.”

‘여긴 게임 속인데……? 게임 속에서 무슨 인연을 만들기라도 하게? 그딴 정신 나간 생각을 할 여유가 있어?’

그냥 살아남는 것만도 벅차다. 이젠 진엔딩을 볼 자신도 없다, 솔직히.

그런데 무슨.

난 쓸데없는 생각 따윈 그만두자고 몇 번이고 속삭이며 이불 속을 파고들었다.

깊어지는 가을의 밤은 꽤 쌀쌀했고, 스산한 바람 소리는 크게만 들렸다.

고민이 없어도 잠들기 어려운 밤이었을 텐데, 괜한 생각들에다 지나라는 새로운 고민까지 떠안은 나는 두꺼운 이불을 덮고도 한참을 잠들지 못했다.

똑똑똑, 똑똑똑.

다음 날 이른 새벽. 난 그칠 줄 모르고 끈질기게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에 못 이겨 눈을 떴다.

“……누구세요?”

“저, 앰버예요!”

“아아, 들어와.”

내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눈도 채 다 뜨지 못해 희미하고 뿌옇게만 보이는 시야 안으로 여인 네 명이 쏟아지듯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아르비체 님!”

“안녕하세요!”

“의상실에서 나오신 분들이세요.”

“특별한 분이니, 특별하게 꾸며 드리라는 분부받고 왔답니다.”

나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감사하긴 한데…… 대충 꾸며도 괜찮아요.”

내가 웅얼거린 말을 용케도 알아들은 그녀들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농담도 정말 재치 있게 하시네요.”

“왕궁 연회에 대충 꾸미다뇨, 호호호.”

“아하핫!”

도대체 어떤 부분이 재미있는 포인트인 걸까?

그걸 분석할 만큼의 뇌가 채 깨어나지 않은 탓에, 난 그냥 같이 웃었다.

“……하하.”

그 뒤로도 더 대화하였던 것 같긴 한데, 난 그녀들이 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단장해 놓는 동안에 꾸벅꾸벅 졸기 바빴다.

그렇게 내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동안, 네 명의 여인은 날 욕실로 밀어 넣었다가 향이 좋은 물에 날 씻기고 의자에 앉혔다.

에메랄드빛 머리카락에 향이 아주 좋은 기름을 먹여 매끄럽게 만든 다음 가르마를 내어 두 갈래로 땋았고, 가르마에는 내 머리 빛깔보다 더 짙은 푸른색의 가루를 뿌렸다.

그리고 정수리에는 보석이 박힌 꽃 모양 장식을 올렸으며, 어깨와 목 등 피부가 드러나는 곳에는 반짝이는 가루가 섞인 기름을 발라 주었다.

드레스를 입으면서도 정신을 못 차리고 졸던 나는 문득 감탄사 같은 것이 일제히 들려온다는 생각에 눈에 힘을 주고 떠 보았다.

“세상에…….”

눈앞에는, 세련된 코트 차림의 조각상이 서 있었다.

아니, 레이커스가 서 있었다.

“……와.”

지금까지도 잘생겼다고 오백 번 정도 생각했지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힘을 주어 꾸민 레이커스는 정말이지 천상의 남신 그 자체였다.

난 언제 졸았냐는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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