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게임 조연인데요, 죽이지 마세요 69화
“……그래 보였나요?”
“네. 그래서 마음에 드는 총은 고르셨습니까?”
난 잠깐 망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특출 나게 마음에 드는 총이 없다면, 손에 익은 게 제일 나을 것 같았다.
“아뇨, 전 그냥 원래 쓰던 리볼버로 할게요.”
레이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사거리가 짧긴 하지만, 라이플보다 더 연속해서 쏘기도 편하고 좋을 겁니다. 무게도 괜찮고요.”
“네, 그렇기는 한데요…….”
나는 미리 리볼버를 준비해 온 척하며 가방 속에 손을 넣은 채 아이템 창에서 리볼버를 조회해 꺼냈다.
손으로 전해져 오는 차가운 금속의 감촉에, 문득 이 게임에 처음 들어왔을 때 문손잡이를 쥐고 놀랐던 날이 생각나 쓰게 웃었다.
‘그땐 이렇게 적응해 버릴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는데.’
지금은 이곳이 꿈이 아니라는 것에, 게임 속에 내가 완전히 하나의 존재로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에 너무 적응해 버려서 게임이라는 것조차 깜박깜박 잊어버리곤 한다.
난 리볼버를 손으로 쓸어내리며 레이커스에게 중얼거렸다.
“이 총으로는 부족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긴 해요. 이걸로 납치범을 쐈을 때, 좀 아파하긴 했지만 그게 다였어요.”
“그랬을 겁니다.”
“……안 놀라시네요?”
레이커스는 상자의 뚜껑을 닫으며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해 봤으니까요.”
쿵.
상자가 닫히는 소리가 커다랗게 울렸다.
‘……저 상자, 얼마나 뚜껑이 무거우면 소리가 저래?’
내가 그가 하는 양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 레이커스가 허리를 펴며 내 총을 가리켰다.
“그게 바로 그린 양을 여기로 초대한 이유입니다. 놈에게도 약점이 있습니다.”
“약점이요?”
“보셨다시피, 그 가면을 부수면 실체를 유지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아!”
레이커스가 가면을 반으로 갈라놓았던 순간이 다시 떠올랐다.
두 쪽으로 갈라진 가면의 단면이 희게 보였던 것과 사람이 입고 있던 옷이 마법처럼 바닥으로 가라앉는 그 장면이.
“그러면……?”
“어차피 또 멀쩡하게 그대로 다시 나타나는 걸 보면 죽지는 않는 것 같지만, 그래도 소용없진 않겠죠. 이마의 가운데를 정확히 겨냥해서 쏘면 될 겁니다.”
‘이마의 한가운데. 그것도 해 봤기 때문에 아는 걸까?’
나는 다른 상자를 여는 레이커스를 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납치범과 레이커스가 도대체 얼마나 자주 조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레이커스의 말만 들어서는 온갖 방법을 다 시험해 봤을 정도로 자주, 그리고 많이 만났던 것처럼 들렸다.
‘DAY 1 이후로 지금까지 레이커스와 줄곧 같은 집에 살았잖아. 그가 납치범이랑 그렇게 자주 만나고 전투까지 했을 시간적 여유가 있었나?’
DAY 1에 죽은 베리아 남작은 다섯 번째 희생자라고만 나온다.
‘그럼 첫 번째 희생자가 나온 뒤부터, 게임이 시작되기 전에도 연쇄살인과 실종 같은 사건이 계속 있었을까?’
그렇다고 생각해도 시간적 여유가 너무 없는데.
내가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에, 레이커스는 다른 상자에서 커다란 가죽 케이스를 두 개 꺼내 내 손에 들려 주었다.
슬쩍 안을 들여다보자 그 속에는 총알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 은색 총알은 실전에, 그리고 다른 총알은 연습용으로 쓰시면 될 겁니다.”
“아, 네.”
“그럼 이제 한번 연습해 볼까요?”
“그게…… 아, 뭐, 좋아요.”
가르쳐 주려는 레이커스의 마음 자체는 고마운 거였지만, 이런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했다.
나한테 총이란 그냥 아이템의 하나일 뿐이니까.
‘그냥 자동 지시선에 따라 과녁을 겨냥하면 그만인데.’
하지만 레이커스가 도대체 어떤 목적으로 이런 방을 만들었는지, 그의 사격 실력은 어떤지에는 아주 흥미가 있었다.
나는 일부러 속내를 내색하지 않고 얌전히 그가 시키는 대로 과녁을 바라보고 섰다.
레이커스는 내게 총알을 쥐여 주면서 앞에 나란히 걸려 있는 두 개의 표적지 중 하나를 가리켰다.
“일단, 저 과녁의 한가운데에 쏜다고 생각하면서 쏴 보십시오.”
‘……뭐, 아주 쉽지.’
납치범을 상대로 처음 리볼버를 쐈을 때도 크게 빗나가지 않고 모두 명중했었다.
나는 총알을 끼워 넣고 양손으로 리볼버를 꽉 쥔 채로 총을 쐈다.
탕!
총알은 과녁의 한가운데를 거의 정확히 맞췄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레이커스를 돌아보았다.
생각보다 내 실력이 괜찮았는지, 레이커스는 가볍게 손뼉을 쳤다.
“그럼, 이번엔 세 발을 연속으로 쏴 보시겠습니까?”
‘한 발이든 세 발이든 다를 게 있나?’
나는 약실에 다시 총알을 채워 넣고 총을 정조준했다.
탕, 탕, 탕!
잇달아 쏜 세 발의 총알이 요란한 소음을 냈다.
‘……윽. 생각보다 반동이 너무 세.’
