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게임 조연인데요, 죽이지 마세요 46화
영상은 방 안의 풍경으로 시작되었다.
시야의 좌우에 붉은 머리카락이 하늘하늘 흔들린다는 것으로, 이 영상이 캐서 헌트의 시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한참 동안 방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결심한 듯 서랍을 열었다. 서랍 안에서 나온 건 겉봉이 이미 뜯어져 있는 편지였다.
떨리는 손이 편지를 봉투에서 꺼냈다. 펼쳐진 편지지 속에는 도장으로 찍은 듯한 까만색의 까마귀 그림이 하나 그려져 있는 게 전부였다.
그것을 본 캐서 헌트는 못내 초조한지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을 빙글빙글 돌다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니겠지? 내가 그 가면의 남자를 봐서 그런 게 아니겠지……? 안 되겠어. 역시 경시청에 가서 도와달라고 말해야겠어.]
그러곤 이내 또 손톱을 딱딱 깨물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냐, 도와 달라고 말하면 더 위험해. 그러면 내가 목격했다는 게 더 확실해지잖아. 그러면 정말 날 죽이러 올 텐데…… 어떻게 하지?]
그녀가 초조함을 견디지 못하고 손톱을 피가 날 정도로 물어뜯는 순간, 방 안의 희미한 조명이 순식간에 다 꺼져 버리듯 시야가 어두컴컴해졌다. 화면 자체가 꺼진 것이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소파에 옹기종기 모여 그 영상을 지켜보던 우리는 그 바람에 겨우 숨을 조금 돌렸고, 라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라떼가 다가가서 만지작거리는 물건은 낡은 영사기처럼 생겼다.
‘<살인자들의 밤>은 크리쳐가 있고, 검이나 총이 나오긴 하지만 마법다운 마법은 나온 적이 없어. 마탑의 이 기술도 차라리 뇌과학에 가까울지도 몰라.’
“이거 왜 이래? 부검 결과를 다 저장한 거라고 했는데. 뭐가 잘못됐나?”
라떼가 불만스레 말하며 영사기 위를 손으로 탁탁 두드리자, 순간적으로 영상의 가운데가 희뿌옇게 밝아졌다.
그 사이로 창문을 등진 어떤 검은 그림자가 빠르게 가까워지는 모습이 보였다.
[사, 살려 주세요.]
캐서의 목소리에 다른 목소리 하나가 섞여 들리기 시작했다. 나이를 특정하기 어려운, 고저를 알 수 없는 남자의 목소리였다.
[제, 제발. 제발…….]
[재물이 되고 싶다고 하질 않았나?]
[제, 제가 언제 그런 말을…….]
‘……저 목소리가, 레이커스의 목소리야? 아니, 레이커스가 일부러 특징을 지워서 낸다고 생각하면…… 하지만 역시 그의 목소리로는 들리지 않는 것 같은데…….’
멍하니 생각하는 사이에 캐서 헌트가 비는 목소리가 들리면서 시야가 다시 어두워지더니, 이내 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되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영상이지만 생각보다 훨씬 생생한 영상을 지켜보는 것은 아주 어려웠다.
완전한 정적이 찾아들고서도 오 분여가 지나도록 우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벽만 바라봤다.
“……영상이 도대체 왜 이렇게 제대로 안 나왔는진 모르겠지만, 차라리 그래서 다행이었는지도 몰라. 내가 보자고 했지만…… 이건 도저히 볼 게 아니네. 미안해, 모두.”
라떼가 벽에 기대 선 채로 멍하니 중얼거렸다.
우리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라떼가 왜 사과해.”
“맞아. 그리고 별로 내용도 없었잖아.”
“……그러게.”
치익-.
그때, 완전히 끝난 줄 알았던 영상이 흐릿하게 밝아지면서 뭔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또 납셨군.]
[……네놈,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죽여 버릴 테다.]
[날 죽인다고? 하하하, 우스워. 아주 우스워. 이젠 슬슬 깨달았을 텐데. 나는 죽지 않는다. 여기 있는 모든 제물은 나를 위해 존재하지.]
