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포게임 조연인데요, 죽이지 마세요-53화 (53/130)

공포게임 조연인데요, 죽이지 마세요 53화

단박에 귀가 예민해지고 온 신경이 문밖에 집중되었다.

드르륵, 드르르륵.

바닥에 물건을 끄는 저 소리가 좋은 징조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대충 짐작해 봐도 목수들이 쓰는 온갖 험한 도구가 다 떠올랐다.

나는 허겁지겁 다시 아이템창을 켰다.

은색으로 빛나고 있는 6연발 리볼버에 시선이 닿았다.

‘침착하자, 할 수 있어.’

떨리는 손으로 리볼버를 움켜쥐려는 순간, 문이 열렸다.

문 사이로 검은 가면이 비집고 들어와 안쪽을 쓱 살폈다.

반사적으로 손을 내리고 눈을 내리깔았는데도, 그 가면 아래의 음산하기 짝이 없는 시선과 잠깐 시선이 맞닥뜨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선이 부딪쳤을 때의 그 느낌을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푸줏간 주인이 고기를 감정할 때의 눈빛처럼 느껴졌다.

어차피 내가 절대적 약자인 것을 알지만, 겁먹은 티를 내고 싶지 않아서 벌벌 떨리는 턱에 힘을 주며 몸을 꼿꼿이 세웠다.

어느새 완전히 방 안으로 들어온 그자는 손에 들고 있는 것을 가볍게 휘둘렀다.

푹.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그가 떨어트리듯 내려놓은 검은 양날 도끼는 그대로 바닥의 판자를 뚫고 박혔다.

도대체 얼마나 무겁고 날이 잘 벼려져 있는 건지, 두꺼운 판자에 박힌 도끼는 그 자리에 꼿꼿이 서 있었다.

‘나는 한 손으로 절대 들지도 못하겠는데.’

꼴깍.

절로 침이 넘어갔다.

가래가 끓는 듯한 음성이 날 비웃듯 말을 걸어왔다.

“잘 쉬었나?”

여전히 어딘가 변조된 듯한 느낌의 목소리는 섬뜩하리만큼 고저가 없었다.

난 소름이 돋은 팔뚝을 손으로 감싸며 경계를 풀지 않고 대답했다.

“……네.”

그는 내 앞으로 한 걸음 성큼 다가왔다.

“레이커스로부터는 아직도 대답이 없군.”

“……네?”

“뭐 하나라도 선물을 보내야 회신을 해 줄 모양이야.”

무슨 소린가 싶어 고개를 드는데, 납치범이 내 앞으로 또 한 발짝 다가섰다.

“굳이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겠지. 지금까지 대답해 주지 않을 거면, 앞으로도 대답할 생각이 없다는 걸 테니까.”

나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는 정말 레이커스에게 나를 빌미로 협박이라도 한 모양이었다.

납치범과 살인범 사이에 어떤 협박이 오갔는지는 모르겠고,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 레이커스가 나를 애지중지해서 뭐든 들어줄 거라는 전제부터가 오해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내가 쓸모없는 미끼라고 내 입으로 말했다간 바로 죽임당할 테고.’

난 바닥에 박힌 도끼를 흘끗 바라보았다.

‘내가 쓸모없는 미끼라고 생각한다고 해도…… 그건 또 그것대로 무섭기 짝이 없잖아……? 선물을 보낸다는 둥 이상한 소리를 하던데…….’

이자가 정상적으로 사고할 거라곤 생각지 않았지만, 전혀 설득할 구석이 보이지 않았다.

겁먹은 눈으로 도끼를 바라보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범인은 휘파람을 불며 가벼운 손놀림으로 도끼를 뽑아 올렸다.

재밌는 일이라도 앞둔 소년처럼, 양날 도끼를 휙휙 휘둘러 보기까지 하는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대로 벌떡 일어나서 방의 구석진 곳으로라도 도망가고 싶은 마음과 그렇게 자극했다간 더 큰일을 당할 것 같은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겁이 더럭 나서 온몸이 덜덜 떨렸다.

