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포게임 조연인데요, 죽이지 마세요-45화 (45/130)

공포게임 조연인데요, 죽이지 마세요 45화

난 재빠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살롱 입구에는 한껏 차려입은 남자 직원이 문을 잡고 있는 것만 보일 뿐, 눈에 띄는 사람은 달리 없었다.

‘살롱 안에 있던 누가 날 보고 있었나?’

“……저기, 혹시 방금 무슨 시선 같은 거 못 느꼈어요?”

“네? 누가 있었습니까?”

아만타 경관이 내 말에 눈을 날카롭게 뜨고는 날 마차에 태운 뒤 살롱을 돌아보겠다고 하며 자리를 뜨려 했다.

하지만 무슨 일인가 싶어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라떼, 르뮈에, 밀로라드의 의아한 눈을 보고 난 얼른 손을 저었다.

괜히 걱정시키는 것도 싫을뿐더러, 내 착각이었을 것 같아서.

“아무 일도 아니야.”

내가 손을 흔들어 보이자, 라떼가 마차를 출발시켰다. 아만타 경관은 마차에 자리가 없어서 타고 왔던 빈 마차에 올라 우리가 탄 마차를 따라왔다.

흘끗 뒤를 돌아보니 경관은 자꾸 걱정되는 얼굴로 주위를 주시하고 있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런 보람이 없을 정도로 마탑까지 가는 길은 평온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는 마탑까지 가는 짧은 길에도 쉬지 않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라떼와 르뮈에, 밀로라드는 정말 유쾌하고 많은 것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아르비체와 동갑인, 7살의 나이라고는 상상되지 않을 만큼.

‘대뜸 레이커스와의 관계를 물었던 것으로 봐서 주요 관심사가 연애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아.’

재밌고 흥미를 끌 만한, 즉 가십이 될 만한 거라면 뭐든 좋아했다.

가령, 새로 발견된 의학적 지식이나 새로 만들어진 마법, 혹은 새로 교역이 성사된 물품 같은 것들에 대해서도 활발하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경시청에서 불이 난 사건이나 실종자들이 생기고 있다는 소식 같은 것에도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연쇄살인에 대해서도.

“경시청만 믿고 손놓고 있으면 안 된다니까, 정말. 창고에 불을 지른 범인도 못 잡았다는데, 어떻게 믿어?”

“정말이야. 그리고 정확하게 어떤 상대가 노려지는지는 아직 안 나왔다지만, 생각보다 꽤 고위 귀족들이 노려진 것도 사실이잖아.”

“맞아. 무서워서 밤에 발 뻗고 잘 수가 없다니까.”

난 셋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가볍게 놀랐다.

물론 게임 속 인물들 모두 이 연쇄살인 사건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저 셋만큼 진지하게 추리를 해 가는 이들은 처음 봤으니까.

셋은 한참을 떠들다가 문득 날 돌아보았다.

“아르비체는 관심 없을 수도 있겠다…… 이런 얘기.”

난 얼른 손을 저었다.

“아냐. 처음부터 내가 마탑에 가 보고 싶다고 했잖아. 그리고 그냥 알비라고 불러도 돼.”

“알비?”

“아…… 루나가 날 그렇게 부르거든. 그래서 입에 붙어서.”

라떼가 작게 웃었다.

“좋아. 알비라고 부를게. 하여튼, 이거 봐. 너희가 괜히 걱정하는 거지, 사람들은 모두 마탑을 좋아한다니까?”

“마탑을 좋아하는 거랑 이런 연쇄살인 얘기를 하는 거랑 같아?”

또 금세 르뮈에와 라떼가 티격태격하자 밀로라드가 우리 뒤를 따라오는 마차 쪽을 흘끗 바라보더니 내게 물었다.

“실은 라떼랑 같이 마탑에 가는 거, 마탑의 주요 인사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부검 결과를 슬쩍 훔쳐보러 가는 거야.”

‘초대하는 목적을 너무 늦게 말하는 거 아냐?’

하긴, 그런 이야기를 경관 있는 곳에서 할 수야 없었겠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밀로라드가 조심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아까 이야기했어야 했는데. 지금이라도 싫으면 말해. 라떼는 제가 좋아하는 거면 막무가내인 성향이 있어서. 죽은 사람의 기억을 보는 건데…… 당연히 싫을 수 있지.”