[혀가 길군.]
캐서의 의식이 흐려졌기 때문인지, 말소리도 모두 뭉개져서 내용을 알아듣는 게 겨우였다.
누구의 목소리인지 특정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했다. 그저 간신히 둘 다 남자의 목소리겠거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메마른 듯한 신음 소리와 함께 시야가 두 번 깜박였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듯한 그녀의 시야로, 바닥에 떨어진 검고 반짝이는 어떤 물건이 보였다. 아주 단단해 보이고 표면이 매끄러운, 어딘가 우아해 보이는…….
‘헉, 저거!’
난 비슷한 것을 어디서 보았는지 단박에 떠올리곤 아이템 창을 열었다.
인벤토리의 가장 마지막 칸에 담겨 있는 아이템을 바라보자, 아이템의 설명창이 위로 깜박였다.
[비늘 : ??]
상세 내역을 조회할 수 없는 아이템이었다.
‘……정말 쓸모없는 아이템을 주웠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왜 저 현장에 있지? 이게 범인을 가리키는 결정적인 증거인 건가?’
내가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에 라떼와 밀로라드, 르뮈에는 각자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난 이 세계에도, 이 세계의 신에게도 익숙하지 않았지만 캐서 헌트의 영혼이 안식에 들기를 바라는 그 기도의 뜻만은 알 것 같아 함께 양손을 모으고 묵념했다.
기도가 끝나자, 라떼가 르뮈에의 품에 안기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기껏 용기내서 부검 영상을 훔쳐왔지만, 보람은 없고 소름만 끼치네.”
“……그러게 말이야.”
밀로라드가 생각에 잠긴 채 중얼거렸다.
“근데 아까 대화를 나눈 사람은 누구였지?”
르뮈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범인과 안면이 있는 사람인 것 같았는데.”
“범인이 누군지 알고, 저렇게 서로 죽이겠다고 협박할 정도인데 경찰에 알리지 않는다니…… 대체 뭐지?”
“공범인가?”
셋이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아르비체는 어떻게 생각해?”
“응? 나?”
“응.”
공범이니 뭐니 하는 건 전혀 모르겠다.
다만 내 신경은 아직도 눈앞에 반짝이는 아이템창에 쏠려 있었다.
여기는 마탑이고, 라떼만큼 아이템 분석을 잘해 줄 사람은 달리 없을 거다. 그러니 범인을 잡는 데 아주 큰 공헌을 해 줄 게 틀림없다.
‘비늘의 감식을 부탁해도 괜찮을까? ……괜한 짓을 해서 라떼까지 위험해지는 건 아니겠지?’
난 침을 꼴깍 삼키고 아이템창에서 비늘을 불러냈다. 호주머니에 넣은 손에 단단하고 매끄러운, 손바닥 반만 한 크기의 비늘 조각이 잡혔다.
그것을 모두의 앞에 내밀자, 셋은 멍하니 날 바라봤다.
“이거, 방금 영상에 나왔던 거 아냐?”
“아마도 맞는 거 같아. 경시청 근처에서 주웠어.”
“주웠다고?”
“응. 이게 어느 동물의 건지 알 수 있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나로서는 이게 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그냥 들고만 다녔어.”
영상을 본 뒤 줄곧 어깨가 축 늘어져 있던 라떼가 손을 앞으로 내밀며 눈을 빛냈다.
“내가 조사해 볼게.”
“괜찮겠어? 괜히 위험해질까 봐 걱정돼.”
“에이, 무슨 소리야. 우리 할머니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데. 아무도 날 못 건드려.”
“……하지만.”
“그리고 나도 차기 마탑주 후보로 언급될 만큼 꽤 명석하다고?”
“풉.”
축 처진 얼굴을 하고 있던 르뮈에가 라떼의 말에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라떼가 눈을 가늘게 뜨며 르뮈에의 어깨를 때렸다.
“왜 웃어!”
“누가 그렇게까지 자기를 추켜세워?”
“내가! 학문의 탑에서는 자신의 역량을 부끄러워하면 안 된다고 배운다고. 외과 병동에선 그러지 않나 보지?”
