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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게임 조연인데요, 죽이지 마세요-70화 (70/130)

공포게임 조연인데요, 죽이지 마세요 70화

내가 그를 돌아보자 레이커스가 아무렇지도 않게 약실을 채워 리볼버를 내게 돌려주었다.

“그럼 이제 제가 한 수 가르쳐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그는 그냥 그렇게만 물어보았다.

“제가 공작님처럼 대단한 실력이었다면 좀 더 자랑했을 텐데…….”

난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커스는 내 칭찬에도 싱긋 웃기만 하더니 내게 총을 내리게 하고, 내가 쏜 표적지를 뜯어 왔다.

레이커스의 것에 비하면 여기저기 불규칙하게 구멍이 난 내 표적지는 볼품없었다.

레이커스는 표적지를 내게 보여 주며 설명했다.

“잘 쐈습니다. 잘 쐈는데, 여길 보면 처음에 쏜 세 발이 모여 있고, 바로 그 옆에 다음에 쏜 세 발이 모여 있죠.”

“……네, 그런데요?”

“처음에 잘못 쐈다고 느꼈다면 방향을 수정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실력에 비해 경험이 부족한 느낌이랄까요.”

실력에 비해 경험이 부족한 거야, 당연하다.

나는 총을 제대로 쏴 본 적이 없는걸.

하지만 그걸 알아차릴 줄은 몰랐다.

‘진짜 날카롭다니까.’

너무 정확한 지적에 어깨를 움츠리는데, 그가 리볼버를 쥔 내 손과 팔에 닿을락 말락 하게 손을 가져다 대고 자세를 교정해 주었다.

“손을 여기로, 혹시 모르니 실린더 근처에 손을 대지 않도록 주의하는 게 좋습니다.”

“네…….”

“그리고 오른손잡이라 그런지 살짝 왼쪽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신경 써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이렇게요?”

“왼쪽으로 쏠리는 것 같으니까, 이쪽이죠.”

레이커스는 내가 손을 반대로 움직이자, 가볍게 손목을 쥐고 방향을 교정해 주었다.

그의 손가락과 닿은 피부는 정말 조금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 아주 조금이 이상할 정도로 의식되고 간지러웠다.

은근슬쩍 손을 빼 보려고 시도하는 사이에, 레이커스는 다음 설명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여러 발을 연달아 쏠 때는 점점 조준이 안 좋아지는데, 반동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총을 이렇게 그냥 잡는 게 아니라…….”

레이커스는 자꾸 꼼지락거리는 내 손을 제 손으로 아예 감싸 쥐고 손가락 위치를 살짝 조정해 주었다.

“파지법은 뭐가 정답이라고 할 수 없지만, 반동을 줄일 수 있도록 최대한 안정적으로 잡는 게 좋습니다. 그린 양은 손가락은 길지만, 손이 큰 편은 아니니 이렇게 잡는 게 좋겠습니다.”

레이커스는 그냥 한 손으로 대충 쥐고 아무렇게나 쏘는 것 같았는데, 내 자세는 엄청 세밀하게 코치해 주었다.

손은 다른 곳보다 감각이 예민해서 그런지, 그가 내 손가락이나 손등을 쥘 때마다 자꾸 손이 움츠러들었다.

“간지럽습니까?”

“……아니에요. 계속 말씀하세요.”

“그리고 총을 너무 꽉 쥐는 편입니다. 그러니 방아쇠를 당길 때, 자기도 모르게 조금씩 움직여서 총알이 옆으로 비껴갑니다. 원래의 조준점과 달라진달까요.”

그가 나를 여기로 데려올 때 의심했던 게 미안하게 느껴질 정도로, 레이커스는 열의를 가지고 내게 권총 다루는 법을 알려 주었다.

나는 그의 나직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나 닿은 손의 감촉 같은 것 때문에 정신이 빠져서는 자주 말을 놓치곤 했지만, 그는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다시 자세를 교정해 주었다.

‘……정신 차리자.’

여기에 온 뒤로 이 생각만 몇 번째 하는지 모르겠다.

