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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게임 조연인데요, 죽이지 마세요-36화 (36/130)

공포게임 조연인데요, 죽이지 마세요 36화

방으로 돌아온 나는 모처럼의 외출에서 얻은 성과들을 정리했다.

일단 그린가에서 가져온 일기장과 거리에서 얻은 아이템들을 한 번씩 열람해 보았다.

아르비체 그린은 생각보다 일기를 꼼꼼히 쓴 편이었지만, 대충 훑어보니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그냥 고모의 집에 얹혀살게 되면서 하루하루 힘들어한 내용, 리어먼드가에 가게 되어서 마음의 부담을 느끼는 내용 같은 단편적인 일기가 전부였다.

그 외에도 아르비체가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다 훑어보았지만, 딱히 수상한 물건은 발견할 수 없었다.

‘이걸로는 연쇄 살인마의 표적이 된 이유를 알 수 없을 것 같아.’

난 그린가에서 가져온 물건들을 다 치워 버리려다가 일단은 책상 한구석에 얌전히 모아두었다.

모처럼 그린가까지 가서 가져온 것들인데, 혹시 더 알아낼 수 있는 게 있을까 싶어서.

그리고 나머지 아이템 중에서 호감도 작업을 할 때 유리한 것들을 따로 정리해 둔 뒤,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레이커스가 돌아오면 또 나를 감시하겠지.

그전에 이 집을 좀 둘러보는 것도 좋을 것 같지만, 이른 아침부터 파크 전체를 돌아다니느라 너무 고생했더니 밀려오는 잠을 견딜 수가 없었다.

절로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뜨지 않고 내버려 두는 사이에, 의식이 점점 흐려졌다.

절그럭.

절그럭.

이르게 잠이 들었던 덕분에 한밤중에는 얕은 잠에 빠져들어 있었다. 그 탓인지 한밤중에 들려오는 어떤 희미한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의식을 집중해서 들으면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 같다가도, 다시 잠으로 침잠해 들어가려고 하는 순간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아주 흐릿하게 들려왔다.

잠에서 깰 듯 말 듯 하던 의식이 어느 순간, 온몸에 쫙 끼치는 소름과 함께 번쩍 깨어났다.

나는 눈을 뜨고 완전히 어두워진 방 안에서 귀를 기울였다.

어떻게 된 건지, 의식적으로 들으려고 노력하면 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숨바꼭질을 하면서 들었던 그 소리였어.’

나는 어둠 속에서 눈을 되록되록 굴렸다.

워낙 흐린 날씨가 계속되어 창밖을 보아서는 시간이 가늠되지 않았다.

등불에 불을 켜고 몸을 일으켰다.

방에 걸린 작은 뻐꾸기시계는 정확히 자정을 조금 지나 있었다.

“……깜박 잠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꽤 오래 잤네.”

창가에 바짝 다가가서 밖을 바라보았지만, 마차와 말들은 정비를 위해 다 안으로 들인 모양이었다. 레이커스가 돌아왔는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돌아왔을까? 만약 돌아왔다고 해도 지금은 워낙 늦은 시간이니 잠자리에 들었을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답인데, 내 마음은 자꾸 지하실로 달려가고 있었다.

‘원래 공포 영화에서는 호기심을 가지는 사람이 제일 먼저 죽는 건데.’

하지만 확인하지 않으면 결정적인 단서를 놓칠 것만 같았다.

‘게다가…… 그간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렸다면 항상 굳게 닫혀 있던 그 문이 열려 있는 건지도 모르잖아.’

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다가, 결국 푹신한 슬리퍼에 발을 꿰어 넣고 원피스 잠옷 위에 흰 가운을 두른 채로 문을 나섰다.

등불을 움켜쥔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바람에, 복도를 비추는 불빛과 그림자도 덩달아 너울너울 흔들렸다.

등불 때문에 자꾸 주황색으로만 보이는 벽과 카펫 때문에 신경이 곤두섰다.

금방이라도 누군가 갑자기 나타나 내 뒷덜미를 낚아챌 것만 같아서 난 몸을 잔뜩 움츠리며 사방을 자꾸 살폈다.

하지만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아도 자면서 들었던 그 쇠사슬 소리는 다시 들려오지 않았다.

‘……꿈이었을까?’

만약 그렇다고 해도 기왕 방을 나온 참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등을 떠밀리듯 손에 든 등불을 꽉 움켜쥔 채 조용한 저택의 복도를 지나 계단을 돌아 내려갔다.

1층에 도착해서도 바짝 긴장해서 귀를 기울였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미친 듯이 심장이 뛰었다.

게임 내에서는 그냥 괴담인 것처럼만 다뤄지고 말았던 부분이었다. 다과회에서 들은 괴담 정도의 정보뿐이었다.

리어먼드가의 지하실은, 사실은 가 본 적이 있었다.

플레이어로서 게임을 할 때.

‘그때는 아무것도 없었지.’

지금보다 훨씬 미래의 시점이었다. 최종장에 진입하기 직전, 리어먼드가의 지하실에서 큰 불이 나는 바람에 지하실을 출입할 수 있는 이벤트가 열려 경관들이 조사하고 있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때 본 지하실은 완전히 새까맣게 전소되었었다.

천장을 지지하고 있는 기둥이 제대로 남아 있는 게 용하다 싶을 정도로 정말로 재밖에 남지 않아서, 여기에 뭐가 있었는지조차 짐작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때는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냥 술통이며 보관된 기름과 장작이 많이 있어서, 그것들 때문에 불이 더 활활 타올라서 이 꼴이 되었다는 말을 믿고 말았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렇게 수상한 얘기가 없다.