틀렸다.

지금 어떻게 하지 않으면 당장 어떻게 될 기세였다.

나는 턱까지 덜덜 떨리는 것을 느끼며 눈앞에서 반짝이는 아이템창으로 시선을 옮겼다.

‘할 수 있을까?’

레이커스에게 단박에 총을 빼앗겼던 감각이 잊히질 않아서, 나는 느리게 심호흡했다.

‘실수하지 말자. 실수하지 말자.’

지금 믿을 건 놈의 방심 하나뿐이었다.

휙, 휙, 휙.

양날 도끼가 돌아가는 소리와 휘파람 소리를 흘려 들으며, 난 손에 난 진땀을 바지에 눌러 닦고 순식간에 리볼버를 낚아채 안전장치를 해제하며 앞으로 내밀었다.

여기 갇혀 있는 동안 머릿속으로 수십 번도 더 생각했던 순서라 그런지, 실수 없이 매끄러웠다.

“물러서.”

“워후.”

내 나직한 말에 납치범 녀석은 놀랐다는 듯한 소리를 냈지만, 실제로는 그리 놀라지 않은 눈치였다.

가면 아래의 표정을 보지 않아도, 도끼를 고쳐 쥐고 날 바라보는 태도에서 여유가 줄줄 흘렀다.

“그걸로 어쩔 셈이지? 날 쏘기라도 하게?”

“물러서지 않으면, 정말로 쏠 거야.”

“하하하, 하하하하. 재밌군, 재밌어. 과연 레이커스가 좋아할 만해. 그런 장난감은 도대체 어디에 숨겼던 거지? 응?”

“장난은 그만두고, 정말로 물러서.”

하지만 납치범 녀석은, 정말로 쏠 테면 쏴 보라는 듯 오히려 내게로 한 발짝 더 다가왔다. 이제 정말 저 도끼를 휘두르면 닿을 거리였다.

그는 내게서 총을 빼앗을 셈인 모양이었다. 그가 내 손목을 틀어쥐듯 손을 내밀었다.

아주 빠르게 다가온 손이었지만, 난 당황하지 않았다.

이미 레이커스에게 총을 빼앗겨 본 전적이 있는지라, 그가 이리 나올 걸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방아쇠를 당겨!’

탕!

부지불식간에 커다란 소음이 방을 울렸다.

총알 하나가 정확히 납치범의 몸을 향해 날아갔다. 내가 겨냥한 곳은 몸통의 정중앙이었다.

내 손목을 잡으려던 손이 날 비껴가는 것이 보임과 동시에 나는 생각보다 심한 총의 반동에 몸이 휘청거려 몸을 뒤로 휙 물렸다.

널빤지가 박힌 창문이 등에 와 닿았다.

‘……쓰러졌나?’

덜덜 떨리는 양손으로 총을 꽉 움켜쥔 채 겨우 균형을 잡고 앞을 노려보자, 가면을 쓴 납치범이 고요하게 두 손을 아래로 내린 채 서 있는 게 보였다.

그는 도끼를 들지 않은 쪽 손으로 제 가슴팍을 손으로 뒤적거리더니 주머니에서 사탕이라도 꺼내듯 박힌 뭔가를 꺼내 들었다.

내 쪽으로 쫙 펴 보이는 그 손안에 굴러다니는 것은 은색 총알이었다.

방금 내가 쏜, 고작 여섯 개밖에 없는 총알.

아주 무거운 도끼를 붕붕 휘두르는 것보다도, 이게 더 기기괴괴하고 무서웠다.

총을 맞았음에도 아무런 타격도 없이 다시 고개를 들어 똑바로 나를 쳐다보는 그 시선이.

‘……대체 왜, 이걸 맞고도 왜 저렇게 멀쩡한 거지? 사람이 아니야?’

“크크크크, 크크크.”

납치범은 아주 재밌다는 듯 낄낄거리며 손에 들고 있던 총알을 손으로 감쌌다.

“레이커스의 총알이군. 그렇지?”

“……그걸 어떻게.”