난 레이커스의 손이 내 어깨를 똑바로 정렬시켜 주고 떨어져 나가는 감각에 온몸의 신경이 집중된 것을 느끼면서 입술 안쪽 살을 살짝 깨물었다 놓았다.

그리고 눈을 꼭 감았다가 떴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다시 내뱉었다.

의식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들을 의식적으로 하는 것은, 마음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나는 한 걸음 뒤에 서 있는 레이커스를 돌아보지 않고, 표적지만을 쏘아봤다.

‘……좋아.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

난 다시 리볼버를 양손으로 감싸 쥐고 표적지를 노려보았다.

레이커스가 알려 준 정보들을 종합해서 총을 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스템 창에 조준점이 보였기 때문에, 그것에 맞추기만 하면 될 거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으니까.

‘총을 부드럽게 쥐고, 방향을 똑바로 정렬하고, 반동을 의식해서…….’

탕!

총알은 표적지의 정중앙에 맞았지만, 나는 만족하지 않았다.

한 발은 쉽다. 반동이 있는 두 번째 발부터가 어려운 거지.

레이커스가 쏜 표적지를 흘끗 바라본 나는 다시 한번 호흡을 가다듬고 내 과녁지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두 발의 총알이 연속해서 날아갔다.

레이커스가 쏜 것처럼 아주 깔끔하지는 않더라도, 총알이 남긴 흔적 간의 간격이 처음보다 확연히 좁아진 게 보였다.

“집중력이 대단히 좋은 편이군요. 이렇게 빨리 늘 줄은 몰랐습니다.”

“감사해요.”

“원래도 센스가 있어서, 자세를 좀만 교정해도 확 좋아지는 것 같군요.”

레이커스가 흐뭇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것을 외면하며, 난 남은 세 발의 총알도 잇달아 쏴 버렸다.

그의 칭찬에 마음속 한구석에서 기분 좋아지는 게 싫어서.

레이커스는 총을 잘 쏘기만 할 뿐 아니라, 이론에도 빠삭했다.

그가 알려 주는 대로 몇 번의 수정을 거치고 나자, 시스템 창에 보이는 조준점이 오히려 거슬릴 정도로 표적지의 중심에 가깝게 총을 쏠 수 있었다.

하지만 총을 쏘는 건 생각보다 꽤 피곤한 일이었다.

오래 연습하고 싶었지만, 삼십 분이 채 지나지 않아 내 집중력은 동이 났다.

솔직히 레이커스가 자꾸 시야에 알짱거리는 것도 내 집중력을 갉아먹는 데 큰 공헌을 하기도 했고.

“이제 더 못하겠어요.”

내가 두 손을 들어 보이자, 레이커스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좋아진 것 같습니다. 내일도 같은 시간에 제 방에서 만나죠.”

“……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삐끗해서 이상하게 나갔다.

“왜 그러시죠?”

“……아뇨. 열심히 연습해야겠다 싶어서요.”

‘저 잘난 얼굴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이벤트가 매일 있어도 되는 거야? 아니, 서비스 컷도 이렇게는 안 넣어 주겠다. 응? 저렇게 잘생기게 만들 거면 마음 놓고 편하게 잘생겼다고 생각할 수 있게 좀 선한 역할로 만들어 줘야 할 거 아냐?’

난 속으로만 분개하며, 겉으론 아무런 티도 내지 않고 레이커스가 열어 준 책장 사이로 다시 빠져나왔다.

책장을 다시 닫는 그에게 인사하려고 돌아보니까, 그는 책장 중간쯤을 손으로 짚으며 미소 짓고 있었다. 아주 내가 재밌어 죽겠다는 듯.

“표정을 정말 못 숨기시는 거 아시죠?”

아무런 티도 내지 않았다는 건 내 생각에 불과한 것 같다.

난 그의 짙은 미소를 보다가, 지금까지 계속 억누르며 참았던 말을 입에 담아 버렸다.

“공작님은…… 그래서, 그 납치범이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레이커스는 내 질문에 장난스러운 표정을 싹 거두고 나를 진지하게 마주 보았다.