난 침을 꼴깍 삼켰다.

캐서 헌트의 기억을 본다고 생각하니 역시나 긴장되었다.

아무리 게임 속이라지만, 이제 더는 게임으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이게 현실인지, 게임인지 아주 많이 헷갈리는 순간이 점점 늘어나곤 했다.

그나마 상태창이나 메시지창 같은 게 없었더라면, 이게 현실이고 내가 원래 살던 세계가 거짓이었다고 생각해 버릴 정도로.

그런데 누군가가 죽임당하는 순간을 본다니.

‘……참담하고 끔찍하겠지.’

정말로 반가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외면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도 확실하다.

누구도 아닌 캐서 헌트의 죽음에 대해서는 더더욱.

‘캐서 헌트를 설득하지 못한 건 나야. 내가 책임지고, 그녀의 죽음이 남긴 증거에 대해 샅샅이 알아내지 않으면…… 그녀의 무덤 앞에 설 면목이 없어.’

나는 생각을 차분히 정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걸 보는 취미는 없지만…… 나도 너희와 같아. 매일매일 불안하고, 이 끔찍한 살인 사건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 뭔가의 단서를 얻을 수 있다면…… 나도 보고 싶어.”

장난스럽게만 말하던 라떼와 르뮈에가 내 진지한 말에 서로 시선을 마주치곤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같이 보자.”

“너도 경시청을 못 믿는 편이구나?”

아무래도 나는 이 패거리가 경시청의 자료를 엿보는 범죄에 완전히 가담하게 된 모양이었다.

마탑은 게임 속에서 봤던 것과 꼭 같게 생겼지만, 이 게임 속에서 음울하고 어두운 분위기의 건물을 하도 많이 봐서 그런지 생각보다는 밝아 보였다.

높디높은 검은 벽돌 건물의 외벽을 따라 새하얀 나뭇가지가 빽빽하게 붙어 자라고 있었고, 비상식적으로 여기저기서 삐져나온 굴뚝들에서 흰 연기가 모락모락 솟아오르고 있었다.

마차에서 내린 라떼는 내게 아만타를 떼어 놓고 오라고 속삭이곤, 1층 로비에 놓인 의자를 가리켰다.

“저거, 마탑에서 만든 특허품이야. 특별히 이번만 빌려줄 테니까, 잘 설득해서 두고 와. 알았지?”

그녀가 가리킨 의자는 가까이에서 살펴보니 안마의자처럼 생겼다.

이리저리 뜯어보아도 마법적인 물품이라기보다는 그냥 조잡한 기계처럼 보였다.

“이걸 어떻게 쓰는 건데?”

“여기 앉아서 자전거를 타듯이 움직이면 어깨와 등, 허리가 시원하게 마사지 된다고.”

‘그러고 보면 마탑이라고 해도, 불꽃이나 얼음을 피워 올리는 그런 마법 같은 건 이 게임 속에 없으니까. 플레이어에게 제공되는 영상들을 보여 주는 뇌과학적인 요소를 비롯해서, 좀 매드 사이언티스트 같은 느낌이었지.’

“그런 시장성 없는 물건은 그만 만들지 그래?”

“돈, 돈! 그놈의 시장성 소리는 그만해, 밀로라드! 여긴 학문의 탑이라고.”

밀로라드와 라떼가 투덕거리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할 때쯤, 아만타 경관이 로비에 도착했다.

나는 그녀에게 라떼가 소개해 준 의자를 가리켜 보였다.

“저 의자, 한번 앉아 볼래요?”

“……네?”

“아주 시원한 안마의자라고 하던걸요?”

아만타 경관은 당황한 눈치로 의자에 앉았다. 다리를 움직이자 조잡한 기계의 팔과 다리가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그녀의 팔과 어깨를 통통 두드리며 마사지 해 주었다.

“……어. 으음.”

아만타는 처음에는 그 조잡한 생김새에 당황한 눈치였지만 계속 페달을 밟자 생각보다 훨씬 더 시원한지 눈을 내리깔고 마사지를 즐기기 시작했다.

‘여기가 이 게임 속에서 과학이 최고로 발달한 곳이긴 한가 봐.’

난 작게 웃으며 아만타에게 속삭였다.

“좀 쓸 만해요?”