‘……그런데 정말 지하실에 갇혀 있는 게 납치된 시민이라면? 실종자들이라면? 누군가 구해 주지 않으면 그 사람들은…….’

아무것도 남지 않을 정도로 모두 타 버려서 그을음밖에 남지 않았던 지하실을 상기하며, 나는 어깨를 한껏 움츠렸다.

지하실 문이 어디 있는지도 알고, 안에 뭔가 수상쩍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도 아는데…… 이걸 그냥 내버려 두는 건…….

‘……내가 직접 해결할 게 아니라 경찰에 알릴까?’

아무리 레이커스와 경찰이 아주 친한 사이라지만, 제대로 된 증거가 있다면 곧장 체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바로 진엔딩으로 돌입할 수 있을지도.

‘……만약 그랬다가 아무것도 아니면? 뭐가 있는지는 확인을 하고 신고를 해야 제대로 조사해 주는 게 아닐까?’

이 저택에 놓여 있던 수많은 감사장 같은 걸 생각해 봐도 그렇다.

그저 의심스럽다고 신고하는 것만으로는 출동조차 해 주지 않을 것이다.

확실하게 사건 현장을 포착해서, 그걸 사진으로 찍어 가기라도 해야지.

인벤토리에만 모셔져 있는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써 먹을 곳이 바로 이런 곳이겠지.

‘……역시, 내가 직접 가는 게 유일한 방법이야.’

난 두근거리는 심장을 누르고 숨을 작게 들이켰다.

여기까지 온 김이다.

그리고…… 레이커스의 실체를 확실하게 확인하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지금, 이 시각이 아니면 내가 들었던 그 희미한 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거다. 또 언제 기회가 올지 모른다.

몇 번이고 가 봤던 길이라 길을 헤매지는 않았다.

다만 몸을 숨길 곳이라곤 전혀 없는 1층의 너른 중앙홀을 지날 때는 정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누군가를 마주친다면…… 무슨 변명을 하면 좋지? 몽유병이 있다고 둘러 댈까? 아니면 달밤에 산책을 하고 있다고?’

온갖 변명을 다 떠올리던 나는 한쪽 귀걸이를 빼 주머니에 넣었다.

레이커스가 사 준 귀걸이였다. 그걸 찾고 있다는 변명이라도 둘러대면, 누굴 만나더라도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비싼 물건이니까.

하지만 한밤중에 등불까지 챙겨 들고 응접실이나 현관과도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저택의 구석진 곳에서 누군가를 마주치면, 그런 변명이 먹힐 리 없을 것 같긴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런 조잡한 변명을 써먹을 기회는 없었다.

지하실로 이어지는 녹색 문에 도착할 때까지 누구도 마주치지 않았다.

덜컹.

살짝 문을 잡아당겨 보았는데, 평소와는 달리 걸쇠가 턱 하고 걸리는 감각 대신 나무문이 부드럽지 못하게 열리는 감촉이 들었다.

분명…… 어쩌면 문이 열려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다.

그래서 내려온 거기도 했고.

‘하지만 정말로 열려 있으니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잖아.’

팔에 오소소 돋는 닭살을 견디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여기까지 왔잖아. 잠깐 내려가서…… 뭐가 있는지만 보자.’

쇠사슬 소리가 들렸던 거니까, 그게 뭐든 쇠사슬에 묶여 있는 것은 분명하리라.

나는 숨을 크게 들이켜고 문을 확 열었다.

아래로 내려가는 길에는 새까만 어둠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걸어온 저택 안은 어두웠지만, 그래도 희미한 달빛이나 여기저기에 켜 놓은 작은 등불 때문에 완전한 어둠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하실 계단 초입부터는 작은 불빛조차 없는 완연한 암흑이었다.

꼴깍, 절로 침이 넘어갔다.

‘……여길 어떻게 가?’

심장 박동 소리가 너무 빠르고 커져서, 내 귀로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다 들었다.

등불을 앞으로 내밀어 비춰 보자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이 흐릿하게 밝아졌다.

아주 좁고 깊은 계단이 보였는데, 그건 마치 저승으로 가는 지름길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여기까지 온 이상, 문을 연 이상 그래도 가 보긴 해야지.’

-라고 생각했다가도, 눈앞에 놓인 시커멓게 입을 열린 구멍을 보니,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죽어도 여긴 못 가겠는데.’

그렇게 나 혼자서 치열하게 싸우는 순간이었다.

절그럭.

그때, 희미한 쇠사슬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잠결에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이번에는 훨씬 분명하게 들렸고, 내가 마주하고 서 있는 암흑 아래에서 들려오는 게 확실했다.

절로 붉은 장미 덤불 옆에 숨어서 들었던 ‘살려 주세요’ 하는 그 희미하고 절박한 목소리가 떠올랐다.

‘……젠장.’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벽을 부여잡고 겨우 한쪽 발을 떼어 계단 위에 올려놓았다.

한 발짝, 한 발짝.

끼익-.

“히익!”

그렇지 않아도 무서워 죽겠는데, 내가 내딛는 계단참마다 낡은 나무가 비명을 질러 댔다.

그렇게 터질 것 같은 심장을 겨우 달래 가며 스무 개 계단을 내려간 즈음이었다.

끼익-.

내가 밟은 계단 소리가 아니다.

나는 어둠 속에서 퍼뜩 고개를 들었다.

계단 아래에서 내가 밟은 게 아닌 다른 낡은 계단이 토하는 비명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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