“좀 이상한 질문인데…… 그럼, 다른 범인이 있다고 생각했습니까?”

“파크에 너무 많은 사건이 일어났으니까요.”

이 질문 하나를 하기 위해 내가 얼마나 오래 망설였는지 모른다.

난 레이커스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눈에 담으려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뭔가의 단서라도 얻어 보려고.

무엇 하나 논리적으로 설명되는 부분이 없는 레이커스가, 이젠 심지어 내게 총을 다루는 법까지 알려 주고 있다.

그런 그가 더 이상 연쇄살인마로 생각되지 않는 것 때문에 너무 혼란스러웠으니까.

레이커스는 아주 느리게, 그러나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신이 느껴지는 그 동작을 보는데, 숨을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도 까먹은 것처럼 호흡이 부자연스러워졌다.

그를 믿고 싶기도 했고, 그를 의심하고 싶기도 했다.

그를 의심할 확실한 증거들이 손에 들어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내게 다정히 굴수록 점점 혼란이 쌓여 갔다.

지금 마주하고 있는 레이커스의 진지하기 짝이 없는 잿빛 눈동자는 그 혼란의 정점에 서 있었다.

나는 계속 망설이느라 꺼내지 못한 말을 나도 모르게 혀에 올렸다.

“지하실을 좀 보여 주세요.”

레이커스는 의외라는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뭘 생각하는지 바닥 쪽으로 시선을 떨군 채 잠깐 입을 다물고 있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혹시 기억합니까?”

“뭘요?”

“헌트가 앞 골목에서, 저와 만났을 때. 그때 우리가 마주친 것에 대해서.”

나는 그가 내가 원한 대답을 곧장 내놓지 않고 말을 돌리는 것 같아 눈살을 찌푸렸다.

“기억해요. 눈이 여럿 달린 징그러운 크리쳐…… 아니, 거미를 마주쳤던 것 말씀하시는 거죠?”

레이커스는 내 대답에 희미하게 미소 짓곤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기억하시는군요.”

“……뭐, 얼마나 지난 일이라고 그걸 까먹겠어요?”

“그건 시간과는 상관없는 일이니까요.”

레이커스는 내가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리더니 혼자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 침묵을 틈타 기억들이 머릿속을 시끄럽게 했다.

‘지하실에 쇠사슬에 묶인 시체가 있다는 괴담이 있지요.’

다과회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빙빙 맴돌았고, 숨바꼭질하며 숨어 있을 때 들었던…… 그리고 그 이후에도 한 번 더 들은 적이 있었던 기기괴괴한 목소리가 자꾸 생각났다.

레이커스가 거기에 뭘 숨겨 놨든…… 사용인을 고용하면서 거기엔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를 남길 만큼의 비밀스러운 무언가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옥상에도, 제 방에도 뭔가를 잔뜩 숨겨 놓고 있는 이 공작님이 굳이 경고까지 하면서 숨기고 싶은 무언가가.

“지하실이 그렇게 궁금하십니까?”

‘아니, 어차피 루트 개방된 거 다 아는데 왜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거야?’

난 침을 꼴깍 삼켰다.

이게 게임이라면, 틀림없이 지하실에 가는 것은 뭔가의 분기점이 될 거다.

‘궁금하지 않다고 말하는 게 생명 연장의 길이긴 하겠지만…… 인제 와서 그럴 생각은 없어. 그런데도 이렇게 망설여지는 건…….’

그냥 단순히 그 장소가 무섭고, 거기 가면 내가 레이커스에게 살해당할 것 같아서만은 아니다.

어쩐지 싫었다.

레이커스가 아주 높은 확률로 연쇄살인마일 거라 짐작하고 있고, 또 그가 실종 사건의 범인일 거라 생각하고 있는데도…… 그의 정체를 백 퍼센트 확신하게 되는 증거를 눈앞에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걸까……?

‘물러날 곳은 없어, 이제.’

난 억지로 고개에 힘을 주어 위아래로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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