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게임 조연인데요, 죽이지 마세요 57화
달칵.
식당 문이 열림과 동시에 긴 테이블에 앉아 있던 세 명이 동시에 나를 돌아봤다.
밥상머리에서도 종종 신문을 읽곤 하는 레이커스는 식사를 끝낸 건지 신문만 쥐고 있었고, 두 아이는 냅킨을 목에 두르고서 야무지게 숟가락을 쥐고 있었다.
“그린 양?”
“선생님! 이제 괜찮…… 아?”
“알비 선생님! 나 스케치북!”
샤인이 머뭇머뭇 물어 오는 목소리는 루나가 양손을 버둥거리며 외치는 큰 고함에 거의 묻히다시피 했지만,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난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식당에서의 예절을 엄하게 교육해 둔 덕분에 루나는 내게 오고 싶은 눈치로 자꾸 팔다리를 흔들어 대면서도 의자에서 내려오진 않았다.
그리고 나는 루나를 말리는 사람이 없다는 점에서, 유모가 식당에 없다는 것을 빠르게 눈치챘다.
‘샤인이 멋대로 외출한 것 때문에, 잠깐 쉬게 됐나 보네.’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그건 합당한 일이다. 하마터면 샤인이 큰일을 겪을 뻔했으니까.
내 자리로 다가가는데, 레이커스가 언제나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냐고 물으면 나도 모르게 고맙다는 말을 해 버릴 것 같았다.
잔뜩 경계하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데, 그는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매너 있게 의자만 잡아 줄 뿐이었다.
‘도대체 왜 이런 친절을 발휘하는 거야? 누가 사용인의 의자를 이렇게 매번…….’
“……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차라리 그가 생색이라도 내면 좋을 텐데. 아무런 내색도 없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신문을 집어 드는 그가 짜증이 날 정도로 고마웠다.
“선생님, 루나가 그림 그렸어요.”
“응, 알아요. 밥 다 먹고 같이 보러 가요.”
“선생님, 루나가요.”
“네?”
“그림 그렸어요!”
“네에. 알았어요.”
“스케치북!”
루나는 내가 어젯밤 약속한 대로 그림을 봐주지 않은 게 억울하면서도, 제가 그린 그림을 보고 내가 뭐라고 할지가 너무 기대되어 못 견디겠는 모양이었다.
한 입 먹고 종알거리고 또 한 입 먹고 종알거려 댔다.
“그렇게 계속 말하면서 먹으면 먹는 게 더 느려질 텐데. 그러면 스케치북 보러 갈 시간도 없을지도 몰라요. 괜찮겠어요, 루나?”
내가 웃으며 지적하자, 루나는 그제야 양팔을 얌전히 식탁 위에 내려놓고 전투적으로 식사를 재개했다.
삶은 당근도 주저 없이 입에 넣는 모습에서 가족을 그린 것을 빨리 보여 주고 싶은 루나의 결심이 느껴진달까.
난 루나의 옆에서 숟가락을 깨작거리고 있는 샤인을 흘끗 바라보았다.
풀이 잔뜩 죽은 머리통은 평소와는 달리 정수리만 보였다.
게다가 남자아이라 그런지 고기라면 사족을 못 쓰는 샤인은 평소엔 아침 식사 때도 꼭 고기나 생선 요리를 한 접시씩 비우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샤인의 앞에 따로 놓인 부드러운 훈제 연어가 그대로였다.
샤인의 숟가락은 함께 곁들여 나온 크림소스만 깨작거렸다.
식사 중에는 루나와 장난치는 것도, 허락 없이 자리를 뜨는 것도 안 된다고 교육을 하긴 하지만 저렇게 아침 식사 내내 깨작거리는 걸 보고 싶지는 않았다.
난 어쩔까 생각하다가 손을 뻗어 샤인의 손등을 톡톡 두드렸다.
샤인이 고개를 삐죽이 들었다.
“……응?”
나를 봤다가 황급히 바닥으로 내려가는 시선을 보고, 난 바깥쪽을 손짓했다.
“잠깐 이야기 좀 해요, 샤인.”
“……어?”
“잠깐이면 되니까.”
“……응.”
내가 먼저 일어나자, 샤인은 풀이 죽어서 내 뒤를 따랐다.
레이커스의 시선이 문득 나를 쫓아오는 게 느껴졌지만, 난 달리 설명하지 않고 샤인과 함께 문밖으로 나갔다.
시종들이 한창 바삐 일할 아침 시간이라 식당 문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침 식사 자리를 꼭 지키곤 하는 블리에 씨도 내가 샤인과 단둘이 이야기를 나눌 기세라 따라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둘이서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나는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샤인과 눈높이를 맞췄다.
그리고 바지의 멜빵을 손으로 한참 만지작거리며 신발 코만 내려다보는 아이의 눈을 조용히 들여다보았다.
제 삼촌과 전혀 다른 색이지만, 아름다운 것만은 같은 금안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샤인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대강 들었어. 무서웠지……? 나는…… 나는 무서웠어.”
난 샤인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 주었다. 솜털처럼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손바닥 안에서 사르륵 쓸려 내려가는 감촉이 기분 좋았다.
“샤인.”
“그…… 저기, 있잖아.”
“샤인.”
“미안해, 내가…… 내가, 말만 잘 들었더라도.”
처음에는 신분이 어쩌고 귀족이 어쩌고 하며 쉽게 사람을 무시하더니, 저 작은 머리로 그동안 보잘것없는 남작가 출신 가정교사 걱정을 많이 했나 보다.
그리고 겁도 많이 낫겠지.
아마, 나만큼 샤인도 잠을 설쳤을 거다.
공작가 안에서 안전하게 잘 지내 왔던 샤인에게, 어제의 일이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지를 생각하면 그저 안타깝기만 했으니까.