“아, 네? 아아아. 네. 정말…… 정말 시원하네요.”

어깨를 두드리는 기계 때문에 목소리가 덜덜 떨리게 들리는 점이 재밌었다.

“여기서 좀 더 즐기고 있을래요? 위에 가서 잠깐만 이야기를 나누고 올게요.”

아만타가 눈을 번쩍 뜨고 날 바라봤다.

“하지만 레이커스 님께서 신신당부하셨는걸요. 아르비체 님께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항상 가까이에서 지키라고 하셨는데.”

난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에이, 잠깐 쉬셔도 괜찮아요. 혼자 있는 것도 아닌걸요. 저 셋이랑 같이 있으면 위험하기가 더 힘들 걸요?”

“……그거야 그렇지만.”

“그러니까, 여기서 잠깐 쉬고 계세요. 라떼가 만든 그 기계, 언제 또 써 볼 수 있을지 모르잖아요.”

“……그건, 그런 건 상관없지만, 아르비체 님 말대로 여기서 위험한 일 같은 게 있을 순 없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대신 빨리 돌아오셔야 해요.”

‘앗싸.’

상관없다고 말한 것치고는 부지런히 페달을 밟고 있는 아만타의 허락이 떨어지자 나는 얼른 계단을 올랐다.

아만타를 겨우 이해시키고 계단을 오르자, 라떼와 르뮈에, 밀로라드가 계단이 끝나는 곳에 있는 작은 방에서 나를 맞았다.

평소에도 셋의 아지트로 쓰이는 공간인지, 아늑해 보이는 방 안에는 트럼프 카드나 커다란 쿠키 통, 처음 보는 커다란 보드게임 박스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어휴, 손님을 갑자기 모실 줄 알았으면 청소를 좀 할걸.”

“너 때문이잖아, 르뮈에. 네가 하인들이 들어오는 걸 그렇게 끔찍하게 싫어하지만 않았으면 청소를 부탁했을 거라고.”

“하지만 어지른 건 너잖아, 라떼.”

“둘 다 그만 싸워, 부끄럽지도 않아? 여기로 앉아, 아르비체.”

티격태격하는 둘을 무시하라는 듯, 밀로라드는 나를 끌어다 소파에 앉혔다.

소파 위에도 초콜릿이나 사탕 봉지 같은 것들이 어지럽게 늘어져 있었기 때문에, 나는 손으로 그것들을 대충 한쪽으로 밀어 정리하며 앉았다.

라떼가 내가 하는 양을 보고서야 얼굴이 빨개져서는 황급히 이것저것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르뮈에와 밀로라드는 각자 따뜻한 차와 롤빵을 준비했다.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자니 어색해서 난 손안에 든 사탕 봉지를 만지작거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뭐 도울 것 없을까?”

라떼는 황급히 내 손에서 사탕 봉지를 빼앗아 가며 손을 저었다.

“에이, 오늘 온 첫 손님인데. 됐어, 가만히 있어.”

르뮈에가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비체를 좀 자주 불러야겠는걸? 우리 라떼가 이렇게 컸어요.”

“놀리지 마, 르뮈에!”

“어쩜 아르비체는 사람이 저래? 괜히 샤인과 루나가…… 아니, 그 이전에 레이커스 님이 괜히 인정하신 게 아니라니까?”

“그건…… 맞아. 하지만 나도 평소엔 이렇지 않다? 아주 유능한 마탑의 일원이라고.”

밀로라드가 둘의 말은 신경 쓰지 말라는 듯 나를 다시 앉혔다.

라떼가 볼을 부풀리며 청소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쯤에는 밀로라드와 르뮈에도 자리에 앉았고, 우리 앞에 훌륭한 다과가 준비되었다.

넷이 벽 쪽을 향해 나란히 다닥다닥 앉은 모양새가 되자, 라떼가 지금까지의 장난기 어린 얼굴을 싹 거두고 벽에 양손을 짚었다.

“픽.”

그녀의 말과 함께, 어지러운 장식이 그려져 있던 벽에 영상 같은 것이 투영되기 시작했다.

마치 영사기로 쏜 듯 흐릿한 색감의 영상 속에 붉은 머리카락이 보였다.

‘캐서 헌트의 머리카락이다.’

심장이 빠르게 두근거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