“어휴, 그랬어? 그래그래, 우쭈쭈. 우리 차기 마탑주님.”
“르뮈에!”
둘이 티격태격하는 것을 보는 건 생각보다 기분이 좋은 일이었다.
게임과는 상관없는 교류였다.
‘역시…… 여긴 게임이 아니야. 게임이라는 형태로 내게 보여질 뿐, 이들에게는 이곳이 현실인 거야.’
난 이 세계가 점점 더 혼란스럽기도 하고, 점점 더 명료해지기도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나만 믿어!”
“그럼 잘 부탁할게. 조심해야 해.”
“응. 맡겨 줘서 고마워.”
라떼가 싱긋 웃으며 내 손에서 비늘을 받아 가 이리저리 살펴보는 그 짧은 정적을 틈타, 창밖에서 나는 꽤 큰 소리가 내 귀를 때렸다.
쐐애애애액-!
또 그 소리다.
마치, 커다란 괴물이 내는 듯한…… 기괴한 소리.
그 소리는 꽤 크고 무시무시한 것이었음에도 라떼와 르뮈에, 밀로라드는 창문 쪽을 흘끗 보고 말았다.
‘캐서 헌트의 영상을 본 뒤라서 그런가? 아만타 경관이 말한 것처럼 그냥 파크에 바람이 부는 소리일 뿐일 텐데…… 너무 신경이 쓰이네.’
난 소름이 쫙 돋은 팔뚝을 손으로 살살 문지르며 창문에 코를 박았다.
역시 그냥 바람 소리였을 뿐인지, 별다른 특이한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행인들도 아무렇지 않게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다만 먹구름이 어찌나 어둡게 꼈는지, 어두운 하늘 아래에 어둑어둑한 그림자 같은 게 있는 듯 보였다.
막 창문에서 시선을 떼려는 순간, 나는 마탑 앞골목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는 아주 조그마한 그림자를 발견했다.
나풀나풀하게 움직이는 금색 머리.
‘……샤인?’
뒷모습이었지만, 샤인이라는 것을 모를 수는 없었다.
다른 평민들과는 다르게 말끔하게 잘 차려입은 것 하며, 제 삼촌을 닮아 똑 부러지는 걸음걸이, 그리고 보기 드문 금발 같은 건 저절로 눈에 띄는 것이었으니까.
‘어딜 가는 거지?’
리어먼드가에서 여기까지는 거리가 꽤 있다. 도대체 어떻게, 누구와 나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리어먼드가로 다시 돌아가는 거라면 거리가 꽤 있으니 마차를 타러 가야 한다.
하지만 저렇게 걸어가는 걸 보면 그리 멀지 않은 곳까지 이동한다는 건데…….
틀림없이 보호자와 함께 나왔겠지만, 혼자 돌아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샤인을 본 이상 가만히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난 마음이 급해져서 샤인의 위치를 눈에 정확히 담은 뒤 황급히 몸을 돌렸다.
“라떼, 르뮈에, 밀로라드, 오늘 초대해 줘서 고마웠어.”
“벌써 가게?”
“응. 갑작스러운 볼일이 좀 생겨서.”
밀로라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런, 지독한 영상 때문에 분위기가 너무 침울했지? 무서울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생각보다도 훨씬 더 보기 힘들더라.”
“……그러니까.”
나는 말이 길어질 듯한 상황에 마음이 다급해서 급하게 대화를 마무리했다.
“다음에는 리어먼드가로 초대할게. 공작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정말?”
“정말이야?”
“당연히 허락해 주시겠지! 공작님은 알비 너한테 완전 푹 빠져 계시다니까?”
“맞아. 공주님은 신경 쓰지 말고 공작님의 마음도 좀 받아 주고 그래.”
“우리가 참견할 일이 아니야. 아르비체가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둬.”
난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셋이 자꾸 말을 거는 바람에 샤인이 멀리 갔을까 봐 걱정이 된 나는 다시 한번 창문 너머로 밖을 바라보았다.
그때, 샤인의 뒤를 바짝 쫓는 검은 그림자가 하나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