나는 잔뜩 풀이 죽은 아이의 양손을 마주 잡고 엄하게 말했다.
“샤인.”
“……응.”
“잘못한 걸 알고 있긴 하네요.”
샤인은 내가 달래 줄 거라고 생각했던지, 좀 당황해서는 얼굴에 홍조가 어렸다. 평소의 샤인답지 않게 울음이라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이었다.
굳이 나까지 혼내지 않아도 이미 제 잘못을 지나치게 잘 아는 것 같았지만, 또 내가 아니면 나무랄 사람이 없다는 걸 아니까.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단호하게 말했다.
“다음부턴 그렇게 위험하게 행동하지 마세요. 샤인의 행동 하나 때문에 유모가 잘릴 수도 있다는 거, 알잖아요.”
“……응.”
난 샤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인제 그만 사과해요. 사과받았고, 샤인도 반성했으니까. 그리고 저도 무사히 돌아왔으니까 이번 사건은 이제 끝이에요.”
“……나한테 휘슬을 줘서…… 저기, 있잖아……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지?”
샤인은 어린아이의 상상력으로 내가 무슨 일이라도 당했을까 봐 걱정했던 모양이었다.
물론 실제로 힘들긴 했지만 그렇지 않아도 툭하면 공포에 질리는 어린아이에게 더한 공포를 심어 주고 싶지는 않아서, 난 부드럽게 고개를 저었다.
“다행이다…….”
“네?”
다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아서 되묻자, 샤인이 양손으로 눈가를 비비며 웅얼거리듯 말했다.
“……무사히 돌아와서 잘됐어. 아무 일 없이…… 있잖아…… 걱정했어. 너무 걱정돼서…… 죽을 것 같았어.”
평소처럼 툴툴거리지도 않고, 솔직하게 걱정했다고 고백해 온 샤인의 입술이 삐죽거렸다. 왜 그러나 싶어 고개를 더 내려 샤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샤인이 두 팔을 벌리곤 천천히 내게 다가와 폭 안겼다. 샤인과 알고 난 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얼른 샤인의 몸을 당겨 더 꼭 안자, 샤인이 내 어깨에 고개를 처박고 울음을 터뜨렸다.
“……흐끅, 흐끅. 흐끅.”
고작 아홉 살인 주제에, 제가 오빠라고 그러는지 시원하게 울지도 않고 울음을 어떻게든 삼켜 보려고 애를 쓰는 게 더 귀엽고 안쓰러웠다.
괜히 나까지 눈물이 나서, 난 샤인을 안고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마치, 레이커스가 어제 나에게 해 준 것처럼.
[샤인의 호감도가 상승했습니다.
Lv.3(1/297)
호감도 퀘스트 - 묘지]
호감도 알림창을 보면, 난 늘 게임의 업적을 이룰 때 느끼던 그 뿌듯함을 느꼈었다.
그런데 이번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샤인과 내 사이는 이런 수치로 정의 내릴 만한 것이 아닌데. 이렇게 알림창으로 호감도가 표시되는 것이 더 이상 반갑지 않다는 생각.
게임 캐릭터들이 더 이상 내게 그저 캐릭터가 아니게 되자, 이 세계의 시스템도 그리 달갑지 않다는 생각.
샤인과 나는 자리로 돌아와 각자의 의자에 다시 앉았다.
루나는 전투적으로 밥을 먹다 말고 눈가가 새빨개진 샤인을 보곤 깜짝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루나는 양손에 포크와 스푼을 하나씩 쥔 채로 발을 동동 굴리며 나와 샤인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입 안에 든 것을 겨우 삼키곤 얼른 입을 열었다.
“오빠? 오빠? 선생님이 혼냈어요?”
“그런 거 아니니까 밥 먹어요.”
“오빠? 오빠아?”
샤인이 대답하지 않고 빨간 눈매로 조용히 냅킨을 두르자, 루나는 더 안달이 난 모양이었다.
엉덩이까지 들썩거리며 금방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날 기세가 되어 고개를 갸웃거리는 게 귀엽기 짝이 없었다.
난 웃음이 나는 것을 참으며 루나 앞에 아직 남아 있는 접시를 가리켰다.
“팬케이크 남은 한 점이랑 삶은 깍지 콩 다 먹으면 일어나도 좋아요.”
“네!”
루나가 얼른 대답하고 다시 접시에 코를 박았다.
은색 금색의 머리통이 둘 다 식사에 열중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데, 레이커스가 신문을 접고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시선만 보내오는 게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인지, 진짜 여기 와서 처음 알았다.
‘……으, 할 말이 있으면 하지, 왜 사람을 그렇게 봐?’
냅킨을 펼쳐 무릎에 올리는 동작 하나하나까지 다 의식돼서 내 동작은 기름칠이 덜 된 기계처럼 뻣뻣했다.
내가 쭈뼛쭈뼛 냅킨을 계속 펴고만 있자, 레이커스가 제 손등 위에 손가락을 톡톡 두드리더니 말을 꺼냈다.
“그러다 오늘 안에는 식사를 못 하시겠군요. 많이 허기지실 겁니다. 식사하시죠.”
나는 시선을 앞접시로 떨구고 입술 안쪽 살을 또 깨물었다.
최근에 갑작스레 생긴 버릇이었다. 생각을 멈추고 싶을 때 하게 된.
‘……또, 또 호인인 척. 배려해 주는 척.’
그렇게 생각해 보았지만, 이젠 그가 정말로 호인인 것 같고 정말로 배려해 주는 것 같이 느껴지는 게 문제였다.
내 생각조차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게 너무 힘이 든다.
납치가 대체 뭐길래, 그 사건 하나로 이렇게 관계가 이상하게 비틀어진 건지 모를 노릇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