납치범에게 총을 쏠 때는 워낙 다급한 상황이라 총이 그냥 어디든 맞기만 하면 좋겠다는 각오로 쐈던 거라, 지금처럼 반동이니 뭐니 하는 것을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다른 방해 요소가 전혀 없는 곳에서 쏴 보니까 연달아 쏘는 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확실히 알겠다.
과녁지에 박힌 총알은 한 줄로 쭉 늘어서 있었다.
마지막에 쏜 총알은 중심에서 꽤 많이 빗겨나가 있었다. 게다가 전부 다 중심의 왼쪽에 분포하고 있었다.
‘……거의 중앙이긴 한데, 아깝다.’
레이커스는 과녁지가 아니라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내가 반동에 당황한 눈치인 걸 보고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곤 내게 한 번 더 쏴 보라고 말했다.
난 그의 말대로 다시 조준점을 바라보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또 세 번의 소리가 나고 나서야 레이커스는 내가 아니라 과녁지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곤 여전히 뭔가 이상하단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역시, 실력에 비해 방향을 수정하는 솜씨가 형편없네요.”
“……무슨 악담을 그렇게 대놓고 하시는 거죠?”
“반대로 생각하면 센스가 너무 좋습니다. 별로 쏴 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조준 실력이 대단한 걸 보면.”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눈치이던 그는 이내 생각을 그만둔 듯 내게 가까이 다가와 섰다.
다시 총알을 일일이 채워 넣는 내 뒤로 다가온 그는 내 시야로 과녁을 보려는 듯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낮춰 내 얼굴 바로 옆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꼴깍.
‘……너무 가까워.’
범죄자와 한 방에, 그것도 밀실에 있는 것만 해도 부담스러운데 이렇게까지 가까이는 곤란했다.
게다가 눈알을 도르륵 굴리자 그의 반질반질한 얼굴이 내 얼굴 바로 옆에 뺨을 맞댈 듯 다가와 있는 건 다른 의미로도 곤란했다.
‘……하나도 불쾌하지 않은 게 제일 큰 문제야.’
최근 들어 그와 이상할 정도로 친밀해져서일까.
나는 내 총과 표적을 일렬에 놓고 보듯 가만히 보다가 몸을 똑바로 세우는 레이커스에게 짜증스레 툴툴거렸다.
“그러는 공작님께선 주 무기가 총도 아니잖아요. 총을 뺏기지 않는 법만 알려 주시면 될 것 같은데요.”
‘그 괴상한 새까만 검이 무기잖아.’
레이커스는 내 말을 듣곤 내 항변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는지, 내게서 총을 받더니 약실을 핑그르르 돌렸다.
평소에도 완벽한 비율의 아름다움 때문에 오히려 섬뜩하게 보일 때가 많은 그였다.
레이커스가 총을 손에 쥐고 있자 가까이 다가가고 싶기도 하고, 절대로 근처에 가고 싶지 않기도 한 아슬아슬한 매력이 극대화되었다.
그 위험한 매력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잡아먹는다.
난 리볼버가 비치는 그의 잿빛 눈동자를 한참 바라보다가, 그가 내게 윙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정신을 퍼뜩 차렸다.
“시범을 보여 드려도 괜찮을까요?”
“그게…… 물론이죠.”
“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여드리죠.”
‘총 쏘는 것 하나에 저런 거창한 소리까지 하는 거야……?’
난 황당해서 황급히 시선을 과녁으로 옮겼다.
또, 또 넋을 놨다.
이렇게 자주 보다 보면 익숙해질 법도 한데, 사람이 너무 잘생기면 면역도 안 생기는 모양이었다.
‘후진할 때 남자가 가장 잘생겼다는 둥, 일에 집중하는 남자가 제일 잘생겼다는 둥 하는 소린 다 쓸데없는 말이야. 그냥 잘생긴 남자는 뭘 해도 그림이 된다고.’
속으로 한숨을 푹푹 내쉬는데, 레이커스가 손을 흔들어 보였다.
“네?”
“귀를 막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아…… 네.”
얼결에 양손으로 귀를 덮는 것과 동시에 그가 한 손으로만 권총을 쥔 채 총의 방아쇠를 연속해서 당겼다.
탕, 탕, 탕, 탕, 탕, 탕!
‘……뭐 하는 거야? 한 손으로 그 반동을 감당할 수 있겠어?’
그렇게 생각하며 바라본 과녁에는, 딱 하나의 구멍밖에 없었다. 눈을 찌푸리고 봐도 과녁의 정중앙을 뚫은 하나의 구멍이 전부였다.
첫 발 이후 모든 총탄이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같은 구멍을 통과할 정도로 경이로운 실력이었다.
‘……양궁에서 로빈 후드 샷이라고 하는 그거지, 이거?’
같은 자리에 겹쳐 쏘는 것.
난 너무 놀라서 감탄사를 내뱉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게임 시스템의 보조를 받는 내 실력보다도 그의 실력이 훨씬 월등하다는 것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었다.
‘마치, 20년도 넘게 세계 올림픽 양궁 1위에서 내려가 본 적 없는 한국 양궁 선수의 솜씨 같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레이커스는 할 일도 많을 텐데, 여기 처박혀서 권총 솜씨를 수련할 시간이 그렇게 많았을까?
레이커스가 요즘 워낙 한가해 보여서 그렇지, 그가 지금껏 이룬 업적과 국왕에게서 받은 감사패만 봐도 얼마나 바삐 지내 왔는지를 알 수 있다.
무슨 빈민 구제원이나 외상 병원 같은 곳도 레이커스가 직접 짓거나 후원한 곳도 많다고 하고.
‘……도대체 저 남자, 아무리 게임의 메인 캐릭터라지만 이렇게까지 밸런스가 안 맞아도 괜찮은 거야? 못하는 게 이렇게 없어도 돼?’
난 기가 막혀 멍하니 그를 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