“아주 조금은 아파. 아주 조금은. 크크크크. 어쨌든 이렇게까지 나를 자극한 대가는 치를 각오했겠지?”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납치범이 도끼를 던져 버리고 내게 달려들었다.

너무 무서워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의 손을 피해 황급히 방의 반대쪽 모서리를 향해 뛰며 총을 연사했다.

탕! 탕! 탕!

첫 발과 두 번째 발은 어깨와 가슴에, 세 번째 발은 납치범의 귀를 스쳐 벽에 가 박혔다.

‘도대체 왜 죽지 않는 거야?’

나는 초조함에 숨을 삼켰다. 전혀 타격이 없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지만, 아무래도 ‘아주 조금’ 아픈 정도로는 신경만 긁어 놓는 꼴이었다.

나는 숨을 삼키고 네 번째 발을 머리에 정조준했다.

‘왜, 영화 보면 좀비들도 이러면 죽잖아.’

탕!

하지만 놈은 이마에 총알이 박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공포에 질려서 마지막 한 발은 애타는 마음으로 무릎을 노렸다.

탕!

하지만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은지, 녀석의 발걸음은 느려지는 기색조차 없었다.

철컥! 철컥!

총알을 다 써서 빈 약실 통이 돌아가는 소리만 났다.

무표정한 가면 뒤에서, 납치범이 어쩐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것 같다는 상상이 들었다.

위기감이 목을 죄어 오자 이상할 정도로 레이커스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대체 왜. 왜 이렇게 된 거야. 레이커스, 그 얼굴만 반지르르한 살인마 자식, 제 일에 왜 날 끌어들여서 일을 이렇게 만들어? 호감도만 쌓으면 뭐 해. 개자식. 개자식!’

방의 모서리에 등이 닿은 순간, 납치범의 그림자가 내 바로 앞까지 바짝 드리웠다.

“잡-았-다-.”

그 말 한 음절, 한 음절이 아주 길고 느리게 들렸다. 너무, 너무 무서워서. 기절할 듯이 무서워서.

검은색 가죽 장갑을 낀 손이 내 손목을 막 잡으려 했다.

눈을 질끈 감으려는 순간,

쾅! 우지끈!

뭔가를 부수는 듯한 굉음이 들렸고, 그 소리에 놀란 놈이 움찔하고 몸을 멈추었다.

그리고 내가 눈을 다 감기도 전에, 납치범의 그 거대한 몸통을 뭔가가 걷어찼다.

“큭!”

짧은 신음과 함께 납치범은 중력을 거스르듯, 인간 크기의 무언가가 날아가는 광경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호쾌하게 날아가 버렸다.

“……어?”

내가 생각해도 얼빠진 소리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깜빡.

눈을 감았다 뜨는 그 짧은 순간이 지나자, 장면은 다시 변해 있었다.

부드러운 금발을 한 미남자가 든 칼이 납치범의 도끼와 쉴 새 없이 부딪치고 있었다.

챙! 챙! 깡! 깡!

“……레이커스?”

아주 능숙하게 검을 다루며, 무시무시한 무게감을 가진 양날 도끼의 납치범을 쉽사리 궁지로 몰아넣는 그의 뒷모습은 언제나처럼 지독하게 아름다웠다.

딱 벌어진 등과 잘록한 허리의 굴곡이 움직이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이런 위급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춤을 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어떻게 합을 주고받고 있는지도 모를 만큼 둘의 공방이 치열했다.

쿵!

눈을 다섯 번쯤 깜박거렸을 때, 큰 소리와 함께 납치범의 몸이 바닥으로 넘어졌다.

내 눈이 둘의 모습을 간신히 따라잡아 보니, 순식간에 레이커스가 바닥에 쓰러진 납치범의 목을 밟고 있었다.

가면을 쓴 남자가 바닥에 쓰러진 채로 으르렁거렸다.

“여긴 어떻게……!”

하지만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나타난 건지 모를 레이커스는 그런 말 같은 것은 들은 체도 않고 서슴없이 칼을 내